유명한 화가 양금상(杨金祥)근작 그림 10점 내놓아
1951년 4월 28일, 중앙문학연구소에서 연구원 신분으로 공부중이던 서광요(徐光耀)와 김학철(金学铁)은 학우 진묘(당시 정령의 비서)의 소개로 서로 알게 되였다.
항일전쟁에서 부상당해 한쪽다리를 잃은 김학철은 항일영웅이다. 그는 서광요와 마찬가지로 전사이자 작가였다. 그들은 첫 만남에서 벌써 의기투합했다.
서광요와 김학철은 중앙문학연구소 회의실에서 문학을 두고 열띤 담론을 펼쳤다. 당시 김학철은 왕성한 정력으로 쏘련과 중국의 많은 명작들을 읽었다.
진묘는 김학철더러 시간을 잡아 서광요 등에게 그 본인의 경력을 이야기해줄 것을 요청, 김학철은 흔쾌히 응했다. 서광요는 정말 빠웰·꼴챠낀답다고 김학철을 높이 평가했다.
1951년 5월 17일, 서광요는 《평원렬화》를 김학철에게 가져다주었다. 김학철은 읽어본 후 “엄하게 비평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광요에 대해 점차 깊이 알게 되면서부터 김학철은 그를 아주 존경했다. 서광요도 김학철에게 똑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자기의 학생인 김학철과 서광요를 매우 좋아했던 정령은 늘 그들에게 문학은 바로 사람을 모질게 쓰는 것이라고 일깨웠다.
서광요는 중국작가대표단 일원으로 쏘련을 방문하고 돌아와 김학철과 진묘에게 각기 고리끼 접시상(盤子像)을 선물했다. 그들 둘은 선물을 받아들고 껄껄 웃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서광요, 진묘와 김학철 일가는 돈독한 우정을 맺었다. 김학철의 아들 김해양은 서광요아저씨를 아주 좋아했다.
중앙문학연구소에서 갈라진 후로 서광요와 김학철은 다시는 련락한 적 없었다. 2021년 7월, 서광요는 원씨 호가장에 김학철의 항일문학비가 있다는 말을 들고 기쁜 나머지 흔연히 붓을 들어 김학철기념관이라는 여섯글자를 적고 김학철 관련 도서를 기증했다. 김학철의 아들 김해양과도 련락이 닿으면서 그들 사이의 미담을 다시 이어나갔다.
김해양(金海洋) 제공/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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