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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테고리:방생진료소 소개 ]

사례로 보는 불임
2014년11월01일   조회:5844   추천:0   작성자: 延吉方生门诊部
무정자란 통상적인 정액검사에서 정액을 원심분리한후에 정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여 정자가 없다면 무정자증으로 확정되는것을 말합니다.
정상부부에서 임신가능성은 정상적인 성생활후 첫달에 20~25%, 6개월에 75%, 1년에 85~90%에 이르게 됩니다. 1년간 자각적인 피임조치가 없이 정상적인 부부생활과 성관계를 하여도 임신이 안되는 10~15%의 부부는 불임으로 간주하여 이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되며 적극적으로 검사를 원할 때에는 1년이 되기전이라 하여도 평가를 하게 됩니다.
남성불임중에서 정액검사는 모든 병례청취와 신체검사를 가장 기본으로 한번도 아닌 2~3회의 검사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정액검사에서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인가 아니면 정자는 있으나 정자의 질에 문제가 있는가 하는 경우 즉 정자의 수와 운동성이 감소하거나 정상형태가 감소한 경우인지 아니면 남성호르몬이 감소된 성선기능저하증인지 혹은 정자는 전혀 문제가 없는지 등등을 구분해야 하기때문입니다. 이 구분은 다음 절차의 정자와 치료를 연구하게 되기때문입니다. 같은 무정자라 하여도 그 원인이 부동함에 따라 정체적인 록색치료로 생육은 물론 전신건강까지 회복할수 있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전신건강은 회복시켜줄수 있으나 생육은 이미 회복이 가능하지 못하거나 전혀 치료가 필요없거나 등등의 경우들이 있습니다. 만약 수술료법을 사용하더라도 이 치료는 수술성공률을 현저히 높일수 있습니다.
우선 정관페쇄로 불임8년 환자의 사례를 보기로 합시다.
 
8 불임 정관페쇄
환자 ×××, 36세, 이미 무정자로 포기받은 남성이였습니다.
12년전 제가 서안에 국내남성학회의를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세무계통제복을 입은 한 남성이 부인과 함께 아이를 안고 회의장으로 찾아왔습니다. 누구를 찾고있는 모양이였습니다. 앞자리에 좌석을 정한 저는 서안에서 부부가 저를 찾을리 없다고 생각하여 무관심하게 저의 자리를 지키고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의 안내자는 다른 의사가 아닌 저를 찾아 《연변에서 오신 방산옥의사이십니다》고 소개하는것이였습니다. 저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보았더니 그들 부부는 이구동성으로《옳습니다》《옳습니다》하며 기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자 아이를 저한테 넘겨주며《선생님의 덕으로 우리 부부는 귀동자를 보게 되였습니다.》라고 기뻐하며 말하는 사이에 저는 이미 두돐이 오래지 않다는 애를 받아안았으나 아직도 그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억을 더듬고있을 때 그는 이야기를 계속하였습니다. 광주에 있을 때 아이가 없어 많은 병원을 드나들며 고생하는 우리 부부에게 선생님을 소개하기에 연변을 찾아 병보이고 그 후로부터 3차나 선생님과 전화로 통화하면서 약을 부쳐주셨기에 임신하게 되였습니다. 안해가 임신하게 되자 서안에 계시는 부모님들의 방조를 받고저 광주로부터 전근하였다는 것이였습니다.
광주에서 수차 불임진단을 받았습니다. 안해는 별일 없는데 남성이 무정자라고 그때만 하여도 치료가 없으니 양자를 두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와의 담화를 통하여 대체적인 시간을 적어가지고 돌아오자마자 즉시로 그의 병력서를 찾았습니다.
8년불임환자였습니다. 원인은 무정자였구요. 그러면 무정자의 원인은 또 무엇이였을가요? 고환병리검사에서는 정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성전립선염과 만성부고환염이 있었습니다. 정관검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전립선과 부고환의 염증은 정자의 유일한 통로인 정관에도 그 양향을 미쳤을것이 너무나 명확한 도리였기에 추정적으로도 정관페쇄가《긍정》되였기때문이였습니다. 또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 병은 치료되여야 하니깐 정관이 병신이 아닌이상 그 어떤 변화를 기대할수 있을것이라 여겼기때문입니다. 과연 만성전립선염의 정체적 록색치료에 부고환염도 비뇨계통만성염증증상도 호전되여 전신건강에도 매우 뚜렷한 호전을 보였습니다. 2달 기다렸다가 만약 임신이 안되면 다시 정관조영검사를 하라고 했었는데 그 두달사이에 이미 임신이 된것이였습니다.
치료후에 결론을 보아도 그의 무정자원인은 만성전립선염 만성부고환염의 후유증인 정관페쇄였습니다. 치료과정에 정관페쇄도 다시 개통되여 정자가 다시 통할수 있었기때문입니다.
 
무정자가 아닌 역사정
장××, 29세, 해림시.
《결혼한지 5년입니다. 할머니, 조할아버지까지 모신 4대 장손입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생전에 증손자의 자식 고증손을 보시겠다고 어찌하면 그도 가족의 재촉으로 22살에 일찍 장가들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조할아버지가 세상 뜬지도 2년이 넘지만 5년간 임신은커녕 성생활도 조설이 심하여 두 부부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사정시 감각은 좀 느꼈어도 사정액은 있는지 없는지 그저 흉내만 내는격이 되였습니다. 아뭏든 병이라면 병같고 남자로서는 부족한 편이였습니다. 가정에서의 재촉으로 1년되기도전부터 병원을 드나들었으나 무정자라서 다른 검사도 없이 북경, 상해를 가자고 하면서도《무정자》는 가보았어도 별수는 없을것이라기에 떠나지도 못하고 중약만 쓰다보니 나만 몸이 아주 비대하여진것 같습니다. 정말 미칠것만 같았으며 때론 살 재미도 없었습니다.》그의 말입니다.
그가 먼길을 거쳐 진료소로 왔을 때에는 이미 신경장애까지 있었습니다. 아마 불임, 성기능하강 등 정신적부담을 느껴서 신경관능증마저 온상싶었습니다.
외부생식기발육은 아주 건강하였고 정자검사를 하려니 정액을 받을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 부부를 호텔로 돌려보내고 성생활후 소변을 받아가지고 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다시 그들이 갖고 온 소변으로 정액을 찾아보았습니다.
소변침전물에서는 많은 정자들이 발견되였습니다. 환자도 함께 저의 설명을 들으며 정자를 찾아보며 반신반의하였습니다.《어찌된 영문입니까? 왜 저의 정자는 방광에 들어갔고 성생활후의 소변으로 나가야 합니까?》
정자가 사정시 뇨도구로 배설되지 못하고 방광에 배설되여 소변과 함께 배출되는 현상을 역사정이라고 합니다. 역사정시 치료가 안된다면 소변중의 정자를 채취하여 인공수정으로 애를 가질수는 있지만 남성 역사정으로서의 병은 치료가 안됩니다. 역사정환자들의《성쾌감》비록 사정감은 있으나 배설이 없다면 이미 아이가 있는 남성들이라 하여도 그 심리적고통은 또 얼마나 심한지 그 체험이 없이는 리해할수 없습니다.
저는 아래에 이런 사례를  들어 그 고통을 설명하려 합니다.
39세 되는 박××, 위가 늘 트직하고 소화가 잘되지 않으나 대변도 정상이고 신체도 건강하였습니다. 아마 소화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늦은가고 여겼을뿐 생활난으로 병원에 갈 엄두는 내지 못하였습니다. 2~3년사이에 생활이 좋아지기 시작하자 좀《배》도 편안히 살아보았으면 싶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신이위-좌측신장이 위전벽에 이동되여 일생동안 위를 지지 눌러놓았으니 어찌 편할수 있었겠습니까? 수술후 한달되여 신체회복도 잘되여 성생활을 하였는데 수술전과 달리 사정후 사정액이 없었습니다. 수술의사를 찾아가 물으니《수술후 회복이 잘 되지 못하여 성기능쇠태겠습니다. 좀 더 기다려보십시오》하기에 또 2달이 지났으나 여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신제 약들도 처방하여주어 열심히 먹었습니다. 또 2달이 지나다 보니 수술후 3개월이라 다시 하던 농사일도 옛날 장한 농사군 그대로 아주 기운있게 육체로동에도 끈질게 달라붙어 막힘이 없이 해나갔습니다. 그런데《백지장 한장》들만한 맥이면 능히 애도 만들수 있다는데 왜 나는 성공능도 마땅하지 않고 사정액이 없이 애를 만들려해도 만들수도 없을형편이였습니다. 다행히 애가 이미 있었으니 말이…
그의 신경은 많이 날카로와졌습니다. 정서불안도 말이 아니고 점차 일손도 제대로 움직여주질 않았고《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을일 아니구나》《수술한후부터이니 다시 수술의사를 찾아봐야 하지》반년이 되여 그는 또 수술의사를 찾았습니다. 《지금쯤은 수술후 허약으로 오는 공능장애라고는 하지 않겠지요? 대체 원인이 무엇입니까?》담당의사는《그럼 전면검사를 해봅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안내로 저는 한과실 한과실《신경과》까지 끝을 본셈입니다. 역시《원인불명》으로 이번엔 다른 병원-《정신병원》으로 전이되였습니다. 《멀쩡한 남성, 사정액이 없다고 정신과검사를 받다니. 정신적으로도 아무일 없으니 마음 편히 가지고 다시 지내보십시오》정말 분이 하늘로 치밀었습니다. 하는수없이 집에 돌아오느라고 뻐스에 올랐습니다. 실망도 실망이지만 분이 치미는것을 가까스로 참는 그의 표정을 살펴보던 뻐스의 승객들은 그를 위안하려는것인지는 몰라도 이말저말 그에게 물었습니다. 수술후 성공능장애까지 이야기를 하자 누군가가 그래도 성공능문제이니 수술의사보다는 성전문가를 찾으라고 하며 진료소를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진료소에 와서 하는 첫마디말인즉《수술하지 않고서도 39년간 아주 건강하게 못하는 일없이 농사도 잘 지었고 애도 둘씩이나 낳아 기르면서 부부간에도 특별히 행복했었는데 왜 공연한<짓>을 하여놓고 이렇게 미칠지경으로 되였는지 손익은 일도 인젠 잘되지 않고……》검사결과는 역사정이였습니다. 역사정의 원인은 여러차례(3차) 도뇨관을 꽂았고 보류도뇨과정에 전립선뇨도부에 약간의 협착이 온 모양이였습니다. 별로 큰 문제같지 않아《배뇨시 이전에 비해 힘차게 나가지 못하지는 않는지?》라는 물음에《배뇨전 좀 힘주는 습관이 있게 되였지만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닌상싶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전립선액상규감사에서는 약간의 염증세포들이 보였고 일부시야에서는 한두개의 농구도 발견되였습니다. 전립선염도 시작인듯 싶었고 전립선뇨도부위가 경한 협착이 온것으로 추적되였습니다. 软坚,化血중약료법을 한달 쓰기도전에 역사정은 해결되였고 사정은 조설도 없이 아주 그의 말대로《리상적》이였으며 전립선액도 아주 깨끗하여졌습니다. 역사정의 해결은 뇨도의 수축, 이환이 자유로워졌다는 표현입니다.
박××의 병력으로 장××도 같은 원인이 아닌지? 과거사를 문의하게 되였습니다. 어렸을 때《산증》을 앓아 치료를 받은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후부터 일년에 한두번씩은 발작하군 하는데 결혼후 한달되지 않아 성생활이 빈번하여서인지 좀 심하게 뇨도, 방광염으로 앓은적이 있으나 치료를 잘 받아 그후에는 큰 발작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허지만 전립선액검사에서는《만성전립선염》이 있음을 진단할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방광염, 뇨도염의 반복적인 발작의 원인이였으며 이런 반복적인 뇨도염발작은 전립선뇨도부의 증후, 협착을 일으킬수 있어 역사정도 그 후유증의 일종으로 나타날수 있습니다. 전립선염의 록색치료는 그의 전립선조직내에 있는 일체 염증분비물들을 깨끗이 정리할수 있었고 이 과정에 뇨도의 증후도 흡수되고 软化되여 질도도 연하고 탄성을 회복할수 있으며 사정시 뇨도의 저력이 소실되게 되여 자연 사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의 병진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립선액의 질병체배양에서는 마이코플라스마도 배양되였는바 그에 대한 더 적절한 진단은 만성마이코플라스마성 전립선염종합증으로 보아야 합니다. 전립선조직의 정리치료말기에 항균소치료를 결부하였는데 전립선액만 깨끗한 정상을 이룬것이 아니라 마이코플라스마배양검사도 음성이였습니다. 2,3차의 반복검사가 전부 음성으로 병원체마저 깨끗이 정리사멸된셈이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생육은 물론 그의 반복적인 뇨도감염도 끝장을 본셈입니다.
 
⑶《서서 생활했더니 임신했어요---역사정
한 젊은 남성이 만색이 된 안해사진을 갖고 싱글벙글 웃으며 진료소를 찾아왔습니다. 들어오는 모습만 보아도 환자는 아니였습니다.
저의 앞에 다가선 남성은 《제가 거억나십니까? 흑룡강 수화에서 아이가 없어 왔던 부부 오줌으로 정자가 나간 그 남성말입니다.》저는 금방 생각이 났습니다.《약 한첩 쓰지 않고 선생님의 말대로 서서 생활했더니 그 달로 임신되였습니다.》만삭이 다된 안해의 사진을 품에 간직하고 장모님의 회갑잔치에 오는 걸음이긴 하였지만 그보다는 안해의 임신자랑을 떠난것이 더 분명하였습니다.
흑룡강성 수화현에 있다는 이들 부분는 결혼하여 4년간 아이가 있어 검사도 몇번 받아보았는데 《무정액》《무정자》여서 인공수정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만한 경제적원천도 없고 하여 《돈 있을 때 다시 보자》고 이 일년사이에는 병원도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외의 소개로 찾아온 그들 부부를 검사해보았습니다. 녀성은 내진검사에서 과연 별 문제가 없었고 남성은 병사를 들으면 역사정이였습니다. 전립선질병, 비뇨기과, 생식기촉진검사와 전립선액상규검사, 소변상규검사도 별이상이 없어 진일보의 기계적검사도 필요가 없는것 같았습니다. 역사정은 뇨도 시작부위-전립선뇨도부의 협착으로 역사정이 오는데 이 남성은 왜 뇨도협착이 있었을가? 저는 다시 그의 과거 병사로 거슬러올라갔습니다. 결혼전 위궤양출혈로 위절제수술을 하면서 도뇨관을 5일정도 꽂은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후 뇨도감염이 있으면서 좀 협착을 일으킨것이였습니다. 과연 병사를 따지니 소변보기전에 먼저 대변보듯 힘주고 다 눈 다음에도 나머지가 있는것 같이 느껴져 몇번 음경을 털어보거나 좀 힘주어보아야 시름을 놓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진단을 확인하고저 성생활후 소변을 전부 받아오게 하였습니다. 소변에는 육안으로도 정액이 있음을 발견할수 있었고 현미경하에서는 살아있는 정자도 그것도 아주 많이 건실한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과연 역사정-정자가 뇨도를 통해 뇨도구에 배설된것이 아니라 방광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때문에 그의 성생활의 전반과정은 사정감각까지 아주 정상적이였으나 정액이 흐르지 못하였던것이고 무정자, 무정액이 어찌 임신시킬수 있었겠습니까? 무정자, 무정액은 정신적 부담으로 이루어지며 점점 성랭담이거나 음위증, 우울증도 올수 있습니다. 이는 역사정의 속발성신경반응으로 추적됩니다. 부작용 혹은 과민으로도 한시기 혹은 종신적으로 역사정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가장 많이는 수술후 도뇨관을 꽂았을 때의 감염으로 오는 후유증이고 다음으로 전립선염으로 인한 뇨도의 반복감염으로 영향받을수 있으며 지금은 많은 전립선염, 전립선비대치료가 뇨도를 통한 기계적 치료들로 하여 인위적인 뇨도협착후유증을 나타내고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그 후유증으로 이미 쓴맛을 보고 경계하고 있는데 중국은 이런 기계도입이 너무나 많은 남성들에게 영구한 후유증을 남기게 됩니다. 후유증은 또 새로운 질병으로 이어지면서까지도…… 역상정의 증가가 바로 그 표현중의 한가지 례제입니다.
불임증으로서 역사정진단은 똑똑하였으나 그들에게는 인공수정도 치료도 할 경제적원천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수 있을가요? 건강은 후일에 미루고 우선 임신부터 고려하여주어야지.
저는 이런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녀성의 배란기를 측정하여 배란기에 서서 성생활을 하도록 성생활자세를 규정하여주었습니다. 과연 그 달로 임신이 되였습니다. 만약 뇨도협착이 심하여 상술한 방법으로도 성공이 되지 못하면 소변을 알카리성화시키는 약을 구복한후 소변이 마려운 감각이 없을 때 녀성이 밑에 눕는 방법으로 성생활을 하면 정액은 방광내에 순조롭게 들어갈수 있고 정자도 손상을 받지 않아 그 소변을 받아 리심하여 정자를 채취한후 인공수정을 성공시킬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을채취하기전에 록색의학의 연화료법(软化疗法)으로, 만약 전립선염도 있다면 전립선정리료법을 결부한다면 역사정은 물론 건강까지 회복할수 있어 가장 리상적입니다.
 
고환성 무정자(정자를 생산할수 없는 고환)
의사로서《포기》결론을 내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진단도 세심하여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본인에게 알리는 절차입니다. 비록 의학적으로는 과학적근거에 의거한것이니 응당하다고 하지만 의사 본인으로 놓고 말하면 감정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체험이 없이는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의사》로서 이런《포기》를 한지가 이미 한두번이 아닌 수차였습니다. 하여 비록 이미 수년, 수십년을 지난 일이지만 그들만은 아주 기억속에 생생하게 무거운 돌덩어리로 남아있습니다. 환자에게 말하기도 가슴아파 늘 말을 에돌며《치료를 위한 모든 방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이 연구 아직 세계적으로 한 사람이 없습니다.》《모든 책임을 다하였는데》《너무 늦었기에》《너무 돌발적이여서 미처 어쩔수가…》. 이것이 의사들의《사망》선고이고 불임불육의사로서는《임신》은 전혀 가능하지 못하다는 결론이기도 합니다.
흑룡강 몽롱시에서 찾아온 김××가 바로 이런 환자였습니다.
부부가 함께 수차의 검사를 진행하였는데 남편이《무정자》였습니다. 《무정자》치료에 효과를 본 당지의 두명 환자의 소개를 받아 그 먼곳에서 찾아온 그의《무정자》는 염증의 후유증으로가 아닌 더우기 만성전립선염의 후유증으로 온 무정자가 아니였고 고환생검에서 이미 고환정자산생공장이 전부 파괴를 당하였던것입니다. 전혀 복구가 가능하지 못할 정도의 파괴-그 원인을 찾고보니 결핵도 아닌 5살때 이하선염 (腮腺炎)으로 앓았었습니다. 그때 음낭도 붉게 부어났었는데 치료과정에서 함께 낳아졌다는 것입니다. 치료과정을 물어보았더니 돼지기름을 이하선염부위에 발랐고 음낭에도 발랐으며 페니실린도 3일간 궁뎅이 주사를 맞았다는것이였습니다.
이하선염은 바이러스성 급성전염병으로 전염성도 강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 특히 어린이들사이에 전파가 심할뿐만아니라 신체내에서 이하선(腮腺)과 전신사이 특히 남자애인 경우 고환조직에 대한 파괴가 심하여 더는 정자생산공능이 없게 됩니다. 때문에 전염과의사의 전문치료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그 치료도 예전과 달리 많은 발전을 가져왔기에 세균이나 잡을수 있는 항균소에만 의거하지 말고 바이러스치료가 제때로 이루어져야 할것입니다. 그러다간 이분처럼 영구적인 고환파괴를 일으켜 결혼후에야 임신하지 못하게 되자 검사를 받게 되니 그 무정자증 더는 방법이 없게 되지요. 결핵병도 고환에 후유증을 남겨 영구적인 고환결핵으로 조직변화를 가져온다면 여전히 동일한 후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들의 과거사를 물어보면 페결핵을 앓은 병사가 있거나 아니면 병사는 없지만 페나 고환에 아주 많은 칼슘화된 흔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결핵치료나 예방, 이미 결핵확진까지 능히 예방도, 치료도 가능하였지만 음낭의 변화에 대하여서는 중시가 없으니 또 붉게 부어나는것도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 고환결핵 어떻게 제때에 검사치료를 할수 있었겠습니까? 오직 자각적인 예방조치로 우선 BCG(卡介苗)접종이 필요한가부터 검사하며 결핵예방보건과의 지도를 받을수밖에……
이하선염은 제때에 적극적인 치료를 한다면, 결핵성고환염은 치료보다 적극적인 예방보건이 있다면, 모두가 무정자를 예방피면할수 있습니다. 허지만 이미 정액생산기지인 고환조직이 이런 병들로 하여 완전파괴를 당한 다음에는 그 치료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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