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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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스모그와 “막말바이러스” 댓글:  조회:2308  추천:1  2016-08-04
썩전에 TV를 통해 방독마스크를 착용한 북경시민들이 짙은 안개(스모그) 를 헤치며 출근길에 오르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핵폭발현장을 련상시키는 이같은 공포의 장면이 서울에서도 례외가 아닌것을 보면서 필자는 다시 한번 “지구촌”의 의미를 실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석탄의존도가 70%가량되는 우리 나라에서 자주 발생하는 중국발 스모그가 서풍 또는 북서풍계렬의 바람을 만나면 영락없이 편서풍지대에 위치한 한국으로 날아가 한국에서 배출된 오염물질과 혼합, 축적되여 한국형 스모그농도를 높이게 된다. 지구상의 생태변화가 더는 한개 나라에만 국한 되여있는 “페쇄형”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공유하고 치유할수 밖에 없는 “개방형”으로 되여있음을 시사하는 사례로 된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공조가 아닌 한 나라 자체의 독자적인 힘으로 치유할수 밖에 없는 “난치병”이 있으니 바로 한국 "막말바이러스”가 아닌가 한다. 일전에 사드배치론란과 관련된 TV토론에서 한국의 한 녀성정치인 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를 “11억 거지 떼들”이라고 악담하는 망동을 지켜 보면서 필자는 한국의 “막말 바이러스” 가 결국 올데까지 왔다는 생각을 접을수 없었다. 자국 국민을 개, 돼지라고 릉멸한 어느 한국고위공직자의 “막말”추태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럽더니 이번에는  한 정치인의 국제망언까지 가세하면서  한국 “막말 바이러스”는 해외급으로 업그레드하는 양상이다.   스모그나 황사와 달리 한국판 “막말바이러스”는 국제사회공조로 치유할수 있는 그같은 성격의 바이러스가 아니다. 일종의 문화로 뿌리를 내린 “막말”관행 독버섯, 그 해결대안은 자연이 아닌 인문에서 찾아야 한다.   사실 한국 특유의 갑을관계, 권위의식과 배타심리에서 생성한 “막말바이러스”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색적인 “풍속도”로 필자의 머리속에 자리 잡은지 꽤 된다. 여야간의 막말대결, 선거유세에서 공방설전, 청문회의 폭언세례, 남북간의 막말비난전을 필자는 먼산의 불구경하는 식으로 부담없이, 때로는 흥미를 겯들여 대해 왔었다. 그런데 한국의 막말관행이  중한수교의 흐름을 타면서 도를 넘어 조선족, 나아가 중국을 겨냥한 일종의 국제패턴 바이러스로 둔갑되고있는 사실에 이제 한국의 “막말바이러스”가 더는 “먼산의 불”이 아닌 지척의 위험임을 깨닫게 한다.   스모그와 황사는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 대기오염을 확산시키지만 한국의 “막말 바이러스”는 “다매체”라는 인위적인 현대캐리어를 타고 국내외에 병균을 류포시키고있다는게 오늘의 묵과할수 없는 현실로 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언론자유는 국민의 알권리와 더불어  법적보장을 받는다. 하지만 “막말”은 제외이다. 모든 언론매체의 “률”로 엄격히 통제돼야 할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례외일수 없다.   올 6월 중순, 중국슈퍼리그 그라운드에서 연변팀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한국외적선수 윤모에 대한 한국 어느 연예인의 막말비난이 도를 넘어 연변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릉멸로 이어지면서 중한 네티즌들의 강력한 반발이 터졌는데 그것이 사이버공간에서 그런대로 무마됐지만 중국을 “11억 거지떼들”이라고 한 막말은 한국주류매체의 생방송프로그램에서 쏟아낸 중량급 망언이라는 점이다.   솔직히 오늘날 한국 일부 방송매체들이 언론자유를 빙자하여 “막말바이러스”확산에 푸른등을 켜주고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한국 어느 매체의 TV드라마에서는 몇몇 조선족건달을 한국조폭의 하수인, 청부살인자로 각색하였는데 그 생긴 몰골이나 초라한 행색이 영락 없는 우거지꼴이고 이들에 대한 드라마의 공식적인 막말호칭은 “연변거지새끼”들이다. 어느 예능프로에서는 아예 연변조선족을 싸가지 없는 사기군, 넌덜머리나는 무지한 촌놈으로 추악화한 코너를 시리즈로 다루면서 조선족을 “막말바이러스” 실험대상으로 삼지 않았던가?   “거지새끼”, “거지떼” 한국의 공중언론매체를 거쳐 한국인들에게 류포되여있는 조선족과 중국에 대한 이 “막말”호칭의 저변에는 한국인의 말못할 콤플렉스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반도라는 지리학적 특점과 36년 일제 식민지의 아픈 상흔, 그로부터 받은 패배감과 수치심, 세계 유일 분단국 국민의 불안감 등이 복합되여 형성된 한국인의 심리구조, 이런 특유 심리구조의 공격분출구가 조선족과 중국사회에 돌려진게 아닌가 싶다.   어느 민족에게나 빈곤에 허덕였던 력사가 있다. 사실 한국이 “한강기적” 을 이뤄내고 경제강국으로 발돋음한 력사는 그리 길지 않다. 상당히 긴 세월을 한국은 가난때문에 울었고 가난때문에 세계렬강들의 갖은 멸시와 수모를 받아왔다. 중국과 한국은 모두 일제식민지치하에서 “거지”같은 삶을 강요당했던 치욕의 력사를 갖고있다. 오늘 한국이 중국보다 먼저 빈곤에서 벗어나 현대화를 달성하였다하여 일부 철없는 정치인을 망라한 부분적인 한국인들이 중국을 “거지떼들”이라고 비난하고 같은 혈통의 연변조선족을 “연변거지새끼”라고 릉멸하는것은 자기의 력사를 망각한  유치한 행위가 아닐수 없다. 개구리가 됐다하여 올챙이 때를 망각하는 행태야말로 결국 자기를 부정하는 비극을 자초하는 것으로 밖에 안된다.   한국 “막말 바이러스”에 로출돼있는 재한조선족과 본토 조선족, “막말바이러스”가 주는 피해앞에서 무작정 인욕부중(忍辱负重)하며 당하지만 말고 조선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리성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스모그에 맞서는 그같은 자세로 “방독마스크”의 착용으로 한국의 “막말바이러스”로부터의 오염을 막아내고 우리의 유족한 삶을 창출, 수호해야 할것이다. 2016년 8월 2일 연변일보 2016-8-3
49    장안은 어디에 있느냐, 오로지 말발굽밑에 있어라 댓글:  조회:2111  추천:0  2016-08-01
슈퍼리그 연변부덕팀 병신년 도전 관전 잡담   자욱한 슈퍼리그의 병신년 각축장은 연변팀의 가맹, 도전으로 심상치 않 은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는 느낌이다.   올 3월초, 우리 나라 축구정상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연변구단, “금원경쟁”으로 잔뜩 부풀려진 덩치 큰 슈퍼강호들앞에 나타난 왜소한 민족자치주 막둥이 구단을 바라보는 세간의 눈길에는 당연히 동정과 련민이 반죽된 그같은 측은함이 묻어있었다. 이에 동조하여 일부 촐랑대는 언론은 “금원” 자대로 올 슈퍼리그 성적순위를 일찌감치 배정하고 강등팀을 가려내는 약삭빠름까지 연출하면서 연변팀을 아예 무시해버리는 경향까지 로골화했던 그 상황을 우리는 기억하고있다.   솔직히 천문학적 수자의 금원을 쏟아부어 최상의 전력을 다지는 “토호” 팀들을 지켜보는 연변사람들의 마음 또한 편안할리 없었다. 가난한 경제여건때문에 남들처럼 강대한 전력 보강을 하지 못해 주눅이 들고 기가 죽어 함몰할가봐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 그러면서도 갑급리그전 “리허설”을 거쳐 더한층 성숙된 자기 팀에 대한 충분한 믿음, 이같은 찬반의 우려와 기대를 안고 연변사람들은 사랑하는 자기의 구단과 더불어 병신년 도전의 장을 열었다. 그런 연변팀이 파죽지세로 8위권으로 랭킹하면서 슈퍼리그 현존 판도를 위협하며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있다. 연변팀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가?   궁(穷)하면 변(变)하고 변하면 통(通)할수 있다. 연변팀이 “금원경쟁”에서 절대 슈퍼리그 “토호”들의 경쟁상대가 될수 없음은 불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연변팀은 변할수밖에 없다. 바로 이같은 변화에 의해 우리만의 축구리념, 전술풍격, 정신투지로 짜여진 “투혼”이라는 연변팀의 비대칭전략과 “금원”이라는 “토호전차구단”의 맞대결이 그 시작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수밖에 없었다.   연변팀이 3월 중순에 치른 올시즌 첫껨의 원정경기와 최근에 잇달아 치른 13, 17, 19라운드의 홈장경기는 “투혼”비대칭전략으로 일궈낸 가장 전형적이고 설득력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연변팀의 변(变)은 “투혼”이라는 비장한 카드에 의해 아래의 “3력”으로 통(通)하였다고 생각한다.   “투혼” 1: 집중력이다. 경기결과보다 경기내용을 강조해온 박태하감독의 일관된 주문은 연변팀 11명 선수가 강한 자신감을 동반한 집중력으로 경기내용을 주도하여 대방을 주눅이 들게 하고 패배로 몰아갈수 있도록 깨우쳐주는 청량제로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연변팀의 공방절주가 너무 빨라 상당히 힘에 부쳤다”(료녕팀 감독 마림) , “연변팀은 관상성 있는 패싱축구를 보여줬다”(석가장팀 감독 야센), 연변팀에 패배한 두개 팀 감독의 이같은 평가는 연변팀의 경기 집중력을 가장 진솔하게 수긍한 반증으로 된다. 감독이 늘 강조한 경기과정을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집중력이 굉장히 고무적인 경기내용의 창출을 안받침해주었다는 지적이다.   “투혼” 2: 정신력이다. 올시즌에서 우리보다 전력이 한수 우인 상대 팀에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구사할수 있었던 연변팀의 비결은 역시 뛰여난 정신력에 의한 선수들의 지칠줄 모르는 투지와 놀라운 자신감이 일궈낸 압박축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적수와의 겨룸에서 대칭우세가 없다고 판단한후 정신력을 극대화한 투혼으로 대방을 제패한 사례로 광주부력팀전을 들수 있다.   “우리는 경기를 리드하고도 패배했다. 결국 오늘은 우리의 날이 아니였다”고 맥빠진 변명을 한 스토이코비치감독의 모습은 13년전 한일 월드컵때 한국팀에 패배한 유럽강호 에스빠냐팀 감독이 “오늘 밤은 우리에게 끔찍한 밤이다. 우리는 운이 없었다”고 기죽은 푸념을 하던 광경과 너무나 흡사하다. 결국 “정신력축구”앞에서 “스타축구”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시사한 좋은 사례가 된다고 생각한다.   “투혼” 3: 결속력이다. 집단결속력으로 역경과 압력을 무력화시키고 “금원”으로 부풀어진 스타중심의 대방 플레이에 제동을 걸면서 팀의 경기력을 격상시키기 위한 연변팀의 노력이 돋보이고있다. 몇몇 스타가 아닌 팀 전체가 감독의 전술의도를 제대로 소화할수 있고 팀 전체의 집단플레이로 전환시킬수 있을 때 승리는 거머쥔거나 다름없다.   연변팀 대 강소소녕팀전에서 집단결속력으로 다져진 서민구단 연변팀 선수들앞에서 “아시아 력대 최고이적료”의 몸값을 자랑하는 강소소녕팀의 브라질스타 알렉스 테세이라의 스타역할이 어떻게 무력화되는가를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경기 패배후 “외적선수들을 포함해 여러 주전선수들의 결장”을 패배의 원인으로 돌리는 강소팀 최룡수감독의 변명은 윤빛가람, 하태균 등 주전선수가 결장한 연변팀앞에서 얼마나 슴슴하고 허우룩한지를 실감있게 보여주었다고 느낀다. 강적을 이겨낸자는 우선 자기 자신을 이겨낸자이다. “신뢰가 바탕이 된 팀”, 이는 지난해 갑급리그시즌에서 검증된 박태하 축구철학의 핵심포인트로서 올 슈퍼리그시즌에서 그 맥락을 계속 이어나가고있다. 올해초 북경국안팀의 감독은 예리한 혜안으로 “연변팀은 감독의 전술체계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팀”이라고 절찬한적이 있다. 이 평가는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날 “금원”경쟁 상황에서 돈만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떠한 명감독이라도 영입해올수도 있겠지만 한 명감독의 전술체계를 선수들이 완벽하게 소화하고 구사할수 있게 하는 만능시스템 영입이란 있을수 없는 법, 이는 오늘날 모든 명감독들이 손수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 면에서 박태하감독은 앞서나가고있다. 자신만의 “신뢰”에 토대한 특이한 “소통”방식으로 감독과 구락부, 코치, 선수, 축구팬들간의 환상적인 찰떡궁합을 이뤄내고 즐기면서 우선은 연변팀 자신을 이겨내기에 최선을 다하는데 게으르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단단하려면 부드러운것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신뢰”라는 이 부드러움은 구락부의 확 바뀐 봉사, 사령탑의 인성화 관리, 외적선수와 토종선수들의 조화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난제를 해결할수 있었으며 연변팀과 “제12인자”—사랑스런 연변축구팬군단과의 도킹으로 결성된 대형집단플레이의 완벽한 발휘를 위한 유력한 담보로 정착하게 된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담보가 “강적을 이겨내기 위한” 감독 전술체계의 완벽한 소화를 뒤받침해준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이것이 북경팀 감독과 다른 슈퍼팀들이 연변팀을 주목하는 부분이 아닐가 생각한다.   박태하감독은 연변이란 이 특수한 축구풍토의 천시, 지리, 인화 생태환경에서만 성장가능한 “한류스타”라 할수 있다. 박태하현상의 영향으로 홍명보, 최룡수 등 한국감독들이 영입되여 슈퍼리그 강호팀의 사령탑을 잡는 사태가 줄줄이 연출되고있지만 필자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있다. 한국감독도 한국감독나름이고 연변은 세상에 하나뿐이니깐.   자기 자신을 부단히 이겨내고있는 연변팀이기에 그 어떤 강적도 겁날것 없을것이고 따라서 박태하감독의 그 어떤 전술체계도 완벽하게 구사되면서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장거를 계속 이뤄낼것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손자병법에 있는 말이다-날랠 때는 바람 같고 천천히 진군할 때는 수풀 같고 공격할 때는 성화 같고 멈출 때는 산과 같다. 연변팀이 지향할만한 목표가 될수 있지 않을가?   연변팀 병신년 도전은 계속되고있다. 이 특수구단은 빈곤하지만 대신 연변 나아가서 국내외에 산재해있는 막강한 조선족축구팬들의 끔찍한 사랑을 뒤심으로 하고있다. 그래서 자신의 저력을 굳게 믿으면서 달리는 말에 계속 박차를 가할것이다. 연변팀의 승리는 “오로지 말발굽밑에” 있으니깐. 연변일보 2016-7-29
48    연변표정 가꾸기론 댓글:  조회:2578  추천:1  2016-06-23
미모가 뛰여나지만 경망스럽고 오만무례하여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인간추태를 우리는 일상에서 많이 본다. 부모가 준 선천적인 아름다움을 자신의 후천적인 노력으로 열심히 잘 가꾸어나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텐데 너무나 아쉽다. 절승경개를 자랑하는 연변의 천연적인 자연매력도 연변인들의 후천적인 인문풍토와 잘 어울렸을 때 연변의 표정은 찬란하게 빛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아래의 코믹한 진풍경은 일전에 필자가 야외에서 겪었던 연변 인간상이다. 그날따라 모아산 주차장은 하산뻐스를 기다리는 등산객과 관광객들로 일대혼잡을 이루고있었다. 그런데 x선 뻐스는 웬 영문인지 떠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는다. “쇼꿍궁(小公共)” 뻐스형체를 보아 언녕 페차수준의 헐망한 차였지만(연길시안에는 이런 “쇼꿍궁”뻐스가 적지 않다.) 승객들의 관심사는 뻐스가 아니라 운전석에서 코를 골며 자는 운전기사의 행태였다. 헐망한 운전석 차창밖으로 불결한 두발을 내뻗치고 잠에 빠졌던 운전기사는 지나가던 자동차의 경적소리에 놀라 깨여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 소란스런 마당에 차분하게 잠을 청할수 있는 운전기사의 인내심이 놀랍다. 문제의 “코미디 동영상”은 이때부터였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뻐스안은 잠간사이에 탑승객으로 발을 디딜 틈도 없는데 한 조선족아줌마가 운전석뒤에 붙은 철궤를 용케 발견하고 거기에 걸터앉는다. 바로 이때 한족운전기사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진다. “당장 거기서 일어나지 못할가? 어디에 함부로 앉아!?” 깜짝 놀란 조선족아줌마는 황급히 일어서면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변명한다. “난 …앉아도 되는줄 알고서…” 그런데 운전기사의 호통은 계속된다. “제기랄, 보면 몰라!” 그 철궤는 누가 봐도 공구상자따위에 불과하다. 차안의 승객들은 운전기사의 험상궂은 표정과 거칠은 언행을 어이없이 지켜볼뿐이다. 다음 정류소에서 또 승객 몇명이 오르면서 이번에는 점잖은 스타일의 한족아줌마가 그 “문제”의 철궤우에 털썩 주저앉는다. “당신, 거기서 당장 일어나!” 기다렸다는듯이 운전기사의 호통이 또 떨어진다. 화들짝 놀라며 철궤에서 물러난 한족아줌마는 게면쩍게 웃으며 “아, 앉으면 안되는 자리였구만. 어떤 차는 앉게 하더마는 …” 하고 중얼거리는데 운전기사의 면박이 계속 이어진다. “앉기는 어데 앉아, 자각이 없는 사람 같으니!” 그런데 한족아줌마의 낯색이 례사롭지 않다싶더니 운전기사쪽으로 다가서며 한마디 따끔하게 내쏜다. “아니, 그럼 그렇다고 조용히 말할게지 어디에 대고 고함치며 란리야!” (옳지, 바로 그거다!) 필자를 포함한 차안의 승객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였다. 그 철궤는 여차여차한것이니 앉지 말아달라고 조용히 귀뜀해주면 끝날 일이였는데 운전기사의 몰상식으로 일이 걷잡을수 없이 터진것이다. 한족아줌마는 아예 작정하고 운전기사 곁에까지 접근해가더니 거칠게 몰아붙인다. “수양이 없이 너 어디에 대고 X행패야? 저기에 앉으면 안된다고 써라도 놨어?” 이건 완전히 역전 드라마였다. 기세등등하던 운전기사가 이번에는 완전히 수세에 몰려 전전긍긍하는 꼴이 돼버렸다. 그쯤하고 함구했더면 한족아줌마는 정의의 “녀성스타맨”으로 우러러 보였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운전기사에 대한 한족아줌마의 카랑카랑한 욕설사례가 “마라톤”으로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아줌마도 운전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구겨지면서 승객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하였다. 운전기사와 아줌마는 누가 옳고 그름이 아닌 똑같은 꼴로 각인되고말았다. 아름다운 모아산의 초여름 황홀경에 매료되여 즐거웠던 기분은 공공뻐스안 막장드라마로 싹 잡치고말았다. 페차수준의 뻐스도 꼴불견이지만 그 차안에서 벌어진 연변인들의 거칠은 마찰음 또한 페차수준에 맞먹는 꼴불견이 아니고 무엇이랴! 연변의 선천적인 자연생태의 경치와는 너무나 색상이 틀린 후천적인 인간행태의 스캔들이 연변의 표정을 어둡게 하고있는것이다. 모아산 행선지에서 목격한 “코미디”가 우연하게 발생한 “꼴불견”이 아니라는것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있다. 연변의 매력적인 자연경관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못하는 인간삶의 치부(耻部),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부 연변인들에 의해 외부인들앞에 로출된 아름다운 연변의 표정은 찌그러져가고있다. 후천적인 몰상식, 몰렴치가 선천적인 아름다운 표정에 금이 가게 하고있는것이다. 국내외에서 연변을 찾는 관광객과 오래동안 해외에서 로무자로 근무하다가 귀국하는 연변인들에게 연변표정의 첫 검색은 하늘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릇 하늘길을 타고 연변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하늘에서 본 연변의 엇갈린 명암이 서서히 눈에 안겨온다. 려객기가 연변경내에 들어서면서 록수청산의 아름다운 자연 생태 피복이 펼쳐지면서 탑승객들이 한결같이 감탄사를 련발하는가싶더니 연길공항으로 기수를 꺾으면서 점차 도시의 란개발로 처참히 훼손된 삼림과 록지의 헐벗은 모습이 하나, 둘 적라라하게 눈을 자극하며 승객들의 량미간을 찌프리게 한다. 활주로로 착륙하기전 시안의 고층건물 옥상들에 추접스럽게 방치된 건축물쓰레기와 생활쓰레기들이 전국 100강현도시 이미지를 흐리는 치부전시장으로 조명받고있다. 땅우에서 본 도시와 사뭇 틀린 광경에 얼굴이 붉어질수밖에 없다. 착륙한 후 공항의 경직된 통관절차와 서비스수준이 해외공항에서 받았던 좋은 인상과 대조적으로 로출되면서 수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해외 로무자들은 실의를 느낀다. 공공뻐스, 택시, 자가용 승용차와 더불어 운전기사, 승객, 교통경찰 또한 연변표정의 풍향계, 전도사로 통한다. 차의 안팎이 불결하기 짝이 없는 “쑈꿍궁”뻐스, 기분 잡죄는 불편한 냄새로 진동하는 택시, “인간위주”가 아니라 “차량위주”로 설계된 교통신호등 교체시스템과 함께 란폭한 뻐스운전기사, 비위생적인 택시기사, 몰상식한 승객들이 찌그러진 연변표정을 완벽하게 각색하고있는것이다. 연변표정은 연변사람들이 가꾸어야 한다. 연변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업종, 직종의 매 한 사람이 연변표정미용사의 자세를 갖추었을 때 연변은 “선천적인 아름다움+후천적인 인문문화”의 완벽한 맞물림으로 연변의 매력지수를 한껏 부풀릴것이고 세상은 연변을 정중하게 대할것이다. 연변표정 가꾸기, 이제부터다! 연변일보 2016-6-22    
47    연변축구팀의 원동력—“제12인자” 댓글:  조회:2047  추천:2  2016-05-12
2016년 슈퍼리그시즌경기가 서서히 백열화되는 양상을 보이고있다. 지난해 갑급리그 잔류팀으로 부활하여 2015년 갑급리그를 평정하고 우승팀자격으로 당당하게 슈퍼리그에 호적을 올린 연변팀이 올 슈퍼리그 각축장에서 금원으로 부풀러진 덩치 큰 토호팀들과 벌리는 처절한 격돌은 연변사람들 모두의 마음을 쓰리게 하고있다. 각오했던 상황이다. 하지만 연변팀의 여덟껨 경기에서 필자는  슈퍼리그 강호들의 높은 벽을 실감함과 동시에 투혼과 정신력의 비대칭전력으로 완강히 버텨내는 연변팀에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붙어있는 사랑스런 연변팀 “제12인자”들의 가슴뭉클한 움직임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신뢰축구”의 설계사 박태하감독이 슈퍼리그 기자인터뷰에서 토로한 말의 의미가 되새겨진다. “항상 연변팀을 사랑해주는 조선족축구팬들의 변함없는 성원이 팀의 원동력이 되고있습니다.” 슈퍼리그 토호팀들이 금원을 팀의 존재감 부각의 원동력으로 간주하고 있을 때 “축구팬들의 변함없는 성원”을 “팀의 원동력” 으로 연변팀선수 모두의 마음속에 정착시키면서 이같은 이심전심으로 축구팀과 축구팬들의 일체화를 구축하려는 박태하 감독의 진솔한 마음의 고백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지고보면 두툼한 “금원”이 아닌 가난한 “연변”을 선택했을 당시 박태하감독의 마음을 움직인 변수는 다름아닌 “조선족축구팬들의 변함없는 성원”이 아니였겠는가? 축구팀의 경기력과 축구팬들의 성원은 정비례 력학관계라고 생각한다. 축구팀에 대한 축구팬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성원이 팀의 승패여하와 상관없는 일종의 뿌리깊은 문화자각으로 안주했을 때 축구팀은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에 의한 완주를 거듭할수 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11명 선수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스스로를 제12인자로 “자아책봉”한 이 멋진 호칭에는 축구팀선수들과 동고동락, 혼연일체를 이룬다는 축구고향사람들의 심오한 축구문화자각이 슴배여있다. 올 시즌 원정과 홈장 여덟껨의 연변팀출전경기에서 연변축구팬들이 보여준 멋진 존재감은 시공간을 날아넘는 굉장한 파워, 이색적인 관전응원이벤트의 유감없는 출시로 생생하게 부각되였고 이  과정에서 연변의 성숙된 축구팬의식의 진수를 세상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한 지역사회 축구팬들의 성숙된 자세가 많이는 축구팀이 이겼을 때보다 졌을 때 잘 드러난다. 4월 16일 밤 11시, 제남전에서 패전하고 돌아오는 연변팀 감독과 선수들을 위안하고저 연길공항으로 몰려간 주안의 축구팬들, 인터넷에 눈덩이처럼 뜬 축구팬들의 열띤 격려의 메세지들은 ”연변팀 제12인자”-- 연변축구팬들의 성숙된 자세의 진실한 발로로써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겨도 내 형제, 져도 내 형제” 라는 신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가난한 살림때문에 남들처럼 위용을 뽐내는 강대한 전력보강을 해주지 못해 힘든 경기를 치르게 한 “부모”의 미안함,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없이 잘 싸우고 돌아온 “자식”들에 대한 대견함이 반죽된 연변사람들의 진솔한 마음의 가장 확실한 전달이 아니였는가 싶다. 전국에서 유일한 지구급 소수민족 서민구단인 연변팀이 슈퍼리그라는 중국 최정상 축구무대에 당당히 선 그 자체가 국내외 특종뉴스감이라는 생각을 멈출수 없다. 자치주 구단이지만 지구촌 중국조선족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고있다는 점 또한 슈퍼리그 그 어느팀과도 구별되는 특이한 현상이 아닐수 없다. 연변팀이 중국조선족축구국가팀으로 자랑스럽게 불리우고있는 리유이기도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연변축구팬동네는 중국조선족축구팬들의 메카일수밖에 없고 전세계에 산재해있는 재외조선족축구팬들의 구심점일수밖에 없다는게 필자의 소견이다.. 슈퍼리그 16개팀은 모두 나름대로의 상징아이콘이 있다. 연변팀의 상징아이콘은 장백호랑이, 그 혼은 아리랑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누구도 흉내 낼수 없고 가져갈수도 없는 우리만의 부호! 언제 어디서나 아리랑의 선률 한가락만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수 있고 똘똘 뭉치게 할수 있는 신비의 마법! 연변팀의 “제 12인자”들이 심장으로 소리높이 열창하는 비장한 아리랑선률은 우리들만의 특수카드로 국내외 시공간을 넘어 연변팀이 출전하는 모든 그라운드에서 연변선수들을 분발시키는 강심제로, 전 지구촌 연변축구팬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메아리로 정착하고있다. 지난해 갑급리그 그라운드에서 연변 여러민족 축구팬들이 얼싸안고 열창한 아리랑이 50년만의 갑급리그우승탈환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였다면 15년만의 슈퍼리그복귀의 치렬한 각축장에서 다시 뭉쳐지는 그라운드의 11명 연변팀 선수와 수십만 “제 12인자”들이 한마음으로 열창하는 아리랑의 선률이 팀 초유의 원동력으로 재활하리라 믿는다. 축구의 글로벌화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피부로 실감하고있는 현실이다. 다매체시대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세계의 선진적 축구문화가 우리의 안방으로 속속 안주해들어오고있으며 중국 슈퍼리그시즌경기 또한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되고있다. 영원한 건재를 과시하는 축구고향 매력풍토의 산물인 연변팀의 멋진 활약과 더불어 연변축구팬들의 이색적인 관전응원 진풍경 또한 굉장한 중국조선족축구팬문화의 진수로 세계축구팬문화사에 등재되리라 기대해본다.   연변일보 2016-5-11
46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말입니까?” 댓글:  조회:2235  추천:2  2016-04-28
“'고향재건'이라는 우리 조선족농민들의 오랜 숙원이 '귀향창업' 프로젝트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농촌'공동화(空洞化)'의 우려를 깨끗히 씻어내고 이 땅에 매력이 넘치는 현대판 농촌지상락원을 일떠세웠울 때 우리는 다같이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자부감을 한껏 누릴것이다.” “당신들은 왜 여기에 왔습니까? 당신들은 배고파서, 땅이 없어서, 농사지으러 바로 이 땅에 온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반세기가 넘도록 이 땅을 개간하고 논밭을 만들며 어렵게 생활터전을 닦아나갔습니다. 이제 이 땅은 우리 민족의 삶의 근간이 되였습니다. 우리의 삶 그자체가 되여버린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말입니까?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의식과 자세를 갖지못하면 우리는 하루 아침에 천시당하는 천덕꾸러기로 정착하고 마는것입니다.” 이 가슴뭉클한 연설을 터쳐낸 위인은 바로 초대 자치주주장 주덕해이다. 일제가 패망하고 새중국이 탄생되기전야의 혼란기에 동북지역 조선족동포들이 조국관과 민족정체성으로 갈등하며 반도로의 대이동이 가시화되던 그 나날, 조선족동포들을 향해 절절하게 쏟아낸 주덕해의 이 유명한 연설은 “땅의 주인”이라는 투철한 정치적 안목으로 광범한 조선족민중을 이땅에 결집시킨 안정제로 작용하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 태동의 정치적근간으로 다져진다. 그로부터 6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의 민족정책의 포용하에 이 땅에서 벌어졌던 창상지변을 골고루 겪으면서 우리 민족은 이 땅에서 투혼과 지혜, 량지와 슬기에 힘입은 위대한 실천으로 중화민족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말입니까?”, 60여년전 주덕해의 그 절절한 호소가 조선족의 결집을 이끌어냈고 중국조선족 메카로서의 연변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연변이라 일컫는“이 땅”을 우리 민족이 중국소수민족으로 떳떳히 정착할수있는 현실적인 삶의 징표로, 확실한 정치적근간으로 인식할수있게한 주덕해의“땅의 주인”론, 60여년이 지난 오늘 그 의미가 어느때보다 새롭게 우리의 가슴에 맞쳐온다. 오늘날 천지개벽의 변화의 흐름속에서 대대손손 주어진 땅뙈기에만 집착하면서 해해년년 이 땅의 소출에 목을 매야했던 조선족농민들이 전통적인 농부의 삶에 도전장을 내는 시대적용기를 낳을수있은 현실적가능성은 당의 개방정책에 따른 해외로무진출이라는 조선족농민들만의 특수한 “시험테라스”에서 비롯되였고 이 가능성은 또한 조선족농민들로하여금 단순한 농지로서의 “땅”을 복합적의미의 창업시공간으로 인식시키는 위대한 발상의 힘으로 되게하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시대의 변화를 도외시하면서 농경민족이니 그냥 농경민족답게 몇무지땅에 목을 매고 농사만 지으면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려않는 그 같은 삶이야말로 “하루아침에 천시당하는 천덕꾸러기” 삶일것이다. “이 땅의 주인”이라는 정치적신념을 확고히 갖추고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의식과 자세”를 발전변화의 흐름속에서 부단히 갱신하고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삶의 근간을 더 튼튼히 다져가는것이야말로 주덕해초대주장의 오늘날 바램일것이다. 그 과정이“탈땅”을 시작으로 실망과 고민, 곤혹으로 얼룩졌어도 결과적으로 넓은 의미에서의 “고향재건”에 그 뿌리를 내린 합리한 “수험료”라고 해석할수있지않을가?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선대들이 피땀으로 개척하고 목숨으로 지탱해온 이 땅을 “지킨다”는 소박한 농심에서 “재건한다”는 현대적리념에로의 전환이 “버린다”에서 파생되지않았을가 생각해본다. “버릴수없는 삶”은 “이룰수없는 꿈”과 직결된다. 물론 모든 긍정적인 변화의 행보에는 엄청난 대가가 따르듯이 위대한 변혁을 도출하기 위한 비장한 선택으로 조선족농민들이 잠시 빠져나간 우리 농촌의 공동화 현실, 역시 간과할수만 없는 상황이다. 조선족농민들의 해외로무수출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한 선택일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닐것이다. 고향떠나 20여년, 이제는 연변이란 고향의 부름에 귀를 기울릴 때가 된듯하다. 이것이 오늘날“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의식과 자세”가 아닐가싶다.고향재건을 위한 잠시의“탈땅”이 영구화로 이어지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탈땅”공백이 그냥 주인의 귀환을 무작정 기다리며 황페화돼야한다는 도리가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질 때 인간의 매력적인 거동을 이끌어낼수있는 활력은 매력적인 흡인책에 있다. “귀향창업 흥변부민”프로젝트의 가동, 드디어 자치주당정이 고향 떠난 “이 땅의 주인”들에게 60여년 전 주덕해 초대주장의 력사적인 연설과 맞먹는 화끈한 귀환메세지를 보내고있다 –--“고향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귀향창업지도의견의 반포, 귀향창업 봉사체계의 시달, 귀향창업 인적자원파일의 구축, 귀향창업로무자 련계통로의 설치, 귀향창업자 봉사수요의 파악 등 실질적이고 효률적인 대책마련이 뒤따르면서 귀향창업프로젝트가 탄력을 입고있다. 일반호소가 아닌 강력한 시스템의 보완으로 력동적인 상황이 기지개를 켜면서 귀향창업의 붐이 드디여 밝은 전망을 예고하고있다. 귀향창업의 량호한 생태환경구축에서 지역사회 엘리트, 유지, 명인들의 선도적역할이 중요한 변수로 되고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있다.“귀향지식청년” 류창은,“귀향장령” 김문원과 같은 리더들의 저력이 귀향창업자들의 열정과 끈끈한 조화를 이룰 때 연변의 “귀향창업 흥변부민”전략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할것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해외로무자 흡인책과 더불어 이들에 대한 일련의 격려차원의 정책이 뒷받침해주어야 할것이다. “고향재건”이라는 우리 조선족농민들의 오랜 숙원이 자치주당정이 펼치고있는 “귀향창업” 프로젝트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드디여 농촌“공동화”의 우려를 깨끗히 씻어내고 이 땅에 매력이 넘치는 현대판 농촌지상락원을 일떠세웠울 때 우리는 다같이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자부감을 한껏 누릴것이다. 주덕해 초대주장은 4인방의 박해로 무한의 한 초라한 병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최후의 순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한마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 “저는 연변에 돌아가겠습니다.”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의식과 자세”를 잃지 말라는 당신의 당부를 간직하고 고향재건에 떨쳐나선 연변사람들의 오늘의 모습에 주덕해 초대주장은 저 세상에서 흐뭇한 축복의 미소를 보낼것이다.  연변일보 2016-4-27  
45    “글로벌”, TV야회가 직면한 곤혹의 령마루 댓글:  조회:1466  추천:0  2016-02-18
“희망속에 축복속에 전 지구촌 겨례와 함께하는 2016 년 YBTV 음력설문예야회”(야회해설사)프로가 위성전파를 타고 음력설저녁 어김없이 조선족 모두의 안방을 찾았다. 수백명관중으로 일사불란하게 포진된 야회관람석, 현대판 등광조명으로 명멸하는 화려한 축제무대, 세계속의 우리민족 맥박을 현대와 전통의 융합속에서 살리고저 애쓴 야회프로 그람의 숨가쁜 흐름…YBTV방송제작인과 연예인들의 로고를 한눈으로 보아낼수있는 광경이였다. 다원화문화환경에 철저히 로출된 우리민족시청자들을 골고루 포용할수 있는 기획물의 창출과 야회의 탈연변 수준급 도약의 발목을 잡는 자금난의 소화에서 부딪친 일련의 고충과 고민, 올해에도 연변TV방송은 이같은 지역방송의 한계를 례외없이 스스로 감내하면서 중국조선족에게 “서른두번째”음력설야회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고 새로운 돌파 를 창출하는 것은 영원한 목표이지만 TV매스컴으로 말하면 얼마나 큰 모험의 대가를 치러야하는지에 대해 필자는 잘 알고있다. 시청자의 일원으로서 필자는 2016 YBTV음력설문예야회가 나름대로 “글로벌시대”라는 이 곤혹스런 령마루 —“꿈이 머무는 곳”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는 그같은 의미를 도출하였다 고 평가하고싶다. 이 도전장이 우리민족 음력설야회의 새로운 전환을 노린, 모험과 반죽된 용기있는 시도와 맥락을 함께 한다는 점에 긍정적인 한표를 던진다. 이 땅에 조선족 TV음력설야회가 태동하여 어느덧 30여년 세월이 흘렀다. 도리켜보면 30여차의 음력설야회는 단순한 문예프로그램 범주를 벗어나 지난 30여년간 연변 나아가서 중국조선족사회 발자취의 생생한 축소판으로, 매 력사시기 우리민족의 숨소리를 담은 체온계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오늘날 연변축구팀을 “중국조선족국가팀”이라고 사랑스럽게 부른다면 연변음력설야회를 “중국조선족 국가급야회”라고 호 칭못할 리유가 없지 않을가? 그래서 조선족모두에게는 연변 TV음력설야회가 축구와 더불어 특별한 의미를 띤 문화현상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30여년에 걸쳐 치러온 연변음력설야회는 그 구조와 흐름, 격조와 효과성에서 차이점을 보이기는하지만 단 한가지 드팀없이 전승하고 이끌어온 “넋”이 있다면 향토애로 달궈진 조선족 사회의 따뜻한 공감대 구축이 아닌가 한다. 초창기의 연변음력설야회가 현대영상미디어수단에 힘입어 페쇄된 공간에서 메말라왔던 조선족을 문화빈곤에서 해탈시킨 감로수역할을 했다면, 성장기의 연변음력설야회는 우리민족 향토애에 대한 소박한 정서발로로 조선족을 문화적으로 결집 시킨 구심점역할을 했다고 할수 있다. 그것을 토대로 성숙기의 연변음력설야회는 리성화되고 열린 자세로 향토애의 주제를 거시적인 시대적요구와 정서적으로 융합시켜 “고급적쾌감”과 미학적엄숙성으로 일체화된, 격정의 에너지분출을 꾀하는 단계 로 들어섰다고하겠다. 지금 연변음력설야회는 총체적으로 이 단계에 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오늘날 음력설문예야회의 기획환경은 초창기나 성장기 때와는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는 시점에 있다. 조선족의 전통적거주 환경은 민족대이동의 급물살을 타고있으며 가장 페쇄된 변두리 의 “우물안 개구리”삶에 길들여져있던 조선족은 우리 나라에 서 가장 개방된 소수민족으로 탈바꿈하면서 한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를 활보하고있다. 적으만치 20여년의 바깥세상과의 접 촉에서 생긴 조선족의 관념변화는 파격적이라 할수있다. 이 모 든 변화를 있게 한 궁극적인 요인은 글로벌시대의 도래이다 . “글로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음력설야회가 꼭 풀어야 할 곤혹스런 숙제이다. 올 음력설야회를 조명해보면 총체적으로 프로그람이라는 이“발사체”를 글로벌이라는 “우주선”에 도킹시켰다는 점은 마땅히 긍정해야 할바라고 생각한다.하지만 그 작동이 썩 원활하지 못하고 일부 맞물림이 문제시 되는 등 아쉬움이 묻어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올 음력설문예야회가 글로벌화제를 비중있게 다룬것이 돋보였다면 그와 동시에 어떻게 야회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글로벌 현실에서 조선족의 자세”를 예술적으로 풀어내는가 하는면에서는 아직 미숙함을 보이고있다는게 필자의 소견이다. 해내외 축하메세지 세트, 한국과 로씨야 예술인들의 노래와 춤 무대, 다문화가정테마를 다룬 코미디 한마당, 해외용병들의 동참으로 일궈낸 연변축구의 기적은 이번야회의 글로벌화제를 품위있게 다룰수있는 굉장히 값진 소재였으나 결국 평면화 배렬 과 수박겉핥기식에 그쳐 걸맞는 깊은 감동과 사색을 이끌어내지 못한 유감을 낳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상기한 유감과 아쉬움이 연변음력설야회 가“글로벌”이라는 이 곤혹의 령마루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른바 “성장의 고민”이라는데 있다. “글로벌”령마루는 감히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원래의 것만 답습하는 미지근한 매끈함보다는 그래도 굴곡과 충돌이 있어 반전의 소지를 낳는 그같은 투박한 도전이 더 멋있고 매력적이 아닐가? 그래서 올해 음력설야회의 도전이 아름답고 또 그래서 2017년의 연변음력설문예야회가 기대되는 것이다. 더 부언하고 싶은것은 지역방송으로서 국내외 조선족을 대상으로하여 어렵게 창출해내는 연변 TV음력설야회도 연변축구와 마찬가지로 이 땅 조선족 모두의 열렬한 후원과 지지가 요청된다는 점이다.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연변음력설야회문화도 글로벌이라는 이 곤혹의 령마루를 톱아오르는 행정에서 계승, 비판, 융합, 포기, 개척, 혁신의 진통과 더불어 성숙돼갈것이며 우리민족 음력설 야회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가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물론 그 과정은 더없이 고달프겠지만.   연변일보 2016-2-17
44    식민지망령의 배회 댓글:  조회:2846  추천:2  2016-02-04
칼럼제목을 이렇게 달고보니 어딘가 으스스한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암”세포가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아무렇지않게 “감기”정도의 처방전을 내린다면 그 후과가 불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일전에 인터넷에서 본 중앙급 TV매체의 동영상화면이다 --열광하는 관중들의 환호소리, 경쾌한 팡파르음악소리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분장한 상모춤무용수 5명이 TV스튜디오무대에 등장한다. 우리 연변현에서 상경한 무용수들이다. “당신들 ‘선족’(鲜族)이 맞지요?”법관처럼 위엄있게 앉은 3명 사회자 중 첫 사회자의 신분확인 질문이다. “맞아요, 맞습니다!” “선족”이 맞다고 수석무용수가 환하게 웃으며 또랑또랑 대답한다. “당신들 모두 ‘선족’인가요?” “선족”을 유난히 강조하며 다른 한 사회자가 카랑카랑하게 반문한다... 이렇게 상모춤표현에 앞서 스튜디오안에서는 “선족” 이란 말이 영광의 징표인양 제멋대로 란무하고 그 장면은 전파를 타고 전국 나아가서 세계로 확산된다.... 필자는 경악을 금할수 없었다. 상모춤이 제 아무리 일품인들 뭘하랴. 사회자와 무용수들에 의해 명명백백하게 만천하에 밝혀진 신분에 의하면 이들 무용수들은 중국 조선족이 아니라 일제식민지시대 속국(属国)의 렬등민족 대표로 국가 최고의 매스컴연예무대에서 놀아난 꼬락서니가 돼버렸으니 말이다. 이 상황을 두고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랜 일제식민지 망령이나 현 일본우익 세력은 얼마나 앙천대소했을가? 거두절미하여 말한다면 “선족(鲜族)”이란 호칭은 조선반도 36년 식민지통치의 유물이다. 악명높은 “한일합방 (韩日合邦)”에 의해 조선민족을 일본인에 동화시키고 나아가서 조선과 조선인을 력사에서 아예 지우고자 한 일제의 “황민(皇民)화”운동, 그 일환으로 수천년동안 내려온 조선인의 성씨를 파괴하고 조선말과 조선글을 빼앗고 민족호칭마저 거세해버린것이다. 성씨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우리 민족은 자신의 성씨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다. 일제는 이 점에 착안하여 우리 민족 정신적 기반을 파괴하기 위한 책략으로 “창씨개명(创氏改名)”을 시행하고 동시에 모든 학교에서 우리 말과 우리 글 사용을 전면 폐지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쓰도록 강요한다. 또한 “태양”을 의미하는 “조(朝)”라는 글자를 일본의 “신민 (臣民)”인 조선민족이 쓰는것은 태양의 나라 일본에게 불경스런 일이므로 조선민족의 “조”자를 거세해 버리면서 “조선인”이 “선인(鲜人)” 으로 추락돼버린다. 한 민족의 고유한 언어와 문자를 못쓰게 하고 그 민족의 호칭마저 거세해버린 악행은 제국주의사상 일제가 유일하다. 다른 한 민족을 뼈에 사무치게 혐오하고 그 민족이란 존재를 영영 씨를 말려 버리려 한 반인륜적범죄에서 일제는 독일나치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히틀러가 “유태인은 인간의 가죽을 쓴 악마”라고 부르짖으며 600만명이나 되는 유태인을 참혹하게 학살하였다면 일제는 조선인을 렬등한 민족, “불령선인( 不逞鲜人)”이라고 못박으며 800만명이나 되는 조선(한국)민족을 도살하였다. 필자는 력사파일에서 일제가 조선인을 동물처럼 대한 이같은 기록을 본적이 있다. 1908년 일본 메이지 왕 재위 40주년 기념 도쿄박람회에 세상사람의 눈과 귀를 의심케하는 전시물이 있었다. 조선사람 두명이 살아있는 동물처럼 전시된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전시하는 이 반인륜적인 박람회에서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 동물 두마리가 아주 우습다”라는 반응까지 보였다고 한다. “조”자가 거세된 선인(鲜人), 우리 민족에 대한 일제의 릉멸과 모독의 극치를 생생히 보여준 견증물이 아닐수 없다. 그 장본인들의 망령이 지금 야스구니신쟈에 신선처럼 모셔져있고 그 추종세력에 의해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인들의 혐오의식이 지금까지 지속되여 오고있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중국조선족은“한일합방”후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살길 찾아 반도로부터 중국으로 이주해왔고 또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일제와의 항쟁을 견지해온 위대한 민족이다. 일제는 이 땅에서 패망되였지만 우리와 일제망령과의 대결은 종식되지 않았다. 식민지시기 일제가 심어놓은 “티푸스균”은 음으로 양으로 우리의 관념속에 뿌리를 내리고있는데 가소롭게도 우리의 많은 이들이 일제의 “세균”보균자가 되여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것이다. TV매체의 사회자나 연변의 토종무용수들이 절대 고의로 일제식민지시대 망령의 “유물”을 신성한 중국무대에 올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기여하를 떠나 결과적으로 일제패망과 함께 력사의 관속에 들어갔어야 할 우리 민족을 릉멸하는 호칭이 아직도 버젓히 활개치고 배회한다는 자체가 우리가 저도모르게 식민지망령의 “티푸스균”확산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년전 필자의 아들이 다니던 대학에서 한족교수 한분이 강의 중 말결에 “선족”이란 말을 꺼냈다가 아들의 면박을 당해 그 자리에서 사과했던 일이 있었다. 중앙급 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지는 추태를 보면서 우리 무용수들 가운데 누군가 그 자리에서 사회자의 짧은 력사지식을 가르쳤더라면 구겼던 조선족의 체면을 살릴수도 있었겠는데, 혹은 TV프로 재방송시 기술처리가 따라갔다면 오늘날 인터넷에까지 확산되지 않을수도 있는데 하는 유감을 가져본다. 식민지망령의 배회, 이 외면할수 없는 현실을 두고 우선은 조선족사회가 각성해야 한다. 자신을 모욕하고 비하하는 줄도 모르고 식민지망령과 짝짜궁을 쳐대는 추태가 더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재연돼서는 안된다. 정부 해당부문에서 이 면의 절실한 대책마련이 따라가 고속철시대흐름을 타고 우리 지역사회로 오가는 만방의 손님들에게 더러운“티푸스균”을 전염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연변일보 2016-2-3
43    미국하버드대 조선족학도의 고백 댓글:  조회:3104  추천:0  2016-01-21
우연한 기회에 미국하버드대 재학중인 한 조선족 대학생을 만났다. 갓 미성년 딱지를 뗀 아직 애티가 철철 흐르는 19살내기 대학생, “뜨거운 부모사랑과 근심없는 경제적축복에 의한 행복한 성장이 명문대입학의 밑거름이 됐으리”라는 억측을 여지없이 뒤엎은 화제의 어린주인공이 비운과 역경으로 점철된 비참한 동년을 디딤돌로 삼아 오늘의 기적을 일궈낸 “소년가장”이였다는 사실에 필자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미국에서 태여나 3년 후 어머니를 잃고 불의의 사고로 생활력을 상실한 아버지와 동생을 챙겨야하는 이 불우한 운명의 어린이에게는 재롱을 떨거나 귀여움을 만끽하는 유년의 사치를 누려볼 겨를마저 없었던것이다. 페인에 가까운 아버지 병상시중과 동생을 챙겨야하는 어마어마한 생활고의 중압속에서 “소년가장”은 믿어지지 않을만큼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미국의 고중단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렵다는 학업과정을 출중하게 소화하며 결국 하버드대학 입학통지서를 거머쥐는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 생물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젊은이의 당찬 꿈은 아버지와 같은 불우한 생을 살아가는 이 세상사람들을 구하고싶다는 구체적야망에 토대하고 있었다. 이 젊은이가 바로 지난세기 80년대 우리 조선족사회의 자랑거리로 인지도가 높았던 연변1중 졸업생 수학영재 김홍화의 장남이라는 사실에 필자는 역시 피는 속일수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미국에서 태여났고 미국정부의 보조금에 기대여 아버지와 동생을 보살피면서 미국고등교육에 입문하고 미국명문대 까지 노크하고들어선 조선족 젊은이에게 연변 그리고 중국은 어떤 존재일가? 필자의 이같은 궁금증에 준 이 하버드대 조선족대학생의 고백은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너무나 론리 분명하였다-중국은 내 고향이고 내 집이 있습니다. 나의 혈관에서는 조선족의 피가 흐릅니다. 중국, 연변이 나를 낳아준 어머니의 성공이 있게 하였고 또한 나의 오늘이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중국에 감사하고 연변조선족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있습니다! 이보다 더 분명한 모국관, 감은(感恩)관이 있을가? 기실 이 하버드대학생 자체의 경륜에서는 소학교와 초중 몇년 공부가 고작 중국에서 받은 국민교육혜택의 전부일뿐, 중국에 감사하고 연변에 감사하다는 마음은 개인한계의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자기의 부모를 훌륭하게 키워준 연변조선족사회, 그리고 중국민족정책의 혜택에 그 뿌리를 내리고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종의 인간도덕적차원에서 류추해낸 감은의식의 구현이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발달한 나라에서 학업에 열중하는 중국인 젊은이들은 수없이 많다. 그들속에는 조선족 젊은 학도들도 꽤 많고 따라서 이들의 거주 형태도 여러류형인것으로 알고있다. 필자는 이들의 해외 시민권이나 국적취득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하자는게 아니다. 어떤 거주형태든 상관없이 자기의 조국과 민족에 대해 망각하지 말고 조상의 뿌리의식을 고히 간직하며 늘 감사한 마음, 보답하려는 심성으로 산다면 어디에서 무얼, 어떻게 하든지 옳바른 삶의 자세가 아닐가 생각한다. 감사한 마음, 보답하려는 생각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갖추어야 할 인간도리로서 구태여 복잡한 고차원의 룰을 터득해야만 가능한것도 아니다. 하버드대학 조선족대학생 신설야의 중국과 연변조선족사회에 대한 소박한 감사의 정과 보답심리는 기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상식적인 도리를 바탕으로 하고있음을 어렵잖게 보아낼수 있다. 신설야의 이같은 감사의 마음이 19세의 어린나이에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상식이 통하면 인간사회는 반듯해질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식을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밝을것이다. 오늘날 우리 조선족 젊은이들도 전통적인 삶의 공간을 뛰쳐나와 뉴욕이나 빠리, 런던이나 베를린 같은 도시에서 세계 젊은이들과 똑같은 콜라를 마시고 똑같은 햄버거나 치킨을 씹으며 똑같은 악어표 티셔츠를 입고 똑같은 스마트폰으로 클래식음악에 심취하며 똑같은 교실에서 서양교육에 길들여져가면서 글로벌시대를 피부로 느껴가고 있다. 조국이 준 이같은 기회를 만끽할수있다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는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늘 중국조선족의 후예라는 점을 잊지 않고 자기의 총명과 재질을 마음껏 펼쳐 세계속의 당당한 “나” 를 창조하는 과정은 어쩌면 조국과 민족,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첫번째 실천이고 향후 감사한 마음을 구체적행동으로 조국과 민족, 부모님께 환원하고 보답하기 위한 토대마련의 귀틀로 될것이다. 감사의 마음이 단순한 정감으로 마무리될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책임감으로, 보답한다는 실천적자세로 업그레드돼야한다는 상식적인 도리, 미국하버드대 조선족대 학생 신설야가 모든 조선족류학생들과 그들 학부형들에게 보여준 량심 고백이 아닐가?  연변일보 2015-1-20
42    “우리는 중국조선족” 댓글:  조회:3671  추천:2  2016-01-07
제1회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시상야회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우리는 중국조선족”의 장중한 멜로디가 일전에 유서깊은 룡정의 해란강대극장에서 메아리칠 때 반사적으로 97년 전 력사 화면이 필자의 뇌리를 스쳤다. 룡정 “3.13”반일시위투쟁! 이 투 쟁은 지난세월 조선족인민들의 반일투쟁이 소규모적인데로부터 련합된 대규모적인 투쟁에로 발전하는 계기로, 반일시위투쟁이 반일무장투쟁에로의 궐기를 부추킨 획기적인 력사사건으로 기록 된다. 중국조선족반일항쟁의 효시로 되는 “3.13”운동의 20세기 함성이 터졌던 바로 그 력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중국조선족”의 선률을 타고 펼쳐낸 21세기 중국조선족문학인들의 궐기모임은 그 의미가 특별할수 밖에 없다. 문학이 살아야 민족이 산다는 리념을 안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온 조선족문학인대표들은 단군 사상이 함유한 깊은 뜻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 “조선족문학의 공간확장”에 일조하고 문학인들의 “자성과 령혼의 자유로운 비상을 위한” 분발된 자세로 “대중에게 성큼 다가 갈수 있는 문학”창출에 만전을 기하리라는 새로운 공감대 확인을 위한 또 하나의 리정표를 세운것이다. “우리는 중국조선족”, 이 멜로디에는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그리고 영광스런 혁명전통을 갖고있는 위대한 민족으로서의 자부감, 그리고 이 자부감으로 글로벌시대 민족대이동의 변화흐름속에서 조선족의 문화적결집력을 높혀 21세기 민족부흥의 새 지평을 열어가려는 웅심이 깃들어있다. “우리는 중국조선족”, 필자가 이 멜로디와 처음 함께 한것은 2006년 8월 한국에서였다. 재한조선족근로자들을 위한 위문 공연단을 인솔하여 경기도안산시에서 두차례 위문공연을 펼쳤을 때 공연타이틀이 바로 “우리는 중국조선족”이였고 공연프롤로그가 바로 이번 단군문학상시상야회에서 울려퍼졌던 “우리는 중국조선족”노래였다. 이날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국여러지역에서 구름처럼 모여온 조선족근로자들은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가슴설레이는 공연장의 화끈한 분위기에 매료되여 그동안 쌓였던 고독과 회한, 스트레스를 가시고 중국조선족으로서의 자부감과 애국심을 굳게 다지면서 미래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각오를 불태울수 있었다. “우리는 중국조선족”, 이 멜로디에는 중국조선족문화메카로서 연변이 우리만의 특수한 캐리어를 통한 공감대 구축으로 중국 전역, 나아가서 세계각지에 산재해있는 재외조선족을 포용하여 공생공존하는 21세기 중국조선족의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절박함이 내포되여있다. 지난해 연변축구가 50년만의 전국우승, 15년만의 슈퍼복귀 쾌거로 축구고향의 명예회복을 이뤄내면서 조선족구성원 모두가 열광하며 “우리는 중국조선족”임을 확인하는 세레나데를 연출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감격의 눈길을 일등공신인 한국감독 박태하에게 돌렸었다. 한데 이 리면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박태하감독이 어떻게 3부리그로 강등한 연변구단을 흔들림없이 선택할수 있었고 연변축구에 특별한 애정을 쏟을수 있었는지 그 궁금증을 주체육국 임종현국장이 밝혔다.“연변축구단은 ‘중국조선족국가팀’입니다!” 너무나 해학적이면서도 천금보다 더 무거운 이 한마디가 박태하감독의 심금을 울렸고 결국 그 초심이 기적으로 이어지게 한것이다. “우리는 중국조선족”, 조선족의 자부감, 조선족의 밝은 미래를 기약할수 있는 확신은 축구문화와 더불어 언어문자 위주의 조선족문화성채의 반듯함과 생명력에서 생긴다. 어떤상황에서도 조선족의 뿌리인 언어문자만 살면 우리민족의 진로는 찬란할것이다. 유서깊은 해란강반의 룡정을 제1회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시상야회장으로 선택한 깊은 의미가 여기에 있는줄 안다. 중국조선족축구“국가팀”과 더불어 지금 연변에는 언어문자, 문학예술, 신문출판, 위성방송 등 제분야의 중국조선족 “국가팀”이 많다. 지난해 년초 까자흐족이 3700여명, 인당 수입이 1900원에 불과한 감숙성아크싸이까자흐자치현에서 40만원 거금을 건 국가급 까자흐문학상시상식을 거창하게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개최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깜짝 놀란적이 있다. 그들의 굉장히 전략적인 “노림수”는 우리를 탄복시킨다. 필자는 우리도 한번 인민대회당에서 보란듯이 연변이 아닌 중국조선족 문학예술, 신문출판, 방송TV, 언어문자를 망라한 포괄적의미의 수준급 시상야회를 기획할만하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우리에게는 그만한 저력이 충분히 있지않는가? “우리는 중국조선족”이라는 이 타이틀이 재활된 “축구고향”의 원기를 타고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전방위적인 조선족의 21세기 르네상스의 흐름에 힘입어 “우리는 세계속의 중국조선족”으로 업그레드되는 꿈으로 이어졌으면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연변일보 2016-1-6
41    “사죄숙명” 론 댓글:  조회:2697  추천:0  2015-10-29
  필자의 가까운 친척분이 일본젊은이를 사위로 맞게 되였다. 그런데 썩내키지 않는 상견례자리에서 뜻밖에 예비사위가 절을 올리며 건늬는 첫마디가 중국인들을 도탄속에 빠뜨린 일제의 지난력사시기 만행에 대해 그 후대로서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고싶다는 말이여서 그 자리에 있는 친인척 모두를 당혹스럽게 하였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들으면서 필자 또한 뭐라 딱 짚어 말할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속에 빠져드는 느낌이였다. 오죽했으면 전쟁가해자 나라 후대라는 리유로 상견례같은 화기애애한 자리에서 전쟁피해자 나라 처가마을 어른들에게 선대가 지은 죄를 대신 사과하는 괴로움을 보여줘야 했을가? 안해가 고우면 처가집 말뚝에다도 절을 한다고하지만 이건 결코 그같은 성격의 애정표현에서 만들어낸 쇼가 아닌것 같다. 도무지 사죄할줄 모르는 일본 아베정부의 뻔뻔스러움으로하여 겪을수 밖에 없는 새일대 일본 젊은이들의 사죄콤풀렉스, 량국량가 친인척들을 모신 상견례라는 일생 최대의 자리에서 정중하게 보여준 일본사위의 “사죄성명”은 비정한 일본 우익세력추종자들에게 날린 량심의 호소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올 6월, 일본 우익세력들이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강력한 반대도 무릅쓰고 야스구니진쟈 참배를 강행하여 일제식민지 때의 그 아픈 상처를 지우지 못한 주변국 인민들을 향해 도발수위를 높혀갈 때 일본청년방문단 일행 20명이 야스구니진쟈가 아닌 연변혁명렬사릉원을 찾아와 화환을 진정하고 묵념을 한적이 있다. 피어린 연변항일투쟁유적지에서 일본의 새 일대들이 작정하고 벌린 이 비장한 “사죄이벤트”는 일본 우익세력에 정면도전한다는 분명한 메세지를 담고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죄를 지었으면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게 인간의 도리이다. 사실 “일본사위”나 “일본청년방문단”젊은이들한테 일본군국주의 자들의 전쟁범죄책임을 전가시키고 그들이 선대를 대신해 사과하라고 누구도 강요한적이 없다. 참회와 사죄는 일본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깐. 그런데 피해를 입힌 이웃에게 침통한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할 장본인은 시치미를 뗀채 나몰라라하고 애꿋은 자식이 나서서 사과하는 뒤틀린 진풍경이 자꾸 연출되고 있는데… 거기에 아베정부는 한술 더떠 전후에 출생한 일본인은 계속 사죄숙명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는 요상한 유론까지 펴내며 일본여론을 오도하고 있는것이다. 모든 인간은 태여나서부터 국가가 부여한 권익을 향유함과 동시에 상응된 의무와 책임을 지게 되여있다. 이것이 바로 국가 귀속이다. 국가가 남긴 반면력사보따리는 국가의 정면유산과 더불어 나라정부가 대물림하여 짊어져야지 포기할수 없다. 현임 정부 지도자라는 아베가 제 자신이 출생하기 전 정부의 반면 유산감당을 거부하려는 자체가 현정권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것과 같지 않을가? 독일이 일본과 같은 2차 대전 가해국이고 전패국이지만 주변피해국과의 “화해와 용서”를 이끌어낸데는 브란트의 세기적인 “사죄의 절” 뿐만 아니라 파쇼에 대한 그 어떤 미화도 범죄로 규제한 독일정부의 단호함과 그에 따른 수십년의 피타는 참회와 반성의 노력에서 기인된다고 볼때 일본의 “사죄숙명” 론이 얼마나 허망하고 위험한 발상인지 잘 들어난다. 독사에게 물려본 사람이여야 그 아픔을 피부로 느낄수 있다. 일제와의 악연으로 점철된 연변땅은 조선족과 기타민족의 40여년 수난과 투쟁의 산 증인이다. 연변의 이르는 곳마다에 산재해있는 일제의 침략유적지, 반일독립운동사적지, 반일무장활동기지, 항일유격투쟁전적지는 3천여명 항일렬사들의 영령과 더불어 우리가 두번다시 수난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게 깨우쳐주는 력사의 거울로 된다. 일제가 패망한지도 70년, 하지만 야스구니진쟈를 찾아 전쟁범들한테 조의를 표하고 혼백을 부르는 일본정치인들은 기수부지여도 연변의 “경신년참안지”, “해란강참안지”를 찾아 연변의 무고한 백성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대학살 만행에 대해 속죄했다는 일본정계인사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다. 수십년 세월이 흐르도록 일제에게 무참히 살해된 연변의 피해자 유가족들이 언제 한번 일본정부에 사죄를 요구하고 배상금을 청구했던가? 피해자는 가타부타 말이 없는데 가해자가 도리여 “사죄숙명”론을 들먹이니 그야말로 도적이 매를 드는 격이 아닌가? 돼먹지 못한 정부의 꼴이 역겨워 결국 “일본사위”나 “일본청년방문단” 젊은이들의 량심“고백”과 “선언”이 터진것이다. 일본 전쟁경력자세대의 소실과 더불어 침략력사에 대한 참회와 반성교육이 전무한 환경에서 일본 새세대들을 “사죄숙명” 론으로 오도하려는 일본우익세력추종자들의 저의에 반발하여 상견례에서 꺼내든 “일본사위”의 사죄카드나, 연변혁명렬사릉원에서 펼친 “일본청년대표단”의 사죄이벤트같은 일본 젊은세대들의 건강한 자세가 일본사회의 주류인식으로 정착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연변일보 2015-10-28  
40    “버리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든 법” 댓글:  조회:3255  추천:0  2015-08-10
“…그들이 고향을 버린만큼 고향은 그들을 버렸다. 버리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든 법, 고향을 떠나면 비루 먹은 개처럼 천한 신세가 되여야 하는가?...” 림원춘선생이 신작 중편소설 “신도시인”(《연변문학》제7호) 에서 고향을 두고 터쳐낸 절규이다. 손자녀석을 도시학교에 보내고저 쟈피거우 고향땅을 버리고 낯선 도시 연길에 들어와 “신도시인”이 됐으나 결국 도시인들의 “왕따”를 당하다가 허무하게 객사한 주인공,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도 고향은 자기를 버린 “신도시인”을 무자비하게 외면한다. 작품은 주인공의 비극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회적화제를 던지고있다--- 조선족농민들이 떠난 자리는 누군가가 “점령”해버린다. 결국 피와 땀으로 걸군 내 땅은 이미 남의 땅이 되여버렸다. 개혁개방 후 해외로무바람이 불면서 언녕 우리 민족 앞에 로출된 심각한 사안이였으면서도 오늘 림원춘선생의 작품이 새삼스럽게 깊은 사상적여운을 남기고있는것은 아마 “버리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든 법”이라는 깊은 뜻에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땅은 조선족을 있게 한 근거이고 연변이란 전국 유일 조선족 자치주가 존립할수 있는 리유이기도 하다.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것이 땅이다. 그런데 자식의 학업을 위해서일 때 상황은 달라진다. 따지고보면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키는” 조선족의 전통미덕이 오늘날 “자식 학자금 마련”을 위해 땅 팔고 내 몸 파는 해외로무수출로 이어지고 있는것이 아니던가? 땅과 자식을 놓고 아무리 갈등해도 결과적으로 마음의 천평은 자식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라지만 오늘날 자식들 학업보장을 위해서는 꼭 우리의 선대가 피와 땀으로 걸구어 온 땅을 버리는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걸가?  조선족농민들 고향지키기의 확고한 자세, 자식들 학업보장의 애절한 숙원이 우리 정부의 정치적혜안과 복합되여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으로 창출될수는 없는것일가? 해외로무수출은 연변에 많은 리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대가 또한 만만치 않다. 수많은 조선족 농민들이 해외로무에 모든것을 걸고 자기가 도맡아 경영하던 땅을 팔아버리고 경제기반을 잃어가고있다. 적잖은 조선족원주민마을이 쑥대밭이 되였다.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야 할 길은 멀지만 영원히 국외에 정착 불가능한 현실에서 외국로무수입이 있어도 생산터전을 잃고 경제기반을 상실한 그들의 미래는 불확실할수 밖에 없다. 버리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눈앞의 경제리익만 보고 우리 선대들이 어렵게 일궈내고 지켜온 경제적기반을 일조일석에 날려버리면서 해외로무에 모든것을 거는 경솔한 선택보다도 철저한 대비책이 병행된 해외 로무로 고향에 돌아와서도 떳떳한 땅의 주인이라는 본연으로 돌아 갈수 있는 튼튼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 정부차원에서도 그들이 벌어들이는 외화수입과 동시에 황페화돼가는 조선족농촌을 조선족농민들에 의해 다시 기지개를 켤수 있게 하는 대안을 두고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가? 더구나 나라의 “3농”정책의 활성화에 따른 농촌토지경영에서 농민들이 반가워할 일대 변혁이 기성사실로 되고있을 때 정부의 능동적인 안내역할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일전에 우리 주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농촌토지경영권대출을 실시하여 이미 1461건, 금액으로 3억여원을 지급했다는 가뭄에 단비같은 기사를 읽은적이 있다. 조선족농민들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존의 일가일호 소농경제 운영체제가 전문농장, 가정농장화 규모경영체제로 전환하면서 연변에도 이미 전문농장 1137호, 가정농장 8108호, 여러가지 재배전문경영호가 3054호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재한조선족농민과 해외로무를 시도하는 조선족농민들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이고 한번 해볼만한 2차 창업의 기회로 될수 있지 않을가? 이런 기회를 놓치고 땅을 타민족에게 팔아 버린다면 향후 연변농촌의 농장주는 타민족, 농장원은 조선족이 되는 불미스런 상황이 연출될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 이미 그런 기미가 보이고 있어서이다. “버리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든 법”,  100여년 조선족의 이주 력사에는 험악한 대자연과 싸워 이 땅을 개척하고 일제와의 피어린 항쟁으로 이 땅을 지켜내고 당과 정부의 민족정책배려로 이 땅의 주인이 되여 이 땅을 동북아의 명주로 건설하느라 혼신을 쏟은 몇세대 조선족의 넋이 스며있다. 이런 땅을 버리는것은 조선족선대에게 미안하고 우리 후대에게 미안하며 당과 정부에 미안한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은 이 땅의 주인으로 영원해야 한다. 버리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찾기 힘든것은 아예 버린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연변일보 2015-8-5
39    일본청년대표단 연변행보의 의미 댓글:  조회:3318  추천:0  2015-06-25
"얼마전 일중우호청년대표단이 연변을 방문했다. 그들의 연변행보가 향후 더 많은 일본청년들이 결코 생소할수 없는 연변땅을 직접 밟으면서 70년 전을 도리켜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요즘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는 연변은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항일로혁명근거지의 풍채가 새롭게 되 살아나는 기분이다. 연변혁명렬사릉원을 중심으로 주안의 여러 항일유적지와 렬사기념비들에 남녀로소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보도매체와 예술단체에 의해 항일렬사들에 대한 추모의 정이 뜨겁게 달궈지면서 “물 마실 때 우물 판 사람 잊지 않으리”라는 연변사람들의 결연의 의지가 어느때보다 돋보이고있다. 그런 가운데 일전에 일중우호청년대표단 일행 20명이 연변혁명렬사릉원을 찾아 렬사들에게 생화를 진정하고 묵도를 드렸다는 보도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본보 2면의 손바닥만한 편폭의 짧은 기사였지만 분명 이는 가볍게 스쳐보낼 메시지가 아니라는 생각에 관심을 가져보았다. 일중우호청년대표단을 이끈 일본창가(创价)학회는 문화와 교육사업의 발전을 통해 세계평화를 이룩하고 인류행복을 위해 기여하며 모든 전쟁과 파쑈군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을 취지로 삼고있는 종교단체로서 1930년에 설립되여 현재 전세계 190개 국에 소속단체를 둔 유엔이 인정하는 비정부조직이다. 1942년에 태평양전쟁이 점차 패색이 짙어지던 시기 당시 일본군국주의 정부는 모든 종교단체가 일본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신찰을 받도록 강요한다. 모든 종교단체가 일본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신찰을 받았으나 창가학회만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결과 초대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와 2대 회장 도다조세이가 불경죄 및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체포된다. 나중에 초대회장은 감옥에서 옥사하고 2대 회장은 2차대전 종전 전야에야 보석으로 석방된다. 평화를 제창하고 모든 전쟁과 파쑈군국주의를 반대한다는 취지를 행동으로 분명하게 보여준 대목이다.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는 일찍 중일관계정상화와 두 나라간의 친선 교류를 위해 수차 중국을 방문했었고 주은래를 비롯한 우리 나라 지도자들의 뜨거운 환대도 받은바 있는 우호인사이다. 한마디로 반가운 손님들이 연변을 찾은 것이다. 70여년 전 일본군국주의의 강요와 탄압에 정면으로 맞선 죄로 감옥살이에 옥사까지 한 이 단체 회장들의 유훈을 받들고 70년 후인 오늘 이 단체의 일중우호청년대표단이 아베정부의 일본군국주의 침략 왜곡행위에 용감히 도전하며 일본의 야스쿠니신사가 아닌 연변의 혁명렬사릉원을 찾아 참배한것이다. 이들의 연변행보에는 분명 지난세월 일제침략자가 연변인민들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한 참회와 반성의 진지한 뜻이 담겨져있다고 생각한다. 연변은 일제와의 악연으로 점철된 땅이다. 연변지구 항일전쟁시기의 렬사는 3,301명(조선족 3,204명)이고 일제의 잔인무도한 파쑈폭행에서 참살된 연변의 조선족민중은 4,000여 명에 달한다. 항일의 피어린 나날에 연변은 결코 “무풍지대”가 아니였다. 연변의 이르는 곳 마다에 산재해있는 일제의 침략 만행유적지, 반일독립운동사적지, 반일무장단체활동기지, 항일유격투쟁유적지와 전적지는 지난 반일항일력사의 산증인으로서 우리가 두번다시 수난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게 깨우쳐주는 경종으로 된다.  2년 전 필자는 본보 칼럼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바 있다--- “일제가 패망한지도 68년, 하지만 일본은 종래로 저들의 침략력사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한적이 없다. ‘경신년 참안지’, ‘해란강참안지’를 찾아 연변의 무고한 백성들에게 저지른 천인공노할 죄상을 속죄한 일본의 정계인사는 단 한명도 없다.” 오늘 일본청년대표단이 연변혁명렬사릉원을 찾아 참배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왜 일본정계인사들은 이같은 반성과 참회의 용기도 없는가 생각하게 한다. 이번에 20명으로 구성된 일중우호청년대표단의 연변행보는 일본의 수천만 평화애호청년들의 뜻이 담긴, 반성을 토대한 평화지향의 행보가 아닐가 느껴본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도 습근평주석이 3000명 일본 방중대표단 접견시 "력사를 되새기는것은 미래를 열어 나가기 위해서며 전쟁을 기억하는것은 평화수호를 위해서이다”라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것처럼 왜서 연변은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의미를 띄는지에 대해 그들에게 확실하게 각인 시켜줄 필요가 있지 않았을가 생각해본다. 일본청년대표단의 연변행보가 향후 더 많은 일본청년들이 결코 생소할수 없는 연변땅을 직접 밟으면서 70년 전을 도리켜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연변일보 2015-6-24  
38    “유죄추정”이 낳은 비극과 인권보장 댓글:  조회:3483  추천:2  2015-02-05
  살인사건제보자가 살인용의자로 추정되여 죽음을 맞는다면 그보다 더 억울함은 없을것이다. 살인사건현장을 발견한 뒤 주저없이 경찰에 달려가 신고한 정의감 있는 젊은이를 어이없게도 고의살인죄, 건달죄로 몰아 사건발생  61일만에 가차없이 처형해버린 18년전 내몽골 훅호트“4.9”사건이 바로 그 모델이다. 그런데 “인성”을 되찾은 살인진범의 량심선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제보자의 억울함을 벗겨주는 절대절명의 키로 되면서 결국 18년 후인 지난해 년말에 “죽은 이”가 무죄로 확정되고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낸 수사관계자들이 심판대에 오르는  반전상황이  벌어진것이다. 살인진범의 “량심발견”이  몰고온 뜻밖의 상황은 오심을 뒤엎는 사법기관의 용기와 더불어 우리 사법제도의 진보를 이끌어내고 인성을 재인식하도록 반성할수 있는 값진 카드를 제공한 셈이다. 참으로 운명의 무상함을 절감케하는 극적충돌이 아닐수 없다.이같은 극적충돌을 야기한 문제의 “장본인”은 “추정”(推定)이다. 사전의 해석에 따르면 그렇지않다는 명백한 반대 증거가 없는 경우에 인정하는 일을 추정이라 한다. “추정”이 “유죄”와 복합될 때 한 인간의 운명은 쑥대밭이 되는것이다. 민중이 오심에 주목하는 특별한 리유가 자신에 대한 관심때문이라 할수 있다. 남이 쓴 억울한 루명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읽으려는것이 사람들의 심리이다. ( 만약 그날 사건을 제보한 사람이 바꿔서 내라면 어떻게 됐을가? 나는 자신이 절대 죄를 짓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있겠지만 언제 범죄용의자나 피고인으로 덤터기를 쓸지는 장담할수 없는 노릇이다. 살다보면 내가 우연히 범행현장을 지나갔을수도, 범행자와 옷깃이 스쳤을수도 있지 않을가? ) 그런데 이같은 “살다보면”의 우연한 에피소드가  일단 “유죄추정”사유에 “련행”된다면 비극은 오심의 지정법칙에 따라 서서히 진행된다는 도리를 훅호트”4.9”비극이 잘 설명하고있다. 얼마전 절친한 친구로부터 그가 썩 오래전에 겪었던 한 살인사건제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서 그 어떤 한기를 느꼈던 적이 있다. 이야기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였다. 어느날 이른아침, 연집하제방뚝을 따라 조깅을 하던중 제방뚝아래서 녀성시신을 목격한다. 서둘러 공안기관에 사건제보를 하고나서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현장을 지킨다. 뒤이어 나타난 경찰들에게 사건현장 발견당시 상황을 까근하게 설명하면서 경찰수사에 적극 배합한다. 그로부터 며칠동안 친구의 저택은 수사경찰이 시도때도없이 들락거리며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처음에는 별로 개의치 않아하다가 점차 동네주민들의 이상한 시선, 가정에서의 핀잔까지 겹치자 친구는 불쾌감을 드러내게 된다. .드디여 자신이 사건제보자가 아니라 혐의자로 추정받는듯한 섬찍함을 느끼면서 애초에 나서지 말걸 그랬다며 크게 후회했다. 결국 사건이 밝혀지여 신문에 경찰의 살인사건 해명과정을 대서 특필한 (시민의 협조따위는 일언반구도 없는) 보도가 나가면서 친구의 “혐의”도  벗겨진 셈이란다. 그러나 경찰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되는바가 많았다. 경찰은 친구를 한낱 “유죄추정”의 대상후보자 정도로 다룬것이다. 만약 필자의 친구도  다른 시민들처럼 사건현장을 보고도 시치미를 떼고 경찰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그는 적어도 심리부담을 안아야할 리유가 없었을것이다. 만약 필자의 친구가 제보한 그 살인사건이 지지부진하면서 살인진범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친구가 경찰의 “유죄추정”화살을  빗겨나갈수 있었을가? 모든 범행은 대체로 경찰과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서 은밀히 벌어진다. 그만큼 범행현장제보는 경찰보다도 시민들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된다. 때문에 이들의 적극적인 제보와 협조가 없다면 경찰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에 봉착할수 밖에 없다. 시민제보자들이 혐의덤터기를 쓸 위험과 심리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경찰수사에 동조하는 어려운 선택을 한다는 점, 이들에 대한 따뜻한 태도와 고마운 마음이 시민과 경찰의 긴밀한 협조로 사건수사를 풀어가는 량성순환의 흐름이 된다는 점을 필자의 친구가 표출한 유감이 잘 보여준다. 일전에 중앙정법회의가 “유죄판결률” 등 지금까지 시행해온 불합리한 심사지표들을 전면 페지하기로 한 최대의 목적은 억울한 안건의 발생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국민의 인권보장에서 획기적전환을 가져오려는데 있는것으로 알고있다. 재작년 우리나라 각급법원이 116만명 범죄피고인에게 내린 판결가운데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825명, 말하자면 유죄판결률이 거의 100%에 가깝다는 말이 된다. 우리 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전주 각급법원에서 법정심리기한내의 사건종결률이 99.73%,  검찰기관의 유죄판결률이 100%인것으로 나와있다. “지표락실, 임무완성”과 점철된 불합리한 “유죄판결률”등 항목자체가 “유죄추정”의 낡은 리념과 궁합을 맞추면서 억울한 안건을 파생시키는 산실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있다. 내몽골 훅호트”4.9”사건같은 비극의 재연을 막고 필자의 친구가 겪은 유감천만한 사연이 더는 생기지 않게 하려면 “유죄추정”사유를 말로가 아니라 행동상에서 철저히 백지화시킴과 더불어 인권에 대한 사법보장의 원활한 운행을 위한 감시체계가 정상화돼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출처-연변일보 2015년 2월 4일
37    “미꾸라지”의 악행과 우리의 책임 댓글:  조회:3549  추천:1  2015-01-22
연길호적의 재한조선족로무자 박모가 조선족내연녀를 토막 살인하고 유기해버린 끔찍한 범행이 터진지 불과 한달도 안돼 사귀던 탈북녀성을 살해한 참사가 또 다른 한 조선족로무자에 의해 저질러져 한국사회를 경악케하고 있다. 재작년, 내몽골호적의 조선족 오모가 빚어낸 토막살인사건 후 조선족에 대해 부정적시각을 가졌던 한국인이 47%로부터 70%로 급증했다고 들었다. 당시 일부 한국네티즌들은 그 무슨 중국동포추방운동마저 들먹이는 헤프닝까지 벌렸던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조선족에 의한 범행이 련달아 재연된것이다. 련일 한국네티즌들이 쏟아내는 댓글이 인터넷 게시판을 란무하면서 조선족은 이제 비난의 대상보다 공포의 대상으로 요괴화된다는 느낌이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한강물을 다 흐린다. 부레이크없는 한두 마리 “미꾸라지”의 저돌적인 악행, 이럴 때마다 재한조선족은 물론 중국본토의 조선족들은 그야말로 골치거리 악동을 자식으로 잘못 둔 부모가 학교에 불려가 문책당하는 그런 고약한 기분이다. 필자는 2년 전 내몽골조선족로무자가 한국에서 저지른 범행을 두고 쓴 칼럼에서 우리에게는 “결코 먼산의 불이 아니다”는 점을 지적했던바 있다. 재한연변조선족로무자들이 향후 계속 늘어나게 될 추세를 감안할 때 문제의 “미꾸라지”악행이 번질 공간은 어쩌면 더 넓어질수도 있다. 악한이 조선족이라는 단 한가지 리유에서 애꿏은 재한조선족과 중국본토의 조선족 전체가 타매당하고 문책을 받을수는 없다고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 적어도 조선족 전체 이미지의 추락은 불보듯 뻔하다. 우리는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 “미꾸라지”의 악행때문에 “석고대죄의 피해망상증”이나 “수수방관의 무책임합병증”에 시달리는것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광범한 조선족의 권익과 이미지를 수호하는 그같은 책임론적 차원에서 우리는 어설픈 관객이 아니라 소신있는 감당자의 존재감을 보여야한다는게 필자의 소견이다. 문제의 “미꾸라지”현상에서 두가지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그 하나는 이미 본토에서 성체로 된 “미꾸라지”의 해외침투에 대비한 원천봉쇄이다. 마약, 밀매, 다단계판매, 사기행각 등 범죄행위로 나라의 법질서와는 담을 쌓고 성실한 로동은 념두에 없으며 로무자자격이 전무한 이런”불량기록”자들의 한국입국 자체가 50여만 재한조선족들에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런자들에 대한 해관의 철저한 검색은 물론 가짜 위조려권거래를 원천차단하는 단호함이 절박하다. 얼마전 토막살인사건 조선족용의자가 휴대한 려권도 가짜였다는 점, 이미 구치소 수감경력이 있는 전과자였다는 점들은 주시해야할 대목이다. 우리 나라 하천에서 성체로 자란 “미꾸라지”가  이국 하천으로 침투하여 재한조선족들을 골탕먹이지 못하게 사전에 막아야 한다. 다음 하나는 아직은 성체의 “미꾸라지”가 아니더라도 그쪽으로 번질 소지가 다분한 로무자들 성향에 대비한 건강한 해외생활풍조의 구축으로 “미꾸라지”바이러스가 재한조선족 사회에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것이다. 재한조선족들은 하루빨리 가난의 때를 벗고 잘살아보려는 꿈을 안고서 부모와 안해(남편), 자식을 떠나 한국이라는 이 낯선 땅을 밟았다. 대다수 조선족들은 가족을 위하여 인욕부중 (忍辱负重)의 헌신적인 로동으로 재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일부 로무자들이 한국입국시의 초심을 잃고 피땀으로 번 돈을 탕진하면서 방탕한 생활풍조의 포로가 돼간다는 메시지도 간단없이 들려와 안타깝다. 이는 대체로 “미꾸라지”바이러스감염의 초기증상으로 되고있기 때문이다. 한 조선족로무자의 말이다.“중국동포 밀집지역인 서울시의 대림동부근과 안산시의 원곡동일대에서는 재한조선족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중국식당과 노래방을 누비며 2차, 3차를 즐기는것을 볼수 있다. 이들 대부분이 하루종일 숙취 상태여서 걸음걸이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웃고 떠들어대고 로상방뇨를 하는 등 추태를 새벽까지 연출한다” 요즘 재한조선족동창생들의 삶을 다룬 문학작품을 읽고 커다란 충격에 빠졌던적이 있다. 작품에 등장한“애인을 수없이 바꾸는 ×××, 집에는 일전한푼 보내지 않고 이발 두대를 하는데 천오백만원을 썼다는 ××, 중국에 처자를 두고도 한국에서 녀자를 얻어 아들을 보았다는 ×××, 사흘저녁에 삼백만원의 돈을 날린 ××” 등 조선족 “반편”들을 어찌 터무니없는 허구 인물이라고만 할수 있겠는가? 물론 일부의 조선족로무자 현상이라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도록 방치한다면 “미꾸라지”바이러스감염자들의 무서운 광기로 이어지는것은 시간문제이다. 이런 상황에 부레이크를 걸어야 할 사람은 우리 재한조선족 자신일수밖에 없다. 중한수교 20여년, 그 동안 재한조선족사회는 30여개 민간단체의 결성으로 조선족권익수호와 조선족이미지 향상이라는 무거운 화제를 풀어나가면서 조선족 구심점의 형성을 위해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몇몇 “미꾸라지”의 악행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같은 시련을 헤쳐나가기 위한 출로모색과 고민으로 몹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공청단연변주위에서 발족시킨 재한차세대사업위, 주정부 한국대표처, 중국본토 및 재한조선족동포언론사와 재한조선족민간단체 사이의 폭넓은 소통과 협력이 절실할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외 언론의 여론리더역할이 각별히 요청된다. 조선족의 선행(善行)보다 악행(恶行)에 집착하는 일부 한국언론의 선정적 보도관행에 대응하여 조선족을 정확히 알리고 조선족사회의 긍정적이고 건강한 모습을 부각시키는 사명을 우리 조선족언론이 짊어져야 한다. 황소와 같은 근면함으로 역경을 이겨내면서 한국사회의 인정을 받고 점차 한국사회 경제엔진의 한축으로 되고있는 조선족로무자들이야말로 재한조선족의 주류가  아닐가? 이들의 감동을 한국사회에 널리 파급시키는 우리 언론의 노력이 당면 “미꾸라지”가 흐려놓은 물을 정화시키는 해법의 하나로 생각한다. 개별적인 ”미꾸라지”의 저돌적인 악행에 대한 사전협동 제압, 재한조선족사회에 독버섯으로 만연될 “미꾸라지”바이러스에 대비한 건강한 해외생활풍토구축 등은 재한조선족사회와 중국본토의 조선족사회가 손잡고 풀어나가야 할 무거운 과제임은  틀림없다. 이 과정에서 한국주류사회의 리해와 동조, 협력을 이끌어내는것도 우리가 적극 감당해야 할 몫이다. 문제의 “미꾸라지”들에 의해 추락되는 재한조선족의 이미지를 재건하고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뚠 시각을 교정하며 중한전략적파트너협력관계에 걸맞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재한조선족사회를 출범시키는 일, 바로 지금부터이다.   연변일보 2015-1-21
36    연변이 조선족문화의 메카라면 댓글:  조회:3305  추천:1  2014-12-17
  연변의 성채만 반듯하게 지켜진다면 조선족문화메카로서의 신성함이 되살아나고 산재지구 조선족문화에 대한 포용력에도 힘이 실리게 될것이며 조선족사회의 보다 밝은 미래를 기약할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타성의 어느 조선족 산재시에 17개 조선족마을을 거느린 문화예술관이 있는데  관장 한분만 달랑 조선족이란다. 그래서 연변 어느 학교에 찾아가 안타까움을 하소연하며 조선족인재를 지원해줍소사 했다가 면박을 당하고 쓸쓸히 돌아갔단다. 조선족 산재지구 문화관관장이 다른 곳도 아닌 연변에 찾아와 고충을 터놓으며 인재지원을 호소한 리유는 연변이 중국 조선족문화의 메카라는 단 한가지 믿음에서였을 것이다. 결국 그 믿음을 접어 야만 했던 조선족관장의 처지가 너무 안쓰럽다. 오랜세월 우리 나라 조선족산재지구는 주로 흑룡강, 료녕, 길림(연변제외) 그리고 북경 정도로 인식돼왔으나 지금은 청도, 상해, 심수 등 연해지구, 나아가서 한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에까지 광범위한 범위로 파급되고있다. 산재범위가 넓어 질수록 집거지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집거지구의 구심점역할이 더 절박해질수 밖에 없다. 산재지역 조선족관장이 연변을 찾아 고충을 호소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는 연변이 “조선족 문화의 메카”라는 선에서 참으로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 왔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중국 유일 조선족자치주라는 정치타이틀, 4만2700평방 키로메터의 성채안에 완벽하게 포진된 조선족의 교육, 문학, 예술, 신문, 출판, 방송,텔레비죤,스포츠 등 화려한 문화군단은 출범시초부터 중국조선족문화의 메카와 리더로서의 사명에 걸맞는 차원에서 구축돼왔음은 세상이 다 안다. 오늘날 시장경제와 개혁개방의 세찬 바람은 조선족사회의 전통적인 거주구도를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고있다. 나무는 가만 있으려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조선족문화의 메카로서 연변의 성채가 아직까지 버티고있지만 전대미문의 변화의 바람은 조선족사회를 계속 흔들어대면서 그 어떤 충격도 이겨낼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도록 촉구하고있다. 얼마전 “조선언어문자의 날”1주기 관련간담회에서 참석자 들은 “조선족문화지키기”에서 걸림돌은 다름아닌 조선족자체 라고 준렬히 지적하였다. 특히 연변의 조선족엘리트들을 중심 으로 한 조선족상류사회가 조선언어문자를 토대로 한 조선족 문화의 당면한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과 대응노력이 미미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 점을 깊히 우려하였다. 수십성상을 지키고 가꿔온 찬란한 연변조선족문화성채, 아무리 금성철벽의 성곽이라도 넋이 빠지면 무용지물로 될수 밖에 없다.이 성채를 지탱하는 힘은 조선언어문자를 토대로 한 조선족문화의 건재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연변이 조선족문화의 메카라면, 연변조선족 엘리트 중심의 상류사회(기관,단체)구성원들로부터 문화자각을 확실시하여 조선언어문자를 고양하는 참신한 풍조를 되살리기에 앞장서야 한다. 지금까지 자치주 범위내 조선언어문자사용에서 조성된 지나친 “너그러움”, 맹목적인 “양보”와 “눈치 보기”의 잘못된 관행을 깨고 연변조선족자치주다운 민족언어문자사용의 붐을 일궈내야 한다. 자치주 공식회의석상에서 조선어가 사실상 페제돼가는 실태, 공중장소에서 조선말사용이 버림받고 사라져  가는 상황, 변변찮은 한어구사로 한족들로부터는 량미간을, 조선족들로부터는 낯이 붉어지게하는 일부 조선족간부들의 궁색 한 장면들…, 이 모든것이 바꿔지지 않는 한 연변의 민족단결에 불리하고 조선족문화의 메카는 그 토대가 허물어진다. 연변이 조선족문화의 메카라면, 시대의 흐름과 형세의 발전에 순응하여 세계무대에서 외면당하는 현유의 연변조선말사용 체계를 바꿔야 한다. 지금 연변의 언어문자사용은 연변의 경제,사회,문화발전과 전혀 조화되지 못하는 렬악한 수준으로서 “연변은 세계에로, 세계는 연변에로”란 대외전략의 걸림돌로 되고있다. 전국의200여개 대학교들에서 “한류”에 편승하여  한국어학원과 강좌를 설치하고 한국어보급을 서두를 때 아이러니하게 연변에서 파견된 교수, 강사들은 한국어강의에 열을 올리고 연변 자체는 경직되고 투박하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지방방언으로 일색화되여 연변을 찾는 손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평양도 아니고 서울도 아닌 이상한 “짬뽕”에 한어까지 가세시켜 스스로 “중국특색의 조선말”이라 자처하는 이 언어상황을 바꾸지 않는다면 조선족문화의 메카는커녕 조선족사회에서도 조롱거리가 될것이다. 조선어사정위와 학술계의 진맥과 용단이 요청된다. 연변이 조선족문화의 메카라면, 21세기 중국조선족사회를 리드할수 있는 미래지향적이고 리성화된 문화도읍으로 업그레드돼야 한다. 국제사회가 중국조선족을 전면적으로 료해할수 있는 확실한 “활화석”, 중국조선족사회의 구심점이란 그 같은 눈높이에서 현유의 문화 시설에  긍정적인 활력을 부어넣는 동시에 국가차원의 지원으로 조선언어문자관 같은 상징적 문화전당건설로 중국조선족문화의 연혁, 성장, 발전궤적을 되살려 중국조선족의 이미지를 살리는데 일조할수 있다. 필자는 연변의 성채만 반듯하게 지켜진다면 조선족문화메카로서의 신성함이 되살아나고 산재지구 조선족문화에 대한 포용력에도 힘이 실리게 될것이며 중국조선족사회는 영원히 밝은 미래를 기약할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본문 앞에서 언급했던, 산재지구 조선족 관장이 연변에서 겪었던 그런 불미스러운 에피소드가 옛말로 될것이라 생각해본다. 연변일보 2014-12-16
35    재한 차세대 위한 바람직한 발상 댓글:  조회:3081  추천:1  2014-12-04
  공청단연변주위의 “주한차세대사업”이라는 이 획기적인 루트가 주한 중국대사관, 주정부서울대표처의 긴밀한 협조와 한국우호단체들의 적극적인 동조로 미래지향적인 차세대사업브레인으로 됐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일전에 “연변일보”에 실린 토막기사 한편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 공청단연변주위가 재한로무청년, 류학생, 창업청년, 청년 전문가, 교수들로 무어진 주한차세대사업위원회 설립, 재한 연변청년들과의 뉴대를 다지며 그들의 귀향취업, 창업을 격려하고 도와주는것을 취지로 지난해 11월부터 실질적 행보를 이어왔다는 그런 내용이다. 짧은 기사지만 중요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어 마음이 훈훈하였다. 한국이 연변젊은이들의 글로벌화 체험과 자기개발의 현장으로 돼가고있는 것이 외면할수 없는 오늘의 실태이다. 연변이란 제한된 공간만을 생존과 발전 반경으로 고집해왔던 연변젊은이들의 안주형 단일패턴이 모험과 도전을 동반한 류동형 패턴의 가세로 뜻을 새롭게 하고있다. 따라서 한국행 바람은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을 지킨다는 전통관념에 새로운 시대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고있다. 복합적이고 다원화의 시각에서 애국, 애향, 애족을 리해하고 국제화공간에서 고향건설의 뜻을 해독하는데는 시간과 “수험료”가 필요한듯 하다. 그런 차원에서 재한연변젊은이들을 포인트하여 기획한 공청단연변주위의 이번 거동은 글로벌형세하에서 변화된 립체적 시각으로 연변청년사업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비전을 이끌어내는 측면에서 자못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연변조선족인구는 20여만명, 중한수교 20여년의 로무수출 붐을 거치며 그 년령구조가 점차 젊은 층으로 교체되면서 재한조선족사회가 서서히 능동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 자신을 초라한 변두리존재로 인식하던데로부터 자존자강의 떳떳함으로 재한조선족사회의 권익수호, 이미지부각 및 위기관리에 신경을 쓰면서 성숙해가는 긍정적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발맞춰 조선족동포관련 언론사들의 활약, 재한조선족민간단체들의 속출, 기업인과 학자 그리고 류학생들로 이루어진 조선족엘리트군체의 재한조선족사회견인의 구심점으로 부상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 또한 만만치 않다. 물론 아직 그 역할이 초보단계에 있지만 중한전략파트너관계라는 큰 테두리안에서 볼 때 그 성장은 거족적일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공청단연변주위가 상기한 재한조선족 단체들과의   실질적 도킹을 이끌어낸다면 주한차세대사업위의 기존 시스템작동은 보다 원활할수 있고 재한조선족단체들의 국한성도 크게 보완될것이며 재한조선족사회는 크게 기지개를 켤수 있다. 20만 재한연변조선족은 우리에게 굉장히 소중한 존재이다. 그 가운데 차세대조선족은 더구나 우리의 따뜻한 손길이 절실히 요청되는 군체이다. 재한연변로무자들 절대 대부분이 개인적인 취업열망에 끌려 정부부문의 사전 양성을 받지 못하고 해외에서 외롭게 분투할 정신적 자세가 잘 돼 있지 못한 등 문제점을 안고 출국했다는 사실, 이같은 상황이 오늘날 재한 로무자들이 연변의 재부창조에서 일익을 감당하고 있는 소중한 존재인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각종 사고위험과 피해위협에 철저히 로출된 약소군체로 될수 밖에 없는 리유로 된다는 우려를 필자는 2년 전 본보 칼럼지면에서 밝힌바 있다. 오늘 공청단연변주위가 재한 연변젊은이들속으로 들어가 그들과의 융합을 이루면서 비록 늦었지만 그들에게 맞춤형 인성화 배려를 줄수있고 연변과 재한조선족사회의 거리감을 좁히는데 일조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할수 있다고 느낀다. 한국에서 3년간 체험을 거친 한 재한 조선족젊은이는 이렇게 말한다—“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내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자신감을 다시 찾고 만난 세상은 하루하루가 너무나 새롭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관심이 없다. 인젠 큰 소리로 ‘저는 중국조선족입니다’라고 힘차게 웨칠수 있다”. 이 젊은이의 토로에서 우리는 한국이라는 이 치렬한 생존현장에서 자기 설자리 구축을 위해 자신감 하나로 고군분투하면서 자기개발에 혼신을 쏟는 주한 차세대들의 참신한 모습을 엿볼수  있다. 이 자신감은 “언제 어디서나 떳떳하게 살아가기 위한 정신적인 척추 바로세우기”인 것이다. 고향을 멀리한 재한조선족젊은이들의 자신감으로 구축해가는 비장한 삶의 궤적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줌과 동시에 그들한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우리의 자세를 반성하게 하는 거울로 될수도 있지 않을가? 공청단조직의 움직임을 가슴 뜨겁게 받아들이는 리유이다. 필자는 공청단연변주위의 “주한차세대사업”이라는 이 획기적인 루트가 독보적이고 고립적인 행보가 아니라 주한 중국대사관, 연변주정부서울대표처의 긴밀한 협조, 나아가서 한중 친선협회와 같은 한국우호단체들의 적극적인 동조로 리성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연변주한차세대사업” 브레인으로 됐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연변일보 2014-12-2  
34    한 축구팬의 통곡을 두고 댓글:  조회:3271  추천:2  2014-11-04
  연변팀의 강등이 제반 연변축구계통공사의 구석구석에서 생긴 허다한 문제점의 필연적인 결과에서 기인된것이라고 할 때 연변축구에 대한 지도층의 새로운 인식전환은 필수적일수 밖에 없다. 지난 10월 11일, 광동일지천전 완패로 일찌감치 연변팀의 강등이 확정된 광주황포경기장, 경기가 종료된 그 시각 관람석에서는 한 조선족축구팬이 경기장이 떠나가라 대성통곡하고있었다. 매번 연변팀이 불운을 겪을 때마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군 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기적을 바라다가 끝내 남자의 울음을  터뜨린것이다. 젊은 축구팬의 애통한 울음은 현장을 함께 하지 못한 전국 조선족들의 가슴을 더 미여지게 했다.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정작 현실로 들이닥치니 그 충격은 장난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강등이란 이 엄연한 결과에 승복하고 지금부터 10년전 7:1의 장쾌한 승전으로 운남려강팀을 제압하면서 갑급련맹에 가맹했을 때의 그 환희의 순간을 그리워하며 밑바닥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울분을 감수해야 한다. 연변팀이 강등의 낭떠러지에서 추락한 오늘, 한 나젊은 축구팬의 애절한 통곡장면이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까닭은 무엇일가? 축구에 대한 조선족의 꺼질줄 모르는 사랑과 믿음, 구단과 함께 호흡하는 자치주 지도층의 축구철학이 건재하는 마당에 연변축구의 강등이란 있어서는 안될 비극이다. 그래서 그 젊은 축구팬의 통곡소리가 더더욱 가슴을 친것인지 모른다. 바꿔 말하면 축구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이 금이 갔거나 지도층 축구인식에서 문제점이 생겼거나 하는 상황이 오늘의 억울함을 빚어냈고 결국 참다 못한 조선족축구팬의 곡성이 타성 원정경기장에 메아리친것이다. 승패는 병가지상사이다. 하지만 승패에는 꼭 승패의 리유가 따른다. 올해 연변축구의 패배는 우연하지 않은 악성순환의 루적으로 빚어진 필연적 결과이다. 왜 그 어느때보다 자금유치가 만족스러운 올해에 축구단이 함몰했을가? 이 결과는 돈이 구단의 승패를 좌우하고 운명을 결정한다는 편파적 인식에 내린 “축구법관”의 준엄한 심판이 아닐수 없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구단에 더 많은 돈을 안겨줄것인가를 고민할것이 아니라 어떻게 축구 전반 계통 공사에  긍정적에너지를 확실히 주입할것인가를 놓고 토론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축구단의 투혼과 부진, 승격과 강등은 연변의 축구인식에 대한 그대로의 반영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50년전 연변축구가 갑급련맹전에서 챔피언을 따낸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 당시 우리 고장이 구단건설, 교정축구의 보급, 기업축구의 활성화, 축구인구의 육성 등 제반 축구발전의 면면에서 축구계통공사를 정확히 해독한 필연적 결과가 연변축구의 빛나는 성장으로 이어진것이다. 오늘날 연변축구의 생태환경은 저질이다. 축구발전법칙이 시장경제의 부풀려진 삐뚠 시각에 쇄도당하고 구단의 정신력, 결집력이 휘청거리고 프로축구가 신음하면서 축구고향의 매력적인 전통이 퇴색하고 멍들어가고있다. 학생이 거의 없어 도산위기를 맞는 각 현, 시 체육학교, 훈련장도 없어 떠돌이훈련을 하는 주체육학교 학생들, 훈련장과 헬스장도 없는 연변구단, 전문적 축구감독이 없는 연변의 각 중소학교, 사라진지 오랜 기업축구, 선수능력점검 전문시스템과 외적용병 인입관리체계가 부실한 축구구락부, 선수들에 대한 감독의 과학적인 관리가 전무한 구단, 삭막해가는 축구팬응원열기와 하락세를 긋는 축구인구… 연변 현재의 축구생태 현주소이다. 그 중심에는 구단이 아니라 상급 지도층이 있다고 생각한다. 연변축구생태의 영원한 변수는 지도층의 인식이다. 다시 말하여 연변축구의 운명은 지도층의 인식에서 매듭지어진다. 연변팀 강등을 두고 신화통신은 “오늘밤은 연변축구를 괴로와한다”는 제목으로 이렇게 쓰고있다— “오늘날 연길시는 이미 중국에서 가장 행복감이 넘치는 도시의 하나로 되고있다 …2012년, 연길시는 인당 사회소비품소매액에서 상해마저 따돌렸다. 2014년 연변축구단은 3만여개 좌석을 갖춘 홈경기장에까지 ‘입주’해 들어갈수 있게 되였다… 문제는 이런것이 연변축구 쇠락을 잠재울수 없다는데 있다. 참신한 소학교의 운동장에서는 그제날 떼를 지어 진창에서 뛰여다니던 조선족소년들마저 보기 힘들다…” 우리 모두가 심사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력대 자치주 지도층은 종래로 축구를 연변의 자랑으로 대해오면서 중시와 지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변팀의 강등이 제반 연변축구계통공사의 구석구석에서 생긴 허다한 문제점의 필연적인 결과에서 기인된것이라고 할 때 연변축구에 대한 지도층의 새로운 인식전환은 필수적일수밖에 없다. 축구가 연변에서 단순한 스포츠가 아님은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연변구단과 우리 모두에게는 지금 분명히 차거운 겨울이 닥쳐왔다. 하지만 겨울이 왔는데 봄이 멀손가? 이제 차디찬 한파로 우리의 무모하게 뜨거웠던 화를 식히고 리성을 되찾으면서 밑바닥부터 차분히 점검하여 본래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새봄은 우리에게 결코 린색하지 않을것이다. 연변일보 2014년 11월 4일자  
33    축구격정문화 만들기 댓글:  조회:4009  추천:1  2014-03-10
  1992년이다.텔레비죤방송국으로의 전근은 나에게 연변축구와의 인연을 새롭게 보듬을수 있는 전기를 맞게 하였다. 이때에 중국축구를 호령하던 연변 제1대 축구 스타들은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중국축구의 왕자로 군림하던 연변축구는 시장경제의 도래에 따른 중국 프로축구의 전면부상과 더불어 삐꺽거리고 덜컹거리며 연변의 지존을 지키기 위한 곤혹스런 대결에서 간거하게 버티면서 힘든 려정을 소화하고있었다. 연변축구는 저조기 를 걷고있었다. 1993년, 연변축구 희망의 불씨가 반짝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변축구팀이 전면공격, 전면방어의 참신한 전술로 국내 강호들을 누르며 전국운동회 5등의 성적을 따내여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하고 연변사람들에게 기쁨을 선물한것이다. 전국무대에서 보여준 연변축구의 “깜짝쇼”를 TV방송의 “깜짝쇼”로 포용하여 연변축구의 새로운 격정을 터뜨릴수는 없을가? 나와 방송인들의 공통된 야심이였다. 드디여 60여명의 전문인원을 고도로 결집시키고 방송전반의 중점장비를 동시에 일체식운전으로 가동시킨 《집단합동작전》에 의해 TV현지생방송프로 “장하다, 백두호랑이”대형종합야회가 TV스튜디오에서 성황리에 막을 연다. tv사상 처음으로 되는 축구콘서트는 새로운 풀레이를 구사하여 일궈낸 연변축구단의 “탐구적인 노력”과 tv기능에 대한방송인들의 “대담한 시도”의 융합으로 뽑아낸 격정의 산물이라 할수 있었다. 야회생방송이 아슬아슬한 위험 고비를 재치있게 소화하면서 성공의 막을 내리자 스튜디오 현장에서 방송인들과 스포츠인들 그리고 관객들이 서로 얼싸안고 감동창출의 200분이 몰고온 격정의 순간을 마음껏 만끽하던 그때 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게 밟혀온다. 연변tv는 이 야회생방송을 통해 축구단과 연변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지게하고 연변축구로 연변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불씨를 심는데 크게 일조 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게 되였다. 이번 콘서트는 나에게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게임의 볼거리로부터 연변의 지존을 살리는 격정의 문화로 업그레드시킬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아내게 하고 축구는 연변의 영원한 주제라는 점을 깨닫게 한 과당이였다. 40여년 전 연길공원경기장에서 연변 제1대 축구팬동네에 의해 눈을 뜬 천진한 축구격정이 40여년 후 한차례 tv콘서트를기획하면서 격정문화라는 축구리념의 언덕을 톱아오르게 된것이다. tv스포츠부서의 창설과 “스포츠 대행진”프로그램의 출범은 이같은 맥락에서 현실화되였다. 따라서 tv중계차의 자체제작에 힘입은 렬악한 중계방송장비의 스톱으로 연변팀의 홈장경기 생방송의 질적도약이 이뤄지면서 격정의 문화만들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런 가운데 연변축구가 단일한 스포츠게임 범주를 벗어나 문화, 경제와의 접목으로 현대축구발전루트에 들어서야함을 시사하는 사건이 터진다. 1996년 3월 29일 연변축구구락부 회원협회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집체호시절을 출발로 주안의 여러부문과 단위를 전전하는 동안 줄곧 아마츄어축구선수로 그라운드에서 뛴 경륜, tv방송의 영향력으로 연변프로축구에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으려는 나의 작은 실천 때문이였을가? 초대회장에 뜻밖에도 내가 선임된것이다. 그해 연변(현대)구단은 중국 축구의 여러가지 병페와 비리가 로골화되던 전국 갑A시즌경기에서 부진의 악몽을 거둬내지 못하는 안타까움 을 연출하고있었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연변사람들의 광적인 열망이나 뜨거운 사랑, 축구고향의 매력은 조금도 변한게 없었다. 소박한 열망의 화신인 자연발생적 연변축구팬동네를 랑만과 리성이 잘 복합된 연변축구팬 현대부락으로 키우며 시장화체제하에서 연변구단과 광범한 축구팬들이 공생 공존하는 량호한 환경구축을 급선무로 하는 협회의 행동방침이 가동된다. 홈장구장의 관전문화 달구기, 구단발전과 재기관련 간담 회와 tv지상토론의 개최, 구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각종 이벤트 가동, 대중축구운동을 살리기 위한 “협회컵” 축구경기의 발족… 협회지도층을 결속한 거물급 유명인사들에 의해 협회의 리더십은 활약상을 보여주었고 축구라는 이 격정문화는 tv문화와의 만남으로 기지개를 켜게 되였다. 연변일보 3월 9일자  
32    민족정체성 지키기 댓글:  조회:3809  추천:1  2013-11-22
  이주초기 조선족사숙(서당)의 인상적인 력사사진 한폭과 마주하고있다 ---- 초가집마루 지게문 앞에 두터운 책을 펼쳐놓고 근엄하게 좌정해있는 정자관(程子冠)을 쓴 훈장, 그 량옆에 자못 진지한 모습으로 무릎 꿇고 정렬해 앉은 초라한 행색의 어린 학도들… 백여년전의 굉장히 오래된 색바랜 사진이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우리 민족 이주민들의 무서운 집념이 그 어떤 화려한 제스처가 아닌 살아 숨쉬는 감동의 메시지로 찬란히 다가온다.19세기 중엽에 연변지역에만 이같은 조선족서당이 116개에 달하면서 20세기초 조선족근대교육으로 전향하는 세기적 발판을 마련했다고 하니 조선족의 구식서당교육이 중국 조선족 교육은 물론 과히 중국 조선족 정체성 형성의 효시라고 할만하지 않을가 ? 필자는 이 사진을 대하면서 그 어려운 여건에서 우리 민족 선인들이 간직한 철석같은 교육숭상리념과 올곧은 문화전통 계승의지에 머리가 숙여지는 한편 오늘날 우리가 “민족대이동”의 진통속에서 민족언어문자의 상실과 민족정체성의 실각을 막기 위한 자세와 노력이 과연 우리 선인들한테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자부할수 있을지 자성의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언어문자는 민족정체성의 근간이다. 언어문자의 상실이 민족정체성의 훼멸로 이어진다는 도리를 우리는 하북성 청룡현과 료녕성에 산재해있는 박씨촌의 민족적 비극에서 이미 터득하고있는바이다. 그런데 이런 비극이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사실 연변의 민족교육, 민족문학, 민족신문출판 등 핵심문화터전에서 위험신호가 깜빡이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됐고 이에 따른 우리의 고민도 심각하다. 조선족언어문자만 살면 조선족의 정체성은 지켜지고 연변의 성채가 반듯하면 조선족사회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연변이 중국조선족공동체의 구심점, 조선족문화의 메카로서의 좌표와 역할로 지난 반세기 남짓한 세월 조선족사회를 결집시켜왔다면 오늘날 연변은 더구나 리성화한 카리스마로 21세기의 곤혹을 헤쳐나가는 조선족사회의 진두에 서야 할 때이다. 필자는 올해 연변에서 기획하고 주도하는 두차례의 민족언어문자 살리기 관련행사와 토론에 참여하면서 위기의식과 민족적사명감에 힘입은 우리 민족 지성인들의 출로모색열정에서 새로운 희망을 읽게 되였다. 출판은 민족언어문자와 민족정체성 여부를 판단할수 있는 풍향계이다. 올해 자치주 신문출판행정이 재발족시킨 중국 조선족 출판문화대상 시상식은 조선족사회에 타이틀이 큰 문화행사 하나가 더 생긴것이라는 의미를 넘어 민족언어문자의 근간을 지키고있는 중국 조선족의 특수한 무명영웅들을 위한 “훈장수여식”이라는데 포인트를 두고있다. 묵직한 공로패를 받아안고 흥분해마지 않는, 전국각지에서 모여온 민족출판영예의 수상자들 표정에서 필자는 자치주 신문출판국이 민족언어문자 지키기라는 력사적 터전에 뿌린 지성이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되리라는 기대감으로 가슴 뜨거웠다. 모든 사람에게 관련있는것은 모든 사람에 의해서만 해결된다. 민족언어문자 살리기나 민족정체성 지키기는 사회지성인들과 몇몇 정부부문이나 기관단체의 전매특허권이 아니라 조선족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심전심 노력에 힘입은 전 사회적 거사로 생활화됐을 때만이 뜻을 이룰수 있다. 자치주조선어문사업위원회가 “조선언어문자의 날”을 창출하고저 하는 깊은 뜻은 조선족사회대변혁의 시련속에서 우리언어와 문자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사회화하자는데 있다고 느낀다. “로인의 날”이 조선족의 로인존중례의문화의 업그레드판일 때 “조선언어문자의 날”에 힘입어 조선족언어문자를 살리고 민족정체성을 지키자는 소망의 홰불을 타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주당위 장안순서기는 어느 모임에서 연변의 특색은 “조선족”이라고 명쾌하게 귀납하였다고 한다. 주당위서기가 지적하는 “조선족”은 결코 된장, 김치, 한복으로 특징지어진 표상적인것이 아니라 조선언어문자라는 이 기본원소로 공동체를 이루고있는 조선족정체성일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일전에 도문시 월궁가두에서 한족들을 대상하여 “조선어수업시간”을 개강했다는 보도를 사진과 함께 읽었다. 조선어를 강의하는 조선족처녀강사의 자세도 진지했지만  긴 탁상량옆에 빼곡히 정렬해 앉은 한족아줌마들의 수강표정 또한 장난이 아니였다. “한족들의 조선어수업시간”보도에서 받은 감동은 필자가 본문의 앞에서 언급한, 100여년 전 조선족 사숙의 력사사진에서 받았던 감동에 못지 않았다. “한족들의 조선어수업시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지만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조선족의 언어문자 살리기, 조선족정체성 지키기는 누가 대신해주는게 아니라 조선족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점이다. 연변일보
31    해란강의 의미 댓글:  조회:3528  추천:4  2013-10-23
  해마다 10월이면 초록빛으로 창창히 펼쳐졌던 평강, 서전벌이 어김없이 황금빛으로 느긋하게 변해간다. 그런 가운데 해란강은 계절의 바뀜과는 상관없다는듯 그저 묵묵히 자기 흐름에 련련할뿐이다. 필자는 요즘 모아산에 올라 조금씩 달라지고있는 해란강의  모습을 조감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저 멀리 화룡시 증봉산 동북쪽협곡에서 발원하여 크고 작은 물줄기들과 합류하면서 이 세상 모든 풍운의 변화를 조용히 감내하고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주며 굽이굽이 흐르던 해란강이 어느때부터인지 고갈의 위험에 로출되면서 군데군데 강바닥이 드러나고 어떤 구간은 강이 아니라 시내물로 변해가는 안타까움이 연출되고있다. 귀맛 좋은 여울소리 대신 가냘픈 신음소리를 뱉어내며 병들어가는 해란강의 모습에 어쩐지 인간세태의 음영이 그대로 비쳐져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그런데 고갈의 위기에 놓였던 해란강이 부활하는것 같은 조짐이 움씰거린다. 해란강 중하류에 땜들이 구축되여 원래의 강폭에 강물이 차오르면서 흉물스럽던 강바닥들이 좀씩 자취를 감춰가고있다. 무분별한 해란강자원 략탈식개발에 제동이 걸린때문인지 해란강의 흐름이 유연해진것 같다. 거기다가 해외나 타지방으로 나갔던 농민들이 해란강류역 삶의 터전을 찾아 속속 귀농하는 반전의 행보가 시작되고있다는 언론들의 보도에 귀가 솔깃해진다. “떠났던 농심 또다시 고향마을로”쏠리면서 “힘들더라도 이 땅 지키렵니다”, “평생 농사군으로 살아갈겁니다”라고 결연의 의지를 내비치는 농부들의 자세가 가슴 뜨겁게 맞혀온다. 해란강이 활기를 되찾으니 귀농행렬이 이어지는것인지 아니면 귀농행렬이 이어지니 해란강이 부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족은 해란강과 숙명적으로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해란강은 조선족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150년 세월을 함께 한 력사의 산 증인이다. 2934평방킬로메터의 해란강류역은 조선족의 넋이 살아 숨쉬는 력사의 현장이다. 민족교육의 효시 서전서숙의 랑랑한 글소리를 반겼던 해란강,  “3.13”반일항쟁의 함성이 우렁찼던 해란강, 청산리대첩의 총성이 메아리쳤던 해란강, 일제의 조선족민중 대학살참안의 붉은 피로 물들여졌던 해란강, 전국 첫 새벽집단농장의 탄생을 환호했던 해란강… 파란만장한 조선족력사의 산 증인인 해란강에 대한 우리 민족의 애정은 특별할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피와 땀으로 얼룩진 조선족의 력사는 해란강의 흐름을 지키기 위한 전부후계(前仆后继)의 력사가 아닌가 한다. 오랜 세월 해란강은 조선족들에게 명실공히 고향의 상징으로, 어머니와 같은 거룩한 존재로 각인돼왔다. 세월의 흐름은 많은것을 퇴색시키지만 해란강만은 퇴색되여서는 안된다. 특히 우리 후세들에게는 도도히 흐르는 어머니 강으로서의 해란강을 물려주어야지 고갈돼가고 병들어가는 해란강을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조선족에게 해란강은 토템과도 같은 존재이다. 오늘날 다문화 다원화의 현대사회에서 해란강은 조선족의 상실돼가는 민족개성, 혼탁해지는 민족정기를 재기시키며 조선족의 원초적인 참된 정신품성을 지켜나가고 깊이있는 민족자각의식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숭엄한 가치원소라고 느낀다. 엄청난 투자에 힘입어 아름답게 변신하면서 축복받는 부르하통하를 바라보며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한 해란강의 초췌한 모습에 마음 한구석은 그냥 무겁기 짝없다. 소는 풀을 먹고 우유를 바친다. 가끔 필자는 해란강이 소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 젖줄기 같은 생명수를 이 류역 모든 생령들에게 공급해줄뿐 아무런 바람 없이 묵묵히 갈길만 가는 해란강, 그럼에도 인간은 간단없이 해란강을 괴롭히고있지 않는가? 필자가 본문 서두에 밝힌 해란강의 변화조짐은 서전벌 한구간에 한정된 그야말로 빙산일각의 미세한 움직임에 불과하다. 하지만 연룡도 일체화에 힘입어 변화의 템포가 빨라지리라는 확신에는 의문이 없다. 해란강발원지로부터 부르하통하와 합류하는 145킬로메터 전 구간이 “어머니강 살리기”천자호공사에 편입되면서 떼목이 흐르던 해란강 옛모습 복원의 거창한 드라마가 연출될 가슴 벅찰 그날이 기대된다. 부활하는 해란강, 활력으로 넘치는 해란강에 의해 조선족의 삶은 보다 풍요로와질것이며 조선족의 정기는 새로운 재기를 맞으리라 확신한다. 연변일보 10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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