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명장면】벼슬에 임하는 공자의 자세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자왈 도천승지국 경사이신 절용이애인 사민이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가 나라를 이끄는 공직자라면 마땅히 자신의 소임을 중히 여기고 백성들이 그를 믿을 수 있게 한다.
물자를 아끼고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백성을 부릴 때는 순리를 따른다.
-‘학이’편 5장
1. 공자, 벼슬을 얻다
공자와 더불어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등은 인류 최고의 성인으로 꼽히는 사람들이다. 공자는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관리 생활을 경험했다. 성인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를 생각하면 관리 생활은 조금 특별한 ‘경력’이 아닐까 싶다. 과연 공자가 몸소 겪은 ‘벼슬살이’는 어떠했을까? 관리, 나아가 정치라는 직업 체험이 그의 삶과 사상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나, 이생이 전해들었던 장년의 공자는 열렬히 벼슬을 원했다. 누군가의 벼슬을 사는 것을 천분으로 여긴 골수 사인(士人)의 시기였다. 학숙의 제자들에게도 열과 성을 다해 사관(仕官)의 길을 가르쳤다. 군자가 되어 벼슬을 얻어 인(人)과 민(民)을 더 높은 인격의 사람-선생님은 신분이 낮은 인민도 수양을 통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본 중국 최초의 지식인이다-으로 이끄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토록 추구하는 벼슬도 명분이 없는 것이라면 그 또한 가장 경멸하는 바이기도 했다. 군자를 자임하는 공자에게 벼슬이란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이 아니면 안되는 그 무엇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40대가 시대와의 불화로 일관했던 것은 정당한 방식으로는 벼슬을 얻을 수 없는 시대였다는 겁니다. 불혹(不惑)은 그 유혹을 견뎌낸 자신에게 수여한 훈장이고요.”
벼슬을 하고 싶은데, 주겠다는 쪽은 불의(不義)한 세력이었다. 그렇게 세월만 흘러 노인 반열(당시에 나이 50은 장로를 의미했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운(時運)이란 것이 그에게도 찾아왔다.
“선생님이 그토록 권도(權道)를 나누길 꺼린 양호 정권이 자멸하고, 새로운 정치 공간이 열린 겁니다. 겨우 정권을 회복한 귀족들은 때묻고 불신받는 자신들을 대신해 민심을 수습해 줄 참신한 신진세력이 필요해졌습니다.”
귀족들의 눈에 공자는 그 ‘신진그룹’의 대표적 인물이었고, 공자 역시 기꺼이 ‘시대의 부름’을 받아들였다.
‘가슴 속에서만 그려왔던 새정치의 청사진을 세상에 펼쳐보일 때가 왔다.’
공자가 전율처럼 느낀 ‘지천명’(知天命)은 이 출사(出仕)의 선택과 결코 무관할 수 없었다. 이후 그가 걸어간 환로(宦路)를 따라가보면 공자가 기꺼이 받아 안은 이 천명이 공자 자신의 영달만을 의미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안락을 꿈꾸는 사람은 선비라고 할 수 없다(士而懷居 不足以爲士矣).-‘헌문’편 3장①
벼슬길에 나간 공자는 일개 관리에서 어느덧 ‘정치가’로 도약할 때에 이르자, 안주(安住) 대신 개혁의 험로를 선택했다. 망명은 그 험로의 결과이자 새로운 고난의 출발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출사는 출세의 길이 아니라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웅지(雄志)의 깃발을 든 것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영화 중에서
2. 공자가 맡은 벼슬
공자는 서기전 501년 그의 나이 51살 때 관직에 나가 56살에 국외로 망명할 때까지 약 5년간 벼슬살이를 했다. 공자는 이 기간동안 중도재(中都宰·중도라는 읍의 읍장)라는 지방장관급 직책으로 시작하여, 건설부장관에 해당하는 사공(司空)을 거쳐 오늘날의 사법부 수장에 해당하는 사구(司寇)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일설에는 대사구(大司寇)가 되어 국정을 대리하기도 하였다.( ‘공자세가’)
공자의 관직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나, 이생이 들은 바는 이러하다. 공자는 중도재로 약 1년간 일하다가 임금이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공을 세워 사구로 승진했다. 그런데 이때 공자가 임금에게 받은 사구의 직위는 조정대신인 사구가 아니라 공실(公室) 직할령의 사법권을 담당하는 사구직이었다. 당시 조정 3대 요직인 사마(司馬·국방부장관), 사구, 사공은 귀족 가문의 세습직이었다. 사공직은 삼환의 한 축인 맹의자가 맡고 있었고, 사구 자리는 계손씨와 가까운 종족인 장(臧)씨 가문이 세습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자가 사공과 사구직을 잇따라 맡았다는 것은 당시 노나라 실정을 잘 몰랐던 후세 사람들의 와전일 뿐 사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공자가 사공이 되었다는 설도 공자가 중도재로서 사공인 맹의자를 보좌해 수행한 어떤 사업(중도와 가까운 지역에 있던 공실묘지에서 벌인 대규모 토목 공사일 가능성이 크다.)에 근거해 생겨난 전설이었을 개연성이 높다.② 또 춘추시대에는 ‘대사구’라는 벼슬이 없었는데도 사마천이 ‘사구 중에 가장 높은 사구’라는 의미로 "대사구 운운"한 것 역시 잘못된 전승을 반영한 사료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5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공자의 관직생활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중도재에서 사구에 이르는 2~3년의 목민관 시절이다. 공자는 중도를 잘 다스리고, 예교전문가로서 국제회의에 참가해 공을 세워 임금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목민관으로서 예법을 정비하고 사구가 되어 민생을 보살폈다. 사구 또는 대사구로서 보낸 후반부는 임금을 보좌해 국정개혁을 시도한 ‘정치의 시기’였다. 참주(僭主)의 권한을 삭감하고 군주권(君主權)을 부흥시켜 궁극적으로는 귀족 대신 사대부 관료가 중심이 되는 군주정을 꿈꿨다. 원대한 그 ’플랜’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 시기는 개혁가의 면모가 여실했던 ‘정치적 공자’의 절정기였다.
3. 인간 공자의 황금시대
세속적 의미에서 이 때가 인간 공자의 황금기였다. 한미한 무사(武士)의 아들로 태어나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성장한 사람이 조당에서 경대부(卿大夫) 귀족들과 나란히 국정을 논하는 지위에 이르렀으니, 지금이나 당시나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할만한 ‘출세’였다. 특히 일정 규모의 학단을 이끌고 있는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포부를 벼슬을 통해 현실에 적용해 볼 기회를 가졌고, 그 상당부분이 성공적-귀족들의 반격이 있기 전까지는-이었으니 개인적으로도 영광의 시기가 아닐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했던 때였다. 상당한 규모의 녹봉은 자신 뿐 아니라 공문(孔門) 전체에 물질적 여유와 정신적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가난한 제자에게 많은 봉급을 줄 수 있게 된 공자의 흐뭇한 심정을 상상해 보라.
제자 원헌이 공자가 준 녹봉이 너무 많다며 사양하자 공자가 말했다. “사양하지 말아라. 너무 많다고 여겨지면 형편이 어려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 되지 않겠느냐?(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毋 以與爾隣里鄕黨乎)” -‘옹야’편 3장③
집에 불이나 적지 않은 재산을 잃었을 때도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마굿간에 불이 났다. 선생님께서 조정에서 돌아와 이를 듣고 ‘사람이 다쳤느냐’고 물으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廐樊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 ‘향당’편 12장④
당시에 말 한필은 노예 몇 명의 몸값에 해당하는 큰 재산이었다. 높아진 신분에 존중과 존경이라는 명예 급부도 따랐다.
공자도 그런 자신이 뿌듯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은근히 새어나오는 기쁜 감정을 감추지 못해 그만 제자들에게 핀잔을 들을 정도였으니….
공자가 나이 쉰여섯(정확히는 쉰다섯이다)에 대사구로서 상국의 일까지 대리하게 되자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이 있었다. 문인들이 물었다. “듣건대, 군자는 화가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이 찾아와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만…” 공자가 겸연쩍게 말했다. “그런 말이 있지. 그러나 사람이 귀해지는게 즐거운 때도 있지 않을까?” - ‘공자세가’
공자도 사람인 이상, 벼슬이 국정을 대리하는 지위에까지 이르렀는데 어찌 소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오늘을 보았더라면, 하는 감상이 어찌 일지 않겠으며, 미천한 시절을 겪어본 사람이 노력을 다하여 지위를 얻은 감회가 어찌 남다르지 않겠는가? 공자도 한 사인(士人)으로서 적어도 한번쯤은 그런 기분에 젖어보았을 것이라고 나, 이생은 생각한다. 그렇다해도 그런 기분을 남의 눈에 띌 정도로 드러낸다는 것은 공자같은 대인격에게는 흠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어렵게 얻은 출세를 대의를 위해 던져버리기도 했기에 그 뜻밖의 흠결은 ‘성인’ 공자의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예외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이리라.
4. 목민관, 공자
나, 이생이 고제들로부터 들은 말을 종합하면, 공자는 맹의자가 집정인 계환자에게 추천하는 방식을 통해 벼슬길에 나갔다. 맹의자는 쌍둥이 동생 남궁경숙과 함께 어릴 때부터 공자의 문하에서 배웠다. 양호의 난을 평정할 때 맹손씨의 수장으로서 큰 공을 세웠다. 이때문에 삼환 중 가장 세력이 작은 집안의 젊은 수장임에도 발언권은 상대적으로 높았을 때였다. 계환자는 그런 맹의자를 무시할 수 없어서 공자의 등용을 수락하기는 했는데, ‘맹씨 사람 ’인 공자에게 선뜻 조정의 대부 벼슬을 주기는 꺼름칙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조정과 귀족들에 대한 공자의 처신도 살펴볼 겸 임금인 정공에게 공실 직할령인 중도재 자리에 공자를 천거했던게 아닌가 싶다. 중도(中都)는 현대의 중국 산동성 문상현 부근 지역으로, 가까운 감 땅에 공실 묘역이 있었다. 중도는 아마도 공실 묘역을 관리하면서 유사시에는 수도의 기능도 맡는 공실의 본읍 같은 도시로 추정된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중도재는 공자 자신이 내심 원했던 벼슬일 가능성도 있다. 당시 공자는 정치적으로 삼환의 참주정치를 혐오하고 있었으므로, 삼환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인 지방직에 있으면서 임금의 ‘근신(近臣)’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벼슬을 공자도 내심 환영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공자가 나중에 사구가 되자 공실묘역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하여 정공과 정치적 공감대를 이룬 뒤 삼환을 상대로 본격적인 정치개혁에 나선 것을 보면 이 시나리오는 나름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공자는 중도재가 되자 그동안 자신이 준비해온 정책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공자는 중도의 재가 되자 여러 제도를 만들었다.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례 지내는 절차를 제정(制爲養生送死之節)했다. 어른과 아이는 먹는 것을 다르게 하며(長幼異食), 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할 일을 달리 하며(强弱異任), 남녀는 각기 길을 달리 다니도록 하며(男女別途),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게 하며(路無拾遺), 그릇에 조각을 하거나 거짓되게 만들지 못하게(器不雕僞) 하였다. - ‘상로’
중도의 백성은 공실의 영지에서 농사를 짓는 일반 백성과 노역을 담당하는 야인과 노예계층이 있었다. 공자는 이들 신민(臣民)들을 예로써 교화한다면 더 높은 수준의 공동체를 만들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는 맨 먼저 사람의 예, 즉 산 사람을 위하고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도리를 가르쳤다. 어른을 공경하고 노약자를 보호하게 하였으며, 남녀를 구별하여 풍속의 문란을 막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아 이웃간에 믿음을 쌓는 것이 더 큰 이익임을 알게 했다. 기물(器物)에 사사로운 표시를 할 수 없게 하여 백성들 사이에 차별과 파당이 생겨나는 것을 경계했다.
나, 이생이 그때의 일을 고제들에게 상세히 물었다.
“이런 정책이 바로 성과가 있었나요?”
“어떤 사람들은 ‘서쪽 지방 제후들까지 선생님의 정책을 본받았다’⑤고 말하지만, 1년여란 짧은 재임 기간을 생각하면 이는 부풀려진 말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일찌기 노나라에서 지방수령이 이와같이 예(禮)에 입각한 교화 정책을 펼친 적이 없었으므로 상하의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의 높은 식견에 놀란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5. 선비가 벼슬을 얻고자 할 때
공자는 벼슬을 시작할때부터 자신이 세운 명분과 원칙을 잊지 않았다. 정당하지 않은 벼슬살이는 진실로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한창 벼슬할 나이를 벼슬을 거부하며 보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그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공자가 그 때의 의지를 단호하게 표현한 말이 있다.
세상에 도가 있을 때는 몸을 드러내고, 세상에 도가 사라지고 없을 때는 몸을 숨긴다.(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태백’편 13장⑥
주변 사람들이 벼슬운이 없다며 때를 만나지 못하는 공자를 안타까워하자 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그 자리에 서야 하는 지를 걱정합시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탓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를 사람들이 인정하게 할지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 ‘이인’편 14장⑦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당부했다.
모름지기 군자란 자기의 능력없음을 괴로워하는 법이지,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따위의 사람이 아니다.(君子 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 ‘위령공’편 18장⑧
후세의 맹자는 이 시절의 공자를 염두에 두고 선비가 어떤 태도로 벼슬에 임해야 하는 지를 알기 쉬운 비유로 설명한 적이 있다.
“남녀가 서로 짝을 맺는 것은 인간이라면 모두 원하는 바이오. 그렇다고 해서 부모와 중매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을 뚫어 서로 들여다보고 담장을 넘어 서로 쫓아다니는 일은 부모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기는 바이오. 옛사람들이 벼슬을 살고 싶어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정당한 도리에 따르지 않는 것을 싫어하였소. 정당한 도리에 따르지 않고 벼슬하러 나가는 것은 구멍을 뚫는 따위나 다름없는 일이오.” - ‘등문공 하’ 편.
6. 벼슬에 임하여
공자가 중도재에 이어 사구의 자리에 오르자 공문의 수많은 문도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아침마다 조정에 나가는 공자의 모습은 공문의 미래가 활짝 열렸음을 상징하는 듯 했다. 공문의 연찬회도 자연스레 벼슬살이에 관한 실질적인 궁금증들이 자주 주제가 되었다. 그때를 전후하여 공자와 문도들이 나눈 출사의 도에 관한 문답들이 어록에 남아 전하고 있다.
“벼슬하는 자로서 맨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정신(正身)이다. 자기부터 바르게 하는 것이다. 자기를 바르게 닦지 않고서 어떻게 남을 바르게 이끌 수 있겠느냐. (목민관으로서) 그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그 몸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자로’편 6장⑨
진실로 그 몸가짐이 바르면 행정을 펴는데 무슨 망설임이 있겠으며, 자기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어찌 다른 사람을 바르게 이끌수 있겠는가.(苟正其身矣 於從政乎 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 何) - ‘자로’편 13장⑩
“벼슬하는 자의 자세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천승의 나라를 이끌고자하는 공직자라면 마땅히 자신의 소임을 중히 여기고 백성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물자를 아끼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백성을 부릴 때는 때를 살펴 해야 한다.(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학이’편 5장⑪
“무엇으로 백성을 이끌어야 합니까?”
예(禮), 의(義), 신(信)이 아니겠느냐. 윗 사람이 예를 좋아하는데 백성들이 어찌 공경하지 않으며, 윗 사람이 정의를 좋아하는데 백성들이 어찌 본받지 않겠으며, 윗사람이 믿음을 보이는데 백성들이 어찌 마음으로 따르지 않겠느냐. 무릇 이와 같이 하면 사방에서 백성들이 자식을 포대기에 싸업고 찾아올 것이다. (上 好禮則民莫敢不敬 上 好義則民莫敢不服 上 好信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則四方之民 襁負其子而至矣) -‘자로’편 4장⑫
“임지에 있을 때의 자세를 말씀해 주십시오.”
벼슬을 가진 자는 백성의 눈과 귀 속에서 사는 사람임을 명심하라. 일상 생활에서는 공손하고, 일에 임하여는 정성을 다바쳐라. 다른 사람과 일할 때도 진심을 다하라. 이 세가지는 설사 오랑캐 땅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된다.(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也) -‘자로’편 19장⑬
“어떻게 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까?”
서둘지 말고 작은 이익에 구애받지 마라. 빨리 성과를 내려고 하면 오히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얽매이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니.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 ‘자로’편 17장⑭
“어떻게 해야 과오를 줄일 수 있습니까?”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신중하게 말하면 허물이 적어질 것이다. 많이 듣되 위태로운 것은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신중하게 행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실에 후회할 일이 적으면 벼슬이야 늘 그 안에 있는게 아니겠느냐?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위정’편 18장⑮
“어떻게 하면 벼슬하는 사람답다고 하겠습니까?”
선비는 무엇이 부끄러운 짓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또한 어디가서든 나라를 욕되게 하지 않는다면 가히 벼슬할만 자라고 할 것이다.(行己有恥 使於四方 不辱君命 可謂士矣)
“그 아래 벼슬아치는 어떻습니까?”
안으로는 효자 소리를 듣고, 밖으로는 우애가 깊다고 칭송받는 사람이다.(宗族稱孝焉 鄕黨稱弟焉)
“그 아래도 있습니까?”
말을 바꾸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고지식한 소인이란 소리를 듣기는 해도 차선의 벼슬아치는 될 수 있다.(言必信 行必果 갱갱然小人哉 抑亦可以爲次矣) -이상 ‘자로’편 20장
“함께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이끌어야 합니까?”
누군가와 같이 일할 때는 자신을 늘 돌아보아야 한다. 군자는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 이이고, 소인은 다른 사람을 탓한다.(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위령공’편 20장
일을 하다 잘못이 생기면 자신부터 엄중히 꾸짖고 남의 잘못은 가볍게 질책한다. 그래야 원망이 쌓이지 않는다.(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위령공’편 14장
“부하에게 좋은 상관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군자는 남의 좋은 점을 완성시켜주고, 남의 나쁜 점을 가려준다. 소인은 반대로 한다.(君子 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 反是) -‘안연’편 16장
“선생님은 어떤 사람과 더불어 하고 싶습니까?”
중용을 알며, 말과 행동을 중도(中道)로서 하는 사람을 얻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반드시 뜻이 높아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 절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하고 싶다. 뜻이 높은 사람은 거침없이 나아갈 줄 알고, 절조를 아는 사람은 금도를 지킨다.(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견乎 狂者 進取 견者 有所不爲也)-‘자로’편 21장
“그런 사람과 같은 줄이 되면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군자란 모름지기 자부심을 가지되 그것으로 남과 다투지 않으며, 더불어 함께 일을 도모하되 편을 가르지 않는 자이다.(君子 矜而不爭 群而不黨)-‘위령공’편 21장
“백성이 모두 좋아한다면 좋은 관리가 된 것이지요?”
그럴 순 없다. 고을 사람 중에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자로’편 24장
*영화 중에서
7. 법만으론 선정(善政)을 이룰 수 없다
공자가 사구가 되어 업무를 시작하자, 제자들이 다투어 말했다. “우리 선생님이라면, 무슨 송사든 잘 처결하실 거야.”그 말을 들은 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난들 특별히 다를 것이 있겠느냐. 나는 송사를 잘 판단하는 사람이기에 앞서 송사 자체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고 싶구나.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안연’편 13장
“판관으로서 어찌해야 밝다는 소리를 듣겠습니까?”
옷이 물에 젖듯이 은근히 헐뜯는 말과 뜨거운 물이 살갗에 닿듯이 절박하게 호소하여 오더라도 그가운데 진실을 간파하여 그것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면 밝다고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가히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浸潤之讒 膚受之소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浸潤之讒 膚受之소 不行焉 可謂遠也已矣) -‘안연’편 6장
“법을 집행하는 자리에 오르셨으니 법으로 이끄시렵니까?”
이끌기를 법으로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법으로 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할 수는 있으나 부끄러워 함이 없을 것이다.
이끌기를 덕으로 하고, 가지런히 질서를 세우기를 예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또한 스스로 바른 마음을 갖고자 할 것이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위정’편 3장
“선정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모름지기 백성은 공평한 명분을 가지고 이끄는 것이지, 지도자의 야망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덕있는 지도자는 백성들이 자기의 교화를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면 이미 선정이 아니겠느냐.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태백’편 9장
8. 벼슬하는 자, 마땅히 역사를 두려워하라
선비에게 벼슬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재앙의 근원이다. 무엇이 좋은 벼슬이며, 어떤 자가 훌륭한 벼슬아치인가? 공자에게도 늘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화두였다. 누군가가 공자에게 벼슬아치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바를 물었다면 공자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가 군자라면 마땅히 역사를 두려워 할 것이다.’
말년의 공자에게 손자뻘되는 제자가 있었다. 이름이 증참(曾參)인 그는 뒷날 공자의 학통을 계승하였기에 증자로 존숭되었는데, 그가 한 말이 선생님의 어록에 남아 있다. 벼슬길에 들어선 전후 무렵의 공자 모습을 그대로 닮은 듯하여 여기에서 함께 전한다.
벼슬하고자 하는 선비는 뜻이 넓고 굳세지 않으면 안된다. 맡은 일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정(仁政)을 소임으로 여기는 자이니, 또한 (그 책임이) 무겁지 않겠는가? 죽어서야 비로소 끝나니 어찌 장구한 임무가 아니겠는가?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태백’편 7장
만년의 공자께서 노나라에 돌아와 노나라 사서인 를 편찬했다. 맹자는 그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세상이 쇠퇴하고 정도가 미약해져서 괴이한 학설과 난폭한 행위가 또 생기어, 신하가 제 임금을 죽이는 일이 있고, 자식이 제 아비를 죽이는 경우도 있다. 공자께서 이런 세상을 두렵게 여기시어 춘추를 지으셨는데, 춘추는 천자가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알려고 하는 사람도 이 춘추를 볼 것이고, 나를 책하려는 사람도 이 춘추를 볼 것이다.’ - ‘등문공 하’.
*은 소설 형식을 취하다 보니 글쓴 이의 상상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되었다.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논어를 새롭게 해석해보자는 글쓴 이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돕기 위해 원문을 글 말미에 소개한다. 소설 이상의 깊이 있는 논어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014년 11월호 연재부터 원문보기에 인용할 한글 번역본은 (이재호 정해,솔)와 (배병삼 주석, 문학동네)이다. 표기는 이(논어정의)와 배(한글세대가 본 논어)로 한다. 이밖에 다른 번역본을 인용할 때는 별도로 출처를 밝힐 것이다. 영문 L은 영역본 표시이다. 한문보다 영어가 더 익숙한 분들의 논어 이해를 추가하였다. 영역 논어는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 중국명 理雅各)본을 사용하였다.
***는 편명만 표시하고, 그 외의 문헌은 책명을 밝혔다.
①헌문편 3장
子曰 士而懷居 不足以爲士矣(자왈 사이회거 부족이위사의)
이-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비이면서도 편안하게 거주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선비가 될 수 없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사(士)라면서 ‘편안한 생활(居)’을 염두에 두면, 이미 ‘사’라고 이를 수 없으리라.
L-The Master said, “The scholar who cherishes the love of comfort is not fit to be deemed a scholar.”
②중도의 위치 및 도시 기능에 대해서는 현대의 여러 전문학자들이 다각도로 고증하고 있다. 글쓴이는 중도가 공실의 직할령이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감땅의 공실묘역을 관리하는 업무도 겸했다는 주장을 지지한다.
③옹야편 3장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毋 以與爾隣里鄕黨乎(원사위지재 여지속구백 사. 자왈 무 이여이린리향당호)
이-원사(원헌)가 공자의 가신이 되었는데, 공자께서 봉급으로 곡색 9백을 주니 이를 사양하므로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사양하지 말고, 그대의 이웃 마을과 고을 사람들에게 주도록 하여라.”
배-원사가 선생님의 비서가 되었다. (녹봉으로) 곡식 9백을 주었는데, 사양하였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아서라! (받지 않을 양이면) 네 이웃과 고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무나.
L-Yuan Sze being made governor of his town by the Master, he gave him nine hundred measures of grain, but Sze declined them. The Master said, “Do not decline them. May you not give them away in the neighborhoods, hamlets,
towns, and villages?”
④향당편 12장
廐樊 子退朝曰 傷人乎不問馬(구분. 자퇴조왈 상인호불문마)
이-마구간이 불에 탔는데, 스승께서 조회를 마치고 물러나와 말씀하셨다. “혹시 사람이 다치지는 아니했는가?” 그런 다음에 말에 대해서 물으셨다.
배-마굿간이 불탔다. 선생님, 퇴청하여 말씀하시다. 사람이 상하였느냐?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시다.
(*이재호는 일반적인 독법인 ‘傷人乎, 不問馬’ 대신 ‘傷人乎不, 問馬’로 끊어 읽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L-The stable being burned down, when he was at court, on his return he said, “Has any man been hurt?” He did not ask about the horses.
⑤ ‘공자세가’ 중
(…)“정공은 공자를 중도의 재로 삼았는데, 일년 뒤에 사방의 각 제후들이 모두 공자가 다스리는 방법을 따라했다. 이로말미암아 공자는 중도의 재에서 사공이 되었고, 사공에서 다시 대사구가 되었다.”
⑥태백편 13장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천하유도즉견 무도즉은).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방유도 빈차천언 치야 방무도 부차귀언 치야)
이-천하가 태평하면 나가서 벼슬하고, 천하가 문란하면 숨어서 살아야 한다. 나라가 태평할 때에 가난하고 비천한 생활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가 문란할 때에 부유하고 귀달(貴達)한 생활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배-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는 것. 나라에 도가 있을 적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움이요, 나라에 도가 없을 적엔 넉넉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움이니라.
L-When right principles of government prevail in the kingdom, he will show himself; when they are prostrated, he will keep concealed. When a country is well-governed, poverty and a mean condition are things to be ashamed of. When a country is ill- governed, riches and honour are things to be ashamed of.
⑦안연편 14장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자왈 불환무위 환소이립 불환막기지 구위가지야)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벼슬자리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벼슬자리에 설 수 있는가를 걱정할 것이며,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남이 나를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자리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서지 못하는 까닭을 근심하라.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알 수 있게 되기를 구하라.
L-The Master said, “A man should say, I am not concerned that I have no place, I am concerned how I may fit myself for one. I am not concerned that I am not known, I seek to be worthy to be known.”
⑧ 위령공편 18장
子曰 君子 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자왈 군자 병무능언 불병인지불기지야)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기에게 재능이 없는 것을 근심하고, 남이 자기 재능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지 않는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병통으로 여길 뿐,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은 병통으로 여기지 않느니.
L-The Master said, “The superior man is distressed by his want of ability. He is not distressed by men’s not knowing him.”
⑨자로편 6장
子曰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자왈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부종)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이 바르게 행동하면 백성들에게 명령하지 않아도 명령이 시행되고, 자기 자신이 바르게 행동하지 못하면 백성들에게 명령하더라도 그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그 행실(身)이 바르다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질 터이나, 그 행실이 바르지 않다면 명령한들 좇지 않으리라.
L-The Master said, “When a prince’s personal conduct is correct, his government is effective without the issuing of orders. If his personal conduct is not correct, he may issue orders, but they will not be followed.”
⑩자로편 13장
子曰 苟正其身矣 於從政乎 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자왈 구정기신의 어종정호 하유 불능정기신 여정인하)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자기 몸을 바르게 한다면 정사를 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이와 반대로) 자기 몸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정녕 자기 행실이 올바르다면 정치에 종사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또 제 행실도 바로잡지 못하는 주제라면 남은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L-The Master said, “If a minister make his own conduct correct, what difficulty will he have in assisting in government? If he cannot rectify himself, what has he to do with rectifying others?”
⑪ 학이편 5장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자왈 도천승지국 경사이신 절용이애인 사민이시)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천승(제후)의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 일을 신중히 처리하면서 백성에게 믿도록 하며, 나라의 제반 용도를 절약하고서 백성을 사랑하며, 백성을 사역할 적엔 제 때에 맞게 해야 할 것이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천승의 나라를 다스림에는 일을 어렵게 여기고 미쁘게 하며, 쓰임새는 맞춤하게 하고, 사람을 아끼며, 때에 맞춰 백성을 부려야 하느니.
L-The Master said, “To rule a country of a thousand chariots, there must be reverent attention to business, and sincerity; economy in expenditure, and love for men; and the employment of the people at the proper seasons.
”
⑫자로편 4장
(…)上 好禮則民莫敢不敬 上 好義則民莫敢不服 上 好信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則四方之民 襁負其子而至矣.(상 호례즉민막감불경 상 호의즉민막감불복 상호신즉민막감불용정. 부여시즉사방지민 강부기자이지의.)
이-윗사람이 예절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리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성심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방에 있는 백성들이 어린애를 포대기에 싸서 등에 지고 모여들 것이다.
배-윗 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이 공경하지 않을 리 없고, 윗 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을 리 없으며, 윗사람이 믿음을 좋아하는데 백성이 마음 주지 않을 리 없다. 대저 이렇게만 하면,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애는 들쳐업고 세간은 짊어지고 몰려들 것이다.
L-If a superior love propriety, the people will not dare not to be reverent. If he love righteousness, the people will not dare not to submit to his example. If he love good faith, the people will not dare not to be sincere. Now, when these things obtain, the people from all quarters will come to him, bearing their children on their backs.
⑬자로편 19장
樊遲問仁 子曰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也(번지문인 자왈 거처공 집사경 여인충 수지이적 불가기야)
이-번지가 인에 대해서 물으니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몸을 지키는 도리는 공손해야 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법은 공경(근신)해야 하며, 사람들과 같이 일할 때는 성실할 것을, 비록 오랑캐의 나라에 가더라도 (이 세가지 일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배-번지가 인을 여쭈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평소에는 공손하고, 일할 땐 조심스럽고, 사람들과 함께 할 땐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비록 야만의 땅에 가서라도 버려서는 안되느니.
L-Fan Ch‘ih asked about perfect virtue. The Master said, “It is, in retirement, to be sedately grave; in the management of business, to be reverently attentive; in intercourse with others, to be strictly sincere. Though a man go among rude, uncultivated tribes, these qualities may not be neglected.”
⑭자로편 17장
子夏爲거父宰 問政 子曰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자하거보재 문정. 자왈 무욕속 무견소리 욕속즉부달 견소리즉대사불성)
이-자하가 거보 고을의 장관이 되어 정사에 대해서 물으니,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일을 빨리 하려고 서두르지 말아야 하고, 작은 이익을 보고 일을 시작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빨리 하려고 서두르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작은 이익을 보고 일을 시작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배-자하가 거보 땅의 책임자가 되어, 정치를 여쭈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빨리 이루려고 서둘지 말고, 소소한 이익에 연연하지 말아라. 빨리 이루려고 서둘면 끝을 보지 못하고, 소소한 이익에 연연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나니.
L-Tsze-hsia, being governor of Chu-fu, asked about government. The Master said, “Do not be desirous to have things done quickly; do not look at small advantages. Desire to have things done quickly prevents their being done thoroughly. Looking at small advantages prevents great affairs from being accomplished.”
⑮위정편 18장
子張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자장학간록 자왈 다문궐의 신언기여즉과우 다견궐태. 신행기여즉과회 언과우 행과회 녹재기중의)
이-자장이 (벼슬을 하여) 녹봉을 구하는 방법을 물으니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서도 의심나는 것은 빼놓고 그 나머지만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과실이 적을 것이며, 많이 보고서도 미심(未審)한 것을 빼놓고 그 나머지만 조심스럽게 시행한다면 뉘우침이 적을 것이니, 자기의 한 말에 과실이 적고 자기가 행한 일에 뉘우침이 적으면 녹봉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배-자장이 벼슬 구하는 법을 배우고자 하였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많이 듣고 미심쩍은 것은 제쳐두고 나머지를 조심스레 말하면 허물이 적으리라. 널리 보고 위태로운 것은 제쳐두고 나머지를 조신하게 행동으로 옮기면 뉘우칠 일이 적으리라.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 있느니.
L-Tsze-chang was learning with a view to official emolument. The Master said, “Hear much and put aside the points of which you stand in doubt, while you speak cautiously at the same time of the others:-- then you will afford few occasions for blame. See much and put aside the things which seem perilous, while you are cautious at the same time in carrying the others into practice:-- then you will have few occasions for repentance. When one gives few occasions for blame in his words, and few occasions for repentance in his conduct, he is in the way to get emolument.”
자로편 20장
子貢 問曰何如 斯可謂之士矣. 子曰 行己有恥 使於四方 不辱君命 可謂士矣. 曰 敢問其次 曰 宗族 稱孝焉 鄕黨 稱弟焉. 曰 敢問其次 曰 言必信 行必果 갱갱然小人哉 抑亦可以爲次矣. 曰 今之從政者 何如 子曰 噫 斗소之人 何足算也(자공 문왈
하여 사가위지사의. 자왈 행기유치 사어사방 불욕군명 가위사의. 왈 감문기차 왈 종족 칭효언 향당 칭제언. 왈 감문기차왈 언필언 행필과 갱갱연소인재 억역가이위차의. 왈 금지종정자 하여 자왈 희 두소지인 하족산야)
이-자공이 물었다. “(처신을) 어찌 해야만 이를 (벼슬할 수 있는) 선비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잘못이 있으면)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야 하며, 사방 여러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임금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않는다면 (벼슬할 수 있는) 선비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자공이 그 다음에 대해 물으니,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종족(친족)들이 효성이 있다고 칭찬하고, 향당(고을)에서 공손하다고 칭찬하는 인물이니라.” 자공이 그 다음에 대해 다시 물으니,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말은 반드시 믿음있게 하고 행실은 반드시 과단성 있게 하는 것은 딱딱해서 주변성이 없는, 즉 견식과 도량이 좁은 소인이지만, 그래도 그 다음은 될 것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요즈음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아아. 기량이 작은 사람들을 어찌 낱낱이 셀 수가 있겠는가?”
배-자공이 여쭈었다. 어찌해야 ‘사(士)답다’고 할 수 있을는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자기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외국에 사신으로 가서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않으면, ‘사답다’고 이를 만하리라. (자공이) 말하였다. 감히 그 다음을 여쭙습니다. 말씀하시다. 온 집안이 ‘효성스럽다’고 칭찬하고, 온 마을이 ‘공손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이지. 말하였다. 또 그 다음을 여쭙습니다. 말씀하시다. 말을 하면 반드시 (실천하니) 믿음직스럽고, 업무상에는 반드시 끊고 맺음이 분명한 사람이지. 꼬장꼬장해서 소인배라고들 하겠지만, 억지로 또 그 다음은 될 게야. 말하였다. 오늘날 정치에 종
사하는 사람들은 어떤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아이고! 한 말 닷 되나 될까 말까 한 놈들을 어찌 셈에 넣는단 말이냐.
L-Tsze-kung asked, saying, “What qualities must a man possess to entitle him to be called an officer?” The Master said, “He who in his conduct of himself maintains a sense of shame, and when sent to any quarter will not disgrace his prince‘s commission, deserves to be called an officer.” Tsze-kung pursued, “I venture to ask who may be placed in the next lower rank?” And he was told, “He whom the circle of his relatives pronounce to be filial, whom his fellow-villagers and neighbours pronounce to be fraternal.” Again the disciple asked, “I
venture to ask about the class still next in order.” The Master said, “They are determined to be sincere in what they say, and to carry out what they do. They are obstinate little men. Yet perhaps they may make the next class.” Tsze-kung finally inquired, “Of what sort are those of the present day, who engage in government?” The Master said “Pooh! they are so many pecks and hampers, not worth being taken into account.”
위령공편 20장
子曰 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자왈 군자 구제기 소인 구제인)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과실이 있는가를) 찾고, 소인은 다른 사람에게서 (과실이 있는가를) 찾는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군자는 스스로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구하고, 소인은 남으로부터 구하더구나.
L-The Master said, “What the superior man seeks, is in himself. What the mean man seeks, is in others.”
위령공편 14장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자왈 궁자후이박책어인 즉원원의)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을 많이 책망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적게 책망한다면, 사람들의 원망에서 벗어날 것이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저 자신은 몹시 꾸짖고, 남 탓하기는 가볍게 한다면 원망을 멀리할 수 있으리라.
L-The Master said, “He who requires much from himself and little from others, will keep himself from being the object of resentment.”
안연편 16장
子曰 君子 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 反是(자왈 군자 성인지미 불성인지악 소인 반시)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남의 좋은 점을 도와 이루어 주고, 남의 나쁜 점을 도와 이루어 주지는 않는데, 소인은 이와 반대되는 행동만 한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군자는 남의 장점을 이루게 하지만 단점은 고쳐준다. 소인은 그와 반대로 하나니.
L-The Master said, “The superior man seeks to perfect the admirable qualities of men, and does not seek to perfect their bad qualities. The mean man does the opposite of this.”
자로편 21장
子曰 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견乎 狂者 進取 견者 有所不爲也(자왈 부득중행이여지 필야광견호 광자 진취 견자 유소불위야)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중도를 실천하는 사람을 얻어 함께 일할 수 없다면, 반드시 광자나 견자를 택할 것이다. 광자는 진취성이 있는 사람이고, 견자는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언행에 적실한 사람(中行)’을 얻어 함께 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광견한 사람(광견)’을 얻으리라! 광자는 진취하고, 견자는 (차마) 하지 않는 바가 있기 때문이지.
L-The Master said, “Since I cannot get men pursuing the due medium, to whom I might communicate my instructions, I must find the ardent and the cautiously-decided. The ardent will advance and lay hold of truth; the cautiously-decided will keep themselves from what is wrong.”
위령공편 21장
子曰 君子 矜而不爭 群而不黨(자왈 군자 긍이부쟁 군이부당)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긍지를 가지면서도 남과 다투지 아니하며, 여러 사람과 같이 어울리면서도 편당을 만들지는 않는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군자는 자부하되 다투지 않으며, 어울리되 패를 짓지는 않는다.
L-The Master said, “The superior man is dignified, but does not wrangle. He is sociable, but not a partizan.”
자로편 24장
子貢問曰 鄕人 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 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자공문왈 향인 개호지 하여. 자왈 미가야. 향인 개오지 하여. 자왈 미가야. 불여향인지선자호지 기불자오지)
이-자공이 물었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저를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옳지 못한 일이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저를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도 옳지 못한 일이다. 고을 사람들 중 착한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착하지 못한 사람은 나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배-자공이 여쭈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충분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다 싫어하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충분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선한 자가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자가 싫어함만 못하느니.
L-Tsze-kung asked, saying, “What do you say of a man who is loved by all the people of his neighborhood?” The Master replied, “We may not for that accord our approval of him.” “And what do you say of him who is hated by all the people of his neighborhood?” The Master said, “We may not for that conclude that he is bad. It is better than either of these cases that the good in the neighborhood love him, and the bad hate him.”
안연편 13장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자왈 청송, 오유인야, 필야사무송호)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송사를 판결하는 것은 나도 남들처럼 할 수 있으나, (먼저)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해야 하겠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송사를 듣는 것이야 나도 남만 못하지 않겠지만,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해야 하리라.
L-The Master said, “In hearing litigations, I am like any other body. What is necessary, however, is to cause the people to have no litigations.”
안연편 6장
子張問明 子曰 浸潤之讒 膚受之소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浸潤之讒 膚受之소 不行焉 可謂遠也已矣(자장문명 자왈 침윤지참 부수지소 불행언 가위명야이의. 침윤지참 부수지소 불행언 가위원야이의)
이-자장이 명철함에 대해 물으니,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물이 차츰 젖어 스며드는 듯한 참소와 살결에 와 닿는 듯한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명철하다고 할 수가 있다. 물이 차츰 젖어 스며드는 듯한 참소와 살결에 와 닿는 듯한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먼 장래를 본다고 말할 수가 있다.”
배-자장이 투명성을 여쭈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가슴에 젖어드는 참소와 살갗을 파고드는 하소연에 초연할 수 있다면 ‘투명하다’고 이를 수 있으리라. 정녕 가슴에 젖어드는 참소와 살갗을 파고드는 하소연에 초연할 수 있다면, ‘멀리 보는 안목을 가졌다’고 이를 수 있으리라.
L-Tsze-chang asked what constituted intelligence. The Master said, “He with whom neither slander that gradually soaks into the mind, nor statements that startle like a wound in the flesh, are successful, may be called intelligent indeed. Yea, he with whom neither soaking slander, nor startling statements, are successful, may be called farseeing.”
위정편 3장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자왈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정령으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은 면하여도 부끄러운 마음은 없어지게 된다. 백성을 도덕으로써 인도하고 예의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운 마음도 있게 되고 또한 선행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정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가지런히 하려 들면, 백성들은 면하려고만 하지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반면)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서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뿐 아니라 또 (스스로) 바로잡는다.
L-The Master said, “If the people be led by laws, and uniformity sought to be given them by punishments, they will try to avoid the punishment, but have no sense of shame. If they be led by virtue, and uniformity sought to be given them by the rules of propriety, they will have the sense of shame, and moreover will become good.”
태백편 9장
子曰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자왈 민가사유지, 불가사지지)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에게 지사(指使)할 만한 일은 지령(指令)을 따르게 하고, 지사할 수가 없는 일은 (가르쳐서) 알도록 해야만 한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백성들은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까닭을) 알게 할 수는 없더구나.
L-The Master said, “The people may be made to follow a path of action, but they may not be made to understand it.”
태백편 7장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증자왈 사불가이불홍의. 임중이도원. 인이위기임, 불역중호. 사이후이, 불역원호)
이-증자가 말하였다. “선비는 도량이 넓고 의지가 굳세지 않으면 안되니 책임이 무겁고 앞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았으니 책임이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책임이 끝날 것이니 앞길이 또한 멀지 않겠는가.”
배-증자가 말하였다. 사(士)는 뜻이 넓고 굳지 않아서는 안 되리라. 맡은 임무는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으로써 자임하였으니 또 무겁지 아니한가! 죽어서야 마칠 것이니 또 멀지 아니한가!
L-The philosopher Tsang said, “The officer may not be without breadth of mind and vigorous endurance. His burden is heavy and his course is long. Perfect virtue is the burden which he considers it is his to sustain;-- is it not heavy? Only with death does his course stop;-- is it not long?”
한겨레 휴심정
이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