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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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5] 조선족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댓글:  조회:2518  추천:70  2008-08-31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5조선족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곽승지 연합뉴스 기자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단어를 고른다면 ‘사랑’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고는 말과 글은 물론 생각조차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사랑은 사람들의 삶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사랑이 그만큼 가치있는 것일 뿐 아니라 사람들 또한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톨스토이가 천사 미카일의 입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힘의 원천이 사랑임을 강조한 것 역시 그러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와 같이  널리 쓰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여전히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갈구하고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이렇듯 사랑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주위를 돌아보면 세상은 온통 사랑으로 넘쳐납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랑을 찾기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미혹하기 위해 그럴듯하게 포장한 형식적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어여삐 여기며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그런 사랑 말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살아있는 성자 삐에르 신부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그의 외침 속에는 사랑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사랑을 갈구하는 성자의 절박함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쏟아내고 있는 사랑이 그가 바라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자의 삶과 평범한 사람의 삶이 다르듯 사랑 또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사 미카일이 가난한 행인과 그 아내에게서 보았던 그 사랑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가장 평범한 사람에게도 천사를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는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오만해져 지나치게 높은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니면 세상살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것이며 그 힘에 의해 오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모두 낮은 곳에 자리 잡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음을 기뻐합니다. 자신의 몸을 낮추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길 때만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희망찬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는 낮은 곳에 자리 잡고 높은 이상을 쫒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은 귀하고 천한 것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크고 작음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랑은 동등할 뿐 아니라 똑같이 가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스스로 당당해 질 때, 그래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만끽할 수 있을 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조선족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세요. 그 사랑이 당신을 한없는 기쁨으로 인도할 겁니다.  <조선족동포에게 고함>글싣는 순서0. 칼럼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연재를 시작하며1.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2.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니다3. 당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겠습니까4. 조선족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갑니까5. 조선족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6. 조선족 당신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11    [4] 조선족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 갑니까 댓글:  조회:2413  추천:67  2008-08-31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4조선족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 갑니까                                                        곽승지 연합뉴스 기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명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고민할 때 흔히 접하게 되는 물음 중의 하나 입니다. 그런 만큼 우리 주변에는 이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세상을 살면서 깨달은 바를 후세에 남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두고두고 곱씹어 보아야 할 귀중한 교훈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물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스스로 어떤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자기성찰의 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고뇌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이 물음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람은 누구나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고뇌하며 현재를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고뇌의 대상과 크기, 그리고 그 같은 고뇌를 어떻게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느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지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누구 못지않게 그 같은 고뇌 속에서 한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 것 역시 그러한 고뇌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단순히 사람이 추구해야할 삶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삶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살아가는 동안 고이 간직하고 가꾸어 가야할, 진정으로 삶을 풍요롭게 할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작가적 통찰력으로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그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힘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랑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미카일의 입을 통해 사람만이 향유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지고지순한 가치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가장 고귀한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걱정하는 마음으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사람이었을 때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 내 일을 여러 가지로 걱정하고 염려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과 그 아내에게 사랑이 있어 나를 가엽게 여기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각자 자신의 일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세상은 온통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넘쳐나는 사랑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랑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톨스토이가 말한 바와 같은, 다른 사람을 어여삐 여기며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려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덕목의 하나로 박애를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각박해 질수록 주변을 돌아보며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사 미카일이 인간세계에서 가난한 행인과 그 아내의 사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그렇다면 조선족 당신도 자신이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사랑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세요. 그 사랑은 다시 더 큰 사랑을 낳고 여러분에게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조선족 당신의 사랑이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힘이 될 겁니다. <조선족동포에게 고함>글싣는 순서0. 칼럼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연재를 시작하며1.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2.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니다3. 당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겠습니까4. 조선족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갑니까5. 조선족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6. 조선족 당신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10    [3] 당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겠습니까 댓글:  조회:2603  추천:57  2008-08-28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3당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겠습니까                                                        곽승지 연합뉴스 기자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만족하기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삶에 무엇인가를 보태며 살아갑니다. 9백99석의 농사를 짓는 부자 농부가 천석꾼이 되기 위해 1석을 더 보태려 한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천석꾼이 되기 위해 1석을 보태려는 농부처럼 자신에게 부족한 무엇인가를 채우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이 풍요롭고 발전된 세상도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인간의 노력이 가져온 결과이니까요. 문제는 그러한 노력이 개인적 탐욕으로 이어지게 되면 개인은 물론 사회에도 해가 될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개개인의 욕심은 필연적으로 전체보다는 부분을, 대의(大義)보다는 사리(私利)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세상살이를 각박하고 몰인정하게 만들기 십상이니까요.   따라서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노력이 모두 환영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부족한 많은 것들 중에서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인도의 유명한 명상가 요즈 라즈니쉬는 우리들이 진정으로 풍요롭고 아픔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야 할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대는 삶에 오직 물질만을 보태 왔다. 이제 그대의 존재에 뭔가를 보태라. 그러면 그것이 음악을 가져오고, 기적을 일으키며, 마술을 행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스릴과 새로운 젊음, 새로운 신선함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아릅답게 하기 위해 보태야 할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정신적인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봉사, 나눔, 사랑, 꿈 등이 해당되겠지요.   오늘날을 물질 만능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모든 사람이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많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애써 외면하며 자신의 삶에 물질적인 것을 보태는 데만 진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보다 큰 만족은 정신적인 것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풍요로움만으로는 결코 정신적 만족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부족한 많은 것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여 채워 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조선족 당신의 삶에는 무엇이 부족합니까. 그리고 당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고 싶습니까. 여전히 물질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탓하며 이를 채우는 데만 매달려 살아갈 겁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현실에 집착하게 되면 미래를 볼 수 없습니다. 당연히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세요. 그리고 현재 당신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혹시 물질적으로는 부족했지만 옛날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당신이 여전히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라즈니쉬가 조언한 바와 같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무엇인가를 보태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세요. 그 새로운 선택이 당신의 삶을 젊고 신선하며 즐겁게 만들 것입니다.  <조선족동포에게 고함>글싣는 순서0. 칼럼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연재를 시작하며1.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2.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니다3. 당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겠습니까4. 조선족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갑니까5. 조선족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6. 조선족 당신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9    [2]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니다 댓글:  조회:2559  추천:75  2008-08-08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2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니다                                                        곽승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기자  당신은 세상을 얼마나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스스로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역시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많은 일화가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그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난날을 반성하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각오를 다짐하기도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혜롭게 살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갑과 을이라는 두 친구가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갑이라는 친구가 잘못하여 어려움에 처하자 을이라는 친구가 화가 난 나머지 갑의 뺨을 때렸습니다. 은근히 화가 난 갑은 분을 삭이며 모래 위에 ‘오늘 을이 나의 뺨을 때렸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오아시스를 만나 둘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오랜만에 목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이 실수로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게 되었습니다. 을은 위험을 무릅쓰고 온 힘을 다해 갑을 늪에서 건져냈습니다. 그날 저녁 갑은 바위 위에 ‘오늘 을이 나의 목숨을 구했다’고 새겼습니다.”  갑은 자신이 처한 두 가지 상황에서 각각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화가 났을 때는 서운한 마음을 모래 위에 적었으나 친구가 목숨을 구해주었을 때는 고마운 마음을 바위 위에 새겼습니다. 그는 왜 이와 같이 상반된 행동을 했을까요. 갑은 그의 행동에 대해 의아해 하는 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프거나 나쁜 일은 모래 위에 적어 작은 바람에도 지워져 쉽게 잊혀지게 하고, 기쁘거나 좋은 일은 바위 위에 새김으로써 강풍이 몰아쳐도 지워지지 않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갑과 같은 지혜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겁니다. 슬프고 나쁜 모든 일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대신 기쁘고 좋은 일은 오래도록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테니까요.     다행스럽게도 사람의 지혜는 학식이나 재산 등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지식과 재물을 모두 갖춘 사람이 자기 아집에 빠져 세상을 거칠게 만드는가 하면, 공부도 많이 못하고 재물도 별반 모으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 지혜로운 태도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경우를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비록 학식이 모자라고 재물이 부족할지라도 그들은 스스로 행복을 창조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 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학식과 재물의 크기를 말하기보다 스스로 얼마나 지혜롭게 세상을 살고 있는가를 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행복할 뿐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조선족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갑과 같이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혹시 그 반대로 슬프고 나쁜 일은 바위에 새기고 기쁘고 좋은 일은 모래에 적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잘못을 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심지어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생각에 갇혀 한평생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갑과 같은 삶을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크게 다릅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조선족 당신도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조선족사회는 물론 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조선족동포에게 고함>글싣는 순서0. 칼럼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연재를 시작하며1.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2.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니다3. 당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겠습니까4. 조선족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갑니까5. 조선족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6. 조선족 당신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8    [1-2] 왜 연변과 조선족인가 댓글:  조회:3014  추천:94  2008-08-07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제1장 프롤로그 2. 왜 연변과 조선족인가 연변과 조선족동포를 생각할 때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하나는 한민족과의 역사적 인연에서 비롯된 연변에 대한 그리움과 누구보다도 힘든 세월을 살아온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연민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민족과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올바로 평가함으로써 그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길을 닦아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전자는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개인적 감상이라고 해도 좋다. 연변지역이 점점 동포사회로부터 외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많은 조선족동포들이 현실의 벽에 갇혀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대한 연민이다. 그러나 후자는 차원이 좀 다르다. 21세기의 새로운 역사적 트렌드와 함께 다가오고 있는 동북아시아시대에 대비해야 하며 그런 시대가 도래 할 때 연변의 지정학적 가치는 크게 빛을 발할 것이라는 나름의 역사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인식은 20세기 우리 역사가 남긴 상흔을 아직도 털어버리지 못한 민족적 아픔을 되새기며 새로운 시대를 맞아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이다.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생활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마음은 그에 비례하여 더욱 각박해 지고 있다. 세상살이가 각박해지는 만큼 미래에 대한 희망도 줄어들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이런 경향을 염려하며 21세기의 성패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 세상사에 얼마나 많이 자리잡게 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려는 여유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방심한다면 세상은 이기적이고 삭막한 일들로 넘쳐나 살맛나지 않는 쓸쓸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인간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일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우리 모두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그런 일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연변과 조선족도 그런 대상의 하나이다. 특히 연변과 조선족 문제는 한민족의 미래 운명에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연변에 대한 연민21세기에 즈음해 인류는 냉전체제라는 20세기의 암울한 유산을 털어내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21세기를 살되 여전히 20세기 역사가 만든 굴레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한반도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의 현장으로, 세계적인 탈냉전적 현상과는 무관하게 냉전과 탈냉전 이라는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는 갈등의 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세기에 우리민족이 겪었던 질곡의 역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희망의 시대에 유독 우리 민족만이 암울한 20세기 역사의 유산을 온전히 정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사회주의체제를 견지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함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한반도에도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에 덧씌워진 20세기의 굴레는 남북한 간의 이념적 갈등이 전부는 아니다.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는 디아스포라 문제 역시 20세기 우리 역사가 남긴 아픈 상흔 중의 하나이다. 세계화시대에 즈음해 디아스포라는 역설적으로 우리 민족의 큰 자산이기도 하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 정부 역시,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재외동포들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시혜적인 정책만으로 디아스포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의 정책은 물론 모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그들을 같은 동포로서 동등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연변 조선족동포들에 대해서는 더하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연변에 대한 우월감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욕하면서 배운다던가. 서양 사람들이 동양 또는 동양 사람들을 깔보면 속상하고 그래서 그들의 오만함을 질타하곤 했었다. 서양의 동양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이른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같은 동포들에게 조차 우쭐하여 우리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을 폄하하거나 비아냥거리고 있다. 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지금 우리사회가 비아냥거리는 조선족동포들의 일상적 모습은 우리의 어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일부의 사안은 2, 30년의 시차가 있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들이 살아가던 모습 그대로이다. 경제적으로 약자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들이 우리에게서 홀대받을 이유는 없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으tm대는 것은 전형적인 소인배의 행태다. 우리가 피를 나누고 역사를 같이한 동포라면 진정으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가진 것을 나누어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어야 한다. 또한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헤아리며 그 차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연변지역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선조들의 삶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연변과 조선족 동포들을 소홀히 대접해서는 안 된다. 조선족 동포들은 13억 중국국민들 속에서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오롯이 지켜온 것만으로도 모국에 대해 그리고 모국에서 잘 살고 있는 동포들에 대해 당당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천덕꾸러기인양 취급되는 것은 분명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연변의 미래에 대한 사명감21세기의 화두는 탈냉전과 세계화 그리고 정보화이다. 탈냉전은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갈등의 시대가 종식되고 공존공영을 위한 상생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세계화는 탈냉전에 의한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인류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의 질서를 지향하고 있음을 뜻한다. 정보화는 인터넷 세상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통신 및 IT기술의 급속한 발달을 토대로 4차원의 세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기술적 기반이다. 21세기의 이러한 특징은 인류가 바야흐로 20세기를 지배했던 극단적 단절의 시대를 넘어 다시금 유무상통하는 소통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20세기의 불행한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말미암아 21세기의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진영의 민주화 도미노현상에 따라 이데올로기 대립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게 되면서 국제질서에 새로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국제질서를 결정짓는 패러다임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국가 간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국제사회가 새로운 소통의 틀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4차원의 공간에서 인간의 사고를 무한하게 확대해 나가는 인터넷세상이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세상에서 인간의 사고는 어떤 장벽도 없고 어떤 단절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 자유로움은 기존의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으로써 현실의 세계에서 우리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또 탈냉전이후 세계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각 국가는 이러한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지역 내 국가들 간에 연대를 꾀하고 있다. 탈냉전시대에 유일한 냉전의 고도로 남아있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지역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아직 문제제기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동북아시아 권역을 경제공동체 혹은 안보공동체로, 나아가서 동북아시아공동체로 만들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지리적으로 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국가들이 연대를 통해 경제 및 안보에 대한 상호 이익을 도모하려는 지역국가 형성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트렌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에서의 움직임 역시 향후 북핵문제의 해결 등 지역정세가 변할 경우 급진전 될 것이다.  동북아시아공동체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국제질서 변화속도를 감안할 때 그 시기는 의외로 빨라질 수도 있다. 독일통일이 이루어지기 불과 몇 달 전까지 어떤 정치학자도 그 역사적 사건을 예견하지 못했던 것처럼. 동북아시아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국가적 차원에서는 남북한과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등을, 지리적 측면에서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대척 개념으로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 지역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을 토대로 할 때 동북아시아의 핵심지역은 한반도와 연변을 포함한 중국의 동북 3성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이 될 것이다. 연변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위쪽 중국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변방지역이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전체를 놓고 보면 연변은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중심이란 모든 것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의 종착점이다. 당연히 동북아시아시대에는 연변의 지정학적 가치가 새롭게 부각될 것이다. 또한 한국과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연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동포들은 그 지문화적 가치로 인해 동북아시아공동체 형성과정 그리고 형성이후에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안타깝게도 동북아시아 질서의 전면적 재편을 가져올 역사적 전환을 앞둔 시기에 우리는 그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시아공동체가 이루어질 경우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시아공동체가 현실화될 것을 상상하면, 연변지역을 터전으로 하여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민족의 크나큰 행운이다. 19세기 말 이후 우리민족이 감내해야 했던 질곡의 역사는 어쩌면 21세기 새로운 소통의 시대가 도래 할 경우를 대비해 절대자가 예비해 놓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생각하기에 따라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그러한 시대가 도래할 것에 대비해 우리의 관심과 애정을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에게 쏟아야 한다. 그것은 작게는 20세기 우리민족이 겪었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될 것이며 크게는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장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연변의 미래는 한반도와 우리민족은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연변의 미래에 대한 사명감은 한민족과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사명감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글 싣는 순서『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제1장 프롤로그 1. 무엇을 왜 쓰는가2. 왜 연변과 조선족인가0. 연변에 대한 연민0. 연변의 미래에 대한 사명감3. 무엇을 생각하나0. 민족문제와 역사의 동시성0. 연변의 탈영역화에 이은 재영역화0. 민족주의를 넘어 동북아시아 공존공영
7    [1]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 댓글:  조회:3010  추천:98  2008-08-02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1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 곽승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기자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 단지 중국 동북 변방지역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중국국민을 구성하는 55개 소수민족의 일원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한민족이 20세기에 겪은 질곡의 역사가 만들어낸 이주 한민족의 설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면서도 모국으로부터 냉대 받고 있는 슬픈 족속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은 행여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며 스스로 위축되어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천덕꾸러기 아닌 천덕꾸러기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조선족 당신은 결코 이방인이 아닙니다. 물론 천덕꾸러기도 아닙니다. 눈을 들어 당신이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세요. 당신은 한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당당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이 살아온 과정이 힘겨웠고 그래서 당장의 세상살이가 고단해도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살아온 세월이 굽이굽이 눈물로 얼룩졌을 지라도 그 과정은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또 중국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제하에서 민족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이 그랬고, 해방 후 국공내전의 와중에서 중국에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는데 참여한 과정도 그랬습니다.    조선족 당신은 주어진 업보를 외면하지 않고 온 몸으로 부딪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 지금의 고단함도 어쩌면 그러한 업보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빌리면 조선족 당신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귀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쓰일 데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 만큼 당신 스스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고통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여유로운 마음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당신의 삶에 즐거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조선족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싶습니까. 만약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이 여전히 생경스럽게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세요. 그리고 ‘나는 자랑스러운 조선족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되풀이하십시오. 그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워야만 당신은 조선족의 이름으로 세상에 우뚝 설 수 있습니다. 당신이 조선족으로 당당히 설 수 있을 때만 진정한 한민족의 일원으로 또 중국국민의 한 사람으로 거듭 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당신의 당당한 태도는 당신의 현재는 물론 미래를 보장하는 튼튼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선족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세상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도 없으며 세상에 대해 당당해 질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당신 스스로 당신을 사랑하며 귀하게 여길 때 당신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게 되면 저절로 다른 사람도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당신이 행복해야만 당신과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도 당신은 행복해야만 합니다. 조선족 당신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함으로써 행복하고 귀한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조선족동포에게 고함>글싣는 순서0. 칼럼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연재를 시작하며1.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2.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니다3. 당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겠습니까4. 조선족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갑니까5. 조선족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6. 조선족 당신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6    칼럼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연재를 시작하며 댓글:  조회:3014  추천:95  2008-07-29
칼럼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연재를 시작하며곽승지 연합뉴스 기자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 순간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앞은 캄캄합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 거창한 제목을 들고 동포들 앞에 서려니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아직도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뒤뚱거리고 있는 것은 스스로도 이것이 얼마나 ‘건방지고 주제 넘는 일’ 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안고서도 굳이 이 글을 시작하려는 것은 오직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저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저로 하여금 온갖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용기를 내도록 부추깁니다. 그 사랑은 또한 한민족의 창창한 미래를 위해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는 신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해 초가을 어느 날, 문득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출간한 졸저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을 집필하던 중 책에 담은 메시지를 조선족동포들에게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함께 꿈꾸고 함께 노력해야만 한민족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졸저를 통해 한국사회가 조선족사회를 포용함으로써 함께 한민족의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에 힘입은 바 큽니다. 먼저 조선족동포들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적시하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피력했기 때문에 조선족사회에 대해서도 같은 유형의 글을 쓰는 것이 용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 할 수 있었으니까요.      가소롭게도 저는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요한 고트리프 피히테가 꼭 200년 전에 행한 유명한 강연 <독일국민에게 고함>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피히테를 따라 한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려는 것은 오늘날 조선족사회가 처한 현실에서 당시 피히테가 느꼈을 게르만민족의 미래에 대한 절박함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절박함이 저로 하여금 피히테를 흉내 내도록 떠밀고 있습니다. 피히테의 강연에 힘입어 독일국민들이 프랑스의 침략에 맞서 싸워 독일의 새로운 미래를 열었던 것을 상기하며, 조선족동포들 또한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조선족동포들에게 보다 많은 얘기를 보다 허심탄회하게 개진하려고 합니다. 사소한 신변잡기에서부터 거대한 담론에 이르기 까지 주제 또한 제한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족동포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살펴보며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 찾기에 나서 볼 생각입니다. 조선족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데도 심혈을 기울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역사적 흐름을 헤아리면서 조선족동포들이 한민족의 일원으로 창창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할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저의 개인적 신념과 철학을 토대로 하지만 실상은 한민족 모두의 바람을 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저는 격주마다 지면을 통해 여러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주제의 무거움으로 인한 두려움과 시간적 구속에 따른 예상되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선족동포들과 함께 한민족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또 다른 기쁨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립니다.<조선족동포에게 고함>글싣는 순서0. 칼럼 <조선족동포에게 고함> 연재를 시작하며1. 조선족 당신은 누구입니까2.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듦니다3. 당신의 삶에 무엇을 보태겠습니까4. 조선족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갑니까5. 조선족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6. 조선족 당신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5    [1-1] 무엇을 왜 쓰는가 댓글:  조회:2900  추천:100  2008-07-27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제1장 프롤로그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 황석영의 <바리데기> 중에서 1. 무엇을 왜 쓰는가 역사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아 동북아시아 질서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예상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민족은 어떻게 20세기에 겪었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새로운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물론 이 같은 생각의 중심에는 연변과 조선족동포가 자리 잡고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역사적 트렌드와 동북아시아에서의 급격한 정세변화는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20세기에 겪었던 슬픈 역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서세동점의 변혁의 시기, 우리민족은 그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또 애써 외면했다. 당연히 그에 대비하지도 못했다. 결국 10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우리민족의 질곡의 역사는 역사적 트렌드를 감지하지 못한 우둔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는 준비된 자의 편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만들어 지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의 역사적 트렌드와 함께 동북아시아에서 형성될 새로운 질서를 헤아리는 것은 당면한 과제의 하나이다. 변혁의 시대에 우리민족이 어떻게 지난 세기의 슬픈 역사를 치유하고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또한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에게 지워진 사명이다. 새로운 역사적 트렌드 및 동북아시아 질서의 변화를 직시하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 주목하려 한다. 첫째, 미래의 세상은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점점 단절의 시대에서 소통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냉전시대였던 20세기 국제사회는 국가 간 단절을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세력균형을 통해 평화를 유지했다. 국가차원의 철의 장막이나 죽의 장막은 물론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대립으로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21세기의 국제사회는 이데올로기 대립의 역사가 종말을 고함으로써 세계화를 구가하게 되었으며 국가 간 관계에서도 점점 소통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바야흐로 국경을 통해 국가를 구획하던 단절의 시대를 벗어나 소통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소통의 시대에 즈음해 동북아시아국가들 간 공존공영을 위한 동북아시아공동체 건설을 향한 움직임이 구체화 될 것이다. 동북아시아는 역내 국가 간 갈등으로 인해 중동지역과 함께 20세기 가장 불안정한 지역 중의 하나였다.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여러 가지 갈등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하지만 탈냉전적 국제질서 하에서 동북아시아지역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동북아시아정세의 가장 큰 불안정 요인이었던 북한핵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주변 국가들이 지역공동체 형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세계화에 따른 지역 간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역내 국가 간 협력문제가 동북아시아에서도 적극 모색되고 있다.  셋째, 연변과 조선족은 지정학적 및 지경학적 그리고 지문화적 측면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21세기의 새로운 트렌드 속에서 추동되고 있는 동북아시아공동체 건설과정은 물론 건설이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연변과 조선족은 동북아시아 역내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다. 연변은 중국의 변방이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중심지역이다. 이에 따라 연변은 동북아시아공동체가 구현되는 과정에서 지정학적으로 주변 국가들을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지경학적 측면에서 역내 국가 간 경제교류의 장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연변은 또 한민족과 중국의 한족을 아우를 수 있는 조선족의 주된 생활터전이다. 따라서 조선족동포들은 지문화적 측면에서 한국과 중국의 협력을 촉진할 중재자이다. 중국국민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으로서 중국의 법과 제도를 따르고 있지만 한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어 정서적으로는 한국과 가깝기 때문이다. 연변과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변경문화적 요소는 21세기 동북아시아국가들이 소통의 시대를 열어갈 때 새롭게 빛을 발할 것이다. 새로운 역사적 트렌드와 동북아시아 질서의 예상되는 변화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 민족의 미래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하나는, 연변과 조선족동포는 20세기 우리민족이 겪었던 민족적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이들을 통해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문제를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관심은 우리 민족이 지난 질곡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로서 한민족공동체 건설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동북아시아 질서가 급변하고 있는 시점에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감정적으로 멀어져 가고 있어 이를 극복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20세기에 우리민족이 겪었던 질곡의 역사를 온전히 치유하고 나아가서 동북아시아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 국가 간 공존공영을 적극 모색하여야 한다. 민족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동북아시아시대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해 준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는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두 사회 간의 감정의 골을 메우고 동포애에 기반을 둔 공생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적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관심은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동북아시아공동체 건설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연변과 조선족은 이중적 관찰의 대상이다.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계륵과 같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편한 존재라는 것이다. 연변과 조선족사회를 그리움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이의가 없다. 문제는 왜 계륵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는가 하는 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양자 간의 인식의 차이/ 서로에 대한 기대심리의 불일치/ 상대방에 대한 실망감/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리움이 식은 것(사랑의 감정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시든다) 등등.... 중요한 것은 정보화시대에 변화의 내용과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획기적이고 빠르기 때문에 눈앞의 문제에 집착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보다 멀리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동북아시아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의 이해관계에 연연해 연변과 조선족사회를 계륵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당면한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서라도 그들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만 한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시대를 내다보며 지정학적 및 지문화적 측면에서 연변과 조선족사회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나아가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멀어져가고 있는 이유를 조선족사회의 현실을 통해 진단해 보고자 한다. 조선족사회에 대한 현실진단은 우리가 연변 및 조선족사회와 함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준거가 될 것이다. 또한 이 같은 현실진단을 바탕으로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연변과 조선족사회가 지니고 있는 가치를 평가할 것이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동포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의미를 확장할 경우 연변은 조선족동포들이 주로 살고 있는 중국 동북3성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니까 연변은 중국의 조선족동포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지역을 포괄한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변을 하나의 독립되고 단절된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주변지역을 연결하는 소통의 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동북아시아공동체가 형성될 때 연변이 한반도와 중국은 물론 주변 국가들을 잇는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도 맞닿아 있다. 연변과 조선족을 분리할 수 없음은 바로 연변이 조선족동포들의 소통의 공간일 뿐 아니라 조선족동포들의 미래를 담보하는 중심축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민족 모두를 대상으로 쓰여 졌다. 그 이면에는 한국사회가 상대적 강자의 입장에서 연변과 조선족사회를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상생적 관계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한국사회가 똘레랑스의 실천자가 되어 먼저 손을 내밀어 그들을 포용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 싣는 순서『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제1장 프롤로그 1. 무엇을 왜 쓰는가2. 왜 연변과 조선족인가0. 연변에 대한 연민0. 연변의 미래에 대한 사명감3. 무엇을 생각하나0. 민족문제와 역사의 동시성0. 연변의 탈영역화에 이은 재영역화0. 민족주의를 넘어 동북아시아 공존공영
4    차 례 댓글:  조회:2563  추천:95  2008-07-26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차   례 글을 시작하며 제1장 프롤로그 1. 무엇을 왜 쓰는가2. 왜 연변과 조선족인가0. 연변에 대한 연민0. 연변의 미래에 대한 사명감3. 무엇을 생각하나0. 민족문제와 역사의 동시성0. 연변의 탈영역화에 이은 재영역화0. 민족주의를 넘어 동북아시아 공존공영 제2장 새로운 국제질서와 동북아시아 1. 21세기 국제정치의 새로운 트렌드0. 현실주의에서 자유주의로0. 단절의 시대에서 소통의 시대로0. 문명의 공존을 향하여0. 문화적 다양성을 위하여2. 동북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비전0. 동북아시아에 대한 이해- 동북아시아의 개념- 동북아시아와 한국- 동북아시아와 연변0. 동북아시아공동체는 가능한가- 상상력과 창의적 아이디어- 연대의 범위와 수준- 당면과제0. 관련국들의 입장- 한국의 입장- 북한의 입장- 일본의 입장- 중국의 입장 제3장 연변‧조선족의 역사와 전략적 가치 1.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서 연변0. 연변지역에 대한 이해- 연변의 유래와 지역적 범위- 자연지리적 환경- 사회문화적 환경0. 동북아시아역사를 통해 본 연변- 주변국들의 연변지역에 대한 관심- 청의 봉금정책과 봉금지대에 대한 해석- 백두산정계비의 진실- 일본의 개입과 간도협약- 북․중 간 국경조약0. 연변의 지정학적 가치- 역사 속에서 보는 지정학적 가치- 한민족 인적교류의 무대- 북한을 향하는 새로운 통로- 변경지대로서 월경협력의 장2. 변경문화의 체현자로서 조선족0. 한민족의 연변이주- 조선족 명칭의 유래 및 현재적 의미- 해방 후 중국에 정착한 조선인들- 한민족 연변이주에 대한 인식0. 조선족의 위상과 역할- 북한변화의 촉매자- 남북관계의 매개자- 한중협력의 중재자- 동북아시아 미래 안내자 제4장 연변과 조선족사회에 대한 현실진단 1. 정치적 측면0. 중국의 정치민주화와 연변0. 조선족동포의 정치의식0. 조선족자치주의 미래2. 경제적 측면0. 연변경제 현실- 개혁개방과 연변- 산업별 동향- 연변경제와 한국- 연변경제의 미래0. 주민생활과 소비- 주민생활 수준- 조선족의 소비행태0. 연변경제의 문제점- 지역 및 계층 간 부의 불균형- 관광 및 소비향락 산업 편향성- 한국 의존 심화3. 사회문화적 측면0. 인구 문제0. 사회적 일탈 문제0. 민족교육 문제0. 정체성 문제0. 가치관 문제 제5장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시각 1. 한국의 재외동포정책과 조선족정책0. 재외동포정책 추진과정0. 재외동포정책의 내용과 특징0. 조선족정책과 문제점2. 한국의 조선족사회에 대한 인식0. 조선족에 대한 이해와 편견0. 문화적 우월성과 한국중심주의0. 한국사회를 보는 조선족의 시각0. 조선족사회의 대응- 연변으로부터의 부메랑- 탈 한국화에서 친 중국화로3. 조선족동포를 위한 변론0. 왜 멀어져 가나0. 무엇이 문제인가0. 왜 돈을 쫒나0. 왜 중국국민인가0. 왜 위장결혼하나0. 왜 한국전쟁에 참전했나 제6장 공존을 위한 미래전략 1.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0. 상상하고 또 상상하자- 20년 후의 세상- 연변의 미래 상상하기- 오마이 겐이치 상상력0. 인연의 끈을 이어가자- 비익조와 연리지- 연기론에서 본 인연의 의미0. 중국을 미래의 파트너로 삼자- 중국의 부상과 한중관계- 새로운 대중국전략 모색2. 전략적 접근0. 전략적 접근의 필요성0. 똘레랑스와 불이사상: 사상적 패러다임의 전환- 조선족 포용의 논리로서 똘레랑스- 중국 설득의 논리로서 불이사상0. 민족문화의 원형 복원: 조선족 끌어안기- 한민족 민족문제의 이중성- 민족문화적 접근의 필요성0. 미래공간 만들기: 중국과의 파트너십- 미래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연변활용론과 중국의 기대이익- 월경협력을 통한 공존 모색3. 연변의 미래를 위한 현실적 대안0. 건강한 조선족사회 만들기0. 부강한 연변 만들기0. 주요 성공모델들  에필로그 글을 마치며
3    글을 시작하며 댓글:  조회:2714  추천:98  2008-07-26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글을 시작하며 우리는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에 처한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기꺼이 도울게. 무엇이 필요하니?”그러나 사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조차 필요할 때 제대로 돕지 못합니다.무엇을 도와야 할지도 모르며 때로는 그가 원치도 않는 도움을 줍니다.우리는 이렇게 서로 이해 못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그렇다고 해도 우린 사랑할 수 있습니다.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는 완전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중에서 연변과 조선족동포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아립니다. 산천은 우리의 그것과 다름없어 친근하고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처럼 다정한데도 왜 그럴까요. 그것은 연변과 조선족동포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 탓인 듯합니다. 연변과 조선족동포를 나와 일체화 시키면서 내 마음속에 가둬놓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스스로 그들과의 인연에 갇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왜 이렇듯 연변과 조선족동포들과의 인연에 갇혀 있는 것일까요. 나는 왜 연변에 대한 그리움과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연민에 사무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일까요. 나의 이런 행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낱 짝사랑에 불과한 것일까요. 연변은 역사의 땅입니다. 그곳은 그냥 무심히 스쳐 지나쳐서는 안 되는 우리 민족사의 우여곡절이 켜켜이 쌓여있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고중세사는 물론 근현대사에 이르기 까지 우리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는 연변에 대한 그리움은 연변의 역사성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연변은 지독히 고독한 땅입니다. 한 때는 주인 없는 땅으로 내팽겨진 채 방치됐다가도 어느 때는 서로 주인임을 주장하는 주변 국가들의 틈새에서 아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우리와의 인연도 그렇습니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오랜 인연을 맺고 있으면서도 시기마다 역사적 단절을 경험했으며 지금도 그로 인한 다툼의 와중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한반도와 맞닿아 있지만 남북으로 두 동강 난 반도의 어느 쪽과도 이어지지 못한 채 외롭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조선족은 슬픈 족속입니다. 그들은 지난 세월 우리 근현대사에 각인된 어두운 그림자를 그대로 끌어안고 살아왔습니다. 식민시대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웠으며, 냉전시대에는 이념의 한계에 갇혀 북한만을 조국으로 생각하였다가 탈냉전시대인 오늘에는 돈줄을 쫒아 남한을 향해 목을 길게 늘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살기 위해 시간의 흐름을 쫒아 이쪽저쪽을 살피면서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고독한 탓일까요. 연변은 조선족동포들의 삶의 터전이면서도 그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으며, 조선족동포들 또한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만큼 마음을 잡지 못해 점점 중심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시골마을의 적막함은 연길시내의 화려함에 가려 있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힘 있고 여유로운 사람들 등 뒤에서 더욱 초라해지고 있습니다. 조선족동포들에게 있어서 연변은 이제 백수십년동안 의지하고 살아온 삶의 터전이기 보다 그냥 어쩔 수 없어 움켜쥐고 있는 낡은 동아줄과도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연길시내의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는 한숨과 시름이 겹겹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연변과 조선족사회에는 세가지가 없었습니다. 발전을 위한 축적된 자본과 자원이 없고, 미래를 꿈꾸며 그것을 디자인할 사람이 없으며, 그래서 미래를 열어갈 비전도 없었습니다.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자리잡고 있는 연변은 개혁개방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인적 물적 자원이 빈약하여 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조선족 동포 지식인들은 21세기의 도도한 역사가 빚어낼 변화의 물결에 맞서 연변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큰 관심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스스로의 미래를 밝힐 비전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즐기며 사느라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미래는 없고 단지 생존을 위한 발버둥만 있었습니다. 중국의 개혁‧개방 물결은 조선족동포들에게도 고향의 푸근함에만 안주하게 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실리를 쫒아 해변을 따라 늘어선 개방도시로, 나아가서는 한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뛰쳐나가도록 등이 떠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동포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꿈을 이루기는커녕 소중히 간직해온 삶의 기본적인 가치마저 잃어버리고 체념의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모국은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아니라 한낱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킬 시장에 불과한 형이하학적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점점 모국에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연변을 그렇게 방치해도 될까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고조선과 고구려 그리고 발해의 역사가 어떻다는 등 고대 및 중세의 역사를 끌어들여 새삼 역사논쟁에 불을 붙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 먼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연변은 우리와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곡의 우리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 온 삶의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변은 193만 명에 달하는 조선족동포들의 마음의 고향일 뿐 아니라 여전히 그 절반에 가까운 동포들의 주된 삶의 터전이니까요.더욱 중요한 것은, 연변이 남북분단의 현실 속에서 남과 북을 함께 보듬어 안는 제3의 지대로 역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탈냉전의 세계사적 쾌거에도 불구하?우리민족은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슬픈 역사를 21세기인 지금까지도 훈장처럼 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려야 하나요. 이 굴레를 떨쳐내기 위해 우리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야 합니다. 연변과 조선족동포는 우리가 남북분단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취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이며 매개자입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그런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통일이후에는 남북한 통합의 가교로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남북분단의 극복은 동북아시아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동북아시아시대는 궁극적으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국가와 민족이 너와 나를 가르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소통의 시대를 지향합니다. 이른바 동북아시아공동체가 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연변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중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지문화적 측면에서 이 지역의 미래를 위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한국과 중국을 두루 이해할 수 있는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다는 것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연변과 조선족은 앞으로 도래할 동북아시아시대에, 동북아시아공동체가 추구될 시대에 무엇보다도 큰 가치를 발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연변은 역사의 땅일 뿐 아니라 미래의 땅입니다. 연변은 단순히 현재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기회의 땅입니다. 당장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저개발의 낙후된 모습을 숙명처럼 끌어안고 있지만 오히려 온갖 오염으로부터 벗어난 청정지역으로서 훗날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연변은 또한 근현대 동북아시아 갈등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갈등의 역사를 치유할 희망을 잉태하고 있는 약속의 땅이기도 합니다. 조선족동포들은 역사의 땅이자 미래의 땅인 연변의 가치를 현재화(顯在化)할 수 있는 중추적인 행위자들입니다. 희망은 고통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연변과 조선족동포가 겪고 있는 고통은 희망을 낳기 위한 산통일 런지도 모릅니다. 연변과 조선족사회가 산모라면 우리는 산파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들이 잉태하고 있는 희망을 순산하기 위해서는 산모인 그들보다도 산파인 우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연변은, 그리고 조선족은 우리에게서 그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너무나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바램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일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순산하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만 합니다. 미래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은 결코 엉뚱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연변의 산천도, 조선족 동포들의 때로는 냉소적이며 허풍스런 모습도 모두 사랑하려 합니다. 그들의 그러한 태도도 체험 속에서 나온 나름의 생존방식이기에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스스로를 연변과 조선족동포들과의 인연에 가둬두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가치는 단순히 현재의 모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투영되어 있는 슬픈 역사와 함께 우리가 그들과 더불어 만들어 갈 희망찬 미래를 가늠하며 재평가되어야만 한다고 말하려 합니다.                                                                     2007년 12월                                                                      곽   승   지*주: [...]부분은 편자가 삭제한 것입니다.-편집자
2    졸저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출간에 즈음하여 댓글:  조회:2644  추천:72  2008-07-26
졸저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출간에 즈음하여 곽승지 한국 연합뉴스 기자졸저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이 나왔습니다. 오랜 동안 머릿속에 그리며 고민해 온 것을 글로 엮은 것이지만 집필을 마무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꼬박 1년 동안 공을 들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앞에 내놓으려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 두려움을 견디며 이렇게 용기를 내는 것은 연변과 조선족에 대한 저의 어줍지 않은 생각에 대해 여러분들과 교감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겁니다. 한국사회는 감정적으로는 연변과 조선족동포들에 깊은 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책임을 논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조선족동포들을 탓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누구를 탓하기보다 그들을 포용하며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21세기의 역사적 트렌드와 동북아시아 질서의 급격한 변화 양상을 볼 때 잘잘못을 따질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또한 굳이 책임을 따진다면 한국사회의 몫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삼스레 책 출간에 대해 알리는 것은 두 가지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는 지인들에게 제가 요즘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에 대해 알리고 싶은 충동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그동안 직업으로서 북한 문제를 다루어오는 가운데 북한연구자로서 연구 활동도 겸해 왔습니다. 그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관심의 지평을 민족문제 전반으로 확대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번에 출간하는 책은 그 첫 결실인 셈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선족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문제에 대해 한국사회가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 그들과 함께 우리민족의 미래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에 기인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20세기에 우리민족이 겪었던 질곡의 역사를 온전히 치유하고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정치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짬을 내어 졸저를 읽어보시고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바랍니다. 아울러 저의 생각에 공감하는 바가 있다면 주변에도 일독을 권해 더 많은 사람들이 조선족동포들과 함께 한민족의 미래를 열어 가는데 동참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앞으로도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지인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2월 26일
1    곽승지 프로필 댓글:  조회:3041  추천:139  2008-07-26
곽승지-------------------------한국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강원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강릉고와 동국대(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정치학)를 취득했다.1985년 내외통신에 입사,북한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국제부장을 역임했다. 1999년 1월 연합뉴스로 옮겨 현재까지 영문북한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동안 북한 및 남북문제에 머물러 있는 관심영역을 민족문제로 확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같은 관심의 일환으로 2002년 연변과 동북3성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의 삶과 한민족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2004년 기자협회의 언론인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해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도인 연길에 자리잡고 있는 연변과학기술대학(총장 김진경)에서 1년간 연수했다. 이 기간 동안 연변지역은 물론 동북3성 지역에 산재해 있는 한민족의 역사적 편린과 조선족 동포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 연변과학기술대학 겸직교수로 있다.공저로 《북한사회의 이해》《북한의 사상과 역사인식》《현대 북한연구의 쟁점2》등이 있으며, <김정일 시대의 북한 이데올로기-현상과 인식><남북한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력 실태>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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