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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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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취미에 대하여 댓글:  조회:551  추천:0  2023-08-07
취미란 말 그대로 직업외의 그 어떤 흥취나 애호를 말한다. 무릇 누구나를 물론하고 한 두가지 흥취나 애호들을 갖고 있다. 물론 명인이나 위인들도 례외일 수 없다. 알다 싶이 우리의 경애하는 모주석도 국가사무가 다망한 가운데서 독서와 서예, 그리고 시 쓰기와 수영 등을 즐겼다. 현재 로씨야의 대통령인 푸틴의 취미도 참으로 다종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격투, 사격, 수영, 유도, 비행기운전 등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으며 그 섭렵범위가 엄청나다. 취미는 개인의 애호이고 추구이다. 취미생활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심신건강에도 아주 유익하기에 적극 제창하는 바이다. 한편 개인의 취미는 존중받고 보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가끔씩 일부 사람들은 자기의 취미를 내세우면서 상대방의 취미를 조롱하거나 얕잡아보는 경우를 볼 수 있어 눈살이 찌프려진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퇴직한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자기는 퇴직 후 화술에 취미를 붙였다고 하였다. 나도 귀가 솔깃하였다. 필경 화술은 문화적이고 고상한 취미이니까. 화술에 흥취를 갖고 있다는 것은 존경받을 일이다. 그런데 말이 길어짐에 따라 그분은 주위사람들의 따돌림을 받게 되였다. 그분은 화술을 고상한 취미라고 적극 춰올리면서 현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래교실, 탁구, 마작, 트럼프 등 오락적인 일상 취미를 갖고 있어 안타깝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역시 저도 모르게 주위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마살을 찌프렸다. 화술과 같은 취미는 건전하고 좋은 취미라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없다. 하지만 고상한 취미를 가진 것만으로 그 사람도 고상해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말은 그럴듯하게 잘하지만 인성은 별로인 사례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알다 싶이 중외를 물론하고 인성결핍과 실책으로 아나운서와 사회자의 직업에서 물러난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세상은 천태만상이고 사람은 다종다양하다. 그만큼 취미와 애호 역시 각자 부동한 것이다. 이를테면 흑인과 백인, 동양인과 서양인, 우리와 기타 다른 민족의 흥취와 습관은 그 문화적 배경과 성장배경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엔 절대적인 천편일률이란 있을 수가 없다. 인생엔 정답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의 생김생김이 다른 것처럼 그 취미 역시 각자 부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이상 개인의 취미, 개인의 사생활을 고상하다느니, 저속하다느니 평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꽃은 피여도 소리없고 새는 앉아도 제 자리에 앉는다고 했다. 명지한 사람이라면 자기를 알고 남을 알아야 한다. 겸손과 존경은 인간의 미덕이다. 산에 가면 산노래를 부르고 들에 가면 들노래를 불러야 보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취미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생활이고 자유이고 즐거움이다. 자신의 취미만 고상하게 개여올리고, 타인의 취미를 비난하거나 지어 타인에게 취미를 강요까지 하면 안된다.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자유를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연변일보 2023-07-21 09:28:03
23    학부모의 욕심과 자식의 선택권 댓글:  조회:582  추천:0  2022-03-15
학부모의 욕심과 자식의 선택권   맹영수   얼마전 필자는 해당 부문에서 ‘두가지 경감’에 대한 검사를 한 결과 일부 교원들이 비법적으로 여전히 과외강습반을 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사덕을 위반한 일부 교원들의 행위인 것은 사실이지만 교원들을 질책하기 앞서 학부모들의 지나친 욕심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세상만물은 서로가 련관성이 있다. 우리의 부모들은 아직도 자기의 욕심으로 애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애들의 부담을 진정으로 덜어주려면 학교와 교원, 그리고 학부모들이 호상 손 잡고 서로 감독, 호응하고 실천해가야 한다. 그중 애들의 첫 접촉자인 학부모의 작용은 그 누구보다도 중요하다. 우리의 일부 부모들은 아직도 애들을 자기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그들의 욕심도 무한정이다. 어떤 부모들은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한테서 바라고 거기에서 만족감을 느끼고저 한다. 그러니 애들은 자유와 선택권을 잃은 채 집착의 강요 속에서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교육면에서 성공한 나라이다. 이미 179명의 노벨수상자를 배출한 유태인들은 미국의 대학교와 금융계, 그리고 세계 백강 기업에서 중심적 위치를 갖고 있는데 지어 그들은 미국의 신문계와 할리우드까지 장악하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민족이다. 하지만 유태인 아이들은 숙제와 과외강습반이란 것을 모른다고 한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식을 친구처럼 생각하고 종래로 가장이란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늘 그들과 건강과 독서를 담론하고 있다고 한다.   나의 친척의 실례도 비교적 인상 깊다. 나의 친척 누이와 매형은 자식 양육에서 늘 수선 자식의 소원을 존중해주고 들어주었다. 그들에게는 아들애가 있었는데 그 아들애는 숙제를 마친 후면 늘 축구 경기에 흠뻑 빠지군 했다. 부모로서 근심될 때도 많았으나 그들은 강다짐으로 텔레비죤을 끊지 않았고 질책하지 않았다. 특히 첫 대학입시에 합격된 후 아들애가 대학 지망 때문에 고민하다가 이듬해에 재입시를 하겠다고 하자 그들은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하여 아들애는 이듬해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갔고 또 외국의 중점대학에서 박사를 졸업하고 소원 대로 약학연구에 종사할 수 있게 되였다. 그 후 처가집 신세로 어느 대학의 교원으로 전근되였지만 아들애가 대학 교원이란 철밥통과 약학연구를 놓고 고민하다가 몇달 만에 과감히 교원직을 사퇴하고 타향에서의 연구를 선택했으나 그들은 이번에도 역시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지금 조카애는 유감없이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솔직히 누이네 부부간이라고 왜서 자식을 신변에 두고 싶지 않고 대학 교원이란 그 좋은 직업이 아깝지 않았겠는가?!   우리 민족은 누구보다도 교육에 대한 열망이 높은 민족이기에 “소 팔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사실 자식이 부모의 뜻 대로 의젓하게 ‘큰 인물’이 된다면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필경 자식에겐 자식만의 인생이 있는 만큼 우리는 우선 자식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다. 하기에 명석한 부모라면 교육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관점이 있어야 한다. 누가 그 어떤 써클을 한다고 해서 들떠서 거기에 집착하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직책은 아이의 선택권과 자유를 충분히 리해하고 자식이 장차 독립적으로 ‘고기를 잡도록’ 일깨워주고 유도하는 것이다. 솔직히 아이한테 작은 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더없이 소중하고 보귀한 것이다.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꿈이 쉽게 실현되고 장차 그것이 큰꿈을 간직하게 한다. 아이한테 시작부터 큰꿈을 강요하는 것은 실제를 리탈한 욕심으로서 아이에게 지나친 부담거리를 만들어줄 수 있다. 나무도 애목으로부터 점차적으로 재목으로 된다. 단번에 재목으론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생활엔 나무 뿐만 아니라 꽃도 풀도 있어야 한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했다. 싸리를 심으면 싸리가 나고 버들을 심으면 버들이 난다고 했다. 장차 어떤 인격의 소유자로 되는가 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의 첫 교육자인 우리 학부모들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가정의 미래이고 또한 조국의 미래이다. 아이에 대한 투자는 현실보다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시대가 변했다. 글로벌 세상엔 그로서의 사유와 판단이 필요하다. 현명한 부모라면 조급 정서와 욕심을 절제하고 사랑과 믿음으로 아이 스스로 그 미래의 설계도를 그려나가도록 해야 한다. 길림신문
22    물고기사육에서 받은 계시 (외 2편) 댓글:  조회:484  추천:0  2022-02-21
  물고기사육에서 받은 계시 (외 2편) 맹영수   언제부터 관상용 물고기에 흥취가 생겼다. 그래서 어느 날 시장에 가서 ‘공작’이라 불리는 작은 물고기를 단숨에 30마리를 사서 어항에 넣었다. 빨갛고 노랗고 하얗고 까만 물고기들이 꼬리를 흔들며 자유자재로 어항 속을 노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일상의 피로가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사뭇 기분이 좋다. 나는 자주 먹이를 뿌려주고 물도 바꿔주면서 사육에 정성을 넣었다. 이대로 물고기들이 빨리 크고 새끼도 낳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아뿔사, 한주일 후부터 물고기들이 하나 둘 죽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약도 먹이고 물도 정화했으나 그 상이 장상이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니 물고기 수가 10마리쯤밖에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물고기사육도 일종 과학이였다. 두세날에 한번씩 먹이를 주고 물도 열흘 혹은 한달에 한번 좌우로 바꿔줘야만 물고기생장에 유리했다. 결국 내 욕심과 조급정서가 물고기의 죽음을 불러왔다.   사노라면 사람은 저도 모르게 욕심이 생기고 조급정서가 생긴다. 뭘 하든 누구보다 삐여지고 싶고 빨리 성공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왕왕 상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햇내기 운전실력이면서도 어벌크게 새차를 사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거나 금방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도 벼슬에 집착하는 그러한 것들이 다 그런 표현의 형태가 아니겠는가?   세상 모든 것엔 룰이 있다. 풍성한 열매는 아무나 따는 것이 아니다. 성공은 하나의 예술이다. 밥은 한술 한술 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고 벽은 한층 한층 쌓아가야 한결 견고하다고 했다. 욕심을 절제하고 정서를 눅잦혀야 대안의 풍경을 선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눈물   세월의 작용인가, 가끔씩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다가… 눈꿉이 젖어들 때가 있다. 남자는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런데도 눈꿉을 문지르고 나면 왠지 그 순간만은 오물을 쓸어낸 듯 기분이 가볍고 마음이 따스해난다.   눈물은 눈에서 배출되는 액체로서 그 작용은 눈을 세척해주어 광택이 흐르게 한다. 그만큼 눈물은 눈 건강에 좋은 것이다.   눈물은 마음의 발로이고 심장의 호소이고 가슴의 대화이다. 나는 드라마를 통하여 주석과 총리의 눈물을 보았고 크면서 부모님들의 눈물과 내 주변 사람들의 눈물을 보았다. 소리없이 흐르는 그 눈물 속에서 나는 진지한 축복과 그리움, 간절한 희망과 절절한 호소를 가슴 한가득 느꼈었다. 내가 사업에 참가하여 첫 로임을 들여놓았을 때, 내가 장가들고 딸애를 봤을 때, 내게 약간의 성취가 있었을 때 그리고 내가 아픔에 모대길 때 엄마는 눈물로 축복해주고 눈물로 춤을 추고 눈물로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의 눈물비가 있었기에 나는 멋지게는 못 자랐어도 삐뚤게는 자라지 않았다.   정호승 시인은 자기는 가슴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솔직히 가슴이 없는 사람에겐 령혼이 정화된 눈물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의 눈물은 아마 악어의 눈물일 것이다.   시인에게 말하면 눈물은 한수의 시고 가수에게 말하면 눈물은 한수의 노래이고 자선가에 말하면 눈물은 한마디 배려이다. 따뜻한 눈물이 따뜻한 가슴을 낳고 따뜻한 가슴이 따뜻한 우정과 사랑을 낳는다.   따뜻한 세상을 위하여 우리 가끔씩 서로 등과 등을 맞대고 한번 펑펑 울어봄이 어떨가?     불구자   틱톡에서 한 남자가 사지가 없지만 안해와 아기자기 사랑을 나누면서 가정의 중임을 지려고 애쓰는 장면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 몸으로 애를 돌보고 밥을 하고 려행까지 하는 모습은 실로 눈물없인 볼수 없는 따뜻한 장면이였다. 내 주변에도 불편한 몸이지만 끈질게 상업을 경영하는 몇사람이 있다. 참으로 자존, 자애, 자신에 넘치는 그들의 모습에 고무와 격려의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얼마나 의젓하고 당당한 모습들인가?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건전한 사지를 갖고도 정신적으로 불구인 사람들이 없지 않다. 성인이 되였어도 아직도 부모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 큰 돈만 바라보면서 다단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도박이나 춤바람에 허송세월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볼때면 그야말로 가엾다는 생각이 앞선다.   누군가 령혼이 없는 사람은 불구나 다름없다고 했다. 정상인이라면 사회와 가정 그리고 자기에 대한 책임을 알아야 한다. 제노릇을 못하고 제밥벌이를 못하는 사람은 어디가도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눈비를 맞더라도 거창한 꿈은 몰라도 작은 소망 하나쯤은 실현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총적으로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바보’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21    남자애들 녀성화 현상을 두고 댓글:  조회:615  추천:0  2021-12-07
일전에 교육부의 어느 한 분이 중소학교에서 남자애들의 녀성화 현상을 두고 개탄하면서 이런 현상은 조속히 개진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실로 적시적이고 지당한 지적이라고 해야겠다. 조금만 주의를 돌린다면 주변에서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이를테면 요즘 남자애들은 키꼴은 후리후리하나 지구력과 의지력이 약해서 달리기 등 운동에 뒤떨어져있고 얼굴은 말쑥하나 건강미가 적으며 수다는 많지만 자신심이 부족하여 녀자애들처럼 곧잘 수집음을 타군 한다…   알다 싶이 축구는 세계적인 운동으로서 세계 축구계의 진입은 수많은 중국인들의 꿈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그 념원은 쉽게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왜냐 하면 14억이란 인구비례에 비하여 진정 축구를 즐기는 열광적인 축구인들과 팬들이 적기 때문이다. 대국이란 이름과 달리 우리 나라에서 축구에 종사하는 인원수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턱없이 적다. 솔직히 일본이나 한국 등 나라의 남자애들은 학창시절부터 축구를 즐기고 그것을 남자의 운동과 하나의 자존심으로 여기고 있지만 우리의 적지 않은 애들과 학부모들은 축구, 그 자체를 학업과 련계시키면서 그런 운동은 소위 ‘지력이 낮은’ 애들이나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때문에 이웃나라들의 축구 성적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반면 우리의 축구 수준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 얼마나 한치보기 편견들인가?   물론 남자애들 녀성화 문제는 축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들 양육문제에서도 우리의 부모들이 찾아볼 점들이 적지 않다. 일부 부모들은 애들을 온실의 화초로 간주하고 그냥 얼룩 한점 묻을세라 곱게만 키우고 있다. 그들은 애들의 학업성적 제고와 영양 개선에는 온갖 심혈을 몰붓지만 로동이나 체육, 의지단련…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여 우리 애들 속에는 밥을 지을 줄 모르고 옷을 씻을 줄 모르며 체육에 뒤전인 애들이 많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부 엄마들은 아들애를 다섯살, 지어는 소학교 입학할 때까지 목욕을 시켜주고 잠자리도 함께 하면서 녀자애들처럼 꾸며주고 있다. 이를테면 파마를 시키고 연지곤지 찍어주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혀서 가끔은 애들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착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여기서 잠간 오래전에 읽었던 〈승냥이 아이〉란 일화를 곁들고 싶다. 어릴 때 승냥이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한 애가 있었는데 그 애의 생활습성은 승냥이를 많이 닮아있었다. 기여다니고 생고기를 즐겨 먹어서 인간의 본성을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어릴 때 처한 환경과 교육이 십분 중요함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다…   남자애와 녀자애는 성별이 다른 만큼 그 관심과 보살핌, 그리고 교육방식이 분명 달라야 한다. 남자애를 녀자애들처럼 키우면 그 애는 스스로도 ‘본성’과 ‘야성’을 잃어버려 ‘꽃병’으로 될 수는 있어도 ‘대들보’로 되기는 쉽지 않다. 남자애들은 일반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용감하고 뛰기를 좋아하고 특별히 자존심과 승벽심이 강하다. 그들은 녀자애들처럼 까근하지 못하고 치장에 소극적이고 좀 게으르다. 총칼을 즐기는 그들은 유희에서도 늘 서로가 맞서면서 ‘장군’이 되고 ‘리더’가 되려고 옥신각신한다… 현명한 부모들이라면 애들의 이런 본성을 리해하고 존중하고 인도하여 어릴 때부터 기백 있게 키워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남자애들을 ‘꽃’으로가 아니라 좀 거칠고 좀 춥게 또 좀 야박하게 키워 부드러운 ‘조약돌’보다는 풍랑에도 끄떡없는 ‘섬 바위’로 되게 해야 한다.   우리말에 “싸리를 심으면 싸리가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 “가난을 이겨내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명언이 있다. 알다 싶이 발명왕 에디슨이나 천재적인 희극왕 챠플린은 모두가 가난과 기시로 하여 어린시절 훌륭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을 억센 의지로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나중에는 부모들의 관심 속에서 사내라는 그 오기로 세인들이 승인하는 명인으로 되였다.   어느 한 선인은 “남자가 남자다울 때 세상은 평화롭고 그 가정도 화목하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남자는 나라의 기둥이고 평화의 초병이고 가정에서도 역시 대들보나 다름 없다. 고금중외를 막론하고 남자가 약하면 나라가 쉽게 흔들리였고 가정들도 쉽게 깨여졌다. 솔직히 평화의 년대이고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나무’같은 남자들에 더 호감을 갖고 있다. 남자란 굵은 근육을 가진 대장부로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도 나라와 가정, 그리고 녀자들과 약자들을 보호하고저 한다. 그만큼 진정한 남자의 이미지는 절대로 ‘꼭두각시’와 같은 이미지와 뒤섞이지 말아야 한다.   어떤 각도에서 보던지 남자애들의 녀성화는 제창할 바가 아니다. 휘여든 못이 자리가 없듯이 ‘아련해진 남자’들의 설자리는 별로 없는 것이다. 하기에 이제라도 우리의 학교와 학부모들은 병에 따라 약을 쓰듯 남자애들의 심리 특점에 맞게 교육방법을 깊이 터득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강하지만 때론 휘여들 줄을 알고 승벽심이 있지만 때론 리해와 용서도 알고 가끔은 바다처럼 한없이 넓은 마음을 갖도록 남자애들을 육성해야 한다.   남자애들은 강물을 보면 고기를 잡으려 하고 녀자애들은 꽃을 보면 치장하려 한다. 꽃 속에 묻힌 모습도 좋지만 꽃에 물을 주는 모습이 더 보기 좋다고 했다. 남자란 바로 그런 이벤트의 출연자여야 한다.   세상만물은 다 자기만의 특징이 있다. 남자애와 녀자애들의 다른 점을 진정으로 알 때 우리의 교육방식도 질적인 변화를 일으켜 보다 맞춤한 인재들이 육성되지 않을가?   총적으로 남자라면 ‘호랑이’는 못될지언정 ‘고양이’로는 되지 말아야 한다!   길림신문
20    ‘다단계’에 대하여 댓글:  조회:683  추천:0  2020-10-15
국가에서는 ‘다단계’에 대해 일찍 법령을 제정하고 엄하게 타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다단계’의 바람은 좀처럼 숙어들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다단계업은 그 이름을 이른바 듣기 좋은 ‘직매업’으로 교모하게 둔갑시켜 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그 진면모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 실례로 ‘천진권건집단’의 파멸이 그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알고 보니 한때 수십억 정도의 리윤을 창출한다는 권건집단은 결국 ‘직매업’이란 간판으로 다단계업을 벌렸던 집단이였다. 집단의 파멸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다단계’란 여러 층을 통하여 어떤 상품이나 혹은 현금 같은 것을 팔고 사고 저금하는 형식으로 리윤을 창출하고 나눠가지는 것을 말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급이 하급을 두고 그 하급이 또 하급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자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을 말하는데 곧바로 자기의 친척, 친구, 동사자… 지어는 자기의 자식이나 부모에게까지 그 줄이 이어지는데 문제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참여자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가고 가끔 누군가에게는 그 피해폭이 말 그대로 거의 파산의 변두리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물론 국가에서 인정하는 순전한 ‘직매업’들도 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불법적인 ‘직매업’들이 더 살판을 치고 있다.     익숙히 아는 자매가 있다. 동생이 광서 계림에서 다단계업에 종사하다가 언니에게도 그 줄을 뻗쳤다. 결국 그들은 다단계업에서 돈을 날리고 옥신각신하다가 그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외국으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어느 한 남성은 피땀으로 번 십여만원의 돈을 저금형식의 방식으로 어디엔가 투자했었는데 한때 그는 돈이 쏠쏠 들어오는 재미에 빠져 적지 않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끌어들였다. 허나 좋은 시일은 별로 오래가지 못하고 말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잘 입금되던 금액이 종무소식이였다. 사기와 협잡이였다. 땅을 치고 하늘을 탓해도 손실을 미봉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요즘 나에게도 이런저런 면목으로 ‘치부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실례들을 보았고 더우기 량심적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을 속일 수가 없어 끄떡없이 도리머리질 한다. 하여 나에게 용기가 없고 투자술을 모르는 ‘바보’라는 딱지가 따라 붙고 있다. 하지만 바보여도 나는 세상에 공것이 없다는 도리는 어디까지나 알고 있다.   하늘에서 가끔 운석은 떨어져도 금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공것이 없다”는 속담이 그른 데가 없다. 간혹 불의재물이 생긴다고 해도 그것은 내 것이기 앞서 ‘바람의 재물’이나 다름 없다. 복권에 당첨되고도 다시 가난뱅이로 전락되는 사람들의 실례가 그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선물’은 아무에게나 차례지는 것이 아니다. 알고 보면 땀으로, 지혜로 만들어낸 ‘선물’만이 진정 자기에게 속하는 것이고 달콤한 ‘과실’이고 ‘영양품’이다. 투자를 하려면 용기와 모험, 결단도 필요하지만 더우기 명지한 사색과 깊이 있는 조사가 필요하며 그리고 원칙과 법에 대해 깊은 료해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조직하여 설명회…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누가 얼마를 벌었다고 자꾸 선동하고 긴 선을 만들어가는 것은 다 그들로서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마치도 로련한 낚시군이 미끼에 신경을 쓰듯 말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황금꿈’에 물젖어있다.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이제는 분명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를테면 만원을 넣으면 본전을 내놓고 만원을 번다면 더없이 ‘화려한 유혹’으로 다가오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그것은 그 얼마나 황당한 ‘금융리론’인가?   ‘다단계’란 텅 빈 심령에 대한 현란한 유혹이고 미끼로서 왕왕 뒤에 따르는 것은 살점을 도려내는 아픔이고 후회이고 ‘불협화음’이다. ‘다단계’의 피해자는 대부분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가? 그만큼 ‘다단계’는 ‘바이러스’와 ‘온역’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도 굳이 목숨과 신용마저 팽개치고 인생에 도박을 걸 필요가 있겠는가?   하늘의 달은 내 것이 아니고 바람의 울부짖음은 내 목소리가 아니란 말이 있다. 욕심이 지나치면 ‘불’이 되고 ‘칼’이 된다. ‘금전꿈’에 넘쳐 량심을 속이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결국 언젠가는 돌을 들어 제 발등부터 깨고 만다. 나를 속이지 말고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기본리치란 걸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길림신문 
19    쓰는 지혜 댓글:  조회:759  추천:1  2019-08-27
[두만강칼럼] 개혁개방을 거쳐 우리들의 물질생활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먹고 입는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되고 보다 높은 초요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일부 사람들 속에서 ‘과소비경쟁의식’이 싹트면서 모든 것을 돈으로 헤아리는 습성이 생겨나고 있다. 일전에 필자는 어느 한 혼례식에 참가한 적이 있다. 수많은 혼례식에 참가했지만 그 혼례식에 참가하고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가관이였다. 혼례식에 동원된 차량은 몽땅 ‘벤츠’표였는데 적게 쳐도 12대는 되였다. 그런가 하면 신랑측에서는 신부측에 8만원짜리 은행카드를 선물하고 신부측에선 신랑에게 2만원짜리 손목시계를 선물하였다… 두 집이 다 엄청 잘산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신부측은 별로였다. 신랑측의 ‘혜택’에 신부측에선 ‘이를 옥물었던 것’이였다… 좀만 주의를 돌리면 이런 격에 맞지 않는 과소비현상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외국나들이가 성행되면서 일부 조선족 농민들은 황금같은 땅마저 서슴없이 버리고 무작정 도시에 집을 사고 들어와서 ‘도시인’으로 되였다. 그러다가 생활난에 쪼들려 재출국을 하고 있으며 누군가가 ‘쏘나타’를 사니 자기는 미숙한 운전수준이면서도 ‘마쯔다’를 사고는 우쭐대다가 엄중한 교통사고를 내고 진짜 빈털터리로 물앉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연길시 교외의 어느 한 농민은 도시건설계획에 들어선 대가로 토지양도비 오십여만원을 받고 그 보상금을 몇년 사이에 흥청망청 다 써버리고 부득불 해외로무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함구무언했다. 그야말로 부자에겐 잔돈도 금으로 보이나 빈자에겐 거금도 잔돈으로 보인다는 말이 틀린 데가 없는가부다. 솔직히 진짜 ‘부자’로 되기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구만 팔천리인 것 같다. 진짜 부자들은 생활이 아주 검소하다. 그들은 신근한 로동과 절약정신으로 돈을 모으고는 알맞게, 그리고 값지게 돈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빌게이츠는 갑부이지만 옷차림이 수수하고 려행 시엔 특등 좌석을 거부하지만 해마다 사회에는 수많은 재산을 기부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빌게이츠와 같은 삶을 살 것을 바라지는 않으며 솔직히 ‘그랑데 령감’같은 수전노도 찬성하지 않는다. 소비가 줄어들면 시장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그만큼 경제도 침체상태에 머문다는 도리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벌기도 해야 하지만 일정한 조건하에서 향수도 해야 한다. 잘 먹고 잘 입고 즐겁게 사는 것은 삶의 목적의 하나인 만큼 무턱대고 나무랄 수 없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언제부터 일부 사람들이 없으면서도 있는 티를 내고 지어는 빚까지 지면서 통이 큰 이벤트를 벌리고 있다는 점이다. 알고 보면 축제도 결국 소비의 일종 방식이다. 아이보다 배꼽이 더 큰 소비행위는 되도록 근절되여야 하지 않을가? “내물이 모여서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서 바다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했고 “독에 쌀이 가득하면 근심걱정이 없다”고 했다. 보다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위해선 오밀조밀 타산하고 저금하고 투자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버는 것이 지혜라면 씀씀이는 일종의 ‘예술행위’가 아닐 수 없다. 여유를 모르고 번 것 만큼 몽땅 써버리는 것은 유아의 의식상태이고 ‘하루살이 삶’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부자리 보고 발을 펴고”, “가마를 보고 쌀을 앉히라”고 했다. 경제생활에서 처지를 알고 수준 맞는 소비를 하라는 좋은 충고가 아닐가 싶다. 부자는 언제나 신선한 아이디를 찾아 헤매고 빈자는 언제나 음식과 놀이를 찾아 헤맨다는 말이 있다. 부자가 되는 것은 험산을 오르듯 힘겨운 려정이지만 빈자가 되는 것은 나무잎이 떨어지듯 순간이라고 했다. 술을 잘 마시고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서 우수한 민족으로 되는 법은 없다. 진정 우수한 민족은 페물도 보물처럼 굴려서 사회를 위해 보다 충족한 가치를 창출하는 민족이다. 이제 날이 갈수록 빈자가 설자리는 협소해질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는 빌게이츠를 비롯한 부자들의 ‘린색함’과 ‘절약정신’을 비웃지 말고 허심하게 따라배우고 그들과 같은 ‘신사, 숙녀’가 되기에 노력해야 한다. 신근한 로동이 물질을 만든다면 그 물질은 명지한 지혜가 재배한다. 쓰는 지혜를 알 때 ‘부자’가 되고 ‘명인’이 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가 있다. 쓰는 지혜, 그것은 영원한 경제생활의 ‘철학’이다! 길림신문/맹영수(수필가)
18    믿음 리해 그리고 용서 댓글:  조회:1374  추천:8  2014-07-21
언제부터인가 조선족들의 출국이 잦아지면서 기러기생활를 하고있는 가정들이 적지않다. 장시간의 별거생활은 스테레스를 만들고 심심건강을 해치고 나아가서 쉽게 사람들로 하여금 궤도를 벗어나게 한다고 했다. 확실히 요즘 일부 사람들은 믿음과 리해 그리고 용서를 망각하고 서로를 의심하고 원망하고 복수하는 그런 장면들을 연출하기도 한다.   출국으로 해서 6년을 별거한 부부가 있었다. 일편단심 안해의 충성을 요구하던 남편이 한국간지 3년만에 고독을 못이겨 이성을 사귀였다. 얼결에 그 사실을 안 안해는 배심감과 허탈감에 몸을 떨다가 자신 역시 어느한 이성과 거래를 하게 되였다. 물론 둘다 시초부터 가정을 깨려는 그런 맘은 없었다. 허나 서로가 마주앉았을때 안해는 리해와 용서로 다가섰지만 남편은 이게 어디될 말이냐며 천길만길 뛰였다…또 어떤 안해는집에 있는 남편을 믿지 못하여 친우와 친척들을 동원하여 늘 남편에게 포위망을 좁혔다. 그러다가 남편이 안마방에서 나온적이 있다는 사실에 길길히 뛰더니 결국 남남이 되였다…   솔직히 부부란 마주보면 무촌이지만 돌아누우면 남이라고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맘에서도 멀어진다고 장시기 멀리 떨어져있다보면 서로에대한 신임과 리해가 깨지고 용서가 쉽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부부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말을 나눈 시간이 제일 긴 사이이다.더우기 부부사이는 사랑의 결정체인 자식으로 해서 끊을래야 끊을수가 없는 사이이다. 그만큼 그들사이는 조금만 리지적으로 나온다면 적지 않은 모순은 쉽게 풀릴수도 있는것이다.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고 했다. 감정으로 만들어진 사람인만큼 가끔 바람에 흔들리고 흔들리다간 넘어질수도 있는것이다. 하지만 흔들림끝엔적지 않은 사람들은 성숙되고 각성한다고 했다.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고 지어는 착오도 질수가 있는것이다. 알고보면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했다. 책대로 살고싶지만 책대로 살수 없는게 인생이라고 서로를 감싸주고 서로를 용서해가면서 보듬다 보면 금시 리혼으로 치닫던 가정도 다시한번 소생의 기회를 맞지 않겠는가?   속담에 어깨를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그많고 많은 사람중에 부부란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고 연분인가? 솔직히 가족이 서로 아껴주고 화합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때가 이 세상 제일 보기좋은 모습이고 나름대로 인생의 삶도 성공한 삶으로 된다고 했다. 물론 살다보면 때론 유감도, 미움도 지어는 증오도 생겨서 다른 누군가가 그립고 부러울 때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보면 낡은 신발을 신을때처럼 아마 사람도 옛사람이 더 그립고 편해지지 않을까?   이제 출국은 막을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신임과 리해, 그리고 용서를 안다면 그어떤 풍랑도 이겨낼수가 있는것이다. 비온끝에 무지개가 비낀다고 했다. 보다 화목하고 완만한 조선족가정들이 샛별처럼 반짝이길 진심으로 기원하고싶다. 해란강닷컴 2014-7-18
17    여물지 못한 사람을 두고 댓글:  조회:1820  추천:7  2014-07-07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사람됨이라고 했다. 인간으로서 수양과 자질이 모자라면 제아무리 지식이 많거나 재부가 많아도 사람들의 환심을 사지 못하고 환영을 받지 못한다.   일전에 어느 한 모임에 갔다가 몇몇 여물지 못한 인간들을 보았다. 누군가 필자가 글을 좀 쓴다고 하니 일행중 어느 한 사람이 자기도 글을 쓰는데 자칭 기자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술잔을 드는데 그 사람이 하는 행위가 도무지 기자행위가 아니였다. 자리에 낮모를 녀성들도 있는데 헤프게 자기자랑을 하고 육담을 하는것이 같은 남자로서도 어딘가 난감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곁사람을 쳐서 물어봤더니 기자인것이 아니라 어느 신문사의 통신원에 불과했다. 순간 익지 않은 개살구에 체한듯 기분이 씁씁하기 그지 없었다.   (왜서 저럴가…)   살다보면 이런 여물지 못한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됨을 어쩔수가 없다. 특히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중에 자기보다 지식이나 신분이 높거나 더우기는 아름다운 녀성들이 보이면 스스로 허풍치기로 자기신분을 높이군 한다. 이를테면 문지기를 하면서도 보위과에 있다고 하는가 하면 보안을 하면서도 경찰이라고 스스로 올리추고있는데 그야말로 철면피하다고 하지 않을수가 없다.   우리말에 종이로 불을 쌀수가 없다고 했다. 거짓은 언젠가는 꼭 들통나고마는것이다. 그만큼 가령 어느 날엔가 사람들앞에서 진면모가 드러난다면 한때의 허명을 위하다가 결국엔 쥐구멍을 찾는 그런 신세가 되여 그 얼마나 부끄러운 일로 되겠는가?   곡식은 여물수록 머리를 숙인다고 했다. 진정으로 지식이나 수양, 자질이 높은 사람은 허풍을 치지 않으며 늘 진실하고 겸손하다. 어찌보면 알듯말듯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더 허풍을 치고 자랑을 하고 꾸미기를 좋아하고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관심과 존중을 받기를 원하고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식, 수양, 자질이 안받침되여야 한다. 솔직히 한 사람의 사람됨은 스스로의 자랑으로 되는것이 아니라 옆에서의 긍정과 인정속에서만 이루어지는것이 아닌가.   잘 익은 열매는 겉도 보기 좋지만 안은 더 곱다고 했다.  하기에 진정 누군가의 긍정과 관심을 받고싶으면 입보다는 가슴부터 익는 그런 사람으로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래란강닷컴 7월 7일자  
16    옷차림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1796  추천:4  2013-08-28
                                                                   옷차림에 대한 단상                                                                               맹영수 인류의 발전력사를 보면 초기의 인류는 실한오리 걸치지 않고 그냥 라체로 살았었다. 그 영향으로 해선지 지금도 일부 아프리카의 토착민들은 풀잎따위나 혹은 끈으로 일부 은밀한 부분만 가리우고 원시인생활을 하고있다. 그만큼 그들에겐 이성적 매력이나 부끄러움따윈 별로 존재하지 않고있다 . 그로부터 볼수 있는것 처럼 현재 인류의 옷차림은 인간 지혜발단의 한 측면이 아니겠는가 . 환경에 따라 벗고 살아도 능히 살수가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왜서 굳이 돈을 팔면서 옷차림을 해야 할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말할수가 있고 사색을 할수가 있는 고급동물이다. 다시말해서 인간은 아름다움을 알고 남녀간의 구별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이다. 그밖에도 인간이 옷차림을 하는 리유는 대개 네개 방면에 있다고 느껴진다 . 첫째로 인간은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옷차림을 하고있다. 고온이나 엄한…등에 대비하기 위해 인간은 옷차림으로 자기를 보호해야 한다. 둘째로 인간은 바른 례의를 지키기 위해서 옷차림을 하고있다. 인간은 남녀구별을 알고 속되고 야한것에 수치심을 알기에 적당한 옷차림으로 그러한것을 배제 하고있다. 세째로 인간은 옷차림으로 자기의 개성을 나타내고있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부동한 차림을 한것은 옷차림으로 자기의 개성을 밝히는것과 다름없는것이 아니겠는가? 네째로 옷차림은 사회적신분을 나타낸다. 이를테면 군복은 군인신분을 교복은 학생신분을…필자는 옷을 입는 리유가 대개 이상 네가지리유가 아닐가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리를 걷다보면 요즘 세상엔 상술한 리유외에도 또 다른 리유가 따르지 않는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누군가 여름은 로출의 계절이고 시각의 계절이라더니 거리에서나 혹은 공공장소에서 시원한 옷차림들을 종종 볼수가 있다. 미끈한 다리를 자랑하듯 녀성들의 짧은 바지들과 그에 어울리는 상의는 어느정도 여름의 거리에 상쾌함과 아름다운을 받쳐주고있다. 그러나 뭐든 한계가 있다고 지나친 로출은 자신의 품위를 망가지게 하는 천박한 유혹으로 밖에 더 볼수가 없다. 입은것인지? 아니면 벗는것인지? 그렇찮으면 걸친것인지?... 며칠전 필자는 친구와 함께 청년광장을 거닐다가 바로 그런 야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지에 서서히 어둠의 장막이 내릴쯤이면 강변에 잇닿은 마루광장에서는 은은한 원무곡이 울려퍼지군 한다. 원무곡에 맞춰 쌍쌍히 돌아가는 춤군들속에서 나는 오십대의 한 녀성이 미니 치마를 입고 돌아가는것을 보게 되였는데 치마 길이가 어찌도 짜른지 움직일 때마다 팬티마저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창 물덤벙 술덤벙 하는 십대나 이십대들이라면 그쯤에서 청춘의 오기와 광열로 보아줄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성숙되고 안정된 오십대 녀성이 그런 옷차림을 했다는 자체에서 나는 도무지 변명의 끈을 풀수가 없었다. 맹목적인 류행이라할까? 생각이 없다고 할까? 아니면 오망이라할까?... 솔직히 나이와 녀성이라는 신분마저 모르는 이런 사람에게 생각이 있은들 어찌 건전한 생각이 나올까? 옷차림은 하나의 류행이면서도 하나의 신분에 대한 상징이라고 했다. 솔직히 서양의 옷차림은 몸매를 두드려지는데 있다면 동양의 옷차림은 전통적으로 감추려하는데 있다고 했다. 그 실례로 우리민족의 전통적 한복이 바로 그런 류형에 속하고있다 . 지금은 글로벌세상이다. 그만큼 옷차림 역시 세계적 조류에 따라가야 한다고 느껴진다. 허나 서양과 동양은 필경 다르고 민족과 민족은 필경 다르고 사람과 사람사이도 필경 다르지 않겠는가? 남이 입었다고 해서 자기에게도 고운것이고 어울리는것이 아니다. 옷차림은 그야말로 사람에 따라 하나의 아름다움이고 예술이 아니겠는가? 때론 가장 보수적이고 전통적인것이 가장 어울리고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맹목적인 류행보다는 자기의 몸매와 자기의 나이, 그리고 자기의 신분에 맞는 옷차림이 가장 아름답고 편하고 즐거운 옷차림이 아닐까? 천자만홍이 피듯 알룩달룩 아름다운 옷차림으로 우리의 거리가 보다 아름답고 우리의 시선이 보다 즐겁길 소원해 본다
15    남자의 눈물 댓글:  조회:1756  추천:3  2013-06-27
∙수필∙ 남자의 눈물 맹영수 누구를 물론하고 인생의 첫시작은 눈물로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인생은 눈물속에서 마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생은 어쩌면 눈물속에서 엮어지는 한편의 장편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눈물은 정감의 발로이고 령혼의 정화로서 거기엔 배려와 사랑, 그리고 그어떤 웨침이 들어있다. 때론 그 어떤 미사려구보다 눈물 한 방울이 령혼을 치고 심장을 쳐서 만경창파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만큼 눈물은 누구를 물론하고 소중한 감정이고 또한 녀자만의 전용물도 아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눈물을 보이면 왠지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기도 한다. 남자는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남자라면 무조건 강해야 한다는 그 어떤 강박관념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옭매고있다. 그러나 살다보면 하늘이 까매지고 산이 요동치고 바위도 갈라지는데 남자라고 어찌 넘어지고 상처가 생기고 아파하고 때론 매몰되지 않을가? 알고보면 남자는 강철로, 바위로 그리고 목석으로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피와 살로 만들어진 평범한 인간일뿐이다. 그만큼 남자에게도 희로애락은 여전한것이다.   일찍 소학교시절 나는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한 자신을 짝사랑한 한 녀인을 위하여 조용이 눈물을 흘리는것을 목격했었다. 늘 근엄해서 재미없다고 여겼던 아버지여서 당시 나는 약간 당혹한 시선으로 아버질 바라보기도 했으나 한 녀인을 위하여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의미로 눈물을 짓는 아버질 보면서 처음으로 눈물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되였었다. 어쩌면 그날의 눈물이 있었기에 미남이고 당당한 과장이였던 아버지가 자신에 비하면 겨우 눈 뜬 소경이나 면한 어머니와 흔들림 없이 평생을 함께 할수가 있었던게 아니였겠는가?   그후 성장과정에서 텔레비죤화면을 통하여 전쟁에서 큰 아들을 잃고 비감에 잠긴 주석의 모습과 더우기는 사천지진참사앞에서 눈물로 재건을 웨치는 총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나름대로 눈물의 진미를 한층 더 느끼게 되였다. 결국 알고보면 감정앞에선 위인도, 남자도 따로 없었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가 사는 진실한 모습이였다. 다만 주위를 의식하여 녀인들처럼 땅을 치고 넋두리를 하지 않고 가슴으로 울고있었지만 거기엔 나라와 인민, 그리고 자식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호소력이 숨어있었다.   누군가 눈물을 모르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만큼 눈물을 모르는 남자를 어찌 진정한 남자고 진정한 아버지라고 할수 있을가? 이제 시대는 서서히 변하고있다. 남자도 더는 목석이 아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하직하였을 때, 나라에 큰 근심거리가 생겼을 때, 자식을 한발 앞세웠을 때, 그리고 한생을 함께 한 안해가 불치의 병에 걸렸거나 혹은 한발 앞서 갈때 남자도 가슴을 쪼개고 꺼이꺼이 호곡을 터뜨릴수가 있지 않을가? 어쩌면 그런 남자야말로 생활과 감정에 진실한 남자가 아니겠는가? 이제 더는 울뚝불뚝 근육과 매서운 눈초리만이 남자의 카리스마가 아닌것이다. 눈물은 절대 약자의 표현이 아니다. 눈물로 하는 대화, 그속에는 애틋한 추억이 깃들어 있고 절절한 그리움이 깃들어 있고 아름다운 사랑이 깃들어 있고 깨끗한 량심이 깃들어 있다. 알고보면 눈물없는 남자가 더 쉽게 가정을 버리고 더 쉽게 부모를 버리고 더 쉽게 고향을 버리고있다.   시대가 변하고있다. 목석같은 무감감 보다는 어느정도 부드럽고 자상하고 자애롭게 표현하는 남자의 모습이 더 정겹고 매너있는 모습인것이다. 알고보면 자연도 때를 맞추어 비와 바람 그리고 눈송이를 만들면서 나름대로 감정조달을 하고있다. 하다면 남자라지만 륙정칠욕을 갖고있는 인간으로써 어찌 늘 담담한 모습만 보일수가 있겠는가? 때론 눈물로 엮는 사랑이 더 달콤할수가 있고 눈물로 씻는 상처가 더 빠르게 치유되고 눈물로 쌓는 행복이 더 아름다울수가 있다는 도리를 우리는 잊지말아야 한다.   솔직히 어떤 의미에서 보면 눈물은 려명전의 밝은 미소일수도 있는것이다. 그만큼 무작정 곤혹을 꿍져넣고 가기보단 가끔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눈물을 보이는 그런 남자야말로 진정 나름대로의 스찔과 위트가 넘치는 이 시대의 매너남이 아닐가?
14    고 향 달 댓글:  조회:1486  추천:5  2013-06-07
고 향 달   □ 맹영수     단풍이 완연히 물드는 작년 가을 친구는 일본류학과 취직생활 20여년만에 두번째로 고향을 찾아왔다. 친구가 처음 고향을 찾았을 때는 10년전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향은 울긋불긋 굴뚝집들이 가득했고 거리도 매미굴처럼 비좁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새 고향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즐비한 고층건물과 물결치는 승용차흐름, 그리고 사방으로 쭉 뻗은 대통로…물론 친구가 사는 세계적인 도시 도꾜에 비하면 많이 촌티가 흐른다고 할수도 있지만 그러나 현급 도시치고 이만한 변화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아닐가싶었다. 친구도 그것을 감지했는지 우중충한 건물앞에서 수시로 걸음을 멈추었고 때론 찰칵 샤타를 누르면서 무시로 여기저기로 시선을 굴리기도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그새 친구는 10년전보다 또 다른 사람으로 변해졌다. 친구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깍듯이 90도 경례를 했고 붉은 교통신호등이면 목석처럼 자리를 지켰고 택시에서 내릴 때도 꼭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이제는 친구도 세월의 흐름과 환경지배속에서 완연히 서양신사의 품격을 갖춰가고있었다. 그러나 좋은 매너는 그냥 그쯤에서 머물고말았다. 그날 저녁 고향친구 몇이 류학친구와 마주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 술 한병이 제꺽 굽이 나고 두번째 병이 올랐다. 우리 민족은 종래로 술상에서 우정과 인정을 돈독히 하는 관습을 갖고있다. 하물며 쉽지 않은 만남의 장소라 술 두병 갖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친구가 술 한병을 더 청하려고 하자 류학친구가 손을 저었다. 지금도 그 술문화냐고 하면서 일본과 비교하면 참으로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고 했다. 위생이 어지럽고 교통이 혼잡하고 공기가 맑지 못하다면서 …이래저래 남의 말을 하듯 고향의 허물을 찼고있었다. 눈살을 찌프리면 모든게 작게만 보인다고 친구의 시선에는 고향의 큰 모습보다는 잔모습들이 더 안겨들고있었다. 분명 친구와 우리 사이에는 무형의 그 어떤 장벽이 막혀있는듯싶었다. 결국 술자리는 기대와는 달리 그냥 일상적인 모임처럼 끝나고말았다. 친구와 갈라진 나는 옆에 멈춰서는 택시를 뒤로 하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웬지 친구가 야속스러웠다. 물론 있는 흠이라 굳이 변명하고싶지는 않지만 욕은 듣는 사람이 먹고 매는 앞 사람이 맞는다고 좋은 장소에서마저 꼭 그런 흠집을 찾는 친구의 소행에 어딘가 유감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새 친구는 신사적인 서양문화를 습득한 대신 따뜻한 우리만의 인정과 풍토 그리고 례절을 잃어가고있는듯싶었다. 솔직히 간만에 만난 친구사이에 좀 술이 과한들 어떠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술은 그냥 술이기에 앞서 우정이고 인정이고 애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고향모습이 조금 초라한들 또 뭐라냐? 초라하기에 끝없이 탈피를 하고 도약을 꿈꾸지 않는가? 누군가 어머니 모습이 아무리 궁한 모습이라도 자식에겐 어머니가 영원히 하나라고 했듯이 누구에게도 고향은 하나가 아닐가? 그만큼 고향이라는 어머니품이 없었다면 어찌 당신들의 오늘이 있을수가 있겠는가? 피는 속이지 못하고 뿌리는 끊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국민당의 리종인선생도, 리사광 지질학자도 미국과 유럽 나라들의 호화스런 대우와 끝없는 만류도 뿌리치고 가난하지만 뜻이 있는 자기의 나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고향에서 한줌의 재로 될지언정 이국의 원혼은 되지 않으려는 그들의 애국심은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는가. 어느 한 시인은 고향을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읊조리였다. 참으로 지당한 비유가 아닐가싶다. 솔직히 고향이라는 그 자궁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오늘날 이처럼 풍만하게 발육하고 성장될수가 있었겠는가? 물론 아직은 총체적으로 서방이나 이웃나라인 한국이나 싱가포르에 비하면 국민복리나 국민자질이 어느 정도 낮은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건 과정이 수요되고 시간이 필요되지 않을가? 자본주의란 과도기가 없이 직접 봉건사회로부터 사회주의로 진입하고 그새 또 10년 대동란을 거친 우리 나라가 아닌가. 단술에 배를 불리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단번에 치유되는 법이 없다. 알고보면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국가도 없는것이다. 아무리 발달한 국가라도 어느 한 면이 우월하면 다른 한 면은 꼭 부족한데가 있는것이다. 하기에 어느 정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선 국가관부터 정확히 가져야 하지 않을가? 부유하면 정착하고 가난하면 떠난다면 우리는 영원히 쪽박신세와 류랑신세를 면치 못하고 이방인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예로부터 제 집 허물을 밖으로 돌리지 않는다고 했다. 때론 덮어감춤도 하나의 생존의 방식이고 원견성있는 판단이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우리 민족도 이제는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그런 삶보다 그리고 쟁개비 끓듯 단숨에 끓는 그런 삶을 떠나서 한족들을 본받아 나무처럼 한곳에 뿌리박고 좀더 느긋한 여유를 가지는 그런 삶을 선택함이 옳지 않겠는가? 아무리 글로벌 세상이라도 어쩔수 없는것이 귀소본능이라고 누구에게나 조국은 하나고 고향도 하나여서 언젠가 그곳을 찾을지도 모른다. 잘나도 내 부모님이고 못나도 내부모님이고 잘살아도 내 부모님이고 못살아도 내 부모님이란 말이 있다. 우리도 언녕 가난의 때벗이를 하고 부유를 향해 달려가고있다. 그 위대한 현실앞에서 무엇이 더 부럽고 무엇이 창피하고 또 무엇이 두려운가? 늦가을 밤하늘 풍경이 내 시선으로 무작정 뛰여들었다. 뭇별이 척 드러누운 청청 밤하늘에서 속눈섭같은 고운 초생달이 수줍은 색시마냥 발볌발볌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고있다. 이제 저 초생달이 지고나면 고향의 하늘엔 기필코 쟁반같은 보름달이 황홀한 교태를 머금고 떠오를것이다. 분명 나는 벌써 그 달에서 고향의 미래를 보고 엄마의 모습을 보는것만 같아 마음이 부푼다. 이제 고향에 그 달이 떠오르는 날. 나는 멀리 이국에 있는 친구에게 새롭게 변한 고향의 소식을 전하고 더불어 사랑하는 고향을 위해 거듭 안녕과 부강을 기원할것이다.
13    신장콤플렉스 댓글:  조회:1171  추천:4  2013-05-13
신장콤플렉스 맹영수 언젠가 딸애 또래의 말을 들어보니 현대 남성은 적어도 신장은 1메터 75센치메터, 체중은 적어도 70~80킬로그람쯤은 되여야 정상인데 신장이 1메터 68이하이면 반편이나 다름없다는것이였다. 그러고보니 웬간한 녀성들과 비해도 크다는 소릴 못듣는 나는 브랜드와는 구만구천리나 떨어진 렴가상품이나 다름없는 등외품이였다. 솟구치는 설음에 땅을 치며 누군가를 탓하고도싶지만 그것이 바로 내 운명이였다. 극력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면 아버지가 마신 술과 그 세월이나 탓할지? 사실 맹씨네 유전력사를 보면 “소인”이 별반 없었다. 멀리는 둘째치고 사촌들과 우리 가정을 놓고 말해도 그렇다. 부모님들도 모두 정상 신장을 가졌고 사촌들은 남녀를 물론하고 완전 꺽다리였고 우리 가정에서도 내가 제일 작은 축이니 말이다. 그러니 내가 아버지의 술과 당시 환경을 탓하는것도 어쩌면 너무 무리인것 같지는 않다. 나는 나라적으로 기황에 시달리는 60년대에 태여났다. 3년 자연재해와 “문화대혁명”에서 주자파로 몰린 아버지 그리고 “연변병원”에 갇힌 엄마와 누님으로 하여 작은 누님과 함께 여기저기 피난생활을 하면서 눈치밥을 먹어선지 당시 나는 또래 애들보다 키가 한뽐이나 작았었다. 그렇지만 소학교시절에 나는 머리 큰 애들을 누르고 반장을 한적이 있었다. 당시 반장이면 체육시간에 자기 반 애들 오른쪽에 서서 대렬을 지휘하군 했는데 내 옆에는 하필이면 학급에서도 제일 큰 1메터 60센치메터도 넘는 녀자애가 서있어 당시 내 모습은 당나귀와 노새사이를 방불토록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설상가상이라더니 그런 신장콤플렉스는 성인이 될수록 나를 더 괴롭혔다. 과격한 내 자존심때문에 리상적인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지만 때가 되니 내게도 여기저기서 혼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콤플렉스로하여 괜찮은 혼사는 이래저래 성사되지 못하고말았다. 아무튼 신장콤플렉스는 그후에도 늘 감기처럼 내 몸에 칭칭 감겨들면서 이래저래 지꿎게 나를 괴롭히였다. 언젠가 직장에서 조직한 할빈려행에 동생과 함께 간적이 있다. 동생과 나는 차이가 일곱살인지라 얼굴만 봐도 그 사이를 짐작할수가 있었으련만 당시 호텔주인은 덩치가 더 우람지다는 리유로 동생을 형으로 착각하고 더 깍듯이 대했었다…솔직이 그런 대접을 받을 때면 기분이 별로였다. 말 그대로 고무줄이라면 당금이라도 그 자리에서 쫙 늘구고싶었다. (쳇, 사람들이 눈에 콩깍지가 씌여도 한참이나 씌였지, 그래 키큰 놈만 잘난 놈인가? 단신중에도 괜찮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걸…) 매양 그런 일을 겪을 때면 나는 아Q정신으로 자기를 위안하며 극력 단신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언젠가 독서를 하다가 정말로 명인들에게도 나와 비슷한 콤플렉스가 있음을 알고 스스로도 엄청 놀랐었다. 프랑스의 나뽈레옹은 신장이 1.58메터밖에 안되고 이스라엘 첫 총리 토로페는 1.50메터밖에 안되고 로씨야 대통령을 지녔던 메드베데프는 1. 62메터이고 팔레스타인 해방조직 의장이였던 아라파트는 1.55메터이고 프랑스대통령 사르코지는 1. 68메터밖에 안되였다. 결국 알고보니 이런저런 콤플렉스는 명인에게도 례외가 아니였다. 문제는 그런 콤플렉스가 따랐건만 그들은 무너지지 않고 명인으로 되였다는 그것이였다. 우리 말에 멀대없이 크다는 말과 작은 고추 맵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크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것이 아니고 작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것이 아니란 말로 해석해도 될것 같다. 동물세계를 보면 기린은 키큰만큼 높은 곳의 나무잎도 쉽게 먹어치우지만 발밑의 풀은 인차 먹지 못하거나 아예 먹지 못한다. 반면에 다람쥐는 작지만 약삭빠르게 땅에 자란 풀과 높은 곳의 열매도 척척 따먹고있다. 그만큼 모든것은 상대적이라고 작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것은 아니였다. 솔직히 부모가 자식을 선택할수 없듯이 자식도 부모를 선택할수가 없는것이 우리의 인연이다. 물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지만 세상에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때는 그런 좋은 일이 있다면 얼마나 있을가? 사람이 살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콤플렉스와 징크스가 뒤따르는것은 인지상정이다. 사실 세상에는 진(真), 선(善), 미(美)가 통일된 리상적인 경지의 완전무결한 인간은 별로 없다. 그만큼 완전히 만족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별반 없을것이다. 인간의 삶은 왕왕 삶의 적응력과 순화력 그리고 환경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된다고 했다. 알고보면 삶이란 나무에 매달린 고정된 열매가 아니다. 종래로 삶이란 물의 흐름과 같고 행복이란 가꿀줄 알고 누릴줄 아는 사람에게만 속한다고 했다. 하기에 우리는 섭리에 맞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풀어가는 삶의 지혜도 익힐줄 알아야 한다. 현실을 보면 이 세상에는 팔다리가 온전치 못한 불구자들이지만 삶에 애착을 갖고 나름대로 멋지게 살아가고있는분들이 적지 않다. 그에 비하면 단신콤플렉스는 하늘이 무너지듯 그렇게 대단한것도 아닌것이다. 누군가 사람은 다 제 잘난 멋에 산다고 했다. 그만큼 잘났다고 으시댈 필요가 없고 못났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는것이다. 결국 삶이란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자비와 욕심을 떨쳐버리고 맞춤한 짐을 지고 온전한 걸음을 걷는다면 언젠가 우리 단신중에서 또 다른 “나뽈레옹”이 태여날수도 있을것이다. 포장이 번듯해도 실속이 없다면 빛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고 했다. 사실 잘나도 내인생 못나도 내인생이라고 개성미 넘치게 산다면 세상에 찍어놓듯 특별히 못난 사람이란 별로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도 오늘부터 그 짓궂은 신장콤플렉스에 철저한 결별을 통보하고 진정 나만의 풍격이 넘치는 젠틀맨으로 새롭게 태여나고싶다.
12    오 지 독 댓글:  조회:1200  추천:2  2013-05-10
오 지 독 맹영수 우리 집 베란다에는 오지독 몇개가 놓여있다. 아이 여럿을 낳은 농촌아낙의 궁둥이처럼 펑퍼짐한 오지독은 밉살스럽게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있어 딸애는 그것을 볼 때마다 처리해버리라고 푸념질이다. 하지만 촌티가 자르르한 그 오지독에도 그만의 에피소드가 들어있을줄을 딸애가 어찌 알랴? 지금은 고물처럼 보이고 어딘가 외면을 당하는 신세이긴 해도 한때 오지독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련관을 갖고있었다. 사실 20여년전까지만 해도 오지독은 우리들에게 필수품이 아니였던가. 당시 생활이 궁핍한 집일수록 오지독은 명물처럼 꼭 집안 한쪽을 차지하고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물도 오지독에 길어서 채워두었고 쌀도 오지독에 넣어 보관했으며 김장도 오지독에 절구어 겨울을 나군 했다 좀 잘사는 집들에서는 사과배와 사과같은 과일도 오지독에 종이로 싸서 김장움에 보관시켰다. 더없이 기구한 60~70년대에는 어쩌면 오지독은 필수품이면서도 사치품이기도 했다. 당시 오지독이 주렁주렁 놓여있는 집을 들어가보면 그 집 주부의 알뜰함과 윤택나는 삶을 어느 정도 감지할수가 있었다. 아무튼 한때 오지독은 연변사람 더우기는 우리 민족과는 떨어질수 없는 연분을 유지하고있었다. 우리 집도 례외가 아니였다. 내가 태여난 60년대는 전국적으로 자연재해와 인재가 든 년대여서 생활형편이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쌀도 식용유도 솜도…모든것은 표로 공급하던 년대여서 늘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엄마는 기아를 좀 더 덜려고 오지독 마련에 드바쁘셨다. 오지독이 많아야 김장도 많이 담글수가 있었던것이다. 식솔 여덟명인만큼 김장도 많이 담그어야 했다. 가을이 돌아오면 우리 집에서는 해마다 배추 5~6천근, 무우 5~6백근, 파도 백근이상 사들였다. 솔직히 당시 우리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거의 김치로 살다싶이했다. 그러다보니 오지독은 우리 집의 필수품이기에 앞서 보배였다. 그만큼 오지독에 대한 엄마의 정도 말그대로 돈독했다. 당시 엄마는 매번 밥을 짓고는 가마목옆에 놓여진 쌀독을 먼지 한점 있으랴 깨끗이 닦으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 마실을 오는 사람들은 알른거리는 오지독을 보면서 엄마의 알뜰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엄마에게 있어서 오지독은 그냥 오지독을 벗어나 어딘가 가정기물이였고 자식같은 존재였던것 같다. 그렇게 오지독을 애지중지 했지만 엄마는 자식들에게는 조금도 린색하지 않았다. 엄마는 딸 넷이 출가를 갈 때마다 자신이 그동안 로고를 마다하지 않고 사들이고 거두어왔던 오지독들을 한두개씩 내농았다. 어쩌면 그것은 오지독을 잘 거두고 사용하면 그만큼 시집살이를 잘하고 생활도 윤택해진다는 엄마만의 생활법칙이라고나 할가. 그래서 엄마는 80년대중기에 들어서서 세간을 나는 나에게도 오지독 두개를 특별히 선물하였었다. 《이보게 며느리, 이 독을 가져가게. 이 독에 김장을 담그어 날마다 시원한 김치를 먹는다면 자네들의 생활도 어렵잖게 피여날거고 그리고 그 정도 더 깊어질걸세.…》 엄마는 조금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짓고있는 안해를 자애롭게 타이르셨다. 안해는 엄마의 성의를 거역할수가 없어서 오지독을 받았다. 그후로 나는 안해의 손끝에서도 종종 엄마의 맛을 느낄수가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엄마도 하늘나라로 갔지만 안해는 그 독을 버리지 않았다. 엄마의 손맛을 배운 안해는 해마다 엄마처럼 겨울철이면 그 젊은 나이에도 불과하고 배추김치와 무우김치를 담그어왔는데 그 열정은 난방집에 옮겨온 후에도 계속되였다. 아무튼 안해의 덕분으로 하여 나는 6년전까지만 해도 늘 시원한 김치를 맛볼수가 있었고 엄마의 손맛을 느낄수가 있었다. 지금 안해는 멀리 한국에서 가족을 위해 전전긍긍하고있다. 오지독도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 베란다 한쪽구석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가고있다. 하지만 딸애의 말처럼 나는 선뜻 오지독을 처리할수가 없다. 오지독을 보면 저 멀리 어디선가 엄마의 살뜰한 다독임이 들려오고 안해의 미소가 떠오르며 나아가서는 인심좋았던 당년의 모든 사람들이 추억속에 걸어와서 마음이 차분하게 젖어든다. 그만큼 오지독은 순전한 항아리만 아닌것 같다. 물론 오지독은 이제는 한물이 간 상품이다. 허나 돌고 도는게 류행이라고 고물이래서 무조건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다고는 볼수야 없지 않겠는가? 고목에도 꽃이 핀다고 언젠가는 그 고물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 청춘을 회복할는지 그 누가 알랴? 세상일이란 바로 이런것이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버림을 받은듯한 기분속에서 한숨을 뽑아도 래일은 찬란한 태양아래 활짝 핀 웃음꽃을 피울수도 있는것이다. 희망과 행운이란 시시각각 당신옆에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것이 아니겠는가. 어쩐지 오늘따라 오지독에 절군 시원한 배추김치를 놓고 누군가와 소주 한잔을 조용히 나누며 자아성찰을 해보고싶다. 정녕 나는 오지독처럼 우리 민족을 위해 얼마만큼 헌신을 했을가 하고, 한번쯤 스스로에게 묻고싶다.
11    사랑합니다 댓글:  조회:1018  추천:2  2013-05-09
 “사랑합니다!” 맹영수 일전에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이국에 있는 안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중 그는 가뭄끝에 싹이 나듯 어쩌다가 당신, 몸이 고달프면 휴식도 하고 병원도 가보란 말을 했다고 한다. 하늘에서 별이라도 떨어졌나, 잠시 그 안해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련듯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친구의 감성에 의하면 그녀가 이슬방울에 얼굴을 닦고있었다고 한다…나는 친구의 말을 그냥 지나가는 바람처럼 무심하게 보낼 수가 없었다. 왠지 심장 한끝이 쨍 하고 저려났다. 사실 나도 글로는 그리고 타인에겐 별로 아끼지 않고 그런 말을 해주었지만 아무 바람도 없이 말 한마디에도 물보라를 일으키는 안해에겐 한번도 향기나는 이벤트를 해본 기억이라곤 별로 없다...그래설가 얼굴이 짙은 노을로 물들면서 사랑의 함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굴리게 되였다. “사랑합니다!” 근근히 다섯 글자에 불과한 단어이다. 허나 듣는 순간이면 이 세상 제일 감칠맛나고 달콤한 부름이 아닐까? 그 부름소리를 들을 때면 우리의 가슴은 늘 파도가 일고 모닥불로 타오르고 때론 화산폭팔로도 이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사랑이란 옷은 껴입을수록 따뜻해지고 즐거워지고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지는것이다. 하나로 부터 둘로, 둘로 부터 군체에 이르는 우리삶, 누구도 누구를 떠날수없이 서로가 포근히 안아주고 다듬어 줘야 하는 우리삶, 그만큼 이 세상은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부모와 자식, 친구와 동사자, 련인 그리고 스승과 제자…모두가 다정하고 따뜻하여 떠날수 없는 사람들이다. 물과 고기같은 우리 인연의 촉매제-사랑을 떠난 세상은 한시도 상상할수가 없는것이다 어쩌면 “사랑합니다!” 그 말이 있기에 별같은 인연도 이어지고 봄날의 해살같은 따스한 정도 흐르고 가을날의 코스모스처럼 그 맘도 향기로 설레이지 않겠는가? 그만큼 사랑이란 옷은 입을수록 아름다워지고 사랑이란 보약은 먹을수록 힘이 솟고 사랑이란 강은 빠질수록 깊어지는것이다. 사랑이란 부름에는 국가도, 민족도, 종교도, 이성도, 그리고 세대차이도 없는 것이다. “ 사랑합니다!” 그 부름은 평생을 해도 맥이 들지 않고 돈 한푼 들지 않지만 쵸클레보다도 더 달콤하고 해당화 보다도 더 이쁜 밀어이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더우기는 당신 자신을 위하여 가장 감미로운 목청으로 “사랑합니다!”을 웨쳐봄이 어떨가? 정녕 그 시각이면 당신도 이 세상 제일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날것이다.
10    연변가요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3088  추천:9  2013-04-27
연변가요에 대한 단상                맹영수 나는 가요에 대하여 쳬계적인 학습을 못했다. 그만큼 가요에 대한 나의 리론은 말단급 수준이다. 하지만 나는 음악을 즐겨듣고 노래를 즐겨부른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연변가요보다는 한국가요나 조선가요를 더 듣기 좋아하고 즐겨부른다. 왠지 나는 연변음악은 그 음률이 비슷한것이 많고 딱딱하고 거친것이 많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악청이 많고 행진곡 같은것이 많고 서정적이고 정서적이고 부르기 쉬운곡들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느껴진다. 이런 느낌은 나 한사람에게만 국한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내가 알건대 적지 않은 연변사람들이 연변음악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지 못하고있다. 언젠가 딸애또래의 애들과 접촉해 물어본 결과 연변가요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보편적으로 적은 수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연변음악은 아직도 보수적이고 계통적이고 틀에 맻혀 그 범위를 벗어 못나고있다고 하였다. 솔직히 연변은 한국과 같은 발라드나 립…같은 음악은 거의 없고 혹 땐스풍격의 음악은 가물에 콩나듯 비쳐지고있는 실정이다. 트로트 형식의 대중음악도 그 음질이 악청을 동반하는 것이 많아 대중들속에서 쉽게 널리 전파되지못하고있다. 그래서 연변의 많은 사람들은 노래방같은 데를 찾으면 대부분이 한국음악이나 조선음악을 체크해서 부르고있다. 어쩌면 연변가요의 비운이라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물론 나는 연변가요의 발전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또한 맹목적으로 이국의 것을 모방하는 것을 제창하지는 않는다.  연변가요도 연변가요의 특징을 갖고 대중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들이 있는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현시대가요발전의 추세에 비하면 연변가요는 많이 떨어진 감이 든다. 그만큼 더 넓게 발전하려면 자기의 단점을 숨기지 말고 승인하고 개진해 나가야 하는것이다. 필자가 인식하건대 가요창작에서 가장 기본적인것은 작사보다도 작곡이라고 본다. 연변음악인들은 응당 한국의 이승기나 나훈아 등 가수들을 본받아 자기의 음악재질을 한층 업그레해야 한다고 본다. 솔직히 나훈아의 “행복이란” 가사와 이승기의 “나와 결혼해줄래” 같은 가사는 극히 평범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 노래가 한국 나아가서는 우리동포들속에서 널리 애창되는것은 가사보다는 그 곡이 너무도 맘에 와닿기 때문이 아닌가. 요즘 연변에서 널리 애창되는 “그런 녀자 좋아” 역시 그 가사는 너무도 평범하지만 곡이 아름다워 널리 류행되고있는것이다. 이처럼 가요창작에서는 가사보다는 작곡이 제1이란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솔직히 연변에서는 해마다 달마다 각종 신문과 잡지를 통해 숱한 우수한 가사가 발표되지만 그에 맞게 널리 불려지는 우수한 가요는 너무도 적다. 그래서 필자는 연변작곡가들이 한층 업무수준을 제고하여 대중들이 보다 즐겨부르는 가요들을 창작하여 연변가요의 새로운 비약을 일으키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9    출국과 귀향 댓글:  조회:1454  추천:2  2013-03-16
개혁개방은 세상을 글로벌 세상으로 만들었다. 이제 출국은 하늘의 별을 따듯 요원한 꿈이 아니다. 지금은 범죄경력이 없고 일정한 금액만 지불하면 거의 세계 어느 곳으로도 쉽사리 갈수가 있다. 출국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다. 솔직히 조선족의 3분의 1은 이국살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출국은 우리에게 시야를 넓혀주었고 삶에 윤택을 갖다주고있다. 그러나 출국으로 해서 적지않은 문제점들도 속출하고있다는 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것 같다. 출국붐이 인후 적지 않은 가정이 흔들리고있다. 장시간의 기러기생활로 해서 적지 않은 자녀들은 사랑의 갈증에 시달리고 적지 않은 성인들은 감정의 곤혹을 치르고있다. 수많은 가정들이 성에장 깨지듯 툭툭 깨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의무감과 형식적으로 가정을 영위해 가고있다. 적으면 1년 많으면 10여년이상씩 출국인원들은 쉽사리 귀향을 선택하지 않고있다. 자료에 의하면 요즘도 한국에서 재외동포증이나 영주권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있다고 한다. 출국은 빠른 시간내에 부를 만드는 길로서 나무랄바가 못된다. 그러나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는 일정하게 욕심을 자제할줄도 알아야 한다. 살림집이 있고 일정한 보장이 되면 출국시간을 단축하거나 아니면 귀향하여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또 다른 창업을 시도한다면 좋지 않을가? 욕심은 밉굽빠진 항아리와도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현명한 인간은 돈을 벌어도 건강을 챙기고 삶의 질을 추구할줄도 알아야 한다. 나이와 건강도 잊고 무작정 자식뒤받침에 매달리면 그것은 헌신적인 사랑이기 앞서 맹목적인 사랑이고 만족을 모르고 마냥 출국에만 매달린다면 그것은 가족을 위한다기보단 그냥 절제없는 욕심이고 사랑을 잃는 무지한 행위이다. 누구 말처럼 인간은 감정동물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맘에서도 멀어진다고 장시간의 리산은 인간을 병들고 쓰러지게 하며 때론 극단에로 나가게도 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리산으로 해서 리혼한 가정과 자살한 사람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실례가 적지 않다. 가족을 잃고 사랑을 잃고 건강을 잃고 돈을 벌어서 뭘 한단 말인가? 그만큼 이제는 욕심을 절제하고 장시간의 출국생활보다는 때가 되면 귀향도 선택해야 하지 않을가? 솔직한 말로 하면 고향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진정한 터전이며 우리 가족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아닐가.  
8    여 름 례 찬 댓글:  조회:1283  추천:1  2013-03-01
여 름 례 찬 맹영수 여름은 약동의 계절이다. 해빛의 애무에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켜고 우쭐우쭐 일어선다. 거리는 탱탱한 여성들의 스찔 넘치는 옷단장과 칠색의 양산흐름으로 그 풍경이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출렁이는 바다가는 비키니의 현혹으로 청춘의 정열과 랑만으로 넘치고있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화초가 윙크하는 들녘에 나서면 검푸른 오곡이 마디를 뽑는 생명의 노래가 들려온다. 산도 크고 별도 크고 강물도 커가는 여름은 잉태한 봄아씨의 자궁에 끝없이 영양물질을 수송하면서 만삭에로 불러가고있다. 여름은 또한 투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생명의 성장을 위하여 여름은 아낌없는 불사조가 되고있다. 삼복염천의 폭양과 폭우, 그리고 뢰성벽력의 고개를 넘나들면서 무정한 장마와 왕가물의 시련에 혼신을 다 바쳐 싸워가고있다. 어쩌면 여름은 트로트로 서막을 열고 발다드로 슈제트를 만들고 소프로노로 클라이막스를 펼쳐가고있지 않은가? 그만큼 여름이야말로 정녕 천지의 정기가 넘치는 찬란한 운우지정의 계절이 아닐가? 정녕 산을 만나면 나무로 되여 대화를 하고 들을 만나면 바람으로 되여 대화를 하고 별을 만나면 우주로 되여 끝없는 러브의 스토리를 펼쳐가고있는 그 왕성한 생명의 계절앞에서 이제 나도 크지못한 마음 한구석을 체크해가면서 보다 충실해지고싶다. 그리하여 더 건실한 몸과 맘으로 수확과 사색의 계절 가을의 앞에 부끄럼없이 나서고싶다.
7    혼자 사는 멋 댓글:  조회:1528  추천:2  2013-02-26
혼자 사는 멋 맹영수 어찌하여 언제부터인가 혼자 살게 되였다. 혼자 사니 어딘가 불편한 점들이 없지 않지만 살아보니 혼자 사는 그 멋 나름대로 해피하기도 했다. "혼자 어떻게 살아? 아마 어디 부족하겠지?" 혼자 살면 분명 사람들은 이런 물음을 던지고 야유를 할지도 모른다. 허나 천만에, 입방아 찧지 말라고 한마디 당부하고 싶다. 혼자 사는것도 다 그로서의 사연이 있을것이다. 아직은 연분을 못만나서, 아직은 조금 능력이 부족해서, 그리고 금방 리혼했거나 혹은 호적은 함께 있어도 몸으론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사이...물론 나는 후자에 속한다. 암튼 요즘은 흔해 빠진것이 싱글이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본에는 일인용 스낵점이 등장하고있으며 일부 서방 나라들에서는 싱글협회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있다고 한다. 어쩌면 혼자 사는 삶이 세상의 류행인것 같기도 하다. 혼자만의 공간, 률동적은 아니지만 조용해서 좋고 따뜻하진 않지만 시원해서 좋고 정감적은 아니지만 감각적이여서 좋다. 달을 보면 별을 헤고 별을 헤면 발라드의 감성적인 음향이 가슴을 적셔서 좋고 흩날리는 눈발을 보면 추억에 잠겨 따뜻한 커피 한잔에도 꿈을 심고 스토리를 만들수가 있어서 무한정 좋기만 하다. 외로움이 있기에 그리움이 짙어가고 그리움이 있기에 사는 보람 더 느껴지지 않을가? 물론 나는 독신주의만세는 부르지 않는다. 그냥 함께 사는것이 연분이라면 홀로 사는것 그것은 운명이라고 느끼고있다. 운명은 피할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피할수가 없으면 차라리 즐기는것이 삶의 궁책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행렬에 가담해 보니 혼자사는것이 마냥 괴로음만 아니라 나름대로 그 즐거움이 짠하기도 했다. 혼자면 자유강산을 거닐수가 있다. 혼자 사는 그날부터 나는 누구의 속박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왕자된 기분이다. 이전처럼 더는 안해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수탉이 홰를 칠 쯤이면 시계를 들여다보며 일찍 일어날 준비를 하지 않고 실컷 늦잠을 자도 누가 말리지가 않아서 좋기만 하다. 수면이 보장되니 사유가 민첩해지고 사유가 도니 그만큼 컨디션이 좋아 기분이 짱이였다. 혼자 사니 그만큼 식사도 서양식으로 간단해서 편리하기만 하다. 일반적으로 아침이면 빵에 우유 그리고 닭알볶음이면 0K로서 영양적이고 경제적이였다. 그리고 저녁이면 친구들과 더불어 가끔은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면서 간혹 별이 졸도록 놀다가 들어와도 눈치 볼 사람이 없어서 좋기만 하다. 혼자 사니 하고싶은 일을 할수가 있어 그만큼 좋기만 하다. 책보길 즐기는 나는 잠이 오지 않으면 밤늦도록 컴을 마주 하고 글을 읽거나 책을 보지 않으면 때론 텔레비죤을 켜고 새벽이 되도록 축구실황을 보기도 한다. 만약 안해가 옆에 있으면 전등을 꺼야 하고 볼륨도 최저한 낮추어야 하고 가끔은 드라마와 축구중계를 놓고 싱갱이질 해야 하는 곤혹을 치뤄야 한다. 혼자 사니 전쟁이 없어 좋다. 세상에 싸우지않고 사는 부부가 별로없을 줄 안다. 누군가 침묵이 평화를 부른다고 했지만 결국 침묵은 폭팔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만큼 약간의 싸움은 살아감에 있어서 비타민이고 윤활제이기도 하다. 허나 자주 갖는 싸움음 서로가 상처되여 아픔만 만드는것이다. 여자들은 겉으론 나약한것 같지만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낀다는 말이 있듯 그만큼 이악스럽다. 남자에게 쉽게 잊혀지는 일도 때론 여자에게 있어서 평생의 옛말이 되고 복수가 되여 남자를 괴롭힌다. 전쟁과 평화, 어느것을 선택하면 좋을가? 단연 후자가 좋지 않을가? 혼자 사니 경제권이 있어 좋다. 옷을 사도 맥주를 마셔도 드라이브를 해도 또 가끔은 투자를 하고 채표를 사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 좋다. 남자가 작은 금고가 없이 여자에게 돈을 벌어 바치고 어린애처럼 빌어 쓰면 알뜰 살림에는 도움은 가겠지만 사회교제에선 그만큼 불쌍하지 않을수가 없다. 남자의 매력은 때론 씀씀이와 사치에서 표현된다고 했다. 이밖에도 혼자 살면 좋은 리유가 얼마든지 있다... 물론 혼자 살면 이런저런 불편한 점도 따를것이다. 그중에서도 고독감이 수시로 몰려들것이다. 허나 고독이란 상대적인것이다. 인간은 고독해서 고독한것이 아니라 고독을 향수 할줄 모르기에 고독감에서 해탈 할수가 없는것이다. 고독을 즐기고 고독을 향수할줄 안다면 사람은 고독속에서 뭔가를 이루어 낼수가 있는것이다. 고독의 적은 고독이라고 했다. 혼자이기에 고독하다고 생각하면 고독은 영원히 물러갈줄 모른다. 커피 한잔에 술 한잔에 고독을 타 마셔보라, 별 하나에 달 하나에 고독을 실어보라...금방 고독이 물러가고 즐거움이 펼쳐질것이다. 생활은 만드는 사람에게 속하고 즐기는 사람에게 속하고 용감한 자에게 속한다. 혼자면 어떠랴? 노벨은 평생 혼자여도 대업을 이루었다. 베토벤도 혼자로써 영웅교향곡을 써냈다. 베트남의 위대한 어버이 호지명도 평생을 싱글으로 보냈다…만천하를 주름 잡는 싱글은 많고도 많다. 아무튼 혼자 사는 삶은 요즘의 어쩔수 없는 류행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잘 살겠다고 너도 나도 떠난 세상인만큼 원망보다는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혼자 살더라도 기죽지 말고 삶답게 살아보자! 살다보면 그만큼 노하우도 생겨서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떳떳이 살수가 있을것이다. 그렇게 가고 가노라면 혹 언젠가 당신 손으로 그 어떤 큰 성공을 이루어낼지도 모른다. 삶은 평등하고 생각은 자유이고 더우기 선택은 자유이다. 억지로 딴 참외가 맛이 없듯이 마지 못해한 선택은 즐거울수가 없다. 미국은 4분 1이 싱글이여도 여전히 초대국으로 멋지게 돌아가고있다. 당신이 혼자를 선택할 때 다른 한 사람은 둘을 선택할것이니 모든 근심은 부질없는것이다. 그만큼 혼자여도 충분히 행복할수가 있고 보람을 느낄수도 있다.
6    장려기준을 좀 더 높일수는 없을가? 댓글:  조회:1727  추천:4  2013-02-25
연변은 우리나라에서 자치권리를 실시하는 유일한 자치주이다. 거기엔 우리글도 된 신문사와 출판사, 그리고 학교와 가무단…등이 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면서 우리의 자치권리는 어느정도 위기감을 맞고있다. 개혁개방과 출국붐 등 다양한 원인으로 해서 문화대혁명전까지만 해도 60%이상을 웃돌던 조선족인구가 전체 인구의 35%좌우로 급격히 떨어지고있다. 어느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대로 나간다면 20년이나 30년후면 조선족인구가 20%내지 25%수준밖에 더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때이른 부질없는 근심인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이 정녕 현실로 된다면 그때엔 우리말을 쓰는 신문사나 출판사, 그리고 학교와 가무단…등이 더 필요이상으로 존재할수가 있겠는가? 결국 자치권리는 한낱 공담으로 되고 말것이 아니겠는가? 다행이 조선족인구의 마이나스출생의 페단을 간파한 주정부에서는 일전에 조선족이 둘째 아이를 낳을 경우 5만원을 장려한다는 정책을 제정하였다. 말 그대로 설중송탄같은 반가운 희소식이다. 그런데 그런 정책을 제정하였음에도 불과하고 주변에서 둘째 아이를 같겠다는 부부들을 별로 볼수가 없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데 5만원은 새발의 피나 다름 없다는 것이였다. 물론 정부에서 둘째 아이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부담할수는 없지만 필자의 생각에도 5만원은 어딘가 적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에겐 금년에 졸업하는 대학생 무남독녀가 있는데 4년동안 학잡비와 생활비를 포함해서 얼핏 해도 10만원이상은 들어 간것 같다. 아마 앞으로 물가나 더 오르면 그 10만원도 어림 없을 줄로 안다. 거기에 유치원부터 고중까지를 포함하면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엄청 큰 돈이 들어가겠으니 누가 감히 5만원유혹에 끌려서 둘째 아이를 원하겠는가? 그만큼 필자는 장려표준을 좀 더 높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를 테면 둘째 아이가 대학에 갈 경우 일차적으로2만원이상을 장려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 민족의 소질을 높이고 자치권리를 충분히 행사하려면 수선 인구의 출생률부터 올라가야 진정으로 담보될수가 있다고 본다. 하기에 보다 아름다운 우리민족의 미래을 위하여 정부에서는 깊은 조사를 하고 실지 민심에 부합되는 출생장려정책을 새롭게 내왔으면 하는 바이다.
5    부르는게 값인가? 댓글:  조회:1218  추천:1  2013-02-25
부르는게 값인가? 맹영수 연길시 물가가 기타 다른 도시들에 비하여 많이 높다는것은 세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때론 그 지수가 말이 아니다. 오늘 설준비로 필자는 연길시 하남시장을 찾았다가 너무도 엄청난 물가지수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고기값과 채소값이 하늘을 치솟듯 치솟고있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30원을 하던 소고기를 한근에 33원내지 35원으로 부르는가 하면 채소가게에서는 네개씩 한단으로 묶어 5원씩 하던 파 한단을 8원으로, 집미나리 한단을 8원으로, 10원씩 하던 오이 한근을 15원으로 부르고있었다... 말 그대로 두눈이 빠져나올듯 너무도 엄청난 값이였다. 감당키 어려운 그 값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뒤걸음 치고있었지만 미처 설준비를 못한 사람들은 그래도 울며 겨자먹기로 사고있었다. 장사군들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주츰하는 사람들에게 사지않겠으면 군소리말라고 배짱을 부리고있었다… 지금은 시장경제인만큼 완전하게 물가를 통제하기는 어딘가 어렵다고 본다. 그만큼 설을 맞으면서 적당히 물가가 상승하는것은 어쩔수 없는 상황이여서 적지 않은 사람들도 당연지사로 그점을 받아들이고있다. 하지만 뭐든 한도가 있듯이 시장경제라고 해서 마구 물가를 올리는것은 시장법칙에도 맞지않다고 본다. 솔직히 상대적으로 기타 도시들에 비해 로임수준이 낮은 연길시에서 한근에 15원짜리 오이와 35원씩 하는 소고기를 사먹을 시민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물론 장사군눈에는 모든것이 돈으로 보일수도 있다. 허나 맹목적인 리윤추구에만 매달린다면 언젠가는 불경기도 도래할수가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아무리 횡재하는 그믐날이더라도 장사군들은 량심적으로 장사를 하고 관계부문에서도 마지막 날까지 적당한 관리를 멈추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무튼 설이라고 해서 마구 값을 올리는 행위는 뭇사람들의 질타를 받아야 한다! 2013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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