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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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연해지역 단체들과 동북집거지역의 상생발전에 관한 사고 댓글:  조회:717  추천:0  2021-08-03
[정음문화칼럼] 중국공산당 창건100주년 기념 축하행사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전세계를 향하여 중국이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고, 사회주의현대화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새로운 력사단계에 들어섰다고 장엄히 선포하였다. 지난 40여년간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고 경제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경제가 락후한 대국으로부터 일약 세계 2위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새로운 발전단계란 이러한 발전을 기초로 더욱 높은 수준의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면서 대외여건이 급격히 변화되고 국내의 발전 수요와 목표도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추어 최근에는 새로운 발전 리념과 구도의 확립이 정책적 화두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것을 관철하는 것이 큰 목표로 되고 있다. 물론 많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겠지만 필자는 전면적 발전, 국내 경제잠재력 확충, 고품질발전, 공동부유, 향촌진흥, 자연생태보호 등과 같은 것들이 핵심키워드로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족은 어떻게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여 새로운 발전단계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가? 지난 40여년간 전반적인 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조선족사회도 천지개벽의 변화를 겪어왔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그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째는 급격한 도시화이다. 개혁개방 초기만 해도 조선족은 인구의 70% 이상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초반에 들어서면서 실제 도시화률이 80%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변화되였다. 20여년 동안에 세계 선진국 수준의 도시화률에 도달한 것이다. 둘째는 인구분포구조의 변화이다. 개혁개방 초기만 해도 조선족의 97% 가량 인구가 동북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조선족은 국내의 모든 대도시는 물론 국외의 서울, 도꾜 심지어는 뉴욕과 런던에서까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셋째, 기업인과 경영자집단의 형성이다. 도시화과정에서 대외경제교류를 적극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조선족은 한국, 일본 등 국가와의 경제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많은 창업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외의 많은 도시와 지역들에 조선족기업가협회들이 조직되여있어 경제발전과 지역민족사회의 주추돌역할을 하고 있다. 넷째는 방대한 수의 지식인집단의 형성이다. 개혁개방후 고등교육의 빠른 발전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진학의 꿈을 이룬 동시에 해외 류학의 문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류학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로 하여 오늘날에는 조선족교수가 없는 대학이 없을 정도로 많은 대학과 연구기관들에 조선족지식인들이 포진되여있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조사통계에 의하면 조선족은 만명당 대학졸업생수가 가장 많은 민족중의 하나이다. 다섯째는 자발적으로 결성된 민간단체들과 모임들이 점차 마을들을 대신하여 조선족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기존 조선족사회의 기반은 동북지역에 산재한 마을들이였다. 그러나 현재는 마을들이 인구류동으로 위축된 반면 각 도시들에서 민간단체들이 많이 조직되여있어 민족사회의 새로운 기반으로 되고 있다. 이와 같이 개학개방후의 40여년간에 조선족은 력사상 류례없는 큰 도약을 이루었다. 물론 발전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들도 나타났다. 앞으로 발전단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해결하여 전면적이고 고품질의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 목표로 될 것이다. 발전과정에서 생성된 주요한 문제들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동북 기존 집거지역의 사회경제가 크게 위축되였다. 인구이동으로 마을들이 급격한 쇠락을 겪은 것은 물론 교육, 언론, 출판, 예술 등 기구들이 인구감소로 운영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였다. 현재는 이러한 변화들에 적응되여 여러모로 새로운 생존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근본적으로 극복된 것은 아니다. 둘째는 기업들과 경영업체들이 성장되여왔지만 그 대부분이 규모가 령세하고 국내 시장에 든든히 발을 붙이지 못하였다. 조선족들의 창업경제는 기본적으로 외향적 경제발전에 의존한 것으로, 많은 창업자들이 외자경제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창업기회를 얻었으며, 따라서 주요 경영업무가 무역 혹은 외자기업의 공급사슬에 편입되는 것이였다. 그러나 현재 국내외의 환경의 변화로 이러한 발전방식이 큰 한계에 부딪치고 있으며, 반면 중국이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부상하면서 국내시장개척과 잠재력 발굴이 큰 과제로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정부에서도 최근 국내 대순환을 위주로 하고 국내국외가 상호추진하는 ‘쌍순환’의 발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조선족기업들도 이런 변화에 부응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셋째는 해외에 귀국과 귀향을 필요한 수만명의 로무자집단이 형성되여있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조선족은 해외로무시장을 적극 개척함으로써 방대한 해외로무자 집단을 형성하였다. 그들의 피땀이 오늘날 조선족사회발전의 밑거름이 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이 집단이 국외에서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수년후 로후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현지와 도시에 정착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단순로무종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수 사람들이 귀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향촌진흥은 외부에 진출한 사람들에게 로후생활의 터전을 지켜주는 중요 사안으로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넷째는 방대한 수의 지식인집단이 형성되여있지만 사회봉사와 복무의 역할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고품질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따라서 최근 정부에서도 당원들과 지식인들이 기층에 심입하여 봉사를 강화할 것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조선족사회를 볼 때 현재 지식인들의 봉사기능이 아직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지식인들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여 사회변혁을 적극 추동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전면적이고 고품질의 발전을 저애하는 요인들이다. 앞으로 30여년간에 조선족사회는 이러한 불균형의 문제를 적극 해소하여 국가의 전반적인 발전과 보폭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필자는 연해지역단체들과 기업들이 동북집거지역의 마을, 기관들과 적극적으로 상생발전을 위한 교류, 협력을 펼칠 것을 제안한다. 이를테면 “한 기업+한 마을”, “한 단체+한 학교”식의 자매결연이나 협력방식들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중국조선민족사학회는 작년부터 룡정시삼합진정부와 교류협력관계를 맺고 향촌진흥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연해지역의 기업들과 단체들은 일정한 자본과 정보, 인재 자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원경쟁으로 이미 포화된 연해도시들에서는 이민자집단으로 더욱 큰 자원을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 동북의 집거지역들은 자본, 정보, 인재 등은 부족하지만 토지와 같은 풍부한 자연적 자원과 정부지지와 같은 제도적 자원 등 연해지역에서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자원우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해지역과 집거지역의 교류협력은 량측의 자원우세를 살려 더욱 큰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상생을 위한 협력을 단순히 투자로 리해해서는 안된다. 현재 동북집거지역이 필요한 것은 돈보다 오히려 외부에 진출한 사람들의 관심일 수 있다. 연해지역과 집거지역들이 정보공유, 자원결합, 사회봉사, 상호협력을 둘러싸고 다양한 협력방식들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연해지역의 단체와 기업들이 일부 활동들을 동북집거지역에서 진행한다든지, 집거지역을 위한 사회봉사단을 조직하다든지, 집거지역단체들과 련합하여 공동활동을 진행한다든지, 기업인들의 고향고찰단을 조직한다든지, 연해지역 단체들의 행사들에 집거지역의 단체들을 초청한다든지 등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펼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연해지역 민간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 민간단체들이 적극 나서서 집거지역의 정부와 기관, 마을들과 련결을 강화하여 두 지역을 이어줄 수 있는 ‘물도랑’을 만들 필요가 있다. 도랑이 만들어지면 당연히 그 길로 사람과 돈, 상품과 정보가 흐르고, 두 지역의 상생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어제날의 세상이 아니요, 오늘날의 중국도 어제날의 중국이 아니며, 오늘날의 조선족도 어제날의 조선족이 아니다. 세상도, 중국도, 조선족도 모두 변하고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여있다. 새로운 발전단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 인민넷 조문판
19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시대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댓글:  조회:1165  추천:0  2020-06-15
박광성(운남민족대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페염이 돌기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조금 시끄럽다가 금방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지난 40여년간의 고속성장으로 인한 들뜬 분위기에 처해 우리들은 이를 스치는 바람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페염은 점차 인류의 발전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력사적인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의 세계적인 정치학자 키신져는 심지어 세계력사가 코로나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번 코로나 역병이 인류에게 울려준 경종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류의 삶의 기반이 생각보다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19세기 초에 시작된 산업화로 인류는 지난 200여년간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성취를 이루었다. 사람 몇백명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주된 교통수단으로 되였고 수십톤에 달하는 비행체로 우주탐험에 나서기도 한다. 바다에는 수십만톤에 달하는 대형선박들이 분주히 오가고 륙지에는 수십메터 높이의 고층아파트들이 숲을 이룬다. 거리에 촘촘히 들어선 상점들에는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만리밖에 있는 물건도 클릭 한번 하면 며칠 내에 집앞에 도착한다. 인류는 이런 상상못할 발전속에서 더욱 거창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는 인류에게 마냥 락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경종을 울려줬다. 우리의 생활기반이 상상밖으로 취약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야심차던 인류가 미세한 바이러스 공격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2차세계대전 이후로 최대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전혀 개의치도 않았던 바이러스의 공격이 시작되자 우선 놀랍게도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가 없음을 발견했다. 방대한 의료산업과 기구, 연구자대오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즉시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화성탐사까지 시작한 인류가 실제로는 사람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회한의 력사적 순간이였다.     그러다보니 대응책으로 바이러스를 피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것을 위하여 사람간의 접촉을 최소화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더욱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곧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사회란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접촉이 빈번할 수록 분업과 교환이 활성화되여 발전이 더욱 촉진된다. 이 법칙을 장악한 인류는 그동안 사람들사이의 접촉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많은 기술과 제도들을 발전시켜 왔다. 대표적으로 교통과 통신수단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왔고 서비스산업이 활성화되였으며 지역간 국가간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변혁들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하여 세계는 지구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긴밀히 련결되였고 분공과 분업이 활성화되여 지난 20여년간 인류는 세계화로 불리는 가장 효률적인 경제체계로 력대의 경제호황을 누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예상 밖의 복병이 나타나 세계경제시스템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 결과는 예상 외로 참혹했다. 많은 기업들이 부품수급 차질로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없었고 무역이 침체되였으며 서비스업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었다. 세계경제체계라는 시스템이 2-3개월동안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자 실업이 줄을 잇고 기업들이 부도나기 시작했으며 국가경제들이 휘청거리가 시작하였다.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들에서 의료물품 부족이 일어나 홍역을 치르고 급기야 량식과 의료물품 수출을 금지하는 나라들까지 나타났으며 식량위기론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몇개월 내에 나타난 격세지감의 변화들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워낙 이처럼 취약한 상태였다. 현란한 불빛이 명멸하는 호황은 모래성우에 아슬아슬하게 쌓여져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력사발전의 흐름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지난 수십년간 인류력사를 지배해온 큰 흐름은 단연 세계화였다. 자원배분과 분업이 민족국가라는 틀을 넘어서 세계적 범위내에서 이루어짐으로써 더욱 효률화되였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인류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등극하였다. 세계화물결속에서 각종 이동이 권장되고 소비주의문화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인류는 그것이 가져다 준 혜택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는 불시로 터지는 재난 앞에서 세계화의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가 하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재난의 류입을 막으려고 각 나라들이 서로 빗장을 닫아 걸자 그전에 형성되였던 국제적 분업체계가 흔들렸으며 그로 인해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선진국과 공업국가들조차 의료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 되였다. 이런 와중에 국제시장에서 주요 전략 물자들의 가격이 요동치면서 타국과 국제시장에 단순하게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력사발전 흐름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으며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이번 코로나사태로 아래와 같은 몇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는 질병과 재난과 같은 위험관리가 사회생활의 주요 의제로 등극할 것이다. 지난 백여년간 인류의 주요 관심사는 경제발전이였다. 그러나 먹고 입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21세기는 안전과 위험관리가 인류의 주요 관심사로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했 듯이 예전에 인류의 소망은 “잘살고 싶다”지만 앞으로는 “안전하고 싶다”로 변할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이러한 인식을 앞당기는 계기로 되였다. 따라서 국가는 물론 모든 조직과 개인에 이르기까지 위험관리가 필수적인 고려사항으로 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기존의 국제적 분업체계가 조정되고 새로운 분업체계가 등장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각국이 현존하는 국제분업체계의 위험을 인식하는 계기로 되였다. 따라서 앞으로 위험관리의 차원에서 더욱 안정적인 산업체계를 구축하려고 힘쓸 것이며 이로 하여 기존 체계의 변화가 불기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조치로 국내산업 활성화에 힘쓸 것이고 세계적 범위의 분업보다 위기관리 가능한 국가들간에 새로운 분업체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그동안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발전한 우리 나라와 같은 후발국가에 큰 도전이 될 것이며 우리들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는 이동보다 정착이 권장되고 많은 조직과 개인들이 류동보다 안정적인 생존환경 구축에 진력할 것이다. 지난 몇십년간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세계적으로 각종 이동이 활성화되였다. 조직이나 개인을 막론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과감히 흐름에 편승하여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인류력사에서 가장 이동이 활발했던 시기로 중국만 보아도 수억명의 국민이 철새처럼 이동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위기국면에서 이동이 얼마나 취약한 삶의 형태인가를 인식하게 되였으며 이로 인하여 이 후 사람들은 류동적인 생활보다 정착에 기초한 안정적인 삶의 형태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넷째는 인류사회생활에 대한 온라인의 영향력이 더욱 크게 증대되고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량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역설적이게도 온라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되였다. 예전에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을 부득이 온라인을 통하여 처리하게 됨으로써 만나지 않고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음을 피부로 체험하게 되였다. 따라서 이 후 온라인에 기반한 산업과 서비스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달리 많은 온라인에 많은 업무를 빼앗긴 오프라인 공간은 소수 자본이 집적된 공간을 제외하고는 쇠퇴의 일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페염 사태 이후 시대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력사발전은 련속적이지만은 않다. 우연히 터지는 대사건들에 의하여 그 방향과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또한 그러한 변곡점에서 새로운 세력이 흥하기도 하고 기존 세력이 쇠퇴하기도 한다. 그만큼 변곡점에서 선택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번의 력사적 변곡점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소견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위험관리 의식이 꼭 있어야 한다. 기존의 성장시대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성장에 쏠려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하는 것을 미덕으로 칭송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고성장시대가 지났으며 불확실성이 수시로 터지는 저성장의 위험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따라서 위기관리 의식이 없이 모험적인 방식으로 일관하다가는 언제 쪽박을 찰지 모른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가 앞으로 시대에 맞는 말이다.    둘째는 류동적인 삶보다 뿌리를 깊이 박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의 근거지 건설이 중요하다. 지난 수십년처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돈을 벌고 살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리고 있다. 산업체계도 지역중심으로 재편성될 것이고 생산의 지능화로 이민을 선호하는 지역과 나라들도 줄어들 것이다. 경제의 저성장으로 취업문제가 일상화되면서 이민자들의 처지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든든한 생활기반이 없이 떠도는 이민자는 점점 주변화 될 것이고 지역사회에 뿌리를 깊게 내려 자원을 축적한 집단은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무슨 일을 하던 온라인 공간에서 생존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오프라인 공간에서 투자를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온라인이 인간 상호 작용의 주요 공간으로 부상하고 많은 활동들이 온라인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온라인 공간에서 생존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몰락이 불기피하다. 장사를 하든 농사를 하든 연구를 하든 심지어는 잘 놀려고 해도 온라인에 튼튼히 뿌리를 박아야 한다. 그와 달리 주변지역 오프라인 공간의 상업적 가치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잘못 투자했다는 가는 랑패를 보기십상일 것이다.     넷째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갈고 닦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경제 침체가 불가피하다. 중국의 대외경제환경도 렬악해질 것이며 고속성장도 유지하는데 상당히 큰 어려움이 존재하게 된다. 경제가 고속성장하는 상승주기에서는 기존의 틀에 안주하면 기회를 놓치지만 하강주기에서는 일단 가지고 있는 것부터 잘 지켜야 한다. 기회가 도처에 널린 시대는 지나가고 내공으로 승부해야 할 시대가 오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순발력보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내공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력사를 보면 세기 초마다 인류의 발전방향을 개변하는 대사건들이 일어났다. 19세기 초에는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20세기 초에는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났다. 21세기 초에 일어난 코로나사태 역시 인류발전방향에 영향줄 수 있는 중대한 사건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새로운 력사적 변곡점에서 우리 모두가 난국을 이겨내고 승승장구하고 력사적 승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출처:《중국민족》조선문판  글/박광성  편집/리호남  조판/ 한동준)  
[고국이 부끄럽다!] 조선족을 도구화하는 한국정쟁,그만하라!                                 박광성         한국역사를 보면 구한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여 있을 때 조정의 대신들이 여러 당파로 나뉘어 권력쟁탈을 위한 정치싸움에 골몰하다가 결국 나라를 빼앗기는 비운을 맞았다. 외적을 앞에 두고 내부 떡 싸움을 하다가 다 같이 망한 셈이다.    일제에 나라를 뺏았기고 타국에 와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그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하루멀다 하게 새로운 당파가 생기고 서로 헤게모니 싸움만 하다가 결국 결국 대국들에 의하여 광복되었으며 나라가 분열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렇듯 역사를 보면 당쟁과 내부분열은 한국의 망국의 병페였다.    오늘날의 한국은 반드시 이를 역사의 거울로 삼아 얼굴을 자주 비춰보고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그러한 망령이 또다시 얼른거린다. 세계사적인 또 한번의 거대한 전환이 시작되고 그것이 한반도에 여러모로 큰 도전을 가져다 주고 있는 오늘날의 중요한 역사시기에  온 국민이 좌, 우로 나뉘어 다수 국민에게 별로 실익도 없는 논쟁에 젖먹던 힘까지 빼고 있다.    이번 코로나 19사태만 봐도 그렇다. 집안에 불이 붙었으니 원인을 막론하고 일단 불부터 꺼야 한다. 그러나 국민을 이끌고 불끄는 일에 집중해야 할 정치권이 그보다 정치싸움에 더 골몰하는 듯하다. 그것도 엉뚱하게 이 마당에 친미와 친중의 논쟁으로까지 번져 에 온 나라가 시끌벅적 하다. 아전투구의 싸움이 되다보니 급기야 어느 극우 사이트를 통하여 “조선족들이 한국의 모든 여론을 조작”한다는 어느 가짜 조선족의 양심선언이 이어졌고 언론에서 이를 “차이나 게이트, 조선족 게이트”란 이름을 부쳐 대서특필하는 상황까지 번졌다. 이를 더는 방치할 수 없어 결국 청와대까지 나서서 국가별 인터넷 접속 숫치까지 밝혀가며 사실무근임을 밝혔다.        사이트에 올린 소위 조선족의 양심선언을 보면, 문맥이나 표현방식, 사고에 있어 분명히 어느 정치에 열중하는 한국인에 위하여 조작된 것이다. 현재 도시화로 세계 각국에 유동 중인 조선족이 무슨 정신으로 한국여론을 좌지우지 하며, 무슨 동기로 그렇게 한국정치에 열중하겠는가?    매일 세계 선진국타령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고국에서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재외동포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인 인식은 “계급편견”에서 유래한 일면이 많았다. 돈 벌려고 온 노동자들이니 그 설음을 참아야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그 양상이 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미중간에 마찰이 늘면서 한국 내에서 줄타기 고민이 시작되었고,그것이 이데올로기 영역까지 확대되면서 보수집단이 친미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이를 위하여 중국을 견제하기 여론을 조직적으로 조성하면서 조선족을 그 희생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자연발생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이용되는 일면이 있다.        고국에 희망한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들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면 꼭 자신이 당한다. 어느 나라에 자기의 명운을 걸기보다 인류공동체에 스스로만이 공헌할 수 있는 독자적인 존재로서 모든 인류가 소망하는 평등과 평화의 공동번영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세계 10위권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나라답게 이주역사가 100여년 넘는 해외동포사회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글을 마치면서 품격 없는 정치에 의하여 고국이 다시 풍파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17    [두만강칼럼]협동, 조직화와 조선족사회의 미래 댓글:  조회:1787  추천:0  2019-06-27
박광성   운남에 와서 살다 보니 자연히 동남아에 관한 소식들을 많이 듣게 된다. 그런중 궁금한 것이 자연환경이나 자원 면에서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국가에 비하여 훨씬 월등한 동남아국가들이 왜 그들에 비하여 현저히 락후한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라오스, 캄보쟈, 먄마 등 나라들에 자주 드나드는 한 동료에게 물었더니 하는 대답이 이런 나라들은 국가가 약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뿐더러, 기업과 같은 조직도 활성화되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연발생적인 개체생업 상태에 처하여있다는 것이다. 협동을 통하여 조직화되지 못하니 규모가 큰 사업들을 벌릴 수 없고 그러한 사업들이 이루어지지 못하니 자연히 사회가 락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현듯 머리 속에 17세기의 세계 패권국가 화란이 떠오른다. 17세기초까지만 하여도 화란은 에스빠냐의 지배를 받는 자그마한 속국이였다. 그런데 이 자그마한 속국이 당시 최강 국가 에스뺘냐의 견제를 물리치고 점차 세계해양무역을 지배하는 ‘해상의 마차부’로 되여 세계적 패권국가로 등극하게 된다. 당시 만척을 넘는 화란 상선들이 5대주 4대양을 누볐으며,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초석도 그들이 닦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을가? 그 비결은 바로 그들이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주식회사, 주식시장, 은행과 같은 현대적인 조직과 금융제도들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직들은 어떠한 기능을 했을가?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손에 널려있는 돈을 결집하여 거대 자본으로 만드는 것이였다. 화란은 이러한 제도적 혁신을 하였기 때문에 사회의 분산된 힘을 결집하여 거대 자본을 만들 수 있었고, 그러한 자본의 힘으로 해양무역에 적극 나섬으로써 세계를 제패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화란이 발명한 이러한 제도들이 세계에 널리 퍼져 근대 이후 인류력사의 거대한 변혁을 이끌어왔다. 가히 주식제도가 이루어낸 자본의 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세계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의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 국가나 민족을 막론하고 발전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그 집단이 얼마나 효률적으로 힘을 결집해내는가에 달려있다. 아무리 국토가 넓고 자연자원이 풍부하더라도 힘을 결집해내지 못하면 락후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국토가 작고 환경이 렬악하더라도 힘만 결집해내면 못해낼 일이 없다. 이러한 력사적 법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바 한 국가나 민족의 밝은 미래는 결국 그 집단이 힘을 얼마나 유효하게 결집해내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조선족에 적용하여본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하여있을가? 필자가 보기로는 조선족은 아직 현대경제의 입구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우선 아직도 고군분투다. 자본투자와 주식제와 같은 현대적인 경제방식이 아직 조선족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간 운이 좋아 촌에서 대도시로 버젓이 왔지만 아직은 ‘대도시의 촌민’상태다. 대도시에 살면서도 사고방식은 여전해 현대적인 협동과 조직방식을 익히지 못하고 여전히 ‘정’을 기초로 뭉치고 ‘정’을 나누려고 뭉친다. 그래서 북경에 살면서도 술만 마시면 저가락으로 상을 치면서 노래하고 서울에 살면서도 촌민운동회를 조직한다. ‘정’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정’을 나누다가도 일단 ‘투자’나 ‘합작’과 같은 사업이야기만 나오면 눈치를 슬슬 보면서 피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시골에서 별 정 다 나눴지만 곤궁으로 돈만 꽁꽁 숨겨야 했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세월에는 돈을 숨기지 말고 같이 모아서 투자하고 돌려야 점점 불어날 수 있다. 은행에 꽁꽁 저금해놓은 돈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만 든다. 따라서 미래를 위해서는 ‘대도시의 촌민’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고 ‘대도시의 상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고군분투하기보다 ‘투자’와 ‘합작’이라는 의식부터 형성하여야 한다. 경쟁이 날로 치렬해지는 오늘 사회에서 쌈지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반없다. 가령 음식점을 경영한다 해도 객석이 최저 몇십 석은 돼야 전문 훈련을 받은 료리사도 구하고 복무원도 구해 쓸 수 있다. 요즘 누가 집음식과 별반 다름없는 구멍가게에 가서 돈지갑을 열겠는가? 따라서 작은 밑천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애만 태우지 말고 17세기의 화란인들처럼 쌈지돈을 모아서 배를 띄울 수 있는 큰 자본을 만들어야 한다. 술상보다 사업을 토론하는 자리가, 놀음판보다 전시회가 더 많은 조선족사회를 기대해본다. 길림신문 2019.6.26
16    조선족마을,‘립체화된 생활공간’으로 거듭난다 댓글:  조회:1499  추천:0  2018-08-21
오늘은 아침부터 바쁘다. 북경에서 과외축구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고향친구가 애들을 데리고 카나다로 뽈 차러 갔단다. 그런데 이 친구가 아침부터 카나다의 호텔에서 동네 친구들의 위챗그룹에 8월말에 열리는 고향의 시소수민족운동회 협찬을 자신이 맡았으니 고향마을에서 팀을 묶어 참가할 것과 친구들더러 많이 참여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삽시에 위챗그룹이 뜨거워졌다.   북경, 청도, 서울, 심양, 대련 등 각지의 고향친구들이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면서 어느덧 일부 친구들이 표까지 예매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때 고향마을에서는 로인들이 운동회에서 출연할 집체무 연습에 땀동이를 쏟고 있었다. 하나의 농촌마을이 인터넷으로 세상과 련결되면서 립체화된 생활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찌 이 뿐이랴! 올해 5월에는 정부의 시책에 따라 농촌집체경제 재산권제도개혁이 있었다. 농촌의 집체재산을 정리하여 촌민들에게 주식을 배분해주는 중요한 개혁이였다. 매개 촌민의 리익과 관계되는 중요 사안으로서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많은 서류 작성이 필요하였다. 허나 촌민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있는 상황에서 이를 어찌해야 할가?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순조로왔다. 마을 인구 절반 이상이 가입해있는 위챗그룹으로 일단 촌장이 정책을 설명하는 음성메시지를 올렸다. 그리고 부연하는 문자설명을 올리고 작성이 필요한 도표들을 전송하였다. 이에 발 맞춰 글이나 읽었다는 식자들이 사안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적극적으로 림할 것을 독려하였다. 급기야 표준화된 서류 작성 양식이 위챗에 전송되였고 촌민들이 많이 진출해있는 서울에서는 지역 책임자까지 생겼다. 위챗에서는 주기적으로 서류를 이미 보낸 사람과 아직 보내지 않은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되였다. 그 결과 아득하던 일이 기한내에 순조롭게 완성되였다. 련결이 보여주는 무서운 힘이였다. 이렇게 서로 련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고향은 살아움직이였고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흔히 마을이라면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를 련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마을은 그렇지 않고 세상으로 퍼져있다. 장소로서의 마을은 사람들에게 정든 고장으로 서로 련결되게 하는 인연과 정감을 제공한다. 사처로 퍼져있는 촌민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현실을 반영하고 핸드폰의 인터넷은 우리가 서로 련결할 수 있도록 기술적 수단을 제공한다. 따라서 오늘날 조선족 마을은 인연의 장소로서의 동네(물리적 공간), 련결망으로서의 동향집단(사회적 공간), 련결해주는 수단으로서의 인터넷(가상적 공간)으로 구성된 ‘립체적 마을’이다. 허구한 날 농촌이 해체된다는 둥, 희망이 안 보인다는 둥 넉두리를 할 필요가 없다. 보다 싶이 관건은 ‘련결’이다. 우리가 행사를 가지고 외지에 나가있는 사람들과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련결할 때 고향은 살아숨쉬게 된다.   우리가 련결되여야 할 리유는 너무도 많다. 우선 속되게 표현하면 마을에는 우리들의 중대한 리익들이 남아있다. 비옥한 농토와 정부에서 제공되는 각종 정책적 혜택도 호구와 련결되기 때문에 고향을 결코 떠날 수 없다. 사용권이 보장되는 농토, 국가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날로 좋아지는 농민복지, 이걸 포기한다면 스스로 불바다에 뛰여드는 격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우선 고향을 지켜내야 한다. 외지에 진출한 사람들이 고향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리유이다.   비단 리익 뿐만 아니다. 오늘날의 도시사회는 사람들의 관계가 날로 리익으로 재편되여 인심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돈과 물질로만 살 수는 없다. 정도 사랑도 느껴야 하고 소속감과 안전감도 느껴야 하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재미도 즐겨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각박한 세상에서 공동체를 지켜야 할 리유이다.   정에 기반한 공동체, 이것이 오늘날 인류가 날로 시장화되는 세상과 맞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세상살이 각박해질수록 마을이란 우리에게는 하나의 안식처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공동체이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이를 수요하고 있다. 따라서 마을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리유들로 밖에 진출한 사람들과 고향 마을의 상호 작용은 점점 활성화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마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닌, 바깥세상과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립체화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이는 국가의 정책적 혜택과 공동체에 대한 향수가 커져갈수록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새로운 발상으로 ‘립체적 농촌’ 건설에 더욱 매진한다면 류동이 일상으로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영원한 안식처’를 가질 수 있을뿐더러 우리들 고향 역시 ‘아름다운 향촌’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길림신문/박광성(운남민족대학 특임교수)
15    "고향"을 가진 마지막 세대 댓글:  조회:2292  추천:2  2017-06-07
[정음문화칼럼] 얼마전 고향마을의 위챗그룹(微信群)이 생겼다. 개장한지 며칠 안돼서 150여명의 고향 분들이 그룹에 가입하였다. 120여호에 700명 인구 밖에 되지 않는 동네라는 점을 감안하면 집집마다 한 사람 이상 가입한 셈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는 바람에 서로간에 련락이 끊겼지만, 파편화되였던 련락망 퍼즐이 맞추어지면서 가상공간에서 “고향”이 재건되였다.   헤여졌다 다시 만난만큼 그룹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중 가장 많이 오가는 얘기가 “어디서 뭘하느냐?” 하는 것이였다. 옹기종기한 산등성이를 등지고, 굽이굽이 흐르는 강을 마주하고있는 명당자리에 터를 잡았던 한 벽두마을에서 고운정 미운정 다 나누면서 의지하고 살았던 고향 마을의 사람들은 현재는 심양, 대련, 북경, 상해, 청도, 광주, 심천 등 국내 대도시와 한국의 서울, 부산, 대전, 인천,수원 등 족히 몇십개 도시로 퍼져있는것 같았다. 허구한 날 농촌에서 땅만 매며 살것 같았던 고향분들은 현재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장사를 하는 사람, 회사에서 출근하는 사람… 모두가 멀끔하게 변신되여있었다. 고향을 떠날 때 아직 엄마 품에서 젖을 먹던 꼬맹이들도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되여 “형님”, “삼촌” 하면서 인사를 하여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가상공간에서라도 고향사람들을 다시 만날수 있어 기쁨은 이루다 말할수 없었지만 한편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고향”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태여나고 자란 곳이다. 즉 단순한 물리적공간이 아닌 “기억의 공간”, “정서의 공간”이다. 특히 우리 민족의 경우는 력사상 이주를 거치면서 혈연공동체가 파괴되여 “마을”이라는 지연공동체가 우리의 삶의 지주(支柱)로 되였다. 한 마을에 모여 살면서 서로 의지하고 정을 나누면서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려왔다. 따라서 이주를 겪지 않은 집단에 비하여 “마을 공동체의식”이 더 강했다. 하여 우리에겐 “고향”이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요, 친척들이 살고있는 곳이요, 동년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요, 정을 나눌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였다. 그래서 천리타향에서 살면서도 “고향”은 잊혀지지 않았고, 고향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군 했으며,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는 때론 객지에서의 지친 마음을 달랠수 있는 심령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기억속에서 그렇게 따스했던 “고향”이 랭랭한 “가상공간”으로 이동하였다. 그 공간에서 옛정을 찾아보려고 모두들 애쓰고있지만, 그 “온도”는 제대로 전해지는것 같지 않다. 인간이란 일단 얼굴을 맞대야 정이 들수 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상공간에서 문자 몇마디로 어떻게 옛정을 회복할수 있겠는가? 그나마 다행히 함께 생활한 공동의 기억이 있기때문에 다시 뭉칠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을에서 태여나지 않은 아래 세대의 고향은 어디일가?   영국의 사회학자 바우만은 현대세계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였던 “고체상태”에서 물같이 부단히 흐르는 “액체상태”로 변화되고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세상에서는 한 곳에서 대대손손 살아오면서 같은 생업에 종사한다는것은 꿈같은 소리다. 따라서 예전과 같이 지연을 기초로 주민들간에 상부상조의 관계가 형성되고, 그로 인하여 지연적 뉴대감과 애착의식이 생겨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한곳에서 장기간 거주하면서 안정적인 사회관계과 애착의식을 형성해나갈수 없으니,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고향”이 없는 셈이다. 인류사회는 이렇게 바야흐르 “고향”이 없는 시대로 접어들고있다. 이러한 액체시대에 조선족과 같이 뿌리가 약한 이주민족은 “고향”의식이 더욱 빠르게 와해될수 밖에서 없으며, 그 “기호적의미”마저 상실될 위험이 크다.   “고향”이 없는 세상은 구경 어떠할가? 물리적공간은 모든 사회적관계 형성의 기초이다. 력사적으로 보면, 지역에 기초하여 인간공동체도, 지역사회도, 문화도, 민족도, 국가도 형성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지역”과 “인간” 사이의 밀착관계가 와해되면서 “지역”이 공동체를 형성시키는 기능을 상실하고있다. “지역”을 떠난 인간은 구경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해나갈가? 무엇이 “지역”의 빈자리를 메울수 있을가? 즉 무엇을 매개로 인간사이의 뉴대감과 정이 형성되고, 인간이 그것을 나누면서 살수 있을가? 혹은 인간사이의 “유대감”, “정” 같은것이 필요없는 시대가 오게 될가?    소수집단인 조선족은 그간에 지역을 기초로 해서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상부상조하면서 조상이 남겨준 문화를 전승하여왔다. “마을”, “공동체”, “정”, “전통문화”는 우리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키워드였다. 현재까지는 기성세대가 남아있어 가상공간에서나마 “고향”을 유지해갈수 있지만, 새로 태여나는 세대에게는 들어보지도 못할법한 소리이다. “고향”이 없는 미래세대의 사는 모습은 어떠할가? “지역”을 떠난 “우리민족”을 이어줄만한 끈은 무엇일가? 이러한 질문들이 꼬리를 물면서, 위챗그룹에서라도 고향사람들과 떠들수 있는 자신이 “고향”을 갖고있는 마지막 세대임을 행운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고향”이 없이 살아가야 할 딸애를 보느라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인민넷 2017-5-22
14    연변, 비대칭 유동 바꾸고 교향(僑鄕)으로 거듭나야 댓글:  조회:49749  추천:3  2016-08-15
연변, 비대칭 유동 바꾸고 교향(僑鄕)으로 거듭나야   박광성(중앙민족대학 사회학과 부교수, 사회학 박사)       유동성은 당대의 사회변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고속도로, 고속철, 항공운수와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 이동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기술에 이르기까지 현재 과학기술은 유동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다 시장경제,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제도적 요인들도 가세하여 이를 부추기고 있다. 거대한 망속에서 생산요소들의 거대한 흐름이 형성하면서 사회적 재생산과 재분배가 이루어 지고, 그 와중에서 지역과 지역간,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회적 분화도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한 개인이든 지역이든 흐름을 잘 타야 승승장구 할 수 있고, 흐름에서 소외되면 도태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연변도 나름대로 흐름을 탄 지역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지역주민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연변은 현재 명실공히 중국 북방의 “교향”(僑鄕) 으로 거듭나고 있다. 연변은 이런 개념을 대담히 써야 한다. 이런 개념을 써야 지역적 특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각인된다. 그리고 또 지역적 정체성이 뚜렷해진다. 만약 지역적 정체성이 “교향”이라면 자연히 그에 알맞는 발전전략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없다면  우세가 무용지물로 되고 만다. “교향”이니 당연히 외부에 인적 자원이 풍부하고, 이런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가 연변의 지역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로 될 것이다.      “흐름”의 각도로 볼 때, 연변은 흘러나가는 것이 많은 반면, 흘러드는 것이 적은 곳이다. 가령, 간단한 예로 지역주민들이 벌어 들이는 돈을 흘러나간 공백을 메우느라 들어온 외지 주민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그것을 다 벌어간다. 따라서 흐름은 활발하지만 정작 지역과 주민들에게 남겨지는 것은 얼마 없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연변은 점점 “여위여”갈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이런 현실은 이미 연길을 제외한 각 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농촌과 도시가 비어가고 있다. 따라서 흐름의 비대칭구조를 바꿔가는 것이 연변의 큰 과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논의를 진전시켜 보면, 외부인의 시각으로 볼 때, 연변은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소문은 여차여차 하나 정작 와보면 할 일이 없다. 먹고 마시는 것을 빼놓면 볼 곳도, 놀 곳도 없다. 특산을 좀 사려 해도 무엇이 특산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여행객들이 일정이 빽빽하게 돌아쳐가며, 쇼핑에 열을 올려야 하는 지역과 비하면  거리가 너무 멀다.      혹자는 조선족문화가 연변의 지역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연변에 조선어 구사하는 사람과 음식 빼놓고 무슨 조선족문화가 있는 가? 찰떡, 김치, 된장 한복 이 정도는 현재 중국의 어느 대도시에서도 다 접할 수 있다. “연변에 조선족 문화가 있는가?”, “연변다움이란 무엇일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연변이 “북경화” 된다면 누가 연변에 오겠는가? “연변다움”을 만들어야 세계 속에 연변이 되고, 흐름의 비대칭구조를 바꿀 수 있다.      또한 기존 2차산업식의 공업립주로 연변은 발전을 꾀할 수 없다. 중국을 볼 때, 이미 공업은 과잉되어 있다. 이미 있는 것도 줄여야 할 판인데, 후발지역에서 발전할 공간을 남겨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해지역에서 도태되는 공업을 유치하는 길을 걷는다면,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생태환경의 우세마저 상실하고, 남의 뒤꽁무니만 따르는 격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연변은 기존의 발전모식에서 전전긍긍 하지 말고, 대담한 발상으로 신형 산업에 올인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예를 들어본다면, 산과 강이 많은 우세를 이용하여 산악 자전거, 암벽등반, 낚시, 산악 탐험, 스키와 같은 레저 산업을 대폭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북지역에서 제일 큰 어린이 놀이공원 같은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소비 트랜드 변화를 볼 때, 레저, 여가 산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런 것들이 현재 과밀화로 고생하는 대도시들의 계륵이다. 따라서 연변과 같은 지역이 한발 치고 앞서 나간다면 자연과 깊은 교감을 원하는 대도시 중산층 소비자들을 대량 유치함으로써, 흐름의 비대칭구조를 바꾸어 자본과 사람이 흘러드는 생기 있는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북방의 “교향”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가 정책적으로 인도만 잘 한다면 신형 산업이 연변에서 꽃피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닐 것이다.     *편자주: 본문은 "세계화속의 연변,우린 뭘 해야하나?" 좌담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좌담회는 중국조선민족사학회와 조글로의 공동주최로 2016.8.14일 연길에서 열렸습니다.
13    조선족의 ‘약자형 문화’를 생각해 본다 댓글:  조회:2124  추천:4  2016-06-13
조선족의 ‘약자형 문화’를 생각해 본다 ​박광성   ◇ 치열한 문화 성찰이 우리를 키운다   우선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문제가 그 파급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필자는 논의의 대상을 ‘중국 조선족’에 국한시킨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조선족은 근대 이후에 파란만장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왔다. 험난한 역사과정 속에서 조선족한테는 ‘생존’과 ‘적응’이 늘 주된 과제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도 조선족은 급격한 이동을 거치면서 새로운 환경과 삶에 적응하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늘 역동적인 과정에 있다 보니 언제 차분히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문화적 DNA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발양해야 할 문화적 DNA는 어떤 것이고, 극복해야 할 DNA는 또 어떤 것인가?” 등의 자신을 통렬히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역사적 과정이 굴곡적이고 역동적일수록 집단무의식 속에 집적된 에너지가 더 크다. 그러나 우리는 늘 눈앞의 생존에 얽매이다 보니 그 속을 한번도 제대로 파헤쳐 보지 못했다. 자신에 대한 파악이 부족하다 보면 “뿌리가 약한 집단”, “철학과 신념이 빈약한 집단”으로 전락되기 쉽다.   불운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후세들을 지구촌의 당당한 일원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자신에 대한 치열한 문화적 성찰을 통하여, 우리의 정신적 근력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 조선족의 문화는 ‘약자형 문화’이다    문화 연구는 다양한 시각과 층위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집단무의식과 그에 의하여 발현되는 집단적 문화개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약자형 문화’라는 개념은 조선족의 집단무의식과 문화적 개성에 관한 일종 지칭이고 판단이다.   조선족의 ‘약자형 문화’의 특성은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방면에서 쉽게 봐낼 수 있다.   첫째는 논리가 단순하고, 정의감이 강하다. 조선족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 그리고 ‘불의’를 판단하는 기준도 약자의 입장에 맞춰져 있다. 가령,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때리면 불의이고,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깔보면 불의”이다. 따라서 “약한 자와 못 가진 자”의 한계는 따지지 않고, “힘 있는 자와 가진 자”가 무조건 성토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곰곰히 따져보면, 이러한 논리는 너무 단순하다. ‘정의’는 시시비비를 잘 따져 판단해야지 무조건 ‘강자’를 성토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또한 ‘정의’의 기준도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따라서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정의관’은 시각적 편향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늘 약한 자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보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단순해지게 되는 것이고 결국에는 우리의 문화적 성장을 저애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다. 조선족과 많이 접촉해 본 타민족 인사들은 흔히들 조선족은 “감정 기복이 심하다”고 평가한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화를 내고 또한 쉽게 화가 풀린다는 것이다. 흥이 도도하여 어깨를 들썩거리며 춤을 추다가도 금방 돌아서서 눈물을 짜기도 하며,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친근하다가도 갑자기 수가 틀리면 얼굴을 붉히며 싸움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조선족이 모이는 곳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른바 ‘군자학’에서는 “마음을 다스려 평온한 심성을 유지”하는 것을 ‘성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다. 조선족들의 심성이 즉흥적이고 감성적으로 발달되었다는 것은 삶의 환경이 안정적인 심성을 유지할 만큼 평온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죽했으면 “안녕(安寧)하세요”가 만남의 인사말이 되었을까! 굴곡적인 역사적 과정이 ‘굴곡적인 성격적 기질’을 만든 것이다.   셋째는 성격이 급하고 표현 욕구가 강하다. 학술회의를 다녀보면 조선족 학자들이 많이 모이는 학술회의가 눈이 즐겁다. 남녀를 막론하고 옷차림이 세련되어 패션쇼를 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표현 욕구도 강해 자기 주장을 펼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수수한 옷차림에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다 들은 후 느긋하게 발언을 하는 한족 학자들과는 대조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표현욕은 약자의 무기이다. ‘강자’는 자기 표현에 급해 할 이유가 별로 없다.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아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약자는 남의 눈에 뜨이지 않기 때문에 표현을 통해 자기의 존재감을 알려야 하고 관심을 끌어야 하는 것이다. 조선족들이 ‘겉치레’를 좋아한다는 평가도 이러한 ‘표현욕’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 ‘약자형 문화’의 배경   조선족의 집단적 기질에서 표현되는 ‘약자형 문화’의 특징들은 장기간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이미 하나의 집단 무의식으로 우리 문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다.   한반도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시종 대국을 옆에 둔 존재론적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근대 이전에는 중원과 북방의 강한 압력에 시달렸고, 근대 이후에는 동북아시아에 집결된 여러 강대국들의 틈새에 끼어 생존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한민족은 이러한 존재론적 불안감을 상무정신의 발전을 통하여 해소하려 하지 않았고 불교와 유교와 같은 평화주의 사상으로 해소하려 했다. 그 결과 늘 시달림을 받는 쪽에 있어야 했고 그 과정에 ‘약자’의 집단무의식이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족의 경우는 과경(過境)민족으로서의 불안정성 또한 갖고 있을 뿐더러 한술 더 떠서 피지배계급의 문화를 계승하였으며, 근대 이후 더욱 극심한 존재론적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면서 ‘약자형’ 집단무의식이 더욱 강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따라서 ‘약자형 문화’의 특징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 ‘약자형 문화’는 양날의 칼이다   조선족의 문화적 특징을 ‘약자형 문화’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기 위함이 아니다. ‘약자형 문화’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평화주의 사상,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오늘날 인류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초석으로 되는 것이다.   조선족은 이러한 사상에 체화되어 있어, 곳곳에서 인정과 배려로 남을 대한다. 따라서 어디로 가든 무난하게 적응하며, 사회적 적응 또한 빠르다. 그리고 어떻게 살든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정의롭게 살려고 한다. 조선족의 이러한 모습을 대개 타민족들은 “조선족은 자질이 높다”고 평가한다. ‘약자’로서 지켜온 따뜻한 심성으로 인하여 조선족은 미래 어디로 가든 쉽게 타자와 어울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약자형 문화’에 내재된 감성주의와 표현주의는 오늘날과 같은 서비스사회, 소비사회에 있어 진정 필요한 무형적 자산들이다. 인류사회는 이미 유형(有形)의 하드웨어 소비시대를 넘어, 감성과 미를 중요시하는 무형(無形)의 소프트웨어 소비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가령, 예전에는 돈 있으면 물건을 사는 데 열중했다면, 앞으로는 품위, 디자인, 심미적 체험, 취미생활 등 무형적 소비에 치중하게 된다. 노동력으로서 산업시대의 미덕은 체력과 절약이었다면, 소비시대의 미덕은 감수성과 표현력이다. 무엇을 하든 예쁘고, 품위 있고, 이로 하여 사람들이 감동 받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감수성과 표현력은 앞으로 조선족에게 있어 굉장한 성장적 요인이 될 것이며, 자신 또한 이를 알고, 그 가슴에 묻혀진 기름진 옥토를 부지런히 개발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약자형 문화’의 한계 또한 뚜렷하다. 가장 큰 한계는 이른바 ‘정치’에 약한 것이다. ‘정치’를 잘 하려면 냉정해야 되고, 때로는 무자비하기도 해야 하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등에 ‘칼’을 꽂기도 해야 한다. 또한 희노애락이 쉽게 얼굴에 나타나지도 말아야 하고, 쉽게 속을 보여서도 안되며, 섣불리 나서지도 말아야 한다.   이러한 ‘정치’가 필요한 덕목은 ‘약자형 문화’가 가지고 있는 기질과는 가히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약자형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조선족이 정계에서 ‘꽃망울’을 피우기는 어려울 수 있다.     중국의 저명한 사회인류학자 비효통(费孝通)은 만년에 ‘문화자각(文化自覺)’이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그는 문화자각을 “우리의 문화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어 왔고, 현재에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로 해석한다. 즉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자신에게 잠재된 에너지를 잘 발굴하여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지자는 것이다.   조선족도 이제는 차분하게 자신을 성찰할 때가 되었다. “수천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는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하여 잠재된 문화의식을 잘 파헤쳐 현주소를 잘 알고 이를 미래를 위한 기초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12    조선족도 손정의같은 인물을 키울수 있다 댓글:  조회:4667  추천:10  2014-12-04
지난 8월, 장춘시 연화향에서 개최된 제19회 전국조선족발전심포지엄에서 연설하고있는 박광성 부교수. 편집자의 말: 일전, 기자는 중국조선족 지식인 위챗 공동체인 《지행자(知行者, 위챗번호: zhixingzhe512)》에서 우연히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박광성 부교수의 이 문장을 읽고 독자들과 공유하려는 마음에 박교수에게 련락하여 그의 허락을 받은후 《인터넷길림신문》에 게재하게 되였다. -조선족은 비록 작은 집단이지만 큰 집단에 비해 더욱 큰 안목을 지니고있다 ◇ 조선족, 세계화시대의 《행운아》 지난 9월 19일, 중국의 최대 전자상 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미국 뉴욕증시에서 상장함에 따라 총재인 마운은 일거에 중국의 최고부자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이로 하여 또 한사람이 일국의 갑부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알리바바》의 최대 주주인 재일 조선인기업가 손정의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통신회사중 하나인 소프트뱅크의 회장인 손정의는 할아버지대에 한국 대구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조선인이다. 일본에서 민족적차별을 받으면서 자란 그는 일찍 《능력으로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못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후 미국류학을 거쳐 1981년에 창업하였으며 현재 일본의 최고부자가 되었다. 손정의는 《인터넷이 국적》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세상을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며 자신을 구속하는 작은 틀에서 벗어나 더욱 큰 세상에서 자신이 클 수 있는 《자양분》과 《기회》를 구하였다. ▲ 일본 최고갑부로 등극한 재일조선인 손정의. 손정의가 일본의 최고부자가 되었듯이 앞으로 조선족중의 아무개가 중국의 최고부자가 될런지도 모른다. 실제로 조선족이 처한 사회현실은 손정의가 성장한 지난 세기 60-70년대의 일본에 비하여 훨씬 좋다. 중국은 일본에 비하여 심각한 민족차별도 없으며 21세기의 전반적 사회환경이 그때에 비하여 훨씬 개선되여 있기때문이다. ▲ 김정수 학생(연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액장학생으로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였다.) 특히 현재 조선족은 그 어느 주류집단에 비해서도 세계화정도가 높기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광범위한 범위에서 《자양분》을 흡수하고 《기회》를 잡을수 있다는것이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일하고 조부모님이 고향을 지키고 자녀들이 북경, 서울, 도쿄, 뉴욕에서 공부하고 창업하고 사업하는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별 볼일 없는 소수민족》으로 생각하는것과 달리 조선족은 《세계화시대의 행운아》이다. 우리 자신의 우세를 알고 잘 활용한다면 미래에 조선족 가운데서도 손정의 같은 인물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 시대적 변화와 조선족사회의 분화 우리에게 피부로 다가오는 조선족사회의 변화를 세가지로 정리할수 있다. 첫째는 민족구성원 개개인이 도처에서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림으로써 인구분포가 세계적 범위로 확산되고 있다는것이다. 1990년까지만 하여도 97%의 인구가 중국의 동북지방에 집중되여있던 조선족은 최근 국내 30개 성, 직할시, 자치구는 물론, 국외의 5대주 4대양에 퍼져있다. 북경의 조선족 상주인구는 1990년의 7710명에서 2010년의 3만 738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산동성의 조선족 상주인구 역시 3362명에서 6만1556명으로 증가하였다. 한국의 경우, 서울출입국관리소의 최근 정보에 의하면 중국조선족 총인구의 25%, 경제활동 인구의 40%가 한국에서 체류하고있다. ▲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연변타운》 굳이 통계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이러한 인구확산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몇년전에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한 조선족녀성은 아르헨띠나로 출국하기 위해 북경행 렬차에 올랐다고 고백하여 필자를 놀라게 하였다. 한국의 어느 한 교수는 안식년으로 영국에 갔다가 한국류학생을 상대로 밥장사를 하는 조선족들을 만나게 되여 아예 《영국의 조선족》에 관한 론문을 쓰기도 했다. 어찌 이뿐이랴? 이딸리아 류학중의 한 한국류학생은 로마 등지에서 한인을 상대로 하는 민박집들이 주로 조선족들에 의하여 경영된다는 점에 놀라 글을 쓴적이 있으며 로씨야에서 장기간 활동한 한국 시민단체의 한 활동가는 중로 변경지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들이 고려인들에게 무역 및 장사 비법을 전수하고있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 일본 『아사히신문』 기사 「조선족, 아시아를 연결하려 한다」(2010년 2월 12일) 둘째는 세계적범위의 인구확산과 더불어 조선족은 지역, 교육, 직업, 계층 등 면에서 폭넓고 심도 있는 사회적 분화를 겪고있다. 우리의 습관적 인식속에 조선족은 동질성이 강한 집단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는 굉장히 엄중한 인지적오류이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지역적으로 조선족은 세계의 경제수도 뉴욕에서부터 아프리카의 시골까지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실제로 필자의 고중동창생이 현재 아프리카에서 근무하고있다. 또한 직업적으로 보아도 로켓 만드는 사람부터 떡을 만드는 사람까지 별의별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다 있다. 그런가 하면 계층적으로 보아도 성급이상의 고위급간부부터 천만금을 소유한 기업가집단, 사회적관심이 필요한 소외집단까지 다 있다. 그리고 교육수준을 봐도 원사급 인재부터 초등학교 졸업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 CCTV 예능프로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일약 스타반열에 오른 조선족가수 김미아. 셋째는 조선족은 자체의 복합적 다양성으로 인하여 《만갈래의 강이 흘러드는 문화적 바다》로 거듭나고있다. 지역적인 특징을 례로 들어 설명해보면 조선족은 다양한 곳에 진출하여 부동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생활하기때문에 서로 다소 다른 기질을 형성해가고있다. 국내의 경우 청도의 조선족과 북경의 조선족, 동북의 조선족은 서로 다르다. 필자의 관찰로는 청도 조선족의 경우 《활동가적 기질》이 강하고 북경 조선족의 경우 《엘리트적 성향》이 강하며 동북의 경우에는 《관방적인 기질》이 강하다. 국외의 경우, 미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의 경우 시야가 넓고 국제적감각이 뛰어나며 일본의 경우, 차분한 반면에 사고가 굉장히 세밀하고 집요한 면이 있으며 한국의 경우, 력동적이고 국내의 경우, 보수적성향이 강하다. ▲ 미국 뉴욕 플러싱지역에서 조선족이 운영하는 양꼬치가게(간판을 통해 다문화를 수용하고있는 조선족의 문화적자세를 엿볼수가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기질과 성향은 모두 진출지역의 문화적영향과 밀접히 련관되여있다. 조선족에 대한 타자의 이러한 영향은 지역적영향에만 국한되여있지 않고 《만갈래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듯》 직종, 교육, 계층 등의 다양한 도경을 통하여 이루어지고있다. ◇ 다양성과 창의성의 력학관계 현시대는 혁신과 창의성이 그 어느때보다 더 강조되고있다. 왜냐 하면 기존의 지식만을 가지고서는 인류가 현재 직면한 난제를 극복할수 없기때문이다. 따라서 인류는 혁신과 창의성에 목을 맬수밖에 없다. 중요한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혁신과 창의력의 원천을 다양성과 그 융합, 그리고 재분화에서 찾고 있다는것이다. 즉 인간의 혁신적인 사고는 다양한 사고가 부딪히고 소통하고 융합될때 비로소 효률적으로 생성된다는것이다. 가령, 우리가 매일 같은 음식만 먹는다면 음식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어찌 생길수가 있단말인가? 음식에 대한 상상력도 다양한 음식을 접촉할때 생기는것이다. ◇ 조선족의 우세 문화생성의 견지에서 볼때, 조선족과 같이 다문화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그것을 융합할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집단에서 그 누구보다 많은 혁신적인 인재가 배출될수 있다. 필자의 경우를 봐도 위챗을 통하여 한국, 일본, 미국에 있는 조선족 지식인들과 일상적으로 교류할수가 있어서 관계망이 국내에 국한된 학자들에 비하여 다양한 관점을 접할수가 있다. 이러한 특징은 학생들의 강의평가에서도 반영되는데 《다양한 관점이 소개되고 새로운 내용이 많아 들을수록 우리의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 조선족감독 박준희의 공익영화 《사랑의 종소리》 이것이 바로 오늘날 조선족의 우세이다. 가족, 형제, 친구들이 세계 각지에 널려 있고 하는 일들도 다양하니 당연히 듣는 얘기도 많고 그만큼 시야도 넓다. 주류집단이 자기중심주의가 강해 타자에 둔감한데 반하여 조선족과 같은 이민집단은 여러 주류집단 가운데 끼어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있으며 적극적으로 그들로부터 다양한 《자양분》을 흡수하게 되여있다. 즉 《작은 집단이지만 큰 집단에 비하여 더욱 큰 안목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 카나다에서도 협회를 조직하여 공동체를 구성해가는 조선족들. 세계화시대에는 되려 조선족과 같은 주변부집단이 《다양한 문화적 담지자》로 기능하게 되어 《빛》을 보게 되는것이다. 앞으로도 조선족이 이와 같이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고 융합하는데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하여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바다》로 거듭난다면 손정의와 같은 수많은 혁신적인재가 나올것이다. ◇ 조선족의 독자성과 다원일체의 문화관 세계화시대 조선족사회는 복합적인 사회적, 문화적 분화를 겪고있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계속하여 《조선족》이라는 동질성과 독자성을 유지할것인지 말것인지 하는 중차대한 선택을 앞두고있다. 선택하기 나름에 따라 다양성을 포함하면서도 독자성을 지닌 《만갈래의 강을 받아들이는 바다》가 될수도 있으며 아니면 근시안적 안목으로 인하여 스스로 독자성을 포기하고 다른 《바다》에 흘러드는 《개울물》이 될수도 있다. 조선족은 비록 소수집단이지만 우연이든 필연이든 오늘날에 있어서는 여느 주류집단에 비해 이동성이 높고 변화에 유연하며 광범위한 폭과 다양성을 확보하고있다. 따라서 조선족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적극적으로 타자의 장점을 수용하고 융합해간다면 큰 영향력을 발휘할수 있는 집단으로 될것임이 분명하다. ▲ 서예가 홍금전(洪金田)선생의 작품 《海納百川》 그와 반대로 자신의 우세를 보아내지 못하고 소수집단이라는 렬등감에 휩싸여 《자기가 되기》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흔적없이 지워지는 《개울물》이 될수밖에 없을것이다. 군벌 치하, 일제 치하 등의 참담한 시대에도 추위가 사무치는 중국 동북땅에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오늘까지 꿋꿋이 버텨온 조선족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날을 살고있는 조선족 구성원들 역시 정확한 선택을 할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다원일체, 화이부동(多元一體, 和而不同)》의 정확한 문화관으로 후세들을 잘 교육시켜, 《다(多)》를 수용하여 《일체》를 이루고 그것을 적절히 《융합》하여 더욱 큰 《나》가 되도록 하여야 할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유익한 일일뿐더러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대도(大道)》이기도 할것이다.   ○박광성(朴光星) 프로필: 1973년 흑룡강성 해림시 출생 1997년 연변대학 력사학부 본과 졸업 1999년 상해복단대학 사회학과 연수 2000년 연변대학 민족연구소 석사 졸업 2003년 한국 서울대학교 사회학 석사 졸업 2006년 한국 서울대학교 사회학 박사 졸업 2006.9~2007.5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 2007.7~현재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교사, 부교수  
11    자녀교육과 민족정체성 댓글:  조회:4232  추천:4  2014-11-20
       ◇조선족의 문화단절 위기   요즘 연해지역 대도시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는 우리민족 학부모들에게는 한 가지 큰 고민이 있다. 학부모들은 집거지역에서 성장하여 우리문화에 익숙해 있고 애착이 있지만, 자녀들은 학부모들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서 민족의 전통과 문화에 대하여 전혀 모른다. 이러한 자녀들을 보면서 학부모들은 늘 걱정에 잠기게 된다. 얘가 앞으로 커서 도대체 어떻게 될고말까?   한 교수님이 나에게 해준 얘기이다.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운동장에서 조선족운동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그 분위기에 들떠있는 자신과 베이징에서 자란 아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조선족운동회이니 좀 나가 봐라"하는 권고에 아들이 "제가 왜 나가 보아야 하는 데요?"라고 되받아 치더라는 것이다.   이 어찌 남의 일이기만 하겠는가? 냉면을 좋아하는 나는 외식만 하면 냉면집으로 발길이 간다. 어린 딸에게 같이 냉면을 먹자하면 늘 싫다고 하여서, "냉면은 조선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 너는 왜 싫어하냐?"했더니, 아예 "저를 한족으로 바꾸어 주면 안돼요?"하고 물어온다. 그래서 다시 "왜?"하고 되물었더니 "한족으로 바꾸면 냉면을 먹을 필요가 없잖아요"하고 천연스럽게 대답한다. 즉 이는 우리말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완전한 문화단절인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난 자식이 나와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물학적 의미에서만 부모와 자식이지, 실제로는 부모자식 간의 "문화적 공동성"이 사라진 것이다. 소위 말하는 "공동의 언어와 정서"가 상실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수명이 제한되어 있는 인간 생명체와 달리, 공동의 문화가 한세대 또 한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문화적 단절위기에 있는 조선족을 이러한 시각으로 볼 때, 사회적 지속성의 위기에 직면하여 있다고 볼 수 있다.   ◇ "민족"이 가지는 의미   그럼 한 개인에게 있어서 "민족"이란 구경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의 생활실제와 결부하여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민족이란 우리 개개인의 "이마에 박힌 딱지이다". 즉 현대사회에 있어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 개인은 반드시 종족 혹은 민족의 신분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것은 현대의 세계체계가 "민족국가"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국가를 구성하는 핵심원리가 "민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의 단위로 형성된 국가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우리는 같은 집단"(여기에는 "공동의 조상"을 가진 혈연집단이라는 은유까지 포함)이라는 상상력을 탄생시키고, 이를 통하여 타자와의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하나의 배타적인 생존단위로 된다.   따라서 "민족"을 구분하는 것은 현대 민족국가에서 반드시 행해지는 것이며, 그 신분에 따라서 매개인의 기회구조가 영향받기도 한다. 즉 "민족신분"은 내가 싫어한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요, 내가 좋아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닌, 본의 아니게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측면이 있다.   둘째는 자신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역사이고 기억이다. 인간은 손오공처럼 돌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어서 누구나 조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조상을 가진 사람들도 몇 대에 지나면 촌수를 가릴 수 없어 남남으로 되고만다. 인류의 번성과정은 이러한 끊임없는 분열에 기초하고 있다. 민족은 바로 이러한 끊임없이 분열되는 집단을 담아내는 "하나의 큰 그릇"으로 볼 수 있다. 민족이론에서 흔히 민족형성을 "종족→종족동맹→지연(地緣)집단→즉자적 민족집단→대자적 민족집단"의 변화과정으로 해석한다.   아무리 족보가 있소, 대물림 보배가 있소 하여도 한 가문의 역사는 그 기억과 기록에 있어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경우, 우리는 민족 집단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통하여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즉 민족을 안다는 것은 정체성의 확립과 연관되어 있다. 강건한 정체성 확립은 험한 세파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신념이고 동력이다.   가령, 다사다난한 민족사를 보면서, 한 개인은 온갖 역경을 뚫고 생존해온 조상들의 강인한 의지에 감명받을 수 있고, 또한 다시는 비운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질 수 도 있다. 이런 것들은 알게 모르게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원동력으로 된다. 오늘날 세계를 주무르는 유대인들의 경우, 자녀에게 꼭 민족역사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실제로 다사다난한 역사에 대한 이해가 그들을 결집시키고 분발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많은 연구가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뿌리 든든한 나무가 큰 나무로 클 수 있"듯이, 인간도 자기의 기원과 역사를 똑똑히 알아야 바르고 꿋꿋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민족문화는 일종의 삶의 방식의 창조이다. 민족이란 언어, 문자부터 시작하여 윤리도덕, 사상문화, 제도문화, 물질문화까지 두루 갖춘 집단이다. 완벽한 문화체계는 그 집단이 역사적으로 집적(集积)한 "힘"을 설명한다. 하나의 문화는 하나의 생활방식으로서, 전체 인류의 시각으로 볼 때 일종의 삶의 페러다임이고, 인류 문화지도의 한 획이다. 따라서 이 한 획을 더 잘 그리는 것이 그 집단이 인류사회에 기여 할 수 있는 공헌이기도 하다.   인류의 모든 창조는 계발에서 시작된다. 근데 그 계발이 많은 경우 동질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자성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즉 내가 익숙한 것보다 익숙하지 못한 현상과 사물을 접할 때 사유의 폭과 깊이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그 다양성은 하나하나의 문화가 그 존재의 가치를 찾아갈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를 민족과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해보면, 한 민족성원이 자신의 문화에 기반하여 창조한 "문화적 생산물"이야말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아무리 피자를 세계수준으로 만들어 내더라도 영원히 우리의 공헌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와 반대로 된장이나 김치, 냉면을 세계인들이 접수할 수 있게 최고로 만든다면 이는 세계의 식문화에 대한 공헌으로 길이길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어떻게 우리의 것을 세계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최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자기의 전통만 고집하지 말고 위에서 말한 계발의 원리처럼 남의 것을 보고 배우고 연구하여 부단히 자신의 것에 접목하여야 한다. 스시(壽司)는 일본의 전통적 음식이지만, 미국에서 다른 민족의 음식문화와 융합되어 새로운 맛으로 태어나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고 한다.   또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는 타자에 대한 배움도 결국 "나"라는 주체가 확실할 때 가능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선진국의 이론을 배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 없을 때, 그 배움은 결국 맹목적인 것이고 큰 의미가 없다. 남의 것을 배워서 "우리의 문제"를 잘 해결할 때, 그것은 역으로 남에게 본보기가 되고, 이러한 과정이 인류의 진화를 구성하는 것이다. 즉 "민족"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주체를 확인하는 과정이고, 확실한 주체의식이야말로 "타(他)"를 수용하고 배울 수 있는 기초라는 것이다.   ◇ 민족학교와 민족문화교육은 구별되어야   "민족"이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보편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를 막론하고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 영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주류집단에게는 당연한 이러한 논리가 조선족과 같이 늘 적응이 우선적인 과제로 되는 이민집단에게는 "별 필요없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는 점이다. 빨리 현지에 동화되어 적응되어야지 뭘 "민족"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주류사회로의 동화는 단기적 안목으로 볼 때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큰 손실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가치는 "나"로서 어떠한 차별적 가치가 확보될 때 부각되는 것이지, 다수와 같아 질 때는 그 가치가 급감되기 때문이다.   또한 "주류에 대한 학습"과 "민족에 대한 학습"은 결코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영어를 배운다고 중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듯이. 많은 가정에서 자녀에게 영어도 배워주고 중국어공부도 시킨다. 진정한 사고력과 창의력은 다양성에 대한 접촉과 비교 분석 속에서 생성된다. 따라서 조선족과 같은 이민집단은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바른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태생적인 우세를 지녔다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민족학교가 없는 대도시에서 어떻게 자녀에게 민족과 전통에 관한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 문제는 "학교가 없으면, 교육이 없는가?"하는 것이다. 학교는 교육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교육 자체가 아니다. 학교와 교육을 동등히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학교가 없어 안된다"식의 논리는 자기 최면에 불과하다.   연해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민족의 후대들이 바른 정체성과 주체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들의 정확한 인식과 의지에 달려있다. 학부모들은 "융합과 개성"관계를 변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의미를 잘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자녀들을 넓은 주류사회에 "융합"할 수 있으면서도 자기의 "개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흑룡강신문 2014-11-19
10    토지확권 잘하여 큰 밑천 잘 지키자 댓글:  조회:3292  추천:2  2014-08-26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집은 가장 큰 재산이고, 집의 재산권을 인정받는 합법적 증서가 바로 “집조”이다. “집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집을 비워두어도, 세를 놓아도 마음을 놀수 있고, 팔거나 살 때에도 합법적인 절차를 밟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돈이 필요할 때에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집조”가 없다는 이 모든 것이 다 불안하며, 문제가 생겨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헌데 이 후에는 농민들이 갖고 있는 땅도 개인집의 “집조”처럼 “땅조”를 주어 농민들이 “재산권”을 향수하게끔 한다는 것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업정책의 방향이다. 2014년 1월 19일 중앙에서는 농촌 개혁에 관한 회의를 개최하고 “농촌개혁을 심화시켜 농업현대화를 가속화할 데 관한 의견”이라는 이 후 농촌개혁의 방향을 결정 짓는 문건을 채택하였다. 문건에서는“농촌토지경영권에 관한 확권, 등기, 증서발급사업을 착실히 진행하여여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토지 외에의 개인주택용지와 집체건설용토지의 확권 사업도 참답게 완성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요구에 따라 각 성에서는 이 후 5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이 사업을 완성하여야 한다.      토지확권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며, 농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가? 쉽게 말하면 농민들에게 “집조”와 같이 토지의 사용권을 인정하는 “땅조”를 주어, 토지를 “일정한 기한을 조건부”로 농민들의 합법적인 재산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즉 국가가 토지에 대한  재산권을 농민들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그럼 예전과는 어떻게 다른 가? 예전에는 국가에서 토지에 대한 농민들의 “사용권”만 인정했다. 즉 농사를 질 권리만 인정하였지 다른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토지를 양도하거나 매매하는 것은 개인사이의 사사로운 것으로 국가가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따라서 문제가 생길 경우 법적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또한 지방정부들에서 행정수단으로 농민들의 땅을 저가로 징용해도 법으로 농민들의 이익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도시근교의 많은 농민들이 적은 보상금을 받고 토지를 잃었다. 땅을 담보로 은행의 대출을 받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토지확권, 등기, 증서발급을 거친 후에도 완전히 다르게 됐다. 우선, 토지양도가 합법적으로 진행되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집조”가 없는 집은 팔고 살 수는 있어도 법의 보호는 받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소유를 증명하는 합법적 증서도 없는 데, 무엇으로 자기것 임을 증명할 수 있어서 마음대로 사고 팔고 한단 말인가? 땅도 마찬가지다. 자기땅임을 증명할 수 없는 데 서로 주고 받는 들 법적 보호는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토지증”을 발급받은 후에는 다르다. 우선은 합법적인 사용권이 있음을 증명하는 문서가 있기때문에 이런 것들이 합법적인 것으로 되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 토지 양도과정에서 손실을 보거나 유실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농민들이 시름을 놓고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다. 또한 이후에는 지방정부에서도 행정수단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저가로 징용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에서 인정한 토지에 대한 사용권과 증서가 있기때문에 아무리 정부라해도 반드시 법적절차와 시가에 따라 농민들의 토지를 징용하여야 한다. 이외에도 “토지증”을 맡기고 은행에서 대출도 받을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농민에게 있어 땅은 이제 단순한 생산수단이 아닌 집과 같은 “재산”이 되고 정부가 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럼, 정부에서 왜 이와 같은 정책을 펼칠 가? 중국은 현재 빠른 공업화와 도시화과정에 처하여 있다. 따라서 많은 농민들이 땅을 떠나서 도시로 향하고 있다. 땅을 떠난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토지는 반드시 양도되어 다른 사람이 경영하여야 한다. 토지 양도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법적제도가 완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양도과정에서 토지가 유실되는 등 많은 분쟁이 발생하여 사회적 불안요소가 증가되기도 하며, 도시로 진출한 농민들도 토지에 대한 우려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 도시생활에 올인하기도 힘들다. 이외 도시화과정에서 권력, 자본 등에 의하여 농민들의 토지가 저가로 징용되어 토지를 잃은 농민집단이 생겨났다.    토지확권, 등기, 증서발급사업은 바로 이러한 폐단을 극복하고 도시화와 농업현대화를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데 있다. 확권과 등기를 거친 “토지증”이 있으니 토지양도가 합법화되고, 이것이 합법화되니 더욱 많은 농민들이 시름을 놓고 땅을 떠날 수 있으며, 증서발급으로 농민들이 토지재산권이 지켜지니 땅을 잃은 농민들이 많아 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사회안정의 기반이 다지게 된다.     이번 토지확권 정책은 특히 조선족농민에게 있어서는 단비와 같은 것이다. 조선족은 조상들의 피땀과 정부의 민족정책 혜택으로 동북평원에서 가장 비옥한 옥토를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 연 간에는 도시화속도가 너무 빨라 농촌이 공동화되고 고향이 망가져 가는 위험에 직면하여 왔다. 그 과정에 대두된 가장 큰 문제가 땅을 어떻게 지켜가는 가하는 것이였는 데, 정부의 금후 농업개혁정책으로 뒤심이 든든하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족농촌과 농민들의 사력을 다하여 이번 토지확권사업을 잘해야 한다.      외국이나 대도시에 가서 돈을 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큰 밑천 잘 지켜 뒷길을 만들어 놓는 것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 가?요즘에 조선족사회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돈도 벌고, 땅도 지키자”는 것이다. 힘 있을 때는 힘으로 먹고 살지만 힘없을 때는 밑천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물론 조선족에게 땅은 먹고 사는 문제 외의 의미가 있다. 그것이 조선족에게 땅은 뿌리와 같은 존재이다. 농경민족이고 이주민족인 조선족에게 땅은 문화의 뿌리, 생존의 뿌리, 정서의 뿌리, 힘의 뿌리, 희망의 뿌리, 미래의 뿌리이다. 한 사회가 든든하게 발전하려면 뿌리가 든든해야 한다. 뿌리가 건실하지 못한 모든 생물이 희망없듯이 뿌리 없는 인간집단도 희망이 없다. 따라서 이번 토지 확권은 생존을 지키는 거사, 뿌리를 지키는 거업이다.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번 되뇌여 본다, “땅은 우리에게 뿌리와 같은 존재이다.”
9    생명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세상 댓글:  조회:4392  추천:3  2012-12-19
생명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세상 박광성 작년 이맘때에 나는 딸애를 얻었다. 애를 키우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더욱 철저한 인식이였다. 그건 어느 생명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부모의 엄청난 사랑과 정성속에서 자란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것이였다. 생명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는것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무시하고 끊어버리는 가장 잔혹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는 질문을 할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나는 지금의 현실은 분명히 생명의 소중함을 망각하고있다고 대성질호하고싶다. 또한 그 원인은 생명보다 돈을 더 중히 여기는 매우 잘못된 사회풍토에서 비롯되고있다고 고하고싶다. 국가위생부문에서 전국의 30여개 도시와 78개 현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2002년이후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농촌에서 23%, 도시에서 19% 상승하였다. 이 상승폭은 전문가들을 경악시키는 수준이다. 이러한 상승에 대하여 해당 전문가들은 일제히 그 원인을 환경오염에서 찾고있다. 첫째는 공업용페수가 무분별하게 강으로 흘러들어 오염된 물이 직접적으로 토양, 곡물, 식품에 영향을 주고있고 둘째는 동식물의 신속한 성장을 위하여 과도하게 첨가제와 비료, 농약을 사용하고있으며 셋째는 에너지사용이 과도하여 대기오염이 심각하며 넷째는 주택개조에 값싼 복합화학재료를 과도하게 사용하고있다는것이다. 환경오염이 가져다주는 생명에 대한 피해는 도처에서 나타나고있다. 상해지역 대학 남학생들의 정자수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그람당 활동하고있는 정자수가 2,000~4,000만개로 저하되여있어 많은 청년들이 불임의 위험에 로출되여있다. 20년전만 하여도 같은 량의 정액에 정자수가 7,000만개 이상으로 조사되였다. 또한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의 90%이상이 화학복합재료를 과도하게 사용한 실내인테리어와 련관되여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지금의 현실이 경제적리익에 눈이 어두워 얼마나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있는가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리익에만 급급하여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고려도 없이 아무 일이나 서슴없이 저지르고있는 집단적열광에 빠져있는것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흔히 나타나는 질병은 감기이다. 따라서 별로 개의치는 않지만 일단 걸리고 보면 정말 괴롭다. 흔히 나타나는 질병이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는데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주겠는가? 수술대에 올라 경각을 다투는 사람에게 돈이 무슨 대수며 죽물도 넘기기 어려운 사람에게 산해진미가 무슨 쓸모있겠는가? 건강이 개인의 행복이고 재부요, 국민건강이 국력이요, 국부다. 건강이 없는 재부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국민건강이 없는 국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과도한 환경오염이 인체에 대하여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는것은 이미 많은 사례들에 의하여 검증된 과학적결론이다. 환경오염이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지만 우리 나라처럼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환경오염의 고봉기에 처하여있는 국가도 드물며 또한 국민들이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낮은 나라도 드물다. 지금과 같이 환경오염을 무시하는 방식을 가지고서는 결코 좋은 미래를 담보할수 없다. 도처에 환자들이 우글거리고 젊은이들이 애를 갖지 못하며 애들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서 뭘 하겠는가? 따라서 환경에 대한 관심과 생태사회건설에 대한 열망이 사회 곳곳에 확산되고 그 결과들이 열매로 맺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환경운동이 신사회운동에서 주축을 이루고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을 말하면 흔히는 무공해농산물과 같은 좁은 령역에 관심이 집중되여있다. 그러나 진정한 생태운동은 《생태지향적사고방식과 생활양식 만들기》와 《자연친화적인 생활환경 만들기》라고 환경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를 위하여 개개인은 자신의 일상생활에서부터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하여 재활용품 리용, 에너지 절제사용, 오염된 상품 사용거부, 주위 자연 가꾸기, 페기물 수거와 같은 생활방식을 습관화하여야 한다. 친환경적인 생활환경을 만들어가는것은 결코 우리 개개인과 무관한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생활의 질을 높이는 길이요, 자손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남겨주는 일이다. 매일 자녀에게 귀엽다고 입을 맞추면서 살기 힘든 오염된 세상을 남겨주지 말고 그들이 진정으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에 앞장서는것이 더욱 현명한 길이다. 뉴스를 보면 늘 석유값이 오른다고 법석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있지만 정작 인간의 생명유지에 석유보다 백배 중요한 물의 오염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다. 우리가 얼마나 유치한 세상에서 살고있는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는 대승의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8    <장로주>의 민족사회학적 의의 댓글:  조회:3009  추천:14  2011-06-13
探寻民族和地区发展的新路径   朴光星 (中央民族大学民族学与社会学学院 副教授,社会学博士)   延边民德来生态产业研究有限公司召开有关《五德牌·酱露酒》文化及健康意义的学术研讨会,希望我写一篇有关《酱露酒》的民族社会学意义的文章,本人实在是受宠若惊、不知所措,但盛情难却之下,犹豫之余还是鼓足勇气写下这篇文章。说到《五德牌·酱露酒》,我马上想起了两个值得关注的现象:一个是世界范围内的产业分工和市场分割的日趋细分化;另一个是在当今世界正兴起的“健康革命”和备受人们关注的食品安全问题。之所以想起这些,因为我觉得可以用这两个维度去探讨《酱露酒》的社会文化意义。现将不成熟的想法整理成文,希望与关心延边发展的各界同仁共同探讨。                                       一   产业分工和市场分割日趋细分化是当今世界经济呈现的一个重要特点。不管是一个国家还是一个地区、民族,不能在世界产业分工地图中抢占一席之地,就很难谋求快速发展,就得面临落后的状况。同样,在世界市场这一平台里,不能开拓属于自己的“一片领地”也很难谋求发展,很容易落入被人主宰的境地。因此,在当今世界不管是各个国家还是地区、民族、企业都想尽办法在产业分工和市场分割中谋得自己的一席之地。 产业分工和市场分割往往具有排他性和封闭性的特点,一个群体占据某一领域以后总是想尽办法巩固自己的地位,通过垄断市场的形式限制其他竞争者涉足这一行业,所以后来者很难挤进这一领域。在当今世界不管是在国家之间还是在地区、族群之间这种产业分工是非常明确的。比如,美国的高新技术产业、西欧的专业性极强的高端制造业、日本的民用高端制造业、“四小龙”的中端制造业、中国及东南亚各国的劳动密集型工业、其他第三世界国家的原材料工业等,都依托于现已明确的国际性产业分工体系中,而且这样的分工体系一旦形成就很难被打破。在这样的分工体系中,一个国家或地区的产业定位越清晰越能快速发展,越模糊发展越滞后。这样的规律也体现在国内,已故的著名社会学家费孝通在上世纪80年代考察国内经济发展较快的地区时,发现这些地区都具有一个共同特点,那就是经济发展当中都形成了自己鲜明的特色(这种特色可以理解为产业分工和市场分割中的自己的明确定位),他用“发展模式”的概念说明这个现象,提出了“苏南模式”、“温州模式”、“珠江模式”、“民权模式”等概念。 一个族群或群体发展同样需要自己的特色。例如,散居在世界各地的犹太人考虑到自己的政治地位和社会处境不稳定,就重点涉足易于转移的、附加值高的珠宝和金融行业,并通过建构族群网络互相合作的方法形成为一个市场“势力”,因此在这两个行业中发挥着重要的影响力,犹太人也因此成为精明商人的代名词。海外的华人同样在经济领域取得了非凡的成就,他们坚持自己勤奋、节俭、精打细算的特点,从比较艰苦的零售、餐饮等行业做起,向各种服务、贸易、房地产等领域发展,不仅积累了巨大的财富还在上述领域发挥着重要的影响力。对国内流动群体的研究中也同样发现,流动群体如果能发挥特色并占得一个领域,他们的城市适应能力和发展能力更强。比如说北京的外来流动群体,在北京从事家政服务业的主要是安徽人,收废品的大部分是河南人,开打印社的基本都是湖南省娄底市新化县的人。这些人在各自领域形成了一个完整的信息收集、操作和销售的渠道,其他的人很难插足,这等于他们在大城市已经占据了能依托生存和发展的一个领域,比起盲目的流动群体具有更强的适应和发展的能力。 那么,延边(或朝鲜族)在全国乃至国际的产业分工体系和市场分割中是否开拓了属于自己的一份“天地”呢?延边的哪些行业或产品在全国乃至国际市场上享有盛誉?显然,对这一问题我们很难回答,这说明延边在产业领域还没能形成自己的特色。但上述的发展经验告诉我们,不管是民族国家还是某一地区、民族或企业,在市场竞争日趋激烈的经济全球化时代,没有明确自己的产业和市场定位,是很难得到快速发展的。这说明,培育特色产业或产品是延边经济发展中必须要思考的核心问题,延边的发展离不开特色产业或特色产品,但又如何去建构特色产业呢? 延边民德来生态产业研究有限公司的实践也许给我们提供了一个很好的并值得思考的视角。作为一个草根的民营企业,这一企业的核心理念是发掘朝鲜族传统饮食文化中有利于人的健康的因素并加以升华,给消费者提供一种绿色、安全的生态保健食品,并以此倡导新型的生态文明。他们把目光投向了朝鲜族传统饮食文化中可称之为精华的“发酵”食品(发酵食品对健康的促进作用已被好多研究所证实),但他们发现随着工厂化的大批量生产,朝鲜族传统发酵食品中的传统精华工艺逐步被摈弃,如发酵需要良好的生态自然环境、发酵要保证一定时间长度等。他们从恢复传统制作工艺入手,在污染较少、人口密度低的山区建立生产基地,并通过自然力发酵的大酱、酱油、黄豆发酵粉等产品,并保证了产品不含任何添加剂。用传统工艺生产这种产品不仅具有气味香、味道鲜、营养高等特点,还有排毒、养颜等保健功能,因此深受消费者青睐,据说产品处在供不应求的状况。《酱露酒》是民德来生态产业有限公司秉承上述理念最近开发的新产品,据说产品还没有正式上市,前来洽谈生意的商人就络绎不绝、门庭若市。 民德来生态产业有限公司的实践给我们提供了一个如何去探寻延边特色产业的新思路。延边能不能通过发展高新技术产业在全国乃至国际市场中占一席之地?延边能不能依靠发展制造业打开局面?从目前的产业格局来看,在这些领域延边属于后来者,市场里垄断状况的存在和市场的饱和已经没有给后来者留下多少可挤进的空间。那能不能依靠引进外地的大企业谋求发展?越是大的企业它的专业化和自动化水平高,因此虽能增加一点财政收入,但根本上不能解决就业等民生问题,反而会带来环境污染、当地资源被廉价利用、被固定在产业底端等危险。 那么,像民德来公司生产的这些反映延边地方特色的产品能不能成为延边的支柱产业?我们可以从浙江义乌发展经验中寻找答案。自古以来,义乌这个地方的手工业就发达,当地人手巧,善于生产各种小商品,改革开放后义乌人就发挥自己的特点,大力发展各种小商品生产,现在义乌已经成为享誉国际的小商品生产基地。比如,义乌的一个县级市的纽扣生产量就占世界纽扣产量的60%,成为世界级的纽扣生产基地,世界各地厂商的脚步络绎不绝,这就是所谓的“小商品·大市场”的义乌发展模式。义乌的小生产不是靠财大气粗的大企业,而是依靠数以万计的小企业和家庭作坊,这些“蚂蚁”催生出了大产业、大市场。也就是说发展特色产业不能靠某一个大企业,而是要靠某一个产业,这里就有产业定位和发展思路的问题。民德来生态产业有限公司的实践就是发掘当地的人文特色和资源特色,生产出别具一格的健康食品,以此来开辟自己的发展空间。 “健康产业”能不能成为延边特色产业呢?这不仅要看延边在这个领域是否具备了一些有利的条件,还要看这个行业有没有广阔的发展前景。从延边的资源、产业基础以及人文等条件来看,在延边发展“健康产业”比起任何一个产业更具备发展潜力。长白山生态圈是世界级的中药材宝库,再加上制药和食品工业也具有一定的基础,另外也可以利用朝鲜族的文化发挥出特色,如发展“朝药”或“朝鲜族保健食品”系列。众所周知,“藏药”、“苗药”、内蒙的优质牛肉干风靡国内市场,难道“朝鲜族系列”就没有机会了吗?从这一点上可以说民德来的实践具有重要的借鉴意义。                                      二   “健康产业”或者“生态产业”在未来有没有广阔的发展前景呢?我觉得这一问题可以结合开头所提起的第二个现象讨论。可以说,在当今世界人们对健康的关注度超过历史上的任何一个时期,因此关系到健康的食品安全和环境问题已成为社会生活中最受瞩目的领域。工业化使人类社会摆脱了物质贫乏的时代,人类尽情地享受到了工业文明带来的丰富的物质生活,但很少思考用人为的手段、改变物质原有形态的方式促成的大量生产,对人产生何种影响。从物质文明的漩涡中被逐渐唤醒的人们开始思考大量生产、大量消费的社会后果,这时他们才突然发现大量生产、大量消费是靠着毁坏自然、生态乃至于生命的方式实现的,即物质享受建立在破坏人类的可持续发展的基础之上。这种反思促成了新的发展理念,关注生态、生命与环境的可持续发展观已成为人类社会的新的发展理念。人们开始摆脱无节制的物欲,更多地关注自身的健康和生命的活力。 但很快人们又无奈地发现他们的美好愿望在短期内很难得到实现。在大量生产、大量消费的工业化模式下发展起来的食品工业,更多的注重“量”、“美观”、“口感”等问题,并没有对人的健康予以足够的重视。比如,为了增加粮食产量不断增加农药和化肥的使用量,畜牧和种植业中广泛使用各种激素(如“瘦肉精”),毫无节制的使用各种食品添加剂(如“塑化剂”),已经酿成了非常严重的食品安全问题。这使得人类的健康受到巨大的威胁,健康、生态、食品安全问题成为人们最关注的话题,因此,“生态产业革命”或“健康科技革命”也成了人类社会下一轮科技革命的主要战场。人类社会的正从“信息化革命”时代过渡到“生命科学”革命时代,以往的经验告诉我们每一次的科技革命往往会带来巨大的新型产业发展空间,并带来全新的生活方式,从这一点可以说“健康产业”具有无限的发展空间。因此,在当今各国政府和企业为了抢先占领这一市场正进行着激烈的争夺。 新一轮的生命科学革命有两种不同的推进路径,一种是通过科技创新去探寻未知世界,以便从中找出有利于人类健康的新要素;另一种不像工业化时代用人为的手段干预自然过程,而是遵循自然规律,试图通过合理利用自然力达到生产的目的。这意味着以后的农业或食品工业不能继续走无节制的使用各种农药、化肥、激素、添加剂的发展路径。古代中国就有“天人合一”思想,讲的就是人是自然世界的一部分,因此要遵循自然规律,而不要违背自然规律,违背自然规律会遭到自然的惩罚。当今人类社会面临的各种生存危机,可以说是和工业化阶段的过度开发及改变自然法则有关,因此,保护自然、尊重自然规律,尽量恢复原生态的生活方式,以实现“天人合一”的循环型社会已成为人类社会的共识。 这说明,民德来生态产业有限公司在合适的时间、合适的地方、选择了合适的行当。《酱露酒》结合了朝鲜族大酱工艺,生产出了没有任何添加剂,并具有营养价值和保健功能的好酒,不能不说酿酒领域的一大创新。它紧紧抓住了时代特点,发掘了传统文化中的精华,既创造了特色,又迎合了消费者关注健康的要求。民德来的实践给延边的启示是,延边作为后来者是继续走大兴土木、污染环境的老工业化道路,还是通过保护自然环境的方式培育结合本地特点的新型的健康的生态产业?这是值得我们探讨的。                                        三     做一个总结的话,可以说《酱露酒》的民族社会学意义体现在以下几个方面:一是为延边或朝鲜族在经济全球化时代开拓自己的生存空间提供了一些有益的并值得借鉴的经验;二是为如何发扬民族传统文化中的精华,并使之成为自己的特色、能量、资源等方面提供了宝贵的经验;三是为朝鲜族传统饮食文化服务于更多的人群做出了自身的贡献;四是用自己的实践倡导了健康的饮食文化和生态文明。希望延边或者朝鲜族社会涌现出更多像民德来公司或《酱露酒》这样的富有个性的企业或产品,以期为更好的发展奠定基础。  
7    “연변의 특산이 뭐예요” 댓글:  조회:5212  추천:29  2011-03-17
“연변의 특산이 뭐예요”    박광성 (중앙민족대학 사회학과 부교수)     일전에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두분의 동료 교수와 함께 연변고찰에 나섰다. 동행한 교수 한분은 신강 우룸치 출신의 한족교수이고, 다른 한분은 사천 량산 출신의 이족교수로서 중국인류학계에서 유명한 분들이었다. 연변에서 몇년간 생활한 나로서는 별로 흥분되는 일이 아니었으나 연변에 처음가는 그들은 자못 흥분된 기분이었다. 기타 민족들에게 조선족은 문화와 교육이 발달하고, 깨끗하고 세련된 집단으로 알려져 있어 그들이 연변행에 대한 기대는 매우 큰 것 같았다.     그러나 연길로 도착해서부터 그들의 질문은 수없이 나에게 쏟아졌다. “왜 길에 사람이 이렇게 적냐?”, “연변이라면 조선족 특색이 짙을 것 같았는 데 와보니 별로 느끼지 못하겠다”, “장사하는 사람이 거의가 한족인 것 같다” 그들에게는 질문이 끝없는 것 같았다. 연길, 용정, 도문, 훈춘, 조양천 등 지역을 돌면서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전 기억에 오손도손 했던 도시들은 인적이 한산한 모습을 보였고, 수부도시 연길마저 너무 썰렁하게 느껴졌다. 물론 겨울이어서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적은 원인도 있겠지만, 밤에도 많은 아파트의 불이 꺼져있는 것을 보면 빈집들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또한 랭면집이나 개장집같은 곳도 복무원이 모두 한족이어서 예전에 분위기는 아니었고, 도시의 변모는 변하고 있으나 조선족 생활문화의 색이 옅어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돌아오기 전날 두 교수는 연변에 왔으니 기념으로 뭐래도 좀 사가야 할 것 아닌가고 하면서 우리를 동행하는 민족종교국 간부에서 “연변의 특산이 무엇입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 분은 선뜻 대답을 못하더니 운전기사와 상의하고 나서 “연변에는 장백산에서나는 중약재와 산나물이 특산입니다. 기념품으로 가져가면 좋을 겁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한 매장으로 갔는데, 들어서보니 가게도 크지 않고, 연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삼이나 록각、검정귀 버섯 등이 진렬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요즘은 중약재와 같은 것들이 너무 가짜가 많아 원만한 품질포장이 없으면 쉽게 사게 안된다. 두 교수는 살 것이 없다는 식으로 머리를 흔들며 체면상 검정귀버섯 한 봉지씩 사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새삼스럽게 “연변의 특산이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녀보면 자연경관만 보는 여행이 제일 멋없고, 순 경관이 아닌 역사문물이나 생활문화를 보면서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체득할 수 있는 여행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그기에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이나 공예품 같은 것을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가령, 운남성 이강에 가면 옥룡설산과 같은 거대한 자연경관이 있는 가 하면 옛 나시족의 왕궁이 있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요해할 수 있고, 더욱이 당지에서 나는 공예품들이 여행객들이 발을 당긴다. 각종 은제품, 나무공예품, 각종 골동품, 당지에서 나는 천으로 만든 손수건과 목도리와 같은 장식품들이 많아 숙소에서 쉬다가도 또 나가 돌고 싶다. 하남성 개봉에 가면 수놓이가 일품이다. 각종 꽃이나 풍경을 정교하고 수놓아 액자에 넣어 파는데, 외지에서 온 사람치고 하나쯤 사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내몽골 하이라얼시에 가면 나무를 편으로 잘라 그 횡단면에 그림을 그려서 파는 공예품들이 일품인데, 그것을 하나 사서 집에 걸으놓으니 구수한 나무 향기도 일품이어서 오는 손님마다 부러워 한다.     그럼 연변에는 뭐가 있을 가? 흔히 말하는 연변의 자랑거리인 개고기와 냉면은 한번 먹어보면 끝이고, 소위 장백산에서 난다는 약재를 사자니 큰 회사나 장기간 경영하여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는 브랜드가 없어 선뜻 사게 안된다. 공항이나 호텔 등의 매장에는 한국산 공예품과 일부 러시아산 공예품들이 있는데, 이런 물건을 굳이 연변에서 사야할 필요가 없다. 가령 북경만 해도 대사관 구역의 상업구에 가면 각 국의 물건들이 즐비하고 큰 매장들이다보니 품질도 신뢰할 수 있다.     연변에 가면 흔히 당지 간부들로부터 장백산은 세계 몇 대 약재기지요, 연변의 삼림피복율은 얼마요 하는 소개를 듣게 된다. 그렇다면, 왜 “개고기 거리”만 만들지 말고 “장백산특산거리”는 못 만들가? 검증을 받은 업체들을 집중시켜 관리도 강화하고 상호 견제하고 경쟁시켜 특산품의 시장을 정돈하여 전국 나아가 국제적으로 이름있는 약재시장으로 발전시키지 못할 가? 삼림피복율이 70%이상이라는 연변에 가면 왜 목 조각품과  같은 공예품 하나 볼 수 없을 가? 목재가 대량 수요되는 산업은 채벌과 같은 제한을 받아 쉽게 발전시킬 수 없다면 원목으로 쓰기 힘든 나무를 조각이나 공예품으로 만들 수는 없을 가? 하이랄시의 공예품처럼 나무 횡단면에 우리 민족여성들의 단아한 모습이나 민속놀이장면과 같은 그림을 그려 넣는다면 외지 여행객들에게 얼마나 뜻깊은 기념품이 될 가?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윈리는 교환이 아닐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로 남과 교환해야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고 생활도 윤택해지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연변의 상황은 “색시를 남에게 보내고 안방까지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형국”이다. 양질의 노동력과 인재는 외지로 나가고 외지 상품들이 본 지역의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내 것을 만들어 남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밑에서 일하여 번 돈을 또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형국으로 양쪽으로부터 당하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변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본 지역의 자연자원、생태환경、인문자원을 잘 이용하여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을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보다 상급 정부의 자금을 쟁취하여 눈에 보이는 공정을 벌리기에 급급한 것 같다. 물론 기초시설 개선이나 건설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니 사람들이 취직이 잘되고 수입이 높은 외지로 나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기업과 사람이 적어지다 보니 거금을 들여 건설한 고속도로와 아스팔트는 한산하기만 하다. 길이 쭉쭉 뻗어있고 개발구도 널찍널찍 하건만 정작 행인은 드물고 기계 가동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즉 무대는 갖춰져 있는 데 배우가 없는 셈이다.     내륙변강지역은 특색경제를 발전시키는 길 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세계공장이 되어 일반 공산품의 생산은 과잉되어 있다. 따라서 내륙지역에서 일반 공산품을 생산하는 공업을 발전시킬 시장공간이 없고, 그렇다고 고기술산업은 더욱 힘들다. 요즘 내륙 변강소수민족지역에서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는 지역 거의가 지방의 우세를 잘 이용하는 특색경제를 발전시킨 곳들이다. 가령 운남성 훙허하니족자치주는 연초공업으로, 내몽골 어얼둬스는 광업과 모직업으로 전국적으로 소문나 있다.     연변은 “꿩 잃고 알 잃고 둥지까지 망가지는”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본 지역의 우세를 발휘할 수 있는 산업육성에 총력을 기울여 국내 나아가 국제의 산업지도에서 자기 공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연변의 특색이라면 아무래도 장백산지역에서 나는 각종 자원과 조선족문화가 아닐 가 싶다. 문제는 특색을 어떻게 산업우세로 전환하는 가에 있을 것인데, 특히 문화를 어떻게 경제발전에 이용하는 가하는 문제는 더욱 텅빈 구호같아 보인다. 그러나 문화를 이용한 마케팅 사례는 많은 것 같다.     가령, 요즘 장족지역에서 나는 약재는 “藏药”로 불리면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고, 역시 장족지구 견종인 ”藏獒”는 이미 상류층의 사치품으로 되어 있으며, 장족들이 쓰는 칼 “藏刀” 역시 소장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전형적으로 민족특색과 지역특색을 이용한 성공적인 시장판매전략이다. 운남성 원싼현의 푸저허이 이족민속촌에 가면 경치도 수려하거나와 이족문화 특색 또한 여행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주택, 복장, 음식, 민속활동 모두 이족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저녁마다 조직하는 우등불야회는 유람객들의 환영을 받는 다. 기후가 좋아 일년내내 각지의 유람객들이 몰려되는 데, 한달에 한 농호가 몇 만원씩 번다고 한다. 몽고족에게는 “马奶酒”와 “风干牛肉干”있다. 술맛도 좋거니와 고기맛도 일품이며 휴대하기도 편해 북경같은 대도시에서도 부리나케 팔려나간다.     그러나 연변의 현재의 모습은 문화적 특징을 살리려는 노력에 비해 쇠퇴의 추세가 더욱 완연한 것 같다. 연변은 조선족자치주라는 타이틀과 문화적 특징을 버린다면 정말로 아무런 특색도 없는 완전한 변방이 되고 만다. 그러나 조선족문화를 잘 이용하여 특색을 부각해나간다면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연변에서도 이러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걸음에 우리는 우연히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에서 새로 개발하였다는 “된장술”을 맛보게 되었다. 조선족의 전통메주를 술원액과 결합하여 빚은 술인데, 길림성품질관리국의 검증에 따르면 화학첨가제가 없고, 메주 속에 영양성분이 용해되어 해독기능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화를 연구하는 두 교수에게 이를 소개하여 주었더니 문화를 상품화한 좋은 사례라고 하면서 기념품으로 이 술을 가져가면 되겠다고 기뻐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홈장이나 다름없는 연변에 와서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 같아 내심 개운하지 않았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몇 병씩 선물하였다. 요즘도 이 두분 교수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된장술”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보이군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와 전통을 상품화한 좋은 사례가 아닐 가? 조선족은 일류의 입쌀을 생산하면서도 입쌀 명품브랜드 하나 만들지 못하고, 개고기 잘 먹는다고 전국에 소문났지만 개고기상품 브랜드 하나 없고, 명태로 별 반찬을 다 만들어도 전국 시장에 내놀 상품 하나 만들이 못한다. 여름에 입으면 그렇게 시원한 삼베나 모시 옷도 요즘같이 찌든 여름을 보내야 하는 도시에서는 환영받을 법 한테 서시장에 옷감이 흔해도 상품화시키는 사람은 없다.     연변주정부는 고래등같은 정부청사를 좀 줄여 짓더라도 기금을 조성하여 이러한 지역특색을 반영하고 우세를 발휘할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부금, 세제, 토지사용, 행정절차 등 방면에서 우대정책을 폄으로써 민간의 창발력이 꽃피게 하여야 한다. 허구한 날 상급정부에서 투자해주기를 기다리거나 혹은 눈 먼 외국 투자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역의 우세를 발휘할 수 있는 산업육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민 역시 곧 막물이 날 한국노무행에만 집착하지 말고, 현지에서의 경제기반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른 나라에 의거하여 부자된 집단은 역사적으로 없다. 한국 노무행이 발전과정의 한 단계로 되야지 영구화되어서는 조선족이나 연변의 밝은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 힘들게 번 돈을 종자돈으로 삼아 평생 의지하여 살 수 있는 경제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노무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 가? 지역경제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 연변에 가는 손님마다 특산품 한꾸럭 푸짐히 들고 떠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6    조선족농민 10년후 자기땅 어딘지 모를수도 댓글:  조회:3507  추천:38  2010-08-13
조선족농민 10년후 자기땅  어딘지 모를수도                                      박광성 중앙민족대학 사회학과 교수         2010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 사이에 필자는 동북지역의 부분 조선족농촌에 대한 방문에 나섰다. 연변 도문시 월청향, 흑룡강성 해림시 신안진, 상지시 하동향으로 거친 방문을 통하여 도시화과정 속에서 조선족농촌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는 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 인구 유출이 심한 마을은 실제거주 인구가 호적인구의 1/8도 되지 않았으며, 많이 남아있는 마을도 호적인구의 1/3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50세 좌우가 젊은 층으로 분류될 정도로 노년인구위주로 되어 있어 조선족 농촌은 완전히 “노년생활형” 마을로 변화되어 있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5년 전만 하여도 고향에 가면 사람들로 북적이여, 정다운 농촌생활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현재는 사람을 찾아야 할 정도로 마을들이 텅텅 비어 있었다. 15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격세지감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조선족처럼 빠른 기간 내에 도시화를 경험하는 집단은 보기 드물다. 유례없이 빠른 도시화를 경험하였다는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가와 지역도 30여년이라는 도시화의 단계를 경험하였지만 조선족은 15년 이라는 짧은 시간을 통하여 높은 도시화 단계로 진입하였다. 물론 도시화의 질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조선족농촌의 인구 유출상황을 감안해 볼 때, 현재 조선족 총인구의 75~80%가 장기적으로 도시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다. 수치로만 본다면 이는 선진국들의 도시화율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따라서 현재의 조선족농촌의 해체는 조선족사회의 해체를 의미하기 보다는 도시화과정에서의 농촌사회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또한 도시화와 유리되어 조선족농촌문제를 고민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 조선족사회의 중심은 이미 도시로 옮겨져 도시에서의 적응과 발전, 도시민족공동체의 창출과 네트워크형성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업으로 되고 있으며, 농촌의 관건적인 문제는 도시화에 의하여 초래된 후유증을 어떻게 정리、해소하는 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토지사용 문제이다. 도시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농민들이 다시 귀향하여 농사를 짓는 것을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또다시 영세농업의 길로 가서도 안된다. 따라서 조선족농촌의 핵심적인 과제는 이농한 상황에서 어떻게 토지의 경영권을 잘 지키고 활용하여 최대한의 임대수익을 확보하는 가에 있다.     농토의 중요성과 가치는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세계적으로 발전도상국가를 중심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공업화와 도시화、환경악화에 따른 수토유실로 양질의 경작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어 식량안전이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을 놓고 보면, 현재 일인당 경작지 면적이 세계적으로 최하권 6위를 차지하며, 국토의 64%차지하는 서부지역이 토지가 척박하여 5%인구만이 이 지역에서 생활하고,  95%인구가 국토의 36%차지하는 동부지역에서 생활하고 양질의 경작지가 점차 귀중한 전략자원으로 부상되고 있다.         따라서 농촌지역에서 토지의 임대비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데 가령, 현재 동북의 수전지역을 볼 때, 임대료가 높은 지역은 한쌍당 6500위안에 달하며, 대부분 지역의 임대료가 5500위안 정도 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임대료가 2000위안도 되지 않았 음을 감안하면 10년래 임대수익이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경제발전과 수요에 따른 양곡가격의 상승추세와 양질의 경작지의 감소추세를 감안할 때, 앞으로 경작지의 임대수익이 안정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국의 사회복지체계가 낙후되어 있어 대부분 농민들이 노후보장이 없고, 앞으로도 짧은 기한 내에 그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한 세월이 변하여 자식에 기대에 노년을 보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토지를 잘 지켜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얻는 것이 농민들이 노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풍족하지 않더라도 최저생계비 정도는 확보하고 있는 셈이고,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마직막 삶을 터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부여한 이 토지경영권을 어떻게 잘 지키고 활용하는 가가 조선족농촌의 중요한 난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현재 마을에 남아 있는 농촌지도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기도 하다. 2009년 8월 동북지역 20여개 농촌 476농호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80%정도의 농호가 년 단위로 임대계약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10년 이상 계약을 맺은 농호는 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농토경영권을 헐값으로 넘기거나 혹은 장기임대하는 것을 통한 농토상실의 위험은 현재로선 돌출하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 큰 위험은 이농의 시간이 길어지고, 토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세대교체가 되면서 생기는 문제이다. “조선족은 이제 10년 정도 지나면 제 땅이 어딘지도 모를 사람이 많습니다. 농사를 지어온 부모세대들이 세상을 떠나면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땅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던 자식들이 자기집 땅이 어던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박선생님도 지금 고향에 가면 자기집 땅이 어딘지 알만 합니까? 아직까지는 어려서부터 농사로 뼈 꿁어온 일부 노인들이 마을에 계시고, 고향을 지키고 있으니 괜찮지만, 이 분들이 돌아가시면 그때는 정말 제 땅이 어딘지 모르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할 것이고, 마을에도 알려줄만한 사람도 없게 됩니다. 결국 조선족이 제 땅이 어딘지 모르니 실제 농사짓던 사람들의 땅으로 되는 것이죠.?” 해림시 신안진 중화촌의 촌장의 말이다. 현재 이미 토지 임대에서 자기땅의 지경을 똑똑히 몰라 일부 토지를 떼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농촌의 고령화가 심해지고, 귀향하는 젊은이들이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구경 누군가가 마을을 지키면서 토지임대에 관한 업무를 수행할 것이며, 누군가가 마을 사람들의 토지지경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정말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조선족농민들은 지금부터 이러한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여야 한다.     우선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농토에 관심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점검해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자식들에게 토지의 지경과 지도를 그려 똑똑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외 말뚝을 막아 지경을 표시하는 등 물리적인 방법들을 고려해볼 수 도 있다.     둘째는  아직까지 마을에 일부 경험있는 노인들과 촌간부들이 남아있는 기회를 잘 이용하여 마을의 토지 지경과 각 농호들의 토지지경을 소상한 그린 지도같은 것을 만들어 두어 이 후를 대비 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외지에 진출한 농호들에서 매년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촌정부와 노인협회 등 조직을 지원함으로써 상기와 같은 일들을 벌리고 고향을 지켜갈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줄 필요가 있다.       지금의 세상은 귀중한 자원을 놓고 혈투를 벌리는 시대이다. 한 집단의 힘은 얼마나 많은 중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가에 달려 있다. 조선족은 소수집단으로 현재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원확보전쟁에 가담할 만한 역량이 없다. 따라서 조상들의 피땀으로 일궈오고 지켜온 농토라도 잘 지켜가야 한다. 그것이 집단과 개인이 번성해갈 수 있는 중요한 초석이다.
5    연변, 투망(投網)의 손잡이 역할을 해야 댓글:  조회:3598  추천:113  2008-10-10
제1회 조선족발전포럼-"연변의 의미와 가치 좌담회" 발표문 연변, 투망(投网)의 손잡이 역할을 해야   박광성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교사      현재는 무엇보다 정체성이 중요한 시대이다. 정체성이 명확해야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져 갈 길을 정확히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개인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지역의 발전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 지역의 어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하여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큰 지역적 범위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부여 받고 있는 가가 명확해야 미래의 발전방향을 정확히 설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을 가? 이는 우리의 삶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예전에는 생활세계가 지역적 범위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타 지역과의 연관이 제한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타 지역과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잡아야 하는 압력이 적었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화와 시장화 된 경제구조 속에서는 타 지역들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 처하여 있으며, 따라서 어떻게 비교우세를 발휘하여 지역적 분업체계 속에서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연변만 봐도 10여 년 전만 하여도 고향에서 자신의 직장생활과 생업에만 열중하면 되었지 다른 곳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이미 많은 주민들이 대량으로 외부로 진출하여 있고, 타지 나아가 타국과의 교류가 지역발전의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어 이러한 연결을 무시하고는 지역발전을 운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지역적 우세를 살릴 것인 가? 어떻게 역할을 확정해야 하는 가? 이와 같은 문제는 발전방향과 대책의 설정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변은 아직도 정체성을 찾고 있는 지역이다.    지역적 정체성을 확립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역적 특징과 우세에 대한 파악이다. 여기에는 자연적 우세, 역사 문화적 우세, 지정학적 우세, 인문적 우세 등 내용이 포함된다. 이에 비추어 우선 연변의 자연적인 우세를 찾아본다면 다른 지역에 비하여 크게 내세 것이 없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이라면 다른 지역도 다 그렇게 선전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연변이 크게 부각될 만한 것이 없다. 명산 장백산이 있지만 그것을 연변의 특징으로 부각하여 우세로 활용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크다.    역사 문화적으로 보아도 특히 부각될만한 것이 없다. 산마다 열사비라고 해도 중국에 너무 많은 역사유적과 역사사적이 숨 배어 있는 곳이 많아 거대한 것들과 비하면 오히려 초라한 감이 들며, 연변에서 특히 의미 있는 역사적 발견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문화적으로 조선족의 집거지로 조선족문화가 지역적 특색으로 될 수 있지만, 조선족문화를 산업화시켜 지역의 발전을 견인할 조건과 능력을 단 시기 내에 갖추기 어렵다. 지정학적으로 보아도 황금금삼각지역이요 동북아시대 전초기지요라고 말들은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화되기에는 너무나도 아득하고 요원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으로 들어오면서 연변의 특징으로 부각되어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연변조선족의 타지 진출이다. 이는 중국조선족사회변화와 연관되어 있지만 연변이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연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가령, 중국의 주요 시사지 "반월담" 2007년 22기에는 "연변의 노무경제가 백성을 부유하게 한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글에서는 근년에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해외노무경제가 당지의 과학적 발전을 견인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부유하게 만드는 열점으로 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2006년에 해외노무수입이 10.6억불로서 전주GPD의 1/3차지하며, 해외노무진출자가 근 15만 명에 달해 총 취업인구의 17%달한다고 소개한다. 2001년 연변에서 "대외노무합작관리조례"를 반포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지방의 대외노무합작법규이며, 2004년부터 연변의 내륙지역에서 유일한 전국출입국중점관리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굳이 이런 것을 말하지 않아도 조선족의 외지진출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족의 이동은 진출지역이 넓고 이동강도가 높으며, 경제발전수준이 높은 대도시 지역에 집중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많은 조선족이 국내외의 대도시에 진출하여 있다. 또한 조선족의 이동은 계절에 따라 오가는 임시적이 이동보다 새로운 생활지역 개척이라는 장기적인 이동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기에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에 타지에서 주류사회로의 진출과 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조선족은 현재 무궁한 가능성을 창조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한계는 이러한 자원을 조직화할 기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력이며, 소수집단의 경쟁력은 우선 집단의 협력체제에서 나온다는 것이 많은 소수집단에 대한 연구가 내놓는 결론이다.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자치주로 연변은 이러한 조선족의 인문자원과 우세를 충분히 활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필자가 제기하는 것이 "투망손잡이론"이다. 어구인 투망은 물에 확산시켜 뿌려 넣어 물고기를 끌어낸다. 연변도 많은 주민과 유대관계가 있는 조선족을 외부로 확산시켰기 때문에 투망을 널리 던진 격이다. 관건은 어떻게 물고기를 잡아내는 가 즉 이를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사람을 다시 끌어들인다는 개념이 아니고, 어떻게 외부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지식, 자본, 정보, 인맥, 경영능력을 연변의 지역적 발전과 연결시키는 가하는 문제이다.    현재 연변에 있어 가장 큰 한계는 많은 인재와 청장년노동력의 유실로 사회적 활기를 잃어가는 문제이며, 가장 큰 우세는 조선족자치주로 정부의 정식적인 허가와 영도를 받고 공적인 기구들이 많다는 것이다. 외부에 진출한 조선족은 중심부에서 파생되는 기회를 이용하여 빠른 개인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조직적인 기반이 없기 때문에 더욱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연변이 조직적인 힘을 이용하여 이를 역량화 시킨다면 연변도 외부의 힘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뿐더러 외부 조선족도 조직화됨으로써 민족공동체 내의 협력체계를 이용하여 더욱 큰 발전을 꾀할 수 있다.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선 정부의 허가를 받고 있는 많은 공적인 기구들이 나서서 네트워크화 된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 필요도 없이 연변의 기구에 외부 회원제의 형식으로 외부의 사람들을 대거 참여시켜 협력의 장을 만들면 된다. 기업은 기업별로, 학문은 학문별로, 문화단체들은 문화단체별로 많은 네트워크화 된 조직을 구성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구성된 모임의 정기화를 통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    중국조선족사회에서 네트워크화 된 조직운영을 가장 잘하고 있는 곳을 예 들면 "흑룡강신문"으로 볼 수 있다. 많은 독자층이 외부로 진출하자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외부로 진출하여 지사를 만들고, 부간을 만들어 당지 독자들에게 맞는 정보를 제공하고, 당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조직의 우세를 발휘하여 민간사회를 조직하여 민족공동체를 구성해가는 등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신문의 정보량과 학자들의 참여, 시장화사업과 더욱 효율화된 네트워크 조직운영에 정진해간다면 "흑룡강신문"은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네트워크구축에서 활약적인 것은 미국에 진출한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니카"이다. 국내 조선족 네티즌들은 물론 세계 각 지에 진출하여 있는 조선족유학생들이 사이트를 이용하여 각종 정보를 주고받고 생활수기와 같은 글들을 올려 명실공히 세계적 네트워크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온라인 활동을 통하여 여러 지역에서 동호회를 만들고 오프라인모임을 구성해가고 있다.    국내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는 곳은 "조글로"이다. 인터넷 미디어형식으로 뉴스와 정보를 다루는 외에도 각 계의 인사들을 참여하는 미니홈을 운영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형식의 포럼과 지역적 동호회를 구성하여 오프라인 모임까지 구성해가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앞서가는 위치에 있으며, 이 후 영향력의 계속 커질 것으로 예견된다.    연변의 많은 문화교육경제사업단위들은 지역에 국한되어 고사를 기다리지 말고 이러한 네트워크화 된 조직구성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서 국내외에 자원을 지역발전에 충분히 활용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조선족자치주로서 조선족사회에서의 역할을 찾아가야 한다. 세계 각 지와 국내 대도시에 진출해 있는 조선족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투망의 손잡이"가 된다면 연변의 새로운 僑鄕으로 태어날 수 있을 뿐더러, 동북지역 대외교류 창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변이 외부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사회와 문화의 질이 향상될 것이며, 이를 통하여 특색 있고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 중국조선족의 든든한 문화적 근거지로 될 것이다. 연변의 지성들은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세계적인 학자 다니엘 벨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08년 10월 3일 북경에서  
4    한국에서 번 돈 농업영역에 투자하라 댓글:  조회:3605  추천:103  2008-08-30
일전에 연변농촌을 방문하고 온 한 교수님과 식사를 하면서 그의 방문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연변 농촌의 한족남성들은 장가를 들기 위해 여성에게 10만원이라는 약혼예물을 줘야 하는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해결하는 가 물으니, 조선족의 땅을 많이 부치고 있어 괜찮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보통 10쌍, 많게는 20쌍까지 하는데, 많이 경작하는 경우 순 수입이 10만을 훌쩍 넘어선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에 간 조선족들이 일년에 15만원을 모을 수 있을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환율로는 부부가 한국에서 뼈빠지게 일해도 일년에 15만원을 저금하기 어렵다. 또한 한족들은 농사를 많이 하게 되면서 농기계를 꾸준히 갖춰 실물재산이 불고 있지만, 조선족은 현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물가 상승에 의하여 자산가치 하락을 겪어야 한다.    이는 요즘 얘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큰 추세로 보면, 중국은 세계공장이기 때문에 위안화의 절상이 필연적이며, 거대 경제체이기 때문에 국제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력도 강하다. 따라서 위안화는 안정적인 통화로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의 개방 정도가 높기 때문에 투기 자본의 공격을 받기 쉽고, 따라서 한화의 파동이 심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장기적은 안목으로 보아, 국내에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생업기반을 갖추는 것이 조선족에게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가 보건대, 농업영역이 중요한 기회로 되고 있다. 그 첫째 근거로, 현재 세계적으로 인구와 경작지의 비례가 심각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다. 이미 양곡생산이 수요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 하에서 앞으로 20년 간에 20억의 인구가 증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세계 각 국이 식량안전을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삼고 있다. 중국도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각종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양식가격을 높여 농업생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둘째로, 환경생태산업이 정보통신산업을 이어 새로운 산업혁명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견이 없으며, 많은 나라가 환경생태산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환경생태 산업의 발전은 결코 농업을 떠나서는 운운할 수 없다. 이는 농업이 전통농업에서 첨단농업으로 거듭나면서 무궁한 잠재력을 발산할 것임을 설명해준다.    조선족은 농업에서 우세를 가지고 있다. 농경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잔뼈를 굳혀온 실농군들이 많아 농사만큼 자신 있는 영역도 없다. 또한 현재 조선족농촌에는 임대할 수 있는 농토도 많으며, 아직도 고향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아 일을 시작하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또한 많던 적던 외국에 가서 번 돈이 있어 농업에 투자할 여력도 있다. 따라서 앞 날이 안 보이는 막노동 판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번 돈을 과감히 고향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조선족의 농촌을 다니다 보면, 이외로 고향에서 착실하게 기초를 다져가는 “농장주”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에게서 미래에 대한 야심 찬 구상도 읽을 수 있다.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몇 년 정도 외국으로 가서 막노동을 할 수 있지만, 시간을 너무 끌면 인생에 대한 낭비가 된다. 이제는 외국에서 번 돈을 과감하게 투자하여 도약의 기초를 마련할 때다.          
3    세계화시대 조선족의 의미 댓글:  조회:3768  추천:100  2008-08-26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 이민이 증가일로에 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세계 이민자규모는 1970년의 8150만 명에서 2000년의 1억 7490만 명으로 3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민현상은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전통적인 이민 유입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되고 있어, 세계화시대의 중요한 특징으로 되고 있다.    이민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7년 세계이민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은 유입국의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젊은 이민자들이 노령화된 선진국의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러 넣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내 스페인에 일자리가 700만 개가 늘고, 프랑스와 호주에서 각각 200만개가 증가한 것은 외국 인력이 유입된 결과로, 외국인 노동자가 인력이 부족한 산업에 투입되면서 또 다른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민자를 내보내는 개발도상국이 얻는 경제적 혜택도 크다. 이민자들이 선진국에서 취득한 기술과 자본, 아이디어를 갖고 귀국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민자들이 본국에 보내는 송금액은 엄청나다. 국제농업개발기금(IFAD)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이민자들이 2006년 한 해에 본국에 보낸 송금액이 3010억 달러에 달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나 원조규모를 초과하였다.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이민자들이 115개 개발도상국에 송금한 금액이 2003년보다 10%증가하였으며, 그 결과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자가 3.5%감소하였다.   이민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 들어서면서 이민 집단이 형성하는 초국적인 네트워크와 그에 의한 다국 간 교류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에 있는 화교집단이 중국경제발전에 대한 공헌이나, 해외에 진출한 이민자집단이 인도의 사회발전에 대한 견인작용이 가시화되면서, 세계적으로 이민의 초국적 네트워크와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화시대가 되면서 국제적인 네트워크구축은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적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이민 집단이 서있다.   조선족은 세계화의 붐을 타고 능동적으로 세계진출을 하고 있는 집단이며, 그 중의 일부 집단이 새로운 이주지에서 사업을 발판을 마련하고 자리를 잡아가면서, 점차 초국적인 집단으로 변신하고 있다. “초국적 집단”은 소속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들면서 생활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제3의 집단”을 가리킨다. “제1집단”이 국내에서 생활하는 집단이라면, “제2집단”은 타국에서 생활하는 집단이고, “제3집단”은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집단이다.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제3의 집단”의 존재가 점점 중요해진다. 조선족의 경우를 보아도, 외화를 벌이들일 뿐만 아니라, 외국의 선진기술과 상품을 국내로 인입하며; 국내의 질 좋은 상품을 국외로 수출하여, 소속국과 진출국의 하나의 연결고리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초국적 집단이 국가 간 교류를 촉진하는 하나의 통로임을 설명하며, 교류와 영향력의 확대를 위해서는 이에 대한 활용이 중요함을 설명한다.            조선족은 급격한 사회변화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발굴하고 활용하여야지 평가절하 시켜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선 우선은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역사는 늘 위기 의식속에서 발전한다.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휘황한 역사발전의 절반은 망한다는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었으며, 실패한 역사의 절반은 휘황한 과거에 얽매인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변화 속에서 긍정적인 요인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요인이 최대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지, 위기 의식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선 지역적 사고나 과거에 얽매여 서는 안되며, 세계적 시야와 미래를 전망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2    농토가 큰 재산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댓글:  조회:3705  추천:136  2008-05-16
농토가 큰 재산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박광성 중국 중앙민족대학 교수1950년에 이르기까지 인류사회는 몇 천 년의 력사과정을 거쳐왔지만 인구규모는 17억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에 와서는 세계인구가 60억에 도달하였다. 즉 짧은 50년 간에 증가된 인구가 몇 천년 력사를 거쳐 형성된 인구규모의 2.5배에 달한 것이다. 인구학자들은 현재의 인구발전상황이 유지된다면 2025년경에 가서는 세계인구규모가 80억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장구간 인류역사를 조망해보아도 오늘과 같이 인류와 자원 간에 관계가 긴장했던 적이 없었다. 짧은 기간 내의 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자원에 대한 수요를 폭발시켰고 이로 인한 과도한 개발로 하여 인류생존의 물질적 기초인 자연이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으로 들어오면서 국제시장에서 원자재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경제발전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곡물도 그 중의 하나에 속한다. 올해 초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돼지고기와 같은 농산품의 가격이 급속히 상승하고 현상이 나타났다. 육류가격의 급속한 상승의 배후에는 곡물가격의 상승의 자리잡고 있다. 2003년에 세계시장에서 밀과 옥수수와 같은 곡물가격이 상승하여 그 전 10년 내의 최고치를 기록하였으며 같은 기간에 우리나라 동북지역의 밀 가격은 32%, 옥수수 가격은 100%, 쌀 가격은 13%상승하였다. 2007년 1~5월 사이 중국의 식품가격은 작년의 같은 시기에 비하여 6.8%, 곡물 가격은 6.4%상승하였다. 세계은행과 세계량곡조직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앞으로 수년 내에 세계시장에서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곡물가격의 상승이 자연재해와 같은 우발적 요인에 것이라면 큰 문제가 될 것 없으나 현재 가격의 상승은 수요의 증가와 공급의 한계에 의한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농업전문가들은 현재 농산물가격 상승의 원인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면에서 찾고 있다. 첫째는 인구의 빠른 증가가 농산물에 대한 수요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둘째는 중국과 인도와 같은 인구대국들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육류의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어 육류제품에 대한 시장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축사육에 필요한 사료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셋째는 옥수수와 같은 곡물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과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곡물에 대한 잠재적 수요를 확대시키고 있다. 넷째는 석유와 같은 원자재의 가격상승으로 인한 생산비용의 상승과 연관되어 있다.   이로부터 볼 수 있듯이 오늘날의 농산물가격상승은 생산의 단기적 파동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수요의 지속적인 증가와 연관되어 있으며 따라서 단기간 내에 해소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속한다. 농산물 가격의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을 증가해야 하며 공급의 증가를 위해서는 단위생산량의 증가와 경작면적의 확대에 의거하여야 한다. 그러나 농업기술의 큰 도약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설령 기술이 개발된다고 하여도 일정한 수준의 경작면적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현재 경작지면적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화로 인한 개발, 사막화, 토지유실 등 문제로 인하여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토자원부의 통계에 의하면 2005년 중국의 경작지면적은 18.3억 무로 일인당 평균 면적은 1.4무이다. 이는 세계평균경작지 면적 4.8무의 1/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10여 년 간에 우리 나라의 경작지 면적이 1.2억 무나 감소되었다는 사실이다. 도시화로 인한 개발로 인하여 우리 나라의 경작지 면적은 계속 감소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18억 무의 경작지를 사수해야 한다는 방침까지 정해놓고 있다.   이는 수요의 급증에 비하여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토지자원이 큰 한계의 직면하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심각한 수급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토지자원의 중요성과 가치가 급속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농토는 기존처럼 단지 농민들이 의존하여 생활하는 생산수단이 아닌 중요한 증식의 가치가 있는 큰 재부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조선족의 현실은 어떠한 가? 사회의 큰 구조적 변화를 볼 때 이처럼 중요한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외지로 진출하면서 토지의 사용권을 헐값으로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혹은 아예 방치하는 경우도 많고, 임대해줘도 엄격한 법적 절차를 밟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농민이라고 해서 대대손손 땅을 지킬 필요는 없다. 또한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도 가야 하고 도시로도 진출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의 것은 지키고 챙길 줄을 알아야 하며 토지와 같은 중요한 자산에 대해서는  더욱 중시를 돌려야 한다. 외지에 진출하여 있더라도 정부에서 새롭게 반포하는 정책에 대해 제때에 장악하여야 하며,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는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하여도 자산으로서 토지를 경영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외국 문이 열렸다 해서 천년만년 외국에 나가 살 수는 없으며 설사 살수가 있다고 하여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도 없다. 대도시가 좋다고 하지만 안정된 생업과 능력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공중누각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속하는 땅 한 무지를 지킨다는 것은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된다. 큰 재산, 영원히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을 가지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토지문제에 대하여 깊은 중시를 돌려야 한다.
1    중국조선족, 세계화 물결에 앞서가는 선두집단 댓글:  조회:3261  추천:102  2008-05-16
중국조선족, 세계화 물결에 앞서가는 선두집단 ◆ 《부모는 한국에, 형님은 상해에 동생은 일본에서 공부,친구는…》◆ 국외 진출자  45만명 육박 조선족 총 인구의 20%이상 규모◆ 세계적인 인적네트워크를 구축 지구촌에서 새 설자리 마련 요청 ○ 박광성 필자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조선족마을에서 누군가가 북경려행을 한번 다녀와도 대단한 뉴스거리로 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조선족의 생활모습은 어떠한가? 북경정도가 아니라 서울, 동경, 뉴욕과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 지역으로 대규모로 진출하여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공안국 출입국관리처의 2004년의 집계에 따르면 연변주민들이 세계 88개 나라에 진출하여 있다. 현재 한국에 진출하여 경제활동을 하고있는 조선족수는 근 27만명에 달하며 방문취업제의 실행으로 새로 진출하게 되는 사람들까지 예상하면 3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있다. 일본의 아세아경제문화연구소의 조사집계에 따르면 2005년경에 일본에 진출하여 있는 조선족수가 5만 3000여명에 달하였으며 미국에도 뉴욕과 LA지역을 중심으로 5만여명의 조선족들이 진출하여 있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이 밖에 로씨야와 기타 유럽지역에도 3~4만명의 조선족이 진출해있는것으로 현지소식에 의하여 진해지고 있다. 상기의 국외지역에 한정하여 보아도 국외에 진출한 조선족의 규모는 45만명에 근접하고있으며 이는 총 인구의 20%이상에 달하고있다. 조선족은 국외에 진출하여 단순로무활동에만 종사하는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돈으로 창업까지 하고있다. 한국의 수도권지역에는 조선족의 자영업체들이 밀집되여 여러 개의 조선족타운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본에 진출한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서도 조선족에 의하여 경영되는 업체가 38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였다. 미국 뉴욕의 플러싱지역에도 최근 몇년간에 조선족에 의하여 운영되는 업체가 100개소로 증가하여 자체의 상권을 형성해가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국외지역에서의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조선족이 매년 국내로 송금하는 금액이 20억딸라에 달할것으로 추산되고있다. 조선족은 국외진출만 하는것이 아니다. 세계와 교류하는 전초기지인 국내 연해지역의 대도시에도 대규모로 진출하여 있다. 현재 주강삼각주, 장강삼각주, 산동반도, 발해만지역을 중심으로 40만명 이상의 조선족이 진출하여 있는것으로 추정되고있다. 현재 중국 국민총생산치의 70%정도가 대외교역에 의하여 실현되고있으며 이중 대부분은 상기 지역에 의하여 완성되고있다. 조선족은 세계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중심부지역에서 자신의 우세를 리용하여 국외와의 교류에 앞장서고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연해지역에서의 조선족경제를 형성해가고있다. 이제 조선족은 더 이상 동북의 농촌지역에 집중되여 농사를 짓고있는 농경집단이 아니다. 오늘날의 조선족은 부모는 한국에 가 있고 형님은 상해에 진출하여 있으며 동생은 일본에서 공부하고있는 식으로 국제적인 맥락에서 활동하고있는 세계화의 선두에 서있는 집단이다. 기존에 한 마을에서 바글거리던 부모, 형제, 친척, 친구가 이제는 세계로 뻗어나가 전화로, 인터넷으로 련결되여 있는 세상이 되였다. 세계화는 이미 사회변화의 대세로 되여있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집단만이 더욱 좋은 발전의 기회를 가질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족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있다고 볼수 있다. 세계적인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국제교류와 협력에서 자신의 우세를 잘 발휘한다면 조선족에게 찬란한 미래가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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