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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이의 가장 훌륭한 선생은 부모이다 댓글:  조회:1425  추천:0  2019-11-12
교육의 진정한 함의는 글자 풀이하면 글을 가르치는것과 인간성을 키워주는 두가지의 통일체이다.그럼 학교교육에만 의거하여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수 있을까.현실적으로 볼때 불가능하다.왜냐하면 아이의 교육은 선생과 부모의 공동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것이지 일방적인 교육에 의거하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부모로부터 아이가 집에 와서 공부를 안한다든가, 부모와 대화도 하기 싫어한다든가 하는 말을  자주 듣군한다. 왕왕 부모들은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나면 아이의 미래가 보장된것처럼 생각하면서 아이의 모든 교육을 학교와 선생에게 맡겨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너무도 그릇된 사고방식일뿐더러 자칫하면 자신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회피로 이어질수 있다. 우리는 같은 학급에서 같은 선생의 교육을 받지만 아이의 표현은 너무도 차이가 나는것을 자주 보게 된다.교원의 립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부분이고 부모의 립장에서 보면 늘 곤혹스럽고 의구심이 드는 부분아다. 그럼 왜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까? 주 원인은 바로 학생마다 인성과 기본자질에 차이가 있고 해야 할 일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전혀 다르며 성장통을 겪고 있는 학생들의 가정배경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선생은 매 학생들의 옳바른 행위습관,취미,성격, 심리적소질 그리고 행복감을 모두 키워줄수 있는것은 아니다. 부족된 부분을 채워줘야 할 당사자는 바로  부모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집에 돌아가서 아예 숙제나 예습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공부왕은 타고난것이 아니다.공부왕의 뒤에는 일반적으로 힘이 되여주는 부모가  있다.그 힘은 부모의 고학력이거나 능력,지위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부모가 만들어주는 량호한 가정환경과 성장에너지, 그리고 꾸준한 배려와 관심에 있다. 글을 가르치는것은 주요하게 선생의 몫이고 인간으로 키우는것은 주요하게 부모의 몫이다.아이의 인성을 키우는 문제는 결국 부모의 마음가짐과 자세,행동에 달려 있다.가정은 다다소소 “복사기”역할을 한다.학교에서 문제점이 많은 학생들은 적지 않게 가정교양에서 문제가 많이 로출되고 있다. 부모가 독단적이고 공격성이 강하다든가,부모가 자주 싸우거나 리혼했다든가,가정에서 대화가 없거나 아예 방임한다든가 하는것은 아이의 인격수양,심리건강,인성 등 여러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 영향은 은연중에 시시각각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의 성장에서 부모야 말로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때문에 아이의 훌륭한 본보기는 남이 아닌 부모가 되는것이 아이의 성장에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부모의 역할에서 관건은 솔선수범이다.아이에게 요구하는 모든 사항들은 부모가  솔선수범해야 하며 생활을 사랑하고 진취적이고 락관적인 정서를 언제나 보여주어야 한다.부모가 일년가도 손에 책을 드는것을 보지 못한 아이가 부모의 독서강요에 진정 독서의 의미를 알고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생활화할수 있을까. 아이를 잘 교육하는것은 부모에게 있어서 미래형 거창한 사업으로서 미래에 대한 최대의 “투자”이며 밀어버릴수 없는 책임과 의무이다.이 사업의 주내용은 선생이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부분이여야 한다.사업에서 큰 성공을 하였다 할지라도 아이의 인성교육에서 실패하였다면 그 후과는 금전으로 보상할수 있는것이 아니다.때문에 아이의 인성교육에서 부모는 절대 “결석”하거나 “조퇴”하여서는 안된다.아차하는 사이에 최적의 교육시기를 놓칠수 있다. 우리속담에 “귀한 자식 매로 키우라”는 말이 있다.폭력은 금물이지만 엄격한 단속과 교양과정은 필수적인것으로서 절대 배척되여서는 안된다.  버릇없이 키우는것은 아이를 죽이는것이나 다름없다.아이가 힘들어 하는것이 가슴 아파,혹은 아이가 너무 귀여워 제멋대로 내버려둔다면 앞으로 어른으로 성장하여도  제대로 된 인간대접을 받기 힘들것이다.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을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완벽한 학부모가 없듯이 완벽한 선생이 있을수 없다.학부모가 선생님을 지지하는것은 결국 자신의 아이성장을 지지하는것이다.문제가 생기면 서로 질책하지 않고 공조와 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교육,자신의 위치에서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리행하는 량자의 교육만이 아이를 인재로 키우는 공동의 목표를 실현할수 있다.  
7    학부모님과 상담시 담임선생님이 지켜야 할 례의 댓글:  조회:1775  추천:0  2018-05-16
1. 형상에 류의하고 례를 갖추고 봉사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올때 학생이 학교에서의 표현의 여하를 떠나서 학부모를 봉사의 자세로 따뜻이 맞아야 한다. 절대 바쁘다는 리유로 랭대하거나 회피해서는 안된다. 친구의 자세로 가까이 다가선다면 거리가 스스로 가까워질수 있다. 물, 커피, 차를 따르는 등 행동은 학부모의 위축된 심리를 풀어주는 좋은 방법이 된다. 필경 학부모가 학교에 들어설때 심리가 위축되게 된다. 너무 요염하거나 진한 화장을 피면하고 우리말에 서툴다면 량해를 구하고 한어를 구사해야 한다. 2. 사실에 기초하여 학생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학부모가 알고저 하거나 해결하려고 하는 일에 한해서 반드시 실사구시적인 태도로 객관적인 평가나 판단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에 대한 불신과 학교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질수 있고 학생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되려 어려움을 만들게 된다. 사실설명에서 선생님의 어조와 표정 역시 중요한 환절이다. 3. 상대를 존중하고 옳바른 지도를 하여야 한다. 학생의 보호자와 자주 만날수 있는것이 아니기에 대면의 기회가 생길 경우 효률적으올 리용하여야 한다. 학부모의 담화에 귀를 귀울이고 건의와 의견을 받아들여야지 학생에게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리유로 랭대하거나 조롱하거나 질책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 학부모가 의외의 자세로 거칠게 나올 경우라도 교사는 랭정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학생문제점의 근원을 확실하게 집어주고 학부모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도록 지도해주어야 학부모가 선생님을 신뢰하고 효률적인 협조를 할수 있다. 딱딱한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융합될수 없다. 4. 학부모의 초대와 선물은 반드시 사양해야 한다. 학부모는 학교와 선생님의 로고를 헤아려 성의 표달로 식사에 초대하려 하거나 성의가 담긴 선물들을 주려고 할수 있다. 성의는 고맙겠지만 식사자리를 함께 하거나 선물을 접수하는것은 정책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위반행위일뿐더러 자칫하면 학교의 정상적인 일상사업도 성의표시의 대가로 인지될수 있고 소문이 잘못 퍼질 경우 학교와 선생님의 이미지도 손상될수 있다. 5. 원칙은 투철하게, 책임은 명확히 해야 한다. 학부모는 개인사유로 인한 청구를 목적으로 학교를 찾는 경우가 많다. 어느정도로 받아들이는가 하느것을 가늠하는 척도는 그들의 설명이나 그 설명에 따른 학교측의 리해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학교원칙이다. 원칙을 인위적으로 혹은 신축성있게 설명하거나 집행한다면 뒤에 따르는 문제가 갈수록 많아지고 복잡해질수 있다. 때문에 원칙적인 문제에서 절대 양보해서는 안되며 개인사정으로 학교원칙을 상쇄해서는 더욱 안된다.인맥과 원칙은 반드시 분리되여야 한다. 원칙에 인맥요소가 침투할때 부정적의미의 역효과는 너무 크다. 모든 학부모앞에서 원칙선은 절대 넘지 말아야 한다. 이 또한 학교의 얼굴이고 자존심이다.  6. 상담후 례를 갖추고 바래줘야 한다. 학부모가 돌아갈때 최저한 현관 혹은 대문까지 바래주는것이 례이다. 안녕히 가십시오. 살펴 가십시오. 오늘 수고가 많았습니다 등 언어를 사용한다면 돌아가는 이의 마음이 거뿐할수 있을뿐더러 학교에 대한 신뢰가 급상승하지 않을까. 
6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댓글:  조회:1922  추천:0  2017-01-13
5    우리학교는 안전지대인가 댓글:  조회:1599  추천:0  2015-06-23
한시기 학교와 가정 및 사회의 안전불감증으로 학생들의 생명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주류를 이루던 반면에 최근에 들어서서 형사안건들이 주요인으로 되고 있는 학생들의 피해와 피살사건들이 눈에 뜨이게 늘어가고 있다.  놀라운것은 우리민족사회도 인젠 누구도 방심할수 있는 사각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문지상에서 남의 일로만 보던 끔찍한 학생피살사건들이  인젠 우리민족사회에서도 비일비재이다. 매일매일 반복되고 있는 학생들의 등교와 귀가는 어찌보면 평화로운 일과로 보이겠지만 학생생명안전을 위협하는 식품위생, 교통사고, 화재사고, 형사안건들은  끊기지 않고 있다. 시시각각 우리민족 후대들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점에 감안하여 볼때 민족사회의 중시가 아주 절실하다. 이를 우리민족사회를 포함한 전반 사회적인 불가피한 현상으로 리해한다면 우리는 조속히 그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가능한 모든 방도로서 학생에게 안전하게 성장할수 있는 안전지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학교안전은 학교운영의 담보로 될수 있다. 사회와 학부모들이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떄보다 크며  국제경쟁,인재경쟁으로 인한 교육위기, 생존위기 등으로 학교자체는 언제나 거대한 압력과 도전에 직면해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안전문화에 대한 인식여하는 학교생존 및 학생성장과 밀접히 관계되는 요인으로도 될수 있으며 안전불감증으로 초래되는 학생피해는 학교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도 치닫게 할수 있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인젠 안전교육을 형식적인 겉치레로서가 아니라 학교교육의 구성부분으로 삼고 실제적인 방안과 대책을 짜고  대담히 실천을 시도해야 한다. 더우기 인간성을 기본으로 생명을 아끼는 자세를 갖추고 자아보호능력을 키워주는것을 주내용으로 한 안전문화를 구축해야 하며 학교의 일상생활에 정착시켜야 한다.  안전문화를 학교교육에 착륙시킴에 있어서 인간성을 기본으로 하는 사상을 수립하고 모든것은 인간을 위한다는 리념으로 사람마다 안전에 관심을 돌리고 피동적인 사고와 사업방식에서 벗아나 주동적이고 능동적이며 일상화된 생활내용으로 이루어나가야 한다. 단순한 관리인으로 되거나 사고발생후의 일처리에 급급하기에 앞서 학교에서 안전의식과 안전문화가 형성될때라야만이 사람마다 안전을 자신의 일과 관련되는 사명감으로 사고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줄일수 있으며 안전우환들을 제거할수 있다. 안전문화를 창도하는 과정에. 교연조별 학년조별 학급별로 교직공별로 자체담당부문에서 책임을 확실히 하고 안전사업과 업무사업을 한 어깨에 짏어지게 함으로써 단순한 행정적이고 강박적인 안전제도와 감독체계에서 벗어나 학교의 일상사업으로 연착륙 할때에라야 만이 안전문화의 도야속에서 안전제도가 지켜 지고 안전위험요인들이 하나하나 제거되면서 학생들이 아무런 걱정없이 성장할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될수 있다. 그리고 일상적인 안전상식과 지식들을 교수내용에 첨가시켜 계절에 따라 교수내용에 따라 시대환경에 따라 안전을 지킬수 있도록 경시를 주고 자아보호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안전을 위협하는 돌발상황들이 시시각각 우리주변에서 맴돌고 있는만큼 학교에서의 안전교양도 일상화되여야 학생들이 그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태연하게 응부하고 자기를 지킬수 있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학생보호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는 학부모모임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여 학부모를 상대한 갖가지 강좌를 많이 조직하여 학부모가 갖추어야 할 마음과 자세를 알게 할뿐더러 가정에서의 안전문화를 창도해나가는데서 주도적역할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학생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생명과 인신안전에 위험을 가져다 주는 갖가지 요인들을 알고 위기가 닥쳤을때 차분하게 풀어나갈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것이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학생들의 심리장애와 자페증 그리고 우울증으로 인한 학생생명 안전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심리장애는 병이 아니라고 그대로 방치해둔다면 엄중한 정신질환으로 진전될수 있고 또 심리장애를 정신질환일종으로 착각하는 시각도 버려야 한다. 심리장애로 기인된 학생생명안전에 대한 위협은 학교나 주변사람 혹은 학생보호자들의 세심한 관찰과 자문 및 약물보완으로 미연에 방지할수 있는 만큼 시각차이를 버리고 이런 부류의 학생들에게 중시를 돌리고 심리장애를 제때에 제거하도록 그들을 도와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보귀한것이 생명이란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 생명의 가치를 알고 생명을 보람있게 지키며 살아나가는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그길을 열어주고 지켜줘야 할 사람들은 우리의 학부모들과 학교이다. 안전문화의 창도를 통해 우리후대들이 안전된 사회환경에서 건실하게 성장할수 있는 여건들을 마련하는것이 시급한 실정에서 학교가 주도로 되여 안전문화착륙의 새기원을 열어가야 한다.  
4    학생도 선생도 모두 진화해야 한다 댓글:  조회:1553  추천:0  2015-06-03
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어찌보면 이는 단순하게 학생을 피교육자의 위치에 세워놓고 부정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자의 위치에서 교사는 학생 비해 진정 박식하고 지능적이고 자격있다고 할수 있을까? 시대의 발전과 함께 학생들이 많이 진화되여 있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자신의 위치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수선, 학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학”은 명사로 해석하면 학업,학문,학식을 가리키며 동사로 해석하면 학습과 터득을 가리킨다.”생은”생소하고 서먹하며 익숙하지 않다는 뜻외에 생명,생존,생활,생산과 창조등을 의미한다. 때문에 학생은 수선 학업,학문, 학식이 생소한 사람을 가리키는것으로서 배우는것은 학생의 천직이다. 아울러 학생은 생활과 생존을 배우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닳아야 하고 생산을 배우고 창조를 배워야 한다. 이는 학생의 글자뜻에 따른 해석이다. 이런 해석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동반되여 있다. 여기에는 학생은 유치하고 무지하고 비성숙된 사람이며 선생은 학생 비해 고명하고 학생에 대한 평가자이며 령혼의 공정사라는 전제의식이 깔려 있는것으로서 이러한 잠재의식은 사생관계와 학생에 대한 평가에 큰 영향을 준다.그러나 학생들에게는 과거와 다른 큰 변화가 있다. 그들은 인젠 간단한 가능성을 가지고 성장하는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존재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그들의 사상관념, 생활방식, 행위방식은 전반사회현실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상응한 사회적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단순하게 사회에서 배우면서 미래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다음, 학생들은 변하고 있다.과거에는 사회변화가 더디고 상대적으로 안정되여 성인들의 경험과 문화가 확실히 청소년에 비해 우세가 컸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급변의 시대로서 지식갱신속도가 빨라 성인들도 부단히 지식갱신하고 사회화에 참여해야 한다. 이는 성년들도 학생과 마찬가지로 대등한 사회적지위에 있으며 성인이 가지고 있는 우세가 과거와 달리 권위성이 떨어지고 선지정도도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청소년들은 사상해방이 빠르고 정력이 넘치고 기억력이 좋고 새로운 사물을 쉽게 받아들이며 정보화 시대에서 성인 비해 더 우월한 지위에 있으며 그들이 정보를 얻는 능력과 장악하는 능력은 성인들을 크게 앞지른다. “다원화”방향으로 나아가고 “선택성”을 늘이는것은 돌이킬수 없는 사회적추세로서 인젠 문화의 동일한 표준을 타파해야 할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고 개성넘치는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다원화와 선택의 특성은 학생들에 대한 성인들의 문화표준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변화와 발전은 청소년들이 경험이 부족하다 해도 단순하게 그들을 가능한 존재로만 본다든가 가공대상부품으로 본다든가 철없는 변두리의 사람으로 본다든가 지어는 학습과정에서 스스로의 체험을 부인하고 그들의 가치관념의 의의와 현실성을 부인하면서 상대하고 평가하고 요구한다는것은 이미 시대에 떨어진 교육행위로서 그들의 반발과 저촉만을 초래하게 된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학생관에 대하여 오늘의 학생들은 관념이 새롭고 정보에 능란하고 개성이 발랄하다. 이는 전례없는것으로서 교육자에게 주는 의미가 아주 크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와 발전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교육의 근본적인 출발점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학생관이 가져다주는 문제점은 많다. 학생에 대한 존중이 없는 안하무인으로서 학생의 주체지위가 박탈당하고 교육의 대상으로, 교수의 부속물로, 지식을 담는 용기로, 가공을 기다리는 원자재로, 성인들의 관리욕을 만족시키는 도구로만 리용되였을 따름이다. 합격된 선생이 되려면 인젠 학생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하다. 자주는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존중이며 자학은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교수이며 자률은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덕육이며 자치는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관리이다. 자주는 학생이 자신의 주인이 되게 하고 학급의 주인, 학교의 주인이 되라는것이며 학생을 학습의 주인이 되고 과당의 주인이 되고 활동의 주인이 되라는것이다. 리상적인 과당은 학생을 위주로 하고 학생을 위해 봉사하고 학생에서 출발한후 학생들을 거쳐 학생에로 이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학생을 신임하는것이다. 우리의 학생들은 이러한 과당에서만 즐겁게 지식을 배울수 있고 능력을 제고할수 있으며 지식을 얻는 동시에 승화와 발전이 있게 되고 존중을 얻는 동시에 존엄을 세울수 있게 된다. 학습의 주체는 영원히 학생자신이고 학습은 영원히 학생자신의 일이며 학생은 영원히 스스로 배워야 학습의 주인으로 될수 있으며 학습은 반드시 자신을 거쳐야 완성될수 있다. 배우는 전제는 배울줄 아는것이다. 배울줄 알려면 기계적이고 소극적이며 피동적인 기억에서 인지와 터득에로 전변하여야 한다. 그 열쇠를 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새로운 학생관으로 무장된 선생님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학교사이경쟁 교사사이의 경쟁은 교사의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의 변화를 시도하고 학생의 진화와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학교가 성공할수 있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학교로 장기간 그 맥을 이어갈것이다.
3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의 득과실에 대하여 댓글:  조회:1802  추천:0  2015-04-01
핸드폰은 오늘 사회에서 필수적인 통신도구이며 우리들의 생활에 많은 편리를 가져 다 주고 있다.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이 급증하면서 학교에서의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여부를  둘러싸고 론쟁이 끝이지 않는 가운데 합리한 사용방안을 둘러싸고 고심하는 학교와 담임선생님들도 많다. 아래에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의 득과실 그리고 해결책을 둘러싸고 필자의 소견을 피력하려 한다. 첫째: 학생이 핸드폰을 사용하는 “리유”에 대하여 “리유”의 본질적인 의미는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하는 까닭이나 근거를 말한다. 때문에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바로 핸드폰사용의 까닭이나 근거를 찾는것이다. 핸드폰은 현대생활에서 불가결의 통신도구임은 분명하나 학생 에게 있어서 잠재적 위험요소로 될수 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지금의 핸드폰은 통화와 메시지 교환에만 쓰이는것이 아니다. 2006년부터 화웨이, 노키아, 모토롤라 등 핸드폰회사에서는  핸드폰에 소프트웨어와 게임을 설치하여 단순한 핸드폰에서 오락도구로 탈바꿈시켰다. 사람들의 부단한 추구와 함께 다원화의 오락기능은 끊임없이 개발되고 승화하기 시작하였다. 통신회사들에서의3G네트워크개발이 현실화되면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할수 있게 되였고 컴퓨터에  비해 인터넷 사용이 훨씬 편리해졌다. 최근들어 삼성과 애플에서 출시한 감응식핸드폰과 고지능핸드폰은  손안의 컴퓨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의 발전이 핸드폰의 혁명을 불러오고 있지만 소비군체와 사용군체는 대부분 저령화단계에 머물러 있다. 소학 중학 고중 대학을 위주로 한 소비군체는 고지능핸드폰사용을 서로 비기고 류행을  따르는 징표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리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학생들은 아직 경제능력이 없고 가정경제능력이 또한 천차만별이지만 핸드폰에 대한  학생들의 통일된 인식과 태도는 의외의 행위를 조장하고 있다. 학생들은 갖가지 리유를 대서라도 부모들에게서 값 비싼 핸드폰을 사 갖는다. 그중 가장 많은 리유는 바로 련락하기가 편리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만약시에 아빠 엄마가 나를  찾지 못하면 어쩌냐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타협의 자세를 보이군 한다. 기실 학생들의 속마음은 뻔하다. 통화가 핸드폰소유의 주목적이 아니라 오락으로 즐기고 인터넷에 접속하고 류행을 따르는것이 바로  절대부분 학생들의 주목적이다. 자아판단능력이 결핍한 학생들앞에 펼쳐진 핸드폰류행은 학생들을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학교측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처사에 대하여 학생들은 불만으로 일관되여 있다. 끝없이 달구치는 응시교육의 채찍밑에서 무미건조한 서책 비해 손안에 있는보배는 지루한 시간과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데 최상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둘째: 핸드폰이 학생에게 가져다 주는 페단에 대하여 심조1중에서는 여러방면으로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몇가지 통계에서 문제의 엄중성을 알수 있었다. 1. 핸드폰의 보급정도에서 볼때 평균한반에 40명이라 할때 20개학급이면 800명이다. 75%의 학생들이 핸드폰을 휴대 하고 있다면 600대가 학생군체에서 류동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2. 경제적차원에서 볼때 학생들 수중에 있는 핸드폰은 대부분이 지능형으로서 비싼것은 5000원 좌우이고 눅어야 1000원좌우이다. 평균가격이 2500원으로 6000ⅹ250=1500000(원)즉 150만원이다. 일년이365일,  3년이라는 고중생활은1095일이다. 만약에 이돈을 교육에 쓴다면1500000/1095=1370(원)이라는 답이 나오는데 매일 교육에 쓸수 있는 경비가1370원이 된다는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통화비, 인터넷접속비, 핸드폰보수비, 장식비, 충전비 등이 포함되여 있지 않았다. 3. 핸드폰이 점유하는 학생들의 시간에서 볼때 30M세트의 한달 이동통신비용이 5원이라면 하루에QQ를 몇시간 사용할수 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부지런히 채팅해서 한시간에300-400KB를 소모하고 일반 채팅도 150-240KB를 소모하게 된다. 30M=30960KB라고 할때 계산결과가 쉽게 나온다. 학생들이 하루 24시간 인터넷사용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게임하고 음악을  감상하고 소설과 동영상을 보고 마이크로블로그를 리용하는데 드는 시간은 포함하지 않았다. 시간계산에서 알수 있듯이 학생들이 하루에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지능형핸드폰으로 그들의 하루일과가 해결될수 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의 발달과 함께 핸드폰을 통한 사람들사이의 의사소통이 쉬워지고 다양해 지고 있다. 통화, 메시지, 채팅, 마이크로블로그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숙제를 하거나 예습, 복습에 리용되여야 할 많은 시간들이 학생들의 이런 심심풀이에 빼앗기고 있다는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련애에도 무형의 공간을 만들어줌으로써 채팅을 통한 사랑이 늘고 있다는것이다. 그 위해성은 불보듯 뻔하다. 4.건강차원에서 볼때 많은 페단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건강에 주는 영향이다. 다기능핸드폰에 대한 학생들의 맹목적인 추구는 동조심리에서 기인되고 또 동조심리를 키워준다면 핸드폰사용에서 방사되는 전자파는 무형의 킬러가 되여 학생의 신체에 큰 손상을 가져다 줄수 있다. 매일 이온에서 흘러나오는 비자연광은 학생들의 시력에 주는 영향은 심각하다. 원체 학생들의 시력저하로 보건당국에서 심각히 받아들이고 해결방안에 고심하고 있을때 엎친데 덮친격으로 핸드폰 장시간 사용으로 인해 초래된 두통과 안병문제가 미래에 우리들의 건강을 해치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수도 있는 실정이다. 핸드폰이 인간의 두뇌에 주는 영향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지만 학생들은 베개머리에 놓은채 잠을 자는것이 보편적이다. 중독에 가까운 이런 행위들은 학생들의 생리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것은 피면할수 없다. 셋째: 이처럼 심각한 핸드폰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1.학생보호자립장에서 볼때 핸드폰 사용여부에 대한 옳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학생이 사용하는 핸드폰은 거의 모두 부모들이 사준것이다. 사주는 리유 또한 아주 간단하다. 사달라니까 사주는것이다. 가격이 얼마든 학생의 요구에 응하는것이 지금 부모들의 처사방식이다. 어찌보면 자식한테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도 이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현명한 처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부모님들 한번이라도 학생의 핸드폰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누구와 통화하는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어떤 메시지를 주고  받는지를 알면 핸드폰 사용여부에 대한 판단이 쉽게 이루어진다. 사실 학생들의 통화내용을 보면 그들의 성장에 도움이 절실한 선생님과 부모님들과의 통화와 메시지 거래는 거의 없다. 사실 우리민족처럼 자식의 노예나 다름없이 한생을 아글타글하는 민족은 드물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자립능력을 키워주고 경제적지혜를 갖춘 미래대비형 양성방법을 알고 실천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물질적만족은 일시적일뿐이고 자녀들의 빈 마음구석과 두뇌를 채워줄수 있는것은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부모에게 있는 만큼 부모들 반드시 지혜로운 선택이 무엇인지 자성의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자녀는 부모의 얼굴이라는 점을 되 새겨보기 바란다. 2. 학교립장에서 볼때 교양과 제도적단속 병행이 필요하다. 아직 교육행정당국의 제도적조치가 공백인 현실에서 여러학교들에서 나름대로의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고 시비도 엇갈리고 있다. 학생들이 받아들일수 있는 방안이 가장 리상적이고 옳바른 선택이라 하겠지만 핸드폰에 푹 빠져있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학교의 제도적조치는 쉽게 리해될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만큼 점진적인 조치로 교양을 경상화 하고 휴대를 할수 있되 리용시간을 규정한다든가 경제적으로 효률적으로 사용하도록 인도하는 제도적조치를 시도해보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담임교원립장에서 볼때 학교측의 제도적조치를 어떻게 능동적으로 실천하느냐가 종요하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핸드폰사용의 득과 실을 확실히 알려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것은 담임교원사업의 관건문제이다. 학급간부들에게 학교규정을 인식시키고 통일행동에 동참하도록 이끌며 효률적인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등교후 통일적으로 거두어들이고 보관한다든가 장려점수제를 실시한다든가 학급감독관리제도를 세운다든가 과임의 협조를 부탁한다든가 학부모와의 련계를 경상화한다든가 특정된 개별학생에 한해서는 특단의 조치로 몰수하고 학기말에 돌려주는 방법을 시행한다든가 하는 방법들을 시도해 볼수 있다. 지금 심조1중 여러학급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단속하고 있는데 이미 효과를 보고 있다. 이번 학기들어 학생들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지지 않던 현상이 종적을 감추기 시작하였으며 학생마다 옛모습으로 돌아가 동아리활동에서 취미를 찾아가고 있다.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뛰노는 학생들이 많이지고 수업시간에도 인터넷에서 떠돌던 학생들이 급감하였다. 앞으로 기나긴 시간내에 핸드폰은 학생들의 련애문제처럼 교육사업에 종사하는 우리들에게 풀기 어려운 과제를 안겨줄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중심에는 학교가 아닌 가정이 있고 해결사는 학교만 아닌 학부모, 학생, 학교, 사회의 공동의 몫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협동작전을 한다면 학생에게 안정되고 즐거운 공부환경과 컨베이어를 마련해줌으로서 학생마다 학업에 열중하고 다채로운 학교생활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면서 자신의 인생목표를 향한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디딜수 있을것이다.
2    학생을 아는 선생과 부모가 되여야 댓글:  조회:1686  추천:0  2015-03-17
오늘도 예나다름없이 양복에 넥타이를 고정하고 집문을 나선다. 학생앞에 나서는 모습이 항상 정갈하고 정직하여야 한다는 신조를 수십년 견지해오고 있다. 확트인 교문에 들어서면서 언제나 사명감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오늘도 열심히 일해야지 하고 마음으로 웨치군 한다. 교육을 중시하는 민족으로 중국내 우수민족으로 자부하던 우리민족이 지금 한족한테 밀려 1위자리를 내주고 있지만 교육열은 아직도 뜨겁다. 교사직업은 태양아래 가장 신성한 사업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선생님은 자신의 모든것을 헌신하는 초불같은 존재로 칭송받고 있다.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에 대한 애착은 사람마다 갖추어야 할 일본새이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교사를 초불에 비유하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물거리는 초불의 신세가 가련하고 또 조용히 꺼져버리는 삶이 싫어서일까 아니면 가물가물 발산하는 빛과 열이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어쨌든 너무도 평범하고 화끈하지 않는 인생을 산다는것은 재미도 없다. 나는 아름드리 나무가 좋다. 강대한 생명력으로 보살핌이 수요되는  학생들을 감싸안고 나무속에 슴배있는 자양분으로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싶다. 학생들이 힘들면 걸터앉을수 있는  쉼터가 되여줄수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나는 너무도 좋다. 학생들은 성장의 환경이 다름에 따라 그들이 받아들이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에 차이가 있게 되고 그 차이로 인한 부동한 심리적요인들이 쌓이면서 서로 다른 인격을 구성하게 된다. 언젠가 친구의 자녀 네학생을 불러 식사자리를 마련하였는데 한시간좌우의 식사시간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모습이 나를 사색에 빠뜨렸다. 어릴적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두 아이는 저가락을 움직이는 시간이 길고 모든 료리들을 맛갈나게 먹었고 남에게 집어주기까지 하면서 즐기는 분위기였다. 다른 두 학생은 어릴적 부모가 리혼을 하면서 결손가정에서 사춘기를 보내였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거나 계부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의 저가락 놀림은 분명히 차수가 적었고 눈치를 보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이들에 대한 평가에서 성숙되고 례절이 바르고 착한 아이로 인정되겠지만 나는 어쩐지 측은한 마음과 함께 그들의 가슴깊이 숨어있는 부모사랑에 대한 갈구를 읽을수 있었다. 부서진 사랑을 다시 주어담아 얼마라도 어루만져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부지런히 료리를 집어주었다. 선생님마다 지금 학생들 자질이 이왕 비해 못하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학생들을 마음으로 읽어주는 선생님은 많지 않은것 같다. 학생들이 범한 과오라지만 그 뿌리는 언제나 어른들에게 있다. 시대적변화와 가정환경의 변화가 낳은 학생심리의 변화를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알고 있을까. CT처럼 학생들의 마음을 속속히 파헤치려면 부모같은 사랑이 필요하고 학생들도 선생님을 부모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비관적이다. 인류력사상 보기드문 성인으로 인정받은 공자도 3천명제자들을 양성하였지만 현인은 고작72명뿐이였다. 아무리 미사려구로 선생님을 칭송하고 우상한다고 하여도 교사들은 가정교육을 떠난 학교교육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고 교육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만사대길로 생각하는 학부모들은 부모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집집이 한두자녀뿐인 가정구조에서 많은 부모들도 자식을 키우기 힘들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보다 성숙기에 들어선 아이들에 대한 옳바른 인도와 교양이 따르기 힘든것이 주요문제이다. 때문에 가정에서는 학교교육에 주로 의거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몇명도 아닌 수십명학생에게 사랑의 손길을 골고루 내민다는것도 선생님에게 있어서 버거운 일이고 많은 경우에 불가능하다. 공부를 줄곧 잘하던 등교을 꺼려하더니 공부까지 그만둔다고 야단이다. 학생들에게서 발생하는 문제는 왕왕 다방면 요인들로 이루어진 압박감이 작은일에서 순식간에 벌어진다. 일이 터지고 나면 문제점 제 요인들은 제쳐놓고 사건의 발단을 두고 론할때가 많다. 이 학생의 경우도 어릴적부터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부모가 지정한 성장모식에 따라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지내온터라 스스로 자룰적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였다. 공부를 포함한 모든 수요는 부모의 뜻에 따라 좌우될때가 많았다. 어머니의 내성적인 성미와 아버지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는 대화의 기회가 별로 없었으며 어쩌다 있게 되는 대화의 주제도 부모에 의해 제기되고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내심을 발로할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불만을 쏟는 차수가 불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자신을 공부의 도구로만 리용한다고 여기는 학생과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부모사이의 충돌은 이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대학시험준비가 한참 바쁜 고3하학기에 성적이 언제나 우수하였던터라 학생에 대한 학교와 부모의 기대치가 높은것도 사실이였다. 그런 학생에게서 문제가 발생하자 시름이 깊어지는것은 부모나 학교나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심리적불안과 장애문제는 인젠 새삼스럽게 들리는것이 아니라 비일비재로 우리 앞에 제기되여 있다. 특정된 일이나 인물에 관계없이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정도에 까지 와 있다. 해마다 중국에서 자살건수가 20만명 정도라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다. 통계에 의하면 조선족 학생의 결손가정이 70%에 접근하고 있으며 완정한 가정의 학생은 30%대를 웃돌고 있을뿐이다. 그나마 합격된 부모의 자격을 갖추고 부모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리행하고 있는지 단정할수 없다. 모두들 가정은 학생성장의 첫 학교이고 부모는 첫 선생이라 하지만 우리민족학생들의 가정실태가 이 정도이니 후대에게 무엇을 더 바랄것이 있겠는가. 학교교육이 학생교육의 주전선임은 의심할바가 없다. 학생마다 나름대로의 성장기를 거치면서 각자의 인생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 선택에서 매인의 운명이 바뀔수도 있다. 학생, 학부모, 학교를 포함한 3자의 조률을 떠나서 일방적인 교육에만 의거하여서는 좋은 교육효과를 기대할수 없다. 문제점이 많은 학생들 경우 더욱 그렇다. 학교에서 일을 저지르는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사랑결핍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다. 이러할진대 우리가 진정 아이들을 문제아이로 락인 찍고 제도적으로 처리할수 있을까. 문제의 근본요인을 찾지 않고 현상에 따른 단순한 처리는 학생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것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 학생을 아는 선생이 되고 아이의 진정한 부모가 되는것이 학생성장에서의 관건이다. 오늘도 기로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없는지 걱정이다. 그들을 진정 알아주고 함께 아파해주고 마음으로 안아주는 교육이 정착되여야 한다. 그날을 위해 노력하는것이 교육자의 사명이다.  
1    결손가정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댓글:  조회:1979  추천:1  2015-03-11
결손가정학생교육의 심각성이 제기된지 여러해 되면서 여러분야에서 여러가지 탐구와 시도를 하고 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이 민족교육의 어두운 그림자만 짙어가고 있다. 결손가정의 출현을 막는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지만 한국행이 점점 쉬워지면서 결손가정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모든것은 자녀를 위한다는 동기에서 출국을 선택하지만 실제로는 자녀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첫걸음을 내디딘것이나 다름없다. 출국이 가족의 생존을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자녀가 받아야 할 모성애와 부성애를 최대한 보장할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돈만 바라보고 자녀를 멀리한채 서로 서먹할 정도로 갈라져 살아가는 결손가족들이 결과에 만족하는 가정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그래도 굳이 출국을 고집하는 부모들 자녀들의 미래를 락관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주요하게 생존의 기본요구와 자녀의 물질적욕망을 만족시켜 줄수 있고 자녀교육은 학교에서 책임지면 다다는사고방식에 있다. 학생의 가장 훌륭한 보호자가 부모자신이라는것을 부모님들은 아직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량친이 모두 출국을 선택할 경우 학생들은 심리적으로 의탁할 곳을 잃게 되며 심신건강에 꼭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것이다. 심리적 불안감이 쌓여갈수록 기형적인 심리적 현상들을 발로하며 물질적 욕망 혹은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학생이 기로에 들어서게 되는 시작인것이다. 친척한테 맡기거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맡겨 학생들이 성장과정에서 품행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라도 세대차이로 인하여 학생들의 성장에 필요한 활력소가 충분히 보장되는것은 아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인생타령에 푹 빠져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거나 감정파멸로 남남으로 갈라지는 부모들은 리혼후에도 별로 호강을 못하면서 애꿎은 자녀들 인생만 망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부모들의 경솔한 처사에 망가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로서 자신들의 인간성을 다시 한번 짚어봤으면 좋겠다.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나타난 사회적 현상인 결손가정, 그 확대추세는 엄연한 현실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보호자없이 또는 있다해도 그직책을 충실히 리행하지 못하는이들이 다수인 실정에서 결손가정의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주요하게 학교에 의거할수 밖에 없다. 학교가 봉사기구로 선생님은 봉사원의 자세로 결손가정자녀들에 대하여 더욱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쏟는다면 그들도 남과 못지 않게 떳떳이 성장할수 있다. 수선: 결손가정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관심과 주의가 더욱 필요하다. 그들의 기본상황을 손금보듯 료해하고 그들의 사상, 감정, 행위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 하여야 하며 이상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부모사랑이 결핍한 학생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부모 리혼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학생들에게는 상처가 다치지 않도록 쓰다듬어 주어 학생이 내가 힘들때 나를 지켜주는 선생님이 계신다는 안정감을 갖도록 하는것이 아주 중요하다. 가정방문이 지금 많이 소외시되고 있지만 기실 가정방문이 결손가정학생에게 있어서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문제점이 돌출한 학생일수록 가정방문을 통해 사생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학생을 진정으로 자식처럼 사랑하는 교사만이 이렇게 할수 있다. 다음: 보호자와의 련락을 경상화하여야 한다. 지금의 학생들은 담배와 술 그리고 PC방은 말할것도 없고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때문에 학교와 보호자의 경상적인 련락을 통하여 학생동태를 수시로 파악하고 이상행위를 할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미리 차단하여야 한다. 일단 유혹의 늪에 빠져든 다음 다시 헤여 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점 역시 교사와 보호자의 끈질긴 노력이 필수적이다. 셋째: 성격적 결함을 가진 학생들을 분별하여 맞춤식 교육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장기간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학생들의 성격은 천차만별이다. 장기간 어머니의 손끝에서 자란 학생은 담이 작고 부끄러움을 쉽게 타며 내성적인 반면 조폭한 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란 학생은 우울하고 말이 없으나 공격성이 강하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란 학생들은 자기중심사상이 뚜렷하며 개인주의가 심하고 비교적 산만한 편이다. 친척집에서 자란 학생들은 자기주장이 뚜렷하지 않으며 주춤하는 경향이 심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따른다. 이런 실정에서 교사는 반드시 세심한 관찰을 통하여 학생들의 심리적 특점을 잘 파악하고 그에 알맞는 대책을 여러모로 강구하고 시도해 보아야 한다. 더우기 사춘기에 있는 학생들일 경우 교사의 경솔한 말 한마디도 깊은 상처를 줄수 있는 만큼  권위로 다가서기 앞서 심리적으로 거리를 가까이 하는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네째: 학생들의 자립의식을 키워주는데 치중하여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영원히 지켜줄수 있는것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살아나가야 한다는 사상을 심어주고 실천하도록 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손의 해는 학생이 보고 있지만 부모가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 주된 리유가 결국은 학생하나만을 위한데 있다는 도리를 가르쳐 주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이고 가족이 하루빨리 한자리에 모일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여야 한다. 이런 인생철학을 진정으로 터득하였을때 학생 자신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알고 실천 할수 있다. 결손가정이 생기는 근원은 결국 경제적 리유에 있다. 중국경제의 장성과 함께 우리민족경제의 번영이 진정으로 이루어질때라야만 새로운 형태의 리산가족들이 생기지 않을수 있고 우리 민족이 이땅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행복한 삶의 터전을 가꾸어나갈것이며 우리민족의 새로운 번영이 이루어질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진정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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