륙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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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시 묶음
2020년 01월 05일 00시 28분  조회:2096  추천:0  작성자: 륙도하


별국
                                            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들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는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흰눈/ 공광규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않는다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이팝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또 못 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 앉고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아까시나무 가지에 앉다가 
그래도 남은 눈은 
찔레나무 가지에 앉는다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 알고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는다 



별 닦는 나무

공광규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 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당신이라는 별에
아름답게 지고 싶은 나를

월간『현대시학』2010년 1월호


:
본적


공광규


청양군수가 2014년 개별공시지가 결정통지문을
내가 사는 일산 주소로 보내왔다.
본적인 남양면 대봉리 653번지 지목이
옛날 초가집 두 채 자리여서 대지인 줄 알았는데
밭으로 되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와 여동생들이 고추와 맥문동을 심을 때
사금파리와 기왓장과 모가 부드럽게 닳은 곱돌이
식구들처럼 다정하게 어울리던 밭이다.
혼자된 어머니가 좋아하던 홍화꽃과 도라지꽃이 출렁이고
겨울을 춥게 보낸 언 고구마와 썩은 무를 버렸던 밭이다.
어린 동생이 마당가에 눈 똥을 삽으로 떠다가 묻고
그걸 알고 강아지와 고양이도 가서 똥을 묻고 오던 밭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비어있자
민들레씨앗이 날아와 해마다 식구를 늘리고
무좀에 찧어 붙였던 쇠비름이 뿌리로 자기 영역을 넓히고
명아주가 거미에게 공짜로 잎과 대궁을 빌려주어
거미줄을 치고 반짝이는 아침 이슬을 매다는 밭이다.
지붕이 없어서 별이 가득 내리고
지붕이 없어서 내리는 비를 다 받고
지붕이 없어서 내리는 눈을 다 덮고
벽이 없어서 바람이 무시로 다녀가는 밭이다.
개미와 땅강아지와 귀뚜라미와 지렁이가 모여 살고
산비둘기가 오고 참새가 와서 발자국을 찍고 가는 밭이
내 본적이다.

 

잃어버린 문장 / 공광규


푸장나무* 향기가 풋풋한 마당
쑥대를 태우며
말대방석에서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별과 별을 이어가며 썼던 문장이 뭐였더라?

한 점 한 점 보석으로 박아주던 문장
어머니의 콧노래를 받아 적던 별의 문장

푸장나무도 없고 쑥대도 없어
밀대방석을 만들던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 무릎마저 없어
하늘공책을 펼칠 수도 읽을 수도 없는 문장

별과 별을 이어가던 문장이 뭐였더라?
한점 한 점 보석으로 박아주덕 그 문장이.

 

-시집『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2008)

*푸장나무: 떡갈나무의 다른 이름


새벽에 잠이 깨어
        공광규

전날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학교 근처로 방을 얻어 나가 사는 
아들과 딸 생각이 자꾸 난다
자식들도 내가 젊었을 때처럼
잡히지 않는 미래와 
불안을 덮고 잘 것이다
밖에는 고양이가 새벽을 울고 간다
직장에서 쫓겨나
밤이슬을 맞으며 불 꺼진 자취방을 찾아가던
내가 생각나서 안쓰럽다
갑자기 기침이 난다
평생 기침이 심해서
무를 달여 먹고 배를 삭혀 먹던
서늘한 아버지 기침 소리를 닮아서 놀란다
아버지도 이렇게 
집을 나가 사는 나와 동생들을 생각하면서
새벽잠을 뒤척였을 것이다. 


어떤 시위

 공광규

 

종이를 주는 대로 받아먹던 전송기기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전원을 껐다가 켜도
도대체 종이를 받아먹지 않는다

사무기기 수리소에 전화를 해 놓고
덮개를 열어보니

관상용 사철나무 잎 한 장이
롤러 사이에 끼어 있다

청소 아줌마가 나무를 옮기면서
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갔나 보다

아니다
석유 냄새나는 문장만 보내지 말고
푸른 잎도 한 장쯤 보내보라는
전송기기의 침묵시위일지도 모른다




대전역 가락국수 / 공광규
 
행신역에서 고속전철을 타고 내려와
새로 지은 깨끗한 역사 위에서 철로를 내려다보면서
가락국수를 먹고 있다
 
열여섯 살 때 처음 청양에서 버스를 타고
칠갑산 대치와 공주 한티고개를 투덜투덜 넘어와
부산행 완행열차를 기다리던 승강장에서
김이 풀풀 나는 가락국수를 먹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쉬운 여섯이니 벌써 사십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선로도 많아지고
건물도 높아지고
오고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국수 그릇도 양은에서 합성수지로 바뀌었다
내가 처음으로 옛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그러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냄새와
노란 단무지 색깔과
빨간 고춧가루와 얼큰한 맛은 똑같다
첫사랑처럼 가락국수도 늙지 않았다
이런 옛날이 대전역이 좋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도 국수발을 닮아서 좋다

:
얼굴 반찬


 공광규(1960~)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어릴때 대가족 속에서 자랐습니다
잘 차린 반찬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밥먹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인지 돌아보면 이제 기억마져 희미한 내 인생의 한 장면 입니다.
이 시를 접하면서 울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이 생각나게 하는 시였네요

지금 네 식구 살아도 함께 모여 한달에 밥 한끼 먹는게 힘이드네요


 

서울역

      공광규

서울역 4번 플랫홈에서 부산행 고속열차를 기다리다가 발견한
화강암에 새긴 서울발 이정표 조각물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음각되어 있다
내가 오늘 가려는 부산까지 441 킬로미터
목포까지 414 킬로미터
강릉까지 374 킬로미터
그런데 평양까지는 겨우 260 킬로미터로 표시되어 있다
인천까지는 38킬로미터인데
내가 살고 있는 일산에서 개성까지는 더 가까울 것이다
부산보다 조금 더 먼 신의주가 496 킬로미터
나진은 부산 가는 거리보다 두 배 더 먼 943 킬로미터이다
그렇더라도 고속열차로 간다면 6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내가 못 가본 저곳들은 얼른 가보고 싶은 곳들이다
대동강 건너 신의주에서 국경을 넘어 시베리아반도까지
나진을 거쳐 광활한 시베리아를 지나 북해의 어디쯤에 닿고 싶다
어느 날 배낭을 꾸려서 떠났다가
몇날 며칠을 묵으며 깨끗한 술 한잔 하고 돌아오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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