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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 내 이름은 “뽀이”
2014년 04월 12일 12시 52분  조회:1863  추천:3  작성자: 훈이


 열세살 어린 나이에 나는 우편국 심부름꾼으로 들어갔다. 열두살에 소학교를 겨우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야 할텐데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에 그런건 엄두도 못내고 날마다 석탄을 주으러 다녔다. 어린것이 머리 벗어지게 석탄통을 이고 다니는 것이 측은해 보였던지 이웃집 우편국 다니는 아저씨가 나를 우편국에 소개하여 심부름꾼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때는 심부름꾼을 일본말로 “뽀이”라고 불렀는데 누구나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고 그냥 “뽀이”라고만 불렀다. 그래서 내 이름은 “뽀이”가 되어버렸다. 그 때 내가 한 일은 화장실 청소, 국장실과 서무실 청소, 국장실에 물 끓여 공급하기, 우편 공용지 등사 등이었다.
 화장실 청소같은 더러운 일 보다도 제일 힘든 것은 등사였다. 그 때만해도 우편국에서는 그 많은 우편용지를 죄다 등사해서 사용했다. 어려서 힘이 없는지라 하루종일 등사를 하고나면 팔다리가 쑤셔나고 온 사지가 물러나는 것 같았다.
 손은 기름투성이가 되었는데도 비누가 없어 씻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퇴근을 해야 하는데 거리에서 남들이 볼까봐 신문지로 손을 싸매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골라 남의 눈을 피해 집에가면 새까맣게 된 내 손을 만지며 할머니는 또 눈물을 떨구시였다.
 비오는 날, 비에 젓은 숯을 담아다 물을 끓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때는 풍로라는 것도 없어 부채질을 하며 불을 피우자면 여간 힘들지 않았다. 국장은 빨리 물을 끓여오라고 벨을 울리고 물은 끓지 않고 해서 나는 다급한 김에 이웃 중국식당에 가서 큰가마의 더운 물을 빌려오면 물위에 둥둥 뜬 기름을 보고 국장나으리는 이게 무슨 물이냐고 호통을 친다.
광복 전야 그 때는 반항공 사이렌이 자주 울렸다. 소련 비행기가 공습을 온다는 것이였다. 그러면 우리 우편국 직원들은 지정된 방공굴로 일제히 대피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밖에 나앉아 있는 할머니가 폭탄에 맞아 죽는 것만 같아 근심이 태산 같았다. 방공굴에 대피해 있는 나의 마음은 마치도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을 거듭하는 동안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라고 생각한 나는 우편국 “뽀이”를 그만두기로 작심하였다.
 이 때 조선으로 재가하신 우리 어머니가 연길로 이사를 왔다. 나와 할머니가 너무도 보고싶어 못 살겠다는 어머니!
어머니는 장거리에서 두부장사를 하였다. 혹시 내가 장에 나가면 어머니는 줄 돈이 없어 길바닥에서 하나 둘씩 주워 모은 고무줄을 주며 눈물을 글썽이었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고 싶어도 차마 오지는 못하고 혹시 길거리에서 할머니를 만나면 다짜고짜 할머니를 무릎에 눕혀놓고 해가는 줄도 모르고 머리의 이를 잡아주곤 하시였다. 할아버지 제삿날이면 꼭꼭 찾아와서 집에는 못 들어오고 문밖에서 빙빙 돌다가곤 하였다. 가난한 세월에도 끊기지 않은 인정 서로의 마음을 의지하며 이를 악물고 우리는 힘들게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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