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들이 개척한 도시
유타는 인디언 말로는 《산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유타 주에 별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벌집의 주(Beehive State)》다. 이 별명은 몰몬교 신도들의 사회적 협력의 상징으로 되고 있는 벌집에서 유래된 것이다. 미국인들은 몰몬교 신도들을 《말하는 꿀벌》이라고 한다. 《말하는 꿀벌》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근면성을 자랑하는 몰몬교 신도들은 근면, 성실, 정직, 낙관주의, 정절, 검소, 봉사, 가족 중심의 계율을 지켜나가며 관개 농업을 시작으로 삶의 터전을 닦았다. 캘리포니아에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솔트레이크는 중간 기착지이자 물자공급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관개농업의 성공에 이어 구리, 철, 은, 납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1969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면서 솔트레이크는 중서부 교역 집산지로 격상된다. 1896년, 솔트레이크의 기적적인 발전으로 유타가 마침내 미국의 45번째 주로 된다. 유타 주는 《말하는 꿀벌》들이 개척한 주가 틀림없다.
유타 주의 주도인 솔트레이크 주민들 중 몰몬교 신도가 70%를 차지한다. 몰몬교 본부가 있는 솔트레이크를 몰몬교 본산지라 할 수 있다. 사실 솔트레이크는 몰몬교 신도들에 의해 탄생한 도시이다. 때문에 솔트레이크와 그 부근의 대부분 관광명소가 몰몬교와 관련이 있다.솔트레이크 시 중심에 위치한 템플 광장에는 솔트레이크의 기념비적 건물들이 모여 있다. 몰몬교 역사와 몰몬교 신도들이 창조한 기적을 엿볼 수 있는 광장이기도 하다. 이 광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축조물은 6개의 첨탑을 떠이고 있는 솔트레이크 성전(Salt Lake Temple)이다. 높이가 64m, 정면 폭이 58m인 성전은 1853년부터 40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이 성전에서 교회의 침례, 성전 결혼, 조상들을 위한 구원의식 등 특별한 의식이 행해진다고 한다. 미국의 저명한 관광지도 및 여행서적 출판사인 랜드 맥낼리(Rand McNally)는 1991년에 발간한 《세계적인 경이로움-인류문명의 걸작 안내》라는 책에서 파르테논 신전, 크렘린궁, 만리장성, 피라미드 등 고대 기념비적 축조물과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등 현대 축조물과 함께 솔트레이크 성전을 인류 문명의 100대 걸작의 하나로 선정하였다. 성전이 일반 예배를 보는 곳이 아니어서 관광객 입장을 금하고 있어 그냥 겉으로만 돌면서 사진만 남겼다.
성전 바로 옆에 둥근 돔형 모양을 한 이상한 건물이 있어 가이드에게 물으니 그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파이프오르간과 태버나클 합창단으로 유명한 태버나클(Tabernacle) 대 예배당이라고 했다. 다행이도 관광이 허용된 곳이었다. 1867년에 완공된 태버나클은 기둥 하나 없는 돔 형태로 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철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못, 생가죽, 고리, 흰 대들보 등으로만 축조되었다고 한다. 장내에서 종이를 찢는 소리나 못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향장치가 잘 되어 있다고 해서 볼펜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관광객들의 잡담으로 환상적인 음향효과를 검증할 수 없었다. 무대 정면에 설치된 크고 작은 파이프로 이루어진 오르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11,623개 파이프로 된 오르간 중 가장 긴 것이 6미터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오르간은 장중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태버나클 합창단은 가정주부, 회계사, 일반 사무원, 학생, 판매원, 비서직, 농업통계사, 은행가, 여급, 미용사, 대학교수, 목수, 물리치료사, 청부업자, 의사, 낙농가, 기사 등 50여 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는데 단원 수는 375명이란다. 세계적으로 단원 수가 가장 많은 합창단이다. 이 합창단은 1847년 8월 22일 개척자들이 솔트레이크에 정착한지 29일째 되는 날, 자그마한 교회 건물에서 교회 성가대로 고고성을 울렸다. 전원 모두가 자원봉사자들인 태버내클 합창단은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과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위상을 자랑했다. 이 합창단이 부른 노래가 두 번이나 그래미상을 수상했는데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태버나클 합창단은 미국을 대표하는 합창단》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솔트레이크의 주요 관광명소로 되고 있는 솔트레이크 성전과 태버나클 대 예배당을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8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숫자다. 솔트레이크가 이미 단순한 종교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트레이크 시내 북쪽의 잔디와 꽃밭, 나무가 가득한 언덕 위에 유타 주 청사가 자리 잡고 있다. 1916년 완성된 이 청사는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건물 중앙에는 3층 높이의 원형 홀이 있다. 그 무게가 6.8톤이나 된다고 한다. 돔형 천장과 벽면에는 초기 이주민들의 역사를 기록한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고 하는데 관광 일정에 청사 내 관광이 들어있지 않아 아쉬움만 남겼다. 청사 주변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청사 앞에는 왐파노그(Wampanoag) 인디언 부족 추장인 메사소이트(Massasoit)의 동상이 서 있다. 메사소이트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첫 발을 들여놓을 때 많은 도움을 준 인디언 추장이다. 메사소이트는 미국의 《추수감사절》과도 관련이 있다. 유래를 보면 이러하다.
102명의 청교도들이 1620년 9월 16일 종교 자유를 찾아 영국의 제2의 항구도시 플리머스를 떠난다. 60여 일의 항해를 거쳐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그 해 긴 겨울을 지내면서 추위와 질병과 굶주림으로 대부분의 아녀자들과 아이들이 죽고 겨우 50여 명이 살아남는다. 생존의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인디언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 인디언 부족이 왐파노그 부족이다. 인디언들은 청교도들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쳐 주었다. 옥수수를 키우는 법, 물고기를 낚는 법, 그리고 사냥하는 법 등을 가르쳤고 다른 인디언 부족의 공격으로부터 청교도들을 지켜주었다. 그 해 가을 인디언의 도움으로 청교도들은 큰 풍년을 맞아 많은 곡식을 거두게 되었다.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디언들의 도움에 감사하여 왐파노그 인디언 부족 95명을 초청하여 만찬을 베푼 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청교도들은 인디언의 도움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메사소이트의 동상을 세운다. 그러나 왐파노그 부족도 다른 인디언 부족과 마찬가지로 학살당하는 비극을 면치 못한다. 지금도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왐파노그 부족 후예들이 메사소이트 동상을 찾아와 조상을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풍작을 경축하는 즐거운 명절이 인디언들에게는 눈물을 흘리는 날이 된 것이다. 메사소이트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어쩔 수 없이 언젠가 보았던 한 인디언 학자의 글을 떠올렸다. 그 학자는 인디언과 백인들 간의 관계를 다룬 글에서 이렇게 썼다.
《정부도 왐파노그 부족이 미국 땅에서 멸종되어 그들의 언어나 문화를 찾을 길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왐파노그 부족 추장 메사소이트는 오늘도 백인들이 배를 타고 들어온 바다를 향해 서 있다. 하지만 인디언들이 베풀어 준 사랑과 고마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까?》
여운을 길게 남기는 글이다. 미국 동부 해안에서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메사소이트가 솔트레이크에도 정중히 모셔져 있는 까닭은 몰몬교 신도들도 정착 시 인디언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기회의 땅을 찾아 영국을 떠나 미국에 첫 발자국을 찍은 청교도나 역시 기회의 땅을 찾아 미국 동부를 떠난 몰몬교 신도들이나 다 종교 박해를 받았고 핍박에 의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섰다는 점에서 그들의 운명은 같은 맥락을 했다. 종교 박해를 받은 그들과 인종 박해를 받은 인디언은 《동병상련》이랄 가, 뭔가 통하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인디언들이 베푼 사랑과 고마움을 유타 주는 그냥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