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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 즐거웠던 야학시절
2014년 08월 16일 17시 36분  조회:1767  추천:3  작성자: 훈이

학교에 갈 형편이 못된 나는 야학으로 찾아갔다. 야학에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거기서도 애숭이 꼴지 젖먹이었다. 장가가고 시집 간 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야학실, 나는 거기서 세상 처음 듣는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선은 우리 한글부터 배워야했다. “가, 갸, 거, 겨…”
배울수록 재미가 났다. 나이가 제일 어려서였던지 배우는 속도도 제일 빨랐다. 자주 선생님의 칭찬도 받았다. 그래서 신나는 배운터, 나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공부에 열중했다. 그 다음은 정치과도 배웠다. 무슨 유물론이요, 진화론이요 하는데 처음엔 난 알아들을수 없었다.
공부는 갈수록 심산이었다. 그래도 나는 신이나서 야학에 다녔다. 몰라도 아는 척, 두툼한 책 꾸러미를 옆에 끼고 다니는 것이 별로 멋져보였다. 한동안 야학에 다녔더니 못 보던 신문도 뜯어보게 되고 세상물정도 적지핞게 알게 되어 나는 장원급제나 한 것처럼 기뻤다.
 할머니가 혼자서 고생하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그냥 야학에 다녔다. 어느날 나는 신문에서 민주학원에서 학생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나는 시험을 치기로 작심했다. 그러나 야학공부를 좀 한 밑천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길고 짧은건 대봐애 한다고 마음을 크게 먹고 시험공부에 달려들었다.
 내 짐작과 같이 수학은 문제가 없고 정치는 신문을 뜯어본 탓에 그럭저럭 넘길수 있었는데 어문이 문제였다. 어떤 단어는 몰라 일본어로 섞어 썼다. 시험지를 바친 나는 십상팔구는 불합격인줄 알고 아예 단념하고 말았다.
 합격자 발표의 날, 그래도 혹시나 해서 나가 보았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761호” 내 시험번호가 나붙었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그 밑에 이름이 틀렸다. 마땅히 “방채봉”이라야 할 것을 “방재춘”으로 되어있어 잠시의 기쁨은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사무실에 들어가 확인학 따지고 보니 “방채봉”의 오자로 되어있었다. 그 후에는 구두시험이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려가며 불운한 나의 동년시절 이야기를 했다. 그때 시험관들은 나늬 이야기에 감동이 되었다 나이가 어리지만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어렵지 않게 합격이 되었다. 
 민주학원에서 나는 사회발전사를 배웠다. 얼마 후 나는 우전국에 배치를 받았다. 들어가 보니 거의 가 다 일제시절 교환수들이어서 질서는 문란하였다. 처음 들어가니 월급이라고 해서 겉수수 서른다섯근을 주었다. 반년 후에는 60근을 주었다. 그때만해도 60근 곁수수 월급도 상당하여 남들이 부러워했다.
 나는 열심히 일하였다. 1년후 중국공산당 공개지부 건설이 있었는데 나는 첫 번째로 입당 발전대상이 되었다. 누가 “입당지원서”라는걸 가져다 주면서 등기표를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신청서를 들고 고민하였다. 그때 들은 말에 의하면 공산당원이 되면 시집가는 것도 당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시집을 가면 당지부 서기나 당간부한테 가야 하는데 보니까 당지부서기라는게 거의가 다 이미 장가를 간 늙은이들이어서 내가 저런데로 어떻게 시집을 가냐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게다가 조선에 나간 언니 남편이 조선에 나와 중학교 공부를 하라는 편지가 와서 나는 입당을 거절했다.
 그래도 하도 일을 잘 했기에 얼마후에는 또 공산주의청년단에 내 이름을 올렸다. 이것도 내가 자진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추천이었다.
“난 신청도 안했는데.”
 회의에서 내가 볼멘 소리를 하자 곁에 있던 친구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가만있어, 바보야”
그렇게 나는 공산주의청년단에 입단하였다.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였다. 조직에서는 나를 신임해 장도교환수가 되게 했고 성에서는 비밀교환수와 반장으로 임명했다.
 그 후 조선전쟁이 터지자 나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다. 미군 비행기가 어느 방향으로 떴고 어디까지 왔으며 어느 곳을 폭격하고 있다는 모든 비밀연락을 내가 맡아야 했다. 당시 비밀교환수는 적고 상황은 긴박하고해서 때로는 연 며칠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래도 나는 피곤한 줄을 모르고 밤낮으로 일했다. 때로는 너무 피곤해서 코피가 쏟아지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동료들은 나를 집에 가서 며칠 쉬라고 등을 떠밀었지만 나는 의자에서 잠간 쪽잠을 자고 또 계속 일했다.
 쪽잠을 자다가도 사이렌소리만 나는 비밀교환대가 있는 공원의 지하실로 달려가야 했다. 처녀의 몸으로 혼자 숲속에 있는 공원 지하실로 들어가야 했지만 당시 나는 무서운 줄도 몰랐다. 다만 할머니가 폭격을 맞는 것 같아 근심이 태산 같았다.이렇게 밤낮을 모르고 열심히 일한 탓으로 나는 “10년 변강보위모범”이라는 영예를 받아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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