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날과 지금 이야기
http://www.zoglo.net/blog/china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블로그 -> 기타

나의카테고리 : 문화공원

바둑대왕 섭위평의 세 부인
2010년 04월 15일 11시 40분  조회:5469  추천:1  작성자: 人和

바둑대왕 섭위평은 두번 결혼했지만 모두 실패하면서 감정세계가 한때는 진공상태였다. 그러나 최근들어 한 공개적인 행사에서 아름다운 녀인이 그의 곁에 나타났다. 그녀가 바로 섭위평의 세번째 부인인 란리아이다. 란리아는 섭위평보다 23살이나 어리였다. 섭위평은 란리아와 결혼한것은 “금덩어리를 주은것”이라고 표현했다. 섭위평과 세명의 부인들간에 어떤 사연이 있었을가?

 

첫번째 부인 공상명


공상명은 일찍 여러번 바둑대회에서 전국1위를 차지하였고 일본의 직업9단 바둑기사를 물리친바 있다. 그러나 결혼후 그녀는 점차 자신의 바둑사업을 포기하고 “내조”에 전념했다. 그녀는 전심전력을 다하여 섭위평을 돌봐주었고 남편이 꿈을 실현할수 있도록 내조했다. 결혼한지 3년만에 그들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세 식구의 가족이 섭위평에게 가져다준것은 생활상의 안정뿐만아니라 정신적인 의탁이였다. 그것은 섭위평이 밖에서 성과를 거두게 하는 원천이 되였다. 이때 섭위평의 기력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섭위평의 성공은 첫번째 부인인 공상명의 도움이 아주 컸다고 바둑계인사들이 보고있다. 공상명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 자신도 바둑에 대해 많은 꿈이 있었지만 그래도 섭위평의 기력이 나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했기에 그를 도와 그가 품었던 꿈을 꼭 실현해주고싶었다. 나는 내가 도와주면 그가 꼭 실현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달콤했던 혼인생활이 1990년에 이르러 큰 변화가 나타났다. 섭위평은 호남텔레비죤방송국에서 조직한 행사에 참가했다가 우연하게 배우 왕정을 알게 되였고 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맞았다. 섭위평은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억했다. “그때 나와 공상명의 결혼은 이미 깨여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왕정에 관하여 안해에게 전혀 말하지 않았다. 나는 말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우리는 결혼10돐기념행사를 조직했는데 많은 친구를 초청했다. 사실 결혼10돐기념행사는 우리의 ‘고별연회’였다. 그러나 당시 행사에 참가했던 많은 친구들은  그 진상을 모르고있었다. 그날 왕정과 그녀의 오빠인 왕강도 행사에 참석했었다. 녀자의 감각은 아주 뛰여났다. 당시 수백명이 있는 로비에서 나는 왕정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 공상명은 나와 왕정의 관계를 눈치챘던것이다.”


후에 왕정이 임신을 했지만 아이를 지워버리지 않겠다고 우겼다. 섭위평은 어쩔수 없이 정식으로 공상명에게 리혼을 제기했다.
“여보, 우리 리혼하기요. 왕정과 같이 있으면 난 남자다왔고 너무나 행복했소. 그러는 왕정이 지금 임신을 했소. 난 아직 태여나지 않은 아이에게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당신과 리혼한후 왕정과 결혼하려 하오.”
이렇게 섭위평은 한때 동료였고 자신의 사업을 아낌없이 밀어주고 지지해준 첫번째 부인 공상명과 리혼했다.


공상명은 리혼한후 아들의 이름을 공령문(원 이름은 섭운총이였음)으로 고치고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바둑에선 아버지를 따라배워야지만 다른 면에서는 절대 아버지를 따라배우지 말아야 한다고 항상 일깨워주었다. 공상명은 재혼한후 상해에서 열린 바둑대회에 참가하여 섭위평과 대적한적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 지어 둘은 상대방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확실히 공상명의 마음은 섭위평의 배신을 아직도 용서하지 않은것 같다고 외부에서 보고있다.

 

 

두번째 부인 왕정


1991년, 섭위평은 첮번째 부인 공상명과 리혼한후 인차 두번째 부인 왕정과 결혼했다. 결혼하여 3개월만에 왕정은 아들 섭운청을 낳았다.
섭위평은 왕정을 알게 된 과정을 이렇게 회억했다.


“우리는 호남텔레비죤방송국에서 조직한 행사에서 서로 만났다. 행사가 끝나자 우리는 북경으로 돌아갈 때 같은 기차를 탔으며 한침대칸에 들었다. 헤여질 때 서로 전화번호를 남겼다. 북경에 도착한 이튿날 왕정이 전화를 해서 우리는 함께 가라오케로 갔다. 우리는 가라오케에서 술을 마시면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가라오케에 갔다는것은 이미 그녀를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섭위평과 왕정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말밥에 오를가봐 걱정되여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당시 왕정은 중국인민해방군총정치부 부근에서 살았는데 섭위평은 왕정을 만나러 갈 때마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사람들의 눈치를 피해다녔다. 왕정도 섭위평을 만날 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종이로 불을 감쌀수 없듯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였다. 섭위평에게 왕정과 그만두라고 조언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왕정의 상급에서도 그녀를 찾아서 섭위평과 그만두는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지어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녀를 신강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섭위평은 당시 왕정과 그다지 깊은 애정이 있었던것이 아니라 완전히 정신적인 공허감으로 잠시 그녀와 접촉한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이 압력을 가하자 섭위평은 오히려 강해졌다. 섭위평은 자신의 선택이였지만 나중에 자신이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것을 깨달았다.


섭위평과 왕정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 섭위평자신도 두번째 결혼을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 둘은 전공이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사업적으로 서로 도와줄수 있는것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자주 공연을 떠났고 나는 자주 시합을 했기에 둘이 진정으로 감정을 교류할 시간이 너무나 잛았다. 일상생활에서 나는 의존형이였는데 왕정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왕정은 사업형녀자이므로 집안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전공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집안일을 서로 돌보지 않았다. 당시 나는 아주 짜증났다. 사람이 짜증이 나면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살고싶어한다. 이것은 말로는 표현할수 없는 짜증이다. 난 너무나 짜증이 났다.”
2001년에 섭위평은 자신의 두번째 10년간의 결혼생활을 결속지었다. 왕정은 섭위평과의 사랑을 이렇게 회억했다. “처음에는 우리도 신혼부부들처럼 참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서로 감정이 멀어졌다는것을 깨달았다. 나는 바둑시합에서 졌을 때 아주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나쁠적마다 안해에게 화를 냈다. 우린 애호가 서로 달라 랑만이라는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하여 결혼하여 생활한지 10년이 되지만 순탄하지 않은 10년이였다.”

 


세번째 부인 란리아


2001년 4월, 섭위평은 상해로 가서 섭위평바둑(棋牌)구락부를 꾸렸다. 거기서 그는 처음으로 구락부의 고객담당부장인 란리아를 만났다. 섭위평은 비록 이미 두번이나 혼인에서 실패했고 이미 50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아름답고 서글서글한 란리아에게 마음이 동했다. 섭위평은 이런저런 구실을 대고 자주 그녀를 만나 사랑의 공세를 들이댔다. 두달후 두 사람은 련애관계로 발전했다. 2001년 8월, 섭위평은 란리아와 그녀의 고향인 귀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섭위평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이가 20여세나 차이난다. 모든 면에서 차이가 너무나 크므로 때론 세대차이를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서로 아주 잘 어울리고 즐겁게 지낸다. 결혼할 때에도 나는 꼬물만치도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마치 금덩어리를 주은듯했다.”


세번째 부인에 대하여 섭위평은 아주 만족해했다. 란리아는 예쁠뿐만아니라 생활을 아주 잘 조직하는 녀인이였다. 란리아는 매일 집에서 남편의 입맛에 맞는 밥상을 준비했다. 하여 섭위평이 집안에 있는 시간이 자연히 많아졌으며 술마시는것도 절제했다. 이런 안해가 있음으로 하여 섭위평이 옷입고 분장하는것도 과거보다 훨씬 깔끔해졌다.


섭위평은 세번째 부인을 늘 자랑했다.
“세번째 결혼은 먼저번 결혼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와의 결혼은 장애가 있었고 세속적인 압력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난 모든것을 이겨내고 그녀와 결혼을 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공동언어도 많았다. 하여 나는 일이 없으면 늘 집에 머물렀다. 좋은 안해를 두었기에 나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집에 있으면 핸드폰도 켜놓지 않는다.”
섭위평은 세번째로 만난 부인 란리아에 대해 확실히 만족해하고있으며 끝까지 살아갈 동행자라고 자랑했다.

 

연변라지오TV신문

 

파일 [ 4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0 살인을 불러온 사랑유희 2010-11-24 1 4815
79 정계의 “기생(寄生)철학” 비밀 2010-11-22 0 4541
78 복수의 칼을 든 미소녀 2010-11-16 1 4609
77 련인으로부터 남매로 돌아오기까지 2010-11-15 0 4462
76 광주 최악의 마약밀매조직 피고석에 2010-11-11 0 5403
75 그들 부부가 창조해낸 기적 2010-09-06 0 4392
74 두 남자사이를 오간 녀인 2010-08-23 0 4563
73 피보다 진한 자매의 정 2010-08-10 0 4290
72 하루밤 사랑이 불러온 살인사건 2010-07-26 0 4894
71 류방의 인재등용(用人之道) 2010-06-23 0 4383
70 송경령의 성씨는 “송”씨가 아닌 “한”씨 2010-06-22 0 6091
69 “연경맥주” 리사장 검거자 비방죄로 판결 2010-06-18 0 4548
68 서시 중국 최초의 미녀간첩 2010-06-10 0 4247
67 일처이부가 연출한 황당한 참극 2010-06-04 0 4094
66 주유규 중국력사상 유일하게 군기소생인 황제 2010-06-03 0 4173
65 희한하게 리혼한 부부 2010-06-01 0 4395
64 고순장 ―제일 위험했던 변절자 2010-05-26 0 4556
63 지옥에서 천당으로 2010-05-13 0 4302
62 살인악마의 웃음과 한숨 2010-05-11 0 4441
61 늑대의 사랑고백 2010-05-06 0 4119
‹처음  이전 1 2 3 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