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로 평단과 독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중국어권에서 수상이 가장 유력한 작가로 평가받아왔던 막언이 종내는 문학의 최정상급 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작품이 세계독서판매력사의 기록을 쇄신하고있다. 북경정전박유(精典博維)문화발전공사에 따르면 년말까지 막언의 작품이 100만부 이상 출판될것으로 추산되는바 막언이 이 동안 벌어들일 인세 수입이 2억원이 넘을것으로 예상된다.
변강의 오지인 연변지역에서도 서점가에 “막언의 작품 품절(脱销)”라는 현수막이 내 걸렸으니 책 안읽는 우리의 독서풍토에서는 전례없던 일이라 하겠다. 따라서 막언의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급증하고있다.
많은 수작(秀作)들을 량산해 내였음에도 막언의 작품을 꼽을라치면 뭐니뭐니 해도 그의 문명(文名)을 세상에 알린 붉은 수수(红高粱)일것이다.
1987년에 발표된“붉은 수수”는 막언이 중국당대문학에 선물한 초기의 거작이다. 그의 문학인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당년에 역시 무명이였던 장예모감독이 발표, 이듬해 영화로 만들었고 중국영화사상 처음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장예모 감독, 녀배우 공리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고 그후로 막언의 작품이 20여개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계기가 됐다. 막언이 전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는 발판이 된것이다.
하지만 소설“붉은 수수”는 영화로 각색되기 이전인 1987년에 이미 전국중편소설상을 수상하면서 그 작품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지난세기 80년대 중기, 문화대혁명의 어둠이 걷히고 개혁 개방으로 발동된 창작정신이 막언과 같은 선봉파 작가들의 등장을 부추겼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붉은 수수”이다. 따라서 “붉은 수수”는 중국의 력사, 현대사, 문화, 설화, 민족성 등이 골고루 혼효(混淆)되여 막언이 간직한 민족의식이 잘 드러났다는 평을 받으며 중국문학사에서 빠칠수 없는 위치를 자리매김한다.
붉은 수수밭이 천지로 펼쳐있는 산동의 한 마을,수수밭을 명줄로 삼은 이 한적한 농촌에서 고량주, 남녀간의 사랑과 갈등 등 일상적인 삶이 평화롭게 유지되던 어느 날 느닷없이 일본군의 폭력이 끼여 들면서 마을은 풍비박산이 난다. 마을사람들은 졸지에 온갖 착취와 부역등 일제의 만행에 시달리게 되며 피비린내 나는 항일전쟁의 소용돌이속에 던져진다. 소설은 그 력사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일본군의 횡포와 만행에 맞서 싸우는 비범한 중국 민초들의 이야기를 붉은 수수밭이라는 확장된 공간속에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은 문둥병을 앓고 있는 고량주 양조장(高粱酒 釀造场)집 아들에게 노새 한 마리를 받고 팔리워 시집가던 대봉련(戴凤莲)이 결혼 첫날 꽃가마를 메는 여점오(余占鳌)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양조장의 일군인 여점오는 “칠거지악을 범해” 붉은 수수밭에서 시집가는 처녀를 “차지한다”.
여점오는 양조장에서 한낱 일꾼으로 있지만 점차 리더적인 면모와 활약상을 보이며 린근의 사람들을 통솔하기 시작한다. 십년의 세월동안 그들은 양조장을 운영하며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군이 양조장의 큰 어른인 루할아버지를 가죽을 벗겨 처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격노한 여점오는 강적 일본주둔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린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양조장의 안주인이였던 녀주인공 대봉련이 총에 맞아 숨지게 된다.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인하고 거세지지만 여점오는 민중을 진두지휘하며 일본군에 저항한다.
모진 세월을 강하게 헤쳐나간 남녀의 삶과 민중들의 원초적 생명력, 뜨거운 민족심 등이 뒤얽힌 “붉은 수수”의 세계에 빠져 작품을 읽노라면 내내 눈앞으로 붉게 일렁이는 수수밭이 펼쳐지는것 같은 기분이다. 작품속에는 중국민족의 력사와 신화, 생명의식과 전통문화, 중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복합적으로 뒤엉켜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빚어내는 맛은 알싸한 고량주처럼 놀랍게도 강렬하다.
소설은“나”가 주되는 화자로 서술하는 동시에 “나의 할머니ㆍ할아버지ㆍ아버지ㆍ어머니”가 더불어 화자로 등장함으로써 이들 가족의 오래전 옛이야기를 바로 현 시점에까지 끌어오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로써 조그마한 마을의 붉은 수수밭에서 살아가던 수수한 가족과 침략자 일본군과의 혈전의 씨줄과 날줄의 사연은 작가의 거침없는 입담과 필치로 두드러진다.
영화 “붉은 수수”를 보고 막언의 이 대표작품을 리해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이다. 실제로 소설과 영화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소설쪽이 더욱 복합적이고 립체적이고 풍부하며 성찰적이고 실험적이다. 영화는 원시적 생명력과 남녀의 사랑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것의 5배 분량은 실히 될 원작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중국인들의 장대한 력사를 서사적, 영웅적, 민족적인 색채를 지니는 환상곡풍의 기악곡의 일종인 광시곡 (狂詩曲)으로 담아낸다.
소설은 민간의 시각에서 항일전쟁을 묘사하고 생존을 위한 욕망을 그려냈다는데서 주목을 받았다. 작품은 항일전쟁시기를 배경으로 하고있지만 재래의 전쟁제재와는 사뭇 다르다. 이 다른 점이 독자와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내였다. 재래의 항일제재, 전쟁제재의 소설들을 보면 정의와 사악의 흑백론리의 대결로 현실에서는 볼수 없는 완미하기 그지없는 영웅들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붉은 수수”에서 그려낸 영웅들은 문제투성이고 지어 사회 아류들이다. 그들은 선명한 항일의식을 갖고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난장의 년대속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운명에 맞닥뜨린 고난에 대한 불만과 반항을 나타낸다. 그들은 완강하게 또 오연하게 생명의 자유를 지켜내였다. 이로서 립체적이며 생선처럼 살아숨쉬는 생생한 생명과 인성을 가진 인물들이 독자들앞에 나타난다.
1987년에 출판된 “붉은 수수”에는 노벨문학상이라는 문학 최고의 전당에 까지 오르게 된 작가 막언의 후날의 가능성들이 충분히 잠재되여 있다.
중국 농촌의 전통적인 문화, 신화, 전설 그리고 그속에서 이루어지는 민중의 삶과 죽음, 거기에 나타나는 원초적 생명력. 그 원초적 공간과 근대적 변화라는 력사 공간을 마주 세우거나 겹침으로써, 성찰을 작동시켜 만든 작가의 창작물은 극히 다채롭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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