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
대하소설을 읽다
김 혁
요즘처럼 시간을 쫓고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서 부피가 벽돌장처럼 두툼하고 쌓아놓으면 자신의 키높이는 족히 될 다부작 대하소설을 완독한다는것은 어찌보면 무리한 작업이 아닐수 없다.
마치 “초고새 계곡을 날아넘기”, “올챙이 바다를 횡단하기”로 힘에 부치는 작업일것이다. 어쩌면 홀리우드의 빅스타 톰.클루주가 주연한 영화제목처럼 완수할수없는 “불가능한 미션(任务)”일지도 모른다.
소설을 량적인 기준으로 분류할때 단편, 중편, 장편, 대하소설등으로 나눌수 있다. 여기서 대하소설(大河小说)이라는 명칭은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로와가 맨처음 지어낸 말이다. 그는 대하소설에 대해 “이야기 줄거리의 전개가 완만하고 등장인물이 수없이 많으며 사건이 련속으로 쌓여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큰 강과도 같은 감을 주는 장편소설”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대하소설로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家)”,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을 꼽았다.
우리민족의 최초의 한문소설은 15세기 김시습의 “금오신화”이고 국문소설은 17세기 초의 “홍길동전”임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은 가운데 가장 긴 소설이 어느것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못하다. 바로 “완월회맹연(玩月会盟宴)”이라는 소설이다. 조선 숙종- 철종년간에 쓰여진것으로 추정되는 고대소설이다. 180권 180책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으로 4대에 걸친 가족사와 함께 영웅들의 활약상, 궁중음모등을 그리고 있는데 그 책의 부피나 이야기전개의 방대한 스케일을 봐도 명실공히 대하소설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대하소설에 대해 학술계는 이렇게 정리한다.
량적인 면에서 장편소설보다 길다고 해서 단순히 대하소설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 사건이 길게 이어지되 단순한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작가의 력사의식이 강하게 투영되여야 한다. 시대의 삶과 력사가 작가의 력사의식에 의해 재구성돼야 한다는것이다. 때문에 자수가 얼마냐, 권수가 몇권이냐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는거다. 그럼에도 대하소설이라 출품되는 작품들을 보면 거개가 몇권, 지어10여권으로 그 부피가 어마어마하다. 짧은 소설을 나무 잎사귀처럼 작다고 하여 잎 “엽”자를 달아 엽편(叶片)소설이라고도 하는데 큰 강이라는 이름을 달았으니 대하소설은 결국 스케일이 클수록 유명세를 타는것이다.
내가 맨 처음 읽은 대하소설은 무협지였다.
김용의 “록정기(鹿鼎記)”. 무협지라니 순문학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색안경끼고 우숩게 볼는지 모르지만 김용의 14부의 작품가운데서 맨 마지막 봉필(封笔) 작품인 이 대하소설은 그 무슨 순문학의 전당에 오르지 못할 아류의 문학이 아니라 그와 견주어도 추호의 손색이 가지 않을, 오히려 그 엄숙을 깨치고 정상에 오를만한 대작이다. 소설의 장대한 스케일, 해박한 력사지식, 종교, 민속, 생활상에 대한 묘파(描破)는 그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다. 때문에 “홍루몽”연구회의 “홍학(红学)”처럼 발족된 김용문학 연구회 “김학(金学)”에서는 김용을 가리켜 “당대 최고의 신필”이라 하지않았던가.
80년대, 무협지가 풍미하던 시절 그 소설에 홀딱 반해5권으로 된 소설을 어눌하기 짝이없는 한어수준으로 사전을 뒤져가며 읽었다. 금방 걸음마 탄 아기의 아장걸음으로나마 천리를 가려는 몰악스런 심산으로 밤이고 낮이고 사전을 대조해가며 읽었는데 아마 지금껏 사전에 그렇게 극악스레 매달렸던것은 그때 처음이였던것 같다. 다 읽는데 몇달은 족히 걸렸다. 그후 한국에서 우리말로 “록정기”가 번역출간, 장장 12권으로 되였는데 그때의 설욕전(雪辱战)을 치르련듯 거뜬히 스무날동안에 읽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은적있다.
뒤미처 읽은 대하소설은 아마 “림꺽정”이였던것 같다. 오랜 판본이라 내리줄로 되여 있어 주린 닭이 모이를 쫓듯 고개를 바지런히 주억거리며 읽었다. 무엇보다 걸쭉한 육담과 사투리에 감탄하며 귀밑을 붉혀가며 읽었다.
조선 중기 백정 출신의 의적(义贼) “임림꺽정”의 활약상을 통해 민중의 삶을 생생히 보여준 소설은 작가인 벽초 홍명희가 월북하면서 한국에서 오래동안 금서로 치부되였고 조선에서도 80년대 중반에야 다시 읽혀졌다고 한다. 중국이 금방 좌(左)의 철쇄에서 벗어난 원활해진 풍토에서 연변에 80년대초에 알려졌으니 우리 독자들로 보면 과히 늦은편도 아니다. 더욱이 “우리 말의 풍부한 보고(宝库)”라고 김학철 선생이 극찬한 책이라 문학도로서 퍽 어린 나이였지만 그 책을 찾아들었다.
세계경전 대하소설을 읽은것은 구 쏘련 작가 미하일 숄로호브의 “고요한 돈”이 처음이였다.
90년대 초, 중앙텔레비죤 3채널에서 일요일마다 방영되는 명작영화 코너가 있었는데 그 채널을 통해 우리는 많은 명작을 접했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磨)”라고 그렇게 좋은 작품들이 어쩌면 늦은 저녁 12시부터 방영되곤했다. 그리고 일일드라마처럼 매일 방영하는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편씩만 방영하곤했다.
하다 보니 4부작으로 된 “고요한 돈”을 다 보려면 한 달은 실히 걸려야 했다. 심야에 시작한데다가 중간중간에 광고까지 “문 걸고 맛있는 아욱국 먹는데 불청객이 노크하듯” 불쑥불쑥 끼여드는지라 새벽 두시가 다 돼 서야 한편을 간신히 볼수 있었다. 게다가 밀려드는 졸음에 저울추라도 매단듯 내려오는 눈두덩이를 원쑤처럼 쥐여뜯다보니 영화를 완정하게 보지 못하기가 일쑤였다.
“고요한 돈”은 3권으로 된 련환화(连环画)로도 갖추고있었지만 그 무슨 덩치 큰 기계의 설명서처럼 간략하기 그지없는 그 줄거리 압축본에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한국에서 번역출간한 8권본으로 된 “고요한 돈”을 구해서 완정하게 읽었다.
소설은 그야말로 스케일이 방대한 “소설 로씨야혁명사”였다. 돈강류역의 까자흐 집단이 1차 세계대전과 로씨야혁명, 내전이라는 력사적 격동속에서 겪게되는 여러 부류 인간들의 운명을 서사적으로 그려냈다. “고요한 돈”은 1928년에 제1부가 나와서 1940년에야 제4부가 완결됐다. 저자는 이 소설을 집필하는데 14년이 걸렸다고 한다. 숄로호브는 이 작품 하나로 일약 세계 문단의 주목을 끌었고 1965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평을 읽으면서 안 일이지만 소설 출간에는 우리가 애대하는 쏘련작가 고리끼의 도움이 컸다고한다. 고리끼는 “고요한 돈”을 가리켜 “넓디넓고 바르고 재능이 넘친 시각을 제공했다"고 평했다
8권을 다 독파하고나서 마지막 페지를 지겨운듯 아쉬운듯 덮어버리니 스며드는 그 뿌듯함, 난생처음 대하소설을 독파한 감수가 해일처럼 한 가슴 가득 밀려왔다. 바로 이 멋이구나! 말가웃 되는 큰잔에 넘쳐나게 부은 맥주를 울대뼈를 부지런히 자아올리며 깡그리 비워낸 호주가의 흔쾌한 맛이랄가! 마라손 경기의 마지막 코스까지 완주한 선수의 뻑적지근하면서도 호쾌한 감이라할가!
그즈음에 또 10권본으로 된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신문사의 선배 L에게서 빌려 읽었다. 거의 반년을 읽었다.
지난세기 40년대말부터 30년대 초까지 전라남도 일대에서 벌어진 빨찌산 투쟁등 좌우익 충돌을 주로 다룬, 집필 기간만 6년, 200자 원고지 1만6500장 분량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금기시되던 빨찌산 투쟁을 중립적인 시각에서 그려낸게 이곳 작가들에게도 그 어느 한국작품보다 먼저 읽히게 된 리유였다.
책을 빌려주었던 선배는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당시는 온 시가지를 통틀어 흔하지 않던 그 대하소설을 “꿀꺽”하지 않았느냐는 걱정에 어서 돌리라고 극성스레 재촉했지만 오랜 시간에 겨우 다 읽고 돌려드렸다.
다음은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을 읽었다. “길림신문”사의 기자로 뛰던 시절이니1990년경으로 생각된다. 나에게 대하소설 한 질을 빌려주고 오랜 시간 돌리지 않아 매일이고 닦달질하던 그 선배기자가 대단한 한국작가가 왔다며 취재를 나갔다. “광주다방”에서 선배님이 만난 분은 바로 “혼불”의 작가 최명희였다. 소설 “혼불”의 무대는 만주까지 확장되여 이 곳에 흘러든 조선인들의 비극적 삶과 강탈당한 민족혼의 회복을 위한 모습이 형상화되고있는데 최명희는 만주부분을 쓰기위해 체험차 중국으로 온것이였다.
그때 선배가 찍어온 사진으로 최명희 작가를 처음 보았다. 조신한 기품의 단발이 단아한 녀작가, 아, 대하소설을 만드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나, 그 무슨 신화속 삼두륙비(三头六臂)가 아니고 평범한 중년의 녀인일수도 있고나하고 사진들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며 감개를 머금었었다. 당시 최명희의 혼불”은 4권까지 나왔었는데 그 책을 선물받고 선배는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자랑하다싶이 나에게 보였다. 그러다 내가 또 빌려달라할가 서둘러 가방에 넣었고 소리나게 지퍼를 주욱~ 닫아버렸다. 그때 애숭이 문학도라고 멀리서 온 유명작가의 존안을 뵈일 기회조차 주지않는 선배가 울컥 야속하기만 했었다.
썩 오랜후에 완결된 10권본을 찾아 읽었다。
80년 에 시작하여 17년만에 원고지 1만2천장으로 마무리한 이 대하소설은 종부(宗妇) 3대를 중심으로 일제의 탄압에도 여전히 조선말의 정신구조와 문화를 지탱하고 있던 시대를 고뇌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아름답게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도 적중한 언어들을 종자벼씨 정선하듯 골라 새겨내린 작품이다.
요즘 읽은 대하소설은 유주현의 실록소설 “조선총독부”이다.
아침산책으로 자주 들리곤하는 연길수산시장, 세상 온갖 물목들이 잡다하게 펼쳐져 복작거리는 그곳에는 책난전이 어울리지않으나마 제법 몇군데가 펼쳐져있다. 그 책난전에서 뜻밖에 만난 “보물”이다. 헌책가게에서 간혹 원하던 좋은 책을 만나면 그야말로 “송사리떼만 란무하던 작은 내에서 고래라도 낚아 올린듯” 월척(越尺)한 기분이다. 5권본으로 된 그 책을 남에게 빼앗길세라 후딱 사들었고 사흘사이에 독파해버렸다. 1967년의 판본이 고스란히 내 손에 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오래 된 책이라 코를 송곳끝처럼 들쑤셔대는 삭은 곰팡이 냄새에 재채기를 해가면서도 극성스레 읽었다. 근년들어 민족의 근대사에 흥미를 가지고 그 사건과 인물을 다루는 작품들을 창작하고있는지라 민족의 수난을 다룬 그 부피가 큰 책이 빨리 읽혀졌다고 해야겠다.
그 무슨 등산애호가처럼 대하소설이라는 봉우리를 하나 또 하나 독파하면서 그 와중에 가장 감명깊게 읽은것이 박경리의 “토지”다.
한국 문학과 정신의 한 표상 박경리 선생의 필생의 력작이다.
간도와 서울, 일본등을 공간 배경으로 아우르고 4대에 걸친 모계 중심의 가족사를 추적하면서50여 년에 걸친 민족수난기를 담은 대작. 70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의 고난의 운명, 현실 극복의지를 통해 민족의 한과 력사에 대한 총체적인 조명을 시도한 대작이다.
전쟁에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을 기르며 또 체제에 맞선 사위가 옥고를 치르고 집필기간 유방암 선고까지 받은 작가가 이 책을 내놓기까지는 2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히지만 무거운 쇠사슬을 휘감긴듯한 고통의 나날들을 떨쳐내고 내놓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대작에 대중과 평단이 저마다 엄지를 뽑아들었다. 이를 원작으로 삼아 영화로도 제작됐고 유수의 유명 방송국들이 세 차례에 걸쳐 TV드라마로 제작했다. 또 서사음악극으로 무대에 올려졌으며, 청소년판과 만화로도 출간되는 등 여러 장르로 끊임없이 변용돼 오고있다. 작가가 집필한 곳은 문학공원으로 꾸며지고 작품의 드라마 촬영 세트장은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작품속의 공간이 된 곳에서는 해마다 작가를 기리는 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이는 한부의 대하소설의 가치가 그만큼 널리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토지”는 “한국 대하소설의 뿌리”이라고 평론가들은 정평한다. 한편으로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평가받는 작품으로서 서구에 비해 짧은 력사를 가진 한국 근대문학을 절정기에 올려놓은 대작이라고 말한다. 몇해전 박경리선생이 타계했을때 외신들은 부음기사에서 저마다 “토지”를 소개할때 무엇보다 대하소설의 뜻을 갖는 단어로 소개하면서 “토지는 한부의 전설, 영웅서사”이다고 격찬했다.
“토지”는 인터넷에 해박한 어느 후배에게서 파일로 넘겨 받아 읽었다. 종이책이 아니고 컴퓨터에 마주 앉아 읽은지라 솔직히 근 일년여가 되여서야 읽을수 있었다. 책을 읽고나서 나는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사비를 털어 소설“토지”의 루트를 따라 문학기행을 하기로 마음먹은것이다.
2006년 6월, 나는 무작정 박경리선생님의 창작자취를 따라 나섰다. 강원도 원주시의 “박경리문학공원”이며,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의 드라마 “토지”의 촬영지며, 박경리선생님이 기거해 계시는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이며를 찾아 보았다. 그리고 그때 혼자만의 문학기행에서 맺은 인연이 끈끈히 이어져 지역과 국경을 넘는 문학행사로 이어졌다. “토지”를 읽고싶다는 나의 간청에 의해 박경리문학공원과 원주문인협회와 토지사랑회로 구성된 “원주-연변, 소설 토지문화교류단”이 2010년 연변으로 날아왔고 “토지기증식”을 갖고 연변의 문학단체며 학교, 독서사들에 무려 28질에 달하는 “토지”를 증정했다. 그리고 연변에서는 은연중 대하소설 읽는 열조가 일었다.
대하소설을 읽는 묘미는 말그대로 거대한 강물의 흐름을 읽는것과도 같다. 뒤척이며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력사와 세월의 행간을 흘러가는 수많은 사건의 명멸, 인물들의 부침, 그 유장한 진행을 시간을 들여 읽는데 그 벅찬 묘미가 있는것이다. 그 읽는 시간동안 독자들은 단숨에 읽을수 있는 호흡이 짧은 편폭의 작품으로서는 흉내낼수 없는 깊고 그윽한 맛의 읽기에 심취하게 된다. 그 읽지 않고서는 알수 없는 아편의 원액과도 같은 묘미가 요즘처럼 절주빠른 세월에도 하필이면 대하소설을 읽는 리유일것이다.
하지만 대하소설을 읽는다는건 또한 큰 산맥을 종주하는것처럼 어려운 일이기도하다. 평소의 독서관습보다 좀 더 빠른 속도를 붙여도 몇달씩 걸리고 소설의 력사배경을 헤아리려면 그에 따른 어중간한 지식을 갖추어야한다. 무엇보다 중간쯤 이르면 앞부분의 등장인물을 깜박 잊어버릴만큼 이야기 전개도 길고 구성도 복잡하다. 발이 부르트도록 길을 재촉해 이 굽이에 이르면 지나온 저 굽이가 어디던가 가물가물 잊혀지는 형국이다.
그래도 읽는다. 읽어야 한다.
한페지 한페지 번져가며 끝없이 이어지는 스토리를 익히고 엄청난 수의 등장인물들을 헤아리노라면 높아만 보여 지레 겁먹었던 큰 산맥 사이로 작은 내물이 흐르고 작은 들꽃이 피여 있고 숲사이로 노루며 강아지, 토끼들이 뛰노는것같은 섬세함도 느낄수 있다. 그렇게 큰 터밭을 구석구석 알뜰히 가꾸려 한 문체의 독창성도 발견하게 된다. 언어의 즐거움, 표현의 즐거움, 이야기의 즐거움이 고통과 함께 하는것이다.
끊어질듯 하다가 이어지는 수많은 삶들의 실경을 때론 장쾌하게 때론 애타게, 때론 깊은 슬픔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생명서사의 대하작품에서 우리는 세파의 긴 강을 헤여나가고있는 소설속의 인물들의 개인과 사회에 대한 행동이나 태도, 그의 대인관, 세계관을 읽게 되며 사랑. 행복. 불행. 질투. 기쁨. 슬픔. 분노. 증오를 읽게 되며 또한 부조리. 불평등. 억압. 빈부. 소외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맞서 자유, 정의, 평등. 평화. 인권. 행복같은 가치관을 저자가 구현하고있음을 드디여는 읽어내게 된다.
이처럼 잘 씌여진 대하작품 한권은 오감뿐만 아니라 평생을 좌우한다. 어쩌면 대하소설을 읽는다는것은 나에게 있어서 작중인물과 작가와 함께 하는 카타르시스의 한 형태라 말할수 있다. 이들의 힘겨운 작업의 결과물, 그 폭과 수준, 인류의 공동의 보편성이 녹아있는 작품을 읽노라면 과연 작가적인 바른 삶이란, 높은 정신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또 이렇게 읽는데만도 힘에 부친 대하소설을 만들어내기까지 한 작가는 대체 어떤 인물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서 잠시 담론의 줄기를 바꾸보면, “손목터널증후군”이라는 병명도 괴상한 병이 있다. 오래동안 손목을 혹사하면 신경과 인대가 지나가는 손목속 통로가 터널처럼 좁아지며 결국 신경이 눌려 손이 저리게 된다. 그래서 설거지와 걸레질, 빨래를 되풀이하느라 손목이 잠시라도 쉴틈이 없는 주부들이 많이 앓는 병, 그리고 작가 조정래가 앓은 병이라 한다.
컴퓨터 시대에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길 집념"으로 고집스럽게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써온 작가 조정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6년 동안 쓰면서 10권본의 작품을 모두 손 글씨로 메웠다. 손목 통증이 심해지자 만년필조차 무겁게 느껴져 결국 가벼운 세라믹 펜으로 바꾸어가며 썼다고한다. 그렇게 써온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모두 700만부가 넘게 팔렸고 200쇄를 돌파했다. 대학가의 필독서 격이고”태백산맥”을 읽었느냐 못 읽었느냐가 문학에 대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 이른바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지표”처럼 통한다고 한다. 작가의 노력은 치렬했고 이는 독자들의 공감과 애대로 돌아온것이다.
자신과 싸우며 작품이 잘 안 써질수록 벽쪽으로 다가붙어 기어이 고비를 넘어서고야 만다는 어느 한 대하소설작가는 창작담에서 창작행위를 “폐관 수련"(무술을 배우는 사람이 어느 한 특정 지역에 머물러 모든 련락수단을 끊은 뒤 수련하는 행위를 말함)이라고 했다.
또 한분의 대하소설작가 박경리는 생전에 스피노자, 사마천, 도스도옙스끼, 정약용, 윤선도, 굴원, 두보의 고통을 말하며 “수동적 고통에서 능동적으로 자유를 거머잡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이들이라고 사례로 든적 있다. 글쓰기를 통해 개인과 사회에 걸친 령혼과 구원에의 길로 나간 성인들, 그들은 문학과 실제 삶 모두에서 닥쳐온 고난에 절망하지 않았다. 대신 평생을 바쳐서 믿을수 없을만큼의 집중력과 처절한 로동이라고 부를수밖에 없는 혹독한 집필작업을 통해서 엄청난 량의 작품을 생산해냈다. 그들의 인생 자체는 내면적 인고와 승화를 통해 삶이 고통에서 자유로 나아간 문학과 예술의 연역(演绎)과정이였다. 이들처럼 육신의 고통을 넘은 개인적 소망들을 바람직한 공동체를 향한 비전으로 승화시킬수 있다면 그 고통은 정녕 값진것일것이다.
문학은 무엇이고, 작가는 어떤 제단에 바쳐야 되는것일가? 내가 써온 소설은 과연 어떤 위로를 나의 독자들에게 주었는가? 오래전부터 지긋이 나를 결박해오고 괴롭혔던 질문들을 대하소설을 읽으며, 그 소설을 만드는 작가들의 창작자세에서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그들에게 감복의 머리를 숙이며 돌이켜보니 그 사이 미션을 완수하지 못하고 내려놓은 대하소설도 적지않다. 근래에 채 읽지못하고만 작품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솔제니친의 “붉은 수레바퀴(红轮)”등이다. 그 백과사전을 뺨치는 방대한 정보량에 질려, 력사에 대한 천착과 갈파로 점철된 방대한 륜곽에 주눅들려 완독하려고 몇번이고 시도하다가 되내려놓고 말았다. 또 지난해 모순문학상 수상작가인 장위(张炜)의 대하소설 ”당신은 고원에서(你在高原)”는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 할인가로 사두었지만 세트채로 서재에 쌓아둔 채로 아직 첫장도 펼치지 못하고있다. 10권에 450만자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에 지레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린것이다”.
다시금 게으른 심성에 채찍질을 해보며 오늘도 대하소설을 찾아 든다.
이제 속세를 멀리한채 정갈하게 작품에만 매달리는 “폐관”적 수련이 나에게 수요되는 시점이다.
촌음을 아껴, 미션을 완수하듯이,
대하소설을 읽고저 한다.
대하소설을 쓰고저 한다.
“연변문학” 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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