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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종격투기 아줌마 댓글:  조회:1969  추천:6  2014-04-17
. 칼럼 .   이종격투기 아줌마   김 혁     1 요즘들어 갑절 인기가 높아진 스포츠경기가 있다. 이종격투기이다. 이종격투기(异种格斗技), 문자 그대로 서로 다른 종류의 항목으로 모든 싸움기술을 사용하여 상대를 쓰러뜨리는 경기를 말한다. 종합격투기라는 별칭도 있다. 이종격투기는 주먹, 발, 무릎을 리용해 상대를 가격하기도하고 메치기, 조르기, 누르기와 관절꺾기 등 동작들이 주를 이룬다. 이종격투기의 기원은 고대 올림픽 종목이였던 “판크라티온”이라고한다. 이는 복싱과 레슬링을 합친 형태로 반칙만 범하지 않으면 한 쪽이 포기할때까지 경기가 계속된다. 근년래 인기의 상승가도를 달리고있는 이종격투기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것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 활동)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 몸과 몸을 부딪히며 링우에서 고투를 벌리는 선수들, 예측할수없는 최후의 결과, 균일한 규칙과 정정당당한 경쟁, 순수한 노력이 만드는 챔피언. 이것이 바로 이종격투기의 매력이다.     2 남자들의 전용물로 알았던 이종격투기장에 녀인이, 그것도 조선족 아줌마가 도전장을 내밀어 화제다. 일전 지금의 거주지 미국에서 고향 연길을 방문, 그야말로 “금의환향”한 심영희씨가 다시금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고있다. 지금은 녀자이종격투기가 남성들과 더불어 정규적인 경기도 펼치고 있지만 십여년전에, 그것도 전업훈련이 전무한 조선족 아줌마가 이종격투기장에 도전장을 내민것은 어찌보면 “달걀로 바위치기”의 무모한 도전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주먹으로 바위를 내질렀고 그 편견의 바위를 부서뜨렸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지기전인 1989년, 심영희씨는 남보다 비교적 일찍 출국의 쪽대문을 조심스레 열고 한국으로 나갔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식당의 음식배달, 공사장의 타일붙이기등 어지럽고 힘든 일들을 가릴 새없이 닥치는 대로 했다. 어느 한번 한 체육관에 음식배달을 하게 되였는데 그 체육관이 바로 이각수 세계격투기련맹 사무총장이 경영하는 곳이였고 그날 격투기에 대해 처음 알게된 그녀는 호기심이 부쩍 동해 관장에게 격투기를 배우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어릴때부터 륙상, 배구, 체조에서 기량을 보이며 뛰여난 운동신경을 가졌던터라 선택한 도전이였다. 밤을 패고 끼니도 거르며 련습기를 보낸뒤 조건이 구비됐음을 느낀 심씨는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이종격투기 인생을 시작했다. 근 10년이라는 노력끝에 기회가 왔다.  2007년 3월22일 메히꼬에서 열린 “월드챔피언 십이종격투기대회”, 무려 7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세계녀자이종격투기 챔피언인 메히꼬선수 이사벨 마르티네즈를 제압했다. 2008년 마르테네즈의 재도전에서 심씨는 또 한번 상대를 제압해 세계 챔피언의 자리를 굳혔다.  당년 44세의 연변아줌마가 22세의 새파란 세계정상급선수를 링우에서 무찌른것이다.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20살짜리 딸 같은 선수와의 대결. 결코 쉽지 않은 경기였다.  경기후 우승벨트를 차면서 심씨는 링우에서 상처투성이 얼굴을 한 채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2003년 프로무대에 입문한 심씨는 불혹의 나이를 넘겼지만 젊은 선수들을 련이어 제치고 지금까지 48차의 경기에서 무려 45차나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심씨는 현재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도장을 차려100여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미 미국 시민권을 따낸 심씨는 미국 경찰들에게 합기도를 전수하게 되였고 따라서 캘리포니아주로부터 경호자격을 취득했다. 심씨는 미국 부시 전대통령으로부터 4차례의 감사장을 받아 안기도 했고 박근혜 한국대통령이 2007년도 미국을 방문했을때의 측근경호원으로 선발되였으며 또 한국의 피겨녀왕 김연하의 밀착경호를 맡기도했다. 심씨는 격투기를 시작한 리유로 “녀성들도 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경기에서, 일상에서 심씨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4가지 덕목은 “백절불굴, 례의, 정직, 극기”라고한다. 심씨는 “무술은 남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것이라고 그의 스포츠와 생활신조를 말한다.   3 “아줌마 파워”가 실감되는 요즘 세상이다. 이 수십년래 한국이나 로씨야, 일본, 미국으로 진출한 조선족은 수십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그들이 벌어들인 외화만도 수억원, 연변의 경우 길림성 외화수입에서 조선족이 단연 첫자리를 차지한다. 그중 선두주자와 절대주역은 녀성이라는 집계도 이미 나왔다. 조선족 아줌마들은 일찍 1980년대 중기,  개혁개방으로 국문이 열리기시작하자 해외의 경제구조에 대해 일찍이 눈을 돌렸으며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선점해 친척방문이나 로무송출로 남들보다 재빠른 가족의 부를 이루어 왔다. 오로지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있는 우리 아줌마들이다. 입시공부때면 아이의 공부환경을 위해 맹모삼천(孟母三迁)은 기본이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는 리산의 아픔도 눈물과함께 삼키며 해외로 나가 몰리해와 천대속에서도 머리를 수굿하고 3D업종에서 한몸을 혹사하는 아줌마들이다. 어깨가 결리고 손목이 붓고 다리가 아프도록 가족을 위해 치렬하게 사는 우리의 아줌마들. 그들의 헌신덕에 우리 가정과 사회가 바른 궤도로, 더 높은 종착지로 이나마 굴러가는것이 아닐가! 해외에서 이종격투기라는 이색적이며 가혹한 무대에서 정상에 까지 오른 연변 아줌마 심영희씨의 경우가 그 범례(范列)라 말하고싶다.   2014년 4월 15일   “청우재/听雨斋”에서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2    17억의 노예 댓글:  조회:1869  추천:16  2014-04-09
. 칼럼 .   17억의 노예   김혁       지난 3월에 열린 제86회 오스카 영화상 시상식에서 미국 력사의 어두운 부분을 들추고 인간에게 인권과 자유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 영화 “노예 12년”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영화 "노예12년"의 포스터   1981년 미국 뉴욕에서 랍치돼 12년을 노예로 산 흑인 음악가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오스카상 최초 흑인 감독 작품의 최우수 작품상 수상이라는 력사를 만들어낸 “노예 12년”은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를 립증하며 흥행에 박차를 가하고있으며 일전 DVD로 출시되여 연길의 음향시장 매장에도 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속에서 실사(實寫)된 노예가 아니라 현대판 노예에 대해 이야기하고저 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상대방과 대화를 할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는 그야말로 몸에서 뗄수 없는 그 자체다. 게임과 채팅,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실시간 소통, 주식 투자 등 온갖 일이 가능해지면서 요즘은 그야말로 스마트폰 세상이다. 뻐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음식점에서도, 병원대기실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저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스마트폰을 주무르고 있는 장면은 요즘들어 가장 흔히 볼수 있는 풍경,  매우 익숙한 세태가 되여버렸다. 다들 잠자는 시간을 빼고 깨여있는 시간이면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젊은 세대는 밥 먹을 때와 걸을 때,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들고 다닌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지어 사업시간에도 회의, 회식과 데이트 중에도 각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일쑤다. 따라서 스마트폰 중독의 위험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대화가 줄고 기억력이 감퇴하는것은 물론 손에서 멀어지면 생기는 불안한 증상, 같은 자세로 장시간 사용함으로 인한 척추이상과 손목터널증후군, 안구건조증,  거북목 증후군, 일자목 증후군 등 여러 가지 질환이 급증하고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스마트중독이 심각하다. 식탁에서조차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이불속에서도 스마트폰을 리용해 수다로 밤을 새운다. 이러니 시력과 집중력 저하, 수면 부족에 과도한 통신료금에 그로인한 부모와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노예제도”라는 비륜리적인 문화의 예속에 몸부림쳐 왔다. 고대 문명은 쇠사슬을 채운 인간의 근력에 의존해 이룩되여 왔다. 장구한 시간동안 인간사회에서 만연했던 야만적인 제도가 페지된지도 이제 겨우 100여년의 시간이다.    문명의 발단은 량날의 칼처럼 그 우렬을 간직하고있다. 각종 기술의 발달로 삶의 질이 윤택해졌지만 이런 기술이 모르는 사이에 폐헤가 되고 악용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일으킨 전화가 그 생생한 일례이다. 이를 두고 “사람이 스마트폰을 리용하는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사람을 지배하는 노예로 돼버렸다”는 준절한 지적이 나온지 오래다. 올해까지 전세계 스마트폰 사용자가 17억명, 2017년에는 100명 중 88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전망이라니 우리모두 그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것이다. 여기서 제도나 권유로만 될 일은 아니고 본인의 의지와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 절제의 미덕으로 스마트폰에 매인 손을 풀고 스스로에게 질곡을 부여하는 부여하는 그 쇠사슬을 끊어야 할것이다. 문명의 리기를 스스로 창조해 온 인간이 그 리기(利器)에 스스로 매인다는것은 우몽 (愚蒙) 그 자체이기때문이다. 2014년 4월 9일 “청우재”에서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1    남자의 목젖 댓글:  조회:1356  추천:8  2014-03-10
    . 칼럼 . 남자의 목젖 김혁                                                                      오랜만에 동창회를 갔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녀동창생들은 (어느덧 눈 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줌마 티 나는 녀동창생들은) 십여 명 잘되는데 남자는 나까지 해서 고작 두 명뿐 이였다. 식사를 마친 뒤 의례 노래방에 갔는데 술에 약한 그 남 동창생 님께서 쓰러지는 바람에 남자란 나 하나만 남은 볼썽사나운 꼴이 되어버렸다. 녀성중대를 거느린 당대표의 심정이 되여 흥취 거나한 녀성분들을 맞추어 주었다. 그들에게 끌려 일당백으로 일일이 대창을 하고 나니  나중엔 목소리가 쉬여 나가주질 않았다. (잔 등과 이마 전은 땀으로 질펀했고) 솔직히 즐거워야 할 동창회가 힘들어 죽을 뻔한 기억으로 남았다.    오랜 기자생활에 버릇이 되였던지 나는 가끔 시장거리의 음식가게에 끼여들어 아무나 (초 두부요 순대요 옥수수 죽이요 하는 음식들을) 잘 먹어준다. 그러면서 볼라니 음식을 만들어 파는 아낙네들의 배후엔 나그네들이 있었다. (한결같이) 그 나그네들이 한결같이 하는 일이란 쌀도 사오고 간장도 사오고 기름도 사오는 일, 헌헌대장부들이 아낙네들의 뒤치닥거리를 도와 허드레 일을 도맡아 하고있는 것이다. 그러다 손님이 뜸한 주말 같은 때면 그 나그네들끼리 모여 술잔도 기울인다. 어느 한번 귀 도적질하여 들은 나그네들의 말이 례사롭지 않았다. 녀편네 쪽을 흘깃거리다 감개하여 내뱉는 나그네들의 말을 요약해 보면  “요즘 같은 세월에 남자구실 하기가 정말 힘들어 죽겠구만이라!”였다.       몇 해전인가 한국의 어느 댄스그룹이 이곳에 와서 음악회를 연적이 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장마비가 내렸다. 음악회 신문발표회에서 어느 지도자 님의 기인 연설을 듣느라 우리 기자 수십 명은 그만 시간을 늦추게 되었다. 헐레벌레 체육관으로 달려가 보니 음악회가 당장 시작될 기미였지만 체육장 출입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팬들의 소란이 무서워 큰 대문은 열지 못한 채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작은 문만 열고 있었다. 주최측의 전갈을 받고 대문을 지켜나선 경찰들이 기자들을 우선 들여 보내주었다.   그런데 팬들까지 우르르 합세하는 바람에 장내는 그만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음악회는 시작되여 음악소리가 쿵쾅거리는데 아직도 대문 밖에 내쳐진 기자들을 보고 어느 경찰 분이 방법을(사뭇 엉뚱한 아이디어를) 댔다.   “녀 기자들은 우선 문으로 들여보내고 남자 기자들은 대문을 뛰여 넘으시오!”   체육장의 대문은 엄청 높았다. 하지만 취재임무를 위해 우리는(남자기자 분들만은)울며 겨자 먹기로 철창에 매달렸다. 정수리를 쫓는 비속에 미끈거리는 쇠창살을 한사코 부여잡고 (어떤 령장류 동물처럼)아득바득 넘는데 누군가 탄식을 뿜는 소리가 비속에 들렸다.   “허이고! 하필이면 남자가 돼갔고”...     요즘 세월에 남성으로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남성은 과연 강한 존재인가?    인류의 진화에 대해 천명한 다윈 이후 눈부시게 발전한 생물학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남자의 모습이 실은 허상이었음을 밝혀주었다. 혼자서는 자손을 만들 수 없는 생식계의 부수적인 존재, 암컷과 유전자를 이어 쉽게 멸종되지 않는 종으로 거듭나게 해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퇴화의 위기에 처한 제2의 성. 그것이 남자의 진면목이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연구결론에 의하면 남자는 뭐 “자연의 유일한 실수"라나?!" (맙시사!)      이제 남자는 심지어 새끼가 태어날 때 필요조차 없게 될지도 모른다. 몇 해전 정자 없이  란자의 복제만으로 태어나는 데 성공한 복제 양 “돌리”는 우리 남성들에게 과학성취의 경이로움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대신 어떤 자격지심을 유발하는 소식이였을지도 모른다. (과학환상소설을 읽기 좋아  해 라는 잡지를 내내 주문해 보고있는 나에게서도 돌리의 존재는 별루다. 더욱이 얼마 전 그 “돌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느끼게 된 어떤 야릇한(?) 자아위안의 감정.)    유명한 동물학자들은 원체“녀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진화했다"라고 설명한다. 그 지론을 구구히 펴보면-   뇌 단층의 연구로 보면 녀자는  남성보다 (선천적으로) 말을 잘한다.   후각, 청각, 촉각 등 오감 역시 녀자는 남자보다 민감하다.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녀자는 남자보다 커서 오래 생존하고 넉넉한 지방 덕에 (녀자 25% 남자 12.5%) 배고픔에도 잘 견딘다.   또한 대표적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면역력을 억제해 남자는 녀자에 비해 가난과 질병, 독신생활, 위험에 견뎌내는 능력이 훨씬 떨어진다     태어난 후에도 남자는 녀자와 달리 색맹과 같은 X염색체의 결함으로 인한 고통을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교통사고로 죽을 통계적 확률도 남자가 녀자에 비해 훨씬 높다나?      요약하자면 남성의 육체는 녀성에 비해 구조적으로 불완전한 유전자 조합을 가진 취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녀자가 남자보다 우세라는(어느 모로 보나) 이야기다.    이렇게 인간의 성별에 대한 의식이 점차 성숙돼 가고 있긴 하지만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인 시행착오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선 실존의 차원에서 본다면 남성에게서 그 특징은 의지력, 대담성, 목표지향성, 독립성, 등으로 요약돼 왔다. 녀성의 특징은 그 반대쪽에 선다. 허약함, 겸손함, 관용, 순종성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량극적인 성 모델은 일종의 사회적 강령처럼 우리는 내내 받아들여 왔다.    사내아이는 사춘기를 전후해 남자라는 혹독한 부여를 (억다지로) 받는다. 그를 통해 그때까지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고독과 고립무원의 감정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우리는 갓난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니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아이가 속한 성에 모든 것을 맞춰나가려 한다. 아직 성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남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윽박지른다. 특히 남아선호사상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민족일수록 더욱 그렇다. 유달리 강한 우리 사회의 가부장성이 남성들에게 강력한 자기 최면과 집단적이고 권위적인 사고방식을 답습시킨 데서 온 병폐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남자는 끊임없이 사회적인 요인들에 좌우지 될 수밖에 없는 압력을 갖고 있으며 그렇지 못하면  도태돼야 하는 불행한 숙명을 안고 있다. 결과 남성은 스스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제조되여 눈물을 감추고 진솔한 감정을 억제하도록 길들여진 “씩씩한” 인공물로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20세기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녀성의 사회무대로의 등장이였다. 금세기 들어 녀성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고 그 자각의 결과들이 사회에 꽃펴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흐름을 조소하고 저항하던 남성들도 이젠 이를 대세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강하고 지배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는 남자에 대한 통념이  뒤집혀 지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페미니즘(女性主義)의 한 조류로서 남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제 페미니즘은 녀성만의 화두가 아니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모든 남성의 화두이기도 하다.    남성의 기존 권위는 (소리내며) 무너지고 있다. 약한 남성이 기댈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정에서 발언권이 줄어들고 가무 일이며 육아에 참여할 것을 요구받는 대신, 사회에선 여전히 강한 남성일 것을 요구받는다. 이로서 남성들의 위기는 자신에 대한 위기, 사회의 위기로 직결된다. 즉 남성들이 위기에 처했다면 이 사회 또한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총체적 위기를 제대로 바라보고 극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남성의 주체적 자각과 남성성에 대한 올바른 리해가 필요하다. 때문에 지금의 남성사는 백지상태에서 다시 씌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녀자의 손에서?)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폭력적인 남성 문화 속에서 녀성들이 살아나기가 어렵지만 물론 남성 또한 살아나가기가 (심히) 어렵다. 지나친 성별 고정 관념에 의하여 받침 되고있는 현재와 같은 사회구조 내에서 지나친 경쟁, 권위주의에 매달려 끊임없이 더 높은 효률과 생산을 위해 무작정 뛰기만 하는 과정에서 남자는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남성도 남성 지배문화의 피해자로 전락되는 것이다.   이 글을 짓는 순간도 우리 남성들은 쓴 소주잔을 기울이며 쓰린 가슴을 달랜다. 직장에서는 넘쳐나는 업무와 경쟁력으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가정에서는 갈수록 사나워지는 녀편네와 철없는 자식들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다. 밀려난 삶의 변경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찾고자 미로를 헤매인다. (불쌍할 손 남자들이여!)    남자의 성대는 18mm로서 녀자(13mm)보다 길다고 한다. 녀자의 후두도 남자의 7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남자는 큰 목젖을 흔들며 거센 시원(始原)의 음성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어떻게 남자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남자다운 호기에 젖은 쩌렁쩌렁한 소리를 다시 낼 수 있을가?   동창회 그날 노래방에서 쉰 소리를 짜 내여 (짐짓 뜻 있는 가사를 골라) 불렀던 노래가 있다. 그 노래 말을 다시 적어 본다.    남자는 너무 피곤해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이 피곤해    남자는 도움도 받을 수 없고 혼자 버티기도 힘들어    남자도 울고 싶지만 늘 화장실에 숨어 울어야만 하지    남자는 너무 힘들어    사랑하는 것도 힘들어    건강해야 하고    용감해야 하고    유머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취미도 있어야 하고    랑만도 있어야 하지.    나는 아무 것도 없는데    저기 저 아름다운 아가씨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데...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0    미아(迷兒), 펜으로 정체성을 묻다 댓글:  조회:2321  추천:11  2013-08-07
. 칼 럼 . 미아(迷兒), 펜으로 정체성을 묻다   김 혁        어떤 게으름뱅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할가한다.    그는 게으르다 보니 직업도 가정도 없고 사는게 말이 아니였다. 자신의 뒤탈린 운명을 두고 궁여지책 점집을 찾아갔는데 점쟁이는 그의 전생이 나폴레옹이였다는 놀라운 점괘를 내렸다. 이에 흥분한 게으름뱅이는 “전생의 나폴레옹이 이렇게 살면 안 되겠지”하는 늬우침과 생각과 결심을 뼈물러 먹고 무사안일(無事安逸)의 생활태도를 바꾸기시작했다. 결과 괜찮은 회사에 특채되였고 승승장구로 과장자리에까지 오르게되였다.    그는 점쟁이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바뀐것이 무척이나 고마워서 인사라도 드릴 요량으로 다시 그 점집에 찾아갔다.   그러나 점쟁이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고 다시 점을 본뒤 “당신의 전생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였다, 전번의 점괘는 실수로 잘못 내려진것”이라고 새로운 점괘를 내렸다. 이에 그는 커다란 실의에 빠졌고 다시 옛날의 게으름뱅이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 우담(寓談)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변할수 있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나 역시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깊이 빠진적이 있었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처지를 알게된것은 사춘기때였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알게된 숙명적인 운명에 대한 락인으로부터 나 자신은 어데서 왔으며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하는 질문과 방황은 그후의 나의 생활에 깊이 관여되였고 작품에도 깊이 반영되여 왔다.   어쩌면 창작초반의 거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이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고 해결점을 찾지못한채 죽어가는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90년대 중기에 출간된 나의 첫 소설집에서 근 10편되는 중편소설중 주인공은 모두가 근원적인 아픔을 지니고 맞닥뜨린 운명속에서 해결책을 찾지못하고 죽어나가는 인물들이였다. 이에 평단은 “문단에서는 결여되였으나 세계문단에서 이미 오래전에 주류를 이루었던 비극미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우리 문단에서 보기드문 ‘한풀이’ 문학의 한 쟝르를 제시해주고있다”고 나름 “어루 만지기”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자신의 불운한 운명과 굽이굽이에서 닥쳐온 절망적인 처지를 회피하지도 숨기지도 않았고 그동안 작품의 소재로 무척이나 많이 활용해 온것 같다. 그만큼 나의 실의와 방황의 크기가 컸고 깊었던것이였기 때문이였다. 그 와중에 한 랭철한 비평가의 한편의 평문이 나의 정곡을 모나게 찔렀다.  “천부적인 재능과 수려한 문체로 개인의 유리파편우를 걷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아픔이라는 숙명의 칼날우를 걷는 것이 모든 문단의 바램”이라는 명징한 비판이였다.   진정 작품에서의 나의 추구와 나의 아픔의 양상이 변모되기 시작한것은 96년경 중국전역에서 벌어진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의 조선족 한국초청사기건을 논픽션으로 다루면서였다. 3만여명이 무려 3억이라는 거금을 사기당하고 자살자, 병사자가 속출하고 회사가 부도당하고 마을이 폐교되는 그 아비규환의 수라장속에 수백명의 피해자들을 취재하고 키높이 되는 고소서, 진정서들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육신밖의 아픔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아픔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사기를 치고 한국 사기군이 도망가버린 뒤 전 재산을 날리고 텅 비여버린 건물앞에서 괴물앞에 내동댕이 쳐진 먹이의 처지처럼 선지피와 같은 절규를 뿜는 사람들의 무리속에 섞여, 또 한국 종로거리에서 원상복구를 촉구하며 13일간의 단식을 벌리다 들것에 들려온 피해자대표들이 위경통으로 쓰러지는 장면을 목전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역시 울대뼈를 밀며 올라오는 덩어리 진 비명과 위장이 탈리는듯한 아픔을 온 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드디여 나는 그들의 아픔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바로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이다. 요즘같은 피페한 출판풍토에 5천여부의 발매량을 기록하고 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흑룡강신문” 한얼문학상 대상, 그리고 연변인민출판사 청년문학지의 상을 거듭수상한 그 작품으로부터 갓길에 섰던 나의 필봉은 새로운 좌표를 찾기 시작했다.   그후로 나는 모든 쟝르를 동원해 중국조선족이라는 이 공동체의 아픔과 그 행보에 대해 기록하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국조선족 문제 테마소설”이라는 부제하에 변혁기 중국조선족의 고뇌를 다룬 작품들과 천입민족으로서의 그 력사의 행정을 다룬 작품들을 10여편 펴냈다. 첫 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자서전적 색채가 짙지만 역시 중국소수민족의 일환으로서 전대미문의 문화대혁명이라는 홍역을 치루는 과정에서의 농도와 줄기가 다른 민족집단의 아픔을 다루었고 두번째 장편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에서는 도시로 외국으로의 진출 과정에서 조선족 녀성들이 겪게 되는 아픔을 다루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 그 원인에 대해 짚어보고자 했다.   요즘들어 나는 또 우리민족의 우수한 인걸들을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바치고 있다. 연변이 낳은 걸출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문단 처음으로 소설화하여 장편으로 련재를 마쳤고 중국조선족자치주의 전반 기반을 닦은 조선족의 “대부” 주덕해 초대주장에 대한 전기물의 집필을 마치고 출판을 앞두고 있다. 한편 조선족이 낳은 저명한 화가이며 반파쑈투사인 홍색화가 한락연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을 집필, 련재중에 있다. 이한 작업 역시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그 인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어제날과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 보면서 그 와중에 오늘의 변화하는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갖추기 위한 작가로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문체적 창신의 발상에서였다. 민족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인물들을 새롭게 투영하여 만방에 그 위상을 표방하는 이러한 작업이 분명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氣)를 불어넣는 좋은 작업으로 될것이라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정체성, 그것은 비단 개인만이 아니라 민족 전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결과 변혁기의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가치관은 완숙하게 정립되여 있지 않고, 방황과 좌절과 곤혹을 거듭하고있는것이다. 근년래 지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대성질호하고 나름 그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 지고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며 그한 노력은 계속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을 잘못 리해하면 민족의 결집과 발전에 방해가 됨은 자명한 일이다. 긍정적이면서도 이 민족의 우수한(面面)을 많이 발굴하여요즘의 이지러지고 흔들리고있는 정체성을 대신해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미래적인 지향을 가지도록 하는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사실 억지로 만들자는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것을 찾아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변혁기를 거치면서 위기론이 거론되고있는 오늘날, 위축되기 이전의 건강한 우리의 정체성은 분명히 있다.   이주하여 동이땀을 흘리면서 이 바람 거치른 척박한 불모의 땅을 일국(一國) 황제의 수라상에도 그 결실이 오를수있는 정도의 곡창으로 가꾸었고 가장 처절하게 반일항쟁의 선두에 서서 붉고 흥건한 피를 산산야야에 휘뿌렸고 독보적인 교육과 예술의 무르익은 향연을 휘모리로 펼쳐 세간의 주목속에 중화인민공화국 56개 민족중의 떳떳한 일원으로, 그 선두주자로 부상한 우리 자랑스럽고 위대한 중국조선족이 아닌가!!!   그것을 더듬어내고 고수하는것이야말로 목전의 진통을 엎누르고 다시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꼭 선결되여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엑스트라(配角)가 아닌 주인공이 되여 만들어 온 이 위대한 신화, 우리가 경유해 온 이 불멸의 력사는 지금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양상이요, 훌륭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 부딪힐때 그 정체성을 파악을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때문에 요즘같이 우리의 공동체에 대한 위기론이 거론될때 그한 호성은 더 높은것이다. 나의 뿌리가 닭이였는지 아니면 독수리였는지, 나폴레옹이였던지 염황(炎黃)이였던지 아니면 단군이였던지를 알아야 선각의 현자이든 위계높은 장군이든 파워있는 리더이든 나올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야만 현실에 안주해 보금자리를 지키든 울타리를 박차고 하늘높이 날아예든 할것이 아니겠는가?   요즘처럼 조화로움과 생성이 세계적인 화두로 되고있는 시점에서 자기를 잘 알아야 타인을 수용할수가 있고 자기 주체성이 있고 그우에 다른것을 리해하고 받아들일때에야만 발전이 이룩되고 그 발전이 빠를수 있는것이다.   민족의 생성과 현재와 미래를 우리의 학자들 그리고 작가들은 경험적, 문헌적, 지식적, 예술적으로 적극 구현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때에만 우리의 현재의 처경과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래일의 좌표를 구사하며 물결 세찬 강을 건너 온 우리의 “월강족속”들이 다시금 건너야 하는 숙명의 강에서 해일과 같은 시련속에서도 건전하게 항해할수 있을것이다. 민족공동체 전반에 위기론이 거론되는 요즘의 절체절명의 시점, “발등의 불”, “락미지액”의 시점에서도 안타깝게도 자기 중심주의의 독선이나 일말이라도 생산적이지 못한 당파의 파쟁(派爭)에 빠져있는 일부 작가들의 근시안적인 사고가 유감스럽고 가소롭기만하다.   진정 위기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모색으로 자신이 스스로 얽동인 협애한 사유의 덫과 스스로 빠져든 “니전투구”의 감탕에서 벗어나 우리의 작가들이 “칼보다 강한 펜”으로 민족에 대해 고뇌하고 대안을 찾으면서 그에 대한 문학적인 성과물로 민족문학의 획을 그을수 있는 자세를 보여야할때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조선족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민족문학을 지향하는 문학인이라면 조속히 실천해야 할 그리고 조건없이 마땅히 리행해 나가야할 숙명의 과제가 아닐까!    갓길에 선 미아, 그리고 미아들, 이제 작은 감성의 펜에 흥건한 사상의 잉크를 재워들고 우리의 어제를 기록하고 나아 갈 탄탄대로를 찾는 작업에 그루를 박아 볼 볼 일이다.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9    베르테르 효과 댓글:  조회:2769  추천:10  2012-12-07
    . 칼럼 .   베르테르 효과   김 혁       1    . 독일의 문호 괴테의 서간체 소설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베르테르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엄격한 위계질서속에 신분제 사회와 융화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젊은 지식인의 전형을 형상화했다.     아름다운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숱한 을 불러왔다. 베르테르식 열병을 야기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끼쳐 책은 1775년 판금당하기도 했다.   란 자살이 류행처럼 퍼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2    연길경내에서 사흘새에 련속 두명이 기차길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주목을 모으고 있다.     7월 3일 저녁 10시 27분경, 연길역에서 도문방향으로 운행하는 화물렬차가 연길목재공사부근에 이르렀을때 30대의 한 녀자가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이 사고로 렬차운행이 12분간 지연되였다.       이틀전인 7월 1일에도 한 남자가 기차가달려오는 레루에 뛰여들었다.   불과 보름전에도 연길시 모 목욕오락쎈터에서 한 녀인이 9층에서 뛰여내려 자결하려 한 소동이 빚어졌다. 사건제보를 접한 경찰과 소방지대특수근무중대에서 출동하여 한시간 반좌우의 구조사업을 벌려서야 마침내 자살활극을 제지, 이 녀성을 구조할수 있었다.       3    스스로 목숨을 끓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세상 살아갈 리유도 재미도 없고 힘들고 지쳐서, 하려고 하는 일들이 뜻대로 안돼서 등의 여러가지 리유로 목숨을 끓는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방지협회(IASP)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자살은 교통사고와 각종 재난, 질병에 이어 13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인에 속한다.     중국에서도 상황은 심각하다. 중국심리위기 연구 및 예방센터에 의하면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매년 25만명이 자살하고 있다. 특히 15-34세 년령층에서는 압도적인 사인이 되고 있다. 또 매년 200만명이 자살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폐암과 교통사고가 사망원인 제 1위, 자살로 인한 사망이 사망원인은 제 5위에 이른다.     자살적 태도의 발생 리론은 크게 생물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리론으로 나뉜다. 심리학가들은 고 지적했다.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은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일 것이다.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당사자가 느끼는 절망감은 엄청났겠지만 자살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며 더구나 탈출구가 될 수 없다. 죽음의 의미는 당사자보다도 살아남아 있는 사람의 몫이므로 오히려 더 많은 고통과 짐을 친지들에게 떠넘기게 된다.     주변에서 잇따른 인명을 가볍게 여기는 자살소식은 우리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따라서 벼랑 끝에 내몰린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지원체계를 마련에 더욱 중시를 돌려야할것이다. 예방적 차원에서 가족간의 뉴대강화, 사회에서의 소통체계를 활용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려야 한다. 우리 모두 따뜻한 사회적 련대를 구축해 힘들어하는 이들을 부축해 나가야 를 두절할수 있는 것이다. Sunrise Sunset - Gary Schnitzer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8    어떤 기우(杞憂) 댓글:  조회:3285  추천:14  2012-11-18
. 칼럼 .  어떤 기우(杞憂) 김   혁     1      …어느때부터인가 빠지는 머리카락에 주의를 돌리게 되였다. 자고나면 베개잇에 흘려진 머리카락들을 무심히 주어던지다가 어느 한번은 한웅큼 정도 빠져나온 머리카락을 보고나자 섬찍한 생각이 갈마드는것이였다.       (이러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대머리아저씨》로 되여버릴가보다!)      황황한 마음을 안추르며 머리칼이 재생하는데 좋다는 방법들을 써보기 시작했다. 복숭아나무빗을 사서는 짬만 나면 극성스레 빗기도 했고 안해보고 미역국을 끓여달라 하여 몸 푼 아낙네들처럼 들이키기도 했다. 컴퓨터공부를 하면서 배운 포토 샵기술로 숱 많은 어느 배우의 머리칼에 내 얼굴을 합성해보기도 했다. 풍성한 모발의 나 같지 않은 나를 지켜보며 자아위안을 머금었다.   그런 나를 두고 안해가 못말려! 하고 웃었다.    《레닌동지처럼은 안될거니 근심 마세요. 가문에 대머리가 없잖아요. 번대머리는 십중팔구 유전에서 온다던데…》    하지만 거울앞에 마주 설 때면 은근히 신경이 쓰여지는 숱 적은 내 머리카락이다.                                                              2       머리카락이 한오리씩 빠질 때면 누구나 그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그 한오리 한오리가 이어져 나중에 번대머리의 악효과를 초래하는것이다. 이를 철학에서 《대머리 론증(論證)》이라고 한다.         같은 현상은 수목에서도 나타난다.       콜로라도 협곡의 어느 산등성이에 400년 경륜을 기록하는 거목이 있었다. 항해가 콜롬부스가 이곳에 상륙했을 때 벌써 이 나무는 서있었다. 오랜 세월속에 나무는 폭풍우와 눈사태의 세례를 받아왔고 14차나 벼락의 습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나무는 의연히 꿋꿋이 뻗쳐서서 흘러가는 세월을 지켜왔었다.      그러던 나무가 어느날인가 돌연히 넘어져버렸다. 무엇이 세기의 창상을 이겨낸 나무를 순식간에 넘어뜨렸을가? 생물학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연구해본 결과 그 원흉은 어이없게도 개미였다. 한무리의 개미들이 나무의 뿌리에 은둔해서 부지런히 수근목피를 갉아댄 결과 창창 거목으로 여겼던 나무가 어느 하루 간지러운 미풍에도 그만 우지끈 넘어가버린것이다.       이런 현상을 생물학에서 《개미효응(效應)》이라고 한다.                                                               3       생물학 실험의 사례를 한가지 더 들어보기로 하자.       미국 칸내얼대학의 연구일군들이 개구리를 두고 실험을 한적 있다. 먼저 실험용개구리를 끓는 물에 던져넣어보았다. 그러자 그 위기일발의 순간 개구리가 끓는 가마에서 풀쩍 뛰쳐나오는것이 아닌가!       다시 생사의 고비를 넘어온 개구리를 찬물에 집어넣고 그 용기(容器)에 천천히 열을 가했다. 개구리는 여유작작해 찬물에서 헤염치고있었다. 온도가 뜨거워졌으나 개구리는 전혀 느끼지 못한듯 했다. 마치 온수욕이나 하는듯 그냥 물에서 노닐고있었다. 결과 개구리는 점차 끓어오르는 물에 데여 죽고말았다.                                                                4       은연중 이러한 사례들을 닮은 현상들이 우리가 살고있는 주변 도처에서 보여져 걱정이다. 그닥 흥미없는 생물학 사례들을 구구히 늘여놓는것은 우리가 이러한 사례와 같은 결과를 맞이하지 않을가? 하는 괘념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락미지액(落眉之厄)도 모르는 그 어리버리한 개구리를 닮은 꼴이지 않나 하는 자괴(自愧)때문에서이다. 이는 결코 《모기를 보고 비행기야!》하는식의 흥감질이나 《하늘이 무너질가 두려워하는 기(杞)나라 사람》식의 부질없는 근심이 아니다.       요즘처럼 사회적현안들이 보물처럼 터진적은 별로 없었던것으로 기억된다. 인구의 대량이동으로 촌부락이 소실되고 녀성들의 도시진출과 섭외혼인으로 남녀비례가 실조되여 농촌총각들이 가정을 못이루고 그로서 인구가 마이너스장성을 기록하고 그에 이은 련쇄반응에 학교가 페교되고 조선족아이들이 한족학교로 가고…        과거 한세기동안 우리가 피와 땀을 바쳐 이루어왔던 공동체와 그속에 내재되여있는 가치관이 눈에 띄이게 흔들리고있다. 우리가 정성들여 심고 우리가 일껏 가꾸어왔던 생명의 나무가 열매를 달지 못한채 잎이 떨어져내리고 가지가 말라들어 넘어지려 하고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우리의 공동적 삶의 바탕이 위협당하고 송두리째 파괴될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대머리를 괘념하는것보다 더 크게 마음을 괴롭힌다. 우리가 한오리의 머리칼처럼, 한마리의 개미처럼 무심히 방임해온 일상의 징후가 루적되여 최종의 악효과를 초래할수 있는것이다.      우리 공동체의 기본 구조와 토대를 은근히 위협하고있는 다가온 위기와 그에 따른 대책을 언급해야할 때에 우리는 위기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기대처에 대한 무지를 실감하고있다. 늦게나마 위기의식에 대해 우리 사회에 권장하고싶다. 이제부터 우리 공동체의 위기를 마음속으로 음미해볼 시점에 와있는것이다.                                                                   5       위기란 말은 원래 돌연한 병상(病狀) 변화를 뜻하는, 의학용어에서 쓰이던 말이다. 그러한 어원에서 비롯되여 위기는 어떤 상태의 안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영향을 줄수 있는 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일러 말한다. 위기는 인간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인 면을 비롯하여 한 나라의 정치, 사회체제, 나아가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발생하는 각 상황의 변화에 력점을 부여해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있다.       실직, 파산, 질병, 사망, 리혼, 불경기나 전쟁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재난, 더 큰 의미로는 식량위기, 생태위기, 인구폭발위기, 물위기, 에너지위기, 핵위기 등이다.      이러한 급격한 정세변화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최근 세계 각지에서는 위기관리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게 되였다. 그것은 어떤 상태에서 위기를 느꼈을 경우, 위기를 효률적으로 관리하여 그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재빨리 평상상태나 그에 가까운 상태로 회복시키는것을 의미한다.       일본 《닛산》자동차회사가 세계자동차시장에서 굴지의 위치를 계속 확보할수 있은 비결이 바로 그 위기관리를 도입한 결과이다. 그들 특유의 경영관리모식을 보면 평소에 늘 모든 직원들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공유하게 한다. 회사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직원들의 사기가 둔감해져 수익성 있는 회사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를 놓치게 되기때문에 위기감을 체계적으로 유지하는것은 기업경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그들은 인정한다. 더욱 중요한것은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필연적으로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궁극적변화를 통해서 각자의 가정과 직장에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 사회 전체로 파급되는 효과를 발생한다고 믿는것이다.       권투훈련에도 이러한 방식은 적용된다. 《그림자복싱》이라는 훈련방식이 있다. 마치 권투왕 아리나 타이썬, 루이스와 같은 강대한 라이벌과 게임을 치르는것처럼 가상하고 하는 련습이다. 위기상황을 상상하면서 중추신경의 기전을 리용한 훈련방법, 평소의 훈련에 지나지 않지만 위기를 환기시키고 그로서 비롯되는 흥분을 불에 기름을 붓는 활력소로 간주한다. 이렇게 오래 하면 어느새인가 그런 위기상황이 머리에 그려지게 되여 실전에 림해도 온건한 효과를 거둘수 있게 된다고 한다.       위기를 역으로 리용할수 있는 이런 기능은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도록 준비를 했느냐, 위기극복책을 강구할 취지가 토의되였느냐에 달려있다.   6       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것이 아니고 천천히 조금씩 잉태되면서 우리 다수가 느끼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것이다.       평온한 일상을 꿈꾸다 사람들은 문득 저며오는 통증을 느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육체적통증을 넘어 도덕적통증이나 사회적통증을 느낄수 있다는점이다. 뿐만아니라 그 고통을 감지하고 적절하게 대응해나갈줄도 안다. 육체적통증을 제어할수 있는 신경면역체계처럼 사회적통증을 제어할수 있는 면역체계를 세우자면 그것이 바로 한 사회가 보유하고있는 위기에 대한 인식정도가 아닐가 생각한다. 위기에 대한 인식은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가려내기 위한 첫 진단인셈이다. 진단조차 할수 없다면 이 사회의 건강성은 제대로 유지될수 없다.        위기상황에 처하면 신속한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이건 동물의 개체보존의 본능적반응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 위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 조선족은 여태껏 량호한 자아감각을 가지고 지내왔기에 위기의식과 우환의식이 아주 결핍하다. 치명적인 내장의 아픔을 껴안고도 우리가 남들앞에 각인된 이미지란 술 잘 마시고 놀음 잘 노는 모습이다. 거리에 나서면 한집 건너씩 길을 향해 늘어서있는 다방, 술집, 노래방, 사우나, 족발안마… 뿌리가 썩어가고있는 상황을 의식 못한채 언제 봐도 마치 가무승평(歌舞升平)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앞에는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처능력이 박절히 제기되고있다. 한 민족에게 있어서 위기의식이 있는가 없는가는 그 민족의 리지(理智)도와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표징의 하나다. 현실속에서 우리가 겪고있는 위기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조선족으로서의 기본단위를 어떻게 운영할것인가에 관한 민족성원들의 공동적인식을 확립하지 못해서는 안되는것이다. 우리가 나타나고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제때에 인식 못하고 그에 대한 시책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문제점들을 도외시하고 제때에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조만간에 자기의 양상과 위치를 상실하고말것이며 락후한 민족으로 전락되고말것이다.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말이 있다. 전성에서 외화수입 앞자리, 인구당 택시가 제일 많은 도시, 춤과 노래의 고향… 등등의 번지르르한 수식에 환혹(幻惑)되여 흥타령만 불러서는 안된다. 따스한 물에 담겨져 기분 좋은 개구리처럼 탕개가 풀려서는 안되는것이다. 평소에 우리가 당착한 위기에 대해 면밀하게 재고하며 이에 대한 시대적 각성과 성찰을 해봐야 하는것이다.      인생에는 늘 위기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 위기는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기도 하고 보다 새로운 삶을 향한 리정표가 되여주기도 한다. 중국어로 《위기》는 두글자로 이루어져있다. 한글자는 위험을 나타내고 다른 한글자는 기회를 나타낸다. 또 브레덴 백과사전에서 위기는《좋아지고 나빠지게 되는 갈림길》이라 씌여있다. 즉 위기는 그 자체가 부정적요소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상황을 낳는 요소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위기해법은 우리 자신에 있다. 영광스러운 전통과 우수한 문화유산을 지니고있는 우리 민족에게 목전의 상황을 극복할수 있는 여건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자신을 랭정히 인식할 때 우리는 이 위기를 벗어날수 있으며 비로소 우리는 이 총체적난국을 풀어가는 주인으로 설수 있을것이다. 많은 우족지사(憂族之士)들이 나타나 위기의식을 품고 민족의 현황과 미래를 재검토하면서 문제점들을 착중하여 밝힌다면 우리 민족은 지금 허우적이고있는 진통의 수렁에서 빠져나올수 있는것이다.   《렬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서 나오는 하늘이 무너져내릴가 근심한 기나라 사람의 우화에 대해 모두가 알고있지만 그에 이은 속편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은것 같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음을 깨우쳐 알고 기나라 사람이 마음을 놓고 크게 기뻐했고이것을 깨우쳐준 사람도 또한 함께 기뻐했지만 그후 장려자(長廬子)라는 현명한 사람이 있어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지나 않을가 하고 근심한것은 근심을 지나치게 하는것이라고 말할수밖에 없지만 무너지지 않는다고 단언하는것도 옳바른 일은 아니다.》 다음 《렬자(列子)》의 말을 빌어서 《하늘이 무너지거나 무너지지 않거나, 그런것을 알고 그런것에 혼란하지 않는 마음의 경지가 중요한것이다.》라고 하였다.       나 개인의 머리칼 한오리의 미세한 변화를 걱정하듯이 민족의 일에 대한 괘념을 가지는것이야말로 민족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응분의 마음가짐인줄로 안다. 현실을 방임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더 높은, 더 힘찬 비전을 위해 위기에 대처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기른다면 우리의 삶이 더 윤택해지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가?       오늘도 내 숱 적은 머리칼이 바람에 스친다.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7    귀소본능 댓글:  조회:3847  추천:10  2012-11-01
  . 칼럼 .  귀소본능 김 혁      1   CCTV “동물세계”프로에서 “연어의 회귀”라는 특집방송을 보고 감개에 젖은적 있다.   연어는 한반도의 동해, 일본, 오호츠크 해, 북아메리카 서부에서 사는 회유어로서 머리는 원추형이며 주둥이는 뾰족하고 몸은 약간 가늘고 긴 편이다. 연어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태여난 하천으로 되돌아오는것이다.   연어는 민물에서 태여난뒤 바다로 나가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다시 자기가 태여났던 하천으로 다시 되돌아와 산란하고 사망한다. 연어들은 아주 예민한 후각을 리용하여 고향의 강 즉 모천(母川)의 냄새를 감지한다고한다.   흔히 여름이나 가을에 산란하는데 원양에서 몇달동안 수천수백리나 헤염쳐서 산란지인 강에 도착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며 높이가 3m나 되는 폭포도 몸부림치며 뛰여넘는다. 그와중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오로지 고향의 강으로 되돌아가는데 전력한다. 떼를 지어 이동중에 죽음의 위험도 감수한다. 곰이나 가마우지같은 동물들의 먹이로 되고 인간 낚시꾼들에게 잡히고 공장에서 배출한 오염 물질에 희생된다.   연어는 그 길고 고통스런 려행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산란과 죽음속에서 그 의미를 완성한다. 고향을 향한 연어들의 력동적인 몸부림, 그 처절하면서도 장엄한 순환은 방송을 보는 내내 커다란 충격과 전률을 주었다.   2 동물의 세계에서 생존 및 생식을 위한 본능 못지않게 중요한 본질적 행동요소가 있다. 집으로 향하는 본능 즉 귀소본능(归巢本能)이다.   바다의 넓이를 헤가르고 강물의 급물살을 거스르는 연어의 험난한 려정은 흡사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 인간에게도 그 회귀본능은 적용되며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 정감어린 귀소의 종착역이 바로 고향이다.   고향은 세월이 가도 변함없이 일상에 지친 우리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마음의 안식처다. 고향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사람의 생각을 이끄는 힘도 있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도 있다.   급변하는 시대, 경쟁이 소요되는 사회에서 현대인은 회귀본능의 연어처럼 근원적인 존재확인에 목말라하면서 본능적으로 각인된 고향의 내음을 찾아 귀향길에 오르고 있는것이다.   3   “연변, 떠났던 농민이 돌아온다”는 신문기사를 반갑게 접했다.   “땅을 버리고 떠났던 허다한 농민들이 다시 농촌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향후 정부의 경작지 우대 정책이 속출할것에 대비하면 땅은 이제 농민들에게 있어서 큰 자산이다. 과거 땅을 버리고 타향벌이에 나섰던 많은 조선족 농민들이 경제침체 여파로 륙속 귀국하면서 다시금 땅을 찾는 붐이 연변에서 한동안 일어날 전망이다.”고 기사는 전하고있다.   땅을 버리고 처자 리별하고 고향을 떠나 타지방과 외국의 로무수출에 생계를 걸었던 이들이 이제 타향이나 외국에 가서 하는 고생만큼 고향에서 열심을 보이면 땅은 한번 믿어볼만한 장사라는 계산때문에 이한 귀소의 현상이 일고있는것이였다. 한편 “돌아온 조선족 모친”이라는 보도에서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아이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들의 일례를 들고있다.   장춘시 조선족중학교 학생 1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부모가 귀국한 학생이 46.6%인것으로 나타났다.   오랜만에 고향땅을 밟은 어머니들은 "애들이 어딘가가 많이 달라졌다. 성적도 떨어지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됐다. 아이를 위해 돈을 벌러 갔지만 실상 아이가 가장 필요로 하는것은 엄마, 아빠의 사랑이라는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가 힘들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면서 "지금이라도 아들을 지켜줄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감수를 토했다.   현대인들에게서 생계를 위한 리소(离巢)적 압박은 아주 큰것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귀소야 말로 일상의 압박을 극복할수 있는 힘의 원천이 아닐가. 연어에게 자신이 태여난 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세대를 잉태하게 하는 모천은 인생살이 고리의 종착점이자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처럼 우리에게도 고향에 돌아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삶에 감사하고 재충전을 할 시간은 필요하다.    단지 욕망이 가리키는 양지만을 찾아 갈지(之)자 행보를 하던 행태에서 벗어난 고향에로의 회귀, 이러한 리향과 귀향의 아픔들이 우리 공동체사회가 직면한 진통의 현실에서 벗어나 한 단계 성숙을 위한 성장통이 되기를 바란다. 연변일보 종합신문" 2009.5.25.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노래: 강산에   
6    월병소고 (小考) 댓글:  조회:3270  추천:12  2012-10-07
 . 칼럼 .   월병소고 (小考)   김 혁    △ 해마다 추석을 앞둔 이쯤이면 시장은 월병판매공세로 시끌벅적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월병이 없는 추석은 상상할수 없다. 추석이 되면 친지나 이웃들은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월병을 선물로 주고받아왔고 이 풍습은 수천 년이 넘게 이어져 왔다. 중국에서는 추석을 전후해 무려 20만톤의 월병을 먹어치우며 월병 판매액이 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 그런데 시장경제 도입 이후 매년 초호화, 초고가 월병이 등장하곤 하는데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미풍량속이 뢰물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자 이에 국가질량총국과 국가표준위원회는 급기야 이라는 월병법을 만들어 너무 비싼 월병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이라는 긴급조치도 실시, 지난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방안에 따르면 월병 포장재는 월병 가격의 25%를 넘지 못하고 포장 부피도 내용물인 월병의 35%를 초과할 수 없다. 이대로라면 이제는 월병의 호화포장을 통한 뇌뢰물수수 관행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하북성의 석가장에 황금월병이 등장했다. 월병은 순수 황금으로만 만든 것으로 개당 가격이 2천180원에서 비싼 것은 2만6천160원에 이른다. 황금월병을 만든 상인은 고 강조하면서 황금을 좋아하는 중국인에게 적합한 마케팅기법이라고 자랑했다. 황금월병이 풍미하는데 대해 언론과 네티즌들은 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라고 비난을 쏟고 있다.   ▲ 한 식구나 친지, 뜻 맞는 사람끼리 서로 주고받으며 나누어 먹음으로써 일심동체 단란을 도모한다 하여 이라고도 불리는 월병이다. 월병은 떡 표면에는 , 등의 길상스러운 글귀가 새겨져있거나 달 속에서 불사약을 찧는 옥토끼 등 그림이 그려져 있게 마련으로 순탄과 건강장수를 기원하는 저의가 깔려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일년의 신고 끝에 맞는 추석, 수확의 계절에 맞는 첫번째 명절에 둥글고 맛좋고 보기 좋은 월병을 좋아하는 듯 하기도 하다. 따라서 떡이란 곡식으로 만든 먹거리 중에서 가장 맛있고, 고귀하고 정결하다는 리유로 제사나 집안의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준비해 왔는데 떡문화는 이러한 아름다운 것과 먹음직스러운 양쪽 명제를 모두 만족시키는 음식 문화의 대표적인 례이다. 이렇게 한가위를 징표하는 유구한 전통의 음식이 다른 용처의 로 변하고 있는 데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납득하기 어려워 한다. 지구상에 있는 자원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먹거리를 만들어 낸 인간들은 유무형의 가치를 미각과 시각적 요소로 환치시키려는 욕망을 끝없이 발산시켜왔다. 그런데 그 욕망이 변형되고 도를 넘으니 그 맛이 외려 쓸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변일보 주간 "종합신문" 2007- 9- 25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5    송이버섯 댓글:  조회:3182  추천:10  2012-09-06
   . 칼럼 .   송이버섯   김 혁   1,   1945년 8월 9일, 일본 항구도시 나가사키 상공에2만 피트 크기의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여났다. 일본인들로서는 며칠사이에 두번째로 보는 거형의 “버섯”, 그 “버섯구름”의 출현은 전쟁이 인류력사에 가져다준 참극이였다. 미국 공군 B-29기가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7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즉사하고 그후 수만명이 방사능의 영향으로 목숨을 잃었다. 나가사끼는 그후로 풀 한포기 자라지않는 염마전(阎魔 殿)으로 초토화되였다. 하지만 일본과학자들은 그 아비규환의 수라장속에 꿋꿋이 핵폭탄의 음위(淫威)를 이겨낸 하나의 식물을 보았다. 경의로움에 넘친 일본사람들은 이 식물을 신균(神菌)이라 불러 지칭하였다. 그 식물이 바로 송이 버섯이다. 모두가 즐겨 시청했던 한국드라마 “대장금”에서도 송이버섯은 주요 메뉴로 나온다. 한상궁과 최상궁이 상궁자리를 놓고 펼치는 각축전에서 한상국이 창조의 극치를 발휘하여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리는 음식중에 바로 송이불고기가 있다.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 조선의 김정일 위원장이 추석선물로 한국의 고위 인사들에게 송이버섯3톤을을 선물로 보내 화제가 된적이 있다. 이처럼 송이는 귀한 손님들에게 선물하는 소중한 물품으로 각인되여 있다.   2,   가을철이 되면 송이버섯이 회자되며 인기를 끈다. 송이는 9월 말 10월초가 제철, 바로 요즘이다. 예부터 버섯은 진귀한 식품으로 여겨졌고 식용은 물론 약용으로까지 널리 활용됐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버섯을 “신(神)의 식품”이라고 불렀고 중국에서는  불로장생의 영약(灵药)으로 생각했다. 그 가운데서도 송이는 능이, 표고와 더불어 “버섯 중의 버섯”으로 손꼽힌다.  송이버섯은 독특한 맛과 향기로 인해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로 손꼽힌다. “동의보감”에 송이는 나무에서 나는 버섯가운데 으뜸이요, 설사. 마마 (천연두) 그리고 산후의 후유증에 좋다는 등 기록과 구전이 있다. 또한 소화 기능을 돕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성분이 있어 동맥경화, 심장병, 당뇨, 고지혈증 등에도 효과가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이버섯은 특히 인후암, 뇌암, 갑상선암, 식도암 같은 웃몸쪽의 암에 효과가 높다고 한다. 송이버섯으로 송이구이, 송이전골, 송이 쇠고기볶음, 송이산적 등 료리를 만들수 있고 송이음료, 송이술로도 빚어 마실수 있으며 또한 생으로 먹어도 아주 좋다. 항간에 널리 떠도는 가요에서도 송이는 긍정적으로 등장한다. 쌀.보리는 그 열매로 치고 매화.국화는 그 꽃으로 치는데, 송이는 열매도 꽃도 아닌것이 깊은 산중 안개속에 솔잎으로 몸을 가려 드러내지 않고도 그 향은 수십리 밖에 떨친다 했고 먹으면 그 향이 살갗으로 스며 나오고 그 살결은 선녀의 속살처럼 희여 먹으면 청렴결백 마음까지 희여진다고 했다. 송이에 대해 옛 거사들은 속세를 등진 은둔자의 표식으로 삼기도 했으니 송이는 고고한 정신철학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3,   룡정에서 송이축제가 열린다. 중공 룡정시 시위, 시정부의 주최로“중국 룡정 천불지산송이 문화 관광절”이라는 타이틀로 된 축제는 오는 9월9일부터 12일까지 펼치게 된다. 현재 중국에는 운남성 등지에 송이버섯이 분포되여 있지만 장백산맥의 기를 이어받은 룡정 송이버섯은 독특한 기온, 토양 등 자연조건으로 그 인끔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룡정의 송이는 적시적으로 채취 집하(集荷)되여 전국은 물론 아직도 “바다에는 청어, 땅에는 송이”라고 송이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않는 일본으로 많이 수출되는데 현재 룡정에서 송이버섯의 년간채취량은 50여톤이 나 된다. 이번 축제에는 송이버섯 먹거리 전시, 송이왕 선정, 송이 경매, 송이 홍보대사 선발, 등 송이버섯을 위주로 다양한 활동이 선보이게 된다. 이제 송이버섯은 지역이 자랑할수 있는 특산물이자 문화 및 관광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입쌀의 고향”, “황소의 고향”, “사과배 고향”으로 불리고있는 룡정시에서 이 같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활용하여 “송이버섯의 고향”으로 또 한번 그 위용을 만방에 알리기를 기대해 본다. "연변일보" 週刊 "종합신문"  2009- 9- 7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흙에 살리라 /홍세민  
4    천년의 향기 댓글:  조회:3303  추천:13  2012-08-28
    천년의 향기   김 혁     1 망백(望百)의 아버지를 지게에 업고 금강산에 다녀온 한국의 “지게효자”의 사연이 요즘 중국 전역에 보도됐다. 한국 인천의 리군익(41)씨는 고령의 아버지에게 금강산을 구경시키고저 특수지게를 만들기로 했다. 등받이를 부착하고 의자와 발판이 달린 알루미늄지게를 만들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효자지게"를 만든 것이다. 한국효자의 사연을 접한 산동성 곡부에서 리씨 가족을 초대했다. 곡부는 효를 인륜의 근본으로 가르친 공자가 잠든 곳. 안개가 짙게 드리운 태산에서 아버지를 지게에 업고 오르는 리씨의 모습에 중국인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사람들은 "한국의 효자가 저기 있다"며 앞다퉈 인사를 건넸고 곡부 시인협회 회장은 "한국의 효자가 유학의 본고장인 중국 대륙을 울렸다"며 리군익 씨에게 7언시를 증정했다.               孔子故里傳佳話(공자의 옛 고향에 아름다운 이야기 전하니)               中國韓國同此心(중국과 한국 두 나라의 효심은 모두 같구나) 늙은 부모를 지게에 업어 버리는 고려장 루습이 없어지게 된 효의 옛설화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가슴 따뜻한 현대설화이다.   2 문우들과 함께 유수촌으로 낚시를 갔다. 낚시질끝에 본토박이 문학도의 요청으로 그 집에서 물고기 탕 향연을 마련했다. 뤄페어(羅非魚)라는, 뼈가 연하고 살이 많은 환장하게 구수한 물고기 탕에 맛나게 술잔들을 비웠다. 우럭의 일종으로 산지가 아프리카인 뤄페어는 온수에서 서식하고 있는데 이곳의 발전소에서 낚시에 환혹된 이들을 위하여 전문 못을 만들고 뤄퍼어를 사육하고 있었다. 슈퍼 낚시군들로 좌석이 어우러진지라 온통 물고기와 그 낚시기법에 대한 이야기들로 주연 상은 둥글어 졌다. 낚시를 화제로 한 기문취담중에서도 뤄페어에 깃든 작은 일화 하나가 나에게 준 충격이 가장 컸다. 검실검실한 몸체에 보기에 툽상스러운 뤄페어에게는 심히 감동적인 육아방식이 있었다. 새끼 기르기에 애면글면하는 어미 뤄페어는 인기척이 나고 위험이 느껴지면 새끼를 보호하려 다급히 입속에 새끼들을 품는다고 한다. 낚시군들이 뤄페어를 낚아올려 땅에 태를 쳤는데 입속에서 숱한 새끼들이 뿜겨져 나오는지라 섬찍하면서도 은은한 감동을 느낀적이 한 두번 아니라고 한다. 단 취담으로만 들을수없는 그 일화가 주는 감동에 젖어 나는 술잔을 더 크게 비웠다. 동물계의 새끼에 대한 어미의 사랑담을 가슴 한자락 뭉클하게 들은 그날이 또한 바로 어버이날이라는 것을 뒤미처 깨닫고 돌아오는 뻐스에서도 내내 감개에 빠져들어 있었다. 새끼에로 향한 동물의 본능적인 사랑은 뤄페어뿐만이 아닌 많은 동물들에게서 찾아 볼수있다. 수렁이나 논바닥에서 흙 감탕에 묻혀 사는 하잘것없어 뵈는 우렁이, 그 우렁이의 새끼에 대한 사랑은 처절함에 가깝다. 우렁이는 몸 속의 알이 깨이면 제 몸을 먹여 기른다. 제 살 파 먹이기를 다한 어미 우렁이는 껍질만 남아 물에 둥둥 뜬다. 우기 때면 비물에 벌창해진 보도랑으로 어미우렁이의 껍질이 하얗게 떠내려가는 모습을 볼수있다. 우렁이는 처절한 부모의 최후를 그렇게 보낸다. 포경선(捕鯨船)의 어부들은 어미 고래를 발견하는 것보다 새끼고래를 발견하면 더 좋아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새끼고래를 추적하면 그 인근에 부모 고래가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므로 두 세마리를 잡을수 있기때문이다. 어시 고래의 새끼에 대한 사랑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동물 권에서도 우리는 어렵잖게 우리 인간들의 삶을 닮은 모습을 조감해 볼수 있다. 새라 새라웁게 느껴보면 피와 살을 갈라 자식을 낳고 젖 물려 키우고 소팔아 품삯팔아 공부까지 시키고 자식이 나이 들어도 마음에 미덥지 못해 하는 부모의 정성과 은혜는 실로 필설로는 이루다 말할길 바이없다. 희생으로만 사시는 부모님, 자신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고독, 회한, 비통, 인고를 내색하지 않으시고 그 앙금을 속으로만 삭이시는 부모님, 있는 것 없는 것 다 주시고 무한한 사랑을 다 주시고도 더 줄게 없어서 서럽다는 부모님, 쓴것은 삼키고 단것은 되 뱉아 먹인다는 의 그 은혜를 자식된 우리가 어이 다 알리오! 그래서 는 그런 노래도 있나보다. 그 부모된이들의 다함없는 사랑을 기리고저 해마다 5월의 두번째 일요일은 어머니절, 6월의 세번째 일요일은 부친절로 세계적인 효도의 날을 만들었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충효의 실천을 평생의 덕목으로 삼아 실천하고자 했다. 우리민족은 자고로 효도할줄 아는 민족으로 이방민족들중에 이름이 있다. 따뜻한 웃목에 잠자리를 정해 드리고 밥도 웃밥으로 떠 드리는 일상의 세세한 구석으로부터 효도의 빛을 진하게 보여 드리였다. 따라서 우리들의 풍부한 민담설화고(庫)중에는 효도에 관련된 설화들이 많고도 많다. 리조 제 9대 임금 성종대왕때의 설화 한편 읽어본다. 만백성의 질고를 제 아픔처럼 여기여 현명한 군주로 수칭되던 성종대왕은 밤이면 늘 평복차림으로 수하 한 두 사람만 거느리고 항간을 두루 밟아 보군 했다. 어느 날 저녁 여느때와 같이 밤행차로 가난한 선비들이 집거해 있는 서울 남산골에 까지 닿았는데 웬 오막살이초가에서 느닷없이 사내의 노래소리와 로파의 울음소리가 혼반이 되여 흘러나오고 있는것이였다. 심히 괴이쩍어 창으로 들여다보니 상제 한사람이 저가락 장단을 치며 노래부르고 그 곡조에 맞추어 머리를 파랗게 깎은 비구니가 너울너울 춤추고 있었는데 그 곁에서 술상을 마주한 파파 늙은 안로인이 치마자락으로 홍안을 가린채 흐느껴 울고 있었다. 필유곡절이라고 성종대왕이 문을 떼고 들어가 물으니 안로인이 눈물을 씹으며 화답하는즉 궁핍하기 짝이없는 살림일망정 어머니의 회갑상을 차려드리고저 며느리가 채좋은 머리칼을 깎아 판돈으로 상을 차리고 춤노래를 벌렸는데 그 경상이 가슴에 뼈맞혀 로인이 울음을 운다는것이였다.   한자락 습윤히 젖어든 가슴으로 감개를 토하며 성종대왕 자리에서 물러 났다. 며칠후, 나라적으로 성대한 과거 시험이 펼쳐 지게 되였는데 남산골의 그 가난한 선비도 과거장에 나서게 되였다. 그런데 이해 과거의 글제는 전에없이 괴상하였다. 그 글제를 봅시면 . 즉 는 뜻이였다. 모든 선비들이 어리친 기색으로 붓방아만 찧고 있는데 그 선비는 자신의 사연을 두고 일필휘지하여 맨처음 답안을 바쳤고 드디여 정시에서 급제하게 되였다. 그후 대왕은 선비를 불러들여 나라의 중책을 맡기였고 그의 안해도 효부로 나라의 후한 상을 받게 되였다. 우리민족의 하많은 효도설담중에서 굴지로 뽑히는 이야기라 하겠다. 이는 비록 설화에 그친다 하겠지만 력사적 기재에 의하면 성종때 효도에 대해 여느때보다 중히 여긴 사례들이 많다. 현명했던 성종은 효자와 절부(節婦)를 골라 정표(旌表)를 하고 (갸륵한 행실을 칭송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고) 이들에게는 나라에서 부과하는 요역을 면제해주는 특전을 베풀었으며 그들의 행적을 기록해 두었고 전국의 80세 이상되는 로인들에게는 다구(茶具)등 물품을 하사하는 우대정책을 쓰기도 하였다. 태고적으로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요즘 젊은 세대로서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극성의 효도방식이 그렇게도 많았다.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드리고 아침이면 안부를 묻는 , 부모가 세상 뜨면 묘소곁에 움막을 짙고 몇 년간 치상하는 , 고향떠나 류랑하면서도 부모님의 신주(神主)와 제기(祭器)만은 꼭 짊어지고 다니면서 류랑제사를 잊지않은 ... 그중 가장 높은 효도로 부모가 앓을때 그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효도를 하는 습속으로 가 서민들사이에 널리 보편화 되기도 했다. 부모가 병고로 시달리면 약왕관음(藥王觀音)앞에 정화수를 떠놓고 병의 완쾌를 빌면서 자기 손가락을 태우는것이다. 즉 신령앞에서 정좌한다음 들기름을 손가락에 듬뿍 묻히고 그곳에 불을 단다. 인위적으로 손가락에 화상을 입힘으로써 그 타오르는 손가락의 아픔으로 부모의 병고를 공감하는 효도다. 이 소지효행도 , , , , 등으로 태우는 손가락의 수효에 따라 그 효심의 크기를 평가했기에 이 평가기준에 영합하기 위해 보다 많은 손가락에 불을 댕기곤 했다. 당시 대개 동네마다 신목에 새긴 , 이란 표방이 붙은 것은 이 소지기도를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이와같이 잔혹한 육체적 가학습속은 아픔을 혈족끼리 나눌수 있으며 내가 아프면 남의 아픔이 덜 해진다는 원시적인 사고방식이 효도라는 문명적 요소와 야합해서 형성된것으로 보이며 이 자학 효도는 단 조선족뿐인 효행의 류형을 이루고 있는것이다. 또 옛날부터 효자로 정표를 받은 집터에서 살면 효자효손이 난다하여 그 집터는 다른 집보다 세곱네곱 비쌌고 그 집에 든 사람들은 효맥(孝脈)이 력력하여 너나가 정표를 받는 효자효손이 되였다고 한다. 이 시대 늙으신 부모의 위상은 어떠한가.   3 허나 오늘날 가슴아피 진맥해 보면 동방례의민족이라 높이 선망되였던 우리 민족에게서 그 인습이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가족의 형성, 서구적인 개인주의, 폭팔적인 물질문명의 증대와 더불어 이 한 미풍량속의 인습이 날로 담박해 지고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나 같은 극단에 가까운 전례는 낡투로 치더라도 자식으로서의 부모부양의 최저의 의무마저 짐처럼 생각되여 감당하려하지 않는 철면피자식들이 늘어나고 있다. 피를 주고 살을 주신 부모를 모시기 실어 형제들끼리 부양문제를 놓고 제비뽑기 추태를 벌린 다던가 그렇게 모시게 된 어머니를 언감 구박까지 주는 짓거리들을 우리는 신변가까이에서 자주 보군한다. 애젊은 나이에 수절하여 자식들을 인끔높은 신분으로 조물시켜놓은뒤 만년의 외로움을 못이겨 재가의 뜻을 보였다가 자식들의 타매를 받고 오동지에 한지로 겨난 례도 처연함에 잠겨 읽은적 있다. 지나간 삶을 보상받기는커녕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사회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외면 받고 버림은채 신산(辛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효행이 결여된 부박한 음지를 우리는 근년래 항간의 여러구석에서 어렵잖게 볼수가 있고 들을수가 있다. 일전 어느 소학교에서 과외 활동시간에 퀴즈놀음으로 어머니 생일 알아 맞추기를 내였는데 거의 모든 학생들이 공백지를 내였다고 한다. 또 어느 한 야회에서 사회자가 야회 분위기를 돋굴 양으로 고 열기띈 어조로 말했는데 한 분도 나서는 이가 없어 난감을 금치 못해 했다고 한다. 몇해전 연변에서는 전국에서도 맨 처음으로 극악범인을 향한 총기사형을 페지하고 주사사형법을 실시했다. 허나 인도주의에서 비롯된 그 새로운 법률조치의 생신감보다도 맨 처음 주사사형극형을 받은 범죄자의 범죄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더 컸다. 화룡에 거주하고있는 이 조선족범인은 사소한 가정사로 부모와 분기가 있게되자 불효막심하게도 절구공으로 자신의 친어머니를 때려죽였던것이다. 자고로 시부모(弑父母)나 구부모(毆父母)죄는 륜상십악(倫常十惡)의 대죄이기에 그 장본인은 릉지처참하고 가문의 족보에서 삭제, 파문을 시키고 그 가족들을 변강으로 강제이주시켰다. 지어 그런 사건이 난 고을의 읍호(邑號)를 부나 군에서 현으로 강등시키기 까지 했다. 어제날에는 이렇듯 엄격한 륜상규제와 륜리풍토가 있었다. 그에 비해 볼때 오늘의 인륜이 왜 이 지경에 까지 땅바닥에 내쳐졌나 하는것은 너나가 심사숙고해야 할 일인것이다. 효는 인간사회의 다른 도덕적인 관념과같이 인간문명의 산물이다. 효는 인간 본연의 자세이며 바른 삶의 길이다. 효는 아버지와 어머니 나아가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는 어른이 자기와 안해 또 형제자매들을 낳아서 기르고 가르치고 한 인간으로 독립해 살수있게 해주었으며 형제와 친지간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협조적인 삶의 중심이자 또한 그 기둥이 되여주는 사람이 바로 그 어른이라는것을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보답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례의 범절이다. 특히 이것은 우리와 같은 유교문화권내에서 사회의 질서를 튼튼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조된 필수의 덕목이다. 서양사람들에게서는 부모에 대한 존경과 친애감이 있지만 동방에서처럼 관념화 형식화로 되여 있지않아서 동방의 효도를 서방인에게 설명할때면 아주 힘이 들 정도이다. 어느 한 어학자는 수십년간의 연찬중에 유럽계의 언어에서 효에 들어맞는 말을 찾아볼수도 없음을 발견하고 이는 동방민족의 전매특허이며 동방민족의 자랑이라 천명한 적이 있다. 유엔의 규정에 따르면 60세이상의 로령인구가 그 총인구의 10프로 이상을 점하는 지역이나 나라를 로년형지역 또는 로령화 나라라고 한다. 삶의 질의 향상과 더불어 우리 연변조선족 자치주에서도 로년인구가 나날이 붇고 있는 실정이다. 집계가 밝힌 데 의하면 전주적으로 이미 60세이상의 로인이 17만명으로서 총인구의 8.02프로를 점하고 있다. 이제 7, 8년후에는 60세이상의 로년인구가 24만명으로 불어나 총인구의 10프로를 넘길것이라 추산된다. 우리 이곳도 서서히 로령화지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따라서 전사회가 로령화사회에 대비할 준비를 해야 할줄로 안다. 부양담보, 건강문제, 빈곤해탈, 배울곳과 즐길장소의 마련, 고독한 환경개선 등등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들이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단 로인들을 위한 물질방면의 향상보다는 정신면의 리해와 지지이며 효를 알고 효를 펴는 사회적 분위기의 이룩이다. 다시 동물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우리가 어딘가 천대하고있는 미욱해 보이는 까마귀는 기실 효도할줄 아는 동물이다. 까마귀는 갓 낳아서 60일 동안은 어미가 먹여 살리고 자란후에는 60일동안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했다. 하여 우리 선조들은 보은할줄 아는 까마귀를 가리켜 효조(孝鳥) 또는 자조(慈鳥)라고 불러 왔다. 일개 미천한 동물도 이럴진대 우리 인간들이 그 무엇이 모자라서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게을리 할수가 있으랴? 불전(佛典)에서는 라고 감개했다. 동방례의 민족으로서 만방에 알려졌던 우리 민족에게서 태초부터 꽃 펴온 그 향기는 천년만년 무양히 이어져 내려와야 하는것이다. 갑골문에서 늙을 로(老)자는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가는 모습이고 효(孝)자는 자에서 지팽이가 없어지고 아들 자(子)자가 보태여진 형상이다. 자식이 부모를 부축하여 함께 가는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서 공자의 을 읊어보며 효도에도 때가 있는 법임을 옛사람들로부터 배운다.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樹欲靜而 風不止) 자식이 봉양 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리질 않는다(子欲養而 親不待)   공자의 제자들 중 이을 듣고 부모봉양을 위해 귀향한 자가 열에 세 명은 됐다 한다.   새삼스레 떠올리는 효도! 낡은 화제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풀려버린 치사랑의 현을 조여본다.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3    락방거자 댓글:  조회:3262  추천:10  2012-07-08
. 칼럼 . 락방거자 (落榜擧子)    김 혁    1   매양 초여름이면 가장 힘들게 "홍역"을 치르는이들이 있는데 바로 고등입학시험에 응전하고 그 결과를 조갈들게 기다리는 입시생들이다, 분전하여 시험을 치른다음에는 또 시험결과를 기다리기까지가 그야말로 일편단심 몽룡을 바라는 춘향의 기다림처럼 일일이 여삼추(一日如三秋)일것이다. 수험생 한사람만이 아니고 온 가족들이 눈과 귀가 동시에 한군데로 쏠리면서 그야말로 식불감(食不甘) 침불안(寢不安)이요, 바늘 방석에 앉은 심정이 되는게 상례이다. 이제 드디여 그 홍역도 끝나고 곧 새로운 출발을 맞게 될턴데 바라던 좋은 대학에 합격한 이들은 날듯이 기쁘겠지만 불행하게 락방하고 만 학생들은 격심한 허탈감에 몸부림치게 된다. 그렇다면 합격만이 행복의 보장이고 불합격은 불행의 시작일가?   2   옛날 과거에 응하는 자를 일컫어 거자(擧子)라 하였고 락방한 자는 말그대로 락방거자(落榜擧子)라 불렀다. 청나라 소설가이며 유명한 고전 "료재지이”의 저자 포송령"은 "거자칠변(擧者七變)이라는 글에서 수험생들의 심경에 대해 “발표를 기다리는 중에는 안절 부절 못하는 목줄 매인 ‘잔나비 꼴’이요, 락방을 하고 나면 독 버섯 먹은 ‘파리 꼴’이라”고 적고 있다, 그 역시 여섯번이나 과거에 락방의 고배를 마신적있기에 락방한 자들의 아픔을 극명하게 알고 있는것이였다. 하지만 고금중외의 이름 쟁쟁한 인물들중에는 락방거자가 이외로 적지 않다. 또한 그들은 락방의 아픔을 딛고 세계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의 반렬에 올랐다. 포송령의 "거자칠변"을 보고 대학자 림어당이 "락자칠변"(落者七變)이란 글을 남겨 일곱가지 군상으로 나누고 있는데 그들로 보면- 학창시절 수학이외의 과목은 몽땅 락제점에다 대학 시험에서도 락제점이였던 "아인슈타인" 같은 만재(晩才) 시험에 제출한 론문을 채점관의 리해부족으로 락방 되였으나 후에 그 론문이 세상에 발표되여 지식인들을 깜작 놀라게 했던 폴 발레리같은 은재(隱才)- 시험만 치르면 락방을 했으나 뒤날 자신의 적성을 살려 세계적인 시인이 된 하이네같은 반재(反才) 시험에 락방한후 일찌감치 사업으로 대 성공을 거둔 중국의 대재벌 석숭(石崇)과 같은 상재(商才) 소학교 때부터 늘 퇴학이나 당했던 "피카소"같은 예재(藝才) 거듭되는 락방에 호구지책으로 아이들을 가르키며 연명해가다 농민운동에 앞장서 봉기군 수령으로 되였던 홍수전등과같은 역재(逆才). 그리고 이도 저도 아무런 싹수가 없는 빈재(貧才)등으로 나누고 있다.   3   우리들의 초중학교 교과서에는 오경재(吳敬梓)의 “범진이 과거에 급제하다(範進)”는 고사가 있다. 한평생 과거보기를 일삼다가 늙으막에야 급제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나 기쁜 나머지 곧 미쳐버리는 선비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나면 누구나 그 옛날 과거제도의 페해에 소름이 돋을것이다. 그만큼 옛날 천군만마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려 다투는것에 비유할 만큼 과거제도라는 한 나무에 목을 매다는 인간들이 많았다. 오늘도 나는 정말 바보이며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능한 존재인가 하는 심한 자괴감에 함몰되여 자학하는 락방생들을 우리 주변에서 자주 찾아볼수 있다. 늘 회자(膾炙)되는 말이지만 대학을 가는 길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인간의 성공과 행복이 결코 성적순이 아니다. 시험이라는것은 다만 주어진 시간안에서의 승부일 뿐이다. 단 한번의 입시승부를 진정한 삶의 승패를 가르는 시금석으로 볼 수 없는것이다. "력발산 항우( 項羽 )도 락상할 때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기운이 센 천하의 항우라도 보잘것 없는 돌부리에 걸려서 쓰러질 경우가 있다는 말이니, 아무리 자신만만한 사람이라도 실패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올랐다고 기고만장 하거나 떨어졌다고 락심천만 할 리유가 없다, 이럴때일수록 현황을 역지사지로 풀어 내면 된다고 본다. 짓누르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곰곰히 따져 생각하면서 자신만의 진로를 선택함이 중요하다. 락방과 불합격이 미덕은 아니지만 패덕 또한 아니라는 걸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합격을 하고도 목표의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락방을 기폭제 역할로 삼아 끝끝내 결실을 보는 사람도 있으니 안방에 들어박혀 절치부심(切齒腐心)하지 말고 자중자애속에 눈을 들어 보다 높이 그리고 보다 넓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꿈이 살아있고 부단한 노력이 있는한 인생에는 결단코 두번다시 실패란 있을수 없나니...   연변일보 "종합신문" 2007년 08월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2    악플과 선플 댓글:  조회:3364  추천:16  2012-06-14
  . 칼 럼 .  악플과 선플    김혁     1 몇해전의 가을, 긴 국경련휴를 맞아 들뜬 우리들의 명절기분을 강타하며 하나의 충격적인 비보가 해외에서 전해왔다. 한국 톱스타 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팬들을 울리는 소식이였다.   최진실은 비단 한국에서 “국민배우”로 통할뿐더러 아시아권에서도 인정받는 월드스타이다. 80년대 중기, 연변에도 인입되여 상영되였던 한국드라마 “질투”와 “그대 그리고 나”에서 조선족관중들은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이 녀배우에 대해 알게되였고 한국드라마가 주는 묘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직 “한류”라는 신조어가 생겨나지않았던 그 당시, 중국관중들에게 있어서 최진실은 명실공히 “한류”를 이끌어낸 “한류스타”의 1인자였었다.    2   최진실을 죽음으로 내몬 요인 중의 하나가 인터넷상의 악플이라고 한다. 인터넷 등에 떠도는 자신에 대한 루머(风说), 괴담과 악플에 대한 심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목매여 목숨을 끊은 것이다.   아시다싶이 여기서 댓글은 인터넷에 올린 게시물 바로 밑에 즉시 남길수 있는 짧은 글을 말한다. 덧글, 코멘트(comment), 리플(reply)이라고도 한다. 흔히 동감의 글이나 론리적인 반박글 그리고 짦은 감상평등이 위주이다.   인터넷 댓글은 네티즌으로 하여금 기성언론이 제공해주는것을 받기만 하던 립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자유롭게 여론을 조성할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점이 불거졌다. 댓글은 컴퓨터를 마주하고 키보드만 두드리면 임의로 올릴수 있다. 이렇게 쓴 글이 려과장치 없이 바로 인터넷에 오른다. 한데서 그중 적지않게는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 쓴 허위ㆍ비방의 글들도 섞여 오른다. 따라서 지독한 감정의 배설물들이 인터넷의 바다를 오염시키고있는것이다. 이런 글을 가리켜 악성댓글 즉 악플(악성+reply) 이라고 한다.   악의적인 소문처럼 무서운것이 없다. 인터넷의 첨단기능을 타고 발없이 순식간에 퍼진 소문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전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더욱 과장되고 악화되여 멀쩡한 사람을 들볶으며 종내는 당사자의 명예와 인격까지 매장하고 만다. 악플이 가진 영향력 내지 파괴력은 상상을 넘어선다. 악플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악마성에 대해 치를 떤다.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상대를 단정적으로 비난하고 저주하는 악플의 행태는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새로운 악을 드러내 보인것이다.   3   평범한 가정의 “배고픈 소녀”로부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최진실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대중문화의 우상으로까지 떠올랐던 한 나라의 국민배우가 40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사건은 가히 충격적 이다. 뉴욕 “타임”스며 중국의 소후닷컴 등도 이례적으로 최진실의 죽음을 대서특필하며 악성댓글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진실의 죽음은 욕설과 비방, 저주가 다반사로 범람하는 인터넷 공간을 돌아보게 한다.   멀티미디어시대에 동조하여 중국조선족도 인터넷대렬에 적극 합류, 여론, 기업계, 상업계, 민간단체는 물론 개인들까지 사이트, 까페, 블로그, 미니홈피 등을 통해 업체를 홍보하거나 활동을 펼치고 일상에서 자신의 감성의 마당을 꾸리기도 하면서 인터넷의 막강한 힘을 활용하고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터넷도 여느곳과 마찬가지로 악풀의 폐해는 엄연히 존재하고있다. 우리지역만의 감성과 말투와 격식으로된 악의적인 댓글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고 이로 인한 피해자는 변명조차 할 기회도 없이 고통속에 신음하고있다.   악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악플을 근절하기위한 인터넷 실명제, 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 현실적인 방안이 해내외에서 쏟아지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제도 장치가 아직 근본적인 실효성을 보지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들어 국민배우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악플을 없애고 선플달기 운동을 벌이고있다. 선플(善+reply) 즉 선하고 긍정적인 의미의 댓글이다 악플을 차단하려는 도덕적 장치로서 네티즌 스스로 각성하고 정화하겠다는 움직임, 인터넷의 건강성을 회복하려는 모습들이 참 보기에 좋다.    우리의 네티즌들 저마다 글이나 사진, 동영상을 올릴 때 잠간 마우스를 멈추고 한번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내 글이 사실에 기반한 것일까, 내 글로 인해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아야한다. 치렬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너무 고달프다. 그렇게 짧은 인생인데 우리는 비난하고 질투하고 부정하는것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랑비하고 있는것은 아닐가. 인터넷을 사랑하는 우리의 네티즌들이 이제부터라도 찬물 끼얹는 악플보다는 따뜻한 격려의 선플을 남기며 함께 인터넷의 무대를 활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변일보 "종합신문" 08/10/13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삼각 버튼을 누르세요)  최진실 주연의 드라마 "장미빛 인생" 주제곡  
1    개기일식 댓글:  조회:2984  추천:7  2012-05-22
. 칼럼 .   개기일식  김 혁    1   옛날 어둠나라의 왕이 빛을 갖기를 원했다. 왕은 용맹한 불개(火犬)를 시켜 해를 훔쳐오게 했다. 불개가 어명을 받고 해를 덥석 물었다. 그런데 너무 뜨거워 도로 뱉고 말았다. 이에 어둠나라 왕은 이번에는 빛이 조금 약한 달을 훔치기로 했다. 그런데 불개가 달을 물었더니 이번에는 너무 차가워서 도로 뱉고 말았다. 미련을 못버린 불개는 어명을 지키고자 지금도 해와 달을 물었다 놓았다 하고… 일식과 월식이 되풀이 되는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이 흥감스럽게 이야기하는 일식에 관한 신화 전설이다. 사실 신화나 전설에 반영된 일식은 두려움에 물들어 있다. 예로부터 일식이 생기면 재앙의 전조라 여겨 사람들은 몸을 떨었다. 기근이 닥친다고 했고 지진과 해일이 덮친다고도 했다. 또는 임금의 신변에 불길한 일이 생길거라고도 했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사람들은 일식을 “포악한 승냥이”에 비했고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굶은 악귀”에 비했다. 윁남사람들은 개구리로 아르헨띠나 사람들은 “표범”으로 시비리아사람들은 지어 “흡혈귀”로 비했다. 힌두교 신화에서도 일식은 액운을 상징하기에 일전, 개기일식이 처음으로 목격될 인도에서는 당일 출산을 앞둔 임산부들이 일식을 피하느라 분만촉진제 등의 힘을 빌려 예정일보다 빨리 몸을 푸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중국에서도 고대에는 일식을 경외시했다. 당조때의 장시 “월식 (月蚀诗)”에서 보면 “달을 먹는 개구리 귀신이 있어 커다란 입으로 달을 삼킨다”고 했다. 송나라시인 매성우(梅圣俞)의 시에서도 “세발가진 붉은 깃털의 새가 달을 쫓는다”고 했다. 우리 민족의 조상들도 마찬가지다. 일식현상을 흉조로 여겨 고려, 조선시대에는 일식이 일어나면 재앙을 막기 위해 왕과 신하들이 검은 관에 소복을 입고 궁중에서 구식의(救蚀仪)를 행했다고 한다. 2   요즘사람들에게는 일식이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호기심이나 유흥의 대상이다. 22일, 21세기 들어 최장의 개기일식이 지구촌을 무대로 펼쳐졌고 해와 달이 연출하는 우주쇼에 아시아 각국이 환호했다.   일식은 태양과 달, 지구가 일직선을 이룰때 달그림자가 지구에 드리워 생기는 자연스러운 천문현상이지만 달이 태양을 다 “삼키는” 개기일식을 자신이 사는 곳에서 보는 일은 일생에 한두번 있을까말까 한 드문 경험이다. 때문에 중국,인도, 일본, 네팔, 방글라데시아 등의 도시들에서는 흥분에 들뜬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 육안들을 맞추었다. 개기일식은 인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고 뒤이어 방글라데시와 네팔을 거쳐 중국으로 옮겨갔다. 중국에서는 대국답게 11개성 40개 도시에서 3억명의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일식을 관찰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일식은 서부 서장을 시작으로 사천성, 중경시, 호북성 북부, 강서성 북부, 절강성 북부, 상해등 장강 일대를 따라 잇따라 진행됐다.  따라서 사람들은 망원경, 색안경, 맥주병, 필림, 용접안경,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일식을 관측하며 경이로움에 환성을 올렸다. 이번 일식은 중국에서 지난 1814년 발생이후 최장기간 발생하며 오는 2309년까지도 발생하지 않을 500년 만의 가장 긴 일식이 될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식을 “금세기 최장시간 개기일식”으로 보는 리유는 해•달•지구의 거리가 변하기 때문에 일식이 진행되는 속도와 일식의 모양도 달라지기때문이다. 현재 천문관측 기술로는 일식등 천문현상을 100년후의 미래까지 정확하게 예측할수 있다. 다음 일식은 2010년 1월15일(부분일식), 2012년 5월21일(부분일식), 2030년 6월1일(부분일식), 2035년 9월2일(개기일식), 2041년 10월25일(금환일식)에 펼쳐진다고 한다.   3    올해는 천문애호가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를 한해로 됐다. 이딸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 미지의 천체에 대한 관측을 시작한지 400년이 된 해이며 “아폴로” 유인우주선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여 인류가 처음 달에 발자국을 남긴 40주년, 미국 천문학자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고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지 80주년, 외계 지성탐사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50주년, 그리고 우주공간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전파 메시지를 보낸지 35주년이 되는 해로 천문 우주와 관련해 의미 부여할것이 참으로 많은 해이다. 그리하여 2009년은 유엔이 결의하고 국제천문연맹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천문의 해”로 지정됐다. “나는 해를 삼켰도다/ 나는 달을 삼켰도다/ 나는 우주를 삼켰도다/ 아, 나는 나이로소이다” 중국의 석학(硕学)이며 저명한 시인인 곽말약은 시 “하늘 개(天狗)”에서 일식에 대해 이렇게 읊으면서 자아와 우주와의 교감에 대해 노래했다. 이처럼 “세계 천문의 해”를 통해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들지간에 공간과 공간사이에 새로운 교감의 장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우주, 문화, 예술 등을 화두로 온 지구촌이 함께 우주의 신비와 경이를 나누고 그 미지를 탐색하면서 발견의 기쁨과 함께 우주에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보는 넓은 시야를 갖추는 등 500년에 한번씩 갖게되는 천재(千载)의 기회를 얻기를 희망한다.  연변일보 "종합신문" 0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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