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어떤 기우(杞憂)
김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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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때부터인가 빠지는 머리카락에 주의를 돌리게 되였다. 자고나면 베개잇에 흘려진 머리카락들을 무심히 주어던지다가 어느 한번은 한웅큼 정도 빠져나온 머리카락을 보고나자 섬찍한 생각이 갈마드는것이였다.
(이러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대머리아저씨》로 되여버릴가보다!)
황황한 마음을 안추르며 머리칼이 재생하는데 좋다는 방법들을 써보기 시작했다. 복숭아나무빗을 사서는 짬만 나면 극성스레 빗기도 했고 안해보고 미역국을 끓여달라 하여 몸 푼 아낙네들처럼 들이키기도 했다. 컴퓨터공부를 하면서 배운 포토 샵기술로 숱 많은 어느 배우의 머리칼에 내 얼굴을 합성해보기도 했다. 풍성한 모발의 나 같지 않은 나를 지켜보며 자아위안을 머금었다.
그런 나를 두고 안해가 못말려! 하고 웃었다.
《레닌동지처럼은 안될거니 근심 마세요. 가문에 대머리가 없잖아요. 번대머리는 십중팔구 유전에서 온다던데…》
하지만 거울앞에 마주 설 때면 은근히 신경이 쓰여지는 숱 적은 내 머리카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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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한오리씩 빠질 때면 누구나 그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그 한오리 한오리가 이어져 나중에 번대머리의 악효과를 초래하는것이다. 이를 철학에서 《대머리 론증(論證)》이라고 한다.
같은 현상은 수목에서도 나타난다.
콜로라도 협곡의 어느 산등성이에 400년 경륜을 기록하는 거목이 있었다. 항해가 콜롬부스가 이곳에 상륙했을 때 벌써 이 나무는 서있었다. 오랜 세월속에 나무는 폭풍우와 눈사태의 세례를 받아왔고 14차나 벼락의 습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나무는 의연히 꿋꿋이 뻗쳐서서 흘러가는 세월을 지켜왔었다.
그러던 나무가 어느날인가 돌연히 넘어져버렸다. 무엇이 세기의 창상을 이겨낸 나무를 순식간에 넘어뜨렸을가? 생물학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연구해본 결과 그 원흉은 어이없게도 개미였다. 한무리의 개미들이 나무의 뿌리에 은둔해서 부지런히 수근목피를 갉아댄 결과 창창 거목으로 여겼던 나무가 어느 하루 간지러운 미풍에도 그만 우지끈 넘어가버린것이다.
이런 현상을 생물학에서 《개미효응(效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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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실험의 사례를 한가지 더 들어보기로 하자.
미국 칸내얼대학의 연구일군들이 개구리를 두고 실험을 한적 있다. 먼저 실험용개구리를 끓는 물에 던져넣어보았다. 그러자 그 위기일발의 순간 개구리가 끓는 가마에서 풀쩍 뛰쳐나오는것이 아닌가!
다시 생사의 고비를 넘어온 개구리를 찬물에 집어넣고 그 용기(容器)에 천천히 열을 가했다. 개구리는 여유작작해 찬물에서 헤염치고있었다. 온도가 뜨거워졌으나 개구리는 전혀 느끼지 못한듯 했다. 마치 온수욕이나 하는듯 그냥 물에서 노닐고있었다. 결과 개구리는 점차 끓어오르는 물에 데여 죽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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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연중 이러한 사례들을 닮은 현상들이 우리가 살고있는 주변 도처에서 보여져 걱정이다. 그닥 흥미없는 생물학 사례들을 구구히 늘여놓는것은 우리가 이러한 사례와 같은 결과를 맞이하지 않을가? 하는 괘념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락미지액(落眉之厄)도 모르는 그 어리버리한 개구리를 닮은 꼴이지 않나 하는 자괴(自愧)때문에서이다. 이는 결코 《모기를 보고 비행기야!》하는식의 흥감질이나 《하늘이 무너질가 두려워하는 기(杞)나라 사람》식의 부질없는 근심이 아니다.
요즘처럼 사회적현안들이 보물처럼 터진적은 별로 없었던것으로 기억된다. 인구의 대량이동으로 촌부락이 소실되고 녀성들의 도시진출과 섭외혼인으로 남녀비례가 실조되여 농촌총각들이 가정을 못이루고 그로서 인구가 마이너스장성을 기록하고 그에 이은 련쇄반응에 학교가 페교되고 조선족아이들이 한족학교로 가고…
과거 한세기동안 우리가 피와 땀을 바쳐 이루어왔던 공동체와 그속에 내재되여있는 가치관이 눈에 띄이게 흔들리고있다. 우리가 정성들여 심고 우리가 일껏 가꾸어왔던 생명의 나무가 열매를 달지 못한채 잎이 떨어져내리고 가지가 말라들어 넘어지려 하고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우리의 공동적 삶의 바탕이 위협당하고 송두리째 파괴될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대머리를 괘념하는것보다 더 크게 마음을 괴롭힌다. 우리가 한오리의 머리칼처럼, 한마리의 개미처럼 무심히 방임해온 일상의 징후가 루적되여 최종의 악효과를 초래할수 있는것이다.
우리 공동체의 기본 구조와 토대를 은근히 위협하고있는 다가온 위기와 그에 따른 대책을 언급해야할 때에 우리는 위기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기대처에 대한 무지를 실감하고있다. 늦게나마 위기의식에 대해 우리 사회에 권장하고싶다. 이제부터 우리 공동체의 위기를 마음속으로 음미해볼 시점에 와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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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란 말은 원래 돌연한 병상(病狀) 변화를 뜻하는, 의학용어에서 쓰이던 말이다. 그러한 어원에서 비롯되여 위기는 어떤 상태의 안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영향을 줄수 있는 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일러 말한다. 위기는 인간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인 면을 비롯하여 한 나라의 정치, 사회체제, 나아가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발생하는 각 상황의 변화에 력점을 부여해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있다.
실직, 파산, 질병, 사망, 리혼, 불경기나 전쟁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재난, 더 큰 의미로는 식량위기, 생태위기, 인구폭발위기, 물위기, 에너지위기, 핵위기 등이다.
이러한 급격한 정세변화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최근 세계 각지에서는 위기관리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게 되였다. 그것은 어떤 상태에서 위기를 느꼈을 경우, 위기를 효률적으로 관리하여 그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재빨리 평상상태나 그에 가까운 상태로 회복시키는것을 의미한다.
일본 《닛산》자동차회사가 세계자동차시장에서 굴지의 위치를 계속 확보할수 있은 비결이 바로 그 위기관리를 도입한 결과이다. 그들 특유의 경영관리모식을 보면 평소에 늘 모든 직원들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공유하게 한다. 회사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직원들의 사기가 둔감해져 수익성 있는 회사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를 놓치게 되기때문에 위기감을 체계적으로 유지하는것은 기업경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그들은 인정한다. 더욱 중요한것은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필연적으로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궁극적변화를 통해서 각자의 가정과 직장에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 사회 전체로 파급되는 효과를 발생한다고 믿는것이다.
권투훈련에도 이러한 방식은 적용된다. 《그림자복싱》이라는 훈련방식이 있다. 마치 권투왕 아리나 타이썬, 루이스와 같은 강대한 라이벌과 게임을 치르는것처럼 가상하고 하는 련습이다. 위기상황을 상상하면서 중추신경의 기전을 리용한 훈련방법, 평소의 훈련에 지나지 않지만 위기를 환기시키고 그로서 비롯되는 흥분을 불에 기름을 붓는 활력소로 간주한다. 이렇게 오래 하면 어느새인가 그런 위기상황이 머리에 그려지게 되여 실전에 림해도 온건한 효과를 거둘수 있게 된다고 한다.
위기를 역으로 리용할수 있는 이런 기능은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도록 준비를 했느냐, 위기극복책을 강구할 취지가 토의되였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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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것이 아니고 천천히 조금씩 잉태되면서 우리 다수가 느끼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것이다.
평온한 일상을 꿈꾸다 사람들은 문득 저며오는 통증을 느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육체적통증을 넘어 도덕적통증이나 사회적통증을 느낄수 있다는점이다. 뿐만아니라 그 고통을 감지하고 적절하게 대응해나갈줄도 안다. 육체적통증을 제어할수 있는 신경면역체계처럼 사회적통증을 제어할수 있는 면역체계를 세우자면 그것이 바로 한 사회가 보유하고있는 위기에 대한 인식정도가 아닐가 생각한다. 위기에 대한 인식은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가려내기 위한 첫 진단인셈이다. 진단조차 할수 없다면 이 사회의 건강성은 제대로 유지될수 없다.
위기상황에 처하면 신속한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이건 동물의 개체보존의 본능적반응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 위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 조선족은 여태껏 량호한 자아감각을 가지고 지내왔기에 위기의식과 우환의식이 아주 결핍하다. 치명적인 내장의 아픔을 껴안고도 우리가 남들앞에 각인된 이미지란 술 잘 마시고 놀음 잘 노는 모습이다. 거리에 나서면 한집 건너씩 길을 향해 늘어서있는 다방, 술집, 노래방, 사우나, 족발안마… 뿌리가 썩어가고있는 상황을 의식 못한채 언제 봐도 마치 가무승평(歌舞升平)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앞에는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처능력이 박절히 제기되고있다. 한 민족에게 있어서 위기의식이 있는가 없는가는 그 민족의 리지(理智)도와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표징의 하나다. 현실속에서 우리가 겪고있는 위기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조선족으로서의 기본단위를 어떻게 운영할것인가에 관한 민족성원들의 공동적인식을 확립하지 못해서는 안되는것이다. 우리가 나타나고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제때에 인식 못하고 그에 대한 시책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문제점들을 도외시하고 제때에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조만간에 자기의 양상과 위치를 상실하고말것이며 락후한 민족으로 전락되고말것이다.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말이 있다. 전성에서 외화수입 앞자리, 인구당 택시가 제일 많은 도시, 춤과 노래의 고향… 등등의 번지르르한 수식에 환혹(幻惑)되여 흥타령만 불러서는 안된다. 따스한 물에 담겨져 기분 좋은 개구리처럼 탕개가 풀려서는 안되는것이다. 평소에 우리가 당착한 위기에 대해 면밀하게 재고하며 이에 대한 시대적 각성과 성찰을 해봐야 하는것이다.
인생에는 늘 위기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 위기는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기도 하고 보다 새로운 삶을 향한 리정표가 되여주기도 한다. 중국어로 《위기》는 두글자로 이루어져있다. 한글자는 위험을 나타내고 다른 한글자는 기회를 나타낸다. 또 브레덴 백과사전에서 위기는《좋아지고 나빠지게 되는 갈림길》이라 씌여있다. 즉 위기는 그 자체가 부정적요소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상황을 낳는 요소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위기해법은 우리 자신에 있다. 영광스러운 전통과 우수한 문화유산을 지니고있는 우리 민족에게 목전의 상황을 극복할수 있는 여건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자신을 랭정히 인식할 때 우리는 이 위기를 벗어날수 있으며 비로소 우리는 이 총체적난국을 풀어가는 주인으로 설수 있을것이다. 많은 우족지사(憂族之士)들이 나타나 위기의식을 품고 민족의 현황과 미래를 재검토하면서 문제점들을 착중하여 밝힌다면 우리 민족은 지금 허우적이고있는 진통의 수렁에서 빠져나올수 있는것이다.
《렬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서 나오는 하늘이 무너져내릴가 근심한 기나라 사람의 우화에 대해 모두가 알고있지만 그에 이은 속편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은것 같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음을 깨우쳐 알고 기나라 사람이 마음을 놓고 크게 기뻐했고이것을 깨우쳐준 사람도 또한 함께 기뻐했지만 그후 장려자(長廬子)라는 현명한 사람이 있어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지나 않을가 하고 근심한것은 근심을 지나치게 하는것이라고 말할수밖에 없지만 무너지지 않는다고 단언하는것도 옳바른 일은 아니다.》 다음 《렬자(列子)》의 말을 빌어서 《하늘이 무너지거나 무너지지 않거나, 그런것을 알고 그런것에 혼란하지 않는 마음의 경지가 중요한것이다.》라고 하였다.
나 개인의 머리칼 한오리의 미세한 변화를 걱정하듯이 민족의 일에 대한 괘념을 가지는것이야말로 민족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응분의 마음가짐인줄로 안다. 현실을 방임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더 높은, 더 힘찬 비전을 위해 위기에 대처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기른다면 우리의 삶이 더 윤택해지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가?
오늘도 내 숱 적은 머리칼이 바람에 스친다.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