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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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저수지 만필
2012년 07월 14일 16시 33분  조회:10089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아동저수지 만필                                  
                         
                                                              최 균 선                 
    
    쾌청한 가을날, 지천명의 고개를 넘어서 한창시절때 소수레로 모래며 자갈을 실어올리던 아동저수지 언제에 올라 산천경개를 바라보니 감개무량함이란 이럴 때 떠오르는것인가 싶었다. 거창한 언제우를 이리저리 거닐다가 슬며시 찾아드는 추억을 잠시 밀어놓고 얼없이 하늘 쳐다보고 머리숙여 록파만경을 굽어보니 푸른 물속에 드넓는 하늘이 통채로 빠져든듯 구름이 자맥질하는것이 하도 보기좋아서《경기(景幾) 엇더하니잇고?》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청산은 말이 없고 저수지는 고즈넉한데 유흥객들이 야단법석을 굴리며 삼삼오오 몰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돌뫼 높은 곳에 지은 정자가에 풍악소리 요란하고 잔잔한 물결우에 일옆편주가 한가로이 떠있다. 즐거운 소란을 뒤에 두고 휘적휘적 곁골로 빠져드니 세월이 산을 키우고 산이 세월을 지켰는가! 그 동안 무성하게 우거졌다.
    아득히 흘러간 천년풍아(风雅)를 제멋대로 주절거리고 이끼푸른 청석바위에 걸터 앉아 한잔술 마시면서 청산을 돌아보니 산발을 넘나들며 항일에 목숨바친 충혼들의 그 기절(气节)은 어디에 잠들었는고…별을 스쳐온 하늘바람만 로송의 해묵은 침묵을 흔들고있다. 장인골 멀리 구름이 오락가락하는데 산그늘은 구름무게로 휘늘어져 해빛도 비집고들지 못하는 울울한 수림속에 산새소리 더없이 다정타. 시름없는 저 산새들이 청산속 깊은 사연을 해석하는지 어쩌는지 몰라도 가을날의 정취를 읊조리는 그 소리에 귀기울이고 앉으니 또 한번《경기 엇더하니잇가》가 묻어나온다.
    설렁8월 그 한철이라도 부지런히 뛰여야겠다고 약속이나 한듯이 풀숲에서 그네를 뛰는 살찐 메뚜기들이 길고 짧은 노래로 차고 더운 계절을 톱질하며 세월의 물레방아도는 래력을 엮어가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산향의 정채로운 가을동화에 유별난 정서가 차차 마르고있는 가슴에 가득차 오른다. 어이 아니 그럴손가?!
    청청 가없이 푸른 하늘에 가을해살이 다함없는 축복처럼 쏟아지고...숲전체만 아니라 단풍잎 하나에서도 연록을 자랑하던 봄과 작열하던 여름, 성숙의 가을, 차디찬 겨울을 지나 흙으로 돌아가는 흥망성쇠의 섭리를 읽을수 있다는것은 시골만이 선물하는 향수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대자연의 섭리는 그 자체가 철학이요 자연의 순수 또한 그대로 미학이 아닐수 없으렸다.
    다람쥐 채바퀴돌듯 하는 무료한 일상의 반복속에서 몸도 정신도 흐리마리할 때면 갈래도 많은 추억의 오솔길에서 헤매는것도 인간상정이리라. 세월을 거슬러 오르면 어느덧 푸른 꿈이 아지랑이처럼 마실을 오던 그 동년의 언덕에 이르게 되고 뒤이어 아쉬운 어제와 힘겨운 오늘과 묘망한 래일의 시공에 대한 회한을 앞세우면 허무가 부르는듯 내달아온다.
    세월에 세월이 밀리는 망각의 저 언덕위에서 무엇인가 회상하고 좋아한다는것은 행복한 정서의 출렁거림이요, 잊혀지지 않을 비감의 기록이 될것이다. 젊은 시절의 추억도 보람으로 수놓아지지 못했지만 흘러간 세월과 인생의 공간에 세워진 오늘 나의 이미지는 모호함과 망연자실과 정한으로 얽히여 쓸쓸한 밤에 떠도는 환각같은데 단풍이 든 추억이나마 인생의 가을에 위안이 되여질가?
    세월령감의 옷자락이 휩쓸고 가는 인생의 마당에 유구한 시간성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엄존하는 현실이며 력사성이다. 억겁의 세월속에서도 상대적으로 고색창연한 청산앞에서 나는 작은 돌멩이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허무에 주저앉을수 있으나 정감의 출렁거림이라는 감회속에 과거의 소중함을 애틋하게 껴안고 얼마남지 않은 앞길을 내다보며 자신을 다시 한번 성찰해보는 기회도 많지 않으리라.
   그래서 늘 푸르기만한 그 추억의 언덕에서 새롭게 창조될 자기 인간상을 설계할 황금시절은 지나갔지만 그동안 써온 인생의 의미를 보듬어 보느라니 감회롭지 아니한것은 아니다. 비록 보통 역군으로 한수레 또 한수레 자갈과 모래를 실어올려 쌓아올린 언제에 내 구슬땀도 스며있다는 긍지감때문인지 힘겨웠던 나날이 일종 보람으로 펼쳐지며 마음은 가을날의 동화처럼 이채로운 색채로 물든다.
    어느새 좁은 골령에 락조가 서둘러 노을을 펼쳐놓는다. 저물기전에 어서 마을로 내려가야지 하면서도 발길을 떼지 못하는것은 고향처럼 정든 고장이여서가 아니다. 젊은시절, 그 얼룩진 생활의 페지들이 자꾸 펼쳐져서이다. 한마리의 밤새가 되여 꿈 에 날아온적도 있었던 아동저수지, 아무리 바라보아도 오늘의 하늘일뿐, 하늘에서 몇십번 비가 내리고 눈꽃이 흩날릴 때 내 머리에는 흰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이제 장인골 굽이굽이에 옹기종기하던 농가들이 간곳없듯이 내 추억도 골짜기에 드리우는 석양처럼 미구에 사라지리라. 세월이란 저물녘 산골바람과 같이 담담하게 스쳐가는 법인데 노상 추억에 업힌다는것이 유감에의 참여일지라도 일체가 무화되고 다만 공허한 추억만이 남아도는 이 자리에서 내가 허무의 배역밖에 더 되랴.
    설사 고단하기 짝이 없던 한단락의 편력이였다한들 이 곳은 내 인생의 기념비로 솟을것도 아니다. 수많은 열혈의 가슴들에서 흘러내린 땀줄기가 여기 언제속에 스며있는데 내사 공연히 혼자인체 회억하니 우습다. 황차 저수지의 깊은 물에 잠겨버린 개바닥 버들숲과 채파올리지 못한듯싶은 모래들은 이미 다른 지각으로 변했음에랴. 고달픈 일생길을 걸어온 이름없는 나그네에게 한단락의 모진 체험이였지만 곧 잊혀질 그 한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절로 떠오르는 회심의 미소를 지워버린다.
    그런데 무엇이 아쉬워서 이리도 서성거리는는것일가? 나의 발은 저수지 언제를 딛고 산천을 서성이고 있지만 나의 마음은 벌써 떠나고 있는걸가? 이미 물의 집합이 된 저수지야, 네 보드랍고 살찐 가슴우에 비낀 석양은 이리도 정채로운데 마음속에 추억으로 되새기던 동안 나에게 미소처럼 다가온것은 늙음이였구나. 내 다시는 너를 찾아오지 못할것이다. 한단락의 추억은 한페지로 족한것이여늘, 너 혼자 백년이고 천년이고 물안개로 옛이야기를 덮어가려무나. 추억이 아무리 진지하여도 오랜세월 변함없을 네 고즈넉한 가슴만큼은 깊지는 못하리니.
    우리네 인생은 너의 가슴에 잔파도 일구는 바람과 같고 네 푸른 물결타고 미역감는 구름과 다를배 없거늘  묻지마라. 청산아, 청춘이 바람이냐고, 만경창파야, 묻지를 마라 인생이 구름이냐고, 무심이 떠가는 저구름도 래일이면 또 다른 구름이 되여 두둥실 떠가는것을…잘나고 싶었던 내 청춘, 그러나 못생긴 내 청춘은 스쳐가는 바람앞에 머물지 못하였고 지지리 못났던 내 인생, 그래서 잘나가고 싶어 뼈물렀던 내 인생도 한쪼각 구름처럼 흘러가거늘…
    땅속에서 용용솟아 대해로 가노라고 바위굽 에돌아 해묵은 숲을 헤치며 밤낮으로 달려오다가 속절없이 갇히게 된 장인강아, 묻지를 마라, 바람처럼 세월의 언덕을 스쳐오다가 어느날 홀연 사라질 내 인생을 두고 무엇이 청춘이고 무엇이 인생이라고 구구히 말해야 할가? 청춘은 바람같고 인생은 구름같다는것을…
    아동아, 저수지야, 가득차서 흘러넘쳐서 평강벌 가뭄든 논께에 착한 생명수로 되여다오. 사연도 많은 장인골, 골깊은 계곡들이여, 잘 있거라, 물은 옛물이 아니로되 청산은 의구하구나. 세월이 류수같은들 추억이야 늙을소냐, 로옹은 가고 다시 오기 어려워라. 저 구름에 실은 내 만가를 바람아, 너무 서둘러 흘려보내지는 마라.  
 
                                     1999년 8 월 22일초고 ㅡ2008년 9월 10일 정리      


                                                          2012년 <장백산> 제 3 기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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