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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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과 그의 실학사상 연구 (범지민)
2013년 01월 24일 18시 12분  조회:10283  추천:0  작성자: 최균선
                                          摘 要
 
朴趾源是朝鲜十八世纪杰出的实学思想家和现实主义文学家,在朝鲜思想史和文学史上居有重要的地位。也是其中最喜爱文学创作并取得巨大成就的人之一。朴趾源生活的时代及写作《热河日记》的年代,是朝鲜封建社会行将步入近代社会的历史交替时代与通过燕行的亲身体验之间的差距,造就了朴趾源矛盾的心态,而这种心态又直接反映在《热河日记》之中。
在特殊的历史时代,依据作者本人特殊的生活经历和思想历程而完成的《热河日记》,无论从作品所引发的社会效应,还是从作者个人的文学创作活动,都具有非同小可的重要价值。 (참고하세요)
关键词: 朴趾源 朝鲜封建社会,实学思想 热河日记
 
                                         초 록
 
박지원(朴之源)은 18세기 조선의 가장 탁월한 실학사상가이며 뛰어난 사실주의 작가로서 조선의 사상사와 문학사상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문학창작을 가장 열애하고 거대한 성취를 취득한 사람의 하나 이다. 박지원이 생활한 시대 및《열하일기(热河日记)》를 창작한 시대는 바야흐로 조선 봉건사회가 근대 사회로 진입하는 역사교체시대와 연경여 행을 통하여 직접 겪은 체험 사이에 낙차는 박지원으로 하여금 모순된 심 태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심태가《열하일기》에 관통되었다.
특수한 역사시대, 작자의 특수한 생활경력과 사상여정에 근거하여 《열하일기》를 완성하게 되었다. 무릇, 작품이 일으킨 사회효응이든 작자 개인의 문학창작활동이든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연암의 소설작품은 그의 창작성과를 집중적으로 과시하고 있을 뿐더러 한국중세 소설문학의 고봉을 이루고 있다.
 
키워드:  박지원  조선 봉건사회 실학사상  열하일기


차 례
서론
1.1연구 목적과 의의
1.2 기존 연구사 검토
1.3. 연구 범위와 방법
2. 본론
2.1.1박지원의 생애
2.1.2박지원의 시대적 배경
2.1.3학문적 경향
2.2.1 연암 박지원 문학에 나타난 실학사상 연구
2.1. 2독창성과 자주성
2.1.3 법고창신
2.2.1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
2.2.2 인간성의 긍정과 평등사상
2.2.3 당대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

3. 결말


                               1. 서 론


1.1 연구목적과 의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박지원의 문학을 대표하는 저작으로서 "조선 시대 한문학(汉文学) 유산 가운데 근대지향적인 성격이 가장 뚜렷한 구체 적 작품분석을 통해 문학사적 의의를 재평가하는 것은 매우 의의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본 논문은 박지원의 실학사상과 그의 작품의 문학적 특성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둔다. 이 연구를 시도하는 것은 실학의 본질에 한걸음 더 접근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짚어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박지원의 실학사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2 기존사 연구
연암문학은 최근들어 조선후기 한문학(漢文學) 유산에 내포된 근대지향 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부각하려는 연구경향이 대두함에 따라 그 예술 성과 문학사적 의의가 높게 평가되어 왔으나 연구대상 작품이 <양반전> , <호질>, <허생전> 등 수편의 단편적인 작품들에 국한되었기에 이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1.3. 연구 범위와 방법
지금까지 국내외 학술계에서 박지원과 그의 작품연구는 다양하게 진행 되었고 성과가 혁혁하기에 필자는《열하일기》에 내재한 문화가치와 시대 의의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탐구하여 《열하일기》가 가진 역사의 전환의 시대의 근대계몽 가치와 의의를 재확인하려 한다.
                          
                                         2. 본 론
 
2.1 박지원의 생애와 문학활동
2.1.1 박지원의 생애
박지원(朴趾源)은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열하일기>를 지은 뛰어난 문장가로서 1737년(영조 1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1765년 과거에 실패한 뒤 오직 학문연구와 책을 쓰는 일에만 전념하다가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등과 학문 적으로 교류를 가지기도하고, 특히 이 시기에 박지원은 이덕무, 홍대용 등과 실학에 대하여 자주 토론을 벌이고, 이덕무 유득공 등과는 서부지방을 여행하기도 하였다.
박지원은 1777(정조1)세도 정치가 홍국영에 의해 벽파로 몰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에 은거하면서 농사와 목축에 대한 장려책을 정리 하였고, 그 곳의 지명을 따서 호를 '연암' 이라 하였다.
  1799년에는 1년 전에 정조가 내린 권농정구농서(勸農政求農書)의 하교 (下敎)에 응해〈과농소초(課農小抄)〉를 바쳤다. 이 책은 농업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농업생산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그의 사상의 원숙한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1800년 양양부사가 되었고, 1801년 봄에 사직했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805년 10월 20일 69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쳤다.
2,1.2  연암 박지원의 시대적 배경
 18세기를 전후하여 조선 후기 사회는 극심한 갈등으로 번민하면서 소리없이 요동 하며 절규하고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잃은 것은 삶과 삶에 대한 윤리, 그리고 행복이었고, 얻은 것은 비참과 자아 각성이었다. 연암이 그의 청소년 시절을 보내었던 18세기 중반 경의 조선사회는 영조의 노련한 통치 하에 외관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조선 후기신축(辛丑)·임인(壬寅) “1721년 (경종 1)과 1722년” 두 해에 걸쳐 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일어난 옥사를 일컫는 신임 사화 이후 정계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노론과 소론간의 알력은 그 이면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2.1.3 학문적 경향
  청나라에 영향을 받은 박지원의 학문적 경향은 한마디로 이용후생론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수레와 배의 효용성을 강조하였으며 과학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서양인 들을 초빙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북학사상에 있어서 더욱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측면이라고 하겠다.
  서경(書經)에서는 《정덕이용후생(正德利用厚生)》‘’이라고 했지만 연암은《이용후 생정덕(利用厚生正德)》으로 순서를 바꾸었다. 경제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윤리, 도덕의 문제도 해결된다는 사상은 전통적으로 유교에서 상업은 말리(末理)라 하여 배척하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연암은 문장은 寫意(사의)에 그쳐야지, 망상이나 가식이 스며들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위주의 문장론을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글로써 놀이를 일삼 는다' 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반성과 또 한편으로 불우한 처지에서 그릇된 사회를 해학과 기지로 조롱, 풍자하는 태도를 보인 점인데, 이는 바로 모순 된 사회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그의 치열한 문학정신을 보여주는 일면 이다.
  박지원의 문풍(文風)은 '열하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당시에는 상당히 신선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었다. 이를 '패관소품(稗官小品)체' 라고 했는데, 중국 에서 명나라 말과 청나라 때 유행한 것이 조선에 들어와 널리 회자된다. 희곡, 소설 등의 서민적 문예에서 나타난 자유분방하고 감각적인 내용의 단문 문체로, 양반가 에서 주로 쓰이던 진부한 느낌의 장문 고문체와 많이 달랐다.
  정조는 1792년에 엄중한 전교를 내려 '패관소품'체의 사용을 금지하고 주요 인물에게 반성하는 글을 쓰게 했으며 그 대표적 인물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박지원 이었고, 그 대표 저작물이 열하일기였다. 과거 시험이나 공문에 그러한 문체를 사용 하면 즉시 죄를 물어 파직하고 중국에서 패관 소품이나 소설의 수입을 일체 금지하는 명령을 내립니다.
2.2.1창작활동 
한 작가의 창작사상은 사회 현실에서 형성된 것이다. 시대가 다르면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한 작가의 사상은 현실 속에 발을 붙이고 시대를 통찰 해야 한다는 것이 연암의 창작 사상의 기틀이었다. 연암의 창작 태도는 현상과 실상 의 차이를 인식한 데서 출발한다. 물론 시대적 현상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실상을 규명 하는 데서 그의 문제의식과 문학적 진실이 현시된다.
  그는 청년기와 장년기에 11편의 소설을 썼는데, 현재는 9편이 전해지고 있 다.〈광문자전〉에서는 광문이라는 거지의 의리있는 도덕행동 과 사리 사욕과 명예에 눈 먼 양반을 대치시킴으로써 양반의 가식적 도덕 을 폭로·비판했다. 〈마장전 (馬駔傳)〉에서도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의 건강 한 도덕성과, 고결성이 퇴색되고 비속화된 양반들의 사교를 대비시킴으 로써 양반의 허식적 생활을 풍자·비판했다.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서는 똥거름 치는 근로자인 주인공 엄행수 (嚴行首)의 삶에서, 서민적 덕성(德性) 으로서의 건실한 생활철학을 형상화 했다. 근로 인민의 도덕이야말로 진실 한 도덕이라고 강조하고, 엄행수는 성인(聖人)도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장년기의 작품인〈양반전〉은 양반도덕의 허위성, 위선적인 양면성, 몰염치한 착취에 기반한 무위도식, 양반의 무능성에 대한 날카로운 규탄과 폭로로 관통되어 있고, 양반 몰락의 역사적 현실성과 필연성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는 양반을 다음과 같이 풍자했다. "하늘에서 사람을 낼 때 4가지 종류로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선비란 것이 가장 고귀하다. 선비는 양반이라고도 부르는데 잇속이 그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하략)"
그는 인간관계가 엄격하게 신분제에 의해 규제되고 게다가 양반사회는 당론 (黨論)으로 분열되어 있어서, 인간 사이의 자유로운 교제에 바탕을 둔 평등 윤리로서의 우정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폭로하고, 그 평등윤리인 우정의 세계를 희구하면서, 그것을 서민의 생활도덕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서민군상 (庶民群像)과 함께 호흡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서민군상 자체가 새로운 사회의 주도층으로 성립되어 있지도 못했다. 따라서 박지원은 역시 허생 (許生)처럼 숨어 살면서 세상을 풍자 하고 개탄하는 한 양심적 지식인일 수밖에 없었다. 만년의 그의 사상은 구체적 개혁안의 제시에 주력하는 경향이었고, 따라서 비판력은 약화되고 개량적· 타협적인 성격을 나타냈다.
박지원의 소설은 모두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생전>에서는 이완을 통해 사대부를 비판하며 매점매석 을 통한 치부와 무인도의 이상사회 건설을 통해 당시의 경제제도의 개혁을 역설하며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양반전> 에서는 부자 상민과 가난한 양반의 신분거래를 통해 양산의 허상을 폭로 하고 신분제도의 개혁을 암시하였다. 다음으로 <호질>에서는 위선적인 북곽선생과 그를 질타하는 호랑이를 통해 양반 사대주의 위선과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였고, <광문자전>에서는 광문이라는 거지의 훌륭한 인품을 나타내며 인간성에는 신분의 차별이 없음을 나타내고 이를 통해 양반들의 위선을 비판하였다.
연암은 당면한 사회가 왜 낙후하고 모순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앞으로 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이다. 소설가는 그가 바라본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위치뿐만 아니라 그가 삶을 바라보는 위치를 결정해 줄 수 있는 어떤 본질적이면서도 장르적인 형태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 형식들은 새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 민중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고 볼 때, 연암은 독특한 안광으로 당대의 실상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근대의식의 기초인 목적 합리적인 바람직한 행위를 추구하고 있다.
비천한 신분 또는 경제적으로 빈궁한 평민들이지만 진실된 삶을 살아 가는 인간상에 긍정적 시선을 박고, 양반의 입장에서 양반 사회의 폐해를 무자비하게 질타했던 것이다. 그가 당면한 현실을 재해석한 것은 미래에 대한 대안 제시의 의미가 있으며, 이는 현실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동시에 고양시킨 혁신이라 볼 수 있다.
2.2.3  박지원 문학에 나타난 실학사상
가) 사실주의
연암은, 문장이란 누구든지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억지로 옛 사람이 쓴 고어를 생각하고 고전의 經旨(경지)를 찾으며 근엄하게 글뜻을 장중하게 꾸미려는 것은 마치 화공이 그림을 그릴 때에 원래의 모습을 다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즉 연암은 글을 쓸 때에는 사실을 그대로 꾸밈없이 표현하는 진실이 으뜸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연암은 거울처럼 비치는 진실이 그대로 훌륭한 글이요. 문학이라는 관점 을 가지고 있었으며 제재나 표현에 있어 갖가지 미화 (美化)의 방법을 동원하여 위장과 수식을 일삼으면 그대로의 실상을 바로 볼 수 없다고 역설하면서 당시 漢(한), 唐(당)을 도습하려던 문학계를 비판하기도 했다.
  나) 독창성, 자주성
 연암은 그의 문학론을 통하여 도처에서 작품에서의 독창성을 강조하고 있다. “옛것을 본받는 사람들은 옛 것에 구속되어 벗어나지 못함이 근심되고 새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그 不經(불경)됨을 근심한다. 진실로 능히 옛것을 벌받으면서도 변화할 줄을 알고, 새것을 창조해 내면서도 능히 전거가 있다면 이 시대의 글이 옛 시대의 글과 같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법고 창신의 조화라는 것이다. 전통과 변혁의 조화를 통하여 보다 나은 창작의 세계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글이란 근본적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변천하는 시대감을 흡수하여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구현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글이란 사실에 진취가 있다. 하필이면 고대를 취할 것인가. 한당 (漢唐)은 지금과 다르고 풍요 (風謠)도 중국과 다르다. 반마(班馬)가 지금 나왔다 한들 옛적을 그대로 본받지 아니할 것이다. 신자 (新字)를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어찌 고법 (古法)에만 구속되겠는가?
  여기서 고법에만 구속되지 말고 우리의 것을 그대로 묘사하여야 하며, 지금을 근시라고 하지마는 지금이 천년 후에는 고대가 된다고 하여 낭사 (郎事)와 신자 (新字)를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연암은 속어, 속자를 배척하는 당시 古文派(고문파)들의 주장을 개탄하고 있었다. 민간의 좋은 풍습과 말을 문자로 옮겨 놓고 민요를 운율에 맞추기만 하면 자연스런 문장이 되어 진실이 그대로 드러나고 우의 진솔함이 드러나는 자주적 성격의 글이 되 수 있음을 내세우고 있었다. (趙東一, , P.269) 이상에서 보듯 연암은, 문학은 자주적인 것이 바탕이 된 독창성을 지녀야함을 주장했다.
다) 법고창신
연암은 그의 문학론을 통하여 도처에서 작품에서의 독창성을 강조하고 있다. 옛것을 본받는 사람들은 옛 것에 구속되어 벗어나지 못함이 근심되고 새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그불경 (不經)됨을 근심한다.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화할 줄을 알고, 새것을 창조해 내면서도 능히 전거가 있다면 이 시대의 글이 옛 시대의 글과 같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법고 창신의 조화라는 것이다. 결국 글이란 근본적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변천하는 시대감을 흡수하여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구현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연암은 속어, 속자를 배척하는 당시 古文派(고문파)들의 주장을 개탄하고 있었다. 민간의 좋은 풍습과 말을 문자로 옮겨 놓고 민요를 운율에 맞추기만 하면 자연스런 문장이 되어 진실이 그대로 드러나고 우의 진솔함이 드러나는 자주적 성격의 글이 되 수 있음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상에서 보듯 연암은, 문학은 자주적인 것이 바탕이 된 독창성을 지녀 야함을 주장했다. 연암 박지원은 고문을 반박하면서 참다운 문학의 질은 이미 화석화되어 버린 옛말과 경험을 답습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진정한 의미를 음미하면서 자신의 시대와 경험에 충실하는 데 있을 따름이라고 주장했다. 연암에 있어서 풍자란 중세적 봉건사회가 무너져 가고 그 속에 서 새로운 사회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는 역사적 변화의 시대에 살면서 그 모든 추이들을 직시했던 비판적 태도로 나타난다.
라) 인간성의 긍정과 평등사상
평범한 사람 혹은 사회에서 천대받는 인물들로서 전대의 소설에서 주인 공이 될 수 없는 인물로<광문자전>의 광문,<예덕선생전>의 엄행수, <마장 전>의 송욱,조탑타, 장덕홍이 그런인물이다. 인간성을 긍정하고 남녀 귀천에 관계없이 인간이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이는<열녀함양박씨전>등에서 잘 나타난다.<허생전>속에 드러난 작자의 당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허생의 아내를 통해 당시 사대부의 허위격 삻과 무능함을 비판했다.
  마) 당대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
 연암은 문학이야 말로 현실에서 뜻을 펴지 못한 (낙척불우-落拓不遇)의 위치에서 현실을 비판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요, 또 이를 통하여서만이 사회를 의도적으로 개선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음 글을 통해서 그의 이러한 생각을 알아보자.
  “나 같은 사람은 중년 이래 樂拓(낙척)하여 쓰러져 자산을 귀히 여기지 않고 글로써 유희를 일삼았다. 때로 궁색한 근심과 무료함이 느껴지고, 잡되고 무심한 말을 일삼고, 배우처럼 남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으니, 참으로 천하고 비루하다. 성품이 나태하고 산만하여 벌레를 새기고, 갈대를 그리는 사소한 기능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과 남을 모두 그릇되게 했다.”
  이 글은 자신의 반성이면서, 한편으로는 힘의 시대에 도전하는 반주자(反朱子)적 풍자성의 과시라고도 할 수 있다. 글로써 놀이를 일삼는다. [이문위희] (以文爲戱)는 표현은, 낙척하여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사회를 비웃고 풍자하는 자조와 개선) 방법이다. 사회를 향한 일종 의 매서운 비판 정신이다. 벌레를 새기고 갈대를 그린다. (彫蟲畵蘆 [조충화노])는 사소한 기술은 곧 현실의 사실적 표현이면서 자신의 행위를 비하하여 표현한 것은 일종의 반어적 기술이다.
  특히 연암은 풍자와 골계, 반어의 수단으로 비유를 자주 이용했다. 그의 적절한 비유와 속어적 표현의 묘를 통하여 연암은 경직된 유가사회의 비리 들을 골계와 풍자의 열기로 용해시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가 요구 하는 문학의 이념을 그 위에 한껏 꽃피웠다.
이상에서 연암의 문학관을 사실주의, 독창성-자주성, 골계성-풍자성으로 나누어 살펴 보았다. 연암은 조선 후기와 시대를 함께 하는 문인으로서 사상과 문학성이 골고루 갖추어진 문인이었으며 실학을 문학에 참여시켰던 진정한 지식인이기에 손색 이 없는 문학대가이다.
3. <열하일기>에 대한 총체적 고찰
3.1 <열하일기>의 사상내용
1780년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친척 박명원을 따라 북경과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하여 [열하일기]를 썼다. 이 작품 집에서 정치, 군사, 경제, 천문, 지리, 문학 등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 하였는데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이용후생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열하일기〉는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호질〉· 〈허생전〉 등의 소설도 들어있고, 중국의 풍속·제도·문물에 대한 소개·인상과 조선의 제도· 문물에 대한 비판 등도 들어 있는 문명비평서였다.
〈열하일기〉는 공간되기도 전에 이미 필사본이 많이 유포되었는데, 특히 자유 분방하고도 세속스러운 문체와 당시 국내에 만연되어 있던 반청(反淸) 문화의식에의 저촉 때문에 찬반의 수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루하고 보수적인 소화의식 (小華意識)에 젖어 있는 지식인들의 비난 때문에 정조도 1792년에는 그에게 자송문(自訟文:반성문)을 지어 바치라는 처분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기 그는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패의 폭로가 더욱 원숙해졌고, 사회모순을 구체적 으로 지적하고 드러냈으며, 이용후생의 실학을 대성하기도 했다.
연행(燕行) 이전의 문학창작은 고문(古文)의 참정신을 본받아 당대의 현실을 창의 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문학론에 입각, 무명의 하층 민중 들을 立傳의 주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건실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이에 비추어 양반들의 윤리적 타락성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것이었는데 이같은 사상적· 문예적 특질은 < 열하일기(熱河日記) > 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3.2 사상적 특질
<열하일기>에 나타난 사상적 특질로 연암 특유의 북학론(北學論)을 지적 했다. 작품에서 제시된 그의 북학론은 청조 문물의 적극 수용을 근간으로 한 부국강병 책(富國强兵策)으로서 "淸은 미록 夷나 중화문명을 계승· 보존 하고 있는 그 문물은 화(華)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를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북학파 인사들의 속에서 보기 어려운 커다란 계몽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 선입견과 감각에 좌우되지 않는 주체적 사고와 현실세계를 편견없이 탐구하려는 개방적 자세, 그리고 지구중심적인 종래의 비과학적 천문학설을 타파한 지구지전설(地球地轉說), 청조문물 에서 철저한 이용, 후생의 정신 을 배울 것을 주장한 중국제일장관론 (中國 第一壯觀論)등 기존의 사상적·학술적 전 통에 내재한 진보적 제요소를 통합 한 연암의 진보적 사상이 <열하일기> 전편에 관통되어 있다. 
 3.3 예술상의 특질
<열하일기> 의 문예적 특징으로 문체의 다양성을 첫손꼽는다. 이 작품 에서 연암 은 자신의 여행체험과 청조 중국의 실정을 보다 생생히 전달하 고자 고문(古文)체와 패관소설체를 망라한 다채로운 문체를 구사하고 있는 데 문어체인 고문(古文)으로 표현된 한국말 대화장면에서는 정통 고문 (古文)에서 금기시하는 조선식 한자어와 조선 고유의 속담을 즐겨 구사하여 토속어의 정취를 돋구면서 해학적 효과를 도모 하고 있고 중국인과의 대화장면 등에서는 소설적인 문체인 백화체(白話體)를 구사 하고 있다.
  다음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사상을 피력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연암 은 이 작품에서 우언과 해학을 즐겨 사용하고 있는데 북학론 (北學論)을 중심으로한 진지한 사상적 논의들이 전개될 때마다 지리해지기 쉬운 대목 들에 해학적 한담을 덧붙임으로써 여유와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또 여행도상의 견문을 여느 연행록(燕行錄 )처럼 평면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중심의 입체적인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데 정밀한 세부묘사를 통해 대상의 본질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려는 사실주의적 경향은 특히 인물묘사에서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이고 있다.
                 
                                        4. 결 론
 
연암 박지원의 문단적 위치와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열하일기>는 작자의 생전에는 물론 사후 오래도록 공개출판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유포되었는데 당시의 보수적 문풍하에서는 시대착오적 반청사조 (反淸 思潮)를 풍자하고 조선을 낙후시킨 양반 사대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이 작품의 현실비판적 내용과 신랄한 표현이 용납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연암의 창작 태도는 현상과 실상의 차이를 인식한 데서 출발한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시대적 현상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에 바탕한 실상을 규명하는 데서 그의 문제의식과 문학적 진실이 발견된다. 연암은 당면한 시대가 왜 낙후되고 모순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한 학자는 <열하일기>는 "연암의 위대한 창조적 역량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모든 예술적 성과들이 집약되어 있는 명실상부한 그의 대표작"임을 강조하면서 "이 작품은 북학파의 사회개혁 사상을 집대성하고 있을 뿐아 니라 다채로운 표현기법과 특유의 사유구조를 통해 이를 효과적 으로 제시한 일종의 계몽문학으로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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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우성, 실학파의 문학 연암 연구, 계명대출판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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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동엽, 박지원의 시대인식과 문학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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