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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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잘난 멋
2013년 10월 02일 19시 05분  조회:8466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제 잘난 멋
 
                                                          최 균 선
 
    《장자. 추수편》에 《한단학보(邯郸学步)》라는 전고가 있는데 얘기인즉 걷는 맵시가 각별히 우아하고 대범해보이는 조나라 사람들의 걸음새를 배우러 간 연나라 사람이 결국은 그 걸음새도 배워내지 못했을뿐만아니라 자기의 걷는능력마저 잃어버리고  나중엔 벌벌 기여서 귀국했다는것이다.
    현대문명인들에게는 한낱 웃음거리로밖에 안되는 얘기이지만 우리 말 속담에 《재내비잔치》라는 말이 있는것처럼 이 이야기도 남을 흉내만 내는것을 예로부터 경계하고 꺼려했음을 알려준다. 흉내를 내는데는 원숭이를 으뜸으로 꼽아야 할것이고 버금으로는 앵무새를 추천해야 할것이다. 그것들이 어찌하여 그토록 신통히도 얄망궂게 사람흉내를 잘내느냐 하는것은 동물학자들에게 맡겨둘 일이고 아무툰 흉내쟁이 원숭이가 구경군들의 흥심을 자아내기 안성맞춤이나 아무리해도 사람으로 될수는 없는것이요. 앵무새가 총명하고 령리하여 주인의 애완용으로 귀여움을 받겠지만 역시 그런 숙명에서 해탈될수는 없는지라 이 역시 그것들의 멋일는지…
    하긴 인간도 선천적으로 모방이라는 기특한 심리를 고유하고있는데 자기보다 월등하거나 돋보이면 그저 닮아보고싶어하는것은 인간의 주체정신의 결여라고 하겠다. 예로부터 항간에 사람은 제 잘난 멋에 산다는 말이 있는데 지지리 못난이라도 제나름 대로 마음의 기둥을 세우고 남에게 끌림이 없이 스스로를 영위한다는것이 삶의 멋일게다. 시체말로 하면 생명본체의 본위성에서 오는 자립, 자존, 자강, 자애같은 이른바 주체의식을 권장하는 의미도 다분한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사람에게 이런 오기마저 없다면 살맛이 다 없어져 자기존재마저 귀찮아질테니까. 그래서 조금만 패기있는 사람이면《까짓걸, 나는 나지》하며 오기를 가지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지성인들은 자기 생활의 궤적우에 너절한 흉내따위는 아예 멀리하고 창조ㅡ자기가치의 발현에서 삶을 빛내는것이다.
    그런데 이 몇년래. 박래품의 밀물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가져오기주의로부터 아예 닮아가기, 험하게 말해서 흉내내기에 열을 올리고있는데 그야말로 단번에 환골 탈태라도 할듯이 서두르는 품이 정말 왼고개가 탈릴 일이다. 그래서《가시내가 오랍 아 하면 머시매도 오랍아 한다》는 속담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재주껏 열심히 제낚시 로 큰 고기든 붕어든 미꾸라지든 낚아보려 노력해야지 남의 다래끼에 넘치는 물고기 를 꺼내들고 붕어니 잉어니 하면 너스레를 떤다면 보는이가 먼저 얼굴이 화끈해질 일 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위에는 그 옛날의《연나라사람》이 너무도 흔하다. 무슨 옷차림새요, 말씨요, 노래창법이요 지어는 감정세계까지 본따려는듯 무병신음같 은 노래를 부르며 득의양양해하는 그런 뼈대없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쳐다보이게 된다. 따라배운다는것과 흉내낸다는것은 인격적으로 다른 몸가짐이다. 우리의 생활권 내에서 자신의 산을 조금씩이라도 쌓아볼 마음을 가져보자. 그저 모래바람이 불어치 면 모래언덕이 되고 홍수가 들이닥치면 구지레한 소택지가 되는 평지로만 한생을 자 족하지 말고 우리도 자기의 자랑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절규이다.
    잘살고 못살고가 량심과 얼까지 빼앗길 일이라면 그 사람에게 남을것은 허울밖에 더 있을가? 개방의 창문이 열린것은 좋다. 그런데 신선한 공기와 향기뿐만아니라 구리내도 페부에 스며들고 똥파리도 날아들수도 있다.
    무작정 남의 흉내만 내고 다닌다면 뼈대없는 맹종자가 될것이요, 마침내는 굴종 이 되고 그 뒤에 오는것은 자아상실과 허무감뿐일것이다.
   아하, 사람들은 제 잘난 멋에 산다는데 우리 연변의 겨레들도 오기를 부리며 좀 제 잘난 멋에 세상을 활개쳐가는것이 어떠할가?
 
                                1994 년 7 월 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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