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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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나는...
2014년 05월 09일 16시 27분  조회:4826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길을 따라 나는 …
 
                                                                   최 균 선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하면서 먹거리를 찾아 헤매일때는 아직 길이란 없없다. 길은 문명과 함께 시작되였고 그 속성은 열림이였고 사통팔달이였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길이란 막힐수도 있다. 그래서 궁지란 말이 만들어진것이 아닌가싶다. 창창 열린 바다는 가는곳이면 다 길같지만 암초를 피해서 선정한 길이 따로있고 철길도 무한히 뻗어날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부설될수 있는 곳에만 부설된다.
    산길, 대통로, 고속도로…그 모든 길은 인간의 두발이 본능으로 낸 흔적이 아니라 대자연에 그린 일종의 문명의 부호이다. 인간은 대자연을 정복하며 벼라별 부호를 수없이 끄적거려놓았다. 그것을 누군가는 인간의 언어라고 칭하였고 인간의 속성이라 하였다. 그래서 인간이 가는곳에 길이 생기였고 길이 열린곳에 하나 또 하나 문화의 새 언덕이 나지게 되였다. 
    길은 과거로부터 흘러온것인가? 미래로 굽이쳐가는것인가? 길이 리별의 포물선이라면 만나는 길은 집함점인가? 귀가와 탈가, 리향과 귀향, 인간과 사회의 부딪침에서 갈래갈래 찢어진 그 오리들이다. 길은 유혹인가? 기다림인가? 길은 유혹이고 손짓이기도하다, 일송정기슭에 태줄을 묻은 나의 동년의 유혹은 아지랑이 흐믈거리는 칼바위 벼랑길이였고 저녁때거리를 마련하려 장마당에 가신 큰엄마가 무엇인가 머리에 이고 룡문교를 건너 어스름을 밟으며 돌아오실 강변길이였다. 
    길은 동경을 그린것인지도 모른다. 길없는 길은 해란강 얼음판을 언발로 미끄럼 타고 철교를 넘어,옛그날 룡드레우물가의 골목길 에돌아 참으로 가고프던 “3.1학 교” 로 나를 불렀다. 화룡행 기차의 긴 기적소리가 저녁해를 흔드는 퇴교길에서, 여름방학 허청리를 지나 20리 수레길로 탈탈 먼지털며 걷던 길에서 부채골의 누님네 집울안에 무르익은 오얏나무의 부름을 들었다. 입하나 덜려고 방학마다 눈치밥 먹으러가면 보리밥을 가득 오이랭국에 말아주며 여윈 내등허리를 도닥여주던 사돈할머니의 주름잡힌 웃음이 배부름이였다. 그래서 누님이 사는 부채골길은 부름이였고 희망이기도 하고 기다림이기도 하였더랬다.
    학교를 쉬는 날 얼씨구 찾아올라간 칼바위에서 비암산고개를 넘어 굽이굽이 화룡벌을 주름잡던 신작로는 우물안 개구리이던 내게는 넓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 그 자체였고 어서오라고 휘젓는 손짓이였다. 나는 그 손짓을 따라 배부를수 있는 곳이면 어데든지 정처없이 가고픈 길이기도 하였다.
   수림속 산길에는 노루가 뜀박질하는 길이있고 산토끼가 곤두박질하는 길이 있듯이 인생에도 각자 걸어야 할 길이있다. 민초로서 개개인의 삶이 이질적일수는 없어도 공동배수로 설명될수 있는 계산식은 아니다. 누구의 삶에나 꿈과 현실,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 명상과 광기 등으로 얽히고 얼룩져있다.
    나의 반평생이 시들어버린 향촌의 길은 내 삶을 찌들게 한 고난의 행군길이다. 호미메고 황혼빛 물들어가는 덕이를 내릴때 먼지를 피우고 지나가는 마지막 뻐스가 모아산 고개너머 사라지던 신작로는 내 갈망을 늘여갔다. 길은 희망을 따라 떠나고 그리움을 앞세우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느긋한 마음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길은 나에게는 타향만리에 널린 내 형제를 그리던 리별의 연장선으로 침묵하면서 만남의 감탄호를 찍어주지는 않았다. 금의환향은 아니더래도 돌아오는 길이란 언제나 편안이 깔려있는 법이다.
    당신은 소잔등에 깔단을 얹고 해저무는 논길을 터벅터벅 걸어본적이 있는가? 일밭에서 돌아오는 농부의 길은 고달픈 휴식이 기다리는 길이고 밝는날 새벽같이 일어나 일밭에 나가며 하품이 기지개켜는 길이였다. 벼이삭 고개숙인 논길에 농부의 재미가 누워있고 시골샘터로 가는 단풍든 숲길에 시골사람들의 소박함과 풋풋한 인정이 숨쉬고있음을 느껴본적이 있는가? 산과 고개를 펑 뚫고 일직선으로 뺀 고속도로 에서 자가용을 질주하며 속도의 쾌감을 느낀다면 길의 견고함을 잘알수 있겠는지는 몰라도 힘들게 걸어야 하는 인생길의 끈기를 오래 짓씹을수는 없을것이다.
    한겨울 새벽바람속에 소수레몰고 이듬해 쓸 보막이용 가둑나무를 실러 동냥골로 가던 그날의 두메길은 너무나 멀었고 무거운 나무짐지고 모아산 비탈길 내리던 저녁길은 인생수업 그 자체였다. 모아툰을 떠나 영성학교의 교단을 바라고 자전거를 달리던 그 굽이길은 그렇듯 울퉁불퉁하였고 불안한 길이였다. 그리하여 내가 한평생 걸은 길들은 그대로 삶의 희로애락, 희망과 좌절, 득의와 실의의 자국이 얼룩진 길이였다.
    길은 같은 길이여도 물동이 이고 걷는 색시들 똑같은 걸음새로 걷지않듯이 인간군은 일매진 자세로 인생길을 걷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감성을 더 앞세우고 어떤이는 리지를 앞세운다. 어떤이는 아무길이나 따라서 떠돌기를 좋아하는가 하면 뿌리박은터에 호박이 넌출을 뻗듯이 울타리를 맴돌며 순리대로 살기좋아한다.
    봄, 진달래웃는 고개의 길은 젊은이들의 걸음처럼 경쾌할수 있고 민들레꽃씨 락하산을 타는 들길은 처녀애들의 웃음처럼 밝을수 있다. 이처럼 같은 길이라도 삶의 긍정적인 화폭을 그리는 굵은선일수도 있지만 불행과 슬픔이라는 삶의 그늘이 어둡게 드리워있는 오불꼬불한 연장선일수도 있다.
    이 지구촌에 갈래갈래 뻗은길은 누구에게는 꿈길이고 락망이 돌아오는 길일수도 있다. 아무튼 길은 인간이 지구에 남기는 이런저런 락서이다. 인간에 의해 금이 그어진 길이라는 선을 따라 욕망은 동분서주하지만 문화라는 꽃을 피우는 인간들을 말없이 고이받들어가고 있으니 또 그런 길이야말로 성스럽지 않으랴,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그리고 인간에 따라 길은 애절한 노래일수도 있고, 서정시가 될수도 있고 서사시가 될수도 있다. 로마로 통하는 돌길에서, 아메리카대륙을 그물처럼 누비던 인디안인들의 오솔길에서 인류의 비극을 읽을대신 현대화고속 도로에서 문명의 서사시를 읽는다면 그것은 눈물어린 아이로니이리라,
    대명동, 뽀뿌라나무 그늘진 두만강가 숲길에서 강건너 마을로 통하는 수레길을 눈빗질하며 서러운 고국애를 느끼였던 내가 너무 쎈치멘탈한것이였을가? 산천을 누비며 꿈을 꾸는듯한 마을들을 이어놓은 향촌의 옛길들에서 서정을 느낄수 있었던것도 인제는 숲속으로 숨어버린 산길처럼 서글픈 추억의 오솔길이 되였다. 그대신 바쁘고 시끌벅적한 대도시의 실꾸러미처럼 엉킨 골목길에서 인간이 자연과 박자를 맞출수 없는 비인간화된 현대문명의 삶을 체험한다면 내가 너무 보수적인것일가? 인간의 냄새가 풍기는 길을 묻어버린 인간은 우습게도 이제와서 산길을 선호하니 너무나도 리기적인것은 아니란 말인가?
    내 생각이 당치않더라도 버드나무 그늘진 해란강뚝길을, 벽계수 돌틈사이로 흐르는 대동골 시골길을 하냥 걸어보고 싶어진다. 명상적이면서도 청청한 민요가락같은 향촌의 길에서 논과 밭, 산과 계곡, 구름과 산바람, 자연의 친근하고 고르로운 숨소리를 진정한 의미에서 느껴보는것은 고달픈 꿈을 다독이는 소야곡이기때문이다.
    시대의 현대교통의 성과를 과시하고 속도의 쾌감과 더불어 길은 갈수록 많아지고 갈수록 넓어진다. 그러나 그 옛날 수레길들에 추억이 끌리고 미련을 흘린다면 그것이 곰팽이낀 랑만이나 시대락오자의 거부감때문인가? 아니다. 자연과 길의 조화로운 만남속에서 살다가 가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이다.
 
                                                           2007년 7월 10 일             (연변문학 2014. 제5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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