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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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30) 나 그리고 모두의 존재
2015년 01월 27일 07시 24분  조회:6762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나 그리고 모두의 존재
 
                                             진 언
 
   내가 있기에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말은 유심주의 궤변이 아니면 과대망상으로 들릴것이다. 그런데 조지 버클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철리이다. 그는《지각되는것만 존재한다. 지각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쓰고있다. 이 말은 아리숭한것 같지만 “보이는것만 보인다. 보이지 않는것은 없다”라는 그의 말에서는 근거가 확실해지는것 같다. 이 시점에서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것이다.
   개체의 존재의 리유는 무엇일가? 하는 물음은 너무나 막연한데 개체가 존재하는 절대적인 리유는 없는듯하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먼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내달아올것이다. 첫번째 질문에 답은 잘 모르겠지만, 두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사람들이 갖고있을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없으면 두번째 질문의 답은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저저 행복하게 되기싶어하고 행복하게 되는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라 할진대 그게 진정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이고 충분한 리유가 되는것일가?
   우리가 존재하는 리유를 숙명적으로 정해졌다고 생각할수 있고 정해진것이 아니라 리유없이 그렇게 존재하게 된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누구나 목적이랄것도 없이 자연선택에 의해 우연히 생겨났다고 생각하면 진화론을 믿는것이 되고 일컬어서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믿으면 창조론을 신봉하는것이 되는것인가? 아무튼 인간의 생명체는 복잡하지만 생성과정은 단순한 진화선상에 있다.
   인간 개개의 생명체가 성유희과정에서 만들어진것이라면 부모는 생명제조기가 되는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말로 생명현상 또는 우주의 진화법칙이라 정의한다. 우주에는 변하지 않는 힘의 크기와 성질이 있는바 우주상수라고 한다던가? 너무 거창하게 까다롭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누구의 생명체나 우연의 걸작이지 필연의 왕국에서 하사한 선물은 아닌것이다. 물론 남녀의 결합이라는 원인제공이 있었기에 우연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결과에 이른것은 사실이지만도,
   이렇듯 이미 일어난 일은 가능했기때문에 일어난것으로서 전혀 불가능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우연히 태여났지만 어섯눈을 뜨면서부터 먼저 욕망이 생겨나고 욕망을 앞세우고 행복해지려고 버둥대다가 인생이 끝난다. 대관절 생로병사를 누가 정했을가? 자의가 아니게 발생하는 일들. 강압에 의해 알게 되는것들. 몰랐으면 좋았을 일들, 당하지 않으면 좋을것을 속절없이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네의 그 모든것을 누가 주재하는걸가? 나는 알고싶어도 도저히 알수 없다.
   하지만 모두의 존재리유는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사활적인 박투의 력사에서 증명되고있다. 인류중심의. 개개인의 자기중심주의가 생성하기 시작하면서 크게는 자연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생활조건을 개선해왔고 여타 생명체를 죽이여 보다 좋은 우질영양을 섭취하며 번성해왔다. 그렇게 살아온 리유는 자연체계에서 인류만이 리기적인 존재이기때문이다. 본성이 이렇게 되다보니 리기적인성을 뛰어넘어 리타주의적삶을 영위할 조화로운 환경을 스스로 철저히 망가뜨렸다.
   나는 왜 사는가? 도대체 누구(무엇을)를 위해 사는가 하는 물음에도 대답이 획일적이 못된다. 향락주의자들은《인생의 목적은 즐거움이다.》라고 말할것이요 탐욕자들은《산다는것은 많이많이 소유하는것, 그것이 전부》라고 주장할것이다. 행복은 자기가 소유한 물질로 계량된다고 생각하기때문일것이다. 그런데 유감은 아무리 많이 소유했어도 공수래공수거라 한때 존재했었을뿐 존재자체가 허무하지 않을수 없다.
   이 세상이 확실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것은 알쏭달쏭한 철학유희일지라도 내가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엄숙한 실제문제로 된다. 스스로 자기 존재의 리유가 명확해지면 이 세상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것으로 느낄수 있으며 되돌아와 세상이 고맙게 생각된다. 사실 세상은 내가 존재함으로써 실질상 의미로운것이며 내가 없는 세상은 나에게 무의미하다는 말을 할 기회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게 되지만 자아의 존재는 타아의 존재와 더불어 가능한것은 명확하다.
   내가 있기에 수많은 그들이 있고 그들이 존재하기에 내라는 사람으로 구별되듯이 내가 있기에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고 내가 있기에 가정이 존재하고 나아가서 사회가 존재한다. 이런 사유방식을 거꾸로 돌리면 세상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가 된다. 결코 궤변이 아니다. 벗이 있기에 내가 벗이 되고 학생이 있기에 내가 스승이 된다. 이것은 소박한 상대론이지만 자기 존재의 리유를 해명하기에는 충분한것같다.
   하다면 우리 모든 서로의 필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우문이면서도 현학적으로 들릴수 있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랑을 제외한 모든것에 론리가 성립된다, 폭력과 강탈, 전쟁, 빈궁과 기아, 불평등은 매우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진행된다. 비록 인류전체가 이런것들을 조장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가피한 무질서의 질서로 보고있는것이 우리들이 아닌가?
   더 나아가서 자연에로의 회귀를 선호하는 현대인들이 정녕 자연속에 일원으로 되여지고 있는가? 자연학자들은 자연의 구성요소들은 련속적인 균형속에 존재함을 증명해내였다. 이들 요소들은 상호간 긴밀히 련결되여있고 상호의존하고 있어서 사소한 부분이나마 해치는것만으로도 자연체계의 균형을 위협된다고 하였다. 자연의 균형에 대한 비밀은 자연속의 모든 부분들간의 호혜관계에 있다는것은 일반인도 다들 아는 상식이다. 이 호혜적관계는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질서있고 분명하게 드러난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확실히 보여주는 개미, 벌같은 곤충과 원숭이, 캉가루같은 포유류에서부터 우리 몸속의 가장 단순한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상부상조의 실례를 잘 보여준다. 연구가들은 “나눔과 배려”는 채소류 사이에서도 존재하고 심지어 무생물의 립자들조차도 자신의 정체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자연은 자체의 파괴를 감행하지 않으면서 완벽한 조화속에 존재한다. 대자연의 모든 문제들은 인류가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고 망태기로 만들기때문에 생겨났다. 인류는 대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한 성원임을 알면서도 리기적인 무절제한 작동을 소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감행해왔다. 결과적으로 자멸을 초래하는 우둔한 짓이라는것을 모르지도 않는다. 우리가 자연을 기시하는 한 친환경을 호소하는것은 요란하나 그렇게 텅빈 구호로서 메아리마저도 울리지 않을것이다.
   인간관계는 어떠한가? 억조창생이 얽혀도는 이 사회에서도 남들의 고통속에 기쁨을 얻고 다른 이들의 불행을 자신들의 행복의 기회로 삼는다. 물론 모두가 항상 의식적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것은 아니나 그것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아래 당연한 생존방식으로 공인되고있다. 강자는 강해서, 권력자는 권세를 휘두를 위치에 있어서, 부자는 돈을 물쓰듯 쓸수 있어서 존재의 리유가 당당하다고 생각할것이다.
   하다면 그게 전부일가? 잘살고 못살고를 막론하고 누구에게 거부감을 가지게 하는 귀찮은 존재이다. 귀찮은 존재일수록 유아독존인데 내심으로 전전긍긍할것이다. 반대로 가진것은 없지만 타자에 절실히 수요되는 따스한 가슴을 지닌 존재로 되여질 때 스스로도 이 세상에 존재할 충분한 리유를 가지고 산다고 느긋하게 생각할수 있다. 나의 존재가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유아독존인양 으시대는것은 무뇌아이다. 내가 소중한 그만큼 남들도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면 외로운 늑대와 무엇이 다를가?

                                                 2009. 10 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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