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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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의 노래
2015년 12월 10일 13시 35분  조회:5002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자족의 노래
 
                              최 균 선
 
   보통 흥겨우면 코노래가 나온다. 흥겹다는것은 모종 자족의 표현이다. 하지만 코노래는 정해진 곡이 따로 없다. 하기에 이 세상에 가장 엮기어렵고 부르기도 어려 운 노래가 있다면 아마도 자족의 노래가 아닐가싶다. 왜냐하면 자족은 욕망의 도달점 에서 오지만 때때로의 자족뿐 욕망의 문에 자물쇠를 잠글만큼 인간의 마음마당에는 자족의 계선이 없기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불만타령은 시끌벅적하나 자족의 노래는 없고 또 아무도 지어낼수 없다. 그래서 자족의 애원성이나 엮어보자는게다
   인간의 욕망의 바다는 아롱다롱하고 호한한만큼 설레임이 멈춘적이 없다. 스스로 자족할줄 알아야 한다는 대도리를 모를 사람이 거의 없을것이고 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것도 모래위에 쓰는 소녀의 사랑의 맹세같다는것을 잘 안다. 가진것이 별로 없는 사람일지라도 자족하면 질박하게 웃을수 있지만 만족이 끝없는 사람은 자족의 웃음이 새여나올 틈이 절대 없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서 나오는가? 피다그라스는 욕망이란 심장에서 생긴다고 했고 테라크리크는 신장에서 생긴다고 했다. 허나 플라톤은 전자들의 말을 죄다 부정하고 욕망은 배꼽과 복막사이에서 온다고 선포했다. 그의 론단은 전세계를 진감시켰고 그 후 2천 년을 세계를 진감시켰다. 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느 말이 맞는가 하는것이  그리 요긴하지 않다. 요는 불만족은 욕망의 괴태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100만년전에 원숭이였던 인류는 90만년이란 긴긴 세월을 거쳐 조잡한 도구를 만들줄 알았고 10만년후에야 불을 사용할줄 알았다. 1만년전에 인류는 밭에 곡식을 심어먹을줄 알았다. 화페를 만들어내면서부터 인간은 욕망을 살수 있게 되였으며 그 욕망을 나타내는 언어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욕망은 더 팽창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지혜가 생기면서 무궁한 욕망이 생겨났다는 해석이 되겠다. 그때로부터 인류는 자족 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였다.
   판도라의 신비한 그 함뚜껑이 열리자 제일 먼저 뛰쳐나온것이 질병과 죽음이였다면 뒤미처 뛰여나온것이 욕망이란놈이였을가? 인간의 욕망은 쌍날검이고 사회진보를 추동하는 원동력이면서도 사회발전에 악성종류이다. 인간의 욕망이 있기에 참혹 한 전쟁의 재화가 끝난뒤의 길함과 통일이 있게 된것이고 생명의 번성과 화해가 있게 된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있기에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여 달에 오르고 사대양에 들어가 자라를 잡는것이다.
   욕망이 있었기에 상전벽해가 있게 된것이고 력대의 영웅들도 욕망의 사막에서 버둥대다가 저녁연기처럼 사라진것이다. 다른 한방면으로 욕망이 있기에 끝없는 살륙의 초연이 가실새 없는것이고 남녀의 란륜과 음탕이 있게 된것이며 탐욕이 횡행하게 된것이다. 하나의 종결점은 모종의 한도이다. 그러나 누가 이 한도를 정할수 있는가? 뿌쉬낀의《어부와 금붕어》에서 그 로파가 바로 전형적인 실례로 된다.
   이렇듯 욕망은 생존의 의의이고 최종목적은 그 욕망을 달성하는것으로서 인류의 발전사는 결국 용망의 확장사이다. 그 과정에 인간은 완전히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욕망은 다종다양하다. 례하면 권력욕, 명예욕, 금전욕, 구지욕, 애욕, 성욕, 식욕 등. 유일하게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을 무치하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은 욕망이다.
   욕망은 우리들이 다오를수 없는 산밑에 서있는것과 같다. 머리를 들어 산정을 바라며 단숨에 오르고 싶어진다. 가령 제일봉에 올라다해도 다시 달을 따고싶고 해를 따고싶어진다. 겉에 드러난 풍경을 향수하면서도 그 산밑에 있을지도 모르는 지하보 물에도 욕망이 손길을 뻗친다. 탐욕과 욕망은 인성이 추악하게 된 근원이 되였다.
   아무튼 한번 뛰쳐나온 욕망이란 놈은 요술방망이 같은 유혹을 꼬리에 달고 무시로 사람을 꼬드기며 무한정 앞으로만 달려갔다. 욕망자체가 사회적문제로 될수 없지만 인간은 무제한한 욕망을 창조해내고 그것에 불만족하여 다른 욕망을 마중하느라고 혈안이 되여 광분하였다. 죽음보다도 굶주림보다도 무서운것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버리는 탐욕이건만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욕망의 손으로 만져서는 안될것을 만지지는 않았을가 하는 곤혹을 손과 함께 씻는것이 인간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을지라도 죽을때에는 빈손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설사 많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지라도 자식이 능히 그 재산을 지켜나간다는 보장이 없기에 또 걱정이다. 그래도 자손만대를 내리 물처럼 써도 모자라지 않게 더욱 더욱 많은 재산을 챙겨서 후대에게 물려주려고 아득바득이다.
   인간의 사유기능은 원래 생계의 탐구용이었으나 오늘날에 탐욕의 하녀로 되였다. 꽃은 피였다가 지고 달은 만월로 웃다가 스러지기 마련이다. 복이있어 많은 재산을 주물다가도 일조에 거지가 될수도 있다. 사람이 정도로 살지 않고 부정축재하면 고대 광실에 금은보화 넘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거나 말거나 심보 한번 고약한 자들은 내노라 으시대며 살아간다. 어떤 자리든 배탈이 나더라도 차례진것은 물론 남의것도 앗아먹지 못해 냠냠거리는 무리들이 잘난 사람으로 치부되는 현실이다.
   스스로 자기처지에 만족할줄 알아야한다. 로자의 도덕경에 “완전히 이루어진것은 모자란듯하다. 그러나 쓰임에는 다함이 없다. 완전히 가득찬것은 빈듯하다. 그러나 쓰임에는 끝이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은 얻음에서 완전함을 삼가하라는 뜻이다. 모든것은 마음의 자세에 달려있다.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은 날마다 생활이 즐겁지만 탐욕을 부리는 사람은 항상 근심과 걱정에 싸여 지낸다. 그들에겐 행복지수가 미지수이기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추구는 인간상정이지만 지나치면 량지를 상실하고 후안무치해질수밖에 없다는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부유할때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다면 덕망이 높고 권세를 등대고 겸손을 잃으면 패덕자로 남을것이다. 가진것이 별로 없는 사람도 자기 처지에 자족하는 사람이 성자라면 늘 불만족의 피리를 부는 사람은 무엇이라 해야 하는가?
   욕망은 하나의 문이다. 그문에 때때로 자족의 자물쇠를 잠글줄 안다면 코노래가 흥얼겨려질것이다. 복은 결코 빌어올수는 없다. 복은 받을 복이 있는 사람이 받는다. 자고로 정많고 어질고 인심이 후하면 못사는게 정상이 되였다. 개도 안먹는 량심을 앞세우고 불의와 등지면 생활이 팍팍기 마련이지만 안빈락도에 자족할줄 알기에 탐욕병에 시달리지 않았다.
   일컬어 군자는 어찌하여 스스로에 족하며 일컬어 소인은 어찌하여 늘 자족하지 못하는가? 원래 가진것 넉넉하지 않으니 조금 얻어도 자족함에 남음이 있고 소인들은 그만하면 족하련만 만족에 기갈이 들었으니 언제나 부족타령이 나올수밖에 없으렸다. 분복에 따라 욕심부리면 족하지 않을리 없고 마음에 부족의 공간을 내놓고 살아가면 자족할 때가 언제리요.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쓰면서 사는것보다도 더 훌륭한 삶은 없다. 그리고 실제로 보다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는것보다도 더 큰 만족감은 없다. 내게 있는것으로 쓰면 부족하지 않을것이나 내마음밖에 있는것마저 모조리 죄다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면 어찌 능히 자족이 깃들랴, 한바가지 물로도 갈한 목을 추길수 있으나 금준미주로도 주지육림의 욕망을 잠재울수 없는법, 자족이 얻음에 있다기보다 느낌에 있지 아니하랴?! 우리는 언제면 자족을 안고 고요히 잠들수 있을가?  

                            2009년 6월 10 일 (2015년 9월6일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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