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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의 예술매력
2016년 02월 13일 12시 19분  조회:4602  추천:1  작성자: 최균선
                         《메밀꽃 필 무렵》의 예술매력
 
                                       최 균 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현대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다.〈메밀꽃 필 무렵〉(조광, 1936. 10)은 그의 산문적 서정성이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인 메밀꽃 핀 개울가는 단순히 정경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를 하나로 포함하며 인연의 매체로 나타나 있다. 소설은 우선 소설적인 취미성보다 시적정서가 다분하여 이색적이다. 소설은 언제 읽어보아도 매번 애틋한 감상에 잠기게 한다. 그만큼 소설은 분위기와 서정성을 중시한 시적 수필의 소설로서 평가받고있다.
   소설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한 장돌뱅이의 떠돌이 인생의 비애를 그려내였다. 하면서도 소설은 현실조명에 초점을 두지 않았고 장돌뱅이라는 특정한 계층의 현실적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기에 전형형상부각은 의식적으로 소외되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장돌뱅이 허생원이 동이라는 청년이 자기 아들임을 알게 되는 암시적인 과정을 통하여 애욕과 혈육의 정에 가슴태우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짙은 향토색을 바탕으로 메밀꽃 피는 달밤의 정경을 풍경화처럼 그려보이면서 19세기 30년대 조선사회에서 밑바닥인생을 사는 약세군체들의 눈물겨운 삶을 관조하고있다.
   하얀 달빛아래 메밀꽃 핀 산기슭을 굽이도는 기구한 밤길, 그런 밤길을 걷는 남다른 정취가 있기에 허생원은 그날 밤의 인연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것인지 모른다. 이 소설에서 길은 지리적공간만이 아니라 소설의 플롯을 한줄에 꿰여가는 기본선으로 장치되여 있는바 허생원의 떠돌이 삶의 현장은 그야말로 구배많은 산길처럼 굴곡적이고 말하기조차 숨가쁜 가파로운 언덕길처럼 힘겨운 인생길이다.  
   이 길을 따라 허생원의 인생마당에 만남과 리별이 있게 되고 이 길에서 자기의 아들 동이와의 우연한 만남이 주어지게 된다. 이처럼 소설에서 길은 만남과 헤여짐, 그리고 또 다른 만남이라는 작품 전체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소설적 배경이자 기본장치이기도 하다. 귀속을 모르는 떠돌이 삶을 운명처럼 수용하는 허생원의 삶의 방식을 조명하는 길은 허생원의 숙명적인 삶을 표상하는 자연적 배경이고 달은 성서방네 처녀와의 아름다운 인연을 이끌어내는 매체가 된다. 그만큼 메밀꽃 필 무렵의 달밤은 이 소설에서 전형환경으로 펼쳐지고있다.
   메밀꽃이 피였던 달밤. 한 녀인과 맺은 단 한번의 인연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그러나 다시 만날수 없는 아픔을 안고 여기 저기 떠도는 한 장돌뱅이 애환을 통해 삶의 한 단면을 시사하면서 만남과 헤여짐의 구도를 갖춘 이 소설은 류랑인의 정처없는 길이 곧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인물의 미묘한 운명을 드러내며 랑만적 정취를 안겨주는 달밤의 산길은 허생원 일행에게는 생업의 길이자 곧 고달픈 인생길이지만 소설에서는 삶과 자연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세계로 펼쳐진다. 시끌벅적한 현실과는 격세적인《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듯이 들리는》 몽환세계이다. 여기에 한 늙은 장돌뱅이의 사랑의 추억과 인연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애환이 얼기설기 얽히고 거기에다가 운명적으로 결합된 나귀를 등장시킴으로서 인간과 동물의 본능적 애욕을 교묘하게 병행시키고 있다. 이런 구성방식은  여느 소설과 달리 이채로운 소설적 묘미를 안겨주고있다.
   소설을 언어예술의 가장 다채로운 화랑이라 할수 있는바 이효석 소설의 또 다른 예술매력은 언어예술의 특색이다. 특히 여느 소설보다 세련된 고유언어구사로서 심목속에 깊이 새겨진다. 례하여 궁싯거리다, 칩칩스럽다, 농탕치다 등, 허생원 일행이 달밤에 걸어가는 장면은 묘사를 위한 묘사가 아닌 진실한 생활정경을 그리고있다. 작가는 허생원이나 동이의 인생의 실상보다 숨막힐듯한 메밀꽃이 피는 달밤의 정경을 나타내려는데 력점을 찍고있다. 조선달, 허생원, 동이 등은 인격체로서의 소설적 인물이 아니라 나귀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서의 사물의 차원에 해당되는 눈물겨운 존재들로서 인생현장의 하바닥을 헤매이는 민초들이다.
   소설은 주로 세사람의 인물로 스토리(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지만 허생원의 생애나 동이의 기구한 운명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나면 등장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남는다. 중심인물인 허생원은 숫기가 없이 외곬으로 살아온 소박한 자연인이란 점에서 전통적 토속적인 한국사회의 인물이라고 자리매김 한 평론가도 있는데 세사람 모두 하나같이 세상에서 소외된 가난하고 고독한 떠돌이 약자들이고 생활의 소용돌이속에서 밀려나있는 변연인들이다.
   어찌보면 소설의 모티브(중심사상)는 작품의 배경속에 녹아있는바 궁극적으로는 “혈육찾기”에 귀결된다. 봉평장터와 봉평에서 대화로 가는 길에 달빛과 메밀꽃 그리고 개울은 하나의 산수화를 련상시킨다. 따라서 이런 자연환경은 자연과 인간의 친화 또는 조화를 의미하는 랑만적공간이다. 이런 랑만적이면서도 가슴이 쓰리게 하는 배경은 작품의 정서를 애수에 찬 그리움으로 이끌어 간다.
   소설에 나귀가 가지는 상징성의 부여도 특색있다. 나귀에 대한 외모묘사와 행동묘사에서 나귀는 허생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존재로서 본질적인 허생원의 형상이라고 볼수 있다. 허생원과 함께 운명적으로, 정감적으로 융합된 나귀가 가지는 상징성은 소설의 예술성을  특이하게 살리는 구실을 하고있다. 즉 주인공 허생원의 성격창조나 예술상의 효과를 위해서 나귀의 래력이나 인간적인 운명과 함께 그 외모나 행동의 양상까지도 류사하게 묘사된것이 바로 목적의도적임을 시사한다.
   허생원과 나귀의 관계가 단순한 소설장치에 머물지 않고 대등관계로 주제와 결합시킨것은 확실히 이효석작가만의 창작기교이다. 즉 원초적인 삶과 본능의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노린듯한 작가의 주제의식에서 인간의 참된 모습을 찾으려는 작가의 기본관념이 이 이채로운 소설을 낳은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설의 알심들인 정서적분위기의 조성과 더불러 이점이 소설의 가장 주요한 성공점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사실 소설은 이야기로서는 별로 정채롭지 않고 구두로 전달하려면 줄거리가 굵직하지도 않다. 비록 얘기거리가 있지만 특별히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도 긴장감도 없다. 개연성은 있지만 막연하고 오히려 수필같은 서정의 흐름이 독자를 더 매료시킬뿐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 갈수 있는것은 작품속에 숨어있는 성서방네 처녀의 구체적인 생활상과 운명이 떨어버릴수 없는 관심때문이다. 동이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만 넌지시 암시할뿐이지만 관심이 쏠리고 하회를 기다리게 하는 인물이다. 직접 등장시키지 않고 간접묘사로 전달하는 서술기법이 소설장치에서 작가가 재능이 빛발치게 한 창작기교라 할수 있다
   과연 성서방네 처녀는 어찌하여 조선달에게 몸을 바쳤고 씨까지 받게 되였가? 라는 의문이 먼저 나서고 역시 피치못할 연분이 아니면 숙성한 처녀의 심신상의 오묘한 변화와 충동이였나? 하고 나름대로 류추하게 되고 어쩌면 해마다 메밀꽃 필 무 렵이 되면 순정을 앗아간 조선달을 다시 만날수 있을가 해서 속절없이 물레방아간을 지켜보는 애절한 모습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막연한 그리움속에 조선달을 감싸안고 어려운 삶을 영위하는 한 앳된 녀자의 슬픈 조우가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소설은 예술수법상 대화에 의한 서사의 진행, 궁금증을 꼬드기는 은근한 암시, 봉평과 제천 등의 지명의 반복, 의식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기법 등으로 소설의 형식적 아름다움을 남다르게 안겨준다.
   소설“메밀꽃 필 무렵”은 엄밀한 의미에서 분명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메밀꽃 필 무렵의 달밤의 산길을 허위허위 걸으며 감동할줄도 아는 허생원의 자연에 자기 인생을 기탁한 원시적인 인간으로서의 그 막연한 인생자세가 더 감상적이다. 목적의도적인것은 아니지만 자연의 일부가 되여 살아가는 그의 삶을 평론가의 시각에서 반사회적이고 반문명적인 정서라고 분석하지만  그것이 이색적으로 랑만적색채를 띠고있다는 점에서 또한 경이로운것이다.
   소설에서 유명한 메밀꽃 핀 달밤의 꿈속같이 몽롱한 환상적 세계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주인공과 그들 일행의 일상과 투박한 어투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시적인 묘사부분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바 그속에 주제가 융화되여 있다고 생각할만도 하다. 어찌보면 소설가로서의 이효석의 순수 인간적인 지향이 작품에 침투되여 다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함으로써 명소설로 거듭나게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2008년 6 월 1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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