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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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 60) 이른바 “체면”을 말해본다
2017년 07월 24일 07시 10분  조회:3106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이른바 “체면”을 말해본다
                  
                                                                      진 언
 
    체면이란 하나의 동태적이면서도 모호개념으로서 자초에 체면이란 낯(얼굴)이라는 의미였는데 우리 말에서는 얼굴이라기보다 남을 대하는 도리,례의, 렴치지심을 가리킨다. 체면은 부동한 계층, 부동한 력사시대, 부동한 지점에서 부동한 내용을 가진다. 사람들이 그것을 사회심리나 행위를 분석하는데 리용하면서부터 그 함의가 유형무형의 사회심리존재로 부연되였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심목속에 비 춰지는 공공적인 이미지로 되였다.
    그런데 이 체면은 다른 사람이 주는것이고 다른 사람의 체면은 “나”가 가늠하게 된다. 얼굴은 내게 있고 수치심은 내가 느끼지만 체면은 철저하게 타률적이기에 남의 눈을 벗어나면 어떤 짓도 할수 있는 취약성을 내포하고있다. 체면은 자아속에 무시로 저항감을 가지게 함으로 사람을 무척 피곤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남의 눈을 의식해서 생기는 체면때문에 자신을 숨기는 은폐증이 인간본성이 되였다.
    얼굴에도 질적인 얼굴과 사회신분적인 얼굴이 있듯 체면에도 자주적인것, 교제성적인것, 능력적인것이 있다. 따라서 체면은 시간, 지점, 문화에 따라 부단히 연변될수밖에 없다.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고 했거늘 얼굴을 들고 다니는 정상인치고 체면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천생 체면과 등지고 살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다. 체면을 고려하거나 체면을 세우려는 심리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기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처럼 체면을 강구하는 행위의 근원은 우선 얼굴의 공능이 인상분식의 공능에 있으므로 단순히 수치를 느끼거나 노하는 등 정서파동의 “청우계”만이 아니라 처세학이 된것이다. 두번째는 사회교제공능으로서 체면과 감정이 융합되여진다. 나무는 한치 껍질로 살고 사람은 한치의 얼굴로 산다는 속담은 결국 례의와 수치지심에 근원을 두고 만들어진것이라 할수 있다.  
    우리 말에는 체면에 관한 표현이 많다. 례하면 체면이 없다. 체면이 서다. 체면이 깎이다. 체면차리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체면을 구기다. 체면치례, 체면불구하다 등, 그리고 량반은 물에 빠져도 개발헤염은 안친다. 량반은 얼어죽어도 겨불을 쬐지 않는다. 랭수마시고 이발 쑤신다. 가난할수록 기와지집 짓는다 등 속담들도 있고 이와 체면이 밥먹여주나? 체면차리다 굶어죽는다는 반대의미의 속담들도 있다.
    우리 민족은 그런 문화배경하에서 얼굴은 자존과 존중의 의미가 고유되여 있는바 나의 체면만 생각할게 아니라 대방의 체면도 살려주는것이 긍정과 존중이다. 그래서 손바닥만한 얼굴에서 체현되는 체면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것은 자존의 표현이 된다. 즉 전통적의식에서 고찰한다면 체면은 바로 인간의 존엄이며 산사람의 징표이기도 한것이다. 한 사람이 체면이 서고있는가 하는것은 곧 그 사람이 얻은 사회적평가로 된다. 그리고 당사자로서는 감각문제이다. 즉 렴치와 직결된다.
    이처럼 개인도 일단 체면이 깎이거나 구겨지면 더없는 수치감을 느끼며 심지어 모욕감으로 번지기도 한다. 흔히 사람이 되여야 한다는것은 실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체면이다. 즉 다른 사람이 보아주고 내리는 평판이기도 한것이다. 돌고돌 아서 결국 체면이란 남에게서 평가받지만 자기를 위한것이다. 이점은 개방형이고 주체적인격을 내세우는 서양사람들의 안목에는 매우 불가사이한 문화심리이다.
    물질생활이 풍요해지면서 현대인들의 체면의 내용은 더없이 풍부해지고 다채로워졌다. 이를테면 고층빌딩에 주숙하는것보다 자기별장에 드나드는것이 더 체면스럽다고 느끼며 국산승용차보다 외국제승용차를 몰고다녀야 체면이 한껏 부풀려지는것으로 생각한다. 호화사치품을 사들이는 경쟁의 심릴바탕은 필수품의 수요인것이 아니라기 실 낯을 빛내기 위한 체면세우기 경쟁이다.
    중국사람들의 체면차리기는 각별한바 어떤 때는 일종 절개와 골기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굶어죽는것은 작은 일이지만 절개를 잃는것은 큰일이다.”,“옥이 되여 부서질지언정 기와가 되여 오래 보존되지 않는다.”,“유자는 죽을지언정 모욕을 받지 않는다”는 속담, 경구들이 만들어진것을 보아서도 그게 잘 읽혀진다.
    체면을 중시하는것은 일종 세계적, 전인류적인 심리현상이지만 아마 첫자리에 앉히려면 중국사람들을 뒤로 미뤄서는 안될것이다. 그러나 중국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빈궁과 락후한 인문환경에서 서식하다보니 “체면”의 실질적의미는 다 알지 못하였다. 로신의《차개정잡문》에서 체면에 대하여 말한바 있는데 아마 아Q식의 자아승리법으로써 세우는 체면은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형상공정일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이든 체면이란게 중요하다는것을 객관적으로 절감하게 된다. 체면이 밥을 먹여주지 않고 생명활동에 동력이 되지 않으며 나아가서 사회를 유지해나가는 근간이 되지는 않지만 아무튼 인간은 체면을 알기에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할 행위는 절제하는 리성적인 고급동물이 된것이지만 자기 인격력량과 잔신감을 가지고있고 소탈한 사람들은 남의 눈치만 의식하며 체면으로 허례허식같은 얄팍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체면은 몰렴치, 몰량심과 정비례된다.
    체면앞에서는 얼굴가죽이 얇다랗고 도덕앞에서는 소가죽같으면서 체면만은 챙기니 현대문명사회에서 체면이란 심오한 의미도 비틀어지는것인가?  도덕은 변해도 량심은 변하지 않는다고 격언이 있듯이  량심을 버린 인간에겐 진실로의 체면도 있을수 없다.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규범이 도덕이라면 어떤 행위에 대해서 옳고그름, 선악을 구별하는 도덕적의식이나 마음을 뜻하는것이 량심이다. 우스운것은 도덕도 량심도 구겨박은 위군자들이 체면치례는 으뜸이라는 사실이다.
    체면은 정상적인 도경을 통하여 얻는 성망으로 세워지는데 곧 명예라하고 다른 한방면으로는 자아팽창의 욕망의 체현인데 허영심의 결과물이다. 체면은 큰 범위로 말하면 사회지위와 명망의 상징이 되고 개체의 존중과 자존의 수요에 따른 외재적 반응이다. 체면은 개체가 지향하는 리상적인격과 보다 완성된 사회적자아형상수립을 추구하는 주관적욕망의 반영이다. 여기서 얼굴과 체면의 의미는 달라진다.
    한국텔레비화면에 가끔 사이비한 정경이 나타나는데 이를테면 인면수심의 극악무도한 흉악범들도 체면(낯짝)이 가려운줄 아는지 꽁꽁 가리우고 있는 모습들이다.  쪽제비도 낯이 있다더니 그래서인가? 곡조가 틀린 “인권타령”인가? 피해자들의 가정이 파탄되고 피해자는 영안실에 굳어져있는데 피해자의 피해회복은 외면한채 범죄자 인권타령만 요긴한가? 돼지굴앞에서는 모자를 벗지 말라는 격언이 있는데 흉악범에게 이른바 체면을 감싸주는것은 아무래도 그렇다.
    아무튼 인간으로 생겨나서 체면이란 곧 그 사람의 인격의 표상이다. 체면은 주체적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객체를 선택한다. 실속없이 체면을 살린답시고 혼자 잘난체, 군자연 “도모안연(道貌岸然)”을 표방하는것은 다 얄팍한 분식이다. 기실 체면치례에 정신을 못차리는 자들은 인간의 체면의 깊은 함의를 모르고있는것이다.
    인간의 체면욕구는 종국적으로 자기표현의 추구이다. 그러나 “나”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서양인들에 비하여 “나” 보다 뭇눈길을 의식하다보니 손바닥만한 얼굴에 죽고사는 동양인들의 “체면문화”는 흔히 허례허식을 낳고 허영을 빚어가며 진짜 체면을 구긴다. “체면”은 살아가는데 중요한 가치이지만 “체면” 이 모든 가치를 능가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역시 인간의 원초적인 비애라 할가,  
   
                                                    2014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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