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 그리고 언어의 자유와 상 ㅡ한춘시집 <<높은 가지끝에 달린 까치둥지>> 소감 / 최흔
2019년 05월 02일 2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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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룡관
하이퍼그리고언어의자유와상
ㅡ한춘시집 <<높은 가지끝에 달린 까치둥지>> 소감 / 최흔
한춘은 우리 현대시의 기수이다. <<높은 가지끝에 달린 까치둥지>>(이하 <까치둥지>로 략함)는 그의 마지막 시집이며 그가 추구한 하이퍼시의 정수가 집결되여 있는 시집이라고 생각된다. 이 시집은 우리들이 배울바가 많은데 필자는 오늘 세가지 문제에 대하여 말하고저 한다.
첫째.하이퍼시기법을중심으로
<< 까치둥지>>는 하이퍼시기법을 중심으로 한 시집이다. 하이퍼란 우리 말로 하면 강대하다는 뜻이다. 하이퍼시란 횡적구성으로 되는 시를 말하며, 이미지와 이미지가 련결되기보다는 차원이 다른것으로 된 시를 말하겠다. 하이퍼시라는 말은 영어권에서 온것이지만 그뿌리가 중국에 있다. 8세기 시인 맹호연으로부터 오늘의 뻬이도 쑤팅등 시인들에게 이르기까지 중국의 유명한 시인들은 횡적구성의 시를 쓰지 않은 시인들이 없었다. 중국사범대학 문학박사이며 한국의 외국어대학의 교수인 허세욱선생이 집필한 <<중국 고대명시선>>과 <<중국현대명시선>>(상하)을 보면 하이퍼시가 중국시문학의 한개 굵직한 산맥을 이루어왔다는것을 알수 있다. 하이퍼시를 서양시로만 보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래에 한춘시를 구체적으로 보기로 하자.
돌샘을 쫓아날고있다
연회색 구제비의 깃털은
봇나무 가지새를 쫓아
순은의 비늘이 번쩍이고
어느 가시덩굴속에 숨어
날름거리는 살모사의 혀
서리발 쓰러진
들국화의 마른 잎에
목숨으로 얼룩진 년륜
수리개 한마리 허공을 돌며
산림의 안정을 지켜볼 때
늑대의 울음소리도 없다
이시는 2008년 6월 15일에 쓴 시로서 <<까치둥지>>의 심야명상에 오른 시이다. 1련에서 주요하게 시내물을 따라 날아다니는 제비와 가시덤불속에 숨어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쓰고있다. 제비와 뱀은 서로 이질적인 사물이라는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수 있는것이다. 2련에서는 들국화, 수리개, 늑대등 세가지 사물이 등장하는데 이런 사물들이 차원이 다른 사물이라는것도 다 알수있는 우리들이다. 3련에서는 서천에서 추락하는 별찌와 바람의 종소리를 울리는 시인이 홀로 앉아 시첩을 뒤지는것을 쓰고있다. 보는바와 같이 이러한 사물들은 어느 사물이나 다른 사물의 산생이나 움직임이 원인이나 결과가 되는 사물들이 아니라 각자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이다. 그것들은 한수의 시에 횡적으로 존재하면서 시를 구성하고 있는것이다.
현대시란 종적구성을 말하고 하이퍼시란 횡적구성을 말하는 시이다. 한춘은 어느때부터 횡적구성을 썼는가? <<까지둥지>>에서 보면 그가 2004년부터 횡적구성에 집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알린다. 그것은 시집의 7쪽에 실린 <<무제(9)>>가 증명해 주고있다.
무제(9)
또 눈이 내린다
설야의 라목이 주인이란다
높은 가지끝에 까치둥지 하나
계절의 유표한 맺음표 하나
배낭은 그러나 비여있었다
방안은 그러나 랭랭하다
사지는 그러나 지긋하다
유리는 있으나 없으나
뒤면은 똑같이 보인다
눈 덮힌 들녁한끝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열린다
그러나 또 눈이 내린다
2004년 12월 17일
1련에서는 눈이 내리는 속에 있는 까지둥지를 쓰고, 2련에서는 배낭, 방안, 사람의 팔다리 사지를 쓰고있고, 3련에서는 유리와 내가 갈 길을 쓰고있다. 마지막련은 1련과 조응시키는 수법으로 또 눈이 내리는것을 쓰고있다. 보는바와 같이 각련의 이미지들이 완연히 다른 사물들의 이미지이다. 2련은 련속적인 이미지변화를 쓴것인데 이런 것을 렉시아라고 한다.
한춘의 <<까치둥지>>에는 하이퍼시가 시집의 지천에 널려있다고 할수있다. 필자도 처음 읽었을 때는 몇수가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여러번 읽으면서 자세히 분석해보니 <<까치둥지>>의 기본 구성이 하이퍼시구성이라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첫마당의 무제편만 례를 들어도 9, 13, 16. 19, 20, 21…이 당당한 하이퍼시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시집을 탈고하는 한춘의 마지막말은 정채롭다. <<시 쓰는 일 ㅡ 홀로 키우는 나의 향락>>이란 제목부터가 주목을 돌릴 필요가 있다. 우선 시 쓰는 일은 홀로 향락을 키우는 일이라고 한다. 홀로 향락을 키운다는 말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홀로란 자기만이란 말이다. 향락이란 의미심장하다. 시는 쾌락의 텍스트와 향락의 텍스트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쾌락의 텍스트는 즐거움을 주는것으로서 일상적으로 사람들의 알만한것을 말하는 시인 반면에 향락의 텍스트란 것은 몽롱하여 독자의 일상적인 사유를 충격하여 독자의 취미, 가치관. 기억등을 교란시킴으로써 반복적으로 음미하여야 그 시에 접근할수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춘시는 쾌락의 텍스트에 속하기보다 향락의 텍스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공이 막 헝클어진다. 사물들이 형체를 변형시키며 안구를 때린다. 그리고 잠자던 언어들이 퉁당퉁당 뇌리를 친다. 라목이 봄날의 자장가를 부른다. 장미향이 큰 소리로 울분을 토한다. 그리고 이 세상 거룩한 말씀이 락엽이 되여 하수구로 빨려들어간다.>> 한춘의 이 말은 너무 하는것이 아닌가? 아니다. 한춘은 시공이 막 헝클어진다고 하는데 시간과 공간이 자꾸 바뀐다는 말이 되겠다. 그것은 시속에서 사물들이 자꾸 바뀌여 나온다는 말이겠다. 그래서 사물들이 형체를 변형시키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식하지 못했던 언어들이 잠에서 깨여다 퉁당퉁당 뇌리를 친다고 한다. 겨울에도 봄날의 노래가 들리고 사랑의 장미가 울분을 토한다고 한다. 그리고 거룩한 말씀, 이제까지 진리하고 생각했던 말씀들이 락엽처럼 되여 하수구로 빨려들어간다고 한다. 이 말자체가 자기의 시가 하이퍼시라는것을 긍정하는 말이 된다. 현대시인이며 하이퍼시인인 한춘의 이 말은 어째서 새로운것이며, 어째서 뜻이 깊은 말인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한춘은 하이퍼시에 대하여 계통적인 인식이 부족했던 시인이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하이퍼시를 많이 썼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시를 잘 쓰면 자연적으로 하이퍼시를 쓰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수 있을 같다. 왜냐하면 한춘도 그랬거니와 우리 시인 모두가 하이퍼시라는 명제는 몰랐지만 다다소소하게 하이퍼시를 썼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이퍼시를 너무 신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 많은 시인들은 수백년동안 종적구성으로 시를 썼고 그것만이 전통인가고 착각하였다. 이제는 횡적구성으로 시를 써볼 때가 되였다. <<까치둥지>>에 있는 많은 시들은 횡적구성으로 시를 쓴 한 본보기라고 생각된다.
둘째. 언어의자유세계
언어의 나라에는 중앙정부가 없고 왕이 없고 법이 없고 언어마다 일률로 평등하다. 그래서 언어들은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결합될수 있다. 이것이 언어의 속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무라는 한가지 사물을 생각하자. 나무라는 언어는 나무의 이미지를 떠올릴뿐이지 나무 그 자체가 아니다. 자연의 나무는 나무이지만 문자로 표현된 나무는 실제나무와는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다. 량자는 완전히 다른 사물이다. 산에 나무는 나무지만 글로 써놓은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글인것이다. 시를 쓴다는것은 글을 쓰는것으로서 사물의 명칭은 실제사물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사물의 상징어를 말하는것이다. 몇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첫째 명사와 명사의 자유로운 결합 즉 나무라는 명사와 다른 명사들은 자유로이 결합할수있다. 나무강철, 나무산, 나무강. 나무무지개, 나무발, 나무기차, 나무개, 나무나비, 나무지렁이. 나무사람….. 명사와 명사들은 이렇게 자유로이 어울리면서 살아가고 있는것이다. 다음으로 동사와 나무를 어울려보자. 나무가 잔다. 나무가 뛴다. 나무가 노래부른다. 나무가 춤을 춘다. 나무가 성을 낸다. 나무가 영화를 찍는다. 나무가 어슬렁어슬렁, 나무가 빵빵 터진다. 보는바와 같이 어색한것이 없다. 다음으로 형용사와 결합해보자 나무가 아름답다. 나무가 작달막하다. 나무가 찬란하다. 나무가 분홍색이다…. 읽히는 바와같이 아무런 어색함이 없다. 모든 부사와도 어울려도 마찬가지다. 한춘은 <<까치둥지>>에서 언어의 이런 자유평등적 어울림을 많이 구사하고 있다.
청동색 그림자아래 다리쉼하며/첫째마당
계절의 배란기/올굳은 해살이 /아직도 출렁이고있을가/ 2쪽
별들도 요란히 /무너지다/3쪽
고독만이 서있는 절벽/4
잠언 메시지 한토막/ 절따말을 타고 왔다./9
다람쥐는 / 오늘저녁 돌덩이를 다 삼키고/ 모든 두려움을 다 버렸다./15
녹 쓴 청동색 그늘아래/17
구름우에 떠가는 헌신짝/20
이러한 언어조합들은 언어가 자유로이 결합된다는 언어의 속성에 의하여 묶어진것들이다. 어떤 언어조합은 낯설고 어떤 언어조합은 환상적이고 어떤 언어조합은 환각적이다. 시인은 언어련금사라고 한다. 바로 이런 자유로운 언어조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니랴. 어떤 이들은 이런 새로운 언어조합을 생경하다고 하는데 실제는 시에서 말하는 생경한 언어라는 것은 보이는대로 느끼는 대로 있는 그대로를 쓰는 언어들이라고 필자는 말하고싶다. 시인은 한민족의 언어를 발전시켜 먼 후날에도 그것이 색이 바래지 않고 가치를 산생하여 그 민족의 언어발전에 영향을 끼치는 언어를 창출하는 사람이다.
시는 한사물을 다른 사물로 전의 둔갑시키는 언어를 추구하게 된다. 한언어를 다른 언어로 둔갑시킨다는것은 문학가들, 특히는 시인들의 특권이며, 의무라고 할수있다. 한수의 시에서 적어도 한두가지 사물들의 둔갑이 보여야 새맛이 나게 되고 시의 공간과 시간의 확장을 보여주게 되는것이다. 한춘은 <<까치둥지>>에서 이러한 언어수법을 기용하여 광범위하게 시적공간과 시간을 확장하고 있다고 하겠있다.
민들레의 알맹이는 별우에 떠도는 얼굴/24
펄럭이는 어둠자락/24
거미줄이 세월을 녹인다/27
아침이슬과 흘레질을 할지니/30
눈물처럼 매달린 까치둥지에/ 긴 퉁소소리 내려앉는다/33
갑자기 입을 연 바람/37
풀리지 않던 매듭과 가지를/ 하나 둘 다듬질해놓은 아침/38
밤비가… 귀먹은 바람을 두드린다/50
그어떤 바람도 /삽질할수 있단다/109
잘 익은/ 욕망 한덩이/기발처럼 날린다/125
상기한 열가지 례들이 모두 한사물이 다른 사물로 변하거나 한 사실이 다른 사실로 변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모두 자기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겠다. 시의 의미란 새로운 언어변형으로 이루어진 그자체라고 할수 있다. 한가지만 살펴보자 <<그 어떤 바람도 삽질할수 있다.>> 바람을 삽질한다는 언어는 아마 누구도 써보지 못한 언어라고 하겠다. 삽은 땅같은 것을 파헤치는 공구이다. 바람을 삽질한다는 것은 바람이 땅이나 쓰레기장이 되였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언어들을 음미하고 새겨보게 되면 한춘시어의 새로움이 알리게 된다. 이것은 언어가 언어를 넘어서는 작업인것이다. 즉 언어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여 시를 쓴다는 말이 되겠다. 또 우리가 일상적인 언어를 다시 갈고 닦아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언어로 만들었을 때 그 언어는 시어로 되는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무튼 언어에는 성역이 따로 없다. 언어자체는 어떠한 다른 언어와도 무람없이 결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춘시인이 쓴 이러한 언어기교를 잘 습득할 과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기성언어의 허물을 벗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성언어의 허물을 벗기면 새로운 나비나 잠자리! 새로운 나무나 풀! 새로운 호랑이나 사슴! 새로운 개구리나 시내물! 새로운 새나 꽃들이 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세째. 상, 사물및기타
공자가 말했다. 성인은 뜻을 상을 만들어 표현한다. 류협이 말했다. 시는 심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시란 새로운 상(이미지)을 만드는 일이다. 상이란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이다.
상이란 현실적인 사물을 표현한것이 아니라 변형으로 사물을 표현한 추상적인 텍스트이다. 시로 상을 만들어 뜻을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다. 우리는 이 전통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이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어떻게 하는것이 전통을 계승하는것인가? 시에서 심상이 핵심이라는 것을 버리지 말아야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전통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하는가? 새로운 상(즉 이미지)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금중외에 아무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상을, 시인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종합해 말하면 사물들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방면에서 한춘시인은 우리들에게 한 본보기를 제공하였다고 할수 있다. 시를 례로 말해보자.
애기의 첫울음처럼
요란하게 터지던 꽃망울(1)
한로의 음절너머
바줄을 놓쳐버린 코스모스(2)
숨차게 달려온 그 길에
눈부시게 세워놓은 기발(3)
그 아래서 외우던 영어단어
한점의 나비되였는데
돛배우에 기발이 되였는데(4)
서리우에 달빛이 비끼는 밤
기러기는 남으로 날아간다(5)
2010년 9월 16일에 쓴 시(세한도 (2))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다섯개의 이미지군으로 이루어진 시는 다섯가지 사물들의 움직임으로 씌여있다. (1)에서 <<애기의 울음처럼 요란하게 터지던 꽃망울>>이란것은 처녀작이 발표라 해도 좋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을 말한 것이래도 좋다. (2)에서 <<바줄을 놓쳐버린 코스모스>>란 언어가 정채로운데 활짝 피였던 코스모스가 죽어간다는 의미를 표현하였고, 그것으로 사물의 생성과 죽음을 말하였다고 할수 있겠고 나이 든 자신을 표현하였다고 할수 있겠다. (3)에서는 <<눈부시게 세워놓은 기발>>이란것은 코스모스가 찬란히 피여났더란 의미도 있고, 시인으로서 이룩한 자신의 성과를 긍정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겠다. (4)에서는 자기가 외우던 영어단어가 나비되고 돛배의 기발이 되였다고 하는데 아주 훌륭한 변형을 이룩한 것이다. 우리는 이 변형에 초점을 모을 필요가 있다. 영어단어가 나비되고 기발이 된다는 말은 사물의 어떤 비슷함으로 변형을 도출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의적인 것으로 새로운 상을 창출하고 있다겠다. 바로 이렇게 아무런 근거도 가지지 않고 한사물을 다른 사물로 둔갑시키는 것이 우리시의 전통이라 는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된다. <<영어단어>>란 거시적으로 말하면 외국의 새로움을 말한것이고, 미시적으로 말하면 현대시를 말하는 것이겠고 나비와 돛배의 기발이 되였다는것은 외국의 좋은 것을 따라배우니 아름다움이 생기였고 새로운 출발이나 성과를 이룩하였다는 의미겠다. (4)에서 <<서리우에 달빛이 비끼는 밤/ 기러기는 남으로 날아간다>> 이미지적으로 새로움이 날카롭게 표현되지 않았으나 뜻을 표현하는데는 모자람이 없다. 시인은 자기가 나이들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애상으로 젖어있다. 앞길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세한도(2)>>는 자아의 시인것이 아니라 무아의 시다. 왜 무아라 보게 되는가? 시에는 나라는, 혹은 자아의 감정발로가 없다. 있다면 한마디 <<외우던>>한마디가 있다. 나머지는 객관사물들의 존재와 사물들의 새로운 관계 그리고 언어가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가 있을뿐이다. 시인은 내가 없이 나를 관조해보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세한도(2)>>는 자신의 시창작이나 인생에 대한 시인의 반추이며 성찰이라고 할수 있겠다. 총적으로 시는 심상(즉 이미지)을 만드는 일이며 심상으로 뜻을 표현하는 일이란 것을 시사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상으로 뜻을 말하지 않고, 감정이나 주제를 토로하는 것을 류협은 골수가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상을 만들어 뜻을 표현한다는 것은, 상에 기대여 창작한다는 것은 우리시의 전통의 핵심이며, 시본연이 무엇인가를 똑똑하게 알려주는 명구이다. 이 명구를 우리들 머리에 각인시켜야 할뿐만 아니라 시창작에서 꼭 지켜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작법이라해도 좋을 것이다!
한춘시인은 개혁개방초기에 현대시의 기수로 우리 시단을 리드한 전위적인 시인이였고, 첫시집 “주소없는 편지” 때로부터 자기도 모르게 하이퍼시를 쓴 시인으로서 하이퍼시의 보귀한 경험을 남긴 한 시인이였다는 것을 시집을 통하여 증명하였다고 생각한다.
201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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