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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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하이퍼 동시 창작방법 - 최흔
2019년 05월 22일 08시 41분  조회:770  추천:0  작성자: 최룡관
제2장 하이퍼 동시 창작방법
최흔
 
현대 동시와 하이퍼 동시는 창작방법상에서 한가지 공동성과 여러가지 구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가지 공동성은 이미지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구별이 있다는 것은 필자의 견해로는 아래와 같은 일곱가지 구별이 있습니다. 첫째 현대 동시는 단일체이지만 하이퍼 동시는 다양체입니다. 둘째 현대 동시는 중심이 있지만 하이퍼 동시는 중심이 없는 무중심 입니다.제째 현대 동시는 의미를 강조하지만 하이퍼 동시는 의미를 강조하지 않는 무의미 시입니다. 네째 현대 동시는 한가지 이미지가 고정되지만 하이퍼 동시는 그냥 변화됩니다. 다섯째 현대 동시는 일정한 질서가 있지만 하이퍼 동시는 뛰기라는 수법으로 현대 동시 질서를 파괴하고 하이퍼 동시 질서를 건립합니다. 여섯째 현대 동시는 자아를 강조하지만 하이퍼 동시는 자아라는 것을 모르는 무아이며 타자입니다. 일곱째 현대 동시는 련결과 원인을 강조하지만 하이퍼 동시는 단절과 링크를 내세웁니다. 아래에 하나하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단일체와 다양체
 
  현대 동시를 단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이퍼 동시는 단일체와는 방법이 다르게 쓰는 다양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일체라는 것은 이미지가 하나라는 말과 통하고 다양체라는 말은 여러가지의 이미지라는 말과 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가지 이미지라도 원인과 결과의 식으로 써내려가면 단일체에 속하고 다양체의 이미지들은 각각 자기의 독립성을 갖고 있으므로 원인과 결과로 련결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서 채취된 것으로서 단절되고 절편되는 이미지들이라 하겠습니다.
 
중국 조선족의 문학에서 하이퍼 동시는 윤동주시인으로부터 시작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윤동주
 
우리 애기는
아래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서 소올소올
 
아저씨 해님이
하늘 한 가운데서 째앵째앵
 
아마 이 동시는 중국조선족시단에서 가장 일찌기 나온  하이퍼 동시 한수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의 구성의 특점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겠습니다. 첫째로 시의 이미지가 네개 단위로 되여있다고 하겠습니다. 애기의 활동, 고양이 활동, 바람의 활동, 해님의 활동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사물들 활동은 실제상 어떤 련계를 갖고 있는 것들이 아니며, 한 활동이 다른 활동의 원인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결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세째로 이미지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집성에 참가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이미지마다 절편되고 단절된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동시를 필자는 하이퍼 동시라고 합니다. 이런 동시는 과거에도 많지 않았고 지금도 많지 않습니다. 이런 동시를 각광받게 하려고 제가 아는 것 만큼 론하려고 합니다.  이런 동시의 이미지 특성은 또 있습니다. 이미지마다 사물운동의 중간에서 채취된 것입니다. 1련에서 애기는 아래 발취에서 잘 때를 채취한 것으로써 애기 생활의 한부분 그것도 한 순간을 채취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고양이도 가마목에서 잘 때의 순간을 채취한 것이고, 바람은 나무가지와 부탁쳤을 때만 채취한 것이고, 해님도 하늘 한 가운데서 떠있을 때를 채취한 것입니다. 모두가 그 사물의 어느한 장소 어느한 순간을 채취해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동시는 사물의 몇십분의 1초거나 몇백분의 1초의 시간을 이미지화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같습니다.
계속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미지들은 순간에 나타났다가 위치를 바꿉니다. 애기가 나타났다가 밀려나고 고양이가 나타나고, 고양이가 나타났다가 밀려나고 바람이 나타나고, 바람이 나타났다가 밀려나고 해님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이렇게  하이퍼 동시의 사물들은 나타났다가 밀려나군 합니다. 이것은 사물이란 그냥 변화발전하고 그냥 새것이 낡은 것을 밀어내면서 세월이란 것이 흘러가는 것과 같은 맥락을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윤동주시인은 사물의 산생되면 사멸한다는 것을 념두에 두고 이런 시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자연의 리치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동시를 필자는 다양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질이 다른 사물들의 이미지가 한수의 시에 모인 것이기 때문에. 성질이 다른 사물들의 이미지가 집성된 시를 다양체라고 합니다.
윤동주 하이퍼 시에 조금은 애석한 점이 있습니다. 각 사물들을 변형시킴이 약하다는 점입니다. 하이퍼 동시는 되였지만 사물들에게 은어를 주지 못해서 아쉽다면 아쉽겠습니다.
아래에 김봉순동시인이 쓴  하이퍼 동시 한수를 더 봅시다.
 
그늘
   김봉순
 
그림자는 그릇이래요
 
동그란 그릇에
은행나무 나오고
 
네모난 그릇에
아빠트 나오고
 
세모난 그릇에
앞산이 나와요
 
그릇들 모여
구름도 해도 다 주어담는다
 
김봉순 동시의 전문입니다. 시인은 <<그늘>>을 첨부터 <<그릇>>이라고 새롭게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늘>>의 이미지가 <<그릇>>이 되였습니다. 당돌한 표현인것 같습니다. 그늘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 데 김봉순시인은 동그란 그늘은 동그란 그릇이라 하면서 은행나무가 나온다고 하였고, 네모난 그늘은 네모난 그릇이라고 하면서 아빠트가 나온다 하였고, 세모난 그늘은 세모난 그릇이라고 하면서 앞산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림자 그릇에서 은행나마무가 나온다, 아빠트가 나온다, 앞산이 나온다고 한것은 역사유입니다. 역사유로 썼기에 야릇한 감이 듭니다. 야릇한 감은 언어의 새로운 감각의 표현으로서 시에서 종종 쓰는 아름다운 수법이라 하겠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릇들이 모여 해와 달을 주어담는다고 합니다. 그늘에 대한 상상이 아주 새롭고 형상적이고 생동하다고 하겠습니다.
련마다 한개 이미지단위인데 하이퍼 동시에서는  각각의 이미지가 대등한 관계로 라렬되는 경향을 갖고 있기에 어느 이미지도 다른 이미지와 종속관계를 가지거나 주인과 하인관계를 갖고 있는것이 아니랍니다. 그래서 각 이미지를 바꾸어 시를 구성해도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늘>>의 각련을 아무렇게나 바꾸어 놓아도 시의 흐름에 손상이 없고, 시의 정체에도 손상이 가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또 독자들이 보다가 맘대로 한련을 써넣어도 됩니다. 례하면 가운데다 <<기다란 그늘에서 다리가 나온다>>고 써넣어도 될 수 있고, 마지막을 더 연장하여 <<그릇들이 모여 강물을 퍼간다>>고 해도 될 수 있겠습니다.
윤동주시인이 쓴 <<봄>>도 같은 방법으로 <<바둑이는 대돌밑에서 그릉그릉>><<송아지는 마당에서 까블까블>>한다고 써넣을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독자를 사유하게 하고 참여하게 하는 시가 하이퍼 동시라고 하겠습니다. 누구나 보다가 (응 ㅡ, 나도 써넣어도 되겠네!) 라고 생각되면 절로 써넣으면서 시를 읽는 재미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 외국 동시 한수를 봅시다
 
핀은 머리가 있는데 머리카락은 없어요
                    크리스티나 로제티
 
핀은 머리가 있는데 머리카락은 없어요
시계는 얼굴이 있는데 입이 없어요
바늘은 눈은 있는데 볼수는 없어요
날벌레는 잠을쇠 열쇠 없이 트렁크를 갖고 다녀요
 
시간은 빼앗길 수 있지만 빼앗아 올수는 없어요
옥수수 밭은 턱이 없어도 예쁜 보조개를 짓지요
산은 다리가 없는데 발(산기슭)이 있지요
유리잔은 줄기예요 뿌리가 아니죠
 
시계에는 손이 있는데 손가락은 없어요
장화에는 혀가 있지만 가수는 아니예요
강은 달립니다 다리가 없지만
톱은 이가 있어도 먹지 않아요
 
물푸레 나무는 열쇠를 갖고 있지만 잠그지 않아요
아기들은 삐악삐악 하지만 닭이 되지는 않아요
 
이 하이퍼 동시는 긍정과 부정의 방법으로 씌여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4행시라는 서구의 시법을 사용한 시로써 앞의 열네가지 사물들은 서로 련계가 되는 사물이 아니라 질이 다른 이색적인 사물들로 구성되였습니다. 이런 시를  다양체라고 하겠습니다. 내용을 리해하는데는 별무리가 존대하지 않기에 해석을 가하지 않겠습니다.
크리스티나 로제트의 시를 보면 다양체를 만들려면 우선 그냥 딴 사물을 변형시켜 써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긍정으로 표현한 열네가지 사물들이 다 다른 사물들일 뿐만 아니라 부정으로 표현된 사물들도 다 다른 사물들입니다. 그래야 다양체가 형성된다는 것을 우리는 <<핀은 머리가 있는데 머리카락은 없어요>>에서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다양체는 산을 쓰다가 별을 쓰다가 호랑이를 쓴다든가, 잔디를 쓰다가 강을 쓰다가 태양을 쓴다든가, 쥐를 쓰다가 진달래를 쓰다가 지렁이를 쓴다든가 아뭏든 그냥 딴것 딴것 또 딴것...을 변형시켜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쓰는 것이 다양체의 비법이라겠습니다. 단일체는 그리하여, 그래서의 대답으로 이미지가 련결될 수 있지만 다양체의 이미지는 그리고의 대답으로 되거나 또, 또의 대답으로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절 중심과 무중심
 
현대 동시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둘러싸고 쓰는 동시이지만 하이퍼 동시는 다양체라고 했습니다. 다양체이기 때문에 중심이 없는 무중심이 되겠습니다. 이미지 만들기에서 많은 동시를 례로 들었는데 그런 현대 동시들은 다 중심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중심적인 이미지를 둘러싸고 이야기가 벌어지고 흘러내려가게 되여있습니다. 그래서 탑처럼 모양이 되여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양체는 이와 반대로 중심이 없고 이미지와 이미지가 평등하고 높고 낮음이 없게 됩니다. 하이퍼 동시는 탑처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평행으로 널어놓는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아버지 아들 손자가 한가정 식솔되여 산다면 아버지가 제일 권위가 있고, 그담 아들이고 아들 밑에는 아무런 맥도 못쓰는 손자가 있습니다. 하나의 중심을 설정하여 시를 쓰게 되면 이런 집안꼴이 되게 됩니다. 다양체시는 이런 집안의 꼴인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횡적으로 집성되였기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더 차요한 것이란 것이 없게 됩니다. 중요하다면 다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다면 다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평등하니까.
 
나무이파리 하나 똑 따서 혹 불었다
하늘로 노란 기러기 훨훨 날아올랐다
 
시내물 한줌 꼭 쥐여 살살 만졌다
조약돌 등에 파란 산이 퐁퐁 올라탔다
 
구름부채 쪼옥 펼치며 춤 추었다
코스모스 손가락 박자가 엉덩이 흔들었다
           ㅡ한설매 << 바람의 꿈>> 전문
 
<<바람의 꿈>>이 참 재미있는 같습니다. 제목부터 신선한 같습니다. 바람도 꿈이 있을까요? 일상적인 사유로서는 떠오르지 않을 오직 시인의 상상에 의해서만 가능한 야릇함이 묻어나는  하이퍼 동시의 제목이라 하겠습니다. 세개의 이미지단위로 세개의 련을 구성하였는데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는 아무런 공동점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각성받이 같은 이미지들입니다.
나무이파리를 따서 부니 노란 기러기가 태여나고, 물 한줌을 만지니 조약돌우에 산이 퐁퐁 올라타고, 구름부채 춤을 추니 코스모스 손가락 박자가 엉덩이를 흔든다는 것이 시의 내용이자 이미지입니다. 이 세가지 이미지로 한설매시인은 <<바람의 꿈>>이라는 시를 직조하였습니다. 시를 직조한다는 것은 사물의 명사를 씨실로 하고, 기교를 즉 변형이라는 수법을 날실로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문제는 이 세가지 이미지가 각성받이여서 완연히 다른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련계되지도 않는 불연속이고, 각각 자기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이 다른 것처럼 다르다는 말이 되겠습니다.이런 시를 필자는 하이퍼 동시라 이름을 짓습니다.
<<바람의 꿈>>의 다른 하나의 특점은 운문처럼 쓴 것이 아니라 산문투가 짙어 딱딱한 맛이 없고 부드럽게 시줄이 흘러내려 간다는 점도 있겠습니다. 모든 문장이 여섯줄의 단일문으로 되여서 시인가 하면 산문 같고 산문 같은가 하면 시입니다. 운문과 산문을 중화시킨 하이퍼 동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친절하게 다가오면서도 문장마다 변형이 되여서 야릇하고 아리숭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천천히 새김질해 보면 시에서 고소한 맛이 우러난다고 하겠습니다.
1련에서 나무잎과 기러기가 조화를 이루고, 2련에서는 물 한줌과 산이 조화를 이루고, 3련에서는 구름부채와 코스모스, 손가락과 엉덩이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섯줄로 된 이 시는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는 하이퍼 동시라고 하겠습니다.
언어면으로 살펴보면 세부를 포착하는 눈길이 례사롭지가 않습니다.  각련에 배치된 <<노란 기러기>>,<<시내물 한줌>>,<<구름부채>><<조약돌 등>>언어들은 새로운 조어로서 빛이 반짝인다고 하겠고, <<똑 따서 혹 불었다>>다는 바람의 행동이 재미있고도 형상적으로 안겨와서 감칠맛이 돌고,  <<조약돌 등에 파란 산이 퐁퐁 올라탔다>><<코스모스 손가락 박자가 엉덩이 흔들었다>>는 시구들은 창조적인 새로움을 기의하고도 확연하게 보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바람의 꿈>>은 중심이 없는 이미지 라렬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련이나 중심이 아니고 겉이나 곁이라고 하겠습니다. 1련을 중심이라고 하면 2,3련이 노여워하고, 2련을 중심이라고 하면 1,3련이 억울하다고 삿대질 할 것이고, 3련을 중심이라고 하면 1,2련이 주먹을 메고 달려들 것입니다. 중심이 없기에 각련을 아무렇게나 바꾸어 놓아도 시에 손색이 가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중심이 없는 시, 그런 시를 놓고 다양체는 무중심이라는 말이 되겠고, 그런 시가 바로 <<하이퍼 동시>>라고 하겠습니다.
 
나비 2
강려
 
나비는
노트북이야
 
꽃바람
도그닥
키보드두드린다
 
나비는
만두껍질이야
 
개나리
하얀만두
통통빚는다
 
나비는
책가방이야
 
이슬비
지퍼(拉锁)
쪼로로잠근다
이 시는 강려양의 동시 <<나비2>>의 전문입니다. 강려동시인은 <<나비2>>에서 세가지 사실 즉 세가지 이미지를 쓰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나비를 노트북이라 하고, 둘째로는 나비를 만두껍질이라 하고, 세째로는 나비를 책가방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가지 이미지는 성질이 다른 서로 련계되지 않는 이미지로서 어찌보면 세수의 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시는 이미지마다 자기의 주제가 따로 있다고 할 수 있을 같습니다. 이미지를 한 단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나비는
노트북이야
 
꽃바람
도그닥
키보드두드린다
나비의 첫 두 련입니다. 하나의 이미지 단위라고 하겠습니다. 강려시인은 나비를 노트북이라고 합니다. 노트북은 접었다 폈다하며 쓰는 컴퓨터입니다. 나비는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날아다닙니다. 이런 현상을 포착하고 시인은 나비를 노트북이라고 한것 같습니다. 움직임으로 동일성을 찾은 같습니다. 그런다음 << 꽃바람/ 도그닥/ 키보드 두드린다>>고 합니다. 이 노트북의 주인이 꽃바람이라고 합니다. 꽃바람은 노트북을 리용하는 사람의 은어라고 하겠습니다. 나비가 노트북인데 꽃바람이 열어놓고 키보드를 두드린다고 합니다. 의인화 수법이겠습니다.
시의 주제의 핵심은 어떻게 변형시키고 변형물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나비를 노트북이라면서 꽃바람이 두드린다는 것은 시인이 창조한 하나의 새로운 세계이며, 이 새로운 세계가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 자체가 시의 주제로 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주제의  말대로 하자면 나비가 노트북이 되여 꽃바람이 키보드를 두르린다는 것을 노래하였다고 하겠습니다 .
제2련에서는 나비를 만두껍질이라고 하면서 개나리가 만두를 빚는다고 하고,  3련에서는 나비를 책가방이라고 하면서 이슬비가 내리니까 지퍼를 잠근다고 하였습니다. 왜 잠글가요. 책가방속의 물건들이 비에 젖을 가봐 잠그겠죠. 이러한 시구의 자체가 주제겠습니다. 2련에서는 만두껍질이라고 하였는데 껍질이라니까 얇다란 것을 나타내므로 나비와의 동일성이 보이는 같은데, 3련에서는 나비를 책가방이라고 하였으니 동일성이 보이지 않는 같습니다. 나비도 날개를 접으면 네모꼴 비슷하고 책가방도 네모꼴 비슷한 모양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동일성을 찾았으리가 생각됩니다. 이것은 사물들의 모양의 동일성으로 찾아보는 것이 되겠습니다.
실제상 시는 이런 동일성이 어떻게 왔는가를 고려하지 않아도 통한다고 해야 할것입니다. 언어기능을 말할 때 언어는 아무렇게나 자유로이 어울리며 조합된다고 하였습니다. 나비가 책가방으로 된 자체가 언어기능에 의하여 된것이라고 봐도 별문제 없을 같습니다. 나비라는 글은 나비라는 원사물의 상징일 뿐 원사물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통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변하면 통한다고 하였고, 서양의 당대  철학가들 즉 후기구조주의 철학가들은 그것은 필연적으로 맞으므로 왜 그렇게 변하느냐를 묻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ㅎㅎ 아다모끼 같지요. 아다모끼가 아닙니다. 덴마크에 가면 미인어가 있고, 파리의 부르그 박물관으로 가노라면 사자 몸에 녀자의 상반신이 붙은 조각상이 있는가하면 범의 몸에 남자의 상반신이 붙은 조각상이 있습니다. 이런 조각상은 짐승과 사람이 같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중국 명나라 때 왕양명이란 철학가가 있었는데 세상사물은 다 형제간이다. 땅이 어머니이고 하늘이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시는 사물과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새로운 관계란 사물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리고 조화를 이루는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으로 글을 쓰는 것이 시라고 하겠습니다. 한 사물이 성질이 다른 여러가지 사물들과 어떻게 어울리는가를 쓰는 글이 하이퍼 동시의 한가지 수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신현득의 하이퍼 동시 한수를 봅시다
시인의 손에 놓이면
신현득
 
돌멩이 한개라도
시인의 손에 놓이면 달라
시가 되거든
 
몽당연필이라도
시인의 손데 잡히면 달라
시를 쓰거든
 
흔한 해빛이라도
나무잎이 받아지니면 다르듯이
과일이 살이 되듯이
 
흔한 물방울이라도
나무잎이 받아지니면 다르듯이
초록빛 피가 되듯이
 
버릴  만한 생각이라도
시인의 마음에 잡히면 달라
시를 빚거든
신현득의 하이퍼 동시는 다섯개 이미지단위로 씌여진 동시입니다. 이미지 단위마다에 등장하는 돌멩이, 몽당연필, 해빛, 물방울, 생각 따위들이 어느 것도 동시의 중심이 못되고 있다하겠습니다. 그래서 한개련쯤 삭제하여도, 또 다른 이미지를 첨가하여도 시는 손색도 없고, 변하지도 않습니다.왜 그럴가요. 이미지가 다 변두리고 겉이고 곁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중심 이미지가 없는 동시, 대등한 자격으로 나타나는 이미지로 된 동시, 그런 동시가 바로 하이퍼 동시라 하겠습니다.
 
3 의미와 무의미
  현대 동시에서는 일상적으로  의미가 알리게끔 시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하이퍼 동시에서는  의미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에 무슨 의미를 말했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알려면 시를 분석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라겠습니다.  중국의 시전통은 적어도 1500년전부터 시인은 자신의 뜻을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의탁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이퍼 동시는 바로 이런 전통을 계승하여 새롭게 발전시키고 있다하겠습니다.  하이퍼 동시인은 시를 쓰면서 이 시에서 어떤 뜻을 말하겠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겠는가를 생각합니다. 시인의 추구하는 것은 의미인 것이 아니라 이미지라겠습니다.
나비를 이렇게 쓴 시인이 있습니다.
 
가지 없이도
노랗게 피여나고
 
뿌리 없이도
하얗게 핀다.
김철호시인의 동시 대표작이라는 <<나비>>의 전문입니다. 이 시는  하이퍼 동시입니다. 혹자는 왜  하이퍼 동시인가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시의 이미지단위들은 원인과 결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각각 독립성을 지니고 있어서 두개련을 바꾸어 놓아도 별문제가 없습니다. 또 같은 맥락으로 꼬리 없이도 까맣게 피여난다고 더 써넣을 수 있는 여지도 있는 시이기에 하이퍼 동시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뿌리와 가지는 별개의 사물로서 성질이 다른 사물입니다. 마치 사람의 얼굴의 눈과 입처럼 얼굴에 있지만 성질이 다른 사물인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시인은 시에 자신의 어떠한 주장도 개입시키지 않고 그저 가지도 없이 뿌리도 없이 노랗게 하얗게 피는 것이 나비라고 하였을 뿐입니다. 시인이 추구한 것은 가지 없이 노랗게 핀 것과 뿌리 없이 하얗게 핀것을 추구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어느날 나비에 대한 상상이 섬광처럼 번쩍 머리에 떠올라서 이렇게 썼을 것입니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 시는 순간에 탄생하여 일필휘지된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좋은 시는 낑낑거리며 씌여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떠올라서 씌여지기가 일수입니다. 시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면 다른 이미지도 련속적으로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열달잉태요 하루아침의 해산이란 말이 시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가지 없이도 노랗게 피고 뿌리 없이도 하얗게 핀다니까 그것은 잎일 수도 있고 꽃일 수도 있겠습니다. 김철호동시인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서 말하지 않을가요. 독자가 생각해 보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목과 련계시켜 보면 나비를 말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무시하고 이미지만 생각한다면 시문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더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얼핏 생각해도 구름이 떠오릅니다. 구름도 가지 없이도 노랗게 피여나고 뿌리 없이도 하얗게 피여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태양도 달도 가지 없이도 노랗게 피여나고 뿌리 없이도 하얗게 피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뿐이 아니랍니다. 새들도 가지 없이도 노랗게 피여나고 뿌리 없이도 하얗게 피여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있습니다 비행기도 가지 없이도 노랗게 피여나고 뿌리 없이도 하얗게 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지와 뿌리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시인은 무슨 가지인가 무슨 뿌리인가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가지는 나무의 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풀의 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구름의 가지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의 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풀의 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구름의 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외에도 바위 뿌리 바위 가지 등등 많고도 많겠습니다.
시는 문맥에 표현된 것보다 엄청 많은 상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렇게 새로운 상상을 부여할 수 있을 때 황금량이 많은 시라고 생각하게 되겠습니다. 시는 이렇게 어떤 뜻을 부여하여 교육적 가치를 토로하기 보다 상상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하는 글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가요. 여기에 시의 매력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시는 새로운 상상을 만드는 글이랍니다. 김철호시인은 시에서  나비가 아름답다는 표현을 한것 같습니다. 나비는 삼척동자도 아름다운 사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비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비를 통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고도 말할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심리세계를 어떠한 표현으로 보여주는가가 시에서는 중요하지 무엇을 노래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겠는가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지속에는 스스로 뜻이 담겨져 있게 마련입니다. 뜻이라는 것은 시가 된 다음에 론할 일로서 시인의 몫인것이 아니라 독자들이나 평자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독자들이나 평자들은 나름대로 뜻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하이퍼 시는 한가지 뜻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뜻으로 나뉘여지게 됩니다. 한수의 시가 여러가지 뜻으로 나위여지거나 여러가지 상상을 불러올 때 그런 시가 좋은 시라 하겠습니다. 성인시도 동시도 다 이러합니다. 그래서 시의 뜻이 문면에 드러나면 피가 나오거나 골수가 나온다는 끔찍한 말이 있겠습니다.
김철호의 이 시는 아이들 언어인가 하면 성인들 언어이고 성인들의 언어인가 하면 아이들 언어로써 동시라고 보면 동시이고 성인시라고 보면 성인시입니다.
 
발볌발볌      
 
 
단풍잎 내려놓은 가을 
발볌발볌 간다. 
 
눈송이 실은 겨울 
발볌발볌 온다
 
별빵 먹은 조각달 
발볌발볌 둥근다. 
 
재미 있는 동시 <<발볌발볌>>은 윤옥자동시인이 쓴 하이퍼동시 전문입니다. 가을, 겨울, 조각달의 이미지를 한수의 시에 집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을과 겨울은 성질이 다른 사물이라는 의미도 있겠으나 세월이란 각도에서 보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니까 련계성도 없지 않은 같지만 실은 가을과 겨울은 각각 성질이 다른 계절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각달은 불쑥 튀여나온 질이 다른 이미지여서 하이퍼 동시로 되기에 손색이 없는 같습니다. 지금 론하는 문제가 의미와 무의미이므로 이 시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하여 론해보도록 합시다. 윤시인은 1련에서 가을의 단풍이 어쩌는가만 쓰고, 2련에서는 눈송이 날리는 겨울이 어쩌는가만 쓰고, 3련에서는 별빵 먹은 달이 어쩌는가만 썼습니다. 시인의 심정이나 말하려는 어떤 뜻을 한글자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무의미시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물의 운동만 썼지 시인의 감정이나 서정을 토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감정이나 서정은 시의 문맥속에 녹아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 시에 <<발볌발볌>>이 련마다 씌여있는데  하이퍼 동시에서 이런 언어를 링크라고 합니다. 여기서 링크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발볌발볌>>은 <<발밤발밤>>의 사투리라고 합니다. <<발밤발밤>>은  발길이 가는 대로 목표 없이 천천히 걸어가는 모양이라고 사전이 해석을 붙이고 있습니다. 언어적으로 말할 때 사투리가 알맞는 곳에 씌였을 때 그 사투리를 문화어로 승격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며 언어를 풍부하게 다루는 작용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을이 아무런 목표도 없이 천천히 걸어간다, 겨울이 아무런 목표도 없이 천천히 걸어간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가을과 겨울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매짠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3련은 1,2련보다 더 매짜다고 할 것 같습니다. <<별빵을 먹은 조각달/ 발볌발몁 둥근다>>고 합니다. 시인은 여기서 <<별빵>>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창출하였고 조각달이 아무런 목표도 없이 천천히 걸어가면서 <<둥근다>>고 하였습니다. 가히 절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각달에 대하여 쓴 이미지는 수없이 많지만 이렇게 조각달을 표현한 시구를 필자는 첨으로 대하는 같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짱입니다.
시의 마지막에 홱 돌아서서 앞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새로운 이미지가 불쑥 튕겨나오는 것을 영어로 위트라고 하고 우리 말로는 재치라고 하는 같습니다. 위트나 재치는 언어의 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하겠습니다. 탄력이란 어떤 언어를 말하는가? 탄력이란 일상적으로는 어울릴 수 없는 단어를 조합시켰을 때 하는 말이 되겠습니다. <<별>>과 <<빵>>은 어울릴 수 있는 낱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의 기능으로 어울리게 하여 별과 빵이 간과 슬개처럼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서로를 끌어당기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탄력이라 하겠습니다.
미안하게 되는 군요. 본제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무의미로 쓰는 시는 왕왕 사물과 사물의 련관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을 시화할 때 나타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시화한다는 것은 새롭게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새로움이 없는 것은 시화인 것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무의미시는 그 원천을 사물시에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물시란 시인의 의사를 배제하고 사물들의 관계와 사물들의 운동만으로 쓰는 시라하겠습니다. 윤옥자동시인이 쓴 <<발볌발볌>>이 바로 이러한 시인것 같습니다.
중국 시인 우씨엔의 하이퍼 동시를 한수 봅시다.
 
해빛
우씨엔
 
해빛이 창문을 기여오르고 있다
해빛이 꽃잎에 앉아 웃고 있다
해빛이 시내물을 따라 흐르고 있다
해빛이 엄마의 눈에서 빛나고 있다.
 
<<해빛>>의 전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짧은 넉줄입니다. 하지만 해빛을 여러가지로 변형시켰고 해빛이 여러가지 움직임으로만 씌여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빛의 따슨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이미지에서 받은 느낌이지 시에서 말하는 느낌이 아닙니다. 시속엔 이런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무의미 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의미시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의미가 이미지와 혼연일체를 이루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시인은 의미를 발굴하기 위하여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하여 시를 쓴다고 하겠습니다. 시에는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인은 사상을 발견하는 자인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발견하는 자입니다.
 
 
 
4 고정과 변화
 
   세상에 고정된 사물이란 없습니다. 모든 사물은 그냥 변하고 있습니다. 동물도 변하고 식물도 변하고 곤충도 변하고 사람도 변합니다. 산생도 변화이고 성장도 변화이고 죽음도 변화라고 하겠습니다.이런 변화들은 모두 무에서 시작되여 무로써 끝나기 마련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변화를 상상이나 환상으로  쓰는 것을 시라고 하겠습니다. 왜 환상인가구요?  상상의 최고봉은 환상이라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옛날에 사람이 날아다닌다고 하면 환상이라고 했을 겁니다. 옛날에 사람이 달나라로 간다면 환상이라 했을 겁니다. 달에 계수나무가 있고 옥토끼가 있다고 했습니다.이런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누구도 승인하지 않는 것이여서 환상이였을 겁니다. 상상은 일정한 근거를 요구하나 환상은 아무런 근거도 요구하지 않는 허망생각이라 하겠습니다. 시는 상상에 의한 꿈이고 환상에 의한 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필자는 상상보다 환상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상과 환상은 아빠트처럼 어느것이 일층이고 어느것이 십층이라는 엄격한 구별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시에서 두 사물을 비교하여 비유를 유출하였을 때 근거가 알리면 상상이고, 근거가 알리지 않으면 환상이라 할 수 있을 같습니다. 이미지는 터무니 없는 대상을 재구성한다고 합니다. 이 터무니 없는 사물이 아마 환상에 속할 것입니다. 바위가 뱀이 되여 기여간다, 뱀이 바위로 불쑥 솟는다 하면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환상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같고, 강물이 뱀이 되여 기여간다든가 뱀이 강물이 되여 흘러간다 라고 할 때는 상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강물과 뱀은 다 기다랗고 땅우에서 구불구불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시는 상상과 환상으로 반죽되여 태여나는 사물을 생성하기에 그 사물은 천변만화하게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이퍼 동시를 다양체라고 하였는데 그 다양체는 상상과 환상에 의한 여러가지 변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다양체를 만드는 방법을 령토화ㅡ탈령토화ㅡ재령토화라고 말합니다.  시를 보도록 합시다.
 
차창의 비방울
황희숙  
 
쬐꼼한 굴렁쇠 
또르르 
굴러간다 
 
하얀 지렁이 
꼬불꼬불
오솔길 낸다 
 
은빛 방울 
따르릉
종소리 울린다
 
황희숙동시인이 쓴 <<차창의 비방울>> 전문입니다. 비방울이 굴렁쇠로 변하고 비방울이 지렁이로 변하여 오솔길을 닦고 비방울이 은빛 방울이 되여 종소리를 울린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차창에 떨어지는 비방울은 동그래지니까 굴렁쇠라고 하고 구불구불 흘러내리니까 꼬불거리는 오솔길을 닦는다고 하고 방울이라는 언어와 종을 치는 종이 비슷하니까 종소리 울린다고 한것 같습니다. 새김질해 보면 제2련이 희한하다고 하겠습니다. 오솔길을 낸다고 하였으니까 차창이 산이 되고 들이 되였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솔길은 산이 아니면 들판에 있으니까요. 마지막련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차창에 떨어지는 비방울을 방울이라고 하였는데 동음의이어로 매방울이나 소방울이 동그란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남다르게 방울의 소리를 파보면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이퍼 동시는 꼬리, 대가리, 허리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시에 집성된 이미지가 어느것이 대가리고 어느것이 허리이고 어느 것이 꼬리인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이미지단위를 마음돼로 바꾸어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이퍼 동시의 구성형식의 특성이라겠습니다.하이퍼 동시의 이미지는 사물운동의 중간에서 채취한 것이므로 해석이나 설명이 필요 없이 결론만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차창의 비방울>>에서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령토화 ㅡ탈령토화ㅡ 재령토화입니다.황시인의 이 시가 바로 령토화ㅡ탈령토화ㅡ재령토화의 한 보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령토화는 일반적으로 제목이 되겠습니다. 탈령토화는 상상이나 환상의 과정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그러므로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추상적인 사유과정이겠습니다. 재령토화는 사물이나 사물의 움직임이 되여 우리 눈앞에 영상으로 떠오른다고 하겠습니다.
<<쬐꼼한 굴렁쇠 /또르르 /굴러간다>> 이것이 시의 첫련입니다. <<차창의 비방울>>을 <<쬐꼼한 굴렁쇠>>라고 하였습니다. <<차창의 비방울>>은 제목이므로 령토화라고 하겠습니다.세상의 많고 많은 사물들 중에서 시인에게 선택된 사물이자 언어인 <<차창의 비방울>>은 이 시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첫령토로 되였으니까요.
시인은 <<차창의 비방울>>을 은유의 수법으로 <<쬐꼬만 굴렁쇠>>라고 하였는데 <<쬐꼼한 굴렁쇠>>는 변형되여 나온 재령토화에 속하겠습니다. 비방울이 변하여 굴렁쇠가 되였기 때문에 재령토화라는 것입니다. 이 굴렁쇠는 상상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된 굴렁쇠입니다. 어떻게 변해서 비방울이 마지막으로 굴렁쇠가 되였는지 하는 과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과정을 탈령토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법을 은유라고 하는데 은유는 사물의 변화를 완성하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고,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련에서는 <<차창의 비방울>>이 <<오솔길>>이 되고 3련에서는 <<차창의 비방울>>이 <<은빛 방울>>이 됩니다. 오솔길과 방울은 재령토화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굴렁쇠로 변하고 두번째는 오솔길로 변하고 세번째는 은빛 방울로 변하였습니다. 이렇게 련속 성질이 다른 사물로 변하는 것을 하이퍼 동시라고 하겠습니다.
프랑스 앙드레 이베르노 <<지나가는 시간>>이란 하이퍼 동시 한수를 봅시다.
 
지나가는 시간
  앙드레 이베르노
 
회색의 월요일
수국의 분홍색 화요일
파란색 수요일: 너 다시 올거지?
주중 다른 날들은
 
나무아래서 티티새와
놀이하는 초록색 목요일
 
그리고 당근의 빨간 색 토요일
 
일요일 그는
두팔사이 줄기위에 태양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시간>>의 전문입니다. 월화수목금토일 일주일의 날마다 색갈의 변화를 썼습니다.사실 월화수목금토일도 시간의 변화를 알리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중국의 해설로 말하면 월은 달, 화는 불, 수는 물, 목은 나무, 금은 쇠, 토는 흙, 일은 태양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고정되여 있는 사물이 아니라 늘 변하고 있는 사물이라 하겠습니다. 실은 시간은 정지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각일각 변화되고 있으며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이퍼 동시는 이미지가 그냥 다른 이미지로 변하게 되여있다고 하겠습니다. 월화수목금토일처럼. 월화수목금토일은 중복되는 같지만 실은 그냥 새로운 시간을 나타낸다고 말해야 정확하겠습니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 어는 시간들은 한번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간이 변하는 것처럼 하이퍼 동시에서의 사물의 변화를 뛰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이런 련속적인 뛰기는 하이퍼 동시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뛰기가 없으면 하이퍼 동시가 안됩니다.이런 뛰기를 통하여 하이퍼 동시는 다양체를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하이퍼 동시에서 뛰기는 끝없이 무한히 계속 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인은 그런 뛰기 중의 일부만을 선택하게 됩니다.
 
5절 질서와 뛰기
 
질서라는 말은 차례대로, 순서대로 라는 말이라는 것을 다 아는 해석이겠습니다. 하이퍼 동시 뛰기는 순서고 차례고 없다고 하겠습니다. 하이퍼 동시에서 이미지가 뛴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어떤 때 어디로 뛰는 지는 시인 자신도 파악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시가 상상이나 환상에 의하여 씌여지니까 시인도 자기의 상상이나 환상이 어떻게 어디로 뛰는가를 생각할 사이가 없고 또 그런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상상이 가는 대로 환상이 떠오르는 대로 이미지를 써놓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령혼에 령토가 떠오르는 것도 시간과 장소의 약속이 없는데 하물며 뛰기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하이퍼 동시에서 뛰기는 어떠한 속박도 없이 제멋대로 뛰기, 아무런 구속이 없이 자유로 뛰기라 하겠습니다. 날벼랑이 평원이 되여도 좋고, 하늘이 땅이 되여도 좋고, 물이 불이 되여도 좋고,흙덩이가 수리개 되여도 좋고, 산이 술이 되여도 좋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다음 하이퍼 동시 두수를 보도록 합시다.
 
 
첫수
 
 미끄럼
 
출렁출렁
떼목들은
강물미끄럼 타고
 
또르르 또르르
이슬은
풀잎미끄럼 타고
 
빵 ㅡ 빵 ㅡ
뻐스는
눈길미끄럼 타고
 
 
우르릉 우르릉
비행기는
구름미끄럼 탄다
ㅡ김봉순 <<미끄럼>> 전문
 
 
두번째 수
 
단풍잎
 
다이빙 선수들 
 
노란선수 두팔 벌려 
물위에 살짝
 
도토리 대굴대굴 
돌이마와 딱!
 
빨간선수 공중 삼회전 
땅우에 착 
 
바람호각 쏴--
단풍눈 펑펑
  ㅡ윤옥자 <<단풍잎>>
 
상기한 두수의 이미지들은 뛰기가 된 보기라고 하겠습니다.  <<미끄럼대>>에서는 떼목, 이슬, 뻐스, 비행기 등 부동한 사물들이 뛰여나오고, <<단풍>>에서는 노란 선수, 도토리, 빨간 선수, 바람호각과 단풍눈이 뛰여나옵니다. 이질적인 사물들의 집합이라 하겠습니다. 첫수에는 네가지 이미지가 집성되여 있고, 둘째수에는 다섯가지 이미지가 집성되여 있습니다. 첫수에선 네번 뛰기를 하였고, 둘째수에서는 다섯번 뛰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같은 이미지가 아니고 죄다 차원이 다른 이미지들입니다.
하이퍼 동시의 이미지들은 뛰지 않으면 못사는 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개구리이며 노루이며 사냥개입니다.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여 여기저기로 뛰여다니는 것처럼 그냥 장소를 변경하고 대상을 달리 하려고 합니다. 노루처럼 이산에서 저산으로 뛰여갑니다. 산을 옮기지 않으면 못사는 노루처럼 령을 넘어다닌다 하겠습니다.그냥 자신의 시간을 달리하고 공간을 달리하려 합니다 사냥개라도 굶주린 사냥개입니다. 아무것이나 사냥해야 합니다. 사냥한 것은 재령토가 되겠습니다. 또 개구리가 노루되고 노루가 사냥게로 되기도 하고, 사냥개가 노루로 되고 개구리로 되기도 하고,개구리가 사냥개로 되기도 한답니다.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놈들,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놈들이랍니다. 변해서 생긴 놈들, 변한 놈들도 수시로 변하기를 작정하고 있는 놈들이랍니다.어디로 어떻게 튕겨나가 무엇으로 변할지는 그것들도 모른답니다. 돌연적이고 기습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 놈들이랍니다. 지적인 질서따위는 근본적으로 모르는 놈들이랍니다.
곽해룡의 <<나무의 맛>>이라는 하이퍼 동시를 한수 더 보도록 합시다.
 
매미가
나무둥치를 빨며
매음매음
쓰디쓰 쓰디쓰
시어이 시어이
 
오목눈이가
나무를 비켜가며
비리비리 비리비리
 
<<나무의 맛>>에서 처음에는 매미가 나무맛을 보는 것을 쓰고 두번째는 오목눈이 나무맛을 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것을 썼다고 하겠습니다. 매미는 나무맛이 맵고 쓰고 시쿨다고 하지만 오목눈은 맛도 보지도 않고 비리다고 합니다. 매미와 오목눈이 등장이 련계성이 없이 뛰기가 되였는가 하면 나무맛도 매미와 오목눈이 보는 맛이 완전히 다른 뛰기라고 하겠습니다.
현대 동시는 차례대로 순서대로 나아가는 질서가 있지만 하이퍼 동시는 이런 차례와 질서를 무시한다고 하겠습니다.사물들은 질서가 없이 자유로 뛰여다니지만 그로서의 질서는 따로 있습니다. 뛰여다니기는 현대 동시구성에 대한 파괴이며,그 질서에 대한 반역이며 그 질서에 대한 변혁이겠습니다.  뛰여다니기는 하이퍼 동시에의 건설이며, 다양체에 대한 수립이며, 재령토화의 동시 질서를 건립하는 것으로 되겠습니다.
 
6절 자아와 타자
 
오리오리 물오리
우리집 귀염둥이
 
오리오리 물오리
하늘 나는 비행기.
 
이런 동시가 있다고 합시다.여기서 1련은 <<우리집 귀염둥이>>라고 합니다. 우리라는 그속에 나라는 것이 포함되여 있으므로 타자인 것이 아니라 자아입니다. 그러나 2련에서는 <<오리오리 물오리 /하늘 나는 비행기>>라고 썼으니까 나라거나 우리라는 인칭이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시구는 자아인 것이 아니라 타자라고 합니다. 자아와 타자의 구별은 인칭이 어떻게 사용되였는가를 가지고 판단한다고 하겠습니다. 시는 보통 1인칭이나 2인칭이 직접 들어가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동시를 자아의 동시라고 하겠습니다. 3인칭으로 씌여진 동시는 타자의 동시, 혹은 무아의 동시라고 하구요.실은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은 구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의 이미지는 시인과 한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과 떨어져있습니다. 시인이 쓰는 시는 상상이나 환상이기에.
하이퍼 동시에서는 1인칭이나 2인칭을 요구하지 않고 3인칭만을 요구한답니다. 그래서 하이퍼 동시는 자아의 표현이 아니라 타자의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왜 이런 구별을 요구할가요? 1인칭이나 2인칭은 현대 동시로서 결국에는 제자랑을 하는 것이 되고, 주관성을 강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3인칭은 남의 자랑을 하고 남을 존경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므로  객관적인 것을 강조하게 됩니다. 1인칭, 2인칭은 자기 제일이 되고 3인칭은 남이 제일이 되므로 시인의 겸손과 겸허를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중국 청나라 때에 왕궈위란 문학가가 있었는데 유아경의 시는 아무나 쓰지만 무아경의 시는 아무나 쓰는 시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1,2인칭은 유아경에 속하고 3인칭은 무아경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아래에 하이퍼 동시로써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호수
 
쌍둥이 버드나무
초록색 물 바줄
당기기 한다
 
구름 한점 개나리 꽃 한점
참새 한점 초가집 한점
골고루 얹어 해빛에 잘 구운
피자 한장을
바람이 조르르 말아간다
 
물새 들어갔다
붓꽃 들어갔다
다람쥐 들어갔다
해님 둥근 손이
찰칵 문 잠군다
 
 
 
나비3
 
하늘강에조개한마리
빠꼼문열고
까꿍
 
할미꽃한송이
하얀가발쓰고
해해
 
꼬리없는하얀연
나들이행차
나폴나폴
 
첫수는 한설매씨의 <<호수>>의 전문이고, 둘째수는 강려양의 <<나비.3>>의 전문입니다. <<호수>>의 1련은 버드나무 두그루와 호수물의 조화를 쓰고,  2련은 둥근 호수를 변형시킨 내용이고,  3련은 석양을 맞이한 호수와 호수에 비낀 사물의 조화를 썼다고 하겠습니다. <<나비3>>에서는 나비 나들이를 환영 하는 것을 1,2련에 쓰고 3련에서는 날아예는 나비 본신을 썼다고 하겠습니다. 
이 두수의 시에는 나나 우리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아의 시라고 할 것이 아니라 타자의 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아경의 시인 것이 아니라 무아경의 시라고 하겠습니다. 타자의 시의 특점은 객관사물들이 변형되여 움직이는 것을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호수>>에서는 물바줄 당기기를 하는 한쌍 버드나무를 썼는가 하면, 여러가지 사물을 넣은 맛갈스러운 피자를 바람이 말아가는 것을 쓰고, 3련에서는 호수우에서 움직이는 여러가지 사물들의 놀이를 쓰다가 해님이 꼴깍 넘어간 것을 썼습니다. 어디에도 1인칭이 작용하지 않았고 어디에도 1인칭 냄새가 풍기는 곳이 없는 <<호수>>입니다.
<<나비3>>도 이와 같은 수법이겠습니다. 나비가 탄생하여 날아다니니까 조개가 문을 열고 까꿍 반기는가 하면 할미꽃이 하얀 가발을 쓰고 천진란만하게 웃기도 하는데 나비자신은 꼬리 없는 연이 되여 나플거립니다. 이 하이퍼 동시의 어디에도 1인칭 그림자가 비치는 곳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3인칭으로만 씌여진 하이퍼 동시를 무아의 동시 타자의  동시라 하겠습니다.
하이퍼 동시에서 타자(무아)를 추구하게 되는 것은 객관적 존재에 대한 추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시에서 객관적 존재의 추구를 하게 되는 것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사물에 닿아보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하는 질문을 늘 가지게 됩니다. 바로 그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동시, 특히 하이퍼 동시로써 해결하려는 몸부림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추구해 볼 수 있을 뿐 정확한 답안을 찾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움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이퍼 동시는 여러가지 차원으로 이를 구명해 보려고 애를 뜯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이퍼 동시라고 깔볼 것이 못되며 비하할 것이 못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소유의 동시독자들이 이렇듯 엄숙한 문제까지 파고 들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들 절대 대부분이 자연사물의 변화와 서로의 조화를 알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리스 카레(프랑스)<<색갈들>>이라는 하이퍼 동시를 한수 더 봅시다.
 
색갈들
모리스 카레
 
ㅡ난 말이야 보라색을 좋아해
7월달 색이거든
 
원귤이 흰 족제비에게 말한다
ㅡ난 말이야 주황색을 좋아해
게다가 난 절대 반대하지 않아
오렌지가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ㅡ난 빨간색이야 딸기가 말한다
ㅡ난 말이야 노랑색이야 참외가 말한다
 
사과는 몹시 으시대며
난 빨간색이 아니면 노란색
난 경우에 따라 달라
 
연못은 파란색으로 옷 입고
벗꽃나무는 한얀 꽃으로 옷 입고
초록잎은 나무가지들을 즐겁게 하고
금은 불에게 마술을 건다
모리스 카레의 <<색갈들>>에서는 나라는 언어가 마지막련을 제외하고는 그냥 나오는데 여기서 지칭하는 나라는 언어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지칭하는 나입니다. 이 시에 나오는 나는 자아인 것이 아니라 무아이며 타자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을 지칭하는 나와 사물을 지칭하는 나는 근본적 구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물을 지칭하는 나가 시행에 있으면 친절감이 나지만 사람을 지칭하는 나가 있으면 고리타분한 감이 나게 됩니다. 사물을 지칭하는 나가 있으면 시의 구성의 신선성을 더하게 되지만 인간을 지칭하는 나가 있으면 어쩐지 고린내를 더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시 독자들을 어린이들에게만 국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들도 동시를 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시를 사랑하거나 동시를 쓰는 어른들은 동시를 읽습니다. 동시문화는 인류문화의 한부분인 것이지 어느 한 부분의 사람들의 문화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시를 대중화할 것이 아니라 대중을 시화하여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시도 대중의 의식에 머물을 것이 아니라 시라는 예술로 점진적으로 대중을 동시화하여야 합니다. 부단히 대중을 동시쪽으로 끌어들이고 동시의 예술로 이끌어가고 감화시켜 동시를 깊게 리해하면서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 동시인과 동시평론가들의 사명이라고 생각됩니다.
 
7 단절과 링크
하이퍼 동시는 사물의 생성을 씁니다. 잠재의식의 반영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생성을 씁니다. 그것은 하이퍼 동시의 생성은 무의식의 생성이여서 잠재의식이란 무엇인지 모른답니다. 무의식이란 사물을 생성하는 빈장소이고 잠재의식이란 과거의 기억이 저장되여 있는 창고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슬금슬금 걸어간다
잠자리가 십자가 되여 하늘 난다
민들레 꽃새들이 모이를 쫏고 있다
땅거미가 야금야금 산을 먹는다
이렇게 사물이 현재라는 시점에서 가상현실(허상, 허구)로 변형되여 씌여진 것은 잠재의식의  작용이 아니라 빈장소에서 련속 생성되는 시적현실인 것입니다. 무의식(아무런 리해관계가 없는 순수한 의식)의 빈 장소에서는 늘 새로운 사물이 무수히 태여날수 있지만 잠재의식에서는 잠재된 기억 만큼한 사물이 태여날 수 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아래에 단절과 링크라는 본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동시 두수를 보도록 합시다.
우주의 만리장성(1)
방산옥
 
은하계가
우주만리장성쌓아요
자리빼앗는별들을막으려고
 
사막은
지구만리장성 쌓아요
날아갈려는 모래들을 막으려고
 
바다는
바다만리장성쌓아요
도망치려는 물방울들을 막으려고
 
 
(1)
북두칠성
천지에 내리니
지구는 길 잃고 헤매요
 
갈매기
바다뺨 때리니
해일이 일어나요
 
병아리
안개말 타고
쪼각달 따와요
 
방산옥동시인이 쓴 두수의 시에는 언어중복이 있는 <<우주의 만리장성>>과 언어의 중복이 없는<<연(1)>>으로 씌여여졌습니다. 두수의 하이퍼 동시는 그냥 차원이 다른 이미지가 태여나는 데 그것들이 아무런 련계도 없이, 언어 중복도 없이 단절상태로 된 <<연(1)>>이 있는가 하면 이미지마다 <<만리장성>>란 이언어가 중복되면서 단절상태로 된 <<만리장성>>도 있습니다. 그저 단절상태로만 씌여진 <<연(1)>>은 초링크(초월적인 련계)라 하고,  <<만리장성>>이란 언어가 중복으로 씌여진 것은 링크(련결)라고 합니다. 링크나 초링크는 두가지이상의 이미지로 동시가 씌여졌을 때만 살펴보는 수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에서 많은 동시를 례로 들었는데 링크와 초링크 관점으로 다시 살펴보기로 합시다. 윤동주시인의 하이퍼동시 <<봄>>에는 같은 언어 중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초링크 하이퍼 동시라 하겠습니다. 김봉순시인의 <<그늘>>에는 <<그릇>>이라는 언어가 중복되여 씌여졌습니다. 그래서 링크가 있는 하이퍼 동시라 하겠습니다. 윤옥자시인이 쓴 <<<발볌발볌>>에는 이미지마다 <<발볌발볌>>이라는 언어가 중복되여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링크가 있는  하이퍼 동시라고 하겠습니다. 한설매시인의 하이퍼 동시 <<바람의 꿈>>에는 이미지마다 중복된 언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초링크로 된 하이퍼 동시라 할 수 있겠습니다. 황희숙시인이 쓴 <<차창의 비방울>>에는 중복된 언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초링크 하이퍼 동시라고 하겠습니다.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쓴 <<핀은 머리가 있는데 머리카락은 없어요>> 에는 <<있는데>>와 <<없어요>> 두가지 링크가 존재하고, 신현득시인의 <<시인의 손에 놓이면>>에서는 1,2련을 련결하는 <<시인의 손>>이 링크이고,  3.4련에서는 <<나무잎이 받아지면 다르듯이>>가 링크입니다. 우씨엔의 <<해빛>>에서는 <<해빛>>이 링크이고, 앙드레 이베르노의 <<지나가는 시간>>에서는 <<요일>>이 링크입니다. 곽해룡의 <<나무의 맛>>에는 링크가 없으므로 초링크이고, 모리스 카레 <<색갈들>>에는 중복되는 언어가 없으므로 초링크로 된 하이퍼 동시입니다.
어떤 언어들이 링크로 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제한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봉순시인의 <<그늘>>에서는 <<그릇>>이라는 명사가 링크로 나타났고, 방산옥시인의 <<우주의 만리장성>>에서는 <<만리장성>>이라는 명사가 링크로 나타났습니다. 윤옥자시인의 <<발볌발볌>>에서는 우의 례와는 다르게 <<발볌발볌>>이라는 부사가 링크로 나타났습니다. 김철호시인의 동시 <<나비>>에서는 <<없이도>>와 <<피여나고>>가 중복되여 나타났습니다. 없다는 형용사이고 피여나고는 동사입니다. 이로부터 보아 모는 품사는 다 링크로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였습니다. 김철호시인의 <<나비>>와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머리는 있어도 머리카락은 없어요>>에서는 또 한수의 하이퍼 동시에 두개의 링크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신현득시인의 <<시인의 손에 놓이면>>의 3,4련에서는 <<나무잎이 받아지면 다르듯이>>가 링크인데 이것은 시 한행이 링크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링크는 일종 반복법에 속하는 기교라고 하겠습니다. 반복법적인 링크는 동시에서 쓸 뿐만 아니라 성인시에서도 쓰게 됩니다. 하이퍼 동시의 링크 뒤에는 꼭 새로운 사물이 탄생하거나 새로운 사물운동이 탄생하여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닫는말
시는 령감이 떠올라야 쓴다고 합니다. 령감이란 어떤것이겠습니까? 령감이란 재령토입니다. 재령토는 갑자기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사람들 모두에게 령감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시로 될 수 있다는 것은 시인만이 알게 됩니다. 시인은 찰라적으로 떠오르는 령감을 글로 적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동시 창작과 하이퍼 동시 창작에 대하여 이렇게 살펴보았습니다. 완벽한 창작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의 가치는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인용한 시들의 작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틀린 곳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17년 9월 ㅡ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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