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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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의 변형에 대한 고찰 최흔
2019년 05월 22일 08시 45분  조회:956  추천:0  작성자: 최룡관
 동시의 변형에 대한 고찰
최흔
 
시는 이미지다. 시적 작업은 이미지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다.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는가? 이미지는 변형을 통하여 만들어진다. 변형이란 어떤것인가? 사유의 과정으로서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추상적인 사유이다. 변형이란 한사물을 다른 사물로 만드는 작업이며 한 사실을 다른 사실로 만드는 작업이다. 변형은 이미지를 이루는 과정이고 이미지는 변형의 결과이다. 변형을 연구하는 것은 결국은 이미지를 연구하는 것이며 시를 연구하는 것이다. 변형이 없으면 이미지도 시도 없다. 성인시도 이러하거니와 동시도 이러하다. 변형을 잘 하는가 못하는가에 의하여 시가 어떠한가를 판별하게 된다. 변형이 안되였으면 시가 아니 되고, 변형이 수수하면 시가 수수해지고, 변형이 뛰여나면 시가 우수해진다. 변형은 이미지의 산모일뿐만 아니라 시의 생명제조 공장이다. 현대시에서는 변형이라 부르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에서는 변형을 해체나 대체라 부를수 있고 하이퍼시에서는 탈령토화 혹은 도주라고 부르게 된다. 아래에 나름대로 동시의 변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1은유적 변형.
 
은유는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되기이다. 은유의 범위는 한없이 넓다. 그것은 사물은 모두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모두 련결성이 있으며 동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 식물, 생물 모두가 이 지구에서 사는 사물들이며 모두가 형제간들이다. 그것들 어머니는 지구이고 그것들 아버지는 하늘이다. 모두가 해빛, 달빛속에서 살며 모두가 후대를 번식하고 모두가 태여났다가 사멸된다. 이런 동일성이 있기에 세상의 모든 사물은 어떤 다른 사물로도 다 될 수 있고 한 사물속에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우주의 모든 사물이 다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식으로 시인은 시를 쓰게 된다. 이런 의식이 없이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공담이 될 수가 있다. 아래에 한문으로 된 동시들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수정나무/한그루 나무란다/영원히 시들줄 모르며/즐겁게 사는 나무란다// 수정꽃 한송이란다/피여서 질줄 모르는/결백하고 이쁘고/즐겁게 사는 꽃이란다.
 
중국시인 창푸썽(常福生)이 쓴 동시 <<분수>>(喷水)의 전문이다. 분수가 수정나무 되고 분수가 수정꽃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은유의 수법 이다.어떻게 분수가 나무되기도 하고 어떻게 분수가 꽃이 되기도 하는가. 그것은 세상사물의 동일성으로부터 착안하여 창출한 것으로서 시인의 상상이자 환상이다.
아래에 챈완청(钱万成)이 쓴 <<둥그런 련잎>>(荷叶)을 보자
 
둥그런 련잎은/작은 우산이란다/비가 오면 / 우산밑에 작은 고기들을 품어준단다//둥그런 련잎은/옥쟁반이란다/아침에 일어나/ 이슬 알들을 가득 담는단다/둥그런 련잎은/노래 카세트란다/그 카세트 방송하는 노래 /아무도 듣지 못한단다.
 
챈완청은 둥그런 련잎을 우산으로, 옥쟁반으로, 노래카세트로 변형시켰다. 성질이 완전히 다른 사물들의 전이다. 어떻게 이런 변형이 나올 수 있는가? 시인은 련잎의 둥그런 모양에 착안하여 둥그런 것으로 시를 쓰고 있다. 우산도 펴면 둥그렇고, 옥쟁반도 둥그렇고 노래카세트도 둥그렇다. 모양이 비슷하므로 이런 변형물이 나올수 있다고 하겠다
 
창푸썽이 쓴 동시와 챈완청이 쓴 동시의 변형은 조금 다르다.  <<분수>>는 인간문화적인 사물로부터 자연적인 사물로 변형시킨 것이고, <<둥그런 련잎>>은 자연적인 사물로부터 인간문화적인 사물로 변형시킨 것이 다른 점이다. 창푸썽은 분수를 나무요 꽃이요 하였는데 얼핏 보면 동일성이 리해되지 않지만 챈완청의 동시는 모양으로 변형시켰다는 것이 인차 알린다. 근거가 인차 알리는 동시와 근거가 인차 알리지 않는 동시가 어느것이 더 좋은가? 근거가 인차 알리지 않는 동시가 더 좋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동시도 흔상할 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는 동시가 더 좋다. 그런 의미에서 근거가 인차 알리지 않는 동시는 흔상할 가치가 더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 근거가 인차 알리지 않거나 전혀 알리지 않는 동시가 존재하는가? 그것은 시인마다의 상상의 깊이와 넓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모종의미에서 말하면 근거는 드러나지 않는 것일 수록 환상에 더 가깝게 된다. 시는 환상이고 꿈이다. 시는 언제나 희망사항을 쓰게 되는데 꿈과 환상은 시인의 희망사항이다. 변형의 근거는 멀면멀수록 더 좋다고 생각된다. 동시는 애들의 눈높이로 쓰는 것이 아니라 애들의 상상의 높이로 쓰는 것이다. 애들의 상상은 어른들의 상상보다 범위가 더 무한하고 깊이가 더 깊다. 어른들 상상을 바가지로 푸는 샘물터라고 한다면 어린이들 상상은 룡드레 우물이라도 깊디깊은 룡드레 우물이다. 어떤 변형물은 근거가 없소 하는 말은 어른들이 기성의 관념으로 판단하고, 리성적으로 판단하고 상상적으로 환상적으로 사고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는 기성관념이나 리성적 판단을 깨끗이 쓸어버리고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위의 동시 두수는 다 은유적인 수법으로 쓰인 시이다. 시의 변형물을 찾는 지름길이 은유로 통하게 된다. 은유는 한사물이 다른 사물로 되기이며, 한사물을 다른 사물로 대체하기이며, 한사물의 리면에 숨어있는 새로운 사물을 파내기이며 드러내기이고, 은유는 령감의 순간적 번쩍임이고  은유된 사물은 절대 이미 체험한 경험이 아니라 새로 생성되여 용솟아오르는 참신한 사물이다. 이 사물은 시인이 발견한 새로운 세계이며 새로운 우주이다. 좋은 동시를 쓰려면 이런 은유의 수법을 리해하고 장악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환유적 변형
 
환유란 바꾸어 맞추기이다. 한 사물을 취환해내고 대체물을 그자리에 심는다. 대체물은 은어에 속하고 상징에 속한다. 은유는 두가지 성질이 부동한 사물들의 관계로 나타나지만 환유는 비교되는 사물은 나타나지 않고 비유된 사물만 나타난다. 은유는 두사물의 관계가 수직적으로 형성되여 련합성을 띠지만 환유는 시구의 흐름이 평행적이고 련결성을 띤다. 은유는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뛰여 갔다는 것이 알리지만 환유는 그런것이 알리지 않는다.은유는 문맥의 흐름에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가 불쑥 튀여나와 결합된다는 감이 들지만 환유는 그런 감이 없이 흐름이 자연스러운 감이 든다. 아래에 중국과 외국의 동시들을 례로 들면서 환유에 대하여 말해보고저 한다.
ㄱ) 짱쑈펑(张晓风)의 동시 <<뒤집어놓다>>(打翻了)의 마지막련에 이렇다
 
내 쬐만 꿈을 꽃피우라고
바람이 꿈마개를 열어놓았다
 
여기서 <<꿈>>이란 언어가 나오는데 이 <<꿈>>은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희망과 아름아운 미래를 말한 언어로서 <<꿈>>이라는 언어로 아름다운 희망과 미래를 취환하고 대체하였다. 취환하는 과정은 추상적인 사유의 과정이기에 보이지 않고 대체된 언어 <<꿈>>만 보이고 있다. 꿈마개는 꿈과 마개의 합성어로써 꿈에 대한 사물화로써 보여주기를 하는 언어이다. 시는 변형물을 창출하기이며 이 변형물은 시인의 의사를 함축하고 시인의 의도를 사물에 의탁하여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 대륙밖의 시들을 례를 들면서 환유수법을 어떻게 썼는가를 보기로 하자
 
) 영국의 리베이츠가 쓴 동시 <<저벅저벅>>의 첫련이다.
 
가죽신이 수림을 걷는다
저벅 ㅡㅡ저벅!
쟁쟁하게 들려오는 이 소리
나무가지 사시에 숨어버린다
 
여기서 <<가죽신>>이 걷는다고 하는데 이 <<가죽신>>이 사람을 대체하고 있어 은유에 속한다. 시는 왕왕 한사물의 어떤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본받을 바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세부화될 수록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세부는 문장에서 가장 힘이 있는 언어이며 세부가 잘 되지 못하면 어떤 문장이나 다 맥이 없게 된다. 가죽신이 수림을 걷는다는 사람이 가죽신을 신고 수림을 걷는다는 말이 되겠다.
 
 
)베트남의 후광거(胡光阁)가 쓴 동시 <<들어오렴>>(请进来)의 3련을 또 보자
 
통통통
누가 문을 두드리니?
꽃봉오리야
정말 꽃봉오리라면
너의 발가락을 보여주렴
 
여기서 시인은 꽃봉오리에게는 있지도 않는 <<발가락>>이란 언어를 창출해 내고 있다.<<발가락>>이란 꽃잎에 대한 대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꽃봉오리에 발가락이란 언어를 덧붙이므로써 꽃을 의인화하는 작용을 한다. 꽃봉오리는 문뜩 나타난 언어로서 무언가를 대체한 언어이며 환유이다. 꽃봉오리는 강아지나 돼지새끼나 송아지나 애기일 수도 있다. 탕탕탕도 아니고 퉁퉁퉁도 아니고 통통통이라는 가볍고도 부드러운 울림으로 표현하였으니 정이 묻어나는 의성어라
고 할 수 있으며 귀여운 사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환유란 이렇게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도 있는 같다.
 
 
) 대만의 양환(杨唤)시인은 <<빨리 학교가 >>(快上学去吧)의 2련을 이렇게 쓰고 있다.
 
흐리멍텅해서 자려하는데
갑자기 녀석들 회의를 열었다
눈ㅡ좋아,난 창문을 닫고 소식을 차단할거야!
귀ㅡ맞아! 난 귀를 막고 일년동안 자게 하겠어!
코ㅡ그렇지! 신 난다 난 방학하겠어!
발ㅡ나도 영원히 다시 걷지 않겠어!
손ㅡ나도 영원히 다시 일을 안 해!
 
현실과 허상이 중첩된 2련이라고 할수 있다. 흐리멍텅하게 자려하는데 녀
석들이 갑자기 회의를 한다고 한다. 여기 녀석들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아래를 읽어가게 되는데 그 녀석들이란 눈, 귀, 코, 발, 손이다. 그녀석들이 회의를 한다는 건 의인화의 수법이라 친절하게 안겨온 다 .
눈이 말한다 <<좋아, 난 창문을 닫고 소식을 차단할 거야>> <<창문>>이란 눈을 말하는데 창문을 닫고는 눈을 감고라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이는 대체에 속하며 환유에 속한다고 하겠다. 코는 이렇게 말한 다. <<그렇지! 신난다 난 방학하겠어>> 이 시구에서 방학은 이제부터 코는 숨을 쉬 지 않겠다는 말이다 . 한 말을 다른 말로 대체하여 쓰는것을 환유라고 할 때 <<방학 >>이란 환유에 속하는 언어이다. 늦잠꾸러기에 항의하는 눈,귀, 코 , 발, 손의 표현들이 너무 생동하고 활발하다고 하겠다.
 
 
)중국  류펑(刘凤)시인이 쓴 <<흥성거리는 봄>>(闹春)의 2,3련을 보기로 하자.
 
버들가지 실을 뽑습니다
파란 오리를 기다랗게 늘여
봄을 짜고 있습니다
 
지렁이가  밭갈이 합니다
살진 밭고랑에
봄을 심습니다
 
2련의 첫줄에 <<버들가지 실을 뽑는다>>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실>> 이란 새싹이 나와 가지를 늘인다는 말이다. 2련에서 <<지렁이가 밭갈이 한다>>에서는 <<밭갈이>> 이 라는 언어가 현실적인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가상적인 것을 표현한 것으로서 지렁이가 기여간다는 것을 말한다. <<실>>이나 <<밭갈이>>는 모두 환유에 속하는 언 어들이다.
 
 우에서 다섯가지 례로써 환유는 시에서 어떻게 씌여지며 어떤 작용을 하는가를 살펴 보았다. 환유는 동시뿐만 아니라 성인시에서도 매우 중요한 수법의 하나이다. 환유를 자유로 쓸 수 있는 기질을 시인은 모름지기 갖추 어야 한다. 시는 곧이 곧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에둘러 말하는 글이다. 에둘러 말할 줄 모르면 시인이란 명칭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유가 바로 에둘어 말하기 중 한가지 수법이라 하겠다. 
시의 변형은 시의 첫행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절대 두번째 행을 초과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행에서도 변형이 나오지 않으면 시의 시작부터가 시시하게 되여 시의 참신한 맛을 흐리우게 된다. 이미지를 만 드는 작업은 령토화 ㅡ탈령토화 ㅡ재령토화라는 과정을 거친다고도 하는 데 령토화는 일반적으로 시의 제목을 가리키고 탈령토화는 사유과정으로서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재령토화란 사유를 거쳐서 새로 탄생하는 사물이나 사실을 말 한다. 탈령토화란 언어는 바로 변형이란 언어와 맞먹 는다고 하겠다. 은유는 이런 과정 이 빤히 들여다 보이지만 환유는 이런 과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은유는 성질이 다른 두개의  사물이나 사실이 알리지만 환유는 표현되였거나 대체된 사물이나 사실만 알리고 원래의 사물이나 사실이 알리지 않고 숨어있기 때문이다.
 
 
3단선변형과 다선변형
 
단선변형이란 어떤것인가? 다선변형이란 또 어떤것인가? 단선변형이란 한수의 시에 이미지단위가 하나이고, 다선변형이란 한수의 시에 이미지단위가 여럿으로 되여있는 것을 다선변형 이라고 한다.
동시동네에 가보면 최문섭 한석윤 김득만등 시인들의 시비가 있다.최문섭시인은 <<콩나물>>이란 제목으로 썼는데 콩나물을 <<음표 >>라면서 시루안에 동요가 빽곡히 차고 넘친다고 하였다. 그래서 단선변형이라고 하겠다. 음표는 원인이고 동요는 음표의 결과라고 하겟다. 원인과 결과로 되였을 때는 단선변형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 같다. 한석윤동시 <<해님>>은 해님을 <<금빛알>>이라고 변형시켰다. 둥지며 새며 하는 말이 있지만 다 금빛알의 배경이고 원인이므로 한가지 이미지단위라고 하게겠다.김득만 동시는 <<고드름>>은 <<겨울 할배/ 두고간/ 하얀 지팽이>>이라고 변형시켰다.
그외 나오는 두메골이요 초가집이요 하는 것들은 하얀 지팽이라는 것을 도출해내기 위한 가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그래서 필자는 단선변형 이라고 말한다.
 
소학생들이 읽어야 할 동시 60수에는 림금산시인이 쓴 <<라이라크>> 라는 동시가 실려있다.원문을 올리면 아래와 같다.
 
향기에 언제
발이 생겼지
 
향기가 막 걸어다닌다
 
향기에 언제
팔이 생겼지
 
향기가 막 팔을 젓는다
 
향기에 언제
곡이 붙었지
 
향기의 노래 포올폴
메아리쳐간다.
 
림금산시인의 시는 향기를 발로 변형시키고 향기를 팔로 변형시키고 향기를 곡으로 변형시켰다. 발, 팔, 곡 이 세가지 사물은 각각 성질이 완전히 다른 세가지 사물들이다. 발과 팔은 사람구조와 관계되는 별개의 언어이지만 곡이라는 언어는 앞의 두언어와 완전히 다른 사물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는 이미지단위가 세가지가 있다고 하겠다. 이런 시를 다선변형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이 시는 향기라는 사물의 다선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어느한 구조도 다른 구조의 원인이나 결과가 아니고 독립성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이미지단위를 아무렇게나 바꾸어놓아도(각련을 아무렇게나 바꾸어놓아도) 시에는 손색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의 이미지가 다선변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시는 다차원으로 이루어졌고 이미지들은 다양체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선변형은 다차원이나 다양체를 이룩한다고 할 수 있겠다. 더 나아가 말하면 이런 동시를 하이퍼동시라고 하겠다. 단선변형은 중심을 만들지만 이 시는 중심이 없다. 발, 팔, 곡이 어느것도 중심이 아니다. 다 대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횡적 구성으로 되여있다.
 
시는 무의식의 재현으로 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이란 어떠한 것도 위하는 것이 없는 순수한 의식이며, 기성관념을 배제한 의식이다. 콩나물이 음표가 되였다는 것이나 하늘이 둥지로 되였다는 것이나 고드름이 지팽이로 되였다는 것이나 향기가 발이 되고 팔이 되고 곡이 되였다는 비유들은 다 무의식의 반영의 재현이며 새로운 사물의 생성이다. 그것들은 원래의 사물에 대한 의식을 배제하고 나타난 사물들이다. 시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글이다. 때론 <<고드 름>>처럼 현실로부터 무의식으로 들어가고, 때론 <<해님>>이나 <<콩나물>>이나 <<향기>>처럼 곧장 무의식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어떤때는 의식과 무의식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의식을 너무 길게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식이란 어떤것인가? 사물을 보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쓰는 것을 의식이라 한다. 의식은 설명이나 해석에 속한다. 동시라는 나라에서도  의식으로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으로 쓴 글은 사진처럼 되지만 무의식으로 쓴 글은 상징이 된다. 무의식으로 쓰는 동시는 순간을 쓰는 작업이라는 것을 상식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차례의 무의식으로 씌여진 동시는 현대동시가 되고 두차례이상의 무의식으로 씌여진 동시는 하이퍼 동시가 된다.
 
 
4. 현실과 재구성
 
현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실이다. 재구성이란 객관적 으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사물을 상상으로 다시 구성한다는 말이다. 현실은 변형이 아니고 재구성을 통하여 원 현실보다 다른 현실 즉 시적현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시의 기본이라고 한다. 우에서 세가지 방면으로 말하였는데 그 본질은 재구성에 대하여 말한 것과 같다. 재구성이란 언어는 사유과정을 말하는 추상적 명제로서 변형이나 탈령토화와 같은 언어이다. 그런걸 왜 다시 말하는가? 변형에 대한 리해를 더 깊이 해석하기 위해서다.
. 돌은 한송이 꽃이다. 돌은 하나의 별이다. 돌은 한마리 새다 하면 여기서 말하는 꽃, 별, 새는 재구성되여 나온 언어들이다. 재구성된 사물은 원래의 사물과 같은 성질의 사물이 아니며 원래의 사물과는 아무런 련계도 없는 사물이라는 것을 지적해야 할것같다. 이러한 것이 언어의 자유결합의 표현이며 사물들은 다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론리와 통하게 된다. 얼핏 보면 맞지 않는 이런 말, 련계가 안되는 틀린 말들이 시를 구성하게 된다. 현실문법과는 틀리지만 이런 틀림을 아름다운 틀림이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쩡양(吴正阳)시인은 <<꽃을 피울 수 있을가>>(能开出花朵来吗) 하는 시를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늘이 꽃을 피울 수 있을가?
한낮에 하늘은 해님꽃 한송이 피우고
밤에는 하늘이 달님꽃 한송이 피운다
 
바람이 꽃을 피울 수 있을가?
바람이 민들레밭을 지날 때
한송이 두송이 자잘한 꽃을 피운다
 
돌이 꽃을 피울 수 있을가?
돌이 물속에 떨어질 때
한무리 또 한무리 물꽃을 피운다
 
밤이 꽃을 피울수 있을가?
밤이 새까매질 때
밤은 한송이 꽃이 되여
슬그머니 려명을 열어놓는다
 
나도 꽃을 피울 수 있을가?
니가 날 춰주며 좋아할 때
난 한송이 꽃으로 핀다
호호호 사람도 꽃을 피운단다
 
꽃이란 풀이나 나무가 피우는 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풀이나 나무가 꽃을 피우지 않고 하늘은 해님꽃과 달님꽃을 피우고, 바람은 민들레꽃을 피우고, 돌은 물꽃을 피우고, 밤은 꽃이 되여 려명을 열고, 사람도 즐거우면 꽃을 피운다고 한다. 시에 나오는 꽃들은 일상적인 사유로 말하면 꽃이 아니다. 그러니 꽃이 아닌것을 꽃이라고 한다. 이런 꽃들은 시인의 상상에 의하여 창조된 가상현실이며 시적현실로서 변형을 통하여 재구성된 사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바람이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건 생활진실이 아닌가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민들레꽃도 민들레가 피우는 꽃이지 결코 바람이 피우는 꽃은 아니다.
 
왕얜쥔(王雁君)시인이 쓴 <<달 설명서>>(月亮说明书)라는 동시 한수를 더 보자.
 
어미쥐가 말햇다
동그란게
어떤 땐 접시야
 
새가 말했다
꼬부장한게
어떤 땐 쪽배야
 
코끼리가 말했다
또 어떤 땐 빠나나야
 
거부기 말했다
만져보면 따스할거야
해님처럼 뜨겁지 않으니까
 
기린이 말했다
아무때 보나 거기 걸려있는게
목화꽃일거야
 
꽃이 말했다
꼭 마술을 부리거든
꽃이 활짝 피면
달은 날마다 동그래지거든
 
꼬마꼼 이 말했다
냄새가 향기로운 걸 보면
어떤 땐 게화꽃인데 뭐
 
 꿀꿀이가 말했다
먹으면 맛있을 거야
사람들 본따서 지가 만든 월병인데 뭐
 
전기담아 같기도 하고
손전등 같기도 하다
날이 어두워지면 우리들을 비춰주지 뭐!
그래 맞아
집으로 가는 우리 길을 비춰주고
우리들 집까지 바래주고
우리들을 엄마 품에서 자게 하지
 
<<달의 설명서>>는 무던히도 길어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실제로는 마지막련 <<그래 맞아>>로부터는 혹이라고 할 수 있다.어미쥐, 새, 코끼리, 거부기, 꽃, 꼬마곰, 꿀꿀이,어린이까지 도합 8가지 사물이 등장하여 달을 설명하고 있다. 어미쥐는 접시라 하고, 새는 쪽배라 하고, 코끼리는 빠나나라 하고, 거부기는 따스할거라 하고, 기린은 목화꽃이라 하고, 꽃은 마술을 부린다 하고, 꼬마곰은 게화꽃이라 하고, 꿀꿀이는 월병이라 하고, 어린이는 전기담아라 한다. 어느것이 맞고 어느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부동한 의식이나 상상에  따라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겠다.결국은 달에 대한 해체이며 달에 대한 재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사물에 대한 재구성은 한가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하겠다. 재구성을 통하면 터무니 없는 대상을 만들기가 일수이다.터무니 없는 대상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사물이 자유로 나타나게 되며 시가
엉뚱하게 되고 참신하게 된다.
 첫머리에서 재구성된 사물들은 원래의 사물과 다른 사물이라고 말하였다.
돌은 새다, 돌은 강물이다, 돌은 하늘이다, 이러한 은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점이 꼬물도 없는 사물로 재구성되였다고 할 수 있고, 터무니 없는 대상을 재구성해 냈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시에서는 통한다.  그것이 맞는가 틀리는가를 가늠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왜 헛된 짓인가? 따지고 보면 필연적으로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처럼 생긴 돌이 있을 수 있으니 맞을 수 있고, 구불구굴하거나 기다랗게 생긴돌도 있을수 있으니 맞을 수 있고, 하늘처럼 파란 색갈의 돌이 있을 수 있으니 맞을 수 있다. 변형은 어느한 순간의 비슷함을 상상하여 비유하는 것이지 사물의 전체를 그대로 맞추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시는 리해되지 않아도 통한다고 말한다. 우에서 많은 시들을 례로 들었는데 터무니 없는 비유들이 많은 같다. 하지만  분석해 보면 터무니 없는 대상을 생성한다는 명제는 맞는 명제란 것을 어렵지 않게 가늠하게 된다. <<달의 설명>>이라는 시를 보면 달은 해체되고 분리되면서 여러가지 사물을 생성된다.여러가지 사물들은 또 여러가지 의미를 낳는다.
재구성도 일종 변형이다. 재구성된 사물이나 사실은 원래의 사물이나 사실과는 별개의 사물이며 별개의 사실이다. 이미 알고 있는 관념으로 재구성을 흥량하면 아니 된다. 반드시 시의 본연에 립각하여 분석하고 추리하여야만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 언어가 가지는 의미는 한가지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는 것도 시의 본연중의 한가지이다.한 언어의 다의미는 필연적으로 <<달의 설명>>처럼 언어의 다양화를 초래하게 되며 이미지의 다양체를 생성하게 된다.
 
우에서 언어의 자유로운 결합이라고 말하였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언어의 자유로운 결합에 의하여 시인은 언어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창조자체가 변형에 속하고 새로운 이미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언어창조는 낯설기에 속하는 것으로서 한수의 시에서 한마디 새로운 언어창조라도 꼭 있어야 시가 낡투를 피면하고 시에 새로운 생기가 생기게 된다. 아래에 세가지 방면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는 명사와 명사의 새로운 결합이다. 바람이라는 명사를 가지고 새로운 언어조합을 해보자.
바람무지개, 바람나무, 바람풀,  바람고기, 바람토끼, 바람 잠자리, 바람바위, 바람쓸개,바람눈,바람다리, 바람봉우리, 바람 별…. 바람이라는 명사 하나를 가지고 여러가지로 할 수 있으니 세상에 많고 많은 사물을 가지고 다 이렇게 할 수 있으니 명사와 명사의 새로운 조합은 무궁하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는 수량수사를 새롭게 만들어 보자. 노래에 관계되는 것만 어떠한가를 살펴보자.  노래 한줌, 노래 한마대, 노래 한줄, 노래 한다발, 노래 한톨,노래 한송이, 노래 한자락, 노래 한단…, 노래라는 하나에 이렇듯 많은 수량수사를 새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 여러 사물의 수량수사의 다양성은 끝이 없으리라
세째는 사물들의 소리로 만들어보자, 참새 꼬꼬운다, 비둘기 밤밤운다, 메돼기 꾸꾸 운다,황소 왕왕 운다, 개가 짹짹 운다, 호랑이 흐엉흐엉 운다 수탉이 짜릉쯔릉 운다.지렁이 카르르 운다… 시인은 이렇게 소리를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는 의무와 특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첫째든 둘째든 세째든 모두 전통적인 것을 벗어나서 필자가 자유로 만들어 본 것이다. 시인자신이 자유로 만든 자체가 창조이며 기성관념을 벗어나서  새롭게 언어를 다루어보았다는 증거이겠다. 이런 창조와 새로움은 시에서 얼마든지 용허되는 것이다. 이렇게 막해도 되는가 하고 말할 수도 있으나 시는 워낙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사유와 자유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언어들의 량이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엉터리같지만 실제는 엉터리인 것이 아니라 새로움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머언 후날 후세들이 우리 시를 보면서 옛날 사람들이 언어를 새롭게 다루어보느라고 애썼네 라고 할
것이다.
이상으로 변형에 대한 고찰을 마친다. 많은 지적이 있기를 바란다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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