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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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에 대한 유선 글 절록
2009년 05월 01일 22시 19분  조회:1509  추천:15  작성자: 최룡관

 

  • 1. 시조의 이해

    시조는 시이다.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시인이 될 적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요, 늘 시를 감상하고 시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벌써 시인인 것이다.

    시조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와 지혜가 어우러져 탄생한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학의 정수이다. 우리 조상들이 천여 년간 즐겨 짓고 불러 온 이 노래야말로 우리 문학의 종가요 종손이라 할 수 있다. 시조는 여러 문학의 종류 중에서 시에 속하며, 형식적으로는 시 중의 자유시가 아니라 정형시에 해당한다. 그러나 중국의 전통시가인 한시나 일본의 전통시가인 화가나 배구처럼 엄격한 정형시가 아닌 반 정형시 즉, 정형이면서 비정형의 시라 할 수 있다.



    2. 시조의 형식

    시조의 기본 형식은 시상을 구성하는데 주로 3 장 6 구 12 음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3 장이란 초장, 중장, 종장인데, 이는 마치 논문의 서론, 본론, 결론의 순서와 비슷하나, 이보다는 한시의 기, 승, 전, 결의 구성법과 일치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시조의 초장은 기에 해당하며, 중장은 승에 해당하고, 종장의 제1구인 3∼5. 6. 7. 8. 9는 전에 해당하며. 그리고 종장의 제2구인 4∼3은 결에 해당한다. 시조의 기본형식에서 3장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동양철학에서 우주의 생성과정의 기본원리인 삼재(三才) 즉, 천(天-·) 지(地-―) 인(人-l)의 논리와도 일치한다.

    시조의 기본형식인 3 장 6 구 12 음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다음 노산의 <성불사> 첫 수를 보기로 한다.



    초장 : 성불사 / 깊은 밤에 / 그윽한 / 풍경 소리

    3 4 3 4
    제 1 구 제 2 구

    중장 : 주승은 / 잠이 들고 / 객이 홀로 / 듣는구나

    3 4 4 4

    제 1 구 제 2 구

    종장 : 저 손아 / 마저 잠들어 / 혼자 울게 / 하여라.

    3 5 4 3

    제 1 구 제 2 구



    이와 같이 초장의 제1구는 3·4, (성불사 깊은 밤에), 제2구도 3·4, (그윽한 풍경소리), 중장의 제1구는 3·4 (주승은 잠이 들고), 제2구는 4·4 (객이 홀로 듣는구나), 종장의 제1구는 3·5 (저 손아 마저 잠들어), 제2구는 4·3 (혼자 울게 하여라)이다. 그래서 평시조(단형 시조) 한 수는 3 장 6 구 12 음보로 구성되어 있다.



    김 준 교수는 내용상의 구성원리를 <현대시조 논단>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시조의 초장이 한시의 기구에 해당하고 중장이 승구, 종장이 전구와 결구로서, 선경 후정(先景後情)이라는 구성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해명되어지고 있다. 한시의 경우 기와 승의 두 구는 서경에 해당하여 시인이 대상을 바라보거나 처해 있는 사물의 객관적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게 된다. 반면, 전과 결의 두 구는 이러한 객관적 사실이나 상황을 통해서 시인 자신의 내면 세계에서 터득된 심정이나 객관적 상관관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조에 있어서도 이러한 선경 후정의 법칙이 꼭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초, 중장이 선경에 해당하고 종장이 후정에 해당함으로써 보다 적절한 시상의 효과와 주제의 심화가 기대된다.

    이러한 구성원리는 현대시조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데 종장 첫구의 3자가 바로 선경에서 후정으로 전환되는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호우의 시조 <開花>는 이에 대한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겠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이 작품은 꽃이 피어나는 상황을 다루고 있으나, 단지 외부적 상황이나 즉물적 감정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꽃이 핀다는 사실을 자연 섭리의 이법에 의한 본질적 파악이나 생명에 대한 경외감의 토로야말로 놀라운 수법이다. 다시 말해서 꽃이라는 한 생명이 탄생되는 순간에 온갖 사물인 바람도 햇볕도 숨을 크게 못 쉬는 상황과 더불어 시인 자신도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엄숙한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초장에서는 한 잎 한 잎 꽃이 피는 상태를 마치 닫혔던 하늘이 새로 열리는 것에 비유했고, 중장에서는 마지막으로 한 잎이 피는 모습을 노래함으로써 선경이고, 종장에 와서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시인 자신의 심정을 보임으로써 후정에 속하고 있다. 결국 이 시조는 대상인 사물과 서정적 자아가 우주의 질서 속에 관계를 맺고 합일화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3. 시조의 종류

    지금까지 시조의 구성원리와 가락의 본질을 평시조 즉 단형 시조에 국한하여 기술하였다. 그러나, 기본 시형이 너무 엄격하여 답답하다고 느낀 나머지 엇시조(중형시조)와 사설시조(장형시조) 등의 변형을 만들어 냈고, 또 평시조를 두 수 이상 연결시킨 연시조 즉 연형 시조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를 예를 들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1) 평시조(단형 시조)

    평시조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본형식이 3 장 6 구 12 음보로서 45자 내외가 되는 시조를 일컫는다. 다음, 노산 이은상의 <개나리> 전문을 보자.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답장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을 차마 쓰기 어려워서.



    이 시조의 구성이 <3·4·3·4 / 3·4·3·4 / 3·5·4·4>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창작된 동기는 무엇일까?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매화꽃이 졌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게 사랑을 고백하는 암시임을 알아차린 여자가 "개나리는 지금 한창입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남자는 그 여자를 무척 사랑하지만 여자에 비해 나이가 많다든지, 아내를 잃은 처지라든지, 아니면 다른 여러 결함을 가졌으므로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여자 쪽에서는 그런걸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인생의 봄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창 즐길 수 있는 시절이므로 얼마든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조심스런 고백을 받고, 참으로 뜨겁게 암시하여 보낸 멋진 답장이었다.

    시인은 그런 편지의 사연을 놓치지 않고 시조로 만들었다. 산문으로 쓰면 상당히 긴 설명이 붙어야 하겠으나 시조의 초장과 중장으로 처리한 다음, 종장에다가 시인의 견해로 마무리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조 속에는 세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다.

    노산의 시조 <개나리>는 간결성과 함축성을 잘 살리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언어예술이다. 자연의 계절 감각을 빌어다가 인생의 계절 감각으로 나타낸 것이 "매화꽃"과 "개나리"다. 따라서 이는 인생의 봄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 뜻을 빌어 남자는 사랑을 구하고, 여성은 더 적극적으로 불타도록 이끌고 있다. 그 같은 세계에 시인이 뛰어들어 두 주인공이 상징으로 내세운 매화꽃과 개나리의 뜻이 사랑이 흐드러지게 꽃피는 인생의 계절임을 한마디로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2) 엇시조(중형 시조)

    엇시조는 평시조의 기본형식인 3 장 6 구 12 음보에서 종장을 제외한 초장이나 중장 중 어느 한 장의 길이가 한 구 더 길어진 형식의 시조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3 장 7 구 14 음보로 구성되는 것이다. 즉, 초장 중장 중 어느 한 장이 기본형식보다 3·4나 4·4자가 첨가된 시조이다. 고시조에서는 여러 작품이 보이나 현대시조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고추밭에 익는 사랑

    목화밭에 피는 구름



    마을 큰애기는

    그리움을 치마로 갈아입는다



    모시베 고실고실한

    쪽물 자락치마로. -장순하의 <숙추(熟秋)> 제1수

    윗시조의 중장 제2구에 '갈아입는다'가 덧붙어 늘어난 엇시조이다. 여기서 시인은 '치마로'와 같은 말을 넣을 것인가, 넣지 않을 것인가를 무척 고심했을 것이다. 결국 넣어서 엇시조가 된 것이지만, 넣지 않았다면 단형 시조이다.



    3) 사설시조(장형 시조)

    사설시조는 엇시조에서와 마찬가지로 종장을 제외한 초장이나 중장 중 어느 한 장이 두 구 이상 길어진 시조 즉, 3 장 8 구 16 음보 이상 무제한으로 길어져 산문적 성격을 띄고 있는 시조를 일컫는다. 대체로 중장 부분 전체가 판소리 성격을 띤 재담 역할로 대폭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초장과 중장, 중장과 종장이 함께 늘어난 경우도 있고, 3 장이 제멋대로 늘어난 것도 더러 있다. 이는 영·정조 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시조의 모습들이다. 그런데, 자유시와 구분되는 특징은 3 장의 성격으로 늘어나서 의미의 구분은 서론, 본론, 결론이 뚜렷하다는 데에 있다. 다음 김옥정의 시조는 사설시조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별이나 달빛이거나

    문명의 마파람에 돌아앉은 요즈음.



    이별을 예감한 온 산천이 시름시름 앓는데, 고향 마을 전설들을 줄줄 꿰던 서낭 할매, 힘줄 돋군 달구질로 가뭇없이 사라지면, 해묵은 둥지를 잃고 밤새 떨던 산새들은 천근의 저 하늘이 슬픔으로 내려 눌러, 움푹 꺼진 눈자위로 아리랑을 외며 간다.



    또 다신

    돌아오지 않으리라

    아리아리 아라리오.

    -<세상구경.16, 아라리오> 전문



    이는 사설시조 중 수작의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여기서 별, 달빛 등은 산천과 같은 자연의 일부요, 해묵은 둥지와 고향은 동질성이며, 전통을 지닌 할매나 산새는 인정과 순수의 상징으로 문명의 마파람에 피해를 입는 당사자 즉, 아리랑을 부르며 사라지는 슬픈 주체들이다. 현대문명에 쫓겨난 인간, 파괴되는 자연, 그 발붙일 곳 없는 상황은 물질문명이 가져 온 인간의 추방이요, 자연의 살해인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거만한 문명이 오히려 사람과 자연을 지배하고 타락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옛날을 그리워하면서도 침통한 방황을 계속하며 사라지는 지도 모른다.



    4) 연시조(연형 시조)

    연시조는 하나의 제목 아래 3 장이 두 수 이상 구성되는 시조로, 시상이 통일되어야 한다. 개화기 이전의 시조에서는 단수로 된 평시조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사상과 감정이 복잡해짐에 따라 우리의 의식 또한 그만큼 깊고 다양하다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조시인들이 단형 시조를 피하고 연형 시조의 형식을 빌어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면, 연시조를 창작할 때 유의할 점은 첫째, 각 수마다 동일한 이미지나 시어의 반복을 피해야 하고, 독립된 소주제들이 통일성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시상을 전개시켜야 한다. 둘째, 가장 인상적, 충동적이고 집중적인 시상을 종장에 배치하고, 역으로 초장과 중장을 서술함으로써 시적 효과를 더욱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연시조에서는 맨 마지막 수의 종장이 점층적으로 강한 인상이나 의미를 구현해야 한다. 셋째, 사설시조 형식의 연형일 때, 첫 수는 평시조의 형식으로, 제2수는 사설시조의 형식을 취하는 것도 좋겠다. 세 수의 연형일 때도 첫 수는 평시조, 제2수는 사설시조, 제3수는 평시조의 구성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러나 세 수는 모두 점층적인 구조로 이루어짐이 바람직하다.



    빛나게 찍은 점들

    무수한 저 선분들



    어떤 건 ㅑ, ㅠ, ㅕ, ㅛ,

    어떤 건 로-루-르-리.



    쌍받침

    받친 글자도

    더러 함께 반짝하네.



    뜻글자며

    알파벳이며

    도형 모습 갖가지구나.



    어느 먼 기슭에는

    알 수 없는 그림 글자.



    아침이

    지우개로 오기까지

    배운 것 다 나와 있네.

    -서 벌의 <저문 하늘이 큰 칠판 되어> 전문



    날이 저물면 하늘은 크나큰 칠판이 되어 무수한 별자리들이 갖가지 글자와 도형의 모습으로 반짝이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두 우리가 실제로 배우고 익힌 학습내용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은 다음 차례의 학습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우개의 의미로 온다는 것을 두 수로 갈라서 구성해 놓은 연시조 1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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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성자 : 깡최
    날자:2009-05-02 0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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