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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다리
김희관 원 연변주문화국 국장
12월1일 <연길다리>가 100년만에 <연길대교>로 다시 태여났다. 개통 첫날이라 구경군들이 하도 많아서 시민들의 <연길다리>에 대한 애착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길대교>가 아직은 미완성이라 앞으로 부속시설과 주변 공원조성, 봇물가두기 등 공사를 완공하면 디자인이 괜찮은 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에 새로 건설된 <연길대교>는 손자벌이다. 일찍이 1909년 2월 연변변무공정국의 감독하에 처음으로 부르하퉁하에 목조다리를 놓았는데 그다리를 <연평다리>라고 불렀다. 그 때는 하북에 주민들이 많았기에 습관적으로 그냥 <하남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1934년 <연평다리>는 아쉽게도 큰홍수에 떠내려갔다. 그래서 림시방편으로 걸쳐놓은 나무다리가 하남다리 역할을 했다.
1934년부터 일위통치자들은 군사전략의 수요에 따라 철근콩크리트구조로 된 연길다리와 공원다리를 설계하고 건설하기 시작했다. 1936년6월에 완공된 <강평다리>는 다시 <연길다리>로 바꿔 불렀다. 1957년에는 <연길다리> 서북쪽 기둥이 홍수에 내려앚는 사고가 발생해 한동안은 불편했다. 1986년 <연길다리>는 폭을 넓이는 보수공사을 했다. 올해 초부터 시공한 <연길다리>는 사상 최대규모의 <연길대교>로 재건됐다.
<연길다리>는 유서깊은 다리이다. <연길다리>는 묵묵히 누워서 연길의 력사를 100년동안이나 치켜봤다. 청나라말기의 연길, 손문시대의 연길, 일제시대의 연길 그리고 해방후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길과 연길사람들의 변천사를 모두 지켜봤다. 만약에 백년전부터 연길다리에 CCTV가 설치되였더라면 그 보다 더 좋은 영상력사자료는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하남다리의 몇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50년 4월하순의 하루 필자는 양마차를 타고 연길다리를 건너 연길에 입성하였다. 그때는 아버지가 중공연변지위 서기 겸 전원이신 주덕해동지의 비서로 계셔서 어머님이 우리 형제들을 이끌고 흑룡강성 상지에서 연길로 이사오게 되였다. 우리가 연길역에 내려 지위에서 마중나온 양마차를 타고 하남다리를 건너는데 여덟살나이의 필자는 <아, 이렇게 큰 다리…>하고 입을 못 다물었다. 상지 하동에서는 불과 50여메터되는 보동다리를 건너다가 이렇게 긴 다리를 양마차를 타고 건너게 되니 더없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날의 놀라움과 기쁨은 평생을 잊을수 없다.
지난 세월 매일 아침이면 수많은 로동자들이 자전거 짐받이에 도시락을 끼우도 하남다리를 건너 여러 공장으로 출근하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였다. 그때 그들은 우리의 믿음직한 산업대군이였다.
어느해인가, 하루는 수많은 당나귀들이 새하얀 주둥이를 가쭌하게 이어대고 집채같은 보일러시설을 끌고 연길다리를 건네는 보습이 너무나 기특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단결은 힘>이라는 그런 장면이였다. 그때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좋은 사진작품을 남겼을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잊을수 없는 장면은 1982년 6월, 경애하는 주은래총리께서 하남다리를 오가시면서 우리의 삶은 보살펴주시던 나날이다…
지난 30년 세월, 필자는 세상의 많은 유명한 다리를 건너면서 즐겼다. 국내의 장강대교와 황포대교는 물론이고 미국 센프랜시스코의 금문교(골든 게이트브릿지), 뉴욕 맨하탄의 부루클린브릿지, 홍콩의 청마대교,조선평양의 대동강다리, 한국의 한강다리, 인천대교, 도꾜만의 레인보우브릿지,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유명한 하버브릿지 등이다. 지금은 바다에 몇십키로메터의 다리가 건설되여 섬들을 이어가는 세월이라 다리의 공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다리는 도시교통의 요충지이다. 여러갈래에서 몰려온 사람과 차량들이 다리로 빨려드는 광경은 도시의 일상풍경이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즐겁게 건널 수 있어야 한다. 아직은 화석연료시대여서 차량들은 매연을 내뿜으면서 뻔질나게 질주하지만 인행도를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는 아직은 고역이다. 앞으로 전기차시대가 온다다고 하니 한동안을 내심하게 기다려야 하겠다.
다리는 도시문명의 중요한 상징이다. 국내외의 도시들을 돌아보면 다리가 있는 도시에는 강물이나 바다물이 있어 공기가 맑고 습윤하며 활기가 넘친다. 도시는 문명한 시민, 풍부한 물자원, 아름다운 도시 디자인, 활발한 시장경제 그리고 다채로운 민속풍경과 문화예술로 하여 유명해지는것이다. 그러한 도시들에는 유명한 다리와 관련되는 수많은 스토리가 생겨나고 전해진다. 그러한 스토리들은 소설, 연극, 영화, 드라마로 승화되여 보석같은 문화예술진품으로 남는다. 미국 할리우드의 경전적 영화 <화테루브릿지(魂断蓝桥)>는 영국 런던의 화테루다리를 배경으로 세계대전이 연인들에게 가져다준 비극을 비장하게 그려냈다.
<연길다리>가 이제는 <연길대교>로 다시 태여났다. 연길이 그만큼 번영해졌다는 상징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국내외 귀빈들이 <연길대교>를 건너 우리를 찾아오기를 바라며 국내외에서 살고있는 <연길사람>들이 고향나들이 자주 하기를 바란다. 또한 누군가 <연길다리>라는 홈페이지를 열어 <연길다리>가 사이버다리가 되여 월드네트워크를 구성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100년동안 <연길대교>에서 좋은 드라마 스토리가 엮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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