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보면 한 주인공이 슬픔과 비통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어느새 다가와 그 눈물을 닦아주는 아름다운 손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관객들은 마치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듯한 느낌으로 그 감동적인 장면을 기억하곤 한다. 인간의 삶 속에는 많은 눈물이 고여 있다.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 때문이든, 아니면 지긋지긋한 가난이나 전쟁, 질병, 죄악 등 그 무엇 때문이든 마를 날 없는 숱한 눈물로 채워져 있는 게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오늘을 살아가는 중국동포와 한국동포의 눈 속에도 그득한 눈물이 맺혀 있다. 거세게 몰아닥친 개방 영향으로 중국동포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한국이나 미국 일본 등으로 떠나는가 하면 좀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연해 남방지역으로 속속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들이 그곳에서 정착해 돈을 벌기까지 먼저 놓인 것은 눈물바가지였다. 외로움과 설움과 멸시와 분노의 눈물이 끊이질 않은 것이다. 아직도 그 눈물바가지를 채우지 못해 날마다 하염없는 눈물로 지새는 동포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한국동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중 수교 직후 중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섣불리 뛰어든 초기 투자자들의 90% 이상이 실패하고 철수하고 말았다. 이후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설비 이전의 장점과 값싼 노동력 확보를 따져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밀려들어왔지만 앞선 기술과 충분한 사전정보를 챙겨오지 못한 기업이나 철저한 자기관리에 실패한 기업인들 역시 뼈아픈 눈물을 흘려야 했다. 대체로 이러한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은 종교나 정치 지도자들이 해왔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며 스스로 진리를 위한 고행의 길을 걸었다. 더욱이 그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자신의 동포 인도인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자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실천했다. 한국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에서 수많은 지식인과 꽃다운 처녀들이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 행에 올랐다.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고국과는 이역만리 떨어진데다 말도 통하지 않고 유색인종이라는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누구하나 붙들고 이야기할 사람조차 없었으니 그들의 고독한 삶이 오죽했겠는가. 그때 비록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상태였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정부 초청으로 방문하면서 이들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대화의 자리였지만 그 자리에선 말이 없었다. 그저 눈물에 이은 통곡만이 장내를 가득 메웠고 당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일일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고 한다. 오늘의 한국이 이들의 눈물 덕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 오늘 중국동포와 한국동포들의 눈물은 누가 거두어줄 것인가. 우리는 서로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서로 기댈 수 있는 느티나무와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 돼야 한다. 서로가 가족이 되고, 서로가 이웃이 되고, 서로가 한겨레가 되어 스스로 눈물을 거두어야 한다. 언제까지 남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줄 때까지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다. 맺힌 눈물방울을 떨구지 말고 이젠 훔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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