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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부정을 통한 승화가 필요한 연변
2005년 11월 30일 00시 00분  조회:4331  추천:55  작성자: 차대형

중국동포 여성작가 허련순씨가 문학자서전을 통해 "글쓰기는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부정'과 '파괴'의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1989년 <사내 많은 여인>이라는 중단편집을 한국에서 펴낸 그는 그곳에서 만난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1980년대까지의 자신의 소설에 부끄러워하면서 진정한 작가의 길을 들어서는 자세로 1990년대 문학을 새롭게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또 한차례 자신의 문학적 한계에 부닥쳤을 때는 이전보다 더욱 심한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눈과 사유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새로운 일탈을 꿈꿀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결국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한국으로 건너가 만학의 길에 들어서 다시 문학을 공부하며 처절한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 결과 2004년 그가 펴낸 장편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는 서울 교보문고 팬 사인회에서 한시간에 400여권이나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는 중국동포사회의 정체성과 여성성을 집중 탐구하는 대표적인 작가로 우뚝 서게 됐다.

그는 "기를 쓰고 자신의 문학을 한국문단에 올려놓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문학 공간을 넓히려는 목적과 함께 연변이라는 지역문학에서 탈출을 꾀함"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탈출이란 연변이라는 특수성을 버리고 남의 문학을 좇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그 특수성을 세계문학의 보편성에 적응시키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수성을 한 지역에서만 통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논리적인 함정에 빠져 '우물안 개구리'가 될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더 높은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것, 우리 것만이 좋고 최고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철학자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자기부정 자기상실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참된 자기를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인식'이나 '사물'에서뿐만 아니라 '존재'에서도 변증법적 전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는 "역사나 개인의 주체가 되는 주관적인 정신은 객관적 정신으로, 객관적 정신은 절대정신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정신이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생겨난다"고 말한다.

이 부정을 통해 '모순'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는 '지양'이 이뤄지는데 지양이란 독일어 아우프헤벤(aufheben)'을 번역한 말로 '보존하다'와 '폐기하다' 그리고 '승화시키다'는 뜻을 가진다. 즉 보존하고, 폐기하여. 승화시키는 다시 말해 '부정을 통한 승화'로 모순을 해결해내는 게 헤겔 철학의 핵심이다.

2005 특별기획 '중국 한겨레사회 어디까지 왔나' 취재를 위해 찾은 연변은 활기가 넘치고 현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고향으로, 세계적인 보편성에 발맞춰나가는 곳으로 연변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구현해내고 독특한 문화를 창출해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연변도 처절한 자기부정을 통한 승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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