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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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3-1-1] 연변지역에 대한 이해
2008년 09월 06일 09시 18분  조회:3230  추천:73  작성자: 곽승지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제3장 연변‧조선족의 역사와 전략적 가치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났었습니다.
.....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중에서


1. 동북아시아시대의 중심으로서 연변

0. 연변지역에 대한 이해

. 연변의 유래와 지역적 범위
연변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이다. 대체로 두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중국과 조선 러시아 3국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변방지대에 접해 있다는 지리적 측면을 반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이 지역의 중심지인 연길에 있던 핵심 공공기관인 연길변무공서의 명칭을 줄여 연변으로 부르던 데서 연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연변이라는 명칭보다 조선인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던 간도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했다. 만주사변 직후인 1934년 12월에는 이곳에 간도성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1945년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이어졌다.

일본이 항복하자 중국공산당은 이 지역을 간도라고 부르는 것이 일제의 유산이라며 거부하고 다시 연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 동북국과 길림성 공작위가 중국공산당 연변지방위원회(연변지위)를 구성하고 간도성을 연변행정독찰전원공서로 개칭한 것이다. 이후 중국공산당은 각종 공식문서에서 간도 대신 연변이라는 명칭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연변지위의 결정에 앞서 중국공산당은 동만주 지역을 연변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었다. 따라서 연변지위가 간도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폐지하기에 앞선 1945년 초부터 연변이라는 명칭이 두루 사용되었다. 1945년 당시 중국공산당 동북위원회는 항일전쟁에서의 승리를 예견하고 동북지역에 공산당조직을 재건하여 당사업을 추진할 계획으로 조선인 당원으로 구성된 연변지구 공작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10월에는 중국공산당 연변위원회(연변위)를 공식적으로 설립했다.

한편, 간도를 연변으로 고쳐 부른 연원을 따져 볼 때 간도는 북간도를 지칭한다. 따라서 연변의 지역적 범주도 북간도와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연변이란 명칭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약칭해 부르는 것으로서 그 범주도 자치주에 국한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는 북간도로 불리던 넓은 지역을 통칭하는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동만주지역을 연변으로 지칭했다.

. 자연지리적 환경
연변은 길림성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연해주와, 동북쪽으로는 흑룡강성과 이웃하고 있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은 백두산에서 두만강 하류까지의 약 522키로미터에 이르며 러시아와의 접경지역은 약 246키로미터에 이른다. 연변의 총 변경길이는 768.5키로미터이다.

연변에는 장백산맥과 노야령산맥이 서남지역에서 동북지역으로 뻗어 있어 광활한 벌판으로 이루어진 길림성의 동부지역이나 요녕성 북부 및 흑룡강성 서부 지역과 달리 해발 500-1000미터의 높고 낮은 산들이 많다. 이 산지에서 나오는 하천은 동북지역 수계의 근원이다. 두 산맥이 만나는 지점에 연길분지가 자리하고 있다. 역내의 주요 하천으로는 두만강과 송화강 무단강 수분강 합이포통하 해란강 등이 있다. 

장백산(백두산)을 포함한 울창한 삼림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연변은 삼림면적 점유율이 80퍼센트를 넘는다. 이곳에는 국가급 자연보호구 2곳과 성급 자연보호구 6곳, 국가급 삼림공원 5곳, 성급 삼림공원 6곳이 지정되어 있다. 이 지역은 또 1980년에 중국 최초로 유네스코로부터 생태권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장백산은 중국의 10대 명산으로 불리는데 중국정부는 장백산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변지역의 기후는 기본적으로 대륙성 기후로서 변화가 적다. 연평균기온은 섭씨 2-6도이며 1월 평균기온은 영하 14.1도, 7월 평균기온은 21.6도이다. 연간 강수량은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500-700미리미터 정도이다.

. 사회문화적 환경
연변의 공식 명칭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이다. 행정구역상 길림성에 속하며 연길 도문 돈화 화룡 용정 훈춘 등 6개 시와 왕청 안도 등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면적 4만2천7백 평방키로미터로서 주도는 연길이다.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이 소수민족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족이 집거하고 있는 이 지역을 특화하기 위해 만든 특별행정조직이다. 1952년 9월 3일 조선족자치구로 설립됐다가 3년 후인 1955년 12월 등급을 낮추어 자치주로 변경됐다. 2007년은 조선족들을 위한 독립행정조직이 설립된 지 55주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족자치구가 설립될 당시 행정구역은 1시5현으로 구성됐었다.

1958년에 돈화가, 1965년에 도문시가 각각 연변조선족자치주에 편입됐다. 그리고 1985년, 1987년, 1993년에 돈화 용정 훈춘 화룡이 각각 현에서 시로 승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들 현과 시에는 하부 행정조직으로 15개의 향과 51개의 진 등 모두 66개의 향‧진이 있다. 한편 연변조선족자치주와 함께 조선족동포들이 집거하고 있는 자치지역으로는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1958년 설립)과 30개의 자치향, 28개의 조선족‧만족 연합 자치 향 및 진이 동북3성 지역 내에 산재해 있다.
중국 길림성 정부는 2007년 7월 연길‧용정‧도문 등 3개시를 광역개념의 한개 도시로 통합하는 이른바 연룡도프로젝트를 정식 비준‧공포했다. 중국의 한 인터넷신문은 7월 15일 “김림성 정부는 지난달 30일 ‘연길‧용정‧도문 시 공간발전계획 요강’을 정식 승인하고 이달 13일 대외에 공포했다”고 보도했다. 요강에 따르면 연길‧용정‧도문 등 3개 도시를 반시간권 이내의 단일 도로망으로 연결하는 일체화 개념을 통해 경제, 산업, 무역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기반시설을 공동 건설 또는 이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5년 말 현재 연변에는 조선족을 포함해 한족 만족 회족 등 24개 민족이 살고 있으며 전체인구는 약 2백17만5천명에 이른다. 이중 조선족은 81만6천명으로 약 37.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한족 59.4퍼센트, 만족 2.6퍼센트, 회족 0.3퍼센트 등이다. 한족이 조선족보다 20퍼센트 이상 많다. 2007년 2월 중국 소수민족 인구통계 자료에 따르면 중국 내 조선족은 192만 597명이다. 소수민족 중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내 조선족 중 42퍼센트가 연변지역에서 살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시 인구는 42만9천100명이며 이중 조선족은 전체의 57.7%인 24만7천70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치는 2007년 3월 16일 연길시 통계국이 발표한 2006년 국민경제 사회발전 및 통계 공보에 의해 밝혀졌다. 한족인구는 17만1천200명으로 전체의 39.8%이다.

연변은 중국 동북지역의 변방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여건이 매우 열악했다. 그러나 최근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교통망이 다양하게 구축되었다. 장춘 길림 도문을 잇는 창투철도가 이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연변에서 화룡과 개산둔으로 지선이 분기한다. 도문에서는 목단강과 함경북도 온성으로 통하는 철도가 연결되고 있다. 도로는 철도를 따라 뻗어 있는데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과거 내륙지역인 연길에서 해외로 나가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중수교 이후 한국기업의 지원으로 연길에 국제공항이 건설됨으로써 지금은 서울과 부산행 항공노선이 개설되어 있다. 국내선으로는 북경과 창춘 심양노선이 있다.


 제3장 연변‧조선족의 역사와 전략적 가치 글싣는 순서
1.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서 연변
0. 연변지역에 대한 이해
- 연변의 유래와 지역적 범위
- 자연지리적 환경
- 사회문화적 환경
0. 동북아시아역사를 통해 본 연변
- 주변국들의 연변지역에 대한 관심
- 청의 봉금정책과 봉금지대에 대한 해석
- 백두산정계비의 진실
- 일본의 개입과 간도협약
- 북․중 간 국경조약
0. 연변의 지정학적 가치
- 역사 속에서 보는 지정학적 가치
- 한민족 인적교류의 무대
- 북한을 향하는 새로운 통로
- 변경지대로서 월경협력의 장
2. 변경문화의 체현자로서 조선족
0. 한민족의 연변이주
- 조선족 명칭의 유래 및 현재적 의미
- 해방 후 중국에 정착한 조선인들
- 한민족 연변이주에 대한 인식
0. 조선족의 위상과 역할
- 북한변화의 촉매자
- 남북관계의 매개자
- 한중협력의 중재자
- 동북아시아 미래 안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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