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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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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딸린의 밀고로 장개석에게 체포된 양호성
2013년 11월 02일 19시 24분  조회:9159  추천:1  작성자: 넉두리

쓰딸린의 밀고로 장개석에게 체포된 양호성

(번역)
 



 
1893년 11월 26일에 섬서성 포성현에서 출생한 양호성장군은 중국공산당의 항일민족통일전선정책을 찬성하여 내전을 반대하고 항일을 견지하기 위해 1936년 12월 12일에 장학량장군과 함께 중외를 놀래우는 《서안사변(쌍12사변이라고도 함)》을 일으켰다.
《서안사변》후 장개석은 양호성을 핍박하여 출국고찰을 나가도록 명령을 내렸다.

양호성은1937년 6월 29일에 배를 타고 출국했다. 양호성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나라들을 경과하면서 항일주장을 선전했다. 양호성의 손자 양한은 이렇게 말했다.

“유럽에 있을 때 양호성은 양명헌과 호희중을 대표로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공산국제에 주둔하고있는 중국공산당의 대표를 찾아 쏘련을 통해 귀국하려고 했다. 이는 극비밀에 속하는 일이였다. 그러나 쓰딸린은 비밀경로를 통하여 양호성이 쏘련을 통해 귀국하려고 한다는 이 비밀을 장개석에게 알려주었다. 양개석은 쓰딸린의 통보를 받고 원래 양호성을 귀국하지 못하게 했던 정책을 개변했다.”

1937년 8월 9일에 양호성이 탄 “노르망디(诺曼第)호”륜선은 영국남부의 한 항구에 들어섰다. 양호성은 마침내 유럽에 도착한것이다. 8월말에 양호성은 빠라에서 기차를 타고 독일로 들어갔다. 양호성은 두번이나 사람을 쏘련대사관에 파견하여 사증에 관한 정황을 알아보는 동시에 대표를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공산국제에 주둔하고있는 중국공산당대표단을 찾아 “먼저 쏘련에 들어간후 다시 몽고를 경과하여 섬북해방구로 들어가려는 계획”을 털어놓고 양호성이 쏘련에 갈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쏘련대사관에서는 이 일은 모스크바(쓰딸란)에 지시해줄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쓰딸린한테서 양호성이 쏘련을 통해 귀국하여 공산당한테로 가려고 한다는 비밀을 알게 된 장개석은 이 기회에 양호성을 속여서 귀국시킨후 체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1937년 9월말에 장개석은 내막을 모르는 송자문을 통해 양호성에게 “자원적으로 돌아오라”는 전보를 보냈다. 10월 6일에 또 “중쏘관계과 민감하니 양장군이 쏘련을 통해 귀국하는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전보를 보냈다.

양호성은 쏘련을 통해 귀국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장개석의 뜻에 따라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측근들이 장개석의 음모일지도 모른다고 귀띔했지만 양호성은 “내가 서안사변을 일으킨것은 항일하기 위해서였소. 지금 국내에서 전면적으로 항전하고있는데 내가 해외에서 떠돌고있으니 중국인민을 볼 면목이 없소. 귀국한후 장개석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후회하지 않겠소. 나라에 미안하지 않다면 죽어도 원이 없소”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귀국한 과정에 대해 양한은 《양호성전기》에서 이렇게 썼다.
“12월 1일 오후에 양호성은 기차를 타고 무창역에 도착했다. 이튿날에 양호성은 대립의 배동하에 비행기를 타고 무한에서 남창으로 갔다.

공항에서 대립은 비행기가 작아서 세 사람밖에 앉지 못한다는 리유로 양호성의 경호원들을 떼여놓고 양호성 한사람만 비행기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왕근승이 기어코 비행기에 오르겠다고 요구하는 바람에 대립은 자신의 부하 한사람을 내리게 하고 대신 왕근승을 오르게 했다. 대립이 양보한것은 그곳에서 일을 그르쳐 양호성이 남창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면 비밀리에 양호성을 체포할 계획에 영향을 주게 될가봐 두려웠기때문이다. 대립은 양호성을 체포하는 과정에 매일 장개석에게 전보를 쳐서 지시해줄것을 바랐다. 이 전보문은 모두 대만국사관에 보관되여있다.”

양호성은 비밀리에 체포되여 완전히 자유를 잃은후 먼저 시구역에서 30리 떨어져있는 매령별장에 옮겨졌다.

양호성은 비밀리에 체포된후 12년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장개석은 대만으로 도망치기전에 양호성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양호성장군은 1949년 9월 17일에 국만당특무들에게 살해되였는데 향년 56세였다. 양호성의 아들 양증중, 10살도 안된 막내딸 양증국, 양호성의 비서 송기운부부, 송기운의 아들 송진중, 양호성의 부관 염계명, 경호원 장성민도 동시에 살해되였다. 《북경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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