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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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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전시기에 황금을 연안에 운송한 무명영웅들
2016년 02월 14일 18시 41분  조회:4962  추천:0  작성자: 넉두리

항전시기에 황금을 연안에 운송한 무명영웅들
 
(번역)



 
 
20세기 30년대에 항일전쟁이 폭발하였는데 그 비장한 력사를 돌이켜보면 다음과 같은 하나의 수수께끼가 남아있는것을 발견할수 있다. 국민당통치하의 구중국에서 연안홍색정권의 항전경비는 구경 어디에서 왔을가?
 
초원현은 황금이 많이 나는 고장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년생산량이 만량이 되는 현인데 당년에 불행하게도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초원시의 《황금지》 기재에 따르면 “7.7사변”이 발생된 후에 일본군의 오가와지대가 1939년 2월 27일에 초원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그들은 이튿날에 또 령롱금광을 점령한 후에 북지나개발회사를 세우고 황금자원을 미친듯이 략탈하기 시작했다.  
령롱금광의 봉쇄를 강화하기 위해 일본군은 사방 5리도 안되는 금광구범위내에 한개 중대의 병력을 주둔시켰다. 주변의 산우에 일곱 곳의 포루를 건축하고 중심금광구역에 세겹의 전기철조망을 늘여놓았으며 금광의 유일한 통로에 3개의 보초소를 세웠다. 금광에 거주하던 수많은 백성들이 쫓겨나고 한개련의 괴뢰군과 한개련의 기관총부대가 주둔했다. 주변의 대원, 구곡, 대상, 구가천 등 촌들에도 일본군과 괴뢰군이 주둔했다. 령롱금광은 물샐틈없을 정도로 일본군의 경계가 삼엄했다.

1941년 7월에 일본군은 령롱금광에 하루 황금생산량이 150톤이 되는 목조구조공장을 세우고 1200여명의 일군을 고용하면서 황금자원략탈을 다그쳤다. 팔로군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군은 완제품황금에 대해 전면적으로 통제했고 황금조사대대를 내와서 황금밀매를 발견하면 일률로 몰수했으며 팔로군과 접근하는 자는 모두 총살했다.

범위굴에 들어가 황금을 빼앗기 위해 중공교동특위에서는 다른 곳에는 없는 상설기구인 교동황금사업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조직의 지도하에 광산로동자들은 일본군, 괴뢰군과 지혜로운 싸움을 벌렸다. 어떤 때는 돌로 고품질의 금광석을 바꾸어놓았고 어떤 때는 탄갱에서 금광석조각을 가지고 나왔다. 또 일본놈들이 남쪽에서 작업하면 팔로군은 몰래 북쪽에서 구멍을 파군 했다.

8년항일전쟁중에 중공교동특위에서는 황금자원을 모으기 위해 일제와 한간들과 특수한 생사박투를 벌렸는데 대량의 교동아들딸들이 수만량의 황금을 연안에 운송하기 위해 선혈과 생명을 바쳤다.
중공교동특위에서는 지방무장을 조직해 일본군의 황금운송차량, 광산구역의 포루를 습격하여 한간과 매국역적을 징벌했고 금광로동자들을 조직하여 파공하는 방식으로 일본놈들의 정상적인 생산을 파괴했다. 동시에 광석을 비밀리에 중국공산당이 관할하는 금광제련공장으로 운송했다가 다시 완제품황금을 지하교통소를 통해 연안으로 운송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항전시기에 초원현의 민중들이 팔로군을 위해 공헌한 황금은 수십만량에 달했다. 1940년만 해도 공회서기 소계광과 진문기 등이 비밀리에 연안에 운송한 황금은 2만량이 넘었다. 이 력사적 장거에 대해 당년에 주은래부주석과 주덕총사령은 찬탄해 마지않으면서 초원현인민이 세운 특수한 공헌에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특히 소계광 등 사람들을 연안에 청해 접대해주었다.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황금탈취전에서 소계광은 관건적인 인물의 한 사람이였다.
1939년 겨울의 어느날에 중공교동구의 공회서기직을 맡고있던 소계광은 초원현에 가서 황금을 마련하라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금광에서 비교적 가까운 류행촌에는 손무본이 거느리는 국민당의 비정규군이 주둔해있었다. 손무본은 황금을 통제하기 위해 한개 련의 병력을 금광에 주둔시켜 로동자들을 감시하게 했다. 

소계광은 국민당관리로 변장하여 당지에서 가장 큰 금광주인 “허실눈”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허실눈”을 리용하여 몰래 몇십자루의 총을 숨겨가지고 들어가서 로동자금광보호대를 조직했다. 그리하여 나중에 손무본의 비정규군을 금광에서 쫓아냈다. 그때로부터 잠장금광은 항일인민정부에 속하게 되였다.
이렇게 마련된 황금을 어떻게 적점령구역의 층층이 되는 봉쇄선을 통과하여 연안까지 운송하였을가?

력사자료에는 당시 교동에서 항일전선에 지원한 황금 등 물자는 “발해통로”와 “빈해통로”를 통과해 비밀리에 중공산동분국, 산동군구와 산동성전시사업추진위원회 및 로남구위에 운송된후 다시 연안으로 보내졌다. 수많은 교동의 아들딸들이 정의를 위해 뜨거운 피를 흘리고 생명을 바쳤는데 그중에는 60여년동안 사람들이 모르던 비밀도 숨겨져있다.

오늘의 래주시 후파진 북려촌에는 오래된 옛주택이 한채 있는데 당지의 백성들은 모두 그 집에 항일렬사 려품삼의 주택이라는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그들은 려품삼이 어느 부대에 있었는지 모르고있었다. 유가족들도 그가 팔로군에 있을 때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고있었다. 1950년 6월 9일에 려품삼이 액현인민정부에 의해 혁명렬사칭호를 수여받았지만 그의 구체적 사적에 대해서 정부에서도 잘 모르고있었다.

2004년 3월 25일에 려품산의 유가족들이 옛집을 수리할 때 무의식중에 높은 곳의 벽틈에서 한장의 손상된 누런 종이를 발견했다. 그것은 1943년에 교동행정주임공서에서 항일대원의 가족한테 발급한 우대량식증명서로서 제52호, 량식 600근, 식구 5명” 등 글자가 적혀있었다.

후날에 려품삼의 어머니는 당시의 일을 회상하면서 “액현이 해방되기전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깊은밤을 타서 10~20근씩 담은 량식주머니를 우리집문앞에 놓아두군 했습니다. 나는 아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딱히 몰라도 일본놈들이 줄곧 아들을 잡으려고 한다는것은 알고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기간에 려품삼은 어떤 때에는 비밀리에 집에 돌아와 자택의 남쪽마당에서 낯선 사람과 접속해 비밀담화를 나누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적들과 마주쳤지만 번마다 슬기롭게 벗어나군 했다. 그는 어머니를 깊이 믿었기에 중요한 서류를 어머니에게 맡겨 보관시키면서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이 서류를 전부 태워버리세요”하고 당부했다.

1943년에 일본군은 우리측의 간첩이 제공한 비밀보고를 받고 려품삼의 거처를 알게 되였다. 그들은 3명의 특무를 파견하여 친척방문을 한다는 구실을 대고 장기적으로 촌마을에 숨어있으면서 려품삼을 붙잡을 기회를 기다렸다. 6월의 어느날 깊은 밤에 려품삼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어머니와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할 때 갑자기 밖에서 “주교에 일본놈이 왔다”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누군가 뒤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부근에 숨어있던 일본특무가 고의로 소리를 지른것이였다. 려품삼이 이번에 집에 돌아온것은 련락원과 접속하기 위해서였다. 일이 탄로난것을 본 그는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달아나다가 적들의 포위에 들었다. 해방후 우리군에 포로된 특무의 자백에 따르면 당시 그들은 산을 울려 호랑이를 놀라게 하는 수법으로 일부러 일본놈이 왔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후 주교와 반대쪽인 북쪽에 매복해 있었던것이다.

일본놈들은 려품삼을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겨 일본군 사령부로 압송했다. 일본놈들이 혹독한 고문을 들이대며 “팔로군이 무슨 임무를 수행하느냐, 상급은 누구냐”고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팔로군인것만 말하고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적들은 그를 마대에 넣고 잔인하게도 칼로 마구 찔러댔다…

당지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로동지의 회상에 따르면 1939년부터 1943년까지 려품삼과 전우들이 비밀리에 사들이고 무장으로 공격하는 방식으로 일본놈들의 손에서 대량의 황금을 거두어들였다. 이렇게 마련한 황금은 이름난 “발해통로”를 따라 중공산동분국으로 운송되였다가 다시 연안으로 보내졌다. 도중에 적들의 봉쇄선을 넘어야 했기에 정예의 팔로군전사들만 골라서 황금을 특제한 옷의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운송했다. 한 사람이 열냥정도씩 넣어갖고 다녔기에 행군하기도 편리했고 적들을 만나면 림기응변하고 재빠르게 대응할수 있었다.

려품삼이 희생된후 그의 어머니는 과단하게 아들이 부탁한 중요한 자료를 태워버려 적들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겨주지 않음으로써 남은 동지와 당중앙의 전쟁경비안전을 담보했다. 그러나 이 영웅장거도 매몰되여 한단락의 아무도 알지 못하는 력사비밀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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