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고 용병에 능하였던 두릉장군은 겨우 5000명의 보병을 거느리고 북방의 흉노를 토벌하러 떠났다. 두릉장군은 계속되는 전투에서 적들을 격파하고 적진 깊숙히 들어갔다. 용맹스럽게 전투에서 많은 적을 무찌르고 돌격한 두릉장군은 적진에 너무 깊숙히 들어갔기때문에 끝까지 잘 싸웠으나 말에서 떨어져 포로가 되고말았다.
이 소식이 왕에게까지 전해지는 동안 그는 장렬히 전사한것으로 전해졌고 많은 사람들은 이에 애도하였으며 어떤 부하는 따라서 자결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봄이되자 두릉장군이 사실은 전사한것이 아니라 포로가 되여 오히려 적군의 장군으로 쓰이고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에 패배한일이 없기로 유명한 왕이 이를 듣고 격노하였다. 그리고 즉시 신하들을 소집하였다. 신하들은 왕앞에서 두릉장군을 욕하기 시작하였다.
“페하, 그자는 혼자서 부대를 벗어났다는것부터가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맞습니다. 페하, 그자는 전에도 충동적인 행동으로 고집이 세고 잘난척을 하던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심지어는 그의 부하로 있었던 자들까지 입을 모아 욕을 하였다.
“페하, 잠시나마 그자와 같이 있었다는것이 수치스럽습니다. 그자의 구족을 멸하여 후세에 교훈으로 삼아야 할것입니다.”
고집불통에다 신하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는 왕이 이미 두릉장군의 일에 화가 난것을 보고 신하들은 감히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왕의 눈치만 보면서 왕에게 아부하기만 했다. 이때 말석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 하나가 불쑥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하였다.
“페하, 두릉자군이 전투에 나간지 겨우 반년밖에 안되였습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 신하들은 그가 전투에 나갈때 마중을 나가며 장군의 지략을 찬양했고 장군을 전도유망한 분이라고 칭찬들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반년도 안되여 장군의 사정을 알지도 못한채 장군을 역적이라고 모두들 비난하는데 이것이 믿을수 있는 인간의 마음입니까? 평소 그의 품성과 충성심을 보건데 그는 분명 적진에 홀로 남은 리유가 있을것입니다. 그 진실을 확인하기전에는 장군을 결코 나무랄수 없는줄로 아뢰옵니다.”
이 사람은 사마천이였다. 그 말에 격노한 왕은 사마천에게 궁형이라는 남자로는 치욕적인 형벌을 내렸다. 사람들은 남자도 아니고 녀자도 아니게 수치스럽게 사는것보다 남자답게 죽는것이 어떠냐고 말하였다. 사마천은 어디로 가나 비겁하고 수치스러운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던중 임안장군이라는 사람이 사마천을 찾아왔다.
“더이상 수치수럽게 살아가지 말고 이 독약으로 자결하시오.”
“싫소.”
“사내가 죽는것이 그렇게 무섭나? 깨끗하게 죽으시오.”
“싫소. 난 끝까지 살겠소.”
“왕에게 직언하는것을 주저하지 않던 자네가 왜 목숨에는 연연하는것인가?”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이 지난후에 말하리다.”
“아니, 그때까지 살아있겠다는 말인가? 내가 사람을 잘못보았군.”
그후 몇년후 임안장군은 억울한 루명을 쓰고 역적으로 몰려서 사형을 당하게 되였다. 그가 죽기전에 사마천이 그가 갇힌 감옥에 몰래 찾아갔다.
“마지막으로 만나고싶었습니다.”
“난 사내답게 죽겠소, 당신처럼 그렇게 비겁하고 수치스럽게 연명하지 않겠단말이요.”
“보십시오. 임안장군은 내가 왜 연명하고 사는지 아시오? 나는 살아서 력사를 쓸것이오. 이 나라의 간신배들이 어떻게 나라를 망쳐놓았고 임금이 어떻게 어리석었으며 백성들이 어떻게 고통받고 살았는지 하는것을 나는 살아서 력사에 남길것이요. 난 살아서 수치스러웠지만 이 나라의 어리석은 임금과 간신들은 력사속에서 두고두고 지탄을 받을것이오.”
이말을 들은 임안장군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형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사마천은 후날 력사저서를 완성하였는데 그 책이 바로 유명한 《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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