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은 1972년 7월부터 병상에 누워있었다. 그때부터 그의 몸에는 산소호흡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의료기기가 가득 꽂혀있었다. 물리치료를 받을 때 장개석은 이런 의료기기들을 뽑아내고 침대에서 내려 30분정도 활동했다. 장개석은 군인출신이였기에 놀라운 의력으로 정원의 화초를 감상하며 단거리산책을 할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송미령은 장개석의 건강을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매일 오후 차에 앉아 교외로 드라이브(兜风)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그런데 장개석이 차에 앉아 교외로 드라이브를 갈 경우 병실의 여러가지 의료기기의 감시범위를 벗어나야 하기에 위험했다. 하지만 송미령이 자신의 의견을 고집했기때문에 의료소조에서는 《3군총병원》의 최신구급차를 동원하여 장개석의 전용차를 뒤따르게 했다.
처음 드라이브를 하는 날, 오래간만에 외출하는 장개석은 몹시 흥분되였다. 송미령도 오래가만에 장개석과 함께 산책하는지라 기분이 좋아서 경호원에게 좀 멀리 달려도 된다고 분부했다. 장개석이 거의 1시간만에 사림관저로 돌아왔기때문에 의료소조의 “어의”들은 손에 땀을 쥐였다.
송미령은 장개석이 하루 빨리 건강이 회복되여 “대통령부”에 나가 “국가”사무를 보기를 바랐다. 장개석은 오래동안 공개장소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기에 외부에서는 장개석의 사망설까지 나돌았다. 송미령은 세인들에게 장개석이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장개석이 공개장소에 나오도록 배치하고 텔레비죤방송을 통해 그 장면을 내보냈다.
1972년 9월부터 1974년 12월 1일까지의 기간에 장개석의 병세는 의연히 의료소조에서 통제할수 있는 범위내에 있었다. 그러나 공식판 《장개석치료보고》에서 1973년 12월 22일부터 1974년 12월 1일까지의 치료정황에 대해 언급할 때 “의료소조에서는 장개석의 만성전위선염이 나았다 도졌다 하여 장개석의 건강이 악화되고 장개석의 혈관경화와 심장비대증이 수시로 합병증을 일으킬가봐 세계의 유명한 비뇨기과, 심장 등 방면의 전문가들을 청하였다. 결과 영양을 증가하고 체력을 증진하면서 약물사용, 염증발생통제 등 보수적인 치료방법을 취해야 하며 과격한 치료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결정했다”고 썼다.
대만의 섬내(岛内)사무는 모두 장개석의 비준이 있어야 실행될수 있었다. 관저사무에 대해서 장개석은 송미령에게 도맡겼다. 정부사무에 대해서 장개석은 송미령이 참견하는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대미(对美)외교사무만은 송미령의 의견을 존중했다. 장개석이 병상에 눕게 된후 의료사무에 대해서 송미령이 독단으로 처리했다. “행정원장”으로 당선된 장경국은 대부분 정부사무를 장악했지만 사림관저내의 사무에 대해서는 송미령의 결정에 대해 감히 반대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송미령은 외조카딸인 공령위를 친딸처럼 총애하고 신임했다. 재벌가 공상희와 송애령의 딸인 공령위는 천문지리에 밝았는데 자신의 소총명을 믿고 모르는것도 아는듯이 행동했다. 그때문에 실수할 때도 있었는데 송미령은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그녀를 믿어의심하지 않으면서 더욱 총애했다.
1974년 11월말에 사림관저의 “의료총고문”으로 불리우는 공령위는 송미령을 보고 미국에 “서양화타”로 불리우는 세계명의가 있는데 장개석의 병을 능히 치료할수 있다고 장담했다. 송미령은 귀가 솔깃하여 즉시 그 미국의사를 청해오라고 지시했다. 공령위는 오빠 공령간과 함께 미국에 가서 “서양화타”를 청해왔다. 송미령은 미국의사를 상빈으로 모시고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의사는 장개석의 긴 병력서를 보고난후 한바탕 리론을 늘여놓으면서 장개석의 병세가 안정되였기에 즉시 등부위천자(背部穿刺)수술을 해야 회복될 희망이 있다고 장담했다. 장개석의 병세가 회복될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들은 송미령은 몹시 기뻤다.
천자란 몸의 일부에 속이 빈 가는 침을 혈관이나 몸의 일부에 찔러넣어 몸속의 체액, 조직 등을 뽑아내거나 약물을 주입하는것을 말한다. 그러나 장개석의 의료소조성원들은 미국의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수술은 “과격치료방법”이라고 인정하면서 환자에게 예측할수 없는 위급한 후과를 가져올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미국의사는 등부위천자수술이 장개석의 병세를 회복시킬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고집했다. 미국의사의 말을 믿은 송미령은 의료소조의 경고를 무시했다. 의료소조에서는 장경국을 찾아가 “미국의사는 장대통령의 병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중국인의 체질과 체형이 백인과 다르다는것을 고려하지 않고있습니다. 만약 미국의사가 장대통령의 서면병력서자료만 보고 등부위천자수술을 한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송부인은 공령위의 비전업적인 말만 듣고 미국의사를 너무 믿고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의료소조의 회보를 들은 장경국은 깜짝 놀랐다. (공령위가 또 무슨 짓을 하고있는거야? 그녀가 일으킨 화근이 적었단 말인가? 만일 의료소조의 말처럼 등부위천자수술이 위험하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질수 있겠는가?)
장경국은 송미령에게 권고하려고 사림관저를 찾아갔는데 입을 열기전에 송미령이 먼저 의료소조에서 장개석의 건강을 회복시키지 못하고있는 상황에서 미국의사에게 한번 맡겨보는것이 좋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장경국은 의료소조의 의견도 들어보는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미령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장개석이 등부위천자수술을 받은것은 1974년 12월초의 일이였다. 그후 장개석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였다. 원래 서양의사를 의술이 고명하다고 춰올렸던 송미령과 사림관저(士林官邸)의 “의료총고문”이라고 불리우던 공령위는 모두 김 빠진 풍선마냥 풀이 죽어서 안절부절못했다.
의료소조의 “어의”들은 일찍 송미령과 장경국에게 등부위천자수술을 하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바 있었다. 유감스러운것은 송미령이 시종 들은척도 하지 않은것이였다. “어의”들은 처음부터 등부위천자수술은 장개석의 병세가 악화된 주요원인이라고 인정했다. 의료일군과 시위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알고있었다. 송미령이 페천자수술로 페부의 농혈된 액체를 뽑아내자고 결정한것은 확실히 선의로부터 출발한것이였는데 그것이 장개석의 생명을 빨리 결속짓게 한 최명부(催命符)로 되였다는것을… 송미령과 공령위가 마음속으로 가책을 느꼈는지는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송미령은 자신과 공령위가 큰 화를 저질렀다는것을 깨달았지만 체면때문에 잘못을 승인하지 않았다. “의료총고문”인 공령위는 의료소조에서 등부위천자수술을 반대하는 리유를 알고 다시는 “미국의사”라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후회해도 늦었다.
공씨가문은 장개석을 위해 적지 않은 일을 해주었다. 1960년대초기에 장개석은 대륙을 공격하려고 생각했지만 신식무기를 사들일 자금이 모자라서 공씨가문에 손을 내밀었다. 그시기는 공상희가 살아있을 때였는데 공상희는 장개석의 전화를 받자마자 수억의 자금을 기부하여 미국제M-24형전차를 탑재(搭载)할수 있는 등륙함을 사들이는데 일조했다.
악화된 병세는 다시 회복되기 어려웠다. 장개석은 점점 죽음을 향해 가깝게 다가가고있었다. 장경국은 내막을 알고있어도 공씨남매의 책임을 추궁할수 없었다.
1975년 1월 1일에 장개석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장경국은 일기를 쓰는것으로 아버지의 병세에 대해 근심하는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는 바로 합의사가 장개석에게 페천자를 시행한지 한달후였다. 장경국은 그날의 일기에 “양력설에 아버지께 세배를 드렸다. 아버지는 수면상태에 있는데 병세가 매우 엄중하여 내 가슴이 칼로 찢기는듯 아프다”고 썼다. 수술후유증으로 장개석은 계속 고열혼미상태에 있었다.
페부감염이 엄중하고 심장기능이 쇠퇴하고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아 장개석의 체내기관에 다시 액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병이 서로 불화를 이끌면서 장개석의 병세는 악성순환을 반복했다. 1975년 4월 5일 밤 11시 50분에 의료소조의 “어의”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심장구급설비를 내려놓고 정식으로 장개석이 숨을 거두었다고 선고했다. 향년 89세였다.
1969년의 교통사고가 장개석의 심장부위에 엄중한 내상을 입혀 장개석의 건강은 악화되였다. 만약 그번의 교통사고가 없었더라면 장개석은 병석에 눕지 않았을것이다. 또 만약 송미령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물리치지 않고 독단으로 미국의사의 의견에 찬동하지 않았더라면…그래서 페부에서 액체를 뽑아내는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원래 안정되였던 장개석의 병세가 돌변하여 수습하지 못할 지경으로 되지는 않았을것이다. 이 모든것은 구경 천명이였을가? 장개석의 운이 다 기운것이였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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