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중산이 사망된후 왕정위와 장개석의 권력다툼은 점점 심해졌다. 장개석은 울적한 가슴을 달래려고 황포군관학교 마당에서 산책하다가 황포군관학교 4기학원들이 수업을 보고있는 교실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학생들은 전술과수업을 보고있었다. 장개석은 조용히 교실로 들어가 뒤쪽에 앉았다. 지도교원은 얼마전에 있었던 혜주공격전을 실례로 그번 전투가 승리할수 있었던 원인을 학생들에게 분석하게 했다. 마침 그번 전쟁은 장개석이 직접 지휘한것이였기때문에 장개석은 귀가 솔깃하여 듣고있었다.
학생들은 륜번으로 교단에 올라 자신의 견해를 털어놓았다. 장개석은 듣기만 하고 가타부타 태도를 표시하지 않았다. 림표의 차례가 되였다. 림표는 말은 몇마디 하지 않고 흑판에 혜주지형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림표는 정신을 집중하여 성곽과 민가, 지세와 지표, 산천과 하류를 자세하고도 정확하게 그렸다. 장개석은 그 다음을 보지 않아도 림표가 인재라고 단정했다. 림표는 이미 이번 과제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손금보듯 환하게 꿰뚫고있었다.
용병지도(用兵之道)는 계획을 세우고 싸움을 시작하는데 있다. 림표는 전쟁의 정수에 대해 독특한 리해를 가지고있었다. 그런 림표는 장개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교실에서 살그머니 나온 장개석은 수행일군에게 수업이 끝난후 림표를 교장실로 불러오라고 분부했다.
얼마후 장개석은 림표와 비교적 긴 담화를 나누었다. 그때 림표와 나누었던 담화내용을 장개석은 10여년이 지난후에도 세절마다 생생하게 기억하고있었다. 그 시기 림표는 비록 햇내기학생에 불과했지만 자신의 속셈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고 말을 천금같이 아꼈다. 이왕에 다른 사람들과 담화할 때 장개석은 늘 많이 물어보고 적게 대답하여 시종 주동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림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림표는 물음에 대답할 때 한마디 말도 더 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심사숙고한후 적당하게 내뱉은 말이였다. 장개석은 이상야릇한 감각을 느꼈다. 젊은이라면 응당 혈기가 넘치고 생기발랄해야 했다. 림표처럼 이렇게 어리지만 침착하고 어른스러우며 궁리가 깊은 사람은 처음이였다. 장개석은 직감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청년이 보기 드문 장군감이지만 다스리기 어렵고 예측할수 없는 사람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사생간에 일문일답을 하면서 시간이 퍼그나 많이 흘렀다. 그때 교장판공실 비서 진립부가 노크하고 들어오면서 왕정위가 황포군관학교에 도착했으니 교장께서 나가 공무를 상의하기를 바란다고 청했다.
“냥씨피(娘希匹)!”
장개석은 몹시 분개하여 입버릇이 된 욕설을 퍼부었다. 료중개가 사망된후 군관학교의 당대표직을 이어받은 왕정위는 장개석의 세력범위를 파고들어오려고 하고있었다. 장개석은 화가 났지만 당시 왕정위가 광동정부의 제1책임자였기에 참으면서 겉으로는 공손한척 했다. 왕정위가 또 황포군관학교에 찾아오자 장개석은 화가 난김에 몸을 돌려 바삐 나가느라고 림표에게 다시 보자는 말을 하는걸 잊었다.
림표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였다. 그는 이 교장이 변덕스럽고 진정으로 자신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꼈다. 방금전까지도 크게 등용하겠다고 고무격려하던 장개석이 일시에 낯색이 변하여 자신을 한쪽에 내 팽개친채 말도 없이 나가자 림표는 모욕을 당한 감을 느끼면서 그 일을 항상 마음에 품고있었다.
며칠후 장개석은 또 일부 학생들을 불러 개별담화를 했는데 그중에 림표도 있었다. 장개석은 림표에게 졸업하면 총사령부에 들어와 사업하도록 배치해주겠다고 승낙했다. 림표는 먼저번의 일로 장개석을 원망하고있었지만 이런 승낙을 받고나니 매우 격동되였다. 림표는 공산당조직의 사람이였기에 자신이 졸업하면 조직에서 배치해놓은 엽정독립퇀으로 가게 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혈기왕성하고 웅대한 포부를 실현하려는 마음이 매우 강렬했던 림표에게 총사령부는 매우 큰 흡인력이 있었다. 장개석은 림표를 보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좋네. 내가 지금 싸움터에 나가야 되기에 후에 자네한테 련계하겠네!”
북벌전쟁에 나간 장개석은 호남성, 호북성, 강서성까지 쳐들어갔다. 그가 광동성을 떠난지 몇달이 되여 황포군관학교 4기생들이 졸업을 앞두게 되였다. 장개석은 진립부를 불러 4기생들의 졸업배치정황에 대해 물었는데 그중 전문적으로 림표에 대해서 물었다. 진립부는 당시 북벌군총사령부의 기요과장 겸 비서처 처장이였고 장개석의 심복이였다. 진립부는 “전 교장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림표에 대해 조사한적이 있는데 그는 공산당분자일 가능성이 높고 그의 일부 친척도 중공(中共)의 주요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그를 교장님의 곁에 둔다는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난 장개석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 황포군관학교가 공산당의 대본영이 되다니? 림표의 일은 다시 언급하지 않겠어. 난 승냥이를 내 곁에 불러들일수 없어!”
장개석과의 담화가 있은지 얼마 안되여 림표는 중공황포당단서기(党团书记) 웅웅에게 정황을 회보했다. 당시 웅웅은 “당신은 꼭 장개석의 신변에서 사업할수 있도록 이번 기회를 쟁취해야 하오. 그러면 앞으로 더욱 큰 역할을 하게 될거요”하고 확실하게 지시했다. 이런 지시를 받은후 림표는 총사령부에 들어가 사업할수 있도록 힘을 쓰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장개석은 두번째로 약속을 어겨 희망을 가득 품고있던 림표의 가슴에 차디찬 실망을 안겨주었다. 황포군관학교의 모든 졸업생들이 배치를 받았을 때에야 림표는 자신이 두번째로 조롱을 받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후 섭영진을 통해 림표는 결국 엽정독립퇀으로 들어가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림표의 휘황한 군인생활이 시작되였다. 림표는 수많은 전투를 지휘하여 승리하면서 천하에 이름을 날리게 되였다.
1941년 10월에 림표가 구쏘련에 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귀국할 때 중공중앙에서는 국민당방면에 통지하여 림표가 서안을 통해 연안으로 돌아올수 있게 도움을 줄것을 바랐다. 그때는 제2차국공합작시기여서 큰국면을 위해 량당에서 서로 도움을 주는 일이 가능했다. 장개석은 림표라는 말을 듣고 몹시 중시를 돌렸다. 그는 림표를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있었기때문이다. 장개석은 호종남을 불러 주의사항을 말한후 대립과 배합하여 림표의 안전을 책임질것을 부탁했다. 장개석은 호종남에게 “림표를 접대할 때 열정적이고 살뜰하게 대해주게. 림표가 친절감을 느낄수 있게 말이네”라고 지시했다. 호종남은 자신이 선배이고 림표보다 급이 더 높았지만 장개석의 명을 어길수 없어 한달음에 림표가 있는 서안주둔 팔로군판사처 소재지 칠현장으로 달려갔다.
당시 호종남은 10만대군을 거느린 큰 인물이였지만 림표에게 탄복하면서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림표는 워낙 과묵한 사람이였지만 호종남의 태도에 감염되여 말이 많아졌다. “술은 지기를 만나 마시면 1000잔으로도 모자란다”고 두 사람은 몇년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운적이 있었던 적이였다는것도 까맣게 잊고 권커니 작커니 하며 흥미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종남은 림표와 이야기를 끝낸후 아무도 모르게 림표와 대립을 만나게 했다. 림표와의 담화를 마치고 관저로 돌아온후 대립은 흥분제를 먹은듯 흥분하여 문을 닫아걸고 림표와의 담화내용을 정리했다.
대립이 중경으로 돌아온후 장개석은 서안으로 갔던 일이 소득이 있는가고 물었다. 대립은 “위원장께서 분부한 일을 림표에게 전달했습니다”라고 간단하게 회보했다. 대립은 공을 세우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여서 밥이 다 되기전에는 뚜껑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밥이 다 되면 다른 사람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큰 “폭탄”을 터뜨리군 했다. 대립이 감추기를 좋아하는 성격때문에 장개석은 림표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것이라고 여겨 그 일에 대해 다시 묻지 않았다. 림표도 장개석이 자신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1971년에 림표가 비행기추락으로 사망되였을 때 장경국은 장개석에게 림표에 대한 서류를 발견하였다고 보고했다. 그것은 대립이 서안에서 림표와 비밀담화를 했을 때의 서면자료였는데 몇십년동안 방치되여 먼지로 뒤덮여있었다. 그 서류를 가져오라고 해서 돋보기를 끼고 자세히 읽어본 장개석은 낯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두손을 부르르 떨면서 탄식했다.
“우농(대립의 자)이 나의 큰일을 그르쳤구나!”
구경 대립이 어떻게 큰일을 그르쳤는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결과로부터 볼 때 공을 세우기 좋아하는 대립의 성격이 군사천재 림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장개석의 계획을 다시 한번 허사로 되게 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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