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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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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우는 왜 두번째 안해를 용서해주지 않았는가
2015년 02월 22일 09시 20분  조회:6805  추천:0  작성자: 넉두리

허세우는 왜 두번째 안해를 용서해주지 않았는가

 
(번역)




 
 
허세우는 일생에 세번 결혼했다. 전쟁년대의 복잡하고 잔혹한 환경속에서 그의 혼인은 파란곡절을 겪었다.
허세우의 결발안해는 주석명(朱锡民)인데 허세우와 한고향사람이였다. 1901년에 출생한 주석명은 허세우와 네살 년상이였다.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한 주석명은 부지런하고 재간있고 천성적으로 착하여 일찍 허세우 어머니의 호감을 샀다. 허세우는 어머니의 명에 따라 주석명을 안해로 맞아들였다.
허세우는 결혼한지 사흘만에 작전명령을 받고 어머니와 신혼안해와 작별하고 전선으로 달려갔다. 전란으로 세상이 어수선한 세월에 허세우는 어쩌다가 밤중에 집에 가서 잠간동안 안해를 만나보았을뿐이다.
그후 황마봉기에 참가한 허세우는 봉기대오를 따라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홍군을 따라 장정길에 오른 허세우는 섬북에 도착했다. 허세우와 주석명은 아들 셋을 보았는데 맏이와 둘째는 모두 어려서 요절하고 셋째아들 허광만이 살았다.
허세우가 집에서 떠난후 가족들은 그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후에 허세우가 어느 한 전투에서 총에 맞아 사망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리밝고 대의명분을 잘 아는 허세우의 어머니는 며느리를 독수공방하게 할수 없었다. 허세우의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개가하라고 권고했다. 결국 허세우의 어머니주장으로 주석명은 성실하고 본분을 잘 지키는 농민한테 재가했다. 이렇게 잘못 전해진 소식때문에 허세우의 안해는 다른 사람의 안해로 되였다.
그 시기에 반동무장세력이 혁명가속에게 미친듯이 보복하기 시작했다. 허세우는 어머니가 보복을 피해 피난을 떠났고 안해와 아들이 살해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허세우도 잘못 전해진 소식때문에 다시 두번째로 안해를 맞아들이게 되였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몇십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백발이 된 허세우의 어머니는 아들이 살아있을거란 실날같은 희망도 버린지 오래 되였다. 바로 그때 전국이 해방되였고 허세우는 산동군구 사령원이 되였다. 허세우의 이름은 자주 신문에 실렸다.
허세우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주석명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기쁜것은 자신이 날마다 그리던 전 남편이 살아있었다는것이고 슬픈것은 자신이 이미 다른 사람의 안해로 되여 허세우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수 없게 되였다는것이다. 그후 허세우는 어머니를 자신이 거주하고있는 제남으로 모셔왔다. 허세우의 어머니는 주석명이 효부였고 착한 며느리였는데 자신의 권고로 재가하였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허세우는 탄식했다.
허세우가 두번째로 맞아들인 안해는 뢰명진(雷明珍)이다. 사천성 달현에서 출생한 뢰명진은 장정에 참가한 홍군전사이다. 뢰명진은 진보를 추구하고 일에서 박력이 있었기에 장정대오가 섬북에 도착한후 중앙조직부의 배치로 연안현에 내려가 부녀부장직을 맡았다.
허세우는 연안에 도착한지 얼마안되여 뢰명진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중매를 통해 서로 사랑하게 된 그들은 연안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후 그들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두터운 감정을 쌓았다. 세심한 뢰명진은 부대에서 양을 잡은후 버린 양털을 모아두었다가 실을 짜서 허세우에게 털옷을 떠주었다.
하늘의 조화는 알수 없다고 그들의 아름다운 인연은 장국도의 착오로선에 련루되여 좋은 결말을 보지 못했다.
1937년초에 허세우가 있는 홍군대학(후에 항일군정대학으로 개명했음)은 보안에서부터 연안으로 옮겨졌다. 항일군정대학에서 “장국도의 로선”을 청산할 때 투쟁을 확대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때문에 항일군정대학에서 공부하던 홍군4방면군의 고급장령들도 련루되여 투쟁을 받았다. 홍군4방명군에서 온 학원들은 하나하나 모두 기가 죽어 머리도 들지 못했다. 허세우는 몹시 억울함을 느꼈다.
“여기서 이 어른을 박대한다면 다른 곳으로 가야지. 이 어른을 받을 곳이 얼마든지 있을테니깐 우리 가자!”
원래 성질이 급하고 정치상에서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허세우는 항일군정대학에서 공부하던 홍군4방면군의 고급장령들을 선동하여 비밀리에 사천에 돌아가서 유격전을 할 착오적인 생각을 했다. 그리고 떠날 준비를 하다가 일이 탄로가 나서 허세우 등 홍군4방면군의 수십명 고급장령들이 “반혁명집단을 조직한 죄”, “혁명을 배반한 죄”, “총을 가지고 도주한 죄” 등 죄명을 쓰고 갇히게 되였다. 허세우는 너무 억울하고 분했지만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는 처지가 되였다. 절망한 허세우는 죽기만을 바랐다. 그런 처지에서 그는 안해 뢰명진이 몹시 그리웠다. 그는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안해한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으니 한번 만나러 오라고 햇다. 안해한테 함께 백년해로 할수 없게 된것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것이다.   
그런 부탁을 한후 이제나저제나 안해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허세우는 뜻밖에도 안해의 절교신을 받게 되였다. 편지에는 “허세우, 전 당신이 미워요. 전 절대 반혁명분자를 사랑하지 않을거예요. 우리 리혼합시다”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편지는 허세우에게 청천벽력이 아닐수 없었다. 허세우는 자신이 곤경에 처하여 친인들의 위안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에 안해가 그토록 무정하게 배신할줄을 생각도 못했다. 이 일은 강철같이 억센 사내대장부인 허세우에게 일생동안 아물기 힘든 상처를 남겨놓았다.
후에 모택동이 친히 “장국도투쟁”을 확대화한 착오를 시정하였기에 허세우는 무사히 풀려날수 있었다. 그때에야 뢰명진은 자신의 일시적인 충동으로 경솔하게 내린 결정을 후회하면서 여러번이나 허세우를 찾아와서 잘못을 빌면서 재결합을 하자고 애원했다. 하지만 허세우는 용서해주지 않았다. 뢰명진이 주덕, 진갱, 진석련 등 허세우의 상급과 로전우들을 청하여 허세우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했지만 허세우는 “안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허세우가 세번째로 맞아들인 안해는 전보(田普)였다. 1922년에 산동성 래양에서 출생한 전보는 허세우보다 17살이나 년하였다. 그들은 환난을 함께 한 진정으로 금슬이 좋은 부부였다. 허세우와 전보는 1941년에 결혼하여 2자 4녀를 낳아 키우면서 44년이란 세월을 함께 살았다.
1939년 가을에 허세우는 중공화북국 당학교에 가서 공부하게 되였다. 얼마후 주덕의 추천과 모택동의 비준을 받아 산동종대로 전근되여 제3려 려장직을 맡았다. 그때로부터 16년동안의 산동전투생활이 시작되였다. 또 거기서 허세우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사랑이 시작되였다.
1941년에 허세우는 이미 36살이 되였지만 여전히 독신이였다. 늘 병사들을 거느리고 전투를 하느라 눈코뜰새 없었지만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의 생활은 엉망이였다. 그의 부하들은 그가 혼자서 고생하는것을 보다못해 그에게 배우자를 소개해주려고 상의했다. 후근부장 고대산은 근거지의 병기공장에서 일하는 품행이 단정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처녀를 허세우에게 소개해주려고 마음먹었다. 고대산은 허세우를 모시고 병기공장으로 선을 보러 갔다. 병기공장문앞에 도착하자 허세우는 고대산이 소개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안에서 일하는 처녀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내 보기에는 저 처녀면 좋겠소”라고 말한후 말을 타고 돌아갔다.
허세우가 가르킨 처녀는 전명란(田明兰)이였다. 전명란은 후에 전보라고 이름을 고쳤는데 그녀가 바로 고대산이 허세우에게 소개해주려고 했던 처녀였다. 당시는 항일전쟁이 가장 간고하던 세월이였기에 그들에게는 꽃그늘과 달빛아래의 랑만도 없었고 아기자기한 속삭임도 없이 번개식 결혼을 했다. 허세우의 말대로 “서로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가를 물은후 둘 다 동의한다고 해서 5분만에 통쾌하게 결혼”했던것이다.
허세우와 전보가 결혼한후 조직에서는 허세우의 생활을 보살펴주기 위해 정식으로 전보를 허세우의 생활비서로 배치했다. 전보는 허세우를 살뜰히 보살피며 최선을 다해 내조했다. 허세우와 전보는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44년이란 세월을 사랑했다. 전보는 허세우를 애틋이 추억하면서 “허세우의 수많은 전기적인 영웅적 사적은 나를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그이는 나의 엄한 스승이면서도 친구였습니다”라고 말했다. 허세우도 생전에 감탄하면서 “전보는 나의 일생에서 가장 충직한 동반자입니다. 래세가 있다면 나는 또 전보를 안해로 맞아들일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복건당사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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