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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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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딸 리민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2016년 01월 17일 18시 02분  조회:5695  추천:2  작성자: 넉두리

모택동의 딸 리민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번역)



 
건국후에 살아있었다고 알려진 모택동의 아들딸은 리민(李敏), 리눌, 모안영, 모안청이였다. 모택동은 이 네명의 자녀를 몹시 사랑했다. 모안영, 모안청은 모택동과 양개혜의 아들이고 리눌(李讷)은 모택동과 강청의 딸이다.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리민은 모택동과 하자진의 딸이다.
1936년 겨울에 모택동은 홍군을 거느리고 섬북의 보안현으로 왔다. 보안은 작은 현소재지로서 인구가 모두 400명밖에 안되였고 집도 많지 않았다. 당시 모택동과 하자진은 보안현 소석산의 자그마한 토굴에 거주했다. 토굴은 매우 낡아서 지붕에서는 물이 떨어졌고 땅바닥은 매우 습했다. 실내에는 침대도 없고 흙온돌이 있었지만 난로도 없고 부뚜막도 없었다. 토굴밖에 세개의 벽돌을 쌓아놓아 그우에 주전자를 놓고 물을 끓일수 있을뿐이였다.
하자진은 부사당한 몸으로 아이를 낳았다. 하자진과 함께 장정을 했던 녀홍군전사 등영초, 강극청, 류영, 종월림 등이 소식을 듣고 축하하러 토굴로 찾아왔다. 모택동은 빙그레 웃으며 그녀들을 맞아주었다. 그녀들은 “자진이가 낳았어요?”하고 물었다. 모택동은 유머스럽게 “낳았소, 낳았소, 큰 닭알을 낳았소”하고 대답했다.
녀홍군들은 토굴안으로 들어가 하지진의 품에 안겨 울고있는 아기를 보았다. 등영초는 앞으로 다가가서 가볍게 아기를 안아보았다. 그녀는 아기가 여위고 작은것을 보고 애처로운 생각이 들어 “정말로 꼬마교교(娇娇)구나”하고 말했다. 다른 녀홍군전사들도 따라서 꼬마교교라고 불렀다. 옆에 서있던 모택동은 등영초의 말을 듣고 딸의 아명을 “교교”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름은 리민(李敏)이라고 지었다. 후날 리민이 쏘련에서 귀국했을 때 모택동이 “리민아”하고 부르자 리민은 “저의 이름이 왜서 모민이 아니고 리민인가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모택동이 말했다.
“너의 이름은 민이지만 꼭 모민(毛敏)이라고 불러야만 하는것이 아니라 리민이라고 부를수 있다.”
“왜서요? 큰오빠는 모안영, 둘째오빠는 모안청, 그들은 모두 아빠의 모씨성을 따랐는데 난 왜서 성이 모씨가 아닌가요?”
리민이 의아해서 눈을 크게 뜨고 묻자 모택동이 웃으며 알려주었다.
“아빠의 성이 모씨인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혁명사업의 수요로 아빠는 모윤지(毛润之) , 자임(子任), 리득승(李得胜) 등 10여가지 이름을 썼단다. 그 이름중에서 아빠는 특별히 리득승이라는 이름을 좋아했단다. 그래서 널 리민이라고 부르는거지.”
1947년 3월에 호종남의 20만대군이 연안으로 쳐들어왔다. 그 당시는 잠시 연안을 포기해야 나중에 연안을 다시 찾을수 있는 형세였다. 그리하여 모택동은 떠나면 승리한다는 리득승(离得胜)이란 뜻으로 “리득승(李得胜)”이란 가명을 썼다. 모택동은 리득승이란 이름으로 작전을 지휘하여 다시 연안을 찾고 전국을 해방했다.
모택동은 토굴에서 태여난 교교를 매우 귀여워했다. 하지만 하자진은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하여 조금도 기뻐할수 없었다. 그녀가 그 시기에 생각한것은 어머니로 된 기쁨이 아니라 사업이였다. 그녀는 아이가 자신의 리상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낳은지 4개월밖에 안되는 교교를 옛 고향집에 맡겨놓고 자신은 항일군사정치대학에 들어가 공부했다.
1937년 10월에 하자진은 모택동과 리혼하고 연안으로부터 서안을 거쳐 쏘련으로 가서 공부했다. 쏘련에서 하자진은 모택동의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1939년에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은 병에 걸렸는데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고독에 빠진 하자진은 뼈저리게 후회했다. 1941년 4월에 모택동은 하자진을 위안해주기 위해 4살된 딸 교교를 하자진이 있는 모스크바에 보내주었다. 이렇게 교교는 천리밖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리민은 모스크바에서 어렵고 힘든 세월을 보냈다. 타국생활은 하자진에게 수많은 고난을 가져다주기도 했고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천리밖에서 찾아온 딸은 방금 아들을 잃은 타격에 상처를 입었던 그녀의 마음에 령단묘약이였다. 하자진은 딸의 응석을 받아주었으며 딸때문에 애쓰고 근심하면서도 귀여운 딸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자호감을 느꼈다.
쏘련에서 생활하는 몇년동안에 교교의 마음에는 엄마뿐이고 아빠는 없었다. 그녀가 연안을 떠나 쏘련으로 갔을 때에는 너무 어려서 아빠에 대한 인상이 별로 없었다.
국제아동원의 대청에는 각국 공산당령수의 거폭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는데 그중에는 쏘련공산당 거목인 레닌과 쓰딸린, 벌가리아공산당 령수인 게오르기 디미트로프(格奥尔基·季米特洛夫), 중국공산당 거목인 모택동, 주덕 등이 있었다. 아동원의 선생은 늘 아이들에게 국제주의교육을 시켰는데 각국 공산당령수가 본국의 인민을 지도하여 투쟁한 일을 이야기해주군 했다. 선생은 중국공산당의 령수 모택동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교교는 경모하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듣군 했다. 그녀는 중국의 령수가 자신의 아빠일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자진도 아빠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어느 한번은 쏘련에 와있던 모안청이 특별히 국제아동원으로 찾아와서 녀동생을 만나보았다. 그는 녀동생에게 사탕을 사다주었다. 그들 남매는 사람이 없는 대청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안청이 갑자기 높은 곳에 걸려있는 모택동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교교야, 넌 저분이 누구인지 아느냐?”
“알아. 중국공산당의 령수 모택동이지.”
“저이는 우리의 아빠야!”
“거짓말, 나에게는 아빠가 없어요.”
“거짓말이 아니야. 저분은 정말로 우리의 아빠야! 아빠가 우리를 쏘련에 보내 공부하게 해주었어.”
그제야 리민은 모택동이 자신의 아빠라는것을 믿게 되였다. 그러나 아빠는 아직도 거리가 너무 먼 존재였다. 교교는 자신이 아빠와 어떤 관계인지 상상할수 없었다.
아빠에 대한 교교의 감정은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점차 깊어졌다. 하자진은 교교더러 아빠에게 편지를 쓰라고 당부했다. 교교가 아빠에 대해 잘 알수 없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나 하자진의 서술은 너무 간단하고 일반적이였다. 그녀는 교교를 아이로 생각하고 심도가 깊게 이야기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교교는 갑자기 많이 성숙되였다. 교교는 많은것을 깨닫게 되였다. 교교는 어머니가 왜서 오래도록 그렇게 우울해 하고 상심에 잠겨 있었는지를 알게 되였다.
1947년 여름에 하자진은 왕가상, 주중려부부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귀국하여 할빈으로 돌아왔다. 11세의 리민에게 이 곳은 완전히 낯선 고장이였다.
눈깜짝할 사이에 모택동이 령도하는 해방전쟁은 승리했다. 모택동과 당중앙은 북평으로 들어갔다. 그때 모택동은 의연히 동북에 있는 딸과 하자진이 생각되였다. 모택동은 여러해동안 보지 못했던 딸이 몹시 그러워졌다. 그는 딸을 북평으로 데려다가 공부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49년 여름에 하자진의 친녀동생 하이는 모택동의 부탁을 받고 할빈으로 갔다. 그녀는 언니 하자진을 만나서 “모주석께서 먼저 교교를 데려다가 북평에서 공부시키겠다고 하면서 언니는 할빈에 남아서 통지를 기다리라고 했어요”하고 말했다.
그때 교교는 이미 13살이였다. 교교는 천진하고 활발하고 똑똑하고 령리했으며 로어를 류창하게 구사할수 있었다. 교교는 어머니를 닮아 선천적으로 타고난 미모에 몸매가 호리호리했으며 피부가 하얗고 온몸에서 소녀의 매력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오관, 눈섭, 얼굴륜곽은 모택동을 닮아서 매우 귀여웠다. 교교는 아빠를 만나러 북평에 간다는 이모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아빠와 헤여진지 너무 오래 되여 아빠에 대한 인상이 남아있지 않은것이 걱정되였다. 그리하여 리민은 필을 들어 로어로 아빠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그후 리민은 아빠를 리해하게 되였고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였다.
리민은 북경사범대학 화학학부에서 공부하는 기간인 1959년 8월 29일에 북경항공학원의 우등생 공령화(孔令华)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모택동은 기쁜 마음으로 딸의 결혼식에 참가했다. 결혼후에 리민과 공령화는 중남해에서 살았는데 모택동에게 천륜지락(天伦之乐)의 새로운 즐거움을 갖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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