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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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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의 틀이를 시리게 한 민국제일자객 왕아초
2016년 01월 31일 17시 53분  조회:6584  추천:2  작성자: 넉두리

장개석의 틀이를 시리게 한 민국제일자객 왕아초
 
(번역)


 
 
왕아초(王亚樵), 장개석은 이 이름을 듣기만 하면 틀이가 시큰거렸고 대립은 이 이름을 듣기만 하면 “문을 든든히 잠궜는가 검사했어?”하고 소리쳤다. 구상해탄의 3거두인 황금영, 두월생, 장소림도 길에서 왕아초를 만나기만 하면 급히 길을 되돌아 다른 길로 가군했고 늘 부하들에게 절대 왕아초의 기분을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원 국민당군통의 핵심인물인 심취는 “세상사람들은 모두 마귀를 두려워하지만 마귀는 왕아초를 두려워한다”고 말한적이 있다.
별 기이한 일이 다 벌어지고있던 민국의 란세에 위세가 등등한 신비한 인물 왕아초가 나타났는데 그는 무예가 뛰여나고 경공(轻功)이 탁월하며 신출귀몰하고 행방이 묘연하며 올 때는 소리없이 왔다가 갈 때는 흔적없이 사라지군 했다. 그는 전문 상층사회의 고관요인들과 일본군고급관리들을 암살했다. 그는 늘 상해,  남경, 무한, 복주, 향항, 남녕 등지를 귀신같이 달려다니며 어디에 탐관, 한간, 일본군이 있으면 그 곳에 가서 제거해버리군 했다. 그의 손에서 도끼가 번쩍하면 악인들의 머리가 날아갔고 그의 손에서 총이 “땅”하고 울리면 악인들의 심장이 멎어버리군 했다.
그는 몸매가 왜소했는데 검은테안경을 끼고 다녀서 매우 점잖아보였다. 그러나 그의 신분은 살기등등한 도끼방(斧头帮) 방주, 항일철혈한간제거퇀 퇀장이였다. 그는 “강회대협(江淮大侠)”, “암살대왕”, “민국제일자객”, “원동제일자객” 등으로 불리면서 강호에서 위세를 떨쳤고 그의 명성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어느 한번 왕아초와 상해경비사령 양호는 무슨 문제때문에 상의했는데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게 되였다. 화가 난 왕아초는 키가 작기에 걸상에 올라가서 양호의 량쪽 귀쌈을 후려쳤다.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있는 양호였지만 왕아초의 무예가 뛰여나다는것을 알고있기에 찍소리 못하고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여기서 왕아초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를 보아낼수 있다.
1889년에 합비에서 출생한 왕아초는 일찍 신해혁명에 참가했고 후에 사회당에 가입하여 사회당안휘지부 부장을 담임했다. 1913년 겨울에 환계군벌 예사충(倪嗣冲)이 안휘의 정권을 빼았고 사회당을 “란당(乱党)”이라고 하면서 진압했기에 왕아초는 상해로 도망쳤다. 왕아초는 “안휘로동자동향회”를 조직하고 암살테로조직인 도끼방을 묶어세웠다. 도끼방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높아졌고 왕아초의 이름은 상해를 진동했다. 그가 통제하고있는 “상해로동자총회”의 회원은 가장 많을 때 10만명에 달했다.
왕아초와 그의 암살조직은 시종일관하게 “장개석을 반대하고 항일하자”는 기치를 높이 들고 암살을 통해 사회변혁을 일으킬수 있기를 바랐다.
왕아초는 상해 포동에 들어선 일본해군 제3함대의 “출운호”를 폭발해버렸고 매국협정을 맺은 왕정위괴뢰정부 외교부 부부장 당유임, 온갖 나쁜 짓을 다 저리른 송호경찰청 청장 서국량 등을 암살했다. 장개석, 왕정위, 송자문 등도 하마트면 왕아초의 손에 죽을번 했다. 왕아초는 려산에서 장개석을 암살하려고 했고 남경에서 왕정위를 암살하려고 했으며 북경역에서 송자문을 암살하려고 했다.
장학량이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사직하고 상해로 갔을 때 그를 맞아준것은 기폭장치를 빼버린 작탄이였다. 이것은 왕아초가 동북의 3000만동포를 망국노로 만든 민족죄인 장학량에게 보낸 경고였다. 왕아초는 장학량이 정신을 차려 다시 항일하기를 바랐던것이다.
일본군, 왕정위괴뢰특무, 군통특무, 검은 패거리 등 여러 세력들이 여러번이나 왕아초를 죽이려고 쫓아다녔다. 장개석은 왕아초의 머리에 현상금 100만원을 내걸었고 왕정위괴뢰특무들은 층층이 병력을 배치하고 왕아초를 죽음으로 내몰려고 했으며 일본첩보기관은 덫을 놓고 왕아초를 유혹하여 붙잡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했다. 하지만 기민하고 용감한 왕아초는 번마다 위험한 상태에서 안전하게 벗어나 계속 악세력과 완강하게 싸웠다.
1933년 가을에 장개석은 현상금 100만원을 내걸고 왕아초의 목숨을 끊어오라고 명령했다. 당시 장개석은 왕아초의 도끼에 목숨을 잃을가봐 몹시 두려워했다. 장개석이 현상금을 내건 명단중에 림표, 서해동 등이 있었는데 현상금은 10만원을 초과하지 않았다.
군통특무들과 경찰들이 전면 수색에 나서자 왕아초는 교묘하게 부두로동자로 변장하여 상해를 떠나 향항으로 도망쳤다.
1935년에 리제심, 진명추, 왕아초 등은 향항에서 비밀회의를 가지고 국민당제4기6중전회에서 장개석과 왕정위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왕아초는 화극지를 남경에 파견하여 암살을 책임지게 하고 하파광과 장옥화가 옆에서 협조하며 기자신분을 얻은 손봉명이 구체적암살행동을 맡기로 했다. 그해 11월 1일에 손봉명은 권총을 사진기안에 감추고 중앙대례당으로 들어갔다. 회의가 개막된후 대표들이 사진을 찍었는데 왕정위가 앞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장개석은 보이지 않았다. 손봉명은 권총을 꺼내들고 왕정위를 향해 사격했다. 왕정위는 몸에 총알 세발을 맞았는데 한발은 몸속에 숨어있다가 9년후에 왕정위를 일본도꾜 제국대학병원의 수술대에서 죽게 만들었다.
왕정위암살을 왕아초가 지휘했다는것을 알게 된 장개석은 두려워서 대립을 불러놓고 명령했다.
“빠른 시일내에 왕아초를 잡아와! 산채로 잡지 못하면 죽여도 좋아. 왕아초를 잡아오기전에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대립과 정개민은 왕아초를 잡으려고 수백명의 군통특무를 향항에 파견했지만 헛물만 켜고말았다.
1936년 2월에 왕아초는 군통특무들의 추격을 피하여 몇몇 부하들과 함께 광서의 오주로 도망쳤다.
왕아초는 리종인과 백숭희를 세번이나 찾아가 군사를 동원해 장개석을 토벌하라고 건의했지만 리종인과 백숭희는 거절했다.
오주에 거주하면서 왕아초는 궁지에 빠졌다.
향항에서 왕아초를 붙잡지 못한 대립은 왕아초가 의협심이 강해 부하들에 대한 보살핌이 매우 지극하다는것을 알고 왕아초의 부하 여립규를 붙잡아 남경의 감옥에 처넣었다. 여립규가 죽어도 왕아초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하자 대립은 여립규의 처 여완군을 찾아가서 “우리가 너의 남편 여립규를 놓아주고 상금을 톡톡히 주겠으니 왕아초한테 련계하여 경제형편이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해.”
1936년 10월초에 여완군은 갑자기 향항에서 오주로 와서 왕아초의 부하들과 련계를 가진후 왕아초에게 전화를 하여 “향항에서 경제형편이 힘들어 오주로 왔다”고 말했다. 그때 여완군은 이미 대립에게 회유당했던것이다. 그녀는 오주에 온후 즉시 군통 주요책임자의 한 사람인 정개민과 련계를 가졌다. 10월 20일에 그녀는 일이 있어 상의하자고 하면서 왕아초를 자기의 거처로 청했다. 의리를 중히 여기고 의협심이 강한 왕아초는 여완군을 도와주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여완군의 거처에 도착한 왕아초는 수십명의 특무들이 매복해있는줄도 모르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왕아초가 들어서자 방안에 매복해있던 특무들이 석회가루를 그의 얼굴에 뿌렸다. 왕아초는 석회가루가 눈에 들어가 눈을 뜰수 없었지만 원래 무예가 뛰여났기때문에 몇몇 특무들을 쓸어눕혔다. 하지만 특무들의 쏜 총이 다섯발이나 그의 가슴에 명중되였고 세 곳에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특무들은 잔인하게 왕아초의 얼굴가죽을 벗겨버렸고 살인멸구하기 위해 여완군까지 죽여버렸다.
대립은 1923년에 호종남, 호포일과 함께 왕아초와 결의형제를 맺었지만 의리를 저버리고 왕아초를 살해했다. 그는 의협심이 강한 왕아초의 약점을 리용하여 신출귀몰하고 소리없이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암살대왕” 왕아초를 살해했다. 일본놈들의 손에도 넘어지지 않던 일대의 민족영웅은 처첨하게 장개석의 독수에 목숨을 잃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왕아초는 길에서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 서슴없이 칼을 뽑아 도와주는 호한이였고 탐관오리, 악당, 일본군을 보면 처단해버리는 영웅호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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