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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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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저명한 불교승려 현장
2016년 03월 23일 14시 14분  조회:5097  추천:0  작성자: 넉두리

당나라 저명한 불교승려 현장



 
 
중국의 4대명작중의 하나인 신화소설 《서유기》는 불가제자 넷이서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무수한 요귀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서천에 가서 불경을 가져오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중의 한사람인 당승(唐僧)의 원형이 바로 중국 당나라의 저명한 불교승려인 현장(玄奘)이다.
현장은 당나라의 승려로서 기원 600년에 하남성에서 출생하였다. 현장은 어릴 때부터 아주 총명하였고 당시 풍미하였던 불교학설에 대해 특별한 흥취를 가졌다. 11살이 나던해에 현장은 벌써 불경을 읽을수 있었고 13살에 출가하여 중국의 문화중심지인 락양의 정토사에서 경론을 공부하였다. 그후로는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스승을 구하여 불교리론을 통달하였다. 18살에 현장은 불교계에서 그 명성을 떨쳤다. 그가 인도불교학중의 “경장”, “률장”, “론장”을 통달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삼장법사(三藏法师)”라고 불렀다.
청년시기에 불교철학에 대해 집요하게 추구하기 시작한 현장은 당시의 불경번역문이 불완전하고 의문이 나는 부분이 많아 원저를 접하려고 불교의 근원지 인도로 가기로 다짐하였다.
기원 627년에 현장은 당시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지금 서안)을 떠나 인도의 나란다사로 향하는 머나먼 려정에 올랐다. 나란다사는 불교의 최고학부로서 그때 벌써 700여년의 력사를 갖고있어 인도불학의 권위이자 세계 기타지구의 불교신도들이 가고싶어하는 곳이였다.
1300여년전에 인류자체가 지리에 대한 지식이 결핍하고 교통조건 또한 지극히 락후했던 상황에서 도보로 중국중부에서 머나먼 인도에 간다는것은 엄청 힘든 일이였다. 도중에 인적이 없는 사막과 원시림을 경과해야 했고 중국서북의 대설산도 넘어야 했다.
독실한 불교신도인 현장은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기원 629년 여름에 마침내 불교고적이 많은 불교의 발원지 인도의 북부에 도착했고 나중엔 인도의 중부에 가서 불교의 6대 성지를 참배하였다.
현장은 인도에서 여러곳을 유람하면서 고승들에게서 불경을 배웠다. 어느날에 그는 배를 타고 간지스강을 건너다가 한무리 강도들의 손에 걸렸다. 강도들은 귀신을 믿는 자들이였는데 매년 가을마다 사람을 죽여 귀신에게 제를 지냈다. 배에 있던 강도들은 현장을 알맞는 포획물로 보고 그를 죽이려고 했다. 현장이 자기의 사정을 재삼 해석했지만 강도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현장은 어쩔수 없어 눈을 감고 경을 외웠다. 그런데 때마침 일진광풍이 불어치면서 무시무시한 파도를 일으켰다. 이에 강도들은 겁을 집어먹고 부랴부랴 땅바닥에 엎드려 잘못을 빌었다. 이 소문이 삽시에 당지에 쫙 펴졌다. 당지 사람들은 불교의 힘이 현장을 보호하고있다고 여겼다.
기원 631년 현장은 인도의 나란타사에 5년간 머무르며 계현론사를 모시고 “유가사지론”을 연구하였다. 그후 현장은 다시 6년간 인도각지에서 불교성지순례려행을 계속하면서 10여명의 불교대사들의 가르침을 받아 일류의 불교학자로 되였다.
기원 643년에 현장은 그가 수년간 수집한 600여부의 경전과 불상을 지니고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당나라 황제였던 당태종은 사람을 보내 그를 영접하게 하였다. 현장은 환속하여 관직에 오르라는 황제의 요구를 마다하고 장안의 홍복사에 들어갔다. 당태종의 후원으로 그는 각지의 고승, 학자들을 모아 그들과 함께 불경번역작업을 시작하였는데 그 사업은 장장 19년간 진행되였다.
현장은 경전번역에 혼신을 바쳤다. 19년동안 번역한 75부 1335권에 달하는 경론에서는 5세기 인도불교의 전면모를 반영한 기본저작을 체계적으로 번역, 소개하였다. 로년에 현장은 최대의 불교경전 《대반약경》 600권을 번역하였다. 여러 문화에 대해 깊은 리해를 갖고있은데다가 또한 범문에 정통했던 탓으로 현장이 번역한 글은 원문의 뜻을 살리면서도 류창했다. 현장은 경전을 번역하는 한편 불교의 다른 한 류파를 형성했다. 그것이 바로 중국불교사상 현장이 형성시킨 법상종이다.
불교저작외에도 현장은 려행기 《대당서역기》를 통해 10년남짓한 동안에 다녀온 110개 나라의 력사, 지리분포, 민족기원, 물산과 기후, 문화와 정치 등을 일일이 소개하였는데 그 내용이 풍부하여 오늘날까지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및 전반 중아시아의 고대력사와 지리를 연구하는 진귀한 자료로 되고있다.
19세기 이후 《대당서역기》는 선후로 프랑스어, 영어, 일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여 현대고고학자들이 고대인도와 중아시아의 력사문화유적을 발굴하고 성과적으로 연구를 진행할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현장의 영향은 주관적목적과 직접적효과를 초월하여 중국 및 동방문화사상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있다. 그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번역가, 불교학리론가일뿐만아니라 중고시대의 위대한 려행가로서 17년동안에 5만리를 걸어서 101개의 나라를 다녀왔는데 이는 세계력사상 드문 일이다. 그의 려행기는 오래전부터 불후의 세계명작으로 인정받고있다.
현장의 이야기는 력대문인들의 령감을 자극하였다. 당나라시기부터 많은 문인들이 예술수법을 리용하여 그의 이야기를 신격화하였는데 송나라에 와서는 《대당삼장취경시화》가 나왔고 명나라에 와서는 신화소설 《서유기》가 나왔다. 천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듣고있다. 《당조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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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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