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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변했습니다
2009년 05월 16일 14시 04분  조회:1929  추천:0  작성자: 방룡남

어느 유치원에서 겨우내 움에 저장해 두고 어린이들에게 먹이던 감자가 진달래 피는 새봄이 찾아와 싹이 움트도록 무드기 남게 되였다. 이때쯤이면 음지에서 시들고 속이 비여가던 가을 저장물들은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봄남새들에 밀리워 쓰레기장에 버려지는것이 건강원리가 음식문화에 자리매김함에 따라 거의 상식화되고 있다. 그런 건강원리를 교육자가 모를리는 없겠지만 이 유치원에서는 세간살이를 어찌나 물이 못나게 하는지, 아니 저장이 계산적이 못되였으니 그게 아니라 아까워 버릴수 없다거나 랑비는 죄악이라는 순수한 절약원칙에 립각하여 생각을 굴리던 끝에 어린이들한테 감자떡을 해 먹이기로 하였다. 귀하면 보배라고 어쩌다 해 먹이는것이니 생활개선인셈이다.
하루종일 팔이 시큰해나도록 감자를 씻고 깎고 썰고 갈고 하느라 허기진 대가로 어른들이 먼저 지져먹는것도 당연한 일이다. 겨가루가 섞인 옥수수떡이래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족했던 어른들은 크게 입맛이 틀리는 것 없이 감자떡을 맛갈스럽게 먹는다. 그런데 여기에 유치원어린들이 등장하였다. 한 교양원이 학부모가 오지 않아 그냥 남아있는 두 어린이를 데려온것이였다. 래일의 감자떡소비자들한테서 먼저 간식효과를 알아보자는 심사였다. 이런 떡을 처음 보는 애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대롱대롱 매달렸고 입에는 군침이 감돌았다.
그애들에게 떡을 쥐여준 어른들은 결론이 궁금하였다. 마치도 품평가들앞에서 자기의 솜씨를 평가받는 료리사의 조마조마한 심정이였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처음 먹어보는것이니 꼭 맛있어 해야 한다는 강박결론을 앞세우고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말았다. 두 아이는 약속이나 한듯이 떡을 도로 놓으면서 안먹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유혹하던 그곳을 떠나면서 저희들끼리 주고받는것이였다.
<<감자떡 맛이 없지.>>
<<응. 난 별것인가 했어.>>
그애들의 수작을 살피고있던 교양원들은 한동안 억이 막혀 서로를 쳐다보다가 지뢰가 터진듯 일시에 폭소를 터뜨리고말았다.
<<애들두.>>
어쩔수 없다는듯 그저 이 한마디뿐이였다. 그들이 하루종일 신고스레 만든 감자떡이 1차, 2차, 3차의 계획을 작성하기도전에 벌써 두 어린이한테 여지없이 소박당하고만것이다.
그 이튼날, 유치원에서는 과단성있게 원래의 생각대로 감자떡을 빚어서 어린이들한테 간식으로 나눠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호기심에 찬 눈길로 손에 쥔 감자떡을 이리저리 번져볼뿐이였다. 교양원이 감자떡이 참 맛있다며 <<시범적>>으로 한입 뚝 떼자 아이들도 반사적으로 한입 뚝 떼물었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본능적으로 퉤 하고 뱉어버리자 아이들은 또 반사적으로 잇따라 뱉어버리였다. 그 이상 더는 교양원의 <<상품광고>>가 효력을 내지 못했다. 결국엔 교양원이랑 직원들이 <<생활개선>>을 하고말았다. 물론 2차, 3차의 계획은 포기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그애들의 아버지벌이 되는 나한테도 이와 근사하게 아이러니한 일화가 있다.


      
1980년의 여름방학에 집에 휴가차로 왔을 때였다. 어머님은 1년사이에 내가 몸이 반쪽이 되였다면서 하루는 보신시킨다고 암탉 한마리를 사다가 곰을 하셨다. 그리고는 다른 식구들이 돌아오기전에 빨리 먹으라고 하셨다. 그때 나까지 하면 아홉식솔인 우리집은 생활이 째지게 가난했다. 사실 대학공부를 하고있는 내가 제일 부담거리 소비자였다. 그런 형편에서도 어머님은 큰맘 먹고 며칠분의 생활비를 털어 닭을 사신것이였다.
그런테 그날따라 시교의 농촌에 사는 형수벌되는 아주머니가 <<그전에 내가 좋아하던 옥수수떡>>을 그릇에 이고 5리길도 멀다하지 않고 나를 보러왔다. 그때까지만도 농촌에서 아직 호도거리책임제를 하지 않은 때라 논이 없이 밭만 다루는 곳에서는 여전히 옥수수떡이라도 배불리만 먹을수 있다면 괜찮은셈이였다. 그러니깐 옥수수떡을 가져온것도 최대의 성의가 아닐수 없었다. 생활고를 겪을대로 겪으신 어머님이라 그 마음을 헤아리시였다. 그때 우리집 생활형편도 말이 아니였지만 그냥 가문의 일에 총관이 되다싶이 한 어머님은 그 조카들의 간장돈마저 꼭꼭 챙겨주셨다. 어머님은 그 아주머니가 면구해 할가봐 얼른 닭곰을 치우시고 반갑게 옥수수떡그릇을 받아놓으면서 말씀하셨다.
<<이거, 옥수수떡이 참 오래간만이구만.>>
그 아주머니는 좀 게면쩍어하며 말했다.
<<경철이삼촌이 그전에 옥수수떡을 하도 반가와하길래.>>
나도 얼른 반가운 얼굴을 하면서 능청을 부렸다.
<<그땐 주먹 두개만큼한것도 서너개씩은 재꼈지요. 인젠 1년나마 못먹어봤습니다.>>
그날 나는 옥수수떡 두개를 먹었는데 처음 한개는 그래도 추억이 고명이 되여 <<맛갈스레>> 먹었지만 두개째는 실토정하면 아주머니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하겠기에 울며겨자먹기로 삼켰다.
입맛이 변했다. 겨가 섞인 옥수수가루를 빚어만든 옥수수떡이나마 배불리 먹으면 감사했던 세월에 철없이 식욕만 잔뜩 늘어난 나는 거짓없이 옥수수떡을 좋아했고 한번에 소똥만큼은 큰것을 서너개는 게눈감추듯 먹어버렸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의 식생활에서 그것보다 더 맛이 있는 음식도 없었다. 말리운 그구마쪼각을 삶아먹는것이 어찌나 싫던지. 그것에 비하면 그래도 옥수수가루를 반죽하여 소똥처럼 둥글넓적하게 손바닥에 구을렸다가 가마굽에 찰싹 붙여 노랗게 굽거나 쉬웠다가 묵은밥을 넣어 버무려서 시루에 찌면 노란것이 그런대로 보면 군침이 돌고 먹어도 별미였다. 그것이 그때는 이밥이 지금 우리의 주식인것 못지 않게 매일 식탁에 오를수 있는 주식이였다. 그나마 배부리 많이 먹을수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이였다. 그러니깐 사실은 옥수수떡을 맛있게 먹을수 있은것은 굶는것보다는 낫다는 심리작용이 고명이 되였던것이다. 아이스크림은 고사하고 창자마저 변변히 달랠수 없었던 그때의 생활난이 굳혀준 입맛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형수벌 되는 아주머니가 이밥 자시면서 이쿠스탠(憶苦思甛)하려고 나한테 옥수수떡을 가져온것은 아니였다. 그런데 1년나마 수도 북경에서 이밥이나 새하얀 우질밀가루로 찐 만두를 먹어온 내가 그냥 입맛이 변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언제가 연변대학에서 학생들이 옥수수떡을 먹이는데 항의하여 단식까지 하였다. 음식생활에서 결국 나 한사람만 시치한 수도생활에 물젖어 입맛이 변한것이 아니였다. 사회의 음식문화에 질적 변화가 생겼던것이다. 우리가 어렸을때의 음식생활 내지 음식문화 수준의 한 눈금이였던 옥수수떡이 새하얀 이밥이나 만두앞에서 무색해지고 력사의 전람관에 진렬되게 된것은 우리 사회의 성장과 생활의 향상을 상징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에 와서 우리 아이들은 더구나 입맛이 변했다. 아니, 그애들은 나서부터 벌써 그런 맛을 몰랐고 생활고란걸 몰랐다. 가난의 상징이였던 이를 아이들한테 설명해주면 그애들은 그저 신기한 눈길이고 어쩌면 웃세대를 금방 동물에서 진화한것이나 아닌가고 생각할수도 있다. 가난과 발전의 쓰고 단 맛을 겪어본 부모들이라 그저 자식을 꽃과 같이 키우려고 모지름이다. 인제 우리에게는 자식을 고생없이 행복하게 키울 환경이 마련되였다. 아니, 굶주림에 모대기면서 우리의 두 손으로 열고말았다. 유치원을 나서면 아이스크림, 집에 돌아오면 사탕, 과자, 과일들을 입에 달고있는 아이들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밥 한끼 변변히 먹어보지 못하고 1년 한두번쯤 생활개선으로만 먹을수 있었던 생활체험이 낳은 <<감자떡에 대한 애착>>과 가난이 굳혀준 입맛을 그애들이 <<세습>>할수 있겠는가.
지금도 어떤 음식점에서는 옥수수떡을 음식상에 올리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새물이로다>>하는 격으로 옥수수떡은 과연 옥수수떡이로되 거기에는 많은 재료들이 가첨되고 겉에는 또 기름이 찰찰 넘치게 발리워진 별미요, 그것도 역시 주식은 아니고 구미바꿈일뿐이다.
아이들한테 <<우리때는...>>하는 <<추억식교양>>이 별로 나쁠건 없다. 인생이 그렇게 행복하기만 한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하는건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생활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해도 너무 무리가 아닐수 없다. 인류의 력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력사이고 열심히 행복을 만들어가는 력사이다. 우리 세대한테는 감자떡이 옥수수떡에 비해 별맛이였다면 아이들한테는 이밥보다 별맛인 음식이 있어야 한다. 어제의 발전이 오늘의 기점이고 오늘의 발전이 래일의 기점인것이 과연 인류발전의 성장과정이다. 옥수수떡을 먹던 어제에 이밥이 음식문화의 향상수준이였다면 오늘에 그것은 음식문화의 기점일따름이다. 음식문화가 서로 다른 시대의 동일한 기점이라는 시점에서 옥수수떡과 이밥은 동질성을 갖는다. 그러니깐 옥수수떡은 결코 그 시대 사람들의 검박한 정신의 상징이기에 앞서 벌써 이밥이 오늘의 음식문화의 기점인과 같은것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때의 우리가 옥수수떡을 먹던 신세를 고치려고 강한 현실극복의지로 끈질기게 노력했다면 오늘은 이밥만 먹는 신세를 고치려고 세계적 인식을 키워가야 할것이 아닌가.
서로 다른 시대는 서로 다른 리상이 있기마련이고 어제의 리상은 곧 오늘의 현실이다. 하물며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의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고있는데 기어이 조상들이 걸어온 길만 뒤돌아본다면 우리는 래일에 떳떳한 조상으로 부끄럼없이 나설수 없을것이다. 남들이 후대들에게 마련해주는 기점과 꼭 같은 기점을 우리 후대들에게도 마련해주어야 자신의 인생에 긍정적인 종지부를 찍을수 있을것이다.
전통은 성장을 위해서만 영원히 보귀한것이다. 물론 어제 창조한 전통이 없다면 오늘의 성장이 있을수 없다. 그러나 전통을 다만 감상할수 있는 <<골동품>>이나 허물수 없는 <<틀>>로만 간주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을뿐더러 지어는 오늘의 성장을 가로막는 파수군이 되여버릴수도 있을것이다. 우공이 산을 옮긴 끈질긴 노력정신은 과연 게으른자를 계몽하고 창업자를 고무할것이지만 그러나 그 누가 만약 산너머에 벌을 두고 우직스레 그 산을 파옮기려 한다면 그보다 더 아둔한 일이 또 없을것이다.
인류의 회망은 언제나 저 앞에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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