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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와 게으름뱅이
2009년 05월 16일 14시 08분  조회:1807  추천:0  작성자: 방룡남

 

  퍽 몇해전에 어느 신문에서 읽은 글이라고 생각되는데 오늘 새삽스럽게도 문득 기억의 쪽문을 열고 나오는 차에 한번쯤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보지 않을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동냥으로 살아가는 한 비렁뱅이가 어느 오막살이같은 집에 동냥주머니를 들이대고보니 그 집에서는 입에 거미줄이 칠 지경으로 가난을 밥먹듯하고 있더란다. 배가죽이 뒤잔등에 가 붙도록 주린 창자를 붙안고 앉아있는 그들을 보노라니 너무도 민망하여 비렁뱅이는 돌아서 나오더니 밖에 놓아두었던 쌀자루를 들고 다시 들어가 그들한테 주면서 이걸로 얼마간 주린 배를 말리라고 했단다. 비렁뱅이가 가난뱅이를 구제했다는 아이러니이다.
인생을 좀더 적극적이고 전진적으로 꾸며야 한다고 생각하면 비렁뱅이 삶도 그리 신통치는 않겠으나 재난이나 죽음의 현장에서조차 아무런 방어도 대응반응도 없는 게으른 인생이 가난을 몰아온다고 확인하면 그만큼한 게으름뱅이도 다시 없을것이다. 혹은 초인간적인 재난이 한 인생을 가난의 구렁텅이에 밀어붙이는 비극도 있을수 있으나 죽음의 현장에서 부활의 의미를 적어가는 그런 비극적 인간은 삶의 자세에서는 어디까지나 강자이지 가난뱅이가 아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정신이 뿌리뽑힌 사람이야말로 <<참>> 가난뱅이이다. 게으름이 낳은 가난이야말로 인생몰락의 종착역이다. 그런 인생은 역시 생명조립에 구제불능의 문제가 있는것이다.
친구의 누님은 순대따위 음식물을 시장에 내다 파는데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음식물을 장만해서는 밀차에 싣고 시장에 나갔다는 저녁이 이슥해서야 귀가한다. 그러면서도 또 가무를 도맡아 해야 한다. 그런데 매형되는 사람은 아주 젊은 늙은이가 돼버렸다. 매일매일을 마실을 다니거나 늙은이들의 장기판에 끼여붙어 옥신각신 얼굴을 붉히기도 하면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줄 모른다. 정말 가난할수록 기와집 짓는다더니 그만큼 셈평이 좋은 인생도 있을가 싶다. 그러나 마음에 톱질하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마비된 인생은 산 송장임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하면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안해가 그에게 찾아준 현주소는 하나의 무덤이라고 할수밖에 없을것이다. 무덤속에서 살아움직이는 송장, 가난의 때를 벗고 인생부활의 의미가 돋을 그러한 가능성을 안해가 열어놓고있음에도 그 자신은 그 가능성마저 열린채로 방치해두고 다만 어제, 오늘, 내일이 무의미한 반복만을 거듭하는 마비된 인생, 그것은 인생자체가 랑비된 생명의 찌꺼기임에 다름아니다.
극적인것은 그 친구한테 또 쌍둥이 누이동생들이 있는데 역시 음식물장사를 하고있는것이다. 그런데 보배로운것은 그들 쌍둥이는 두집 부부가 모두 꼭 맞물린 치륜처럼 일손이 척척 맞아돌아가는것이다. 삭막한 세속의 풍진속에서도 삶의 자세를 흐트림없이 적극적인 대응반응을 보이면서 생의 강한 실천능력을 키워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과 함께 게으른놈의 가난은 죽어야 끝난다는 명언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번 추석에 아버지산소를 찾아 도문으로 갔다가 기차역 앞거리에서 구두닦기를 하는 조선족처녀를 보고 크게 감동했었다. 체면의식이 남달리 발달한 우리 민족은 빈부귀천에 너무도 과잉반응을 나타낸다. 비민중적이고 비속세적인 고루한 량반의식이 우리의 의식의 주근이 되여버려 굶어도 체면 하나만은 버리지 못하는데 큰 길가에 앉아 체면무릅쓰고 길가는 나그네의 구두를 열심히 닦아주고있는 처녀, 그냥 부드럽고 조용하고 깨끗한것이 우리 조선족녀성의 참모습이라면 그 처녀의 처신을 어떻다 해야 할가. 민족성에 대한 반역? 량반의식에 대한 반발? 시대적 변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의식의 개혁? 아무튼 인생의 아픔을 갈무리하면서 자신의 삶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열심히 인생을 실천해가는 모습은 루추함이 아니라 그냥 대견스럽기만하다.
물론 한 인생에는 현실의 삶과 리상적인 삶이 언제나 쌍둥이처럼 동반한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흔히 실천능력보다 훨씬 크다. 사람들이 쉽게 순금보다 도금에 마음을 빼앗기는것도 바로 지나친 욕심의 작간때문이다. 현실의 삶을 외면한 리상적인 삶이란 그 자체가 벌써 인생의 무덤이다. 그만큼 현실의 삶을 외면하고 인생의 실천능력을 초월한 리상이나 꿈의 종말은 그 사람의 삶의 자세에 따라서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할수도 있고 인생부활을 상징할수도 있는것이다.
우리의 고전에 <<흥부전>>이 있다. 전통적인 문학해석으로는 악덕의 상징인물인 놀부와 선량함의 상징인물인 흥부의 형상을 통하여 죄는 지은데로 가고 덕은 쌓은데로 간다는 인과보응설을 말한다고 할것이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는 이른바 비천한 일은 하기싫어하면서 토끼가 부딪쳐죽은 나무그루를 지키고앉은 인간들이 많은데 어찌보면 제비다리를 비끄러매주고 벼락부자가 된 흥부를 추종하는 의식이 모름지기 자리매김한것 같다. 언제는 누군가가 돈 많은 한국인을 사경에서 구해주고 보은을 받았다는 말에 왜 나한테는 그런 행운이 내리지 않는가고 하면서 무심한 하느님을 원망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데 그냥 우스개 소리를 한다고 받아줄수 없을정도로 너무나 진지하고 안타까운 모습이였다. 또 누구는 2원짜리 유상권 한장으로 승용차를 소득했다는 말에 욕심이 팽창하여 도박심리를 발동했다가 본전만 몽땅 말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 보물을 줏지나 않을가 은근히 가슴을 달구는 못난 인간도 없지 않을것이다.
지나치게 팽창한 욕심이나 현실의 삶을 외면한 <<리상적인 삶>>은 그대로 게으름을 낳는것이고 그 게으름이 가난을 몰아온다. 그런 요행심리는 삶을 보다 전진적이고 실천능력에 맞게 조립하여 현실에 대응하려는 마음을 죽여버리기때문이다.
우리 말에 <<게으른 년이 삼가래 세고 게으른 놈이 밭고랑 센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재난이나 초인간적인 힘의 희롱도 아니고 그냥 달을 따려고 떼질쓰는 천진한 어린이의 짓거리같은 인생자세가 문제라면 그런 가난의 뿌리는 바로 정신적독방이 없는 그것이고 그런 가난뱅이의 별명은 바로 게으름뱅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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