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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미학
2009년 05월 16일 14시 12분  조회:1783  추천:0  작성자: 방룡남

 몇년전에 대학의 동창생 서영빈씨가 수필<<실수의 미학>>을 써서 수상한적이 있다. 그때 그의 수필을 읽고 마음으로 크게 동감했었다.
인간이 한 자연인으로 태여나 부모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배우면서 한 사회인으로, 문화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번식과 생존이라는 본능적인 동물성에서 삶과 존재라는 리성적인 인간성에로의 변질과정이다. 그 과정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길을 잘못 들어 에돌아 가고 얼마나 많은 실수로 발목을 접지르거나 타인의 구원을 요청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타인의 관용하는 마음에 기댈수 없거나 구원을 요청할수 없는 인간은 고독한 인간이고 사회와 무리에 외면당하고 버리워진 인간일것이다. 이는 대개 자기중심적인 리해타산과 지극히 보수적인 인간자세를 취하는 인간들이 받게 되는 대접이다. 그 자신이 남을 너그럽게 읽어주지 못하고 타인의 실수나 잘못을 용서해주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때문에 받게 되는 보응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민족과 나라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극한의 대항, 이를테면 전쟁과 같은 퇴로가 없는 생사의 선택에서는 악에 맞서는 악의 수단이 필수부가결(必需不可缺)할수도 있을것이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조차 관용과 너그러움과 참을 인자를 지켜야 한다고 하면 이는 강도가 로략질을 해서는 되고 당하는 자는 반항해서는 안된다는 강도리론임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값은 피로 값는다>>는 <<명언>>을 너무나 선택없이 우리의 일상에 활용하고 있다. 친구사이에, 이웃사이에, 지어는 형제사이에마저 조그마한 알륵을 가지고 한 하늘을 이고 살수없는 철천지 원쑤처럼 이를 사려물고 어떤 갚음에 악의 수단까지 서슴치않는다.
우리의 일상에 많은 알륵은 어떤 실수나 오해에서 기인된다. 그럼에도 그것이 풀리지 못하고 그냥 서로가 반목하고 시기하고 마침내 <<피값은 피로 값는다>>는 악의 수단까지 동원하게 되는것은 벌써 내 마음에 관용과 너그러움이 없기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마음자세를 정리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나는 어떤데 네가 어떻다는 식으로 자신의 정당성에 타인의 잘못을 확인하려 든다. 무작정 네가 잘못했으니 빌어야 용서한다는 일방적인 자기본위주의 앞에서 누군들 마음이 개운할수 있고 너그러운 관용을 보일수 있겠는가!
아직은 사회문화적인 문명이 미숙한 사회나 민족일수록 인간들지간의 관용과 너그러움이 결여하고 풍속이나 도덕적 규범에 의한 책벌이 악렬하고 지어는 대항정서와 악의 수단이 범람하는것이다.
소학교시절에 읽은 책이고 또 워낙 책가위가 떨어져나가고 갈피들이 보풀이 일대로 인 책이여서 제목은 떠올리수 없는데 하여간 량산의 이족부락사회를 쓴 책이였다고기억된다. 이쪽 부락의 처녀가 저쪽 부락의 총각한테 시집갔는데 결혼식날에 식장에서 누가 방귀를 뀌는바람에 처녀가 부끄러움을 못이겨 자살하고 만다. 그것이 두 부락이 <<피값은 피로 값는다>>는 동족상잔의 피바다를 만드는 발원이 된다. 두 부락은 서로가 친가로부터 원쑤가 되여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른다. 승부를 가를수 없이 상잔에 상잔을,살생에 살생을 거듭하다가 나중에 그래도 담판으로 화해를 가져온다.
아직 문명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고 다만 풍속과 절대적인 도덕률에 의해 인간을 약속하고 규제하는 그런 사회에서는 아주 작은 실수라도 용서할수 없는 죄악으로 락인받을수밖에 없는것이다.
사회적으로 극단적인 집단리념과 정치학적 인생관이 한 개인의 삶을 절대적으로 간섭하던 때 우리도 흑백리론과 단순한 가치판단에 숨가삐 살아왔었다.
어떤 집단리념에 충실하고 정치적각성에 인간성이 외면당할때 우리의 눈에 보이는것은 다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일과 나쁜 일, 옳은것과 그른것, 원칙적인것과 무원칙한것, 찬성할것과 반대할것, 긍정할것과 부정할것 등 극단적인 판단일뿐이다.
이성지간의 애정, 결혼은 지극히 천륜적인것인데 얼마전까지도 늙은이들의 재혼은 망발에 가까운 망칙한 짓거리로 비난받았고 마음과 마음의 결실인 결혼에 사랑이 부재하고 성격을 비롯한 여러가지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결혼이 오히려 인생선택의 실수일수 있고 리혼은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고 인격을 세워주는 해탈일수 있음에도 사회는 덮어놓고 그 도덕성을 문책하고 신변의 인간들은 기어이 어느 일방의 잘못을 확인하려 든다.
붐비는 차안에서 발등을 밟는것과 같은 실수는 너만이 아닌 나도 늘 범할수 있는 실수임에도 마치도 고의적인 침해를 받은것처럼 눈을 부라리거나 지어는 드잡이까지 하려 든다.
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야 내 마음도 편안할수 있다. 타인의 실수를 용서하고 가볍게 웃으면서 <<놀려주면>> 어느땐가는 나의 실수가 타인의 웃음속에 용서받을수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을줄 알고 너그럽게 용서할줄 알려면 우선 자기의 마음을 비울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망각의 미학이라는 개념을 떠올려본다.
군체동물인 인간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노라면 어떤 실수거나 오해거나 무의식적인 언행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수 있고 지어는 한때의 알륵때문에 고의적인 침해를 받을수도 있다. 세월의 빛이 바래짐에 따라 이런 마음의 상처나 알륵을 기억의 쪽대문에서 끄집어내여 망각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것이 바람직할것 같다.
몇년전에 이사짐을 싸면서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다가 소학교 일학년부터 대학까지 쭉 써오던 일기책을 끄집어내게 되였다. 이것저것 펼쳐보노라니 문득 마치도 이미 팽개쳐버렸던 낡은 장부를 다시 들춰보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누가 내 마음에 어떤 빚을 졌던가,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가, 누가 어떤 실수를 했던가, 누가 어떤 망신을 했던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헐뜯었던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해쳤던가...이십년, 삼십년을 두고 전혀 기억에 잊혀졌던 일들이 남의 비밀을 훔쳐본듯이 새삼스럽게 마음의 빈자리에 내려앉았다. 공연히 마음이 불쾌하고 번거로워졌다. 제발로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오물구덩이에 뛰여든것 같은 그런 기분이였다. 서로 만나면 반갑고 형제처럼 따뜻한 정을 주고받는 동창들과 친구들을 두고 기어이 내가 허물을 찾고 있는것만 같았다. 내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야 어찌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물론 일기라는것이 빚문서처럼 어느때든 진 빚을 받아내기 위해 기록하는것이 아니고 또 그때 그때 있었던 일을 적으면서 자기의 마음자세를 바로잡는 작업을 하는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어쨌든 세월의 쪽배에 실려 기억속을 멀리 떠나가버렸던 일들을 먼 후날 다시 새삼스럽게 기억의 우물속에서 떠올릴수 있다는것만으로도 마음이 석연치가 못했다. 꺼꾸로 되는 이야기지만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이 먼 후날 다시 고향을 찾았을때 모진 생활고에 찌든 고향친구들과 생기없이 시들어가는 고향모습을 보고는 그냥 마음속에 아름다운 고향모습을 간직하기보다 못했다고 아프고 쓸쓸한 심정을 토파할때 추억도 역시 아름다움을 위해서만 필요할뿐이다. 바로 그 추억속에 내 마음을 쓸쓸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는 모든 일들을 망각하려는 추구가 있는것이다. 소학교시절, 중학교시절, 대학교시절...이미 오늘과 아득히 멀어진 지난시절의 추억을 더듬을때 우리는 그냥 어떤 그리움과 아름다움과 애틋한 정을 담아올린다. 그만큼 인간은 자기와 멀어진 일과 인간에 대해서는 충분히 너그러움과 관용과 용서로 마음의 여유와 인간애를 되찾을수 있는것이다. 산 사람이 죽은 자의 덕성을 기리는것은 산 사람의 인격론리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인제 그런 인격론리를 산 사람사이에서 펼쳐야 한다. 서로를 믿어주고 서로를 사랑해주고 서로를 너그럽게 관용하는 인간애를 키워가야 한다. 지구촌의 인구가 몇십억은 되는데 내가 알고지내는 사람은 요만큼밖에 안된다는 안타까움에 그들과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인정속에서나마 내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찾는것이 자기를 위해서도 바람직할것이다. 잔치집에 가서 기뻐해주고 제사집에 가서 슬퍼해주려 해도 나와의 인연이 없으면 문밖이다. 산속의 고독보다는 무리속의 고독이 더 큰 고독이다.
<<함께 하는 세상>>에 서로가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즐기려면 열린 정신공간을 마련하고 투명하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여러권의 일기책을 몽땅 처분해버린것은 나의 극단적인 행위 내지 순간적인 충동일수도 있겠으나 그러나 아무튼 나는 그때로부터 어떤 무거운 짐을 부리운듯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무위의 경지에서 모든 영욕을 버리려는 정신적독방을 마련하고 참된 인생수련에 고심할수 있었다. 득달이 아니라 고심이다. 인생을 마감하면서도 득달은 못하겠지만 고심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유족하다.
사람은 그래도 잊으며 살아야 한다. 마음에 맺혔던것, 타인에게 가졌던 한을 세월의 빛바램속에서 기억의 저 뒤안길에 던져버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인간애를 키워갈때 망각의 아름다움을 만끾하게 될것이다.
실수가 생겼을때, 오해가 생겼을때, 알륵이 생겼을때 망각을 위한 악수를 나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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