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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을 모셔라
2009년 05월 16일 14시 14분  조회:1762  추천:1  작성자: 방룡남

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빛과 하늘과 땅과 물과 낮과 밤을, 그리고 생물과 짐승과 새들을 그 종류대로 내여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진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여 천지만물 모든것을 다스리게 하였다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지키게 하면서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실과를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였으나 이브가 간교한 뱀의 꾀임에 들어 끝내는 그 선악의 실과를 따먹고 나중에 아담도 먹게하여 갑자기 눈이 밝아져 마침내 선악을 알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였다 한다. 부끄러움을 알게 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낯도 피해버려 노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그들을 쫓아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고 선악을 알게 된 그들이 이제 또 생명나무의 실과도 따먹고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까 저어되여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그들이 드나들수 있는 생명나무의 길을 막아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범과할수 있는 인간의 육체를 백이십년으로 한계했다고 한다. 만약 하나의 육체에 선과 악의 두 마음을 함께 한, 그래서 언제든지 범과할수 있는 인생이 무한이였다면 인간은 더는 죄를 두려워하지 않았을것이고 아무런 속죄의식도 가지지 않았을것이다.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되여 하나의 육체에 선과 악의 두 마음이 함께 자리를 잡음으로 하여 이 세상 인간이 있는 곳에 언제나 선과 악이 쌍둥이처럼 뒤따르게 되고 사람은 마음에 생각할때, 계획할때, 계산할때, 판단할때 언제나 스스로 선과 악의 선택에 몸살을 앓게 된것 같다. 또 부끄러움을 알게 된 인간은 옷으로 몸을 가리우던데로부터 선과 악의 대결속에서 점차 언어와 행위로 마음조차 가리우게 된것 같다. 그런데 부끄러움때문에 가리우는것을 알게 된 인간이 마음에 자리한 악을 가리울때 그 사람은 그가 몸 담고있는 사회와 주변의 인간들에게 시한폭탄과도 같은 큰 파괴력으로 잠재하게 될것이다.
종교의 신자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인간을 죄악에서 구제해주는 령혼의 구세주를 상징한다고 확인할때 하나님은 인간 스스로가 선을 선택하고 령혼을 세탁하는 심상(心象), 곧 마음에 세우는 우상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하나님이 자기가 만든 인간을 저주하면서 모든 생명을 홍수로 밀어버리면서도 의인이고 당세에 완전했던 노아를 살려준것을 보면 마음에 선을 선택하고 령혼을 세탁하는 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곧 스스로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자이리라. 령안으로만 볼수 있다는 옥상과 같은 하나님을 확실하게 보았다는 신도가 생활일상에서 지극히 리기적이고 계산적일때 그가 과연 어느만큼이나 하나님을 믿을가 회의하면서 정녕 마음의 악을 스스로 징벌하지 않고 다만 교리에 몸을 감추고 객관적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자>>는 어떤 강박관념이나 리해타산에 지나치게 민감한것이라고 넘겨짚게 된다. 오직 육체와 함께 하는 마음에 <<하나님>>을 모신 자만이 악을 단속하고 선을 내세워 스스로 원초적인 욕심에 자갈을 물리고 외부적인 유혹이 불러일으키는 과잉반응을 억제할수 있는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러나 한길 사람속은 몰라도 한치 자기 마음속을 모른다고 할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집단리념 내지 정치학적 인생관에 삶의 전부를 내맡기는 사람은 인간성을 거세당한 로보트같은 존재일뿐이다. 아니, 그게 아니고 다만 타력이나 객관적인 장치에 순종하는 자는 사실 마음 한 구석에 타인이나 객관을, 결국에는 자기를 속일수 있는 계산장치를 버리지 않고 있는, 그래서 겉과 속이 수박처럼 다른, 역시 그래서 누구보다 더 간교하고 사악한 인간일수 있다. 권력에 아부하는것은 권력에 기대여 타인을 누르거나 그 자신의 권력욕을 만족시키려는 계산일수 있고 어떤 집단리념이나 신앙의 절대적인 추종자인듯이 자처하는것은 정치학적 인생관에서 출발하여 선택한, 지나치게 현실순응적인 대응방식일수 있으나 역시 양머리 걸고 개고기를 파는 식으로 지나치게 계산적인 마음의 <<치부>>를 감추려는 요사한 미용술일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바로 로보트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범에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듯이 내 마음에 선이 설수 있는 정신적독방을 마련한 자만이 노아의 방주에 오를수 있을것이요, 신앙이나 인생관이나 도덕적 행위에서 실천적 리성에 의하여 삶의 자세를 바로잡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자률적인 인간성을 완성해갈수 있을것이다.
인간의 선이나 인간성을 살리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도덕규범이 때로는 도리여 인간의 선한 마음에 상처를 주고 인간성을 억압할수도 있는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이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먼저 선불금을 내야 입원이 될수 있다. 그런데 먼저 입원을 시키고 나중에 입원비를 가져와야 할 딱한 급성환자나 뜻밖의 사고를 당한 환자도 있다. 그러나 먼저 입원을 시키면 나중에 치료비를 질질 끌어대는 환자에 질겁한 병원측은 천편일률로 제도를 고집하려 한다. 이런 경우가 있으나 저런 경우도 있으니 과연 제도를 내세우는것도 당연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자식교육에서 아이더러 하루 일정을 사전에 부모한테 이야기할것을 요구하나 때로는 아이들한테도 계획외 활동이나 사정이 생길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조차 부모는 속으로는 묵인하면서도 아이한테는 어떤 경우라도 사전에 부모한테 알리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번 두번 먼저 일을 보고 나중에 청가맡다보면 그저 그렇다 싶어 담이 커져서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수 있기때문이다. 아직 식별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리유만 충족하게 세우면 먼저 알리나 후에 알리나 별문제더라고 확인한 나머지 사실을 꾸며 부모를 얼려넘기는 거짓말까지 배워내게 되는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틈서리를 주지 않기 위하여 부모는 절대적인 원칙으로 아이를 교육하는것이다.
하나의 육체에 선과 악의 두 마음이 함께 하는 까닭일가. 그래서 암세포를 떼낸다는것이 그만 주변의 산 세포까지를 베여내는것과 같으리라. 특히 악의 제거를 위하여 악의 수단이 필요할 때 그 악의 제거와 함께 선마저 악의 수단에 상처를 입게 되는것이다. 바로 악의 수단을 요청할때 악의 제거를 위하여서는 선의 희생도 불가피하다는 당연성을 내세우기때이다. 쥐를 치려다 쌀독을 깨는 경우, 그래도 그 동기만은 정당한것이다.
그러니 타력에 의한 강박관념이나 내 마음밖에 존재하는 <<하나님>>은 도저히 하나의 육체에 선과 함께 공존하는 악을 완전히는 베여버릴수 없는것이다. 오직 내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야만 <<하나님>>은 내 육체를 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시시각각으로 내 령혼에 침투하여 기회를 노려 머리를 쳐들려는 악을 눌러버리고 선이 굳세게 일어설수 있도록 뒤를 받쳐줄것이다. 선과 악이 한 육체에 자리를 잡고있다지만 열심히 령혼을 세탁하여 그 마음의 지옥에 악을 가둬넣고 선이 령혼과 육체를 집정할때 그래도 그는 한 선인이 될수 있다.
죽음을 앞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자기를 뉘우치고 인정에 목이 메는것은 인간들 서로가 악의 마음까지 동원하면서 쟁탈하던 모든 영욕이 육체와 함께 하는것임을 깨달은 때문이리라.
그런데 죽은 자의 덕성을 칭송하는 산 사람의 마음도 과연 죽음을 앞에 두고 새삼스럽게 그 모든 영욕이 육체와 함께 사라지는것임을 깨달은 때문일가.
산 사람의 육체에는 선과 악의 두 마음이 함께 자리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를 완승할수 없는 불행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한다. 그냥 선한 마음뿐이라면 그 마음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그러나 알수 없는게 인간의 마음이라지만 하나의 육체에 동거하여 생사를 함께 하는 선과 악만은 그 육체에 담긴 마음의 건강상황을 알것임은 분명하다. 마음에 길을 물어라고 하는것은 바로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그 마음의 건강상황이 모든 인생판단과 현실선택의 정확여부를 결정할것임은 당연한것이다.
인간대 인간은 서로의 감옥이라고 하는것은 물론 하나의 육체에 선과 악의 두 마음이 함께 함을 어쩔수 없이 승인하는 말이겠으나, 그러나 그런 말을 시러베장단 치듯 일상용어로 스스럼없이 쓰면서 친구나 형제나 지어는 부부사이를 가볍게 스친 마찰에마저 적용하려는 사람들을 볼작시면 그것은 역시 내 마음에 비추어 타인의 마음을 꼬집는것이요, 그러면서도 짐짓 자기는 관조자의 립장에 서서 이웃의 싸움에 두쪽이 다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듯 공정한체 하는 사이비신사의 처세철학임에 다름아니다.
내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어 악을 전승하고 선을 주장하게 하는것은 오직 내 마음속에 모신 <<하나님>>뿐이다. 그 <<하나님>>은 나의 육체와 마음과 더불어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언제 어디서나 시시각각으로 나의 마음에 길을 가리켜 줄것이다.
계산적이고 리기적인 장사군의 속궁리로 죄를 사면받거나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흥정하려고 하는 자는 썪은 바줄을 타고 하늘을 오르려는 호랑이와 같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냥 아무런 구구계산이 없이 정신건강에 인생의 전체적인 의미를 자리매김해줄 때 그는 과연 한 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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