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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고발
2009년 05월 16일 14시 23분  조회:1427  추천:0  작성자: 방룡남

-허봉남의 중편소설<<피와 불>>에서 본다

소설이란 허구를 리용하는것이고 그래서 소설창작에서 인물, 사건, 환경에 대한 합리한 허구가 시도됨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허구로 읽은 소설이 현실감각이 짙게 느껴질 때 우리는 소설의 작품적성공을 긍정함과 동시에 예술적진실과 사회적현실사이에서 필연적인 련계를 찾고 사회현실에 대한 반성에 은근히 신경을 모으게 된다. 허봉남의 중편소설 <<피와 불>>(<<아리랑>> 제38기)은 바로 현실감갈이 짙은 에술적진실로 우리로 하여금 사색적으로 사회현실과 인간자신을 반성하게 하고있다.
<<피와 불>>은 인간의 본성을 캐고 인간성의 본질을 찾는 인간탐구의 문학정신에 철저히 립각하여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속성 즉 감성, 오성(기쁨, 노여움, 욕심, 두려움, 근심) 및 리성에 대한 적라라한 해부와 시대적투시를 주저없이 들이대고 인간의 정신적생태평형의 파괴를 사회적, 시대적 및 문화력사적으로 고발하고있다. 이 소설의 실험목적이 인간성의 본래의 모양을 밝히고 그 인간성이 어떻게 사회 혹은 시대적 제약과 염색을 받고있는가를 돌출히 하는데 있다는것을 확인하면서 작자가 그 실험을 가장 악렬한 환경에서 진행하고있는데 퍽 주목이 돌려진다. 바꿔말하면 작자는 인간성이 (최대가능성으로 사회제약에서 탈피하여) 그 본래의 모양을 드러낼수 있는 전형환경을 실험공간으로 설정하고 와중에 삶에 대한 갈구를 공동한 욕망으로 삼고 자연과의 박투속에서 죽음에 반항하는 세 인물을 실험대상으로 등장시킨것이다.
세 인물은 신분이 각기 다르고 산속에 들어온 동기도 서로 다르다. 림장기술원 심대식은 육모지를 돌아보던중 수림언저리에 피여오르는 불길을 발견하고 달려온것이고 림장사무원 현우현은 자기의 안해를 가로챈 <<원쑤>> 심대식을 불길속에 처박아넣으려고 달려온것이며 림장 제3작업소 소장 정만룡은 남에게 알릴수 없는 일로 산불에 갇히게 된것이다. 동기가 어떻든 그들 셋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는 산불에 갇혀 죽음의 신한테서 벗어나려 판가리하는 똑같은 처지였다. 인생의 쪽배가 침몰의 위기에 처한 이 시각, 그들은 <<그 어떤 개인의 타산이나 원도 없이 공동한 욕망 즉 삶에 대한 갈구>>로 환난지기가 되지 않을수 없었다. 짐승들조차 서로 다른 존재에 관심을 돌릴 여가가 없는 순간이였었다. 불만 피하면 된다는 한가지 본능에 지배되여 사람곁을 스쳐지나는 한무리의 쥐, 사람이 있는 곳이 안전하다고 여긴듯 그들곁에 와서 멈춰선 몇마리 재빛토끼, 지어는 새끼를 죽인 보복으로 사납게 달려들던 승냥이마저 흘끔거리면서 그들쪽에서 멀지않은 곳에 멈춰섰다. 자연의 도전에 모든 생령들이 <<피해의식>>을 절감한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연의 평화가 다시 찾아들면 승냥이는 역시 사나와질것이고 쥐는 역시 도적질에 나설것이며 토끼는 역시 두려움을 안고 피해다녀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바로 여기에 작자의 <<엉큼한 시도>>가 있는것이다. 토끼와 같은 심대식, 승냥이나 쥐와 같은 현우현, 정만룡 어쩔수 없이 이런 대비판단이 뇌리를 친다.
사실 인간은 자연의 도전앞에서도 일단 잠시적이나마 평화가 찾아들기만 하면 원래의 심리공간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사유>>를 계속 굴리게 된다. 보복의식에 떠밀리워 산불을 보고도 도리여 불속에 찾아든 현우현은 때때로 심대식에 대한 보복으로 치를 떨고 출세욕을 버리지 않고 재화속에서도 정만룡소장한테 아첨하기를 잊지 않는다. 제집을 살려내고 퀴퀴한 뒤를 덮어버리려고 불속에 든 정만룡은 심대식이나 현우현을 자기가 살아나가기 위한 도구나 노예로 간주할뿐이다. 이런 인간들과 함께 있는 심대식이기에 <<자기 처지가 세사람중에서도 제일 고단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의 머리속의 현우현은 <<정만룡의 앞에서는 도시 등심뼈가 있는것 같지 않으나 말랑한 안해나 아래사람에게는 도리보다 우격다짐을 앞세우는>> 사람이였으며 정만룡은 <<뜨락또르를 동원하여 제집을 구하는데 쓰>>고 <<떠벌려 공금을 탕진하>>며 <<권세를 부릴줄 아는 사나이>>였다.
그러고보면 자연의 도전앞에서 짐승은 제 본성을 잃었지만 인간은 도히려 순수한 인간성을 발로한셈이다. 바꿔말하면 재난에서 벗어나면 짐승은 제 본성을 되찾을것이나 인간은 순수한 인간성을 상실하고 말것이다. 이것이 사회를 사는 인간의 비극이다. 워낙 정만룡이나 현우현은 렬화속에서 정신적인 구원을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살아나가려는 그 자체가 그들한테 권세에 대한 미련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암시해준다. 확언하면 사회적인 권세욕이 이미 그들의 인간성을 제약하고 염색해버렸던것이다. 사실은 과연 그러하다. 재난에서 벗어난 현우현은 <<정만룡을 여론계에 소개하는데 큰 힘을 들>>였고 정만룡은 제집을 림시로 림장사무실로 내놓아 대번에 실화문학의 주인공으로 된다. 그러나 <<자기들은 살기 위해서 버둥질쳤노라>>고 실속대로 말한 심대식은 <<작풍이 나쁜데다 다른 사람을 헐뜯기까지 한다는 평판을 듣>>고 <<직함평의에서까지 밀려>>났다. 정만룡과 현우현의 합심무함에 든셈이다. 자연의 평화는 비탈린 현실을 재현시킨것이다. 소설의 결말에서와 같이 <<대식이는 문득 자기가 지금도 불길속을 걷고있는듯한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자체가 불길속을 헤쳐나가는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다. 상업적인 관심만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속에서 인간성이란 전혀 존재할수 없는것이며 이러 인간들이 인간성을 지켜사는 사람들 주위에 재난의 불길을 지펴놓고있는것이다.
<<피와 불>>에 등장하는 앞의 세 인물외에 도선향도 얼비친다. 도선향은 직접 작품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원쑤>>치부하는 심대식과 현우현의 사유공간을 빌어 간접적으로 비치는 영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것은 작품의 도선향은 정정당당하게 재가하는 과부도 아니고 매매혼인이나 소개혼인으로 하여 감정마비증에 걸린 녀인도 아닌 그 자신이 빚은 자작극에 사랑의 고배를 마시는 녀인이라는것이다. 과부재가도 이러쿵저러쿵 시비가 많은데 그 자신이 두 남자한테 추파를 던져 비극을 초래한것이니 관념적인 평가는 당연히 도선향을 더러운년, 심대식은 량심없는자, 현우현은 괄시당한 사내일것이다.
이것이 야단이다. 사회상 정치적으로는 잘못이 있으면 고치면 된다지만 도덕적으로 허물이 나면 영원히 지울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문화행위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향수할수 있지만 녀성들은 대부분 문화행위에서 향유자도 주체자도 아닌 언제나 소비적인 희생물로 전락된다. 실로 형식적인 도덕주의가 끼치는 해를 입는것은 보통 녀성이다. 왜냐하면 문화력사에서 륜리도덕적으로 유독 녀성들에게만 정조라는 <<월계관>>을 씌워주었기때문이다. 물론 작풍이 문란한 경우를 대변하려는것은 아니지만. 이성간의 사랑은 사회에 대한 리해, 감정세계의 미성숙 등등으로 착오적 선택이 있을수 있고 또 사회현실로부터 볼 때 문화력사적인 관성과 사회 제관계의 제약으로 인한 착오적(노예적, 수동적) 선택도 있을수 있다. 그런데 문화력사적인 도덕관념에서 유독 녀성만은 그 어떤 착오적선택도 영구히 지켜나가야 고상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행실로 인정된다. 이는 남성사회가 녀성들에게 강요한 <<진리>>이다. 바로 이와같이 남성사회의 삐여진 도덕관념과 도선향의 연약한 감정을 리용하여 현우현은 가장 비루한 수단인 처녀성을 돌파하는것으로 그녀를 손아귀에 잡아넣었던것이다. 현우현에게 있어서 도선향에 대한 추구는 미모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점유인바 그것은 사욕과 성욕이지 결코 순결한 애정은 아니다.
명예가 더럽혀질가봐 착오적인 선택을 눈물로 고집하면서 싫은 음식 삼키듯이 병적인 가정을 그런대로 영위해나가던 그녀가 즉시적반항을 보여주지 못했던 과거를 저주하면서 뒤늦게나마 관념도덕의 노예적멍에에서 벗어나려고 버둥질치게 된것은 바로 가치균등의 순결한 애정에 동화하려는 심리적지향때문이였다.
관념도덕의 노예로 그냥 착오적인 한점 공간을 차지한다는것은 자아갱신의 흐르는 삶이 아니라 송장을 붙안고 통곡하는 굳어버린 삶이 된다는것을 깨달은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인과 노예라는 억울한 차이를 무너뜨리고 애정의 새로운 가치질서를 세우려는 애모쁜 반항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행복이란 이름은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차례지지 않았다.
그녀는 새로운 삶이 희미하게나마 약속되자 마음의 재더미에서 다시 켜졌던 희망의 등불을 꺼버리고 가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랑의 비극 하나를 미연에 해소시킨셈이다.
왜냐하면 외곡되고 비틀린 현실은 그녀를 심대식이와 함께 문화력사의 관성으로 관념도덕의 <<단두대>>에 올려세우는것이기때문이다. 인간성은 여기 성애의 화원에서도 소외되고있다.
이와같이 <<피와 불>>은 자연의 도전앞에서의 인간들의 조화, 생령들의 조화, 자연의 평화속에서의 인간들의 불합을 통하여 사회적인 제약과 염색으로 퇴화되고 매몰된 참된 인간성에 대해 안타깝게 부르짖고있으며 인간들의 비리적인 반목과 투기적인 생활태도를 질타하고있다.
소설을 덮으면서 작자의 예술적성공을 다시 긍정하게 됨과 동시에 인물의 내심세계에 대한 적중한 색출이 잘 되지 못하고 도선향의 심리적성격에 대한 함축의 론리적타당성이 결핍하며 언어 특히 대화가 작자자신의 유모아적기질에 대비해서도 벌써 너무나 평범하고 일반적이며 매개 인물의 개성적특성이 잘 나타나지 않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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