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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이야기(25)
2024년 03월 03일 14시 47분  조회:351  추천:0  작성자: 회령
      실화
                                모택동의 이야기(25)
                                                                                                             회령
 
강청을 호되게 질책
 
1974년 모택동은 이미 81세의 고령이였지만 여전히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힘이 따라가지 못하고 “문화대혁명”을 공제하고 결속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는 시종 권력을 림표와 강청에게 주지 않았다. 그는 비록 강청을 믿긴 했으나 중용하지는 않았다. 강청을 정치국위원으로 되게 한 후에는 더는 다른일을 하지못하게 하였다. “10차대회”후 강청일당은 자기네들이 득세를 했다고 여기며 여러면으로 주은래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날뛰면 날뛸수록 자기들의 진면모를 폭로하였다. 모택동은 그들의 탈권음모에 대하여 경각성을 높히였다.
 
1974년 7월17일 오후, 중남해 모택동의 숙소에서 그리 멀지않은 한 회의청에서는 북경에 있는 전체 정치국 위원들이  둘러않자 엄숙히 모택동의 강화를 듣고 있었다.
 
모택동은 시력이 좋지않아 모호하긴 했으나 강청을 자주 주시하면서 말하였다.
 
“강청동지, 주의하시요.1 다른사람들이 당신에게 의견이 있어요. 하지만 당면에서 말하기를 꺼려 말하지 않는데, 당신은 이를 모르고 있어요. 두가지 공장을 만들지 말아요. 하나는 강철공장이고 다른 하나는 모자공장인데 쩍하면 사람들에게 큰모자를 씌우지요…”
 
모택동이 손짓하며 말하자 강청은 급해나기 시작했다.
 
금년 년초에 “비림비공”운동을 발동한 이래 모택동이 처음으로 소집한 재경 정치국 위원들의 회의다. 회의에서 모택동이 강청을 이름을 찍어가며 비판할줄은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다. 여기에는 일련의 심각한 “배경”이 있다.
 
1973년 겨울이다. 강청일당은 여러번 정치국 회의를 빌어 주은래와 엽검영을 “우경”이라면서 그들이 외사활동에서 “나라의 권력을 손상주면서 나라를 치욕되게” 하고 “투항주의” 를 범하였다고 공격하였다. “4인방”의 두목인 강청은 이것은 “제11차로선투쟁”이라고 질책하면서 주은래를 “모주석을 대체하려고 급급해 한다”고 모욕중상 하였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후 모택동은 반박하기를 첮째, “제11차로선투쟁”이라고 말하지 말며 실제상 그렇지도 않다. 둘째, 주은래가 “급급해” 하는것이 아니라 강청이 “급급해” 한다. 고 말하였다.
 
대개 이시기에 모택동은 또 “한 보통 공산당원”이라고 서명한, 강청을 비평한 편지를 정치국 위원들에게 돌려보게 하였다. 그 후에도 모택동은 여러번 “전문 남을 비평”하고 “쩍하면 훈계하고 큰모자를 씌우는” 강청의 악렬한 작풍을 호되게 질책하였다.
 
1974년 초, 강청일당은 “비림비공” 기회를 타서 “뒷문치기”를 동시에 비판하게 하면서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령도간부들을 타격하게 하였다. 강청일당의 이런 작법은 중앙정치국 위원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1월말, 더는 참을수 없는 상황에서 엽검영은 모택동에게 편지를 써서 강청일당의 상술한 작법과 무리한 요구를 반영하였다. 2월초, 주은래도 모택동에게 편지를 써서 강청일당이 “비림비공”에 “뒷문치기”를 끼워넣어 운동을 일으키는 작법을 동의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였다.
 
2월15일, 모택동은 회시를 써서 강청일당에게 엄격한 경고를 하였다. 그는 회시에서 “지금 형의상학과 편면성이 아주 창궐하다. 비림비공에 뒷문치기 비판을 끼워넣는 것은 비림비공을 약화시킨다.” 고 하였다.
 
3월하순, 모택동은 등소평을 련합국대회 제6기특별회의 중국대표단 단장을 맡게 하였다. 이문제를 정치국에서 토론할때 강청은 모택동의 의견이라고 설명해도 여전히 자기의 견해를 고집하며 소란을 이르켰다.
 
27일, 모택동이 “등소평동지의 출국은 나의 의견인데, 반대하지 말라.”라고 편지를 써서야 강청은 수그러 들었다.-
 
이날(1974년7월17일 오후회의) 재경 정치국 위원들의 회의에서 모택동은 강청에게 “당신의 그 두가지 공장을 그만두라.” 고 말한후 또 “강청도 상해방이다. 당신들 주의하라. 4인이 소종파를 하지말라.”고 엄격히 말하였다. 강청은 “강철공장’을 턱으로 등소평을 가르키며 그에게 주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모택동은 “여러사람 앞에서 한 말이다. 말한대로 해야 한다. 강청은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대표할 뿐이다.” 모택동이 등소평을 칭찬하여 한 “강철공사”라는 말을 강청은 리해하지 못하였다.
 
이날회의에서 강청은 크게 망신을 하였다.
 
전에도 모택동은 강청에게 불만과 격분을 여러번 표시하였다. 어느한번 강청이 만나자고 청시한 보고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날 필요가 없다... 내가 81세의 고령으로 중병을 앓고 있지만 너는 나를 보는체도 하지않는다... 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죽은후에는 네가 어쩔텐가?... 너는 큰일은 말하지 않고 매일 작은일만 말하는 사람이다...” 라고 질책 하였다.
 
                                                                                                         2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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