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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27) 꼬임수
2024년 03월 05일 18시 07분  조회:633  추천:0  작성자: 김장혁
     

             4. 꼬임 수
 
 
   한길수는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짚고 응삼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비틀비틀 집에 들어섰다.
   월선과 후처의 아들 선주는 마중 나왔다가  무슨 큰 봉변을 당하기나 한 것처럼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번대머리 뒤에 둬자나 되던 머리채가 보이지 않찮는가.
    “아니, 영감, 그 몇 대 안 되던 머리털마저 어쨌어요? 홀랑 벗어진 게 무슨 꼴인가요?”
   월선의 말에 한길수는 손을 내저으면서 돌려 맞췄다.
    “모르는 소리를 작작 해. 이 어른은 일본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구 총도감을 바꿔 온 거야. 이후에 누구든지 머리채를 자르고 하이칼란지 하이딸인지 해야 된돼.”
    생벼락 같은 소리에 월선과 선주는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렸다. 그들은 머리채를 감싸쥐고 덴덥해 눈마저 휘둥그래졌다.
    “철주넨 왜 보이지 않느냐?”
    월선은 어둠 속에서 눈을 흘기면서 선처 아들을 헐뜯었다.
    “서울로 떠났어요. 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합디다.”
    “그래? 그래도 그 녀석이 장차 큰일 할 놈이야. 지금 세월에 일본말을 배워 두는 게 낭패 없어. 이 골짜기 둼 무지에 박혀서 애비 벌어 놓은 걸 받아먹겠어? 그 녀석 둘째 놈보다 썩 나아!”
   그 소리에 월선은 두덜거렸다.
   “영감도, 정말 손바닥과 손등이 다르다고 어쩌면 내 난 새끼를 그렇게 낮잡아 말해?”
    한길수는 허리를 만지며 상을 찡그리면서도 끼무라 국장의 위엄스러운 목소리가 귀전에 들리는 상 싶었다.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구해서 경찰국청사를 짓는 일을 시작해야겠네.”
   길수는 방에 들어가 누웠다가 앓음 소리를 내면서 간신히 기여 일어났다.
   “게 응삼이 있는가? 고새도 참지 못해 여편네 궁둥이를 쫓아갔는가?”
   온 울안을 울리는 그 고함소리에 누가 태만하겠는가.
   응삼은 끌신을 작작 끌고 부랴부랴 본채에 들어왔다.
   “주인님, 찾았습둥?”
  응삼이 다급히 마루에 올라왔다.
  “앉게. 긴히 의논할 일이 있네.”
   길수는 등잔불 밑에 베개로 왼쪽옆구리를 받치고 비스듬히 기대 누워 우멍눈으로 응삼을 마주보며 말했다.
  “끼무라 국장은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끌어다가 경찰국청사를 지으라고 하였네. 그런데 내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수는 저 병완을 초과할 사람이 없는데. 그 뜨개소 같은 놈이 고분고분 말 듣겠는가? 숱한 인부를 며칠 새에 어떻게 끌어간단 말인가? 여기 영월동의 열대엿 살 이상 되는 사람을 몽땅 끌어가도 3층집을 짓기에는 엄청나게 모자랄 텐데 말이야. 아이고,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한길수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응삼은 옆에서 길쭉한 박대가리를 기웃거리더니 한참 후에야 얍슬한 입술을 나불거렸다.
  “병완은 억지로 우격다집해선 안됩구마. 우시장에 절대 끌어가지 못합구마. 얼려 데려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삯전을 주겠다 했습둥?"
   “삯전 같은 소리를 다하네. 남의 나라두 통 채로 빼앗아간 그 도적놈들이 삯전을 주자겠는가?"
  응삼은 한숨을 푸 내쉬었다.
    “이후에는 일본 사람들을 욕하지 마옵소. 말말 간에 그런 말이 불쑥불쑥 나가면 큰 야단이 나겠습구마.”
    “그래, 그건 네 말이 옳아.”
   길수가 혀로 입술을 감빨면서 수긍했다.
   응삼은 뒤이어 이런 수를 내놓았다.
  “이렇게 하깁소. 좋은 청부업거리가 생겼는데 삯전도 푼푼히 준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살기 바쁜 가난뱅이들이 좋다고 왁 쓸어 갈 겁니다.”
    그제야 한길수는 일어나 상을 찡그리면서 허리를 붙잡았다.
   “그래도 자네 그 박대가리에서 잔꾀가 잘 나오네그려. 허허. 아이고, 허리야.”
     응삼은 바삐 길수를 부축해 눕혔다.
    “근심맙소. 이 응삼이 있는 한 경찰국청사 아니라 온 우시장을 다시 지으라고 해도 근심할게 없습구마. 인부가 모자란다는 구실로 주인어른은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까지 온 상우남면을 다 관할하게 해달라 하깁소.  인부도 채우고 장차 일이 잘 되면 면장이나 군수로 승진하는데 길을 닦아놓는게 아입둥?  이거야 말로 일거양득이지요. 헤헤헤.”
    한길수는 응삼의 말에 귀맛이 당겼다.
   “그래? 그래. 내가 면장이나 군수가 되면 자넨 꼭 아전이  될 수 있어. 허허허.”
   이튿날 기운봉 쪽에 해가 두둥실 뜨기 바쁘게 응삼은 영팔을 데리고 병완을 부르러 떠나갔다.
    그들은 여우들처럼 징검다리를 홀짝홀짝 뛰어넘어 개울물을 건너 둔덕우로 올라가면서 보니까. 식전아침부터 뭘 찧는지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병완은 마당에서 도끼로 나무를 팡팡 패다가 응삼과 영팔이 다가오자 패놓은 나무토막들을 한쪽에 주어 쌓아놓았다.
    “영감, 주인어른이 도감어른과 긴히 상론할 일이 있다고 모셔오라 합더구마.”
   “또 무슨 일로? 혹시 은녀를 데려 가려는 건 아니겠지?”
   응삼은 허리를 꼽싹거리었다.
    “예, 아닙니다. 가보면 알겁꾸마. 좋은 청부업거리가 생겼습꾸마. 어서 가시죠.”
   그는 가슴츠레한 뱁새눈으로 병완의 눈치를 살폈다.
   “좋은 청부업거리면야 자네들이나 가서 할 게지. 당장 감자도 파구 강냉이도 뜯어 들여야겠는데 바쁜 사람을 찾아와 뭘 하오?”
   응삼은 진작 병완이 이렇게 나오리라고 진작 짐작했었다. 
   그는 웃음을 낯에 게 바르면서 지껄였다.
   “김도감어른, 우리 주인어른은 도감어른하구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살자고 은덩이도 드리고 은녀도 내보내 주었소. 지금 주인어른이 허리를 상해서 오지 못했는데 한번 가보면 어떻습둥?”
   병완은 너무 한감이 들어 도끼를 스르르 놓았다.
   “그래, 주인어른이 모질 상했는가?”
   “예. 당나귀차 운주하에 떨어져 허리를 모질 상했소.”
   응삼의 말에 병완은 나무토막을 모아놓고 일어서면서 “가봅세.”라고 했다.
  성칠이가 집에서 나오면서 물었다.
  “아버님, 어데로 갑니까?”
   병완은 되돌아보면서 대수롭잖게 말했다.
   “한 영감이 허리를 상했다는데 피뜩 가보고 오겠다."
   물레방아를 찧던 성희와 하옥은 떡가루가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둔덕 아래로 내려가는 병완의 뒤 잔등을 바라보면서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병완이 토성 안 대문에 들어서자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쏘아보며 속으로 윽별렀다.
  (저 놈을 그저 방망이로 뒤대가리를 쳐 죽였으면!)
    그러나 그는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짐짓 마루에까지 나가 마중하며 아닌 보살을 떨었다.
    “김 도감, 어서 오오. 아이유, 내 허리 아파서 땅바닥까지 나가 마중하지는 못하겠소. 어서 올라오오.”
   병완은 마루에 성큼 올라서며 문안부터 했다.
    "허리를 모질 상했다던데. 어떻소?” 
    길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완의 손을 잡고 비틀비틀 웃방으로 들어갔다.
   “김 도감을 보니 허리 병이 낫는 것 같네. 허허허. 아이유.”
    한길수는 입술에 게발린 소리를 하다가 앉으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응삼이 달려들어 와 한길수를 부축하여 앉혔다.
    병완은 앉자마자 머리채를 싹둑 잘린 번대 머리를 마주보면서 놀라 했다.
    “아니, 머리채는 어쨌소?”
   한길수는 번대 머리를 손으로 쓱 씻어 올리면서 지껼였다.
   “시원한 게 너무나 좋아서? 우시장에 갔다가 일본 사람들 신식을 따라서 머리채를 잘라버렸소.”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청부업거리가 생겼기에 이른 아침부터 나를 불렀소? 난 할 일이 많으니까 얼른 말하오.”
   그러나 길수는 정지를 내다보면서 소리쳤다.
    “여보, 김 도감이 왔는데 술상이나 차려 가져오오.”
   병완은 넉가래 같은 손을 저으면서 사양했다.
    “이러지 마오. 한 영감, 난 가을이 돼서 일이 바쁘오. 어서 할 말이나 하오.”
    그럴수록 한길수는 늦장을 피웠다.
    어느 결에 월선이와 둘째며느리 남복금이가 술상을 맞들어 들여왔다.  
    “아무리 농번기라도 술이야 한잔 마시면서 얘기하기요. 자, 한잔 받소.”
    한길수가 놋 술잔에 막걸리를 부어 권하자 병완은 어찌는 수가 없어 받고 길수 앞에 놓인 놋 술잔에 한잔 따랐다.
    길수는 술잔을 들고 수작을 피웠다. 
    "병완이, 우린 씨름판에서 싸움 끝에 정 든  형제간이 아니고 뭐요?  자, 한잔 들기요.”
   병완은 마지못해 놋 술잔을 들어 댕그랑 마주 치고 굽을 쭉 냈다. 길수는 곁의 응삼에게도 한 잔 부어주었다.
    응삼은 속으로 슬그머니  병완을 질투하였다.
   (네깐 놈이 주인어른을 도와 뭐 해준 일이 있느냐? 상대접을 받아? 흥!)
   그는 한뉘 슬슬 기면서 고생한 자기를 푸대접하는 주인어른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쓸개가 다 쓰려났다. 그는 그런 질투와 원망을 놋 술잔에 담아 단숨에 쭉 들이켰다.
    막걸리가 서너 순배 돈후에야 한길수는 무거운 입을 떼였다.
    “이보게, 김 도감, 이번에 내 좋은 청부업거리를 얻어놨으니까. 우리 마을 사람들을 잘 살게 만들 예산이네.”
    병완은 세 귀 눈에 의아한 눈빛을 띠우면서 턱밑에 바투 들이댔다.
   "툭 까 놓고 말하오. 무슨 청부업거리오?” 
   길수도 더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어제 우시장에 가서 3층집 짓는 일을 맡아 놨네. 자네 좀 목수 일을 맡아주게.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이 좋은 청부업에 동원해주게나. 삯전을 딱딱 주는 일이니까. 참 좋은 돈벌이기회네.”
    병완은 닭다리를 하나 쥐여 한입 뚝 떼여 씹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숱한 감자와 강냉이는 누가 걷어 들이겠소? 맏손녀 어금이가 추석이 지나면 당장 결혼해야 하겠는데 혼수 감을 장만해야겠는데.”
     길수와 응삼은 개의치도 않았다. 병완은 십중팔구는 그렇게 나오리라고 미리 짐작했기 때문이다.
    응삼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는 주인을 보자 팔을 걷도 나섰다. 그는 바가지로 오지독안의 막걸리를 푹 퍼서 병완의 앞에 놓인 놋 술잔과 길수의 앞에 놓인 놋 술잔에 찰찰 넘치게 따랐다.
    “김도감, 집일이야 성칠이나 안분들이 하면 되지. 이런 청부업거리 어데 가 얻소? 우리 주인어른이 얻지."
   병완은 눈을 떡 감고 묵무부답하고 목석처럼 떡 앉아 있었다.
   응삼은 한길수한테 뱁새눈을 찔끔해보이고나서 뒤를 이었다.
   "한번 우리 주인을 돕는 셈 치고 나서줍소. 그러면 우리 주인어른께서 그 감자와 강냉이를 판 돈만큼 벌게 하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거저 김 도감에게 은덩이를 수무 냥이나 줄라니 고만한 게야 어련히 봐주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응삼의 말은 실로 그럴듯했다.
    “그런데 우시장에 무슨 부자가 있어서  3층집을 다 짓는다오?”
    병완이 묻는 말에 응삼이가 제꺽 “그거야…” 하고 입을 열려는데 길수가가 손으로 슬쩍 그의 허벅다리를 꼬집어놓았다.
    “양, 저, 우시장에 그런 대부자 있소. 삯전은 근심하지 마오. 내 달마다 딱딱 주겠소. 한마을에서 살면서 내 거짓말을 하겠소? 자네 정 믿지 못하면 선전을 줄 수도 있소.”
    그제야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막걸리 잔을 또 들었다.
    “글쎄, 돈을 벌수만 있다면 가서 목수 일을 할 수도 있지.”
    한길수는 대번에 찌푸렸던 낯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말끔히 걷으면서 놋 술잔을 높이 쳐들었다.
    “자, 김 도감, 오늘 통쾌하게 한잔 듭세."
    병완은 한길수 잔과 마주치고 막걸리잔을 굽냈다.
     길수는 사기나 너스레를 떨어댔다.
    "자네 도감까지 맡소. 영월동 사람들을 집짓기에 동원해주오. 영월동에서 자네 말이라면 누가 듣지 않겠수?"
   병완은 생각 밖으로 손사래를 치며 사양할줄이야.
   "아니, 도감은 그만 두오. 무슨 일인지 모르구 어찌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겠소?"
   한길수는 소발굽 같은 주먹으로 병완의 어깨를 툭 쳤다.
   "야따, 목수하구 도감 삯전은 따로 한몫씩 줄 테니. 근심하지 말게나. 하하,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을 때는 격이라 일거양득이 아니겠소? 자, 한잔 들기오.”
   그제야 병완은 웃으면서 통쾌하게 한 잔 냈다.
   일이 돼가는 걸 보고 응삼도 따라 막걸리를 한 사발을 죽 굽을 낸 후 병완을 쳐다보면서 간사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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