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암리에 음모가 여우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저으면서 횡행할 때였다.
조용히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려향이 들어섰다.
려평은 황급히 창문께로 돌아서 창 밖을 내다보는 척 했다.
려향은 이상한 눈길로 당황해하는 엄마를 살피며 종호 침대머리로 다가갔다.
“아니, 이게 뭐야?”
아빠 손목의 링겔 주사바늘이 빠져 있지 않겠는가.
“어째?”
능청스러운 려평은 창문께에서 침대머리에 돌아와 들여다보며 아닌 보살을 떨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나. 금방까지도 주사바늘이 손등에 꽂혀 있던데...”
려향은 허리를 펴면서 려평을 쏘아보았다.
려평은 주사바늘을 쥐어 종호의 손등에 되꽂으려고 했다.
려향은 주사바늘을 빼앗아내고 엄마를 활 밀어놓으며 질책했다.
“저리 가! 아빠한테 무슨 짓거리 했어?”
려평도 퉁사발눈깔을 희번뜩거리며 변명했다.
“날 의심하는 거야? 이건 버선목이라고 번져보이겠는가? 원, 참.”
그때 혼은 황급히 천정에서 날아내려 종호의 뇌리에 되들어갔다.
지영도 들어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째?”
려향은 억지로 웃어 보이었다.
“아무 일도 아닌데요. 주사바늘이 빠졌는데 꽂을줄 몰라서 그래요.”
지영은 인차 주사바늘을 받아쥐어 종호의 손등에 꽂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글쎄 종호가 황급히 손사래치지 않겠는가!
지영과 려향은 깜짝 놀랐다.
려평은 깜짝 놀라 기혼할 번 했다.
(저놈이 다 알고 있었어?)
려평은 독기어린 퉁방울눈으로 종호를 쏘아보았다.
(정신 잃은 척 했는가? 눈 감고 있는 척하면서 다 봤어?)
“아빠, 정신 차렸어요?”
종호는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었다.
원래 종호는 려평이 링겔 병에 뭘 주사해 놓고 호주머니랑 들추는 것도 다 보았던 것이다.주사바늘도 그가 제꺽 빼놓았던 것이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지영과 려향을 번갈아보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려평과 링겔병을 가리켰다.
“저기에...뭘...타...”
“얼빠진 소릴!”
갑자기 류려평은 고함치며 릴겔 병을 벗겨 땅바닥에 꽝 메쳤다.
“미쳤어?”
려향은 링겔병 쪼각을 내려다보다가 외까풀눈으로 려평을 쏘아보았다.
"왜 이래?"
"너 애빈 정신 나갔어. 얼빠진 잡소릴 다 듣니?"
려평은 쓰레바퀴를 가져다 깨진 병 쪼각을 주섬주섬 주어 담았다.
려평이 쓰레바퀴를 들고 나가려는데 지영이 따라 나섰다.
"내 버릴게요."
병실에서 종호는 려향이 손을 꽉 잡고 말했다.
"네 에,에미, 링결 병에 뭘 주,주사해 넣더라."
"네? 엄마?"
려향은 기절초풍할만치 놀랐다.
"날 안락사시키자고 그러는지 어떻게 알아?"
종호는 이렇게 말하려고 하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증거 없이 더 전개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려향은 입 속 말로 나지막이 부르짓더니 복도로 휑 하니 뛰어나갔다.
려평은 쓰레바퀴를 쥐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꼬리 빳빳해 도망치었다. 뒤에서 려화가 려평을 뒤쫓아갔다.
려평은 바람결처럼 쓰레기통에 뛰어가서 링겔 병 쪼각을 활 쏟아넣었다. 모든 증거를 없애고 나니 홀가분했다.
려평은 빈 쓰레바퀴를 쥐고 돌아서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뒤쫓아간 려향은 외까풀눈으로 려평을 무섭게 쏘아보았다.그 외까풀눈에는 의심과 적대감 어린 빛이 번뜩이었다.
"엄마,무슨 짓거리를 했어?"
"뭘 어쨌다고 이래?"
려평은 아닌 보살하며 시치미를 땄다.
"링겔 병에 뭘 주사해 넣었어?"
"뭐라고? 너 지금 엄마를 무함해? 넌 엄마 딸 아니냐?"
려향은 병원 울 안에서 산책하는 환자들이 많은지라 한쪽 구석 수림 속으로 데리고 갔다.
종호의 혼이 병실 창문으로 날아나가 볼라니.
허, 워쩐 걸.
려향은 자꾸 몸을 빼려는 려평을 소나무 기둥에 밀어붙이며 족따지고 들었다.
"로실하게 탄백하라구.뭘 탔어? 왜 링겔 병을 메쳐 깼어?"
려평은 바늘 방석에 앉은듯했다.
"네 애비 같은 놈은 죽어야 해? 약은 무슨 약이야?죽어야 내나 네나 싹 다 시름놓고 편안하게 살 수 있어."
려향은 한심해 입을 함박만큼이나 쫙 벌렸다.
"그것도 말이라고 해? 함께 살잖겠으면 갈라질게지. 해칠 것까지야 없잖아?"
류려평은 딸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궁리 끝에 류려평은 악처의 본색을 드러냈다. 악처는 독사 혀바닥을 놀려 종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네 아빠 어떤 놈인지 알기나 하고 그래?"
려향은 연지꼰지 처바른 엄마의 퉁퉁하고 유들유들한 낯을 마주 바라보며 피씩 웃었다.
"아빠 치분을 중간을 눌러 짜 쓴다고 리혼하자고 하잖았는가요?"
"그래."
류려평은 부정하지 않았다.
"치분 낭비한 거 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려향은 듣기도 싫었다.
"또 뭐야? 류씨 집안 외할아버지 신세에 할머니랑 삼촌이랑 고모네랑 다 시내 호구 올리어 주었다는 거겠죠.이젠 엄마 넉두리에 귀에 못이 박히겠어요.흥!"
류려평은 눈물 콧물 줴짜며 연기하면서 지꿎게 물고 늘어지었다.
"리종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 바람둥이야. 내 어떻게 참고 이날 이때까지 살았는지 알아? 흑흑, 흑흑흑…"
"뭐라고?”
려향은 손으로 려평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빠를 모독하지 말어. 세상에 둘도 없는 정인군자인데."
"흥!"
려평은 콧방귀를 뀌었다.
"알기나 하고 그러냐?”
려평은 핸드폰을 들어 이것 저것 찾더니 려향의 앞에 내밀었다.
“이걸 봐.”
려향은 핸드폰을 가져다 들여다보았다.
아니, 영이라는 여자와 주고 받은 문자대화 사진이 아니겠는가.
호: 참 오랜만이오 반갑소.
영: 그래요. 저도 기뻐요. 그대와의 위챗 대화 ㅋㅋ
호: 엊그제 끌끌한 청춘이었는데.
영 : 세월이 넘 빨리 흘러갔네요. 오- 걷잡을 수 없는 세월 얄미워요.
호: 오-그 정열에 불타던 청춘의 추억이여.
영: 이런 말 자꾸 하면 난 어쩌는가요? 눈물만 자꾸 흐르는데요.
호: 그저 혼자 조용히 보고 싹 다 지워 버리오.
영: ㅋㅋㅋ
호: 우리 둘의 정열을 불살라 남긴 사랑의 흔적은 당직실 깜깜한 구들에서부터 시작해 한강 뚝에, 모래톱에, 철길 옆 채마전에, 북한강 영월버들방천에, 설악산 단풍나무숲 속에… 그 불탄 사랑의 흔적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있구나. 아, 뼈 속에, 골수에 박힌 옛 추억이어, 해란강 사랑의 로맨스야-
“봐. 이 년놈들이 한국 사처에 돌아다니면서 바람 피우지 않았어? 얼마나 위선적인 정인군자이냐?”
려향은 극구 아빠를 변호하고 싶었다.
“아빤,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니깐.”
그녀는 그 문자 대화를 자기 위책에 옮기고 핸드폰을 려평한테 돌리어 주었다.
“혹시 남의 걸 사진 찍어 뒀을 수도 있겠지요.”
류려평은 손가락으로 려향의 콧등을 콕 찔러놓았다.
“이년아, 아무리 애비라도 변명하지 말라. 너 애빈 재직 때도 숱한 여자들과 희희닥닥거리면서 밤중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술 처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안고 돌아가구 마사지방에 드나들면서 세상 개지잘을 다 했어.”
종호의 혼은 단풍나무 잎에 매달려 들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노래방과 마사지방에는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나 부정당한 관계는 벌리지 않았어.”
종호의 목소리에 려평이나 려향이나 다 깜짝 놀랐다.
주위를 둘러 봐도 종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환각인가?)
류려평은 계속 종호를 헐뜯어댔다.
“네 애빈 여기 한국에 나오기 전에 벌써 저 나영이랑 지영이란 년이랑 바람 피웠어."
"거짓말, 나영과 지영 언닌 여기 와서 갓 면목익힌 사이라던데."
려평은 심통한 소리를 쳤다.
"다 거짓말이야.네 애빈 사장 직권을 리용해 나영과 지영을 한국에 보내줬어.저 나영이란 년도 나쁜 년이야.내 갓 알았는데. 저년 중국에서 전람관 부관장에 재무과장을 했다더라.단위 돈 5만원을 탐오한 범죄자야. 지금 인터폴이 지명수배하는 도주범이야."
"네?"
그 말엔 려향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나영이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른 것은 진자 금시초문이었다.
"엄만,걸 어떻게 알아요?"
그때 저쪽 멀리에서 나영이 과일꾸럭을 들고 입원처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피뜩 보이었다.
"내 시 공안국 박동국 국장이랑 잘 알어.이번에 나올 때 나한테 부탁하더라. 나영이란 년 행적을 보면 신고하라고 부탁까지 받았다."
려향이 풀이 죽어가는 걸 보고 려평은 살기등등해 지껄여댔다.
"네 애비 얼마나 나쁜 놈이냐? 인터폴 지명수배 도주범을 셋집에 숨겨두었잖아? 도주범을 도우면 공범 아니고 뭐야?"
려평의 말 마디마다 점점 더 살기 넘쳤다.
"이제 신고해버릴 거야. 꼴 보기 좋겠다.콧구멍 같은 셋집에서 가달에 끼고 바람 피우더니. 흥, 바람둥이 년놈들, 꼬락서니들 보기 좋겠다.흥,쇠고랑이를 차고 중국에 압송돼가는 꼴!"
려향은 살기등등한 엄마의 독살이 내비치는 퉁사발눈을 보기에도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류려평이 엄마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잡아 먹지 못해 미쳐 날뛰는 여악마로 보이었다.
(안돼, 아빠는 어디까지나 내 아빠야.그런데 엄마 입을 어떻게 막아버릴가? 링겔 병 쪼각마저 다 버렸어.이걸 어쩌나? 증거 없잖은가?)
려향은 류려평을 그저 놔 둘 수 없었다.
“엄마 아빠를 신고해보지. 금방 링겔 병 일을 신고할테야.”
려향은 기 죽어가는 려평의 꼴을 보고 제대로 칼을 박았구나고 생각하고 한번 더 칼을 들이댔다.
“금방 링겔 병에 무슨 짓 했어?”
려평은 두 손으로 려향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생사람을 잡지 말어. 네 애비 손등에서 주사바늘이 빠져서 그랬어.”
“주사바늘이 빠진 거 하고 뭔 상관이야?”
려평은 퉁사발눈을 흘기며 두덜거리었다.
“네 애비 링겔 못 맞고 빨리 썩어지라고 그랬어? 됐어?”
려향은 너무 허탈해 려평을 놔 주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병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링겔병을 깨 버렸기에 아무 증거도 없어. 저런 것도 에미라고 살려 둬?)
그러나 려향은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아빠를 잃고 엄마마저 잃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생모 아닌가. 어쩌다 내 아빠 엄마 이 지경이 됐어? 참, 하늘도 야속해.)
그녀의 가슴은 칼로 오리오리 에이는듯이 아파났다. 그러나 링겔병 진실은 어디까지나 밝혀내고 싶었다. 그래야 이후에라도 아빠를 구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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