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장례식
홧홧 타오르는 열기에 잿빛벽돌들이 탁탁 튀어 오르며 죽음의 노래를 부르면서 바람에 팔락이는 실오리만한 혼의 꼬리를 집어삼킨다. 화장터 용광로는 피와 살 냄새를 맡고 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음흉한 실웃음을 짓는다.
인생이 허무하다. 염라전에 오면 영웅호걸도 절세미인도, 더러운 세상을 버린 육체는 뻘건 염라전 불길이 이글거리는 용광로에서 재가루로 돼 하늘로 오를 것이거니.
허나 혼은 "봉황열반"처럼 새로운 봉황으로 태어나 하늘을 훨훨 날아예며 새 세상을 노래할 것이다. 밤중에 끊임없이 우짖는 귀뚜라미처럼 끝없이 우짖으며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남합할 것이리라.
바람 따라 날아가는 사랑의 그림자를 허무하게 뒤쫓아 가다가 지치어 쓰러진 언덕에 하얀 그리움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무시무시한 백골들이 쩍 벌린 아가리로 죽음의 공포를 뱉어내고 낮잠을 청한다.
얼룩 독사가 움푹 파인 백골 눈확에서 기어나와 혀를 날름거리며 가냘프게 시들어가는 황혼을 쳐다보며 한숨의 꼬리를 잡고 모래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사막의 밤 하늘을 노크한다.
얼빠진 황혼은 비틀거리며 염라전에서 라체무를 추며 허무한 인생의 콧노래를 부르며 어두운 밤의 고독한 악기를 고른다.
장례식장 칠성 판에는 고독하게 이 세상을 누비던 내 혼의 가죽이 파르르 떨며 누어 있다.
“아버지! 왜 이리 멍청한 짓을 해요? 네?”
(그래도 딸이 있어 다행이야. 저승길에 너무 외롭진 않아.)
황혼 인생의 마지막 길에 추모곡은 울리지 않아도 그래도 처량하게 우는 무남독녀의 곡성이 들리지 않는가?
염라전의 문턱에서 지쳐 쓰러진 혼, 식어가는 혼은 화장터로 들어가면서도 희쭉 웃으며 뜨거운 열기를 받아들인다.
“아버지, 이 딸을 두고 어디로 간다고 이래요?”
칠성판에 오른 나의 혼은 딸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려향아, 슬퍼 말라. 난 그래도 우리 겨레를 위해 뭔가 해놓았다. 이젠 시름놓고 가야겠다. 지금 가면 딱 맞춤해. 존엄도 지키고. 좀 조용히 가게 해달라. 네가 울면 내 황천길이 너무 쓸쓸해진다. 이젠 좀 울음 딱 끄쳐라. 네가 운들 죽은 혼이 되살아나겠느냐? 부질없는 통곡을 제발 멈춰라.)
“아버지, 어쩜 이 세상에 외로운 딸 두고 그렇게 총망히 갈 수 있나요?”
(아니, 이게 웬 일인가? 난 분명 칼로 내 손목 동맥을 잘랐는데. 려향의 울음소리가 들리다니? 분명 자살했는데. 유독 고독한 혼은 이 더러운 세상에 살아 있단 말인가?)
종호의 혼은 세상이 보기 싫어 눈을 딱 감았다. 그런데 보기 싫어할수록 희미하게 보인다.
분명 하나 밖에 없는 려향이 칠성판에 올라와 나를 부둥켜 안고 울고 불고 야단친다.
그런데 다른 젊은 여인의 통곡소리도 애절하게 들리지 않겠는가.
“리사장님, 이게 웬 일인가요? 어쩜 나를 홀로 두고 이렇게 총망히 가는가요? 네, 사장님은 저승 문턱에 간 나를 구해 삶의 용기를 주었는데요. 왜 이렇게 짧은 생각을 다 하는가요?”
말귀를 들어봐서는 나영 같았다. 흐느껴 우는 울음소리도 어쩜 저렇게 쓸쓸할가.
“리사장님이 없이 제가 홀로 어떻게 사는가요? 흐흐흑, 흑흑,”
뒤이어 장송곡이 울리고 웬 남성이 뭘 선독한다.
(뭐? 고 리종호 부사장, 작가 추모식? 세상 웃긴다. 난 이미 이 세상과 하직했는데. 추모식을 해 뭘 해? 그저 기름을 치고 화로불에 태워 하늘에 훌 날궈 버리면 다야. 나는 자유로운 새처럼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바다로, 광야로 훨훨 날아가련다. 저 봐라. 바람이 산의 속살에 날아들어간다. 바다를 다독여 세찬 파도를 일으킨다. 바람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붕붕 날아다니면서 뭔가를 속삭이며 귀띔해주고 있지 않는가.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 내 갈 길을 막지 말라.)
종호의 혼은 별스럽게 화장터 칠성판에 올라도 공포를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별 궁리를 다 했다.
그런데 웬 일일가?
혼이 화장터 천정에 올라가 떡 철싸닥 붙지 않겠는가. 혼은 가련하게 삶의 미련을 타고 천정에 대룽대룽 전등알처럼 매달려 내려다 보고 있다.
려향이 또 숱한 상객들 앞에서 아빠 육체를 부둥켜 안고 대성통곡친다. 빈소의 관리일군이 려향을 말려도 소용없다.
“아버지! 못 가요! 저를 두고 어데 간다고 이래요?”
“넌 시집도 가지 않고 불효를 저저리는데 내 살아 뭘 하겠느냐? 로처녀로 늙어가는 널 보면서 황혼을 재빛으로 태우면서 살라고? 어림도 없다.”
(웬 일인가?)
화장터 천정에 대롱대롱 매달린 혼은 깜짝 놀랐다. 하마트면 천정에서 퉁 떨어질번 했다.
(난 분명 속으로 되뇌였잖은가? 건데 상객들이 다 듣게 소리 나갔잖어? 별 일도 다 있다. 참.)
종호의 혼은 간사스럽게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상객들 속에 놀랍게도 류려평도 와 있지 않겠는가. 저쪽 구석으로 해 나영도 서 있고 또 그 옆에는 정호도 서 있지 않겠는가!
(저 년놈들을 보기도 싫어! 저 년놈들은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과 “졸혼”에도 드문드문 나오던 추악한 인물들이 아닌가? 숱한 혼을 빼간 년놈들. 바람둥이들! 저 년놈들이 보기 싫어 내 자살한게 아닌가!)
종호의 혼은 경악했다.
(날 되살아나라고? 관둬라! 한 많은 이 세상에서 두번 다신 살진 않겠어.)
혼은 천정에서 화로에 퉁 뛰어들어갔다.
뿌지직! 뿌지직!
천도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를 뱉어낸다. 육신은 씨뻘건 화염에 싸여 타버리며 쓸쓸한 황혼 인생의 찬송가를 부른다. 타버리는 잿빛 황혼은 용광로 속에도 뻘건 빛을 온 누리에 빛뿌린다. 황혼 빛은 어두운 밤을 밝히려고 몸부림치며 어려운 행진곡을 힘겹게 부른다.
웬 일일가?
육신은 다 타서 재가루 됐는데도 얼빠진 황혼의 혼은 계속 콧노래를 부르며 달갑게 공포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 않는가!
웬 일일가?
말로는 공포의 블랙홀에 휘말려 들어갔다는데 아닌가? 건데 왜엉뚱한 사유는 계속 흐르고 있지 않겠는가?
려향의 울음소리 똑똑히 들리지 않는가? 류려평이 말리는 소리도…
(색마 정호가 내 추모사를 읽어선 안돼. 정의용사 성호가 읽어야는데. 참. 황혼에 이르니 옆에 사람도 없어. 어쩜 번대머리가 추모사 읽는 소리가 계속 들려? 저런 것도 문화국 국장 책상머리 퇴물림이라고, 시도 모르던 놈이 뭐 그것도 시라고 읊어대? 세상 어처구니 없기로서니. 하긴 사슴이 돛대에 올라 해금을 켜는 세월이니. 이상할 것도 아니지.)
황혼은 붉게 타다가 맥없이 져가는데
캄캄한 하늘에서 큰 별이 류성처럼 떨어지니
곡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진달래 꽃잎에 맺힌 눈물 방울
바다를 메우며 노호하네.
지지리 어두운 밤에
등대 잃은 저 쪽배를 어찌 할꼬?
키잡이 잃어버린 저 책짐 실은 쪽배
야수처럼 덮쳐드는 세찬 파도를 어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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